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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 선비의 자존심?

오늘 안동에 경랑일 만나러 다녀왔다. 장거리라고 바득바득 우기면 장거리[왕복 200km정도...를 장거리라고 우기기도 좀 애매하네.] 안동에서 느낀 것은 안동이 엄청 춥다라는 사실과 안동은 시내보다 시외곽이 더 번화가였다..라는 오묘한 사실. [.....] 도로에서 '시내'라고 쓰여진 시청 가는 길 주변은 마치 정겨운 시골 읍내풍경(?) 같았다. 반면 경랑이네 아파트가 있는 옥동 주변은 오히려 훨씬 상가/아파트가 밀집된 도시 같은 느낌. [오늘이 '장날'이었다는데, '장날'이라는 표현을 참 간만에 들어봤다.]

가자마자 일단 아침을 굶은 것을 만회하기 위한 식당부터 찾아 다녔다. 안동 시내에서 먹을 만한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온통 예식장과 연계된 단체 손님 식당 밖에 없어서 겨우 한 쪽 구석탱이(?)에서 제법 그럴 듯한 쌈밥집을 찾아서 쌈밥으로 허기를 때우고..

둘이서 노닥거리다가 길을 떠나려고 했는데, 지독히 추운 날씨 탓에 대구 기온에 맞춰서 옷을 얇게 입었던 내가 너무 추위를 타서 안동댐과 도산서원을 보러 가려던 계획을 절반으로 딱 잘라서 안동댐만 보고 왔다.
하지만 이것도 나의 오판으로 추운 날씨에 황량(?)한 댐을 구경 갔는데 따뜻할 리가 없다. 안동댐 정상에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황소 바람이 머리를 산발로 만들었다. 댐의 검푸른 물빛이 시각적으로도 추위와 함께 약간의 공포심을 초래했다. [내가 수영을 못하는 탓인지, 깊고 푸른 물빛을 보면 약간 무섭다.]

너무 추워서 댐에 올라간지 5분도 안되어서 재빨리 내려와서 나가는 길에 댐의 시작 지점에 있는 안동민속박물관에 갔다. 민속박물관이기 때문에 특별히 볼 것은 없지만, 그 나름의 민간의 생활모습을 담고 있는 아주 간소한 전시물들이 있었다. [사실 전시물이라기보단 조형물에 가깝다.]

이 곳에서 약간 특이한 경험이 있었다면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전시실을 나오면 만날 수 있는 붓글씨를 써주는 할아버지다. 주말을 맞아 의외로 많이 찾은 관람객들을 주변에 모아 놓고서 각자의 시조를 물어본 후, 시조의 일화를 들려 주면서 시조와 관련된 성어를 무료로 써서 나눠주는 일종의 선비 같은 사람이었다.

경랑이와 옆에 서서 다른 손님들 이야기와 붓글씨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학생은 시조할아버지가 누군가?" 라고 물었다. "밀양 박씨 박혁거세입니다."라고 하니, 혁거세께서 왕으로 계실 때 마한이 어려움에 처하자 신하가 이르길, '지금 마한을 치면 손쉽게 정벌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혁거세는 '남의 불행을 딛고 나의 이익을 취하면 인(仁)이 아니다'라고 하여 거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성어가 불인불행(不仁不行)이라면서 종이를 펼치시더니 능숙한 솜씨로 붓을 놀렸다.

[오늘 안동에 바람이 워낙 거세어서 박물관 입구에서 바로 앞에 주차해 놓은 내 차까지 가져 오는 동안에도 많이 구겨져 버렸다. 나름대로 서예를 3년 이상 배웠지만, 붓글씨를 볼 줄은 모른다.]


그 할아버지께서 글을 쓰시는 탁자 한 쪽에 성어를 적어 놓은 부채를 몇 개 놓아놓고서 팔고 있었는데 1개 당 5천원에 팔았다. 경랑이에게 하나 사주려고 할아버지에게 돈을 건내려고 하자, 부채 옆에 있는 지폐 크기만한 상자에 돈을 놓고 가면 된다고 일렀다. 돈을 놓고 부채를 가져올 때는 생각을 못했는데, 운전을 하면서 갑자기 文을 하는 사람이 어찌 장사치처럼 재물을 다루리오..쯤의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는 무료로 붓글씨를 나눠주는 탓에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서 누가 부채를 가져가도 모를 정도였고, 그보다 그 자신이 그 부채와 지폐상자에 눈길을 주지 않으려는 듯 자신의 활동 범위에서 꽤나 멀리 배치해 놓고 있었다.

어파치 모든 진실은 그 할아버지 자신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냥 오늘 낯선 길을 아침부터 왠종일 헤매면서 추위에 떨었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 왔더니 몸이 많이 피곤하다. 내일 이종사촌형님 결혼식인데, 몸살이나 나지 않으려나..

카메라를 깜빡 잊고 안가지고 가서 경랑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더니, 몇 장 안되는 사진이나마 찍었던 것들이 당장은 없네. 요즘 자꾸 나답지 않게 깜빡깜빡하는 것이 치매라도 오려나.. - -;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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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www.ziroworld.net BlogIcon Ziro 2006.01.08 04:56 ADDR 수정/삭제 답글

    안동이라...
    90년대 중반무렵에 2년정도 머무른적이 있는 도시입니다.
    경상도 사투리는 익숙한 편이지만 안동사투리가 너무 특이해 처음에 많이 놀랐었지요.
    그때는 고즈녁한 선비도시 같았는데, 지금은 너무 많이 커졌더군요.
    그 작은 도시에 대학이 무려 4개나 된다는게 놀랍지 않습니까?

    • Genesis™ 2006.01.08 21:05 수정/삭제

      지금도 꽤나 사이버틱(?)한 안동체육관이 고속도로에서 안동을 진입하는 객지인들에게 꽤나 도시화된 듯한 느낌을 주지만, 차로 10분이면 도시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까지 달려 버릴 만큼 작고 조용한 도시였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