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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대표와 크리스토퍼 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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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어대에서 천영우 한국대표와 크리스토퍼 힐 미국대표. Photo : 외교통상부]

개인적으로 駐韓미국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동아시아 차관보에 대한 감정이 꽤나 우호적인 편이다. 그의 좌담을 몇 차례 보면서 그의 (미국적 가치관에서)중도적 보수성향의 가치판단과 합리적인 면, 그리고 재외공관에 파견된 대사로서의 신분과 역할에 충실했던 지극히 관료로서의 모습에 충실한 면이 한국의 정치/행정관료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여전히 특별한 과실(?)을 찾아보기 힘든 그에 의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한국의 前6자 회담 한국측 대표이자 現외교통상부 장관인 송민순도 개인적으로 참 호감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임명되고 나서 말을 막 해버리면서(?) 상당히 내 안에서 이미지를 구겼다.

나는 극단적인 빠순이/빠돌이 기질이 부족(?)해서 좋아하다가도 언제든지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일면 변덕쟁이이거나, 지조 없는(?) 회색분자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로움으로 인해 나는 무리수를 둘 필요로부터 자유롭다. 잘하면 동조하고 못하면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세상의 이치다. 그런 면에서 이번 6자 회담은 둘 모두에게 칭찬도 비판도 할 필요가 없다.


Hedge™, Against All Odds..

그의 예견이 옳았던 것인가.

2006년 10월 30일자 관련기사 보기

2006년 10월 31일자 관련기사 보기

언론인 조갑제는 나로 하여금 참 다양한 감정의 굴곡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대체적으로 그의 글에 동조적인 입장을 보이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는 노무현 혹은 김정일 세습왕조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종종 이성을 잃고 광기에 도취된 듯한 망발을 쏟아내어 나와 세상을 어처구니없게 만들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조갑제의 광기에만 집중하여 그가 월간조선 편집장이었다는 사실과 '조중동'이라는 낙인 하나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결론짓고서 평가해버려 사실관계를 흐려버리지만 그의 글 중에는 쓸만한 글이 참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인심이란 것은 너무나 야박해서 100번 옳은 소리를 해도 한 번 꽝을 뽑아 버리면 그 인간은 영원히 꽝인 인간으로 인식해버리기에 나름 그의 투쟁노선이 외롭고 고독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좀 나아졌으려나.)

여튼 그가 예견한대로 스토리가 진행되어 가는 것 같다. 물론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노동당과 군부의 권력다툼의 틈바구니 속에서 언제 다시 김정일 혹은 군부의 선택이 뒤바뀔지 알 수 없기에 이대로 과연 이루어질지 의문이지만, 조갑제 논설위원의 예견처럼 북한이 핵실험 이후 별다른 앙탈없이 6자 회담 복귀를 확약한 現국제정세가 그다지 부정적인 방향은 아니다.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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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 이후의 동북아를 둘러싼 정세 변화

한국의 추석 연휴가 끝난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자신들의 과실을 끝까지 감싸주던 맹방이었던 러시아와 중국의 만류와 전 세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무차별적 지하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세계평화와 동북아 국제질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됨으로서 한반도의 군사적 안보와 평화정착을 위한 한국과 동북아 각국의 노력에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특히 이번에 실시된 핵실험은 과거 80년대 북한의 100여 차례에 걸쳐 실험했던 고폭실험(Experimental High-Explosive Detonations)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핵무기로서 그 핵무기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증명하기 위한 핵실험이 핵무기가 한 번도 실제로 사용된 적이 없는 공격적으로 실시되었고 이를 북한국영방송이 대내외에 발표함으로서 그 문제의 심각함은 극에 달했다 할 것이다.

'핵시험 성공적 진행'-조선중앙통신(전문 열기)



- 늑대를 살찌운 꼴이 된 '햇볕정책/포용정책'의 실패
아무리 다른 말을 둘러서 표현해도 햇볕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햇볕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북한의 군자금을 대는 꼴'이라는 비난에도 꿋꿋이 그 정책을 차기 정권에까지 연계시킨 김대중 前대통령은 이와 같은 현재 상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역사적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바로 핵실험이 있기 전날, 한국에 있는 누구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인간적으로 잘 안다'고 자부하던 김대중 前대통령은 "북한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北美 간의 대화재개"를 주문했었다.

韓, 美, 日, EU등이 전폭적으로 양보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던 1994년의 제1차 제네바 핵협정을 1998년 금창리 핵시설 의혹사건과 2002년 캘리 美특사의 방북 당시 고농축우라늄 축적과 핵무기 보유를 시인하며 자의적으로 파기했던 그들답게 6자 회담을 통한 北美대화재개에 의욕을 보였던 미국 측의 입장을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한 그들에게 또다시 퍼주기식 외교를 주문한 김대중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매몰차게 무안을 주고 말았다.
북한은 한국의 對北포용정책과 제네바핵협정에 따른 미국의 중유 50만톤 지원, 韓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컨소시엄 형태로 북한에 경수로형 원자로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던 KEDO(Kore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와 8년간의 서방의 북한의 자생력 고양과 인도주의적 지원을 발판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이 아닌 기존의 플루토늄 추출 방식의 핵무기 개발 시도보다 훨씬 더 고난이도의 기술과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 '고농축 우라늄'(HEU : High Enriched Uranium, 우라늄 235가 90%이상인 물질로 군사용으로만 사용된다.) 추출 기술을 축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한국과 서방의 배신감과 불신으로 인한 각종 對北제재에 대해 북한은 '공화국 압살책동'이라는 억지논리를 펼치며 점점 더 자신들의 핵무기 제조와 핵실험, 미사일 개발 등을 합리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보복전쟁(그전에는 나도 침공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단순히 침공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고 판단되어 '보복전쟁'으로 변경했다.)으로 북한이 21C초반부터 계속 불미스러운 움직임을 노출하여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미국에게 북한이 먼저 핵포기와 北美불가침조약 체결을 맞바꾸자고 제의하기도 했었으나 미국에 대한 국제 사회의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하자 다시 기존의 '벼랑끝외교(Brinkmanship Policy, 순전히 북한의 외교행태에 의해서 새로 만들어진 용어다.)'를 고수함으로서 한반도 평화의 구축과 공고화를 저해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 거듭되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과 부정 혹은 모호한 입장 표명 등으로 불필요한 동북아 정세의 긴장 상태를 조장하였고 2006년 7월 5일 6발의 미사일을 자의적으로 공해상에 발사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한글날이자 김정일의 권력승계일과 북한노동당 창당기념일 사이의 하루의 공백일에 한반도 역사상 첫 핵실험이라는 희대의 비극을 저질렀다.


- 국제사회의 발빠른 움직임과 대응 그리고 명백한 한계
북한의 도발적 핵실험에 당면한 세계 각국은 비교적 신속한 움직임을 보였다. 북한 핵실험 확인 당시 새벽녁이었던 미국 측은 사태 발생 4시간 여만에 공식 대변인 논평이 나왔고, 中日도 비슷한 시점에서 공식/비공식 논평을 쏟아냈다. 2개의 정권에 걸쳐 '북한을 자극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로 북한에 대해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한국 정부도 이례적으로 윤태영 대변인을 통해서 북한을 원론적으로 비난하면서 모든 사태의 책임이 북한에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UN차원에서도 즉각적인 비난성명과 함께 경제적/군사적 제재조치를 포함한 '유엔헌장 7장'을 언급하며 북한에 대한 전면적 제재조치가 가동될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타진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그 어느 국가도 북한의 행위를 비호하는 국가나 국제기구는 없다.

현재 북한은 스스로가 자초한 수많은 실책과 기만행위, 무력도발, 국제법 무시 등을 통해서 그 어떤 지지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완전무결한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 지위는 북한 스스로 획득(?)한 것이다. 그 동안 그들이 저지른 많은 행위들은 지금까지 있었고 또 앞으로 있을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대한 명분을 제공하였고 자신들이 제공 받은 국제원조의 명분을 상실케 하였다. 이제 세계는 모두가 하나되어 북한의 이와 같은 무력도발 행위를 분쇄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뜻을 뭉쳤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청와대 대변인 발표 전문 열기]


하지만 정작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 조치를 통한 핵포기를 이끌어 내려고 하니, 현실적으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제재의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 언급된 수많은 군사/금융/무역제재 조치가 이미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와 북한의 국제정치적 지위를 고려해 볼 때, 특출나게 효과를 발휘할 만한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여러 실증적 사례를 통해서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가 세계화와 상호의존을 통해서 자국의 부를 축적하고 확장하는 21C에서도 '자력갱생, 강성대국'(그러면서도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인도적 차원'이라는 미명 하에 원조는 끝없이 제공 받고 있었다.)을 부르짖는 저 처량한 세계 최빈국의 유일무이한 강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는 가장 강력한 對北제재 조치를 발동할 수 있고 발동해야 하는 동기를 부여 받은 미국 내부에서조차도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국제 사회의 고민거리는 핵실험 3일이 지난 현시점까지도 뚜렷한 북한에 대한 추가적 제재조치가 결정된 것이 없다는데서 증명되고 있다. (1950년 6월 북한이 한국을 남침했을 당시, 국제 사회가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하는데 딱 3일이 걸렸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그 동안 무작정 북한을 비호하던 韓, 中, 러시아가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지속하는데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한 일정 수준이나마 북한에 대한 제재 효과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 적(敵) 앞에서 분열하는 국내정세와 우방국들의 관계
우리가 직면한 더 큰 문제는 북한의 핵실험 실시 초기에 있었던 관련국들의 심리적 연대의식이 점점 희미해져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중/러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핵보유국이자 NPT체제의 주도 국가인 '러시아'는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도 불구하고 10월 11일 북한으로 곡물 12800톤을 실은 수송선을 출항시켰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기존에 있던 'UN의 대북식량지원 프로그램'에 의거한 지원이라고 변명했지만, 결코 시의적절한 행동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감싸안음으로서 탈냉전 이후 상실한 동북아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재고하고 앞으로 재추진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6자 회담 형태의 다자간 회의에서 지난날 중국에게 빼앗겼던 주도권을 재고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근거로 일정 수준 이상 회복하고 싶은 그들의 의지가 담긴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물론 러시아 측은 이러한 해석을 부정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 이후, 유례없이 강한 어조로 북한을 비난한 중국에서도 비난 성명 이후의 입장이 애매모호하다.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對北제재에 대해서도 초기의 과단성을 상실해가는 인상을 주고 있고, 기존의 對北지원의 감축 혹은 중단에 대해서도 선린우호관계와 북한 인민의 생활 개선 측면을 내세워 중단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내세웠다. (최근 있었던 對北송유관 원유공급 중단에 대한 입장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가장 중대한 국가안보적 위협을 당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은 더욱 극적이다. 초기 윤태영 대변인과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책임론'은 온데간데 없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한 핵심인 김대중 前대통령은 "햇볕정책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해괴한 이론"이라며 오히려 역성을 내고 있고 정부와 여당의 중책들은 하나둘씩 미국책임론을 거론하는 적반하장의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의 머릿 속에서는 김영삼 정권 시절 빌 클린턴 행정부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그야말로 북한이 해달라는 것을 다 들어주고 나서 약속 받았던 단 하나의 반대급부인 '핵프로그램의 포기'를 스스로 파기하고 자의적으로 NPT와 IAEA에서 탈퇴하고 KEDO와 주변국의 물질적 후원을 받은 '유예기간'동안 HEU기술을 축적한 그들의 배신과 기만행위를 망각해 버린 듯 하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북한을 비호하려 드는 중/러에 발맞춰서 함께 연대하고 문제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韓美日이 모두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우방국 간의 분열이라는 원초적인 문제도 점점 표면화, 구체화되고 있다. '그래도 군사적 제재는 불가하다'는 상황판단을 하고 있는 미국과 '필요하다면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는 일본, 여기에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평화통일의 환상에 젖어 있는 한국까지 3인 3색의 엇박자 속에서 상호공조의 여지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 현실에 대한 오판
여기에 한국 정부의 현실오판(?)이 한꺼풀 더 겹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후견인인 중국의 반대의견을 묵살하고 무력도발을 강행한 바 있다. 지난 7월의 미사일 발사가 대표적이며 이번 핵실험 강행은 핵실험을 강행하기 불과 1일 전인 10월 8일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공식적인 만류요청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10월 9일 기꺼이 그들의 계획대로 무력도발을 감행했다. 현실적으로 중국이 이제는 더 이상 북한에 대한 정치적/군사적 통제력을 가졌다고 여기며 믿고 따르기에 힘든 국제상황이 표면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10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중국을 실무방문(Working Visit)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핵실험 직전에도 중국 후주석과 긴급히 전화통화를 했었던 그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과감히 이 길이 아님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한국 정부는 인정하지 못하는 듯하다.

분명 중국은 아직까지 최소한의 수준이나마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기 불과 20분전이나마 가장 먼저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핵실험을 사전공지한 유일한 국가가 중국이었고, 이 소식을 중국이 韓美日에 통보해야만 했던 점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완전한 고립무원을 자초하고 있는 북한이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중국만은.."이라는 미련을 버리지는 않은 듯해 보인다. 진정 북한이 중국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히던 "모든 국가가 적이다."라는 말처럼 더 이상 자신들의 맹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20분 전이나마 중국에게 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어느 정도 노무현 대통령과 현 정부의 중국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치명적 위기 상황에까지 치달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의지하던(?) 중국이 우리의 이와 같은 위기상황을 해결하는데 효과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면 이제는 다른 카드를 과감히 뽑아들어야 한다고 본다. 중국은 더 이상 북한체제를 컨트롤하기 위한 효과적인 카드가 되지 못한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통치체제가 김정일의 유일적 정책선택 권한이 보장되어 있는가에 대한 반문을 해봐야 하는 시점에서 몇 번이나 실패한 중국 한 국가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은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카드를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다. (정부여당의 '미국책임론'과 같은 도발 발언과 그에 대한 버시바우 駐韓美대사의 유감표명은 우리가 가진 옵션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살행위의 일종인 것이다.)

협상에는 히든카드가 있어야 하고 대안적인 방법이 존재해야 한다. 상대가 미쳐 알지 못하는 우리의 선택 사항이 필요하고 첫번째 협상에서 실패하더라도 두번째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역대 어느 정권 시절보다도 뻑뻑해진 韓美관계의 오랜 협력관계를 감안할 때, 미국만큼은 한국이 언제든지 되돌아서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 방법으로 남겨두어야 함에도 이 정권은 현실을 지나치게 낙관하며 오판을 거듭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중국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의 등을 칠 수 있는 국가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노정부와 정부여당의 근시안적이고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 북한 핵실험 사태의 미래
앞으로의 전개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란 사실상 北美中이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정하든 하지 않든 북핵 위기에서 한국은 가장 치명적인 당사자이면서도 가장 무능력한 행위자로서 그 존재감을 거의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대북 지원에서 '돈폭탄'을 기꺼이 떠안아 국민여론의 맹폭 속에서 노정권과 정부여당이 햇볕정책의 고수를 운운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사태 해결을 위한 최종적인 칼자루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때문에 북한이 가장 중요한 행위자다. 북한은 이미 2차 핵실험을 예고해 두고 있고 국제연합의 제재조치는 이와 같은 북한의 2차 핵실험을 염두해둔 낮은 수준의 제재조치(PSI와 금융제재조치가 상당부분 초안에 비해 완화되어 있다.)를 결의안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확실해졌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는 초안대로 제재를 할 경우, 2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의 북한에 대한 징벌적 제재조치가 군사적 압박으로 직접 연결될 수 밖에 없는 초고강도 조치이기 때문에 좀 더 국제여론이 받는 충격파를 완화하고 미국의 對北제재가 좀 더 높은 당위성과 국제여론의 후원을 받기 위한 사전 포섭의 하나로서 이해된다. UN의 현재 제재조치를 북한이 '공화국 압살책동'이자 '선전포고'로 받아 들이든지 말든지 이미 북한은 전 세계가 공인한 악의 축(Axis of Evil)이며 '핵비확산'이라는 절대善을 부정하는 존재로 낙인 찍혔다. 그들이 예고한 2차 핵실험은 이러한 국제여론을 더욱 공고화할 것이며 북한을 오늘의 고립보다도 더 심각한 수준의 초고강도 고립 상황을 야기할 것이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제2, 제3의 핵실험을 감행하고 최악의 경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보유국을 인정하기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는 대승적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잠재적 후견인'의 지위를 포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의 핵무장은 북한을 핵심 주적 중 하나(일본 국방백서의 제1주적은 러시아이지만, 현실적인 제1주적은 '북한'이라는 점을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로서 규정한 일본의 핵무장을 초래할 것이 확실하다. 또한 실질적으로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으로 인해 세계에서 징병제를 실시하는 단 3개국만 중 하나인  한국의 핵무장 혹은 1992년 1월 1일 발효된 '한반도비핵화선언' 이후 철수된 미국의 전술급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를 통한 직접적 핵우산 정책이 재개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은 대륙으로부터 지속적이며 공식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독립국으로서의 대만'을 추구하는 대만 첸총통으로 하여금 미국의 핵무장 저지 명분을 약화시키며 이를 통한 미국의 對中협상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이런 '핵도미노 현상' 발생은 중국의 동북아에서의 지역적 패권 확보에 결코 우호적 환경이 아니다. 중국은 '북한이라는 밑 빠진 독'과 '핵무장한 동북아' 사이에서 최종적으로 선택을 요구받을 것이며 중국의 선택은 반드시 후자에 치우치게 될 것이다.


북한 최고 고위층과 최고급 정보에 가장 정통한 인물 중 하나로서 한국에 귀순한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 중 한 명이자 김일성/김정일 父子를 있게한 '주체사상'의 창시자 황장엽은 민주주의 이념정치철학연구회 주최로 열린 강좌에서 북한은 1993년 1차 핵위기 당시 이미 지하핵실험 준비를 완료했었음을 밝힌 바 있다. 동시에 무능무지(無能無知)의 이종석의 통일부 졸개들은 노 정권의 햇볕정책 옹호 분위기에 호응하며 자신들이 무능하여 핵실험 사태를 초래했을 뿐이라며 자신들의 노선을 옹호하고 나섰다.

1994년 제네바핵협정을 맺을 당시 韓美가 선택한 북한 핵위기의 해결방안은 지금 그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北美양자 간의 대화를 통한 회담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한국은 지금처럼 북한으로부터 협상의 당사국으로서 인정받지 못하여 미국하고만 대화하려는 북한의 의지에 따라 미국을 통한 대리협상을 벌여야 하는 수모를 당했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치욕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북핵 해결방안으로서의 요구사항들은 '우리민족끼리'를 주구장창 노래 부르던 그들이 최후의 순간까지도 자신들의 민족이라는 '한국'을 배제하고 오직 미제국주의자들과만 대화하겠다는 의지의 재천명인 것이다. 그것마저도 한국은 감정적 치우침에 젖어 北美양자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감정에 치우친 한국 스스로의 역할 포기는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맺어진 한국전쟁정전협정에서 이승만 前대통령이 감정적으로 협정 조인을 거부한 탓에 지금까지도 북괴로 하여금 한국전쟁 당사자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감성이 아닌 이성에 눈을 뜰 때다. 더 이상은 절대 안된다. 눈 앞의 적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은 같은 민족이기 이전에 우리의 제1 적성국이다.


P.S. : 10월 9일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개인 생활이 있어서 여기저기 좀 쫓기다 보니 글의 정보가 일관성을 약간 잃었다는 느낌이 든다. 어차피 북한 핵실험의 후폭풍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고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두고두고 질겅질겅 씹을 자일리톨 껌과 같은 존재다. 오늘 이 글에서 미숙하고 불충분한 의견피력은 이후에 조금씩 보완되고 수정될 것이기에 한 번의 퇴고도 거치지 않은 채 그냥 이대로 글을 내 블로그라는 배 위에 띄운다.


Hedge™, Against All Odds..

대포동 2호의 대모험

- 위기가 눈 앞에 현실로 펼쳐지다.
[북한이 보유한 이동식발사대 사용이 가능한 NK 미사일(스커드 미사일)]


북한의 대포동 2호를 포함한 7기의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부시가 규정한 '악의 축(Axis of Evil)' 국가 중에서도 가장 예측이 어려운 돌출행동으로 국제안보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김정일 세습왕조(김일성 사망 당시 북한이 송출한 영상들과 김정일의 승계에서 많은 서방의 언론들은 북한을 봉건국가로까지 폄하한 바 있다.)의 운명을 건 도박은 가장 마지막에 뽑아야 할 카드의
'무기로서의 핵의 사용' 바로 직전 단계까지 치달았다.

당초 美 캘리포니아州까지 사정거리로 하고 있다고 알려졌던 북한산 ICBM인 대포동 2호는 세계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42초(외신)에서 7분 가량(이성규 합참 정보참모본부장)을 비행한 것으로 보이며 대포동 1호가 비행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 열도를 넘지도 못한 채 동해안에 떨어져 '해양 무단투척 폐기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대포동 2호와 함께 시간차로 쏘아올린 것으로 알려진 다수의 단거리/중거리 미사일은 모두 소기의 목적 비행을 마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최소한 북한이 언제든지 결심만 한다면 한반도 전역과 일본을 커버하는 1차 미사일 타격능력을 보유한 것이 분명해졌다.

혹자는 스커드 미사일의 정확도에 의문을 품고 있지만, 1천발 가량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북한의 단/중거리 미사일에게 미국의 최신예 스마트탄과 같은 정밀타격은 별 의미가 없다. 스마트탄은 단지 제네바 협정에 준거한 정해진 군사시설만을 초정밀 타격하여 민간인 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한 목적일 뿐이지, 북한처럼 대놓고 과거 미소 냉전 시절의 적국의 도시를 직접타격하여 대량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군사전략을 구사하는 국가에게는 무의미한 일이다. 또한 2차례의 이라크 전쟁에서 명중률이 30% 수준으로 알려진 PAC-3(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최근 기종)가 아무리 많이 배치되어도 북한의 장사정포와 단/중거리 미사일이 몇 십발 몇 백발씩 동시에 날아오면 사실상 방어가 불가능하다.[애초에 장사정포는 방어개념이 없고 몇 대가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지도 모르며 기동
(機動) 가능한 야포가 아닌가.] 이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 시절 계획된 전략방위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에 대한 소련의 대응책이기도 했다.

북한이 쏘아올리는 미사일 중 단 한 발이라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 떨어진다면 전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도시가스 설비를 가진 한국의 수도 서울은 미사일의 가공할 폭발과 함께 도시가스관이 연쇄 폭발을 일으켜 수도권 전체가 '불바다'가 될 것이다. 1994년 3월 19일 북한 대표단의 박영수이 위협했던 '서울 불바다 발언'(관련 동영상 보기)은 현실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다. 즉, 이미 북한 정도 수준의 미사일 기술과 미사일 갯수를 보유한 국가에게 일부에서 주장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대량 도입하는 것은 어지간한 규모의 PAC-3가 아니면 무의미한 것이며 한국은 그러한 국방비를 감당해낼 수 있는 여력을 가진 경제적 부국도 아니다. (나라가 잘살아야 군사력도 동반상승한다.)


- 美와 부시 행정부, '하나'를 통해서 '모든 것'을 얻었다.
[일본이 느끼는 이번 사태의 위기감은 저 신문의 '6발'이라는 글자의 크기로 대변될 듯하다. 9.11테러 당시의 신문 1면 기사의 크기만큼이나 큰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1면 기사의 지면 할당은 일본과 일본 국민들이 북한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크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Photo : 연합]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위기 국면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 이르도록 그 동안 끊임없이 외교적 접근을 통해 북한을 달래고 압박했던 韓/美/日/中 4국과 국제 사회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전 세계의 對北외교정책은 명백한 실패를 또 한 번 경험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가 과연 온전한 실패인가?

나는 이번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통해서 6자 회담 각국의 입장에 중대하고도 결정적인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여러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중대하고도 결정적인 변화는 더 이상 맹목적으로 북한을 편드는 국가는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미국 부시 대통령의 대국민 성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읽어질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이 감행한 또한 번의 무모한 모험으로 많은 명분을 얻었다. 첫째는 단연 '악의 축'에 걸맞는 북한의 악마적 이미지를 전 세계에 돈 한 푼 안들이고 Breaking News로 타전했다. (물론 아쉽게도 가장 큰 안보적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은 예외다.) 이미 국가로서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북한의 '자위를 위한 무력시위/미사일 자주권' 주장은 그 설득력을 잃은지 오래다. 북한에 대한 악의적 이미지의 고착화는 미국의 앞으로의 對北정책 기조와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제재를 가함에 있어서 한결 더 운신의 폭을 넓혀줄 것이며 이라크 전쟁과 이란 핵위기에서 최근 악화된 국제/국내 여론에 힘을 많이 잃었던 부시 행정부에게 적잖은 우군이 되어줄 것이며 對北제재는 더욱 구체적이고 강경해질 것이다.(이는 부시대통령의 6일 CNN인터뷰를 통해서 나타난 바 있다.) 물론 스마트탄을 이용한 북폭론(北爆論)이 맹렬한 기세로 다시 고개를 들 것은 명약관화하고 부시는 그러한 (이라크 상황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매파들의 불만을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포용하고 무마시키는 '평화의 수호자'라는 언밸런스한 이미지 또한 덤으로 얻을 것이다. 그리나 미사일을 발사한 김정일 자신의 이미지는 이미 갈 때까지 갔다. 호주에 대한 북한의 '행패'는 그야말로 결정타였다. 어떤 국가도 수교국을 향해서 그와 같은 침략위협을 하는 나라는 없다. 호주 총리의 분개와 북한외교관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들을 보며 한마디로 북한은 국제외교가에서 완전히 끝장났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둘째는 미국 측에서 분석하는 것처럼 6자 회담의 당사국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북한의 무력도발 행위를 규탄하고 있으며 군사적 우방국이면서도 눈엣가시와 같았던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올스톱되면서 미국의 對北압박이 한결 탄력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북 지원이 줄어드는 만큼 중국의 대북 지원이 증가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한국 정부의 무비판적인 퍼주기 정책만큼 시도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북한 경제의 파산을 원하지 않는 중국이기에 예상 외의 대규모 원조를 통해서 남방 3각동맹의 대북정책 기조를 뒤흔들 가능성은 분명 상존한다.
하지만 그러한 돌발변수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이 이토록 절실하게 미국과의 협상 제개를 원하고 있다는 것과 韓/中/日/러 등의 6자 회담에서 미국에 비협조적이었던 국가들 혹은 미국과 동조하던 국가들이 안보적 위기라는 최후의 핀치 상황에 몰리게 되자 다시 미국에게 되돌아 왔다는 것이고 미국은 그 동안 비난과 반발 여론 속에서 잠시 망각했을지도 모르는 '유일 패권국'이라는 자신들의 지위를 새삼 깨닫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미국은 '김정일의 미사일 모험'에서 필요한 것을 모두 얻었다.

셋째는 역시 미국 측에서 분석하는 것처럼 '
북한의 대포동 2호가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았다'라는 안도감이다. 미국은 이미 여러 차례 적국에 대한 과대/과소평가로 인해서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한 선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2차 대전에서 독일군의 전력을 과대평가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대규모 작전을 감행하여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였고(물론 가장 성공한 작전이기도 하다.), 태평양전쟁에서는 일본의 광적인 저항에 일본의 실제 국력을 오판하여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사용이라는 멍에를 짊어졌다. 한국전쟁에서는 중공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하였고, 베트남전에서는 베트공의 전략을 과소평가하여 결국 패전에 이르렀으며 오늘날에는 이라크 민병대의 전력에 대한 오판으로 이미 민간전투병을 제외한 현역병만 공식적으로 2500명 이상이 전사하였다.
이번 대포동 2호에 대한 미국의 과대평가로 캘리포니아 지역의 학생들이 대피훈련을 받을 정도로 9.11테러 이후 자국 안보에 대한 노이로제에 걸려 있던 미국은 단 1발일 수도 있는 북한의 대포동 2호의 전력조차도 아직 시험중인 미사일 방어체제(Missile Defense)를 실전 배치할 정도로 열성적인 안보태세 확립에 공을 쏟았다. 그러나 대포동 2호의 실패(혹은 의도된 실패)로 인해서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우려했던 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확신을 갖게 됐고 그로 인한 협상에서의 안보적 우위 확보는 앞으로 미국의 외교협상 또는 군사적 제재에 상당한 탄력을 줄 것이다.

[이라크 전쟁 개전 과정에서 신보수주의 진영의 노선 특성으로 인해 한껏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던 UN에서의 미국의 입지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상당 부분 회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국제분쟁과 안보적 위협에 대한 대응을 결정하는 최종 결정자는 '미국'이라는 현실이 다시 한 번 세계인들의 머릿 속에 각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강경 신보수주의자로 유명한 존 볼튼 UN美대사가 오시마 겐조 日대사, 에미르 존스 페리 英대사와 함께 미사일 사태에 대한 3국의 강경입장을 기자회견을 통해 전하는 장면. Photo : AP]

여튼 이래저래 부시와 미국은 북한의 대포동 2호의 모험으로 얻은 것이 정말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그 동안 상실했던 우방국들의 적극적 협력을 되찾았고, 패권국으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앞으로 미국의 행보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 北의 안보적 위기, 先後관계를 왜곡시키는 진실 호도(
糊塗)
북한은 대포동 2호를 비롯한 스커드 B형/C형을 발사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나서 한국과 일본이 느끼는 안보공백과 불안감은 폭발적으로 증폭된 상태다. 대포동 2호 단 한 발이 캘리포니아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하나 때문에 대피 훈련까지하던 미국과 같은 호들갑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본의 정계와 보통시민들 그리고 한국의 고위 관료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이러한 주변국들의 안보적 위기의식에 대해서 駐제네바 북한대표부 최명남 참사관은 북한의 미사일은 한국을 향한 것이 아니며 미국이 지속적으로 RIMPAC(
Rim of the Pacific Exercise)을지포커스 훈련 등을 통해서 적의(敵義)를 보여왔기 때문에 시도된 일종의 자위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국의 위기감에 대해서는 7발의 미사일 중 단 한 발도 한국을 향한 것이 없으며 자신들의 미사일 자주권과 핵자주권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그들이 말끝마다 붙여넣는 한국이 '민족적 차원'에서 함께 기뻐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이와 같은 북한의 언어도단(북한이 잘 쓰는 용어다.)에 대한 역추적을 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누가 이 동북아를 군사적 긴장과 핵의 공포를 몰고 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RIMPAC의 시작은 1990년이다. 당시 RIMPAC은 1989년 몰타 선언 이후 탈냉전이 도래하면서 유럽에서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군사적 여력이 생긴 미국이 양안문제에 대한 대만의 적극적 지원을 위한 일환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서 시작된 6개국(韓, 美, 日, 英,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연합의 격년제 군사적 훈련이다. 당시 북한의 군사력이라는 것은 주한미군의 존재만으로도 얼마든지 전쟁도발 억지력을 가지는 미약한 존재로 파악되었으며 미국은 북한을 통한 본토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느낀 적이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1993년 북한이 제1차 핵위기를 초래하면서 1991년 12월 31일부터 발효한 남북기본합의서에 근거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자의적으로 파기하였다.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미국이 한국 내부에 '전술급 핵무기'가 배치하어 '공화국'을 압살하려 한다는 요구에 의해서 노태우 대통령 당시 거국적 차원에서 한국이 백번 양보하여 맺은 공동선언문이었다. 그러나 1993년 김일성 주석은 핵도발을 시도하였고 NPT탈퇴선언과 IAEA핵사찰 거부 등으로 통해서 한반도에 극도의 긴장을 초래하였고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공습 직전을 위해 항공모함편대를 전진배치하는 대위기 상황을 초래한다. 다행히 카터 특사의 활약과 김일성 주석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제네바 합의가 원할하게 이루어진 것은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다.

1998년 있었던 금창리 핵시설 의혹사건도 결과적으로는 클린턴 행정부의 북핵에 대한 노이로제가 일으킨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2002년 북한의 제2차 핵위기와 핵무기 보유선언은 1998년 금창리 핵시설 의혹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사실이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2002년 핵개발 의혹과 핵보유 선언 그리고 연이은 핵보유 선언 부정과 핵사찰단 추방 등은 북한을 향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바닥까지 추락시켰다. 특히 북한 측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광명성 1호의 발사와 대포동 1호의 일본측의 동의 없는 무단영공비행에 대해서 어떠한 명쾌한 해명 또는 사과도 없는 특유의 고자세를 유지함으로서 주변국에 대한 안보적 위협을 극대화하면서도 韓美日이 끊임없이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이율배반적으로 자신들이 위협받고 있다는 억지 주장을 부리고 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보다 훨씬 더 원리원칙적이고 명분론적이며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對국가의 관계에서 이미 북한은 잃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잃은 셈이다. RIMPAC이 북한을 겨냥하고 있다고 북한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북한을 겨냥하고 있다면 그것의 책임은 북한 스스로에게 있지 RIMPAC훈련 참가국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안보적 위협의 시작은 북한이었다. 韓美상호방위조약 당사자 양국은 이미 1991년 북한이 원하는대로 한국 내부의 핵무장을 해제하였고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북한임에도 불구하고 대승적 차원에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에 기꺼이 서명해 주었다. 그러나 2년뒤 돌아온 것은 북한의 핵개발 의혹과 1994년 3월 19일 북한 대표단의 박영수가 위협했던 '서울 불바다 발언' 뿐이었다. 이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고 어떠한 반박 논리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더욱더 중요한 것은 韓美北간의 극도의 긴장 상태와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을 풀어준 인물은 역설적이게도 북한이 지금도 미제의 각을 뜨자고 부르짖는 미국인 지미 카터 前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2차 핵위기에서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한창 기세를 올릴 때조차도 北美간의 갈등이 고조될 때도 유일하게 외교적 해결을 주장하며 미국을 설득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었다는 사실과 지금 이 지경에 와서도 '미국'과 '한국'이 외교적 해결은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제 '북한이 느끼고 있다고 주장하는 안보적 위협(인지 김정일 자신의 '체제유지의 위기의식'인지는 북한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은 누가 시작한 것이고 누가 고조시키고 있으며 누가 그런 북한의 안보적 위기의식을 해소시켜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지 자명해졌다. 북한이 선결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는 마카오의 방코델타 아시아에 대한 제재 해제는 북한이 절실히 요구하면 요구할수록  방코델타 아시아가 북한의 비자금 출처였으며 오늘날 최빈국 상태에서도 600억이 넘는 미사일을 쏘아올릴 수 있었던 자금의 원천임을 자백하는 꼴이다. 손바닥으로 자기 눈은 가릴 수 있어도 하늘은 가릴 수 없다.


- 잃었던 현실감각을 되찾을 한국의 對北정책
[2개의 정권에 걸쳐 진행된 햇볕정책의 실질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장면 하나 뿐인지도 모른다.(사실 이 장면 자체가 너무나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그나마도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방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다른 모든 일정들도 제대로 진행된 것이 거의 없다. 결국 햇볕정책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Photo : 동아일보]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해서 한국은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김대중 정권부터 계속되었던 겉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된 접근을 주장하며 기능주의(Functionalism)적 분기(Ramification)를 기대하며 시작했지만 신기능주의(Neo-Functionalim)적 파급(Spill-Over)을 기대하며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동적으로 시작했던 햇볕정책. 단기적으로는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는 듯 했다. 김대중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밝혀져서는 안되는 역사의 무게라면서 몇 조원이 달러화로 송금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졌지만, 그 댓가로 인해 세계를 놀라게 한 역사적인 김대중-김정일 간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졌고 6.15 공동선언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났다.

이에 고무된 탓일까? 한국은 한동안 햇볕정책에 대한 일종의 맹신적 믿음에 휩싸였던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이 퍼주기 정책으로 언젠가는 북한의 저 얼어붙은 껍데기마저 녹여버릴 정도로 뜨거운 햇볕을 쬐어버릴 것이라는 기세로 햇볕정책은 미국 등의 우방국들의 반발도 외면하면서까지 북한에 대한 경협과 원조를 더욱 열성적으로 퍼부었고 한동안은 원조가 보내지는 것이 기사화되지도 않을 정도였다. 우리 국민부터 먹여살려라는 상당수 국민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2차 핵위기가 발발한 상태에서도 정동영 前통일부장관은 200만kw송전 시설까지 떠안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었고 KEDO에 투자된 2조원 이상을 증발시키고도 뒷처리 비용까지 부담하기로 했다. 정말 우리로서는 이렇게까지 비굴해질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열성적으로(?) 북한을 후원했다. 북한이 좋아하는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한국은 처절한 배신을 당했다. 한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차 핵위기는 1차 핵보다 더 높은 수준의 핵능력으로서 되돌아 왔고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온화적 요구였던 미사일 발사 중단 요구는 가볍게 묵살되었다. 더욱더 한국을 분하고 화나게 한 것은 마치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처럼 미사일 발사 이틀 전에 남북장성급회담을 제의하면서 평화를 추구하고 미사일 정국을 스스로 풀려고 애쓰는 척 제스쳐를 취하면서 속으로는 미사일 발사 준비를 했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믿을 수 없다고 말하던 '악의 축' 북한을 믿었고 '폭군'이라 불리던 김정일을 믿었던 한국과 노무현/김대중은 또다시 북한과 김정일의 실체를 현실이란 이름 아래 목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지경까지 이르러서도 노대통령과 한국정부의 노선은 표면화되지 않고 있다. 주변국들의 발빠른 대응과는 사뭇대조적이며 이와 같은 한국정부의 반응은 1) 외교정책 준비과정에서 애초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는 옵션을 준비하지 않았거나, 2) 미사일 발사를 가정하고서 정책을 개발중이었는데 미완성인 상태에서 상황이 발생했을 가능성 그래서 대응책이 준비되지 못한 '불가피한 침묵상태' 마지막으로 3) 정말 지금 노대통령이 말하는 전략적 침묵을 통한 무언가를 획득하려는 의도 3가지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해 볼 때, 아무리 국방부/통일부가 햇볕정책 기조에 젖어서 제 정신을 못차렸다고 하더라도 韓美가 공동으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를 발표하여 북한에 미사일 발사 중지를 권고한 상황에서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본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정부의 상태는 2번 아니면 3번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표 : 조선일보]


이유야 어찌되었던지 간에 북한의 무모하면서도 지극히 도발적인 스커드 미사일/대포동 2호 발사 행위는 국제사회와 UN, 韓美日 남방 3각 구도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의 우방국인 러시아와 지금도 북한을 뒷바라지하고 있는 中에게 마저 배신감과 부담감을 안겨줌으로서 진정으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자초하게된 것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국면의 변화는 한국의 대북정책 기조에도 중대한 변화를 유발할 것이다. (이미 햇볕정책 기조 이후 거의 처음으로 북한의 '시혜적' 대화요구를 한국정부가 거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중국측에 발사계획을 통보했다고 한다. 이것은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前駐韓미국대사)의 방중 과정에 중국측이 전달한 정보로서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현재 6자 회담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韓美日이 중국측에게서 북한의 경거망동을 조정하고 중재할 것이라는 역할 기대를 일정부분 이상 수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북한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국면을 원하지 않았고 중국 또한 북한에 미사일 발사를 자제할 것을 권고한 상황에서 북한이 가장 영향력이 큰 중국의 권고안을 무시하고 도발행위를 감행했다는 것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미흡하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것이다. - 또한 동시에 미사일을 발사한 이후에도 중국측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만약의 경우 공산권에서 자주 사용하는 中北양국이 차후 재개될 5차 6자회담에서 협상력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합의하에서 '화전양면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인가
어찌되었거나 북한은 사실상 최후의 카드인 핵카드 이전에 보일 수 있는 마지막 조커인 미사일 카드를 사용했다. 그리고 북한이 펼친 조커가 韓美日이 우려했던 수준만큼 강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들통이 났다. 러시아측의 미사일전문가는 북한의 ICBM기술을 '초보적인 수준'이라고 폄하했고 美 부시도 북한의 대포동2호의 사정거리에 대한 미국의 추측이 다행히도(?) 빗나갔으며 그 위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했다. 일본측도 대포동 1호의 일본영공비행 공포에서부터 벗어나 미국의 MD와 연계한 자국 이지스함의 방공체계를 강화하여 자국 국토방위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며 자위대의 역할 확대와 궁극적인 '보통국가화' 작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北이 야기하는 안보적 위기를 십분활용하여 국제적 동의를 유도해 내는데 박차를 가할 것이라 예상해볼 수 있다. (결국 일본의 최종목적은 '그것' 아닌가?)

[표 : 한겨레]


중/러는 입장이 매우 난처해졌다. 이미 美日의 북한문제에 대한 안보리 회부 시도를 미사일 발사 시도 이후에도 한 차례 거부했다. 일본의 발의안 초안을 거부하고 재차 배포된 일본의 수정안에서도 중러가 지속적으로 비토를 놓을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전 세계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현재 북한의 위기국면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감싸기는 중러의 국가 이미지에도 적잖은 외교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중국은 독자적인 발의안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중국이 희망하는 '의장성명' 수준의 권고안(어차피 UN은 구속력이 없지만, 결의안은 좀 더 외면하기 힘든 '권고'가 아닌 '촉구'다.)으로 어물쩍 넘어가기에는 일이 너무 커져버린 감이 있고 주변국이 느끼는 북한의 위협도 완전히 베일에 쌓여져 있을 때보다 더 적극적인 모습이다. 국제사회의 요청을 무시하면 패권국인 미국조차도 상당한 외교적 부담을 안기 마련인데 여러가지 인권문제와 민주화 문제와 더불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어 있는 북한의 국제사회의 요구 무시와 수교국인 호주에 대한 군사적 위협 발언 등은 중러가 무작정 감싸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중러는 일본의 수정안 심사에 참여하고 있지도 않다.)

[힐 차관보. Photo : 동아일보]

그러나 무엇보다도 6자 각국들 중에서 가장 시급하게 움직여야 할 국가는 단연 한국이다. 현재와 같은 긴박한 상황에 이르러서도 서주석 청와대통일안보외교수석은 '미사일 발사는 실패했으며 일단은 미사일 능력을 갖춘 발사체로 인식한다'는 수준으로 에둘러 위기 국면을 축소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전 세계에서 북한의 미사일 위기에 가장 둔감한 나라는 한국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국민적인 위기의식은 다소 미약한 듯 싶다. [물론 그러한 둔감함이 각종 경제지표가 안정적인 소폭 변동으로 그치게 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하고 있는 듯해 보여서 일장일단이긴 하다.]

對北정책이 현실감각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한국국민으로서 희망적인 전망이 가능하게된 것은 고무적이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새롭게 제기하고 있는 북한이 제외된 5자회담 구도의 구축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 거리를 두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북한이 제외된 상태에서 아무리 북한이 중국에게 협상권한을 위임하여 변호를 요청한다고 하여도 현재 국면에서는 일방적인 北에 대한 성토작업이 재개될 것이며 그러한 격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강력한 對北제재(압록강-두만강 국경봉쇄, 해상봉쇄, 동해안 항공모함 편대 배치 등과 같은 조치)가 현실화될 수도 있고 그러한 조치들은 한반도에 필요 이상의 긴장을 조성하여 결코 한국에 이롭지 않다.

한반도 내에서의 불필요한 수준의 고강도 긴장상태 유지는 한국의 경제지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정국안정에도 치명적이다. 유사시(북한의 對南무력도발 발생시)에 美日이 한국에 대한 경제적/군사적 지원 혹은 참전을 통한 우군으로서의 역할까지도 있을 수 있음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지만, 그러한 무력도발이 발생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한국의 국가번영과 국민의 안녕에 치명적 결정타가 될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美日의 외교정책 기조에 전체적인 동조을 하면서 3국의 협력체제가 공고함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면서도 북한을 필요 이상으로 압박하지 않고, 1차 제네바 합의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북한에게 최종적으로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이 아닌 '한국'임을 인지시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북한은 여전히 한국을 자신의 밑닦게 정도로 여기며 언제든지 자신들의 '시혜적 조치'에 의해서 원하는 것을 제공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노예 정도로 여기고 있고, 그들의 눈과 귀는 온통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에 쏠려 있다. 韓美日공조의 선은 형편없이 엇갈려 있고 서로 협력해서 이 난국을 풀어가야 할 韓日은 일본의 독도 도발에 또다시 경색 국면이고 韓美관계도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 건국 이래 최악의 상황까지 악화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경색되어 있다.

일은 해야 하는데 같이 일해야 할 사람들의 마음이 3인 3색이라 손발이 맞질 않으니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가 힘들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더이상 이 정부가 '중화찬가'를 부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며 결국 우리가 협력해야 할 국가는 미국이라는 사실은 다시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위기의 순간에 '친구'를 알아보게 된다.
중러는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의 친구가 되지 못한다. 힐 차관보가 6자회담 각국을 순방하면서 한국에 가장 오래 머무는 것은 결국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가장 많은 협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부시행정부의 판단에 근거한 것일 것이다.(아니면 너무나 경색된 韓美관계로 인해서 의견조율을 하기 위한 시간이 그만큼 많이 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우나 고우나 동북아에서는 韓美日 삼각의 협력없이는 3국 서로가 불편하다.


Hedge™, Against All Odds..

Daily News

[네팔 경찰관들이 10일 수도 카트만두에서 갸넨드라 국왕의 하야를 요구하는 한 야당 지지자를 에워싼 채 막대기로 두들겨 패고 있다. 이날로 나흘째 계속되고 있는 야당·학생 주도의 총파업에 경찰은 고무탄·최루탄 등을 사용하며 강경 진앞으로 맞섰다. Photo : AP 연합]

네팔 시위진압대의 모습을 보며 저들이 시위진압대인지, 중세 서양의 판금갑옷을 두른 죽창병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세계 최빈국 리스트에서도 탑랭커 중 하나인 네팔의 원시성과 전근대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아직도 국왕이 주요한 정치적 집권자로서 군림(무늬만 입헌군주제일 뿐이다.)하는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의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런 모습에서 벗어난지 채 20년이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한국은 시위대가 오히려 살인병기(?)로 중무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 이란, 농축우라늄 생산 성공
이라크 전쟁을 빨리 종결 짓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를 조롱이나 하듯이 미국이 이란을 침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 속에서 이란의 망발이 계속되고 있다. 핵주권의 문제, 자위권의 문제 등따위는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국제 사회는 '이란'이라는 국가(라기보다는 거의 神國이라 할만하다. 종교의 노예.)를 신뢰할 수 없으며 이란 스스로가 그들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 아니어도 머지 않은 미래에 이란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시의적절한 대처와 합당한 응징이 가해지리라 믿는다. 누가 이란의 핵과 핵관련 기술이 이란의 안보 확보에 대해서만 사용될 것이라 신뢰할 것인가? 이란은 국제 사회를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신뢰를 북괴의 김정일 왕조와 마찬가지로 바닥까지 상실했다.
하여튼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보면 무진장 깝깝하다.

- 힐 "북 6자회담 복귀 곧 이뤄질 것으로 기대안해"
북한은 현상황에서 자신들이 만족할 만한 회담 결과를 도출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서 제한적인 국제 원조(정확히 말해서 한국의 대북 원조)와 내핍생활에 의지하면서 조지 W.부시의 임기가 종료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미국과 다른 6자 회담의 당사국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일본이야 지금도 주구장창 납북자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6자 회담에서 북한 미사일 문제와 함께 납북자 문제를 엮어서 진전을 보려 시도할 것이다. 중러도 저마다 계획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계획은 무엇인가? 내가 한국인임에도 이 노무현 대갈님 속에서 들어 있는 대북정책의 대강조차 알 수가 없다. 북한 핵은 안되는데, 북한에 대한 압박도 안돼, 한국 국민들도 굶는 판국에 천문학적인 대북 원조는 끊으면 안돼, 북한말고는 갈 데가 없는지 금강산 관광사업도 끊지 말래, 어쩌다가 한 번해본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시시한 것들 몇 개 타협 본 걸로 만족하고 있는 걸까? 북한에서 미사일 발사한 것에 미국/일본은 펄쩍뛰며 놀라는데 정작 북한의 제1주적인 한국과 노무현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평천국이다.

노무현 머릿 속에 대북정책은 어떤 의미이며 북한의 핵무기와 김정일은 어떤의미이며 미국과 6자 회담의 참가국들은 어떤 의미일까? 그저 대북퍼주기 원조로 일관하는 '땡'볕정책의 장애물(?)일 뿐일까?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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