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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인종갈등 사태



[호주 청년들에게 몰매 맞는 중동계 청년. Photo : 조선닷컴]

프랑스 대규모 소요사태에 이어 전통적으로 백호주의가 우세했던 호주[정작 자신들은 대영 제국의 중대범죄자들의 후손일 뿐이다.]에서 중동계 호주인과 백인들 사이에 대결이 벌어질 모양새다. 프랑스 소요 사태가 수십년간 이어온 느슨한 프랑스의 이민자 정책과 그에 따른 국내경제의 실패의 역풍에서 비롯된 인종 간의 갈등이라면 호주의 사태는 다소 감정적이고 격앙된 면이 있어 보인다.

호주 중동계 이주민과 토박이 백인들 사이의 갈등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몇 가지 추정해볼 수 있는 것은..


1. 중동인에 대한 세계인의 거부감 (중동인=자폭 테러리스트)
오버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지금도 중동계를 거리나 대형 쇼핑센터 등에서 보면 상당히 경계를 한다. 그리고 이런 나의 경계는 나 개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쇼핑센터 직원들이 그 중동인을 막아서고 몸수색을 할 정도로 시설물 관리책임자들에게는 예민한 문제다.

올해는 아직 아랍계 복장을 한 중동인을 보지 못했지만, 작년 여름 모 대형할인점에 갔을 때 내가 들어오고 잠시 후에 터번을 뒤집어쓴 중동인 3명이 입장했다. 순간 나는 굉장히 긴장했다. 그들이 테러리스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서 그렇게 보였다기보다 인식되어졌다. 지금도 1주일에 1번 이상 잊지 않고 접하는 것이 이슬람 지역의 자살 폭탄테러다.
그런 경계심은 나로서 그치지 않고 성서 E마트 남자 직원 4명이 번개처럼 그들을 에워쌌고 신분조회와 몸수색을 실시했다. 15분 이상 그들의 수색이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그들은 입장할 수 있었고 나는 전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유색인종에 비우호적인 호주인들에게 중동계가 나보다 더한 감정을 가졌으면 가졌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9.11테러 이후 극도로 강화된 美출입국 관리소의 검역과 상대적으로 느슨한 출입국 관리를 하다가 대규모 집단 폭탄 테러를 겪고 정신차린 영국 런던의 폭탄 테러를 보면서 호주인들이 느꼈을 중동인에 대한 경계와 적대감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호주 또한 이라크 파병국이다.

테러'협박과 강압을 통하거나 공포를 조장해서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폭력의 계획적 사용'이라고 美육군 교본에서 정의내리고 있고 대부분의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러한 정의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 약자가 휘두르는 폭력이 얼마나 무의미하며 더 강력한 보복을 야기하는지에 대해서는 수 차례 언급하였었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한 테러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일반 시민들이며 그 테러의 대상이 되는 시민들 모두에게 지도층 수준의 인내심을 요구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2. 세계인의 차가운 시선에 대한 다혈질의 중동인들의 부적응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이주민들에게 본국인과 동일한 대우를 해주는 나라는 없다. 미국에 가더라도 한국계, 중국계 등이 인구 비율에 정비례헤서 사회 고위층에 진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인이, 중국인이 이주국에서 동화되어 잘 살아 간다면 코리아 타운, 차이나 타운따위의 공동체가 생길 이유가 없다.

하지만 중동인들은 그런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듯하다. 9.11테러 즈음에 이슬람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는데, 이슬람교는 포교 과정과 교리 자체가 매우 평등을 강조하고 있음을 발견했다.[심지어 이슬람제국들은 이교도인(소득의 1/5)보다 이슬람교인에게 더 종교세를 포함한 높은 세금(소득의 1/4)을 부과했다.] 그리고 중동인들 상당수는 여전히 그러한 종교적 교리에 뿌리 깊게 젖어 생활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어쩌면 이주민으로서 겪은 차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스레 그들은 이민국 내부에서 사회불만세력으로서 형성되고 이 과정에서 토박이 세력들과 마찰을 빚고 직접적인 무력충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토박이들이 이주민을 차별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이치다. 차별하지 말라고 법률로 강제하는 것 자체가 인간 이성을 거스르는 행위일 것이며 이들이 그들의 노력과 의지에 의해서 자연스레 동화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지도층의 역할일 것이다.


3. 근대의 보편적인 민족주의
민족주의는 인류 역사 속에서 등장한 이념 가운데, 가족공동체라는 틀 밖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하게 인간 집단의 유대와 결속을 연결시켜 주는 '피'로 맺어진 고리이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가장 범지역주의가 발달한 유럽 공동체[European Union]조차도 극복하지 못하고[올해 EU헌법이 부결되었고, 영국 등은 여전히 유로화 통용을 거부하고 있다.] 있는 것으로 세계화 시대 도래를 위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이주민이 많은 지역에서 각 민족들은 대체로 자민족을 우선적으로 결집하긴 하지만, 인종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조차도 이주 초기에는 앵글로색슨족 중심으로 모였다가 20C중반 이후로는 '백인'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결집하였던 것처럼 이주민들 대부분이 이처럼 인종과 종교를 중심으로 그들의 조직공동체를 형성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풍토가 바로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며칠 전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중국인 여행객을 폭행한 백인 여성의 사건처럼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는 백인 사회의 격언처럼 자문화를 고수하는 현대 이주민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고 전세계적인 실업 문제로 인한 빈곤의 확산이 '이주자들이 일자리를 뺏고 있다'는 피해의식과 결부되어 집단적 적대의식을 양산하는 듯 하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중동계와 흑인들이 부각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추정컨데, 아시아계 이주민들은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민국가 대부분에서 통계상으로 그렇다고 함.)이고, 동양 문화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관용과 상대적 강자에 대한 순종 등의 문화가 다혈질이며 조직적인 중동계보다 토박이들에게 덜 자극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호주 폭동 사태도 사실 아주 사소한 폭력 사태(최초 사건은 단순한 중동계 이주민들이 저지른 폭력사건이었다.)가 이러한 긴장 상태의 민중들을 자극하였고, 몇몇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의 집단의 선동에 의해서 조직적인 보복이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서 중동계 청년들 흥분하여 수백명이 조직적으로 특정 장소에 모여서 방화와 약탈을 일삼음으로서 사건을 더욱 확대시킨 면이 없지 않다. 더구나 시기적으로 프랑스 소요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든지 1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른 이민국에서 발생하는 이주자들의 폭력과 약탈/방화행위에 극도로 이민자들에게 예민해져 있을 토박이들이 예수의 인내심을 보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먼저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이 백인들이었지만, 여러 가지 국제적 여건이 중동인들에게 비우호적인 상황을 그들이 감안하여 이미지 쇄신을 위한 좀 더 온건한 항의를 통해서 문제의식을 호주 측으로 돌리는 지혜가 필요했다고 본다. 힘도 없으면서 '열받는데 같이 맞짱뜨자'는 식으로 강자의 폭력에 맞섰기 때문에 거 큰 폭력과 국제사회의 지지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약자의 폭력은 강자의 더 큰 폭력을 초래할 뿐이다. 결국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쪽은 가장 약한 쪽일 뿐이다. 결국 그들의 부족한 인내심과 다혈질이 그들을 더욱 막다른 길로 몰아넣고 있다. 폭동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과연 그들이 새롭게 호주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상적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가능할 성 싶은가? [이는 프랑스 이주민 폭동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한차례 들불처럼 화풀이를 하고 나서 오랜 시간동안 그 사회로부터 이전보다 더욱 심한 격리를 당할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사진 속의 존 시나 닮은 미러코팅 선글래스를 쓴 청년의 주먹질을 오른편의 맥주병을 든 아저씨가 말리려 하는 모습이 오늘날 호주 사회의 두 가지 모습을 대변하는 듯 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민국의 토박이들의 복잡한 감정은 그들 자신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도 그리 먼 미래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