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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범죄가 주는 매력인가.

어리석은 시대가 만든 죽어 마땅한 영웅(?)

사람들은 시리즈물을 좋아한다. 내가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영화처럼 단편적 소재[반지의 제왕 시리즈처럼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를 다루는 엔터테인먼트가 흥행에서 수없이 대박을 터뜨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돈이 덜되는 시리즈물의 드라마는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무리 대박나는 영화라고 하여도 한 시즌 정도를 휩쓸고 말지만, 시리즈물은 X-Flie과 같은 것처럼 몇 년을 울궈먹기도 한다. 시리즈물이 몇 년을 울궈먹을 수 있는 것은 '내일은 무슨 이야기가 진행될까'하는 호기심을 유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울궈먹으면 언젠가는 쪽박을 찬다.

하지만 아무리 울궈먹어도 쪽박을 차지 않는 시리즈물이 있다. 바로 연쇄 범죄물이다. 소년탐정 김전일처럼 매번 밀실+살인+검거의 공식화된 과정을 밟는 이야기가 끊임 없이 인기를 유지하는 까닭은 바로 인간이 전쟁물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무슨 의미인가 하니,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파괴의 본능이라는 것이 바로 나 아닌 또다른 인간을 상대로 한 파괴적 행위에 말초적 흥미를 유발하게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확실히 죽지 않는 이상, 전쟁은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가 될 수 있다고..

경찰과 언론에게 과거의 히트상품(?)은 반사회적 범죄자와 존속살해범들이었다. 막가파, 박한상 같은 치들의 등장은 전통적인 유교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 오랫동안 그 틀이 깨어지지 않은 채 지냈던 우리들에게 정서적 충격과 함께, 더이상 현대 사회에서 과거의 문화적 규범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충격에 빨리 둔감해지는 동물이다. 마치 살인 피의자가 초범일 때 살인할 때의 긴장감과 어깨에 별 열댓개 달고 나서 살인을 저지를 때의 긴장감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이젠 존속살해범이나 반사회적 범죄자들은 유영철처럼 왠만큼 살인을 하지 않고서는 별로 흥미거리가 되지도 않을 뿐더러 관심을 끌어봤자 인터넷 토막기사 한 두 줄이 그들이 차지할 수 있는 관심의 전부다.


이제 범죄의 세계에도 시리즈물이 인기의 화두가 되었나 보다. 신창원의 오랜 탈주 스토리가 시리즈물로 한 발씩 느렸던 경찰에 의해서 드러날 때마다 '우민(愚民)'들은 그런 그의 탈주 행각이 좀 더 지속되어 헛탕치는 경찰의 모습을 보는 것을 즐겼고 그가 탈주 과정에서 하나씩 만들어 놓는 신창원의 그녀들은 마치 '영웅호색'이라도된 양 교묘하게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신창원이 강도살인에 이은 탈주로 유명세를 누리며 사랑(?)받았다면, 유영철은 일종의 마초스러움과 블랫마켓 여성들에 대한 보편적 경멸감,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고 레벨의 범죄인 살인이 주는 충격파와 살인 중에서도 좀 더 레벨이 높은(?) 연쇄토막살인 사건이라는 양념이 적당히 버무려져서 대중들에게 공히 증오의 대상이 되었지만 일부에게는 일면 동조하며 오히려 그를 사회적 피해자인 양 호도하는 모습마저 보이게 만들었다. (유전자 태생적 범죄 생명체인 '사이코패스'의 존재도 유영철을 통해서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유영철의 연쇄살인 시리즈물은 다방레지와 같은 블랫마켓에 종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대부분 남성들이 가지는 이중적인 잣대와 스스로를 영웅시 하며 "여자들은 몸뚱이를 함부로 굴리지 마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겉으로는 거부감을 드러내는 남성들조차도 심연의 한켠에서 응어리져 있는 성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일방적인 피해자 의식과 남성을 향한 적개심, 당시 시끄러웠던 갖가지 남성을 예비 성범죄자 쯤으로 여기는 몇몇 조직의 선전물, 헌법상의 성범죄에 대한 남녀차별 등 속에서 뒤틀린 심정을 '최하의 인간 유영철의 입'을 통해서 하소연하는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 그의 이 개소리에 유족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딸은 '건전한 사람'이었음을 외쳐야 했다. 하지만 언론은 오래도록 유영철과 유흥가 여성을 연관시키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것이 유영철의 유죄를 의심하는 일부의 다른 시각이 가슴 속 깊은 곳에 내재된 반발심일 것이다.


이제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유희(?) 중에 남은 것은 '섹스'인 듯 하다. '발바리'는 바로 인간이 가장 원시적인 상태로 전락하더라도 즐길 수 있는 마지막 남은 비장의 카드이자 가장 말초적인 '섹스'를 범죄의 대상으로 삼았다. 단순한 강간 사건은 약 3시간에 1건씩 강간사건이 발생한다는 통계처럼 흔하디 흔한 일(살인은 1시간에 한 건으로 기억한다.)이다. 이 흔한 사건을 그는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가지고서 공개된 것만 70여 명이 넘는 여자를 범했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대중의 분노, 특히 여성계의 공분을 통한 관심집중이 될만한데, 일상에서의 그의 모범적인 생활과 내성적인 성격 등이 마치 후라이드 치킨을 먹는데 소스를 찍듯이 하나 둘 차례로 공개되면서 시시한 다른 사건들은 왠만해선 9시 뉴스에서 명함도 못내밀게 만들어 버렸다.

마치 동물의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수컷이 그들끼리의 경쟁에서 승리하면 암컷을 지배하는 것처럼 현실 세계에서는 보잘 것 없는 존재였던 발바리는 욱하는 감정에 취해서 정복한 여성을 통해서 인간의 이성 넘어에 내재된 동물적 본능을 통해서 '힘'으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할 수 있다는 동물 세계의 지배논리를 깨워 버렸나 보다. 그리고 그 재미(?)에 중독되어 낮 세계에서 그가 받는 삶의 무게를 밤 세계에서 자신보다 '힘에서 약한' 여성이라는 존재를 짓밟으며 금지된 쾌락에 빠져 들었나 보다. 그가 즐기는 금지된 쾌락이 낮세계의 일반 대중들에게는 '공분의 대상인 동시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신문 기사 아래에 펼쳐진 덧글의 세계에는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의 모습처럼 '끝없는 욕구'에 갈증을 느끼는 동물적 본능이 외치는 발바리를 향한 부러움(?)의 시선과 (넓게 봐서) 인간다움의 회복을 외치는 인간이성이 충돌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옛날 신창원이 계속되는 탈주행각을 계속하면서 대중들 속에서 스타(?)가 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그릇된 사회 풍조를 비판하며 각성의 목소리를 냈었다. 유영철 때에도 은근한 스타 만들기 작업 속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는 드세었다. 하지만 발바리 사건에는 언론의 발바리 스타 만들기 작업에 별다른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신출귀몰[강간사건에서 정액이나 타액 정도를 제외하면 옷이라도 벗어놓고 가지 않는 이상, 특별한 증거가 남지 않는게 당연한 것을 언론은 그것을 발바리의 지능범죄(?)에 공을 돌리고 있다.]함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한창의 나이인 20대 여대생들이 주요 대상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연쇄강간을 저질렀음을 강조하며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그의 영웅적 행각(?)을 부각시킨다.

강간사건이라는 것이 때로 살인사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제 조만간 살인 혐의라도 드러나면 언론에서는 유영철 이후 오랜만에 만난 대어(大魚)를 통해서 제대로 본전을 뽑으로 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느 누군가는 유영철 때처럼 발바리도 피해자(사회적 하층민들의 억눌린 욕망이 어쩌고저쩌고 주절거리겠지.)임을 주장하며 이름을 날릴지도 모른다. 이런 충분히 예상 가능한 스토리(하지만 정말 중요한 내용)는 대중의 관심 대상이 아닌 듯하다. 대중은 언론에 의해서 부각된 그가 내성적이면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히끼꼬모리 같은 존재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인식함으로서 그가 현실세계에서 별 것 아닌 자신을 밤세계에서 자신의 강한 모습에 도취되어 욕정을 탐닉하는 찌질이 정도로 인식한다. 대중들은 발바리가 몇 명을 강간했으며 얼마나 넓은 지역을 범죄의 대상으로 삼았나에 대해서만 분노하거나 부러워할 것 같다. 시리즈물이 주는 재미는 그것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고 어떻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