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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의 인간성 상실(?)

[콜리어즈(Collier's)]는 "우리의 빨갱이 적은 여인들의 치마 뒤에 숨어 모든 문명화된 전쟁규칙들을 비웃고 있다."는 말로 기사를 시작했으며, 그러고는 미군병사들 사이의 다음과 같은 대화를 인용했다.

젊은 조종사가 커피를 쭉 들이키고는 "빌어먹을, 사람들이 저기 서서 손을 흔들어대고 있는데 쏠 수는 없잖아요" 하고 말했다. "쏴버려." 그는 확한 말을 들었다.
"그들은 군인이야.", "그렇지만, 빌어먹을, 몽땅 흰 파자마 같은 걸 입고선 길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어요." ‥‥ "여자나 애들이 보이나?", "여자요? 모르겠는데요. 여자도 바지를 입지 않아요, 그렇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없습니다.", "그럼 군인들이야. 쏴버려."

예민한 영국 종군기자 레지널드 톰슨(Reginald Thomson)은 [한국이여 통곡하라 (Cry Korea)]라는 책에서 "감히 목격한 바 그대로의 진실을 쓰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썼다. 기자들은 남한에서의 전쟁이 유격전적이고 민중적인 면모 때문에 2차 대전과는 매우 달리, "이상하게 불안스럽다"는 것을 발견했다. 톰슨은 한 미군 해병대원이 양심의 가책을 전혀 보이지 않고, 마치 넋이 나간 상태에서 초로의 민간인을 죽이는 광경을 목격했으며, 미군헌병들이 "적을 사람처럼 이야기하지 않고 마치 원숭이인 듯이 이야기한다."고 썼다. 종군기자들 사이에서조차‥‥‥(생략)


- Bruce Cumings, Korea's Place In The Sun (2001)



이번에 한국전쟁과 관련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상당히 많은 연구 논문들과 전문 서적들을 끼고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국군과 미군(유엔군)의 민간인 학살이라는 면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온 나의 판단이 다시 한 번 옳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흔히 정치외교학에서 '외교의 실패는 전쟁'이라고 한다.

모든 외교의 목적은 '국가의 이익의 극대화' 또는 '국가의 손실의 최소화'를 추구하고, 외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의 재산권과 민족의 안녕을 수호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외교는 궁극적으로 국가를 향하는 모든 위협을 사전에 예방하는데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전쟁은 그러한 외교 절차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전쟁의 수행 과정에서 김일성의 소극적인 자세와 박헌영의 적극적인 무력 통일 의지, 휴전 협상 과정에 보인 이승만, 박헌영 등의 호전적인 자세 등은 기존에 내가 이 조사를 하기 이전에 인지하고 있던 것 이상의 강렬한 수준이었다. 한국 전쟁은 '외교의 실패'라기보다, '양국의 지도 세력들 간의 극렬한 불신감과 무력 통일의 의지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약간 의외였다면, 초기 김일성이 독재 의지가 약했고, 소극적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점 정도..]


한국 전쟁은 베트남 전쟁과 많은 면이 닮아 있고, 이라크와도 어떤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게릴라전이라는 점이다.
게릴라전은 비정규전으로 군복을 입은 정규군과 정규군이 충돌하는 제네바 협정에 기초한 교전 수칙이 지켜지는 전쟁이 아니다. 전쟁 포로에 대한 규정도 없고, 교전 과정에서 포로가 발생하는 경우도 드물다.

'게릴라'는 '민간인'과 다를 바가 없다. 민간인이 총을 들고 적의를 보이는 순간, 그 민간인은 더 이상 민간인이 아니라, 무장 세력이 되는 것이고, 군인이 아닌 군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베트남 확전 이전에 베트공들의 대남 활동과 이라크 정국의 무장 게릴라들과 일맥상통한다. 아버지는 정규군이고, 아들은 게릴라이고, 낮에는 마을 주민이고, 밤에는 베트공이 되는 그런 꼴인 것이다.

많은 이들은 전쟁을 '인간성의 상실'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도 전쟁 후에 민간인이 다수 죽은 사건에 대해서는 맹렬히 비난한다. 그 비난의 대상이 적군이든, 아군이든, 우리를 위해(정확하게는 이데올로기와 국제 사회의 힘의 분배 상태에 근거한 동원된 용병의 형태인 참전국의 군인이든지..) 피를 흘린 외부인이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도덕성에 대한 비난은 어느 누구도 감히 반박하지 못한다. 도덕성을 지키자는데, 그것에 대해서 반박하게 되면 생각이 짧은 사람들은 "그럼 당신은 인간성 회복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오?" 라는 당시 정세에 대한 이해는 완전히 무시된 억지 주장을 펼치며 대화를 거부한다. 이상적인 말은 어디에서나 유약한 민중들의 여린 가슴을 자극한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현실적 가치 판단이 될 수는 없다.

그 죽은 민간인이 진짜 피난가는 민간인이었는지, 아니면 민간인 복장의 무장 게릴라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일반 민중 다수가 민간인이라고 주장하면 민간인이 된다. 그들을 죽인 자들은 1차적으로 살인자라고 하는 리스크를 안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적극적인 변호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피의자 아닌 피의자는 앉아서 당하는 꼴이 되고, 죽은 자가 게릴라인지, 민간인인지는 이미 중요한 논제에서 벗어나 버린다.


그렇다면 전쟁 중에서 우리를 위해 피흘리고 죽어간 우리의 군대인 국군과 그 목적이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든, 대소 봉쇄정책의 일환이든, 국제 사회에 자유진영의 결속과 미국의 우방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과시하기 위한 정책이었든지 간에 우리 나라의 체제 보장과 자유의 수호를 위해서 죽어간 미군, 그리고 미국 주도의 자유 진영에 서서 국익을 챙기고자 했던 유엔 참전국들이 흘린 피는 과연 누구를 위한 피였나? 그들은 우리를 위해 싸워준 자유 진영의 동지들이 아니었던 것인가?


베트남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연병력 48000여명의 우리 파병 군대가 싸운 것은 미국의 용병이라는 오명도 있었지만,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당시 국제 정세 속에서 미국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었던 것,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획득해낸 병력 현대화와 매년 3억 달러가 넘는 무상 원조, 닉슨 시절 주한 미군 감축의 댓가로 받은 15억 달러의 군현대화 지원금 등 모든 것이 우리 국가의 이익과 베트남의 자유 수호를 위한 투쟁이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베트남에서 베트남이 망해라고 싸운 것인가? 그렇다면 베트남에서 죽은 5000여명의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은 헛된 것이 될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베트남에서 발생한(?) '라이따이한' 문제와 베트남 내의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가 슬쩍 고개를 들었던 적이 있다. 이것 또한 한국전쟁의 예와 다를 바가 전혀 없다.
베트남 전쟁도 한국 전쟁도 유격전(게릴라전)의 형태로 정규군의 충돌보다, 후방에서의 비정규군의 충돌이 훨씬 많았다. 그것은 모든 보고서와 지금은 공개된 기밀 문서들이 증명해 주고 있으며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해한다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는 일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전쟁이다. 병정놀이가 아니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민간인 복장의 적이 먼저 수류탄을 던지거나, 자동소총을 난사한다면 내가 죽게 된다. 전장에서 긴장을 풀고 나태하게 있는 군인은 죽게 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하는 彼我가 미확인된 존재가 있다면 일단 쏴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게 된다면 내가 죽는다. 어느 바보가 그 상황에서 "당신 지금 뭐하는 거야?" 라고 묻지 않는다. 그렇게 묻는 순간 당신은 50% 확률로 이미 죽어 있을 것이다. 내 앞의 상대는 무조건 적 아니면 동지인 이분법적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 전쟁터이다.


나는 '전쟁터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에 있어서 어느 누구의 탓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한 일은 '전쟁터'라고 하는 특수한 장소와 '전쟁'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이다.
이것은 단순히 피의자들에 대한 면죄부를 주기 위한 논리가 아니다. 전쟁터라는 곳의 생리가 그런 것이다. 방심은 곧 죽음이다. 전쟁터에서 인권을 논하는 이가 없듯이, 평화로운 시대이기에 인권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전쟁에 참전했던 우리의 외국 동지와 국군에게 민간인 학살의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과연 다음에 발생할 유사한 상황에서 과연 누가 우리를 도와줄 것이며, 과연 우리 국민 중 누가 발벗고 전쟁에 참전할 것인가? 전쟁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그들이 민간인인지, 게릴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죽은 자만이 안다.)에 대해서 인권을 논하는 그들은 과연 전쟁을 억지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 전쟁이 발생한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인권의 이야기로 그것을 종전시킬 수 있는가? 평화시에 논하는 인권에 대한 논란은 전쟁시에서는 모두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략적인 대후퇴'를 하던 북한군조차도 긴급 지령으로 '인민에 대한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즉결재판을 하지 말 것'을 명령할 만큼 상부에서는 인간성을 지키고자 했지만,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그것을 허용치 못했을 뿐이다.


그들이 인권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수용하듯이, 전쟁터라는 상황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 살인을 즐기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사람이 살인을 유쾌하게 여기지 않는다. 섣부른 일반화로 그들 자신을 위해 또, 우리를 위해 생명의 촌각을 다툰 이들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마라. 언젠가 당신도 그 자리에 서서 억울함을 느끼며, 억지 자아비판을 강요 받게 될지도 모른다.

논란의 요지는 '당시 정황에 대한 이해심의 차이'일 뿐이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 2011.10.15 02:07 ADDR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