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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잘못, 다수의 잘못

[이글루스 2004년 08월 23일 작성글]

1. 흔히 무슨 대형 사건이 터지거나, 개개인간의 잘잘못을 따지게 될 때, 우리 대중들은 일반적으로 그 객체에 대해 그것에 크게 개념치 않는 편이다. 대중들 간의 문제는 대체로 그 원인 규명이 명확하고, 공개되어 있으며, 잘못한 자에 대한 즉각적인 응징이나, 사법처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치권과 기업 조직 단위에서 발생하게 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정치권에서 만약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한국의 경우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통 정치인들이나 거대 기업인들은 일반인과 동등한(?) 수준의 사법적 조치나 사회적 매장을 당하지 않는다. 그럼 우리 대중들은 분노하고, 일부 싸구려 매스컴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거론하며 가난하고 힘없는 대중을 자극하며 권력에 대한 무비판적인 적의를 드높이도록 촉구한다.

2. 국제 협약이나, 국내 정책의 실책으로 인해 국익에 손실이 오게 되어 조사특위가 구성되어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서 조사가 들어왔다고 치자. 이런 경우에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 잘못의 객체가 특정 정치인이나, 정책 결정자, 또는 몇 명의 과실자를 지목하지 않고, 'XX위원회', 'XX회' 이런 식의 조직이나, 단체를 그 과실의 객체로 지목한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될까?
먼저 1번째 경우를 살펴 보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제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높으신 분 여러 사람 다칩니다." 하는 이야기..

그 말 그대로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으면 있을수록 다른 고위 공직자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강한 인물들과 연계가 쉽게 잘되고 친족 관계나 결혼 동맹 등을 통해서 서로간의 유대를 높인다. [부유층의 자녀들은 어떤 면에서 부모의 '정략적 아이템'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불쌍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들도 그렇게 당하고만 살만큼 멍청하진 않다.] 그렇게 얽히고 얽히면서 서로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져 가고, 유사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서로가 서로를 외면할 수가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고위층의 정체된 '고인 물'은 쉬 썩기 마련이고, 여러가지 부정한 방법에 함께 연루가 되게 된다. (ex. 김영삼의 전직 대통령 처벌 과정이 대표적) '내가 너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상황' 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그 사슬이 길기 때문에 건재한 나머지가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서 압력 세력으로 행사를 하게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혐의는 축소되고, 은폐되며 역시 이같은 '연환계'의 희생과 이익을 공유하는 법조계에서도 냉정해질 수 없는 것이다..


2번째 경우를 어떤 면에서 더 쉽다고 할 수 있다. 사안의 중량감이 크면 클수록 사안의 최종 결정을 좀 더 고위층에게 서류가 넘어가고, 좀 더 큰 조직으로 이관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책임의 회피' 이다.
책임자가 '하나'이거나, '소수'일 때는 처벌이 용이하다. 1번의 경우에도 아무리 동맹 관계가 얽혀 있어도 결국 '무죄'가 될 수는 없다.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원회나 단체 단위로 결정을 하게 되면 해당 조직의 최고위 지도층이 아닌 이상 어떠한 도덕적 책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거의 모든 중요 회의 과정은 비공개로 붙게 되고, 내부 조율을 통해서 결과를 도출한다. 그리고 나서 그 결정에 대한 과실은 조직 전체가 지게 되고, 개개인은 모두 결백하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그럼 그 조직의 간판은 결과의 책임으로 무너지고, 조직의 구성원은 뿔뿔이 흩어져 원래 자신이 있던 곳이나, 새로운 터전으로 나간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이러한 예의 가장 최근에 대표적 사례를 들자면, 영국의 이라크 전쟁 결정의 책임 소재 파악을 위한 '버틀러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정치권 전반의 '집단적 책임'을 탓하며, 대충 넘어가 버림으로서 책임자 모두에게 면죄부를 부여.)가 있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인가..
많은 한국의 대중들의 기대와는 달리, 선진국에 가면 갈수록 이런 식의 책임 회피가 더 조직적이고 빈번해 진다는 것은(후진국의 독재 국가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어쩌면 이 사회가 왕정으로 돌아가 모든 잘못은 '국왕의 부덕함의 소치'가 되는(심지어, 가뭄과 홍수마저도..)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인가?
선진국의 경우, 많은 지성인 세력에 의해서 이러한 그릇된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수정과 지적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그 지성인 세력이 매우 미약하고, 어설프게 머릿 수만 많은 참여 연대 같은 곳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려 하지만 그들의 판단 능력이나, 현실에 대한 이해도로는 어림도 없고, 아직 그럴 능력도 못된다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개인적으로 한총련(전대협)따위는 쓰레기이고, 진짜 이 놈들이 요즘 한창 시끄러운 '빨갱이 집단'이라 확신한다.]

대한 민국에 민주주의가 꽃피기 시작한지 17년이 지났다.
하지만, 인터넷과 정보 통신의 발달은 후진국 국민들에게마저도 최고 선진국의 정치 현실을 선망하며 동경하게 만들었고, 국민들의 기대 수치는 극단을 치닫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 지도층은 아직도 그러한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고, 부응할 생각조차 별로 없이 구태를 반복하는데 그치고 있다.


'세대의 교체'다.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어설프게 지금 30대 법무사, 변호사 하던 쓰레기들이 나와서 외치는 세대의 교체가 아니라 정말 정치, 외교, 행정을 전공한 자들이 정치 전면에 나서고, 보좌관 제도를 현실에 맞게 개선하고, 의정 활동이 100% 공개되고, 비공개 회의를 철폐하고, 활동 내역과 진전 과정, 결과를 정기적으로 발표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기 위주의 정책 실행을 견제하기 위해 국가 원수는 장기적 플랜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정권이 이양되더라도 그러한 플랜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결말을 볼 수 있도록 정치권 전반의 이해와 타협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멍청하고, 어리석고, 아둔하고, 머저리 같은 '우리 국민'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이런 국민 수준으로는 아무 것도 못한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PeterGabriel™, Against All Od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