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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되었던 사담 후세인의 사형 동영상

 
문제가 되었던 사담 후세인의 사형 동영상.

현재까지 들리는 네 녀석의 처형 과정에서 있었던 전언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지만, 혹시라도 네 녀석의 마음 속에서 있었길 바라는 기적(?)이 있다면..

네 녀석이 살아 생전에 마음껏 죽이고 약탈하고 강간해 온 사람들과 네 녀석의 살생부에 올라 네 녀석의 의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자들의 공포를 조금이라도 느끼며 네 녀석의 죄에 대한 약간의 회개하는 마음이 찰나라도 있었길 바란다.

물론 지금까지의 소식에 의하면 이러한 내 작은 소망(?)은 단지 소망일 뿐이지만..

P.S. : 학창 시절(이제 졸업이니까.)에 2004년 이었나?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에 대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던 기억이 난다.

Hedge™, Against All Odds..
  • Favicon of http://asobo-picture.tistory.com/ BlogIcon asobo 2007.01.05 22:22 ADDR 수정/삭제 답글

    으으~ 무섭네요~
    괜히 본듯..ㅜ,ㅜ
    사람이 죽는건 악당(?)이라도 무셔....ㅜ,ㅜ

    • Favicon of https://genesis.innori.com BlogIcon 얼음구름 2007.01.05 22:52 신고 수정/삭제

      특별히 잔인한 묘사는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나 보네요. ^^..

  • Favicon of http://violeter.tistory.com BlogIcon violeter 2007.01.06 11:25 ADDR 수정/삭제 답글

    이거 보는 순간, 그냥 착하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ㅜㅜ

  • Favicon of http://asobo-picture.tistory.com/ BlogIcon asobo 2007.01.07 03:59 ADDR 수정/삭제 답글

    특별히 잔인한 묘사는 없어보이지만....
    목이 줄에 매달린다음에 밑에 푹 열리면서 내려갈떄
    살짝 충격(?) 비스므리한것이 오더라고요....
    사람이 그렇게 죽는건 처음봐서요....

    • Favicon of https://genesis.innori.com BlogIcon 얼음구름 2007.01.07 15:28 신고 수정/삭제

      후세인이 죽인 자들을 생각하면 차우세스쿠의 처형처럼 좀 더 가혹한 형벌이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차우세스쿠의 죽음은 무참한 것 만큼이나 전 세계에 사실상 생중계되며 '잔혹한 폭군의 종말'이 어떤 것이라는 것으로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죠. 김정일도 이와 같은 비참함을 맛보길 희망합니다.

사담 후세인의 사망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아주 어릴 적에 공산사회주의 루마니아를 지배하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의 처형 장면을 월드뉴스 시간대에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너무 어린 초등학생이어서 자동소총의 난사로 걸레가 된 그의 시체가 메달려 있는 콘크리트 벽을 루마니아군의 탱크가 짓밟고 지나가는 장면과 짓밟히고 난 후의 차우세스쿠 시체의 얼굴 부분이 나온 영상을 본 것이 지금도 상당히 또렷히 남는다. 그 때의 나는 매우 어리고 가치 판단이랄 것도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가 독재자(그 때의 내가 독재자가 무슨 의미인지나 알았을까.)라는 사실과 시민의 손에 죽었다는 것 하나만 알았다. 나쁜 놈이니까 시민들이 죽였겠지..하는 수준의 이해랄까?
 
 
오늘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정부당국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후세인 본인은 군인이기 때문에 총살형을 요구했지만, 살인마 후세인에게는 자신이 죽을 방법을 선택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부여되지 않았다. 사형의 조기집행을 예감한 후세인은 죽기 전에 남긴 편지(원래 법정에서 낭독할 예정이었으나, 법정을 통해서 친위조직을 선동하고 자극할 권리를 얻지 못했다.)에서 "증오는 사람들이 공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지 않고, 공정한 생각과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다."라면서 "우리를 공격하고 이라크 정부와 국민을 분열시킨 외국 사람들도 증오하지 말아 달라."라는 아주 표리부동하고 황당무계한 말로 자신을 마치 부당한 국제정치적 폭압에 의해 불가피하게 죽음을 맞는 순교자인 양 묘사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글의 말미에 자신이 알라 곁에 순교자로서 머물 것이며 지하드, 무자헤딘, 팔레스타인을 찬양했다. 후세인의 편지가 의도한 목적은 명백하며 후세인은 최후까지 그의 잔당들에게 모택동식의 '계속투쟁'을 주문하였다.
 
 
굳이 차우세스쿠와 후세인의 죽음을 연관시키기란 쉬우면서도 쉽지 않다. 철권통치를 펼친 독재자였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집권하는 과정도 달랐고, 통치 과정도 달랐으며 대외관계도 판이했다. 세계를 바라보는 눈도 미국을 적성국으로 둔 것은 동일했지만, 서방 진영에 대한 접근법은 명백히 차이를 보인다. 심지어 둘의 죽음을 둘러싼 주요 국가들과 주변국들의 반응도 판이할 정도로 둘은 쉽게 연관지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연관짓기 힘들다. 단지 둘의 연관 관계를 굳이 만들어 내자면, 둘 다 처형 당시의 상황에서 '죽어 마땅했다'라는 점 하나다.
 
 
니콜라이 차우세스쿠를 무참히 처형한 루마니아의 국민들이 차우세스쿠의 통치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아온 그들 혁명 1세대들에게 자본주의 사회 구조는 너무나 냉혹하고 치열하며 미래가 칠흑같은 암흑 속이다. 차우세스쿠의 시절이 진심으로 그리운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현실이 너무나 힘이 들어 차라리 그 때가 낫다는 자괴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루마니아인들만이 알겠지만, 한때는 죽어 마땅했던 자가 17년의 시간이 흘러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들의 손으로 그의 신체를 걸레짝으로 만들고 그의 시체를 탱크로 짓뭉개며 환호하던 그들이 다시 그를 사모하기 시작하는 이 모순된 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단순히 루마니아인들이 어리석어서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체감하지 못할 뿐이라고 치부한다면, 당신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국민은 언제나 옳다'라는 철칙을 부정해야 한다. (실례로 노무현의 참여정부도 이 철칙을 잘 활용하여 득세하였지만, 점차 철칙이 장애물이 되자 때로는 옳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꾸며 자승자박에 빠진 적이 있다.) 나는 뚜렷한 공적이 아무 것도 없는 차우세스쿠를 향한 루마니아의 그리움이 일시적인 것이며 장기적으로 분명 개선될 것이라 확신한다.
 
 
오늘 후세인이 죽었다. 후세인의 친위정당이었던 바트당은 즉각 복수를 다짐했다. 바트당은 이미 무늬만 정당일 뿐, 소규모 테러 점조직이나 다름 없다. 그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슬람 교리에 찌들대로 찌들어 있는 이라크 민중들이다.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은 이라크 민중들의 후세인 처형에 대한 감회는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라크 자체가 종파/민족적으로 복수의 세력이 모여 있고 이에 따라서 후세인 정권의 수혜를 받기도 핍박을 받기도 하였기 때문에 후세인에 대한 감정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라크 상황을 바라 보는 해외 언론의 시각도 그들의 취재 지역, 취재 의도, 본국의 성향/방침에 따라서 완전히 판이하다. CNN과 알자지라가 같은 소식을 전혀 다르게 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現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단정지을 수 있는 사항이 있다. 그것은 마약처럼 강한 '민주주의의 승리'이다. 나는 자본주의의 우월함과 함께 민주주의의 절대우월성을 믿는다. 민주주의는 마약처럼 한 번 맛을 들이면 절대 헤어날 수 없는 마력을 지녔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게된 민중은 장기적으로 그 민주주의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이 물질을 추구하는 기본 본성에 입각한 자본주의의 근간 만큼이나 민주주의의 뿌리도 깊다. 경제체제에서 최후의 승자가 자본주의가 아닐 수는 있겠지만, 정치체제에서 최후의 승자는 반드시 민주주의임을 확신한다.

단기적 혼란은 불가피하다. 당장은 후세인의 죽음이 이라크 민주정부에게 악재로서 루마니아에서처럼 그를 그리워 하는 집단이나 세력에게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미국의 한국 군정(軍政) 교훈에서 비롯된 이라크에 대한 새로운 정치공학적 접근법으로 이라크 민중들의 뇌리에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민주적 가치가 잠식될 것이고 그러한 가치전이는 먼 훗날 오늘의 이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P.S. : 나 스스로도 연관성이 없다고 밝힌 차우세스쿠와 후세인의 접근은 대실패인 것 같다. 무리수가 너무 많은 것 같다.

 
Hedge™, Against All Odds..
  • Favicon of https://oneartoneday.tistory.com BlogIcon unsky 2006.12.30 15:04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흠 저도 밤 10시쯤 20/20라는 미국판 이것이알고싶다 같은걸 보다가 순간 속보뉴스덕에 알게되었습니다. 이런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그냥 한참을 ABC채널을 보다가 이채널 저채널 돌려보니, NBC 혹은 FOX, CBS 같은 경우에는 관심없이 예정된 방송을 하고 있었고, CNN은 역시나 굉장한 일인듯 이곳저곳 특파원을 파견하여 방송을 하더군요

    CNN과 ABC의 다른 방송내용에 살짝 당황했습니다. CNN은 미시간에 한 이라크인들이 많이 살고있는 동네를 비춰주면서, 얼마나 그들이 이뻐하고 그순간을 즐기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반면에 ABC는 후세인의 삶에 대해 다루더군요.

    사실 루마니아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만,
    마지막 부분에 너무 공감이 가서 댓글남겨봅니다 ^^

    • Favicon of https://genesis.innori.com BlogIcon 얼음구름 2006.12.31 03:18 신고 수정/삭제

      'CNN Effect'라고 들어보셨을 겁니다. 위험을 무릅쓴 취재로 전장의 상황을 생생히 전하면서 국내 여론을 선도했던 1차 걸프전에서 비롯된 신조어였습니다. CNN이 경쟁사들을 누르게 된 중요한 계기였죠.
      예전 루퍼스 머독이 소유권을 행사하던 FOX TV가 조지 W.부시의 두 번째 걸프전에서 CNN Effect의 재판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신통찮았나 보네요.

  • Favicon of http://sogmi.com BlogIcon 소금이 2006.12.30 15:27 ADDR 수정/삭제 답글

    전 민주주의의 승리라기 보다는 민주주의의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후세인이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의 지원이었고, 생화학 무기가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핑계삼아 이라크를 침공한 것또한 미국이었으니까요. 세계는 민주주의로 흘러가고 있지만, 그 민주주의를 이끄는 국가들은 철저한 자본주의에 의해 행동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행동은 오만합니다. 적어도 그들에겐 후세인의 처벌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하네요.

    • Favicon of https://genesis.innori.com BlogIcon 얼음구름 2006.12.31 03:28 신고 수정/삭제

      단지 후세인의 장기집권만을 논하고자 한다면 후세인은 쿠데타를 통해서 자력으로 집권한 반정치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이라크를 후원한 것은 이란의 호메이니가 평화적 정치혁명을 지향하던 親美성향의 팔레비 왕조를 붕괴시키는 이슬람 혁명을 일으키면서 중동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었고, 이런 이란의 발호를 저지하기 위해서 중동의 지역적 패권을 꿈꾸던 이라크의 후세인을 군사적으로 후원하여 8년 전쟁을 일으킨 것을 말하고 싶으신 것 같네요.

      그러나 미국은 이란 국력의 1/3 밖에 안되는 이라크를 후원하면서도 이라크가 미국의 통제권 밖으로 돌출되자, 후세인을 적성세력으로 돌렸고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에 끊임없이 反美 성향의 중동패권을 노리는 현상타파세력으로서 존재해 왔습니다. 후세인의 집권 안정기에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틀림없지만, 후세인의 장기집권에 미국이 도움을 주었다는 말은 명백히 오류입니다. 걸프전에서 이라크를 반신불수로 만든 것은 조지 H.부시이고 빌 클린턴 시절에도 이라크에 대한 공습과 제재는 지속되었으며 조지 W. 부시는 후세인을 파멸시켰습니다. 어느 요소도 미국이 후세인을 후원했다는 객관적 증거라고 할 수 없으며 어떤 도움을 주었다고 하여도 이 3가지 사실보다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오만이라는 부분도 사례를 좀 더 다르게 보면, (저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지만)우리가 대북포용정책을 통해서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우월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 우리 중심의 정책으로 소금이님께서 말하는 민주주의의 오만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들은 60년 세습독재 기간동안 '우리 식대로 살자'를 외쳐온 고립무원이 되길 자처한 자들입니다. 소금이님의 주장이 성립되려면 우리 스스로 먼저 우리의 틀을 깨고 아나키즘적 상태로 회귀하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 Favicon of http://violeter.tistory.com BlogIcon violeter 2006.12.30 17:19 ADDR 수정/삭제 답글

    민주주의의 오만이니 승리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후세인의 죽음을 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습니다. 권력도 힘도 역시 언젠가는 없어지고 초라한 시체로 남을 뿐이죠. 후세인의 죽음을 보며 과연 나는 삶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어떤것이 눈 감았다가 뜨면 사라지는 것이라면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겠죠. 후세인은 과감히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 Favicon of https://genesis.innori.com BlogIcon 얼음구름 2006.12.31 03:33 신고 수정/삭제

      권력은 뜰 때가 있으면 질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후세인의 종말은 폴 포트나 밀로셰비치와 같은 형태로 죽어 살인마를 방관했다는 차가운 시선이나, 부하의 손에 죽어 그 죽음으로도 죄사함을 받지 못하는 박정희와 같은 차가운 시선을 받기보다, 이라크 민주정부 인사들의 자율적 결정에 의한 사형을 집행함으로서 정의를 실현했다는 명분론적 당위성을 부여함으로서 당장의 작은 혼란에도 장기적으로 잡음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저는 후세인보다 아버지를 믿고 미친 개망나니 짓을 하던 그의 아들들인 우다이와 쿠사이가 로켓에 맞아 즉사했을 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 Favicon of http://lucidpoverty.innori.com BlogIcon 맑은가난 2006.12.30 22:33 ADDR 수정/삭제 답글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은 이제 협의적이 될 수 없습니다. "선거를 통한 다수 국민의 의지"정도로, 매우 모호하고 형이상학적 접근법 이외에는 힘듭니다. 전세계 모든 국가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확연히 분간해낼 수 있는 국가가 있을까요? 정의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봅니다.(북한도 군주제가 아닌 이상, 다수 국민의 지지에 의한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민주주의 이외의 비교할만한 정치체제가 없으므로, 대결에서의 승리로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전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보기보단, "미국식" 정치체제의 승리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사족으로, 소금이님의 자본주의적 행동은 오만이라는 말씀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곧 오만이라는 연결고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단순히 미국만을 보고 단정 짓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입니다.

    • Favicon of https://genesis.innori.com BlogIcon 얼음구름 2006.12.31 03:42 신고 수정/삭제

      우리가 민주주의를 논할 때 이야기하는 것은 서방 선진국들의 민주주의이지, 미국의 민주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북미의 민주주의가 다르고 유럽대륙의 민주주의가 다르다는 것은 이제 모두가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의 차이이지만, 그 서로 다른 민주주의를 우리는 구태여 구분하여 부르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하는 큰 틀에 '직접선거를 통한 통치' 이외에도 '국민이 주인이 될 수 있는 통치체제'라는 더 큰 대전제를 암묵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이다.

      DPRK(Democratic Prople's Republic of Korea)가 민주주의가 들어간다고 민주국가라고 보지 않듯이, 우리가 아는 그 민주주의는 반드시 미국식 민주주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미군정에 의해서 이식 받은 체제이지만, 미국식이지 않는 것과 같은 접근법으로 사안을 바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라크에 미국식 민주주의가 이식된다고 이라크에 미국식 정의가 성립되었다고 보는 것은 단견이라고 생각한다.

      이라크 민주정부가 미국에 의해 존립하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고 '후세인 처형'이라는 거사를 큰형님 미국의 하명에 따라 추진했다고 보는 것도 중동 특유의 감성을 너무 '우리 식'으로 해석하는 견해라고 본다. 미군정에 의해서 성립된 초기 한국의 이승만 정권이 한국전쟁 당시의 총포가 터지는 촌각을 다투는 시기에서도 북진통일이라는 내부적 염원을 주장하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괴뢰군 포로를 자의적으로 석방해 버린 것처럼 이라크 정부도 제한된 상황 속에서 얼마든지 자의적 가치판단이 가미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접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