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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논리, 양심적 병역 거부

아침에 일어나서 컴퓨터를 켜니, 신문 사이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일이고, 나 또한 과거에 이와 같은 주제로 그들의 허무맹랑함과 그들이 가지는 보편적 일반인에 대한 혐오의식을 글로 쓴 적이 있어서, 그와 같은 감정적인 논지의 글은 또다시 쓸 필요 없을 듯 하다.


다만 지난 6월 28일 예비군 훈련을 갔을 때, 10명의 어이 없는 놈들이 6발의 M16A1 사격 훈련을 다른 300여명의 보통 예비군들의 따가운 눈총이 부담됐는지, 해당 조교나 교관들에게 아무런 보고 없이 거부하면서 잠깐 일행을 술렁이게 만들었던 점이 떠올라 간단하게 다시 한 번 지적하고자 한다.


양심적 병역 거부(대표적으로 '여호와의 증인' 녀석들이 있다.)를 통해서 집총거부를 하는 자들은 '살생의 도구가 되는 것에 대한 거부'를 기본으로 한다. 그들은 살생을 목적으로 하는 도구를 들고 하는 훈련을 거부한다는 것이 기본 주장이다.
이를 통해서 우회적으로 '그것(살상 무기)'을 들고 (자의든, 타의든 명령에 의해서)훈련하는 우리들을 잠재적 살인/살생자로 취급을 한다.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지만, 아무리 감언이설로 대중을 설득해도 행위의 가치 판단과 본질은 변화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러한 종교적 이유로 집총거부를 하는 한, 그들의 논리는 분명히 우리를 잠재적 살인/살생자로 볼 수 밖에 없다.


종교의 속성은 '교세의 확산'에 있다. 인간의 나약함과 절대자에 대한 의지 욕구가 만든 종교는 마치 전염병처럼 인간이 아무리 없애고 싶어도 없애기 힘든 속성(?)이 있다. 오히려 억압하면 할수록 교인들의 믿음은 오히려 더욱 과감해지고 독실해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의 정당성과 그 신념이 자신들을 구원해 주고 있음을 간증하고자 더더욱 혈안이 된다.

여기서 종교적 이유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앞선 지적에서 집총거부에 따른 일반인들이 훈련하는 것에 대해서 비난하지 않음을 언론을 통해서 감언이설했지만, 그들의 그 신성한 믿음(?)과 종교적 구원에 사람들을 끌어 들이려면 집총을 통한 군사 훈련을 받은 그들을 수용해야 한다. 교세 확장 과정에서 교인 모두를 여자로만 채울 것이 아니라면 그들(성실한 병역 이행자)에게 일종의 고해성사가 필요하고 그러므로서 다시 한 번 우회적으로 국민개병제에 따라 정상적인 군사 훈련을 성실히 받는 병역 이행자들을 다시 한 번 욕되게 한다.


종교는 필연적으로 '구복적 성향'을 띄고 있다. 그것이 현세구복적이든, 내세구복적이든 종교란 본질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는데 정신적인 지지대가 되는 역할로서 교세를 확장해 왔고 모든 시대에서, 모든 종교에서 이러한 현세/내세구복적 성향은 그 정도의 차가 있을지 모르나, 반드시 내제되어 있다.

여기서 또 한 번 현실적인 문제 속에서 비타협적인 '종교적 사유의 병역거부자'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다른 어느 산업 국가(이러한 명칭은 아시아-아프리카의 수없이 많은 내전 국가들과 구분하기 위해서다.)보다도 안보적으로 심대한 위협을 받고 있는 한국의 특수한 대립적 상황 속에서 그들의 '집총거부'가 반사회적인 논리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그들만의 구복'을 위해서 국민/민족이라는 압도적으로 큰 조직 단위의 결속과 단결을 해치는 이기주의적 집단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민주 국가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어제까지 교회에 다니다가도 내일 절에 나갈 수 있는 것이 종교의 자유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목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다가, 그들이 주장하는 소기의 '대체 복무[이 말도 참 웃긴 것이, 그럼 현역병을 출퇴근시키겠다는 건가? 설사 합숙하겠다고 하더라도, 왜 그들 때문에 그러한 사회적 부담(그들이 합숙할 수 있는 시설을 짓고, 그것을 유지하는 비용)을 추가적으로 우리가 짊어져야 하는가?]'가 채워지면 다시 무교인으로 돌아서거나, 자신들의 원래 종교로 돌아갈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20살 넘어까지 무교인으로 살다가, 원래 뜻이 있던 성경이 좋아서 교회를 다녔으나 교회 신자들의 예수실존에 대한 요구에 반발하여 '나는 성경만으로 이미 충분한데, 왜 예수의 실존을 요구하느냐'는 반발에 '예수의 실존을 믿지 않으면 예수를 믿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여 교회를 떠났고,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어졌다.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종교에 귀의하기 위해서는 이와 비슷한 경우가 분명히 벌어질 것이다.

이보다 앞서서 가장 본질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만약에만약에 혹시라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종교적 유권해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무장하고 내려오는 적군을 향해서 평화의 소중함과 생명의 존엄함을 아무리 설법해 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체체니아 사태에서 체체니아 국민들이 러시아 군인들을 향해서 가족애와 정에 호소하는 전술을 펼쳤지만, 체체니아 테러리스트들과 체체니아 지역에 대한 집중 포격과 생화학 무기 사용 등은 아무 거리낌 없이 실행되었다.)


결국 이들은 앞서 여러 언론을 통해서 약속(?)했던 것들에 대해서 이행될 수 없는 공약(空約)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도 성당도 절도 어디도 국가 안보에 걸림돌이 되는 교리를 지킬 것을 내세우지 않는다. 2천년전의 그들의 종교적 신념이 지금과 일치할 수 없을테니, 오랜 시간을 지내오면서 그들이 세상의 논리와 적절히 타협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 거부를 한다는 것은 한국적 정서의 보편적 사회 논리에서 병역 면탈을 목적으로 하는 것 내지는 우회적인 성실한 병역 이행자들에 대한 모욕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나와 함께 생활했던 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총들고 뛰는 우리는 뭐냐? 우리는 양심도 없는 놈들이냐?' 라는 말이다. 물론 이런 말들은 즉흥적이고 감정적 반발이다. 그러나, 그러한 반발에 대해 적실성 있는 설명을 할 수 없는 종교라면 교세 확장에도 사이비 논란에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결론은 '참 웃기는 놈들이다'이다. 이번에 판사가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지켜주기 위해 병역을 면제 받을 수 있는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니,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이러한 생각이 병역 이행자로서 가지는 '마초 근성'과 '피해의식의 발로'라고 그들이 비난한다면 별로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나와 같은 마초 근성과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유사시, 조국 수호를 위해서 전쟁터로 나간다는 것을 그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공격을 유도하는 언론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사전적 의미는 '선전'이다. 선전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의 존재나 효능 또는 주장 등을 남에게 설명하여 동의를 구하는 일 또는 그 활동이라 정의내리고 있다. 하지만 보통 프로파간다를 언급하면 '정치선전', '정치선동'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또한 그렇게 쓰고 있다.

'프로파간다'는 미국의 유태계 언어학자[비록 그의 주장은 서서히 그 당위성이 약화되었지만, 당시 일으켰던 파장 자체는 충분히 컸으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언어학자로서 기억될 가치가 있다.]이자, 정치평론가인 Noam Chomsky가 극도로 혐오하는 단어이다. 물론, 나도 혐오한다.


며칠 전 거의 모든 포털과 신문사의 커버스토리로 한 기사가 떴다.
'김수현'이라고 하는 노 작가가 '젊은 작가들의 글은 치졸하고 저열하며 가슴없이 머리로만 쓴다'는 식의 악담을 늘어 놓은 글이 전체 포털에 도배되다시피 게재되었다.

그러나 그 기사는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묻혔다. 하지만, 각 언론에서 이 인터뷰 내용을 전격적(?)으로 다룬 이유는 불을 보듯 뻔하다. 각 언론들의 기사에 대한 보도 태도는 '이 오만한 老작가를 규탄하라!'는 선동,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런 그들의 의도는 독도/反日논쟁이라는 거대한 태풍 속에서 크게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비단, 김수현 작가의 인터뷰 뿐만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지만원, 한승조 같은 학자들의 친일 성향의 발언들도 이처럼 시끄럽게 떠들게 된 것은 언론의 공격 유도성 기사들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본다. 과연 지만원, 한승조라는 사람이 그 이전에 어디서 무엇을 하던 인물들이었는지 알고 있었던 일반 국민이 몇이나 되었을까? 어떤 면에서 그들은 우리 국민들이 막연히 가지고 있던 사회 지도층에 대한 반감 + 오늘날의 사회 상류층 상당수가 과거 친일 경력자임을 아무런 물증없이 심증만으로도 적개심을 가지는 국민 저변의 심리, 심화되는 빈부 격차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언론이 제공한 한승조, 지만원 등으로 대표되는 사회 상층부 세력에 대한 적대심의 표출이 아닐까. [그렇다고 지만원, 한승조가 피해자인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대단히 갑갑함을 느낄 것 같다.]

한승조, 지만원 이런 자들은 한마디로 '새발의 피'다. 달리 볼 때, 그들은 학자층으로서 학문 연구의 방향성에 대한 완전한 자유를 보장 받아야 하며 그들의 연구 결과가 친국민(민족적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표현을 자제하고자 한다.)적일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들의 연구를 통한 학문적 결과물에서 일반 국민의 눈에 '친일적'인 논조가 나왔을 뿐이다.
[한승조, 지만원 등이 미국인이나, 유럽 지역 출신이었으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제3자의 시각에서 순수하게 타자로서 이해타산적인 시각으로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한국인이라는 점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탄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그러한 그들의 많은 연구 결과들 중에서 단 몇 문장만을 인용해서 국민들에게 주는 충격파를 최대화시킨다. 흔히들 말하는 '낚시질'을 유도하는 것이다. 좀 더 자극적으로, 좀 더 충격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도록 필요한 점은 과장되게, 반감되는 요소는 과감히(?) 삭제를 하거나, 글 말미에 애매모호하게 기술하여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며 '중립적 입장'을 표명한다.


오늘도 네이버 포털에서는 '한국인 여교수 식민지배 미화 파문'이라는 자극적인 내용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문구만 그들의 연구 결과물에서 뽑아내어 피끓는 1~20대 성질 급한 청춘들에게 '맛있는 미끼'를 제공한다. 그리고 미끼에 충분히 먹이가 걸려들면 '네티즌, 넷心'이라는 표현을 쓰며 '여론이 이러하다'는 식의 기사가 등장하며 세몰이에 나선다. 그럼 또 다행히(?) 그 미끼를 못보고 지나친 다른 유저들에게도 막차를 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그리고 한바탕 마른 장작 타듯이 활활 불태우고 난 다음 언론은 새로운 미끼를 던져준다. 한참 뒤, 유사한 사건이 또 터지면 'XX사건, 벌써 잊었는가?'하며 국민들의 냄비 근성을 탓하는 컬럼이 올라온다.

한국에 유난히 강태공을 취미로 하는 이가 많다는데, 낚시질이 재밌긴 한가보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언론의 힘

[이글루스 2004년 12월 28일 작성글]


어머니께서 오늘 우크라이나 유시첸코(유셴코) 후보의 대통령 선거 당선에 무척 기뻐(?)하시면서 좋아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여당 후보 야누코비치를 비난하며 유시첸코를 독살하려고 했던 사람이라고 대통령이 되면 안된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언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유시첸코의 얼굴 변형에 대해서 한국의 많은 이들이 야누코비치 세력의 모략에 의한 유시첸코의 다이옥신 중독설을 믿고 있다. 하지만, 또다른 주장으로 유시첸코의 무리한 성형 수술로 인한 후유증이라는 분석을 내어 놓는 사람도 있고, 둘 모두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단적으로 우크라이나는 소련 연방에 편입된 이래 꾸준히 親러시아적인 정권과 정책이 들어왔고, 흑해 함대, 우크라이나 핵배치, 미국과 과거 대영 제국 등의 헤게모니 국가들의 발칸 반도를 이용한 흑해 봉쇄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략적으로 대단히 요충지이며 러시아에게서는 없어서는 안될 최중요 요충지 중 하나이다.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과거사를 언급하는 것은 유시첸코가 '현상타파 세력'이라는 것을 얘기하기 위해서다.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현재의 우크라이나는 다분히 親러적인 성향을 보여 왔다. 이러한 상태에서 미국과 서방 진영의 진입에는 많은 장애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러시아의 입김이 안정적으로 작용하는 러시아로서는 가장 든든한 CIS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유시첸코가 親러적인 성향을 親美, 친EU적인 성향으로 전환코자 하는 패러다임을 제시하였고, 한국의 노사모에 버금가는 정치적 행동을 서슴치 않는 소수 조직들의 선전선동을 목적으로 한 집단 행동은 일시에 야누코비치에게 부정선거의 원흉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뒤집어 씌우는데 성공하였으며 현상 타파의 시도가 무조건적으로 득이 될 수 밖에 없는 미국과 EU 등의 서방 언론을 중심으로 전세계 자유 진영의 세계인들에게 유시첸코는 개혁과 개방의 선봉장으로서 '대외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들을 역으로 치환해 보면 이러한 시각에는 큰 차이를 나타나게 된다.
만약 러시아의 '인타르타스 통신'이 세계 언론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과연 유시첸코가 대안으로서 각인될 수 있었을까?

오히려 유시첸코는 선거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치졸한 정치꾼 내지는 국가 혼란을 선동하는 반정부 세력의 구심점이며, 분리 독립을 주장하기도 했던 분리주의자이며, 반국가적 정치인(CIS의 관점에서 볼 때, CIS 이탈의 조짐이 농후한 유시첸코의 주장과 행보는 다분히 반국가적 행위라 매도할 수 있다.) 등 별의별 희안한 죄목(?)을 뒤집어 씌울 수 있다. 유시첸코의 지지자들이 최초 선거 직후 펼친 집단 행동은 문자 그대로 홍위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홍위병 소리 듣던(나 또한 홍위병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고..) '노사모'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유시첸코에 대한 국내 언론들의 이 같은 호의적인 반응은 다분히 서방 언론의 보도 내용에 근거한 국내 언론들의 보도 행태에서 근거한다.

유시첸코의 얼굴 변형에 대해서 다이옥신 중독인지, 성형 수술의 후유증인지에 대해서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지난 최초 대선이 '부정 선거'였는지, '공정 선거'였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거부할 수 없는 증거 자료도 제시하지 못했다. 모든 재판과 가치 판단에서 객관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자료와 사례는 가치 판단에서 배제되어야 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용도로 이용되어져서도 아니되며 이용되어질 수도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조건들에 대해서 유시첸코는 자신의 선거 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유권자들을 선동하였고, 우크라이나의 변화에서 손해 볼 것이 없는 미국과 서방 언론은 적극적으로 유시첸코에 동조하여 국제 여론을 통해서 유시첸코의 선거 활동을 간접 지원하였고, 우크라이나 내부의 상당수 부동표를 유시첸코 쪽으로 이동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 판단된다.


유시첸코는 분명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야누코비치에 비해 대단히 걸리적거리고 위혐한 정치인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중앙집권적 대통령제를 통해서 고속 성장을 추구하는 BRICs의 일원으로서의 러시아에게 핵심 국가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의 이탈 조짐은 대단히 우려할 만한 상황일 것이다.

그렇다고 러시아가 또다시 브레즈네프의 '프라하의 봄' 사태를 다시 일으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과거와 달리, 미국을 무시한 채 독단적인 군사 행동을 수행하기에는 국력이 많이 약해졌고 국제정치의 '제5열'로서 국제 언론이 가지는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절대적 헤게모니를 가진 미국조차도 언론의 힘은 가볍게 무시하기 힘든 면이 있다. 서방 주요 언론이 유시첸코의 편을 들어 주는 한, 적어도 한국에서 유시첸코의 위에서 언급했던 저러한 부적절한 정치적 행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접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제3국의 국민으로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러한 환상적인 정치적 지원 세력(?)을 등에 업은 채 치뤄진 재선거에서도 유시첸코의 지지율은 '불과 52%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유시첸코에 대한 인식이 외부인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며 제3국의 국민인 우리는 그 나머지 48%의 우크라이나인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우리의 언론에 의해서 가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난 대통령 탄핵 소추 당시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 지지율 34%의 여론이 親여당적인 언론에 의해서 철저하게 매장당하고, 선전과 선동을 통해서 정치적 선택을 개종할 것은 강요받았던 상황과 유사하다.

언론은 여론을 선동하고 유도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은 많은 국민들은 언론이 비교적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설사 공정하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언론의 편파 보도를 구별하고 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착각(?)을 믿고 있기 때문에 언론은 더욱 더 힘을 가진다. 이러한 착각은 나부터가 시작하는 문제이고, 정치사회화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이러한 착각은 더욱 더 심화된다.

언론은 진정으로 진실만을 보도하는가? 언론은 충실하게 여론을 수렴하는가?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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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의 객기, 동아일보의 꿈틀거림

[2004-10-21 이글루스 작성글]

- 이해찬의 객기야 뉴스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수도 없이 뜨니까 생략하고, 오늘 동아일보가 띵받아서 대놓고 물은 이해찬 공개질의 6개항에 대해서만 적습니다.

첫째, "이총리는 '동아일보가 시대에 뒤떨어졌고, 냉전시대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면서 '반성하지 않으면 역사의 흐름을 따라 잡을 수 없다"고 했다"며 "총리는 어떤 근거로 이렇게 말하는가. 총리가 말하는 '시대와 역사의 흐름'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둘째, "이총리는 '(지난대선에서) 동아일보가 우리를 집권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을 세웠으나 내가 그것을 알고 막아냈다'고 했다"며 "총리가 말하는 집권저지전략이란 무엇이며 누가 이를 세웠다는 말인가. 총리는 또 이를 어떻게 알고 막아냈다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셋째, "이총리는 '동아, 조선일보는 내 손아귀에서 논다'고 했다"며 "동아일보가 '이총리의 손아귀에서 논다'는 것이 무슨 뜻이며 그 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넷째, "이총리는 '동아일보는 우리가 망하는 관점에서 기사를 쓰지만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했다"며 "어떤 근거로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예를 제시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다섯째, "이총리는 '보수언론의 왜곡된 보도에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며 "총리가 말하는 '보수언론'의 정의는 무엇이며 '진보언론'과는 어떻게 다른가. '왜곡된 보도'란 무엇을 의미하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여섯째, "이총리는 '동아,조선일보가 스스로 권력인 줄 알고 나라를 흔든다'고 했다"며 "동아일보가 권력임을 자임하고 나라를 흔든 구체적인 예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 * * * * * *

정년퇴임을 1년 앞둔 우리 학과 교수님께서 회식 시간에 말씀하시길..

"내가 평생을 미국과 한국 강단에 서서 강의를 했지만, 대학 강의 시간에 '조용히 해라.'라고 말한 것은 이해찬 1세대가 처음이다."

....라고까지 한탄을 하셨었다.
이해찬 1세대라는 것은 03학번부터이고, 소위 말하는 특기로 대학을 간다고 이해찬이 씨부리던 첫해의 대학생들이며, 03학번들에 대한 기존 대학생들의 차가운 시선과 이에 대한 03 이하 학번들의 저항(?)은 이미 해묵은 이야기이고, 이해찬 저 '견공(犬公)'이 아니면 책임질 양반이 없으니 넘어가고자 한다. [이해찬의 '골때림'을 지적하고자 나온 이야기다.]


이해찬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 다음가는 국가 정책결정 2인자인 국무총리의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그의 상관 노무현에 버금가는 막되먹은 주둥이를 개념없이 함부러 놀리다가 또다시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다.

더구나 그의 발언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도 독일 베를린에서 행해진 발언으로 이해찬의 無개념과 몰상식함의 정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예이다.
한때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을 방문해서 미국의 유력 인사들(그 때 조지 W. 부시까지 만났던가.. 그렇다..)과 만나서 회담을 하며, 마치 자신이 대통령이 된 양, 객기를 부린 적이 있다. 그 행동은 당시 대통령이자 국민의 대표자였던 김대중을 한껏 물먹이는 한 국가의 정치인으로서 있어서는 안되는 만행이었다. 하물며 그가 미국에서 한국의 특정 정치인을 비난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으로 국내적으로 많은 물의가 있었고, 국제 활동의 공식 석상에서 국내적인 갈등이 대외적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반적인 국제외교의 최소한의 관행조차 무시한 '지극히 정치인스러운 행동'으로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 그러한 과거의 만행이 노무현의 수많은 객기와 망발에 모자라, 그의 오른팔 이해찬까지 가세해서 참으로 나라 꼴이 犬 같은 꼴이 되어가고 있다. 베를린 언론에서는 아마 지금쯤 한국의 국무 총리가 자국의 대표적인 언론사들과 특정 정당을 맹비난한 것을 크게 보도하며, 한국의 내부적인 갈등에 대해서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 컬럼이 게재되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국위선양'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친일을 했던 과거사가 설사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증거들만으로 그들의 역사 전체를 매도할 수는 없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모두 최초에는 민족 신문으로서 많은 역할을 수행하였고, 1930년대 이후 강화되는 일제의 강점시기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고려나, 당시 국내 정국에 대한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 등에 대한 고려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마녀 사냥식으로 하나의 잘못했으니, 그 인간 자체를 '개 같은 녀석'로 몰아 붙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김구 선생이 일본 조선총독부 총독이 부임하는데, 일본놈들이 와서 '당신 나와서 일장기 안흔들면 때려 죽인다.' 라고 공갈을 놓고 가서 '그래도 살아야지..' 하는 마음에 일장기 한 번 흔들었다고 김구 선생이 갑자기 친일파 매국노가 되는가? 꼭 그 상황에서 일장기 안흔들고 버티다가 총 몇 대 맞고 장렬히(?) 순국하여야 진정한 애국자이나, 겨레와 나라, 국민들을 사랑한 충렬지사가 되는 것인가?

과거에 대한 논의, 특히 한국처럼 전면적 식민지 역사를 경험한 국가의 과거사에 대한 논의와 평가는 매우 신중하고, 장기적이고,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반성이 있고 난 후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 정치색 짙은 인신 공격과 왜곡, 선동적 발언에 감화(?)되어 "와아~! 저 새끼 진짜 때려 죽일 놈이네!!" 하고 소몰이 식으로 이끌려 가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하물며 이러한 민감한 사안을 국내도 아닌, 해외에서 저따위 개망발을 하는 단편화된 두뇌를 가진 채, 국가적 명예의 실추을 초래하는 견공을 국무총리로 두고 있는 우리 민족은 과연 제대로된 민족인가!!

내가 단언컨데, 이해찬 대가리에서 저 6개항의 질의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변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보좌관들 전부 불러놓고, 밤새도록 똥줄 타들어가게 머리 짜내라고 탁자 두드리며 고함을 칠 인간이다.
마치, '노무현의 3·1절 발언' 한 번에 뒷치닥거리는 외교통상부가 5일 밤낮을 새면서 감당한 것처럼..
저런 인간들을 통치자와 통치자의 '제1 똘마니'라고 두고 있는 이 나라 꼬락서니가 정말 통탄스럽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PeterGabriel™, Against All Odds..

소수의 잘못, 다수의 잘못

[이글루스 2004년 08월 23일 작성글]

1. 흔히 무슨 대형 사건이 터지거나, 개개인간의 잘잘못을 따지게 될 때, 우리 대중들은 일반적으로 그 객체에 대해 그것에 크게 개념치 않는 편이다. 대중들 간의 문제는 대체로 그 원인 규명이 명확하고, 공개되어 있으며, 잘못한 자에 대한 즉각적인 응징이나, 사법처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치권과 기업 조직 단위에서 발생하게 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정치권에서 만약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한국의 경우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통 정치인들이나 거대 기업인들은 일반인과 동등한(?) 수준의 사법적 조치나 사회적 매장을 당하지 않는다. 그럼 우리 대중들은 분노하고, 일부 싸구려 매스컴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거론하며 가난하고 힘없는 대중을 자극하며 권력에 대한 무비판적인 적의를 드높이도록 촉구한다.

2. 국제 협약이나, 국내 정책의 실책으로 인해 국익에 손실이 오게 되어 조사특위가 구성되어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 조사가 들어왔다고 치자. 이런 경우에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 잘못의 객체가 특정 정치인이나, 정책 결정자, 또는 몇 명의 과실자를 지목하지 않고, 'XX위원회', 'XX회' 이런 식의 조직이나, 단체를 그 과실의 객체로 지목한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될까?
먼저 1번째 경우를 살펴 보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제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높으신 분 여러 사람 다칩니다." 하는 이야기..

그 말 그대로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으면 있을수록 다른 고위 공직자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강한 인물들과 연계가 쉽게 잘되고 친족 관계나 결혼 동맹 등을 통해서 서로간의 유대를 높인다. [부유층의 자녀들은 어떤 면에서 부모의 '정략적 아이템'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불쌍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들도 그렇게 당하고만 살만큼 멍청하진 않다.] 그렇게 얽히고 얽히면서 서로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져 가고, 유사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서로가 서로를 외면할 수가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고위층의 정체된 '고인 물'은 쉬 썩기 마련이고, 여러가지 부정한 방법에 함께 연루가 되게 된다. (ex. 김영삼의 전직 대통령 처벌 과정이 대표적) '내가 너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상황' 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그 사슬이 길기 때문에 건재한 나머지가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서 압력 세력으로 행사를 하게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혐의는 축소되고, 은폐되며 역시 이같은 '연환계'의 희생과 이익을 공유하는 법조계에서도 냉정해질 수 없는 것이다..


2번째 경우를 어떤 면에서 더 쉽다고 할 수 있다. 사안의 중량감이 크면 클수록 사안의 최종 결정을 좀 더 고위층에게 서류가 넘어가고, 좀 더 큰 조직으로 이관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책임의 회피' 이다.
책임자가 '하나'이거나, '소수'일 때는 처벌이 용이하다. 1번의 경우에도 아무리 동맹 관계가 얽혀 있어도 결국 '무죄'가 될 수는 없다.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원회나 단체 단위로 결정을 하게 되면 해당 조직의 최고위 지도층이 아닌 이상 어떠한 도덕적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거의 모든 중요 회의 과정은 비공개로 붙게 되고, 내부 조율을 통해서 결과를 도출한다. 그리고 나서 그 결정에 대한 과실은 조직 전체가 지게 되고, 개개인은 모두 결백하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그럼 그 조직의 간판은 결과의 책임으로 무너지고, 조직의 구성원은 뿔뿔이 흩어져 원래 자신이 있던 곳이나, 새로운 터전으로 나간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이러한 예의 가장 최근에 대표적 사례를 들자면, 영국의 이라크 전쟁 결정의 책임 소재 파악을 위한 '버틀러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정치권 전반의 '집단적 책임'을 탓하며, 대충 넘어가 버림으로서 책임자 모두에게 면죄부를 부여.)가 있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인가..
많은 한국의 대중들의 기대와는 달리, 선진국에 가면 갈수록 이런 식의 책임 회피가 더 조직적이고 빈번해 진다는 것은(후진국의 독재 국가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어쩌면 이 사회가 왕정으로 돌아가 모든 잘못은 '국왕의 부덕함의 소치'가 되는(심지어, 가뭄과 홍수마저도..)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인가?
선진국의 경우, 많은 지성인 세력에 의해서 이러한 그릇된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수정과 지적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그 지성인 세력이 매우 미약하고, 어설프게 머릿 수만 많은 참여 연대 같은 곳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려 하지만 그들의 판단 능력이나, 현실에 대한 이해도로는 어림도 없고, 아직 그럴 능력도 못된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개인적으로 한총련(전대협)따위는 쓰레기이고, 진짜 이 놈들이 요즘 한창 시끄러운 '빨갱이 집단'이라 확신한다.]

대한 민국에 민주주의가 꽃피기 시작한지 17년이 지났다.
하지만, 인터넷과 정보 통신의 발달은 후진국 국민들에게마저도 최고 선진국의 정치 현실을 선망하며 동경하게 만들었고, 국민들의 기대 수치는 극단을 치닫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지도층은 아직도 그러한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고, 부응할 생각조차 별로 없이 구태를 반복하는데 그치고 있다.


'세대의 교체'다.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어설프게 지금 30대 법무사, 변호사 하던 쓰레기들이 나와서 외치는 세대의 교체가 아니라 정말 정치, 외교, 행정을 전공한 자들이 정치 전면에 나서고, 보좌관 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선하고, 의정 활동이 100% 공개되고, 비공개 회의를 철폐하고, 활동 내역과 진전 과정, 결과를 정기적으로 발표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기 위주의 정책 실행을 견제하기 위해 국가 원수는 장기적 플랜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정권이 이양되더라도 그러한 플랜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결말을 볼 수 있도록 정치권 전반의 이해와 타협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멍청하고, 어리석고, 아둔하고, 머저리 같은 '우리 국민'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이런 국민 수준으로는 아무 것도 못한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PeterGabriel™, Against All Od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