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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함 / 자유분방함

모짜르트는 그 자유분방함 때문에 나의 이목을 끌었다. 그의 음란하기까지 한 사생활은 어쩌면 내가 꿈꾸는 삶의 이상향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방탕하다고 하는 것은 그와 같은 삶의 유형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와 양아치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방탕하면서도 왕실의 궁정음악가 살리에리와 음악적 대립을 벌일 정도로 할 일을 다 했지만, 양아치는 '골이 비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 명백히 다르다. 모짜르트의 방탕함은 추잡하면서도 추잡하지 않다.

그의 방탕함은 그의 자신감이다. 나는 그의 자유분방함(방탕함)이 탐스럽다. 웃긴 것은 나는 나를 전혀 자유분방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실제로 과거 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나보다 더 자유분방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현재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자유분방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나의 인지와는 다르게 나는 방탕하고 자유분방한 녀석으로 주변에 인식되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의 자유분방한 사람이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다. 글쎄. 그가 자유분방한 사람일까? 청년 시절 힘러의 제3제국 나치 당원 출신으로서 그를 위해 지휘했었고 독일 패망 이후에는 反힘러의 주축이었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에게 추궁당하여 독일에서 추방당하고 나서 베를린 필하모닉 종신지휘자였던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사후(死後), 베를린 필하모닉을 이끌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서 그가 지목되어 베를린 필하모닉 4대 지휘자이자 종신감독으로서 '왕의 귀환'을 하게될 때까지 야인생활을 하였다.

그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나치당원 경력을 추궁받았고 그는 비굴하리만큼 나치당원의 경력을 부정하였다.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자로 복귀하고 나서 누구보다도 역동적인 상업 레코딩 활동에 정력적으로 뛰어 들었고 자신의 전속 스타일리스트/포토그래퍼까지 두어 심지어 자신이 직접 자신의 모습을 담을 각도와 포즈까지 지정하는 등 이미지메이킹에 누구보다 집중하였다.(그가 '게이'였다는 설도 있다.)

이런 그의 모습은 당대 명망 높은 지휘자들이 매우 기피하던 것이었다. LP판을 '깡통'이라고 묘사하던 고전음악계에서 그의 상업활동은 저열한 행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식으로 인식했던지 간에 오늘날 거의 모든 지휘자들은 레코딩 활동을 필수코스로 여기며 레코딩 활동을 거부했던 지휘자들의 지휘조차도 'Historical Recording'이라는 이름으로 제법 고가(?)에 팔리고 있다. 그는 당대 주류의 흐름을 거부하였고 모두가 배격하던 과거에도 굴하지 않고 실력 하나로 금의환향하였다. 그는 모짜르트와 또다른 의미로서 자유분방하였고 그 자유분방함의 책임 있는 자세(?)로 그의 어두운 그늘을 모두 극복해내고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과 함께 라이벌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었다. 그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생전의 일화가 있다.

카라얀이 베를린 시내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었다. 택시 기사는 카라얀에게 목적지를 물었으나 카라얀은 "어디든 상관없소. 모든 이들이 나를 원하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냥 단순히 카라얀이 생전에 지휘한 모짜르트의 마지막 미완의 작품인 Requiem을 연주한 베를린 필의 곡을 걸어 놓으려다가 생각난 김에 즉석으로 말을 짜맞춰 봤다. 카라얀에 대해서는 내가 제대로 시작한 첫 블로그였던 '온블록'보다도 이전에 쓰던 '네이트 블로그'에서 우연히 내가 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 대한 상당히 장문의 글을 발견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카라얀에 대한 지식이 그 블로그에 썼던 A4지 5~6장은 족히 될만한 글이 될까 싶은데, 아마도 그 글을 쓸 때는 그것을 쓰기 위해서 따로 카라얀에 활동에 대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자세한 이야기까지 쓸 수 있었을까.

Dies Irae / Rex Tremendae
Herbert Von Karajan(Wolfgang Amadeus Mozart : Requiem)


P.S. : 2~3달쯤 전에 샀던 모짜르트의 오페라 DVD전집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그냥 귀로만 듣는게 좋을 듯 하다. (플레이어에 2곡을 걸었는데, 왜 두번째 곡은 재생되지 않는지.)


Hedge™, Against All Odds..

가까이 가기엔 너무 비싼(?) 당신.

[주접떨기]

오늘 원래 Orbital의 음반을 구입하러 매장에 나갔었는데, 매장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면서 조금 애먹어서(비오는 날 왠 차가 이렇게 많이 나왔어-!) 두뇌의 지식 축적을 위한 용적이 좁은 내 단세포적 두뇌는 모든 목표와 기억을
Format C: 해버렸다. 이래서 머리 나쁜 녀석은 평생 몸이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인가 보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그릴 만한 풍경을 집 앞 학교 공사장 때문에 빼앗겨 정신세계가 황폐해져 버린 나는 어젯밤부터 계속된 두통과 몸살, 오한 기운을 해결하기 위해서 약국에서 약을 무려 5천원(!)이나 주고 1회분 치료용 마약(?)을 먹었다. 언젠가 교수님께서 강의 시간에 농담처럼 뼈있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막강한 이익집단인 의사회가 전 세계 정치권에 비치는 영향은  우리 생각 이상으로 막강하다. 전 세계에 있는 의사회 놈들을 해체시켜야 돼!" -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민생을 위한다던 의약분업의 결과가 증명해 주잖아? 놈들은 절대 먼저 나서서 자신들의 치부를 치료하려 들지 않지. 의사이면서도 자신의 환부는 안고치려고 하니 부끄러운 줄 모르나봐.


여튼.. 오늘 매장에서 음반을 고르다가 발견한 녀석.

[폰카로 이런 것도 찍고 다니고.. 좋긴 좋구나. 디카는 크고 무거워서 안들고 다니는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하고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한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풀셋이다. 일전에 각고의 노력(?)으로 이 앨범의 게오르그 솔티 지휘 버전으로 풀셋을 구했었는데, 내가 멍청하게도 WinRAR로 풀다가 독일어로 되어 있는 부분을 WinRAR이 압축해제하지 못했는데 그냥 파일을 지워버려서 앨범마다 몇 곡씩 잘려나갔길래 그냥 통째로 다 지워 버렸던 적이 있다.

올해였던가? 내 기억이 맞다면 올해 발레리 키르기예프가 내한해서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완주하고 떠났다. R석 공연참관비가 100만원대를 넘어서 사치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기사를 보고 이 앨범을 들어 보고 싶어서 파일을 구했었으니까..

사실 7월 들어와서 음반 구입에 쓴 비용을 합치면 저 앨범 가격보다 더 많이 썼다. 그런데 그걸 내가 가진 여러 개의 앨범들을 포기하고 저 하나의 앨범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왠지 모를 거부감과 함께 구매 의욕이 확 꺾인다. 특정 가격대를 넘어서게 되면 아무리 패키지가 실하더라도 일시불의 부담 때문에 총액구매가 일시불 구매보다 더 많다고 하더라도 왠지 모르게 구매를 망설이고 꺼릴 수 밖에 없다. 일종의 소비심리가 아닌가. 한판에 판돈을 수백에서 수천만원씩 건다는 강원랜드 VIP룸의 건달들도 한 방에 크게 잃고나면 흥분해서 행패를 부린다는데..


언젠가 아무 생각없이 저런걸 껌 사듯이 부담없이 들고 나올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안올까?;;)

[오늘 매장에서 그라모폰誌 과월호-6월호-를 하나 얻어왔다. 그라모폰지가 국내에서 나오는지도 몰랐고, 또 매장에 각종 음반들과 함께 예쁘게 딱 1권 진열되어 있던 이 책자를 그냥 주는건지도 몰랐다. 그냥 슬쩍 들고 와서 "이거 가져가도 됩니까?"라고 물으니까 "가져가세요."라고 하더군. - -;;.. 1년 정기구독에 42000원이었다.]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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