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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Shadow - The Outs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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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끼리 모여 있으면 으례히 나오는 이야기가 여자 이야기다. 여자 이야기 중에서도 섹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여기에서 여자 이야기는 단순히 이성교제에서의 여자친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성교제에서의 여자와의 침대 위 이야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무척이나 지키고 싶은 것들이니까. 주로 호프집이나 클럽에서 일어났던 과감한 여자들과 관련된 일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가벼웠던 만남만큼이나 두고두고 우려먹기에 이것만큼 훌륭하고 자극적이며 좋은 소재도 드물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몰라도 나도 그럭저럭 할 얘기들이 제법 되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지는 않는다.

여자들끼리 모여 있으면 으례히 나오는 이야기가 남자 이야기다. 내가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여자들의 깊은 이야기까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여자들도 여자들만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보면 남자들의 대화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은 농밀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고 몇몇 여자 친구들이 전언해준 적이 있다. (그러면서 내게 내가 그런 곳에서 여자들의 치부를 보면 너 같은 애는 여자에게 환멸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했다. - 그럴까? 내가 너무 닫힌 존재로 보인걸까?) 동성들끼리의 모임에서는 으례히 우리가 나오는 이야기의 고정관념이란 것이 존재한다.

DJ-ing? 한때 랩/힙합 음악의 BGM정도로 저급하게 평가받던 디제잉이 하나의 떳떳한 장르가 된지도 십 수년이 흘렀다. DJ Shadow는 그 분야에서 나름대로 선구자적 존재이며 그의 감각은 널리 인정 받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다시 랩과 결합하자 마치 총각파티(처녀파티)에서 제한된 '섹스의 추억'으로 두고두고 우려 먹는 것처럼 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오만가지 총천연색 욕설이 흘러 나온다. DJ-ing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던 그도 과거의 큰 형님(?)인 랩과 만나면 결국 그 바닥의 물에 오염될 수 밖에 없는건가.

그것은 마치 이 앨범의 제목 '아웃사이더'처럼 밖에서는 강하고 떳떳하며 모두의 선망이 되는 카리스마적 아웃사이더로서의 자아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 들어오면 권위적인 가족들과 냉랭한 친지들 사이에서 침묵하며 성질을 죽이며 권위에 순종해야 하는 존재와 같은 것이 아닌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알차지 못한 존재. 바로 너.


P.S. : 토요일에 조카 돌잔치에 갔다가 늦어서 클럽 공연을 포기하고 음반을 몇 장 구매했는 것 중 하나인데, 그 날 오랜만에 정장을 입었던 탓에 만난 후배 손가방에 디카를 넣어놓고서는 그냥 와버렸다. 그래서 돌잔치 사진도, 새 음반 사진도 아직 없다. 흠흠.. 애가 참 귀여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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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8년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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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게시물 / 동영상 등을 모아 두었던 E드라이브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오늘 윈도우즈를 포맷하면서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정말이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 버렸다. 내가 지난 8년.. 대학 시절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E드라이브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대학동안의 나 그리고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함께했던 사진들과 내가 그 동안 작성했던 레포트 파일들과 각종 논문, 지난 날 내가 함께 했던 사람들과 숨쉬던 공간에 남겨져 있던 어린 글들까지 모두 날아갔다.

터질 것만 같은 엄청난 상실감에서 회복하는데 1시간 이상이 걸려서야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정말이지 내가 이런 일에 충격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맥이 풀리고 심장이 쿵쾅거려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다. 나의 개인적인 스토리지에 올려놓은 극히 일부분의 물건들만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 (물론 눈물이 난 것은 아니지만, 눈물이 났으면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내 머릿 속에 남아 있는 순간들을 이제는 사진으로도 동영상으로도 볼 수 없어져 버린 것인가. 아직은 이 현실을 감당하는 것이 벅차다. 2007년 1~2월은 나의 과거와 추억들이 현실 속에 혼재하며 너무나 많은 일들과 만남들이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못했어.

차라리 아직 백업하지 못한 MP3들만 모아둔 D드라이브가 날아가 버렸으면 이런 참을 수 없는 아쉬움이 없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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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아포칼립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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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주히메와 본 영화다. 영화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지만, 멜 깁슨의 제작영화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의 극적인 시나리오를 기대할 수 있었기에 이상한 로맨스 영화를 보자는 주히메의 요구를 뿌리치고 아포칼립토를 보았다. (난 원래 왠만한 여자들의 요구는 거절하지 못한다.)

아포칼립토는 그리스어로 '새 출발'이라고 한다. 아포칼립스(Apocalypse)의 스페인어 혹은 포르투갈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리스어라고 한다. 괜히 있어보이기 위해 주로 쓰이는 언어가 그리스어다.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로마 철학이 여전히 숭배되어져야 하는 존재인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아포칼립토는 하나의 생존 드라마다. 야생에 가까운 사회에서 처절하리만큼 도망치며 절규하는 주인공의 생존을 위한 본능적 몸부림은 삶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느끼게 한다.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숲에 대한 절대적 존중감과 인간의 교만에 대한 짧지만 강렬했던 경계는 멜 깁슨 특유의 센스를 엿볼 수 있었다.

영화 전체는 사실 별다른 내용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주인공의 도주와 그 주인공이 죽인 자기 아들의 복수를 위해 추격하는 아버지의 죽기 직전까지 이뤄지는 추격전은 그저 추격전이 벌어지는 다른 액션영화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배경이 정글 속의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약간은 색다른 느낌을 가지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꽤 괜찮은 액션영화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특이한 원시적 언어가 그냥 날림인 줄 알았는데, 마야제국의 언어라고 한다. 고대 마야 제국은 너무 일찍 야만적인 서구제국주의자들에게 점령 당해서 그 문화가 처절하리만큼 파괴당했는데, 그 언어와 정신적 유산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깊은 의구심이 든다. 실제 영화 속에서 보이는 문화도 북미 대륙의 인디언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런 부족 문화와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여전히 고증에 대해서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아포칼립토는 멜 깁슨의 말처럼 액션영화다. 그런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말자.

영화가 전반적으로 너무 잔인했고 피가 심하게 튀었다. 주히메가 얼굴을 찡그렸던 낭자하게 퍼지는 피와 참수된 수급이 재단에서 굴러떨어지는 모습, 목없는 시체가 널린 장면(이 장면은 마치 영화 '에너미라인스'를 연상케 했다. 같은 추격 영화인 에너미라인스의 그 장면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은 내가 보기에도 적잖게 거북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주인공 '표범발'의 부족마을의 문화 수준과 정복자 집단의 문화 수준이 너무 극명하게 차이가 나서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베틀을 짜고 돌벽에 돌가루로 도색을 하며, 돌계단에 하늘을 향해 크게 치솟은 재단 위에서 극도의 사치를 누리는 마야인들의 생활상은 두 집단이 같은 땅에서 도보로 며칠 사이의 거리에 있는 문화집단이라고 느끼게 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볼만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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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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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쌈은 아무리 먹어도 입에서 물리지 않는다. 그래서 너무 좋다. 달콤하기까지한 보쌈 김치와 잘익힌 고기 2점에 마늘 하나, 무 하나, 씻은 김치 하나를 올리면 최상의 맛이 나온다. 배가 너무 고팠는데, 정작 식당 안에서는 배고픔이 속쓰림으로 변해서 다 못먹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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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느끼지 못했는데, 동행이었던 애가 사람들 옷이 다들 검정색이라고 의아해 했다. 그래서 나도 생각이 난 김에 한컷 찍었다. 정말 상당수 사람들이 검정색 옷을 겨울의 옷으로서 입고 있었다. 겨울에는 파스텔톤의 따뜻한 색깔의 옷을 입으면 안되는 걸까? 나는 오늘 베이지색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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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이 빠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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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olution(개혁)
Evolution(진화).

'개혁(Revolution)[각주:1]이라는 말이 가진 그 오묘한 매력을 1년 반전에 썼던 적이 있다. [
관련글 보기] 개혁이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약과도 같은 환각작용을 유발한다. 개혁이라는 구호가 가져다 주는 변화에 대한 막연하고도 근거없는 기대는 그 구호의 당위성와 진실성, 현실성을 생각하기 이전에 그 구호에 찬동하고 격할 경우 개혁이라는 구호에 반대하는 자들을 반동분자 내지는 구시대적 분자따위로 매도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는 최근 4년동안 그 어느 시기보다도 개혁이라는 구호를 많이 들어왔고, 그 개혁 구호에 반발하는 자들을 보수/수구라고 하며 매도해 왔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하여 개혁 구호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현상이 극에 달해 있고, 과거 적절한 이유없이 무참히 매도당했던 여러 보수적 이념들에 대한 재조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 이르러서도 그들에 대한 복권활동은 전개되지 않고 있다. 물론 나 또한 그럴 생각이 없다. 보수는 언제나 단기전에는 패배[각주:2]했지만, 정공법으로 언제나 그 현실적 우월함을 증명해 왔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 (한편으로 그런 낙관론이 오늘날 겪은 한국보수이념의 위기를 초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급진적이고 개혁지향적인 이념은 언제나 많은 청사진을 제시한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는 것이야 어느 진영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개혁 성향의 진영에서는 그 청사진이 훨씬 더 포괄적이면서도 전방위적이며 극적이다. 태생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개혁을 모토로 내건 진영이 특별히 더 한 것은 그들만이 언제나 대중의 변화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데에 사활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그 개혁 성공에 대한 희망을 잃고 현실에 타협하게 되는 순간,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증발하고 정치적 입지도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허황된 것이든지 실현가능한 것이든지 간에, 일단은 그들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의 최대치를 설정하여 그것을 대외적 홍보 수단으로 삼고 그를 통해 권력획득을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의 경주를 한다. 그리고 그 실패에 대한 책임공방에서는 언제나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기존의 정치세력들과 사회구성원들의 비협조와 사회적 저항 때문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며 계속해서 개혁추구지향의 세력으로서 각인되도록 총력전을 펼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 스스로의 무능 혹은 변절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그들이 심어준 환상은 역으로 그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독(毒)으로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필연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구호를 실현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실험적/이상적 목표달성을 위한 인위적 변화와 자의적 개혁을 추구하는 이상,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한 민주산업국가 안에서 그들은 그것을 결코 수행할 수 없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 스스로가 정치사회적 약자의 지위에서 정치사회적 강자의 기득권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하려 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말하던 '철인통치'란 지구상에 불완전한 인간이 지배하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권력은 필연적으로 탐욕을 부른다. 권력은 반드시 보수적이며 변화에 더디다. 인류의 '사회주의 대모험'으로 지난 '잃어버린 1세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명백히 경험했다. 개혁 세력이란 자들도 결국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서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개혁세력이 오르려고 하는 자리(기득권층)에 올라있던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과 충돌을 일으킨다. 그 과정에서 대중의 개혁욕구에 부응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신흥개혁세력들은 필연적으로 대중선동(Propaganda)을 통해 구세력을 압박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혁세력 내부의 탈선'이 발생한다. 그들이 재야운동권 시절에 몸에 베인 버릇인 '무모한 투쟁노선'이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제도권 안에서도 주머니 속이 못처럼 튀어나와 개혁세력 내부의 이견을 발생하고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분열하는 것이다.


'갈등지향적 인간'은 분명 존재한다. 갈등지향적 인간 스스로가 갈등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신의 비타협적 마인드는 그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언젠가는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갈등은 어떤 의미에서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갈등지향적 인간은 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며 그들 갈등지향적 인간들은 궁극적으로 사회의 다양성 확보와 전반적 진일보에 크나 큰 밑거름이 되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갈등이 어떤 갈등인가에 대한 논의가 빠진 상태에서 무작정 갈등을 조장하는 것[각주:3]이 사회 발전에 긍정적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깊은 회의에 빠져들게 한다. 김대중 정권의 괜찮은 사업 중 하나였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여러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적 권고안 남발을 통해 대중들의 비난과 외면을 받기 시작한 것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들이 기존의 질서에 지나치게 배타적 성향을 보이며 갈등을 조장하였기 때문일 것이다.(인권이라는 범주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고 인위적이며 당면현실과 충돌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갈등을 조장할 수 밖에 없다.)

'갈등'은 대중을 피곤하게 한다. 갈등은 대중에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역설적으로 권력자 계층에게 권력의 공고화와 세습을 하는데 용이한 정치사회적 환경을 제공한다. 그리고 정치적 무관심은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생명력으로 하는 자칭 진보세력들의 힘을 뺀다. 이 말은 곧 개혁 세력 스스로가 자신들의 힘을 빼는데 무한히 경주해야 함을 의미한다. 개혁 세력이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그 개혁을 통해 자신들을 좀 더 공고한 기득권 계층으로 올려 놓으며 보수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경주하는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힘을 빼고 있는 것이다. 대중(Mass)은 대중이다. 대중은 군중(Crowd)일 수는 있지만, 공중(Public)일 수는 없다. 대중은 정치적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다. 대중은 언제나 갈대와 같으며 인내심이 부족하다. 때문에 대중들은 빠른 변화를 요구하며 변화를 위한 오랜 갈등에 대해 쉽게 지친다. 하지만 대중은 느리고 완만하지만 천천히 진화(Evolution)하는 존재다.


1950년대 '대한뉴스'에서는 이승만의 행보는 최중요 뉴스 중 하나였다. 50년대 중반의 대한뉴스 한 기사는 이승만이 고아원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에 대해서 '하사품(下賜品)을 전달하시었다'라고 표현했다. 당시에는 매우 당연한 수사적 표현이었다. 국민들 모두 대통령을 과거 임금과 유사한 '나랏님'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초반까지 한국 국민들은 대통령의 권위에 무력으로서 저항하였다. 폭력 시위가 난무했고 그에 상응하는 폭력 진압도 거침이 없었다. 일의 先後관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많지만, 쌍방 모두 폭력을 행사하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표현했음에는 변함이 없다. 21세기의 한국민들은 폭력시위를 증오한다.[각주:4] 이제 우리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보다 펜대가 더 강함을, 선동적 구호보다 無言의 비협조가 더 강함을 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대중의 진화(Evolution)가 자리잡고 있다고 여긴다.

나는 진화한다. 당신도 진화한다. 우리는 모두 진화한다. 우리의 진화의 힘은 교육과 끊임없는 자기계발에 있다. 그리고 그 진화를 뒷받침하는 것은 우리의 경제력이다. 우리의 '경제사회적 부'가 계속 창출되고 있는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진정으로 사회의 개혁을 이루어낸 것은 스스로 개혁세력임을 자처하며 깃발 들고 나서서 대중들을 선동하던 하릴없는 치들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개혁을 이끌어낸 것은 느리고 더디지만, 조금씩 진화하며 그 내성을 다져온 대중 스스로다. 진정한 개혁은 '내성을 가진 진화'인 것이다. 내성을 가지지 못한 개혁은 언제든지 반작용/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각주:5] 대중을 조급하게 끓이려 하지 마라. 대중은 자칭 진보개혁 세력들의 풋내기 선동이 없어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리고 보수이념(이념을 의미하지, 정치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은 바로 그 내성을 가진 대중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자신들이 내어줄 수 있는 만큼을 내어주고 기득권을 보장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개혁 세력의 역할은 그 진화의 방향이 어긋나지 않게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데 그쳐야 한다. 개혁 세력의 기득권 세력 진입은 오히려 국가적 차원의 퇴보를 초래할 뿐이다.(베네주엘라가 대표적이다.)

느린 진화도 개혁이다.
국가의 역사는 인간의 생처럼 짧지 않다. 대중의 제한된 능력을 인정하고 그 제한된 능력 안에서 내성 있는 진화를 추구하며 반동없는 안정적 개혁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이며 진보다.

P.S. : 그저께 새벽에 윤히메와 이야기하다가, 문득 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이제는 몰라보게 '여전사'의 모습을 갖췄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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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사회상의 구()체제를 합법적 ·점진적 절차를 밟아 고쳐 나가는 과정.' [본문으로]
  2.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17대 총선이 적절할 것이다. 보수의 위기는 한국 내의 뒤틀린 보수이념의 자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고, 보수이념 내부의 자정작용과 자기계발 노력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뉴라이트/자유주의연대 등은 아직은 매우 미흡하고 어리숙하지만, 그러한 보수이념의 시대적응을 위한 노력의 하나로서 이해할 수 있다. [본문으로]
  3. 예로서 2004년 신기남의 보수와 관련된 발언이 있다. 당시 열린우리당 당의장이었던 신기남은 "진보는 개방적이고 바꾸자는 것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나, 보수는 폐쇄적이고 지키자는 것이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 단편적 사고를 폭로(?)한 바 있다. 오히려 다름을 인정한다던 진보진영의 독불장군식 노선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그리고 보궐선거 참패 이후 야당에 대한 정치공세를 목적으로 시작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도 초기 한나라당 의원들의 조상에 대해서 폭로전을 펼치다가 신기남, 김희선 등 여당 유력인사들의 과거가 드러나자 은연중에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개혁 성향의 진영은 언제나 순결한 도덕성을 요구 받을 수 밖에 없기에 철인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세계에서 약자로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본문으로]
  4. 1987년 6월 항쟁도 결과적으로 주된 시위 내용은 폭력이 상당히 배제된 비교적 평화적인 시위를 통한 국민대중의 '권리장전'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중이 대중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한 역사는 길지만, 실질적으로 되찾게 되었을 때는 폭력이 없는 사회적 성숙을 통한 자연스러운 이양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으로]
  5. 과거 프랑스의 나폴레옹의 등장이나 부르봉 왕정복고 같은 사건이 대표적일 것이다. 반세기 이상 내성을 키웠던 프랑스 혁명조차도 그 내성이 미약하여 혁명정신을 되돌리고 말았다. 한국에서도 전두환의 등장을 허용한 한국사회를 예로 들 수 있다. [본문으로]

Most Precious Blood - Merciless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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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 Precious Blood - Damage Control Freak
[Merciless, 2005]

오랜만에 Metal음악을 좀 들었다. 나름대로 이 바닥에서는 유명한 밴드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좋아하는 성향의 음악은 아니다. 억지로 악을 쓰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자연스레 분노가 끓어 오르는 그런 느낌이 너무 부족하다. 이번 앨범 평가도 사실 별로 안좋다. (앨범 평가를 보기 전에도 썩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평가를 먼저 본다는 것은 자기 감정 이전에 선입견을 만든다. 그리고 이미 감정선이 결정된 상태에서 자신과 유사한 평가를 보게 된다면 그것만큼 확실한 확인사살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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