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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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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만평]

자기가 사인한 총리 인사가 잘못되었다고 자평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무능을 시인하는 꼴이다. 자기가 자기가 임명했거나 DJ, YS등이 임명했던 국방장관들을 수구꼴통으로 매도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출신청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배경이나 마찬가지인 DJ까지 무능한 親美수구꼴통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공개된 자리에서 격분하고 막말을 내뱉는 것은 대통령이 국민을 대하는 수준이 국가의 잠재적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사치의 집에 국민의 호객행위(투표)에 의해서 이끌려온 손님의 호통과 다름없다. 어제까지 친구하자고 매달리던 고건/한화갑이 친구 안해준다고 바로 내치는 것은 세상을 이분법적 흑백논리로서 양분하여 그가 입이 닳도록 주장했던 실용주의 노선을 스스로 거부한 극단적 이상주의에 젖은 아집을 드러낸 것일 뿐이다.

그의 격정과 분노로 몇몇 국민들은 가슴 속의 응어리를 풀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선동과 선전에 몇몇 국민들은 심연의 홀가분한 감동마저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선동적 연설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미국 엉덩이에 숨어서만 살꺼냐고 하던 그가 이라크 파병을 주도했다. 이것 하나만 내밀어도 그의 선동적 연설처럼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논리로 지배되는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은 '실용주의'라는 말에 비정상적인 매력을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조선 말기 실학파들의 근대과학에 대한 접근이 세도가들의 부패와 권력욕에 멍들어 꺾이고 매국노 민비와 무능한 고종황제, 시대를 바로 보긴 했지만 과거에 얽메여 큰 물길을 놓쳐버린 흥선대원군의 갈등 속에서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한민족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실용'을 유난히 강조한다. 그 뿐만 아니라 역대 모든 정권이 실용주의를 어떠한 형태의 변형을 이루어내서라도 강조하고 내세웠다. 진정한 실용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한 실용은 내가 현재 나 자신이 처한 위치와 가진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 내에서 내가 수행할 수 있는 길만을 선택하여 무리하지 않는 것이 실용이다. 실용에는 도박이 없다. 도박적 정책과 무리한 모험수는 실용이 아니라 '만용'이다. 하지만 선동적 파괴력을 지닌 만용이 주는 매력에서 많은 정치인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한나라당의 얼토당토 않은 '반값아파트 주장'도 어쩌면 선전과 선동에 휩쓸려 패배한 참여정부 출범 과정에서 쓰리게 배운 교훈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지 않는다. 빠르게 변화할 수가 없다. 오늘 1인독재세습왕조인 김정일 정권이 내일 갑자기 북미나 유럽 수준의 민주정권이 출범할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의 기득권층은 10년 뒤에도 기득권층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이익에 위해를 가하는 힘에 합리적이고도 합법적으로 가장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때문에 기득권 층인 것이다. 기득권층이 밉다고 극단적으로 그들을 공격하고 붕괴시키려 하면 쓰린 패배감과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국가는 컴퓨터 게임 속의 심시티 국가가 아니다. 세대를 두고서 긴 시간에 걸쳐 교육과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가며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그 변화를 유도해낼 수 있었야 한다. 100년 이 땅의 여성은 남성들의 종속변수일 뿐이었지만, 100년이 지난 오늘날은 서서히 서구 사회처럼 법률적으로 여성상위의 시대가 점차 도래하고 있다. (북미의 경우 남성들이 '위자료 공포'로 인해서 결혼을 꺼리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100년이라는 3세대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시간은 유한하면서도 무한하다. '나'라는 하는 한 개인의 영달에 이끌려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다가 무너진 예시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수도 없이 발견할 수 있다. 역사학이 존재하는 이유도 역사를 통해서 과거를 교훈삼아 미래에 과거의 과오가 반복되지 않기 위함이 아니던가.


나는 기본적으로 노무현의 수 많은 정책들 중에서 이라크 파병, 레바논 파병, 4차 6자 회담 타결 등 몇가지 제한된 사안의 문제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그에게 실망만 얻었다. 특히 '정치꾼'으로서의 그의 막말통치와 정치적 미숙함, 그리고 그것을 결코 인정할 줄 모르는 교만함은 내 분노와 증오심마저 자극시켰으며 나는 그가 지금이라도 당장 박정희처럼 부하에 의해서 암살되길 바랄 정도다.

그러나 정말 앞으로의 시대가 참여정부가 지껄여대던 모습으로 변해가야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옳은 길이라면 참여정부는 그 첫삽을 뜬 시발점이 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대학 시절 주체사상에 젖어 제대로 학문탐구조차 하지 않았던 전문 시위꾼 386출신들에게는 선동과 선전의 능력만 부여되었을 뿐, 그것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시행할 수 있는 행정적 수완과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것에 대한 인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어찌되었거나 그들이 비난하는 보수 세력들은 이 나라를 이 곳까지 이끌어 왔고 그들 보수 세력들이 지은 농사의 콩고물을 받아 먹은 정권 중 하나가 바로 참여 정부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선민의식에 한껏 젖은 386들의 역할은 이제 한국정치사에서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시간이 진실을 말해줄 것이다. 노무현과 그 졸개들이 옳았는지, 아니면 그들이 비난하는 보수꼴통들이 옳았는지는 시간만이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어느 한 쪽에서 완전한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미래는 결코 펼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철칙'이다. 국민 소득 60달러 미만의 미국의 무상원조 없이는 마이너스 성장만 하던 한국이 PPP 1만 4천 달러 이상의 수출 3000억 달러를 기록하는데 60년의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유럽에서 마그나 카르타로 민주주의 의식이 싹트고 그것이 보편화되는데 6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을 불과 2세대만에 이루어낸 것처럼 발전과 진보에 탄력 받은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격정적인 이 갈등과 대립 속에서 새로운 접점을 발견할 것이라 믿는다.

군왕적 통치를 펼친 이승만부터 무능의 극치였던 장면 정부, 전투화 신은 채로 유신개발독재를 밀어붙였던 박정희, 제 측근 관리하느라 바빴던 전두환과 무능했지만 사람은 잘 썼던 노태우, 기분대로 통치했던 김영삼, 꿈에 젖어 살았던 김대중, 성질살려 정치하는 노무현까지 어느 시대에서도 우리는 평온한 적이 없었고 갈등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만큼 발전했다. 나는 참여정부의 막말과 혼란이 증오스럽고 경멸스럽다. 지금 당장 노무현과 그 졸개들이 몰살되어 이 땅의 갈등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들을 향한 내 적개심을 외부로 표출하는 일이 점점 잦아들고 있다.

왜냐하면 이 혼란마저도 우리가 발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며 발전을 향한 내재적 의지라는 생각이 점점 구체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노무현의 막말이 화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저 새키는 권력 유지에 대한 뇌만 있고 다른 뇌는 없는 놈 같다.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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