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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무슨 종교교리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삼불(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정책.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개진하지만, 많은 목소리만큼이나 많은 이들이 親한나라당(혹은 親이명박) vs 反한나라당(反 이명박) 구도마냥 정치적인 문제로 문제에 접근한다. 나는 좀 개성적인 보수꼴통(?)에 가까워 내가 노무현을 증오한다고 이명박은 선호한다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불가피하게 이명박에 대한 선호 경향을 노출하고는 있지만, 이명박은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나의 성향을 또라이 진중권이 읊어대던 양비론이라며 양비론은 나쁜 것이라고 빈정거린 적도 있다. 물론 나는 지금까지 나를 양비론이란 것에 담았던 적이 없고, 또 양비론이 왜 나쁜 것인가에 대한 해답도 찾지 못했다.(나의 결론은 양비론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어느 한 쪽의 의견을 가져야 한다는 그의 강박관념을 냉소한다.)
글의 제목에서 나는 나의 의견을 개진했다. 본고사/기여입학제는 양보할 수 있어도 고교등급제는 양보할 수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 현대인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경제적 의미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어진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고 사회가 높은 수준의 안정성을 갖게 된다면, 더 이상 우리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과외 없이는 명문대도 없다는 내가 매우 사랑하는 지인의 말처럼 과외를 한 적이 없는 나는 그리 훌륭한 대학에 진학하지는 못했고, 소위 명문대라는 곳에 진학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각종 사교육을 상당히 오랜 기간 접한 이들이었다. 돈 없이는 신정아스러운 학력뻥튀기도 없다.
이 궤변(?)은 점차 사회학 이론의 하나처럼 고착화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을 완전히 고착화시킬 수 있는 문제점들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에 대해 저항해야 할 일종의 정치사회적 의무가 있다.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대중으로서 개인의 사회적 신분을 고착화시킬 소지가 다분한 제도에 대해서 무비판무저항으로 방관한다면 그것은 공중 혹은 대중이 아니라 군중 혹은 신민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3불 정책의 내용들 중 기여입학제와 고교등급제는 그러한 경제적 능력에 바탕한 사회적 계급의 고착화를 야기할 소지가 다분하다. 당연히 국민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 정책의 부당함에 저항해야 하며 선진국의 논리이며 강자의 논리인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만능주의의 소모적이고 착취적 측면을 깨달아야 한다. 무한경쟁은 무한갈등을 야기하고 정치사회화 수준이 낮은 국민의 국가일수록 그 갈등은 자정작용을 통해 완충되고 보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사회제도가 만들어준 개인의 부가 사회적 부로서 역할 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천민자본주의 마인드에 젖어 있는 한국의 부르주아지들에게 모든 종류의 제도적 날개를 달아주는 것은 '통계적 부'를 추구하기 위해 '사회적 부'를 포기하는 아둔한 짓이다.
그런데 기여입학제는 놔두고서 왜 굳이 '고교등급제'에 대해서만 절대수용불가를 주장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기여입학제는 사실상 부각될 이유가 없는 것이, 우리 사회는 기여입학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수준을 향유하는 부류가 낮은(?) 학력을 가진 채, 사회생활을 지속하는 경우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여입학제를 활용할 수 있을 수준의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자식을 원하는 대학에 보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이들이다. 그게 현실이다. 애초에 기여입학제 찬성 진영에서 말하는 그러한 장점들이 진정 이 나라의 썩어문드러진 대학재단들에 의해 발휘될 수 있는지에 대한 냉정한 감시가 필요하다.1
'고교등급제'는 좀 더 다른 문제다. 사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고교등급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2이지만, 이를 더욱 세분화할 수 있는 고교등급제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다. 고교등급제(좀 지나면 중학교등급제도 나올꺼다.)는 대학 진학 이전에 고교에서부터 교육 수준의 차등을 제도화/고착화 하는 것이며 고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각 고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꿈의 크기를 각자의 학교에 맞게 '조절'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적 형벌'을 내리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 오버하는 주장이 아니다. 과학고/외국어고 학생들이 현장노동자를 목표로 학업에 정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아니, 그런 모습을 상상이나 해본 적이 있는가? 반면에 실업계고 학생들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생각해 보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고교등급제를 통해서 '인문계고'로 뭉뚱그려진 수많은 고등학교들을 학력 순으로 서열을 매겨 경쟁시킨다고 생각해 보라. 우수학생 양성? 그 소수의 우수학생을 양성하기 위해서3 얼마나 많은 절대다수의 다른 학생들에게 사회가 강요한 패배감과 열등감을 강제하여 이 사회의 역동성과 창조성을 짓밟을 텐가? 고교등급제를 주장하려면 고교등급에서 하위등급으로 낙오할 학생들이 상위등급의 학교로 진학할 학생들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고교등급제 사회에서는 지금도 현직교사들의 극단적 개인주의4가 만연하는 가운데에 하위등급의 학교에 다니는 교사들은 직무평점을 높여 더 좋은 조건의 학교로 '승급'하는데에 더욱 집착할 것이며 공교육 정상화니 전인교육이니따위의 애초에도 거의 존재하지 않던 가치들은 아주 흔적조차 사라질 것이다. 개개인의 인생은 확률게임이 아니다. 선량한 개개인의 인생은 견장에 별 몇 개씩 달고 있는 거의 구제불가능한 인간쓰레기들인 전과범들과는 다른 문제다. 전과범들에 대한 포용은 이 사회에 너무나 큰 리스크를 주지만, 선량한 낙오(?)학생들에 대한 포용은 우리 사회와 제도가 자칫 놓칠 수 있는 또다른 창조력을 재발견할 수 있는, 또 재발견되어져야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의 문제다.
이 사회가 만약 낙오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열등할 것이고, 그러한 단순확률게임을 통해서 한 개인과 조직/기업체와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퍼센티지로 분할하고자 한다면, 한국이나 다른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을 맹종하는 국가들은 민주적 의견수렴절차나 보통선거를 통해서 지도자를 선출해야 할 필요가 없다. 국가와 제도와 사회가 절대 다수의 대중들을 열등한 존재로 낙인을 찍었는데, 왜 열등한 존재들에게서 인정 받아 지도자가 되려 하는가? 차라리 국가와 사회와 제도가 선택한 엘리트군집들 사이에서 의원내각제나 입법안 심의마냥 간접선거를 해버리면 된다. 그런 사회는 나와 같은 엘리트중심적 지배체계를 신뢰하는 보수꼴통의 한 사람으로서도 지지할 수도 옹호할 수도 없다.
사적인 이야기이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나를 A급 세공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초중등 시절에는 흔히 말하는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림자 학생이었고, 고교 시절에는 1학년 때 변화한 학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동네의 지인'들과 방황(소위 말하는 어설픈 양아치들)하기도 했었고, 고2때 뒤늦게 공부하는 법을 조금 깨우치는가 싶었으나, 고3때 체육시간에 잘못해서 두 차례에 걸친 입원과 수술을 하면서(고3때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기로 되어서 학교에 한동안 못나온다고 했을 때, 욕하던 그 담인교사 녀석의 짜증내던 모습과 어릴 적 무척이나 가난했던 우리 집안 사정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어머니께 학생인 내가 보는 앞에서 돈봉투를 넙죽 받던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담임교사 녀석은 죽을 때까지 못잊지 못할 것이다.) 대학교도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했다. 대학에 와서도 1학년 때는 여자 만나느라 정신이 없었고 수업시간에는 늘 잠을 잤으며, 시험칠 때는 시험지를 들고 나오며 "난 학고 맞을꺼야!!"를 자랑처럼 외치며 다니던 나였다.(신기하게도 실제로 학사경고를 받은 적은 없다.) 그런 나였으니 학점은 선동렬 방어율 만큼은 아니었지만, 오승환 방어율은 우스울 정도였으니 대충 나의 청소년기(?)가 어땠을지는 그림이 뻔하다. 그나마 긍정적인 측면은 내성적이던 성격이 굉장히 적극적이고 외향적으로 변했다는 점이랄까? 그래도 내가 'C급 원석'이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주변인들의 추천으로 방위산업체에 들어갔다가 악덕사장의 농간에 짜증 지대로 받고 3.5톤 지게차로 공장 벽을 부셔버리고 뛰쳐나온 후, 어렵사리 군문제를 해결한 이후 복학을 앞두고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여자말고 '공부'라는 것에 난생처음 제대로 흥미를 붙이게 되었다. 나 스스로 책을 펴고 싶어하며 뒤늦게 학구열에 불을 붙이니, 소속학과 교수님들 뿐만 아니라, 타 학과 교수님들도 칭찬과 도움을 많이 주시며 난생 처음 공부라는 것으로 관심과 애정을 받으며 C급 원석을 어설프게나마 이만큼 갈고 다듬을 수 있었다.
나는 C급이었다. 그렇다면 B급의 누군가는 A급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A급에 근접한 누군가는 A+급의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난 최충헌의 노비 만적이 아니다. 날 때부터 출발점은 다르지만, 도착점이 모두 똑같지는 않다. 날 때부터 경제적 귀족들은 출발선이 좋으니 좋은 자리에 쉽게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노력과 천부적 재능을 필요로 한다. 그런 그들의 노력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는 제도가 바로 고교평준화 제도다. 조금이라도 더 공정한 조건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고교평준화로 인해 최상위 극소수는 분명 패널티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절대다수의 소시민(?)으로서 그들 엘리트들의 피지배 계층이 되어줄 자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삶과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제도인 것이다.
해외의 사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해외 사례가 그리도 중요했던가? 기업의 제도는 항상 세계1위를 주장하며 선진국의 기준과 제도를 도입해줄 것을 요구하고 노동자들에게 그런 최고의 조건으로 품평을 하면서, 선진국의 노동자들이 누리는 혜택에 대해서는 '현실적 어려움 / 여건의 미숙' 등으로 외면하는게 한국적 가치관이고 한국적 현실이다. 선진국에서 고교평준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나라의 정치사회적 역량이 그러한 것을 시행하지 않고도 노블리스 오블리제5가 구현되는 사회라는 뜻일 뿐이다. 한국사회는 그렇지 못하지 때문에 그러한 제도적 강제가 필요한 것일 뿐이다.
삼불정책이 폐지되지 않아서 조국의 미래가 걱정스러운가? 삼불정책 때문에 국내에서 고급인재를 수급하기가 힘든가? 그런 불평/불만을 토해내기 전에 당신들의 지난날을 '낮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되돌아 보라. 고급인재가 없다고 불평하기 전에 스스로 인재를 평가하는 기준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되새김질 해보라. 우리는 이미 충분히 도약하기 위해 움츠러 들었다. 당신들이 우리가 뛰어오를 공간을 마련해 주면 된다.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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