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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 이후의 동북아를 둘러싼 정세 변화

한국의 추석 연휴가 끝난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자신들의 과실을 끝까지 감싸주던 맹방이었던 러시아와 중국의 만류와 전 세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무차별적 지하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세계평화와 동북아 국제질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됨으로서 한반도의 군사적 안보와 평화정착을 위한 한국과 동북아 각국의 노력에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특히 이번에 실시된 핵실험은 과거 80년대 북한의 100여 차례에 걸쳐 실험했던 고폭실험(Experimental High-Explosive Detonations)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핵무기로서 그 핵무기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증명하기 위한 핵실험이 핵무기가 한 번도 실제로 사용된 적이 없는 공격적으로 실시되었고 이를 북한국영방송이 대내외에 발표함으로서 그 문제의 심각함은 극에 달했다 할 것이다.

'핵시험 성공적 진행'-조선중앙통신(전문 열기)



- 늑대를 살찌운 꼴이 된 '햇볕정책/포용정책'의 실패
아무리 다른 말을 둘러서 표현해도 햇볕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햇볕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북한의 군자금을 대는 꼴'이라는 비난에도 꿋꿋이 그 정책을 차기 정권에까지 연계시킨 김대중 前대통령은 이와 같은 현재 상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역사적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바로 핵실험이 있기 전날, 한국에 있는 누구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인간적으로 잘 안다'고 자부하던 김대중 前대통령은 "북한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北美 간의 대화재개"를 주문했었다.

韓, 美, 日, EU등이 전폭적으로 양보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던 1994년의 제1차 제네바 핵협정을 1998년 금창리 핵시설 의혹사건과 2002년 캘리 美특사의 방북 당시 고농축우라늄 축적과 핵무기 보유를 시인하며 자의적으로 파기했던 그들답게 6자 회담을 통한 北美대화재개에 의욕을 보였던 미국 측의 입장을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한 그들에게 또다시 퍼주기식 외교를 주문한 김대중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매몰차게 무안을 주고 말았다.
북한은 한국의 對北포용정책과 제네바핵협정에 따른 미국의 중유 50만톤 지원, 韓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컨소시엄 형태로 북한에 경수로형 원자로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던 KEDO(Kore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와 8년간의 서방의 북한의 자생력 고양과 인도주의적 지원을 발판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이 아닌 기존의 플루토늄 추출 방식의 핵무기 개발 시도보다 훨씬 더 고난이도의 기술과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 '고농축 우라늄'(HEU : High Enriched Uranium, 우라늄 235가 90%이상인 물질로 군사용으로만 사용된다.) 추출 기술을 축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한국과 서방의 배신감과 불신으로 인한 각종 對北제재에 대해 북한은 '공화국 압살책동'이라는 억지논리를 펼치며 점점 더 자신들의 핵무기 제조와 핵실험, 미사일 개발 등을 합리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보복전쟁(그전에는 나도 침공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단순히 침공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고 판단되어 '보복전쟁'으로 변경했다.)으로 북한이 21C초반부터 계속 불미스러운 움직임을 노출하여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미국에게 북한이 먼저 핵포기와 北美불가침조약 체결을 맞바꾸자고 제의하기도 했었으나 미국에 대한 국제 사회의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하자 다시 기존의 '벼랑끝외교(Brinkmanship Policy, 순전히 북한의 외교행태에 의해서 새로 만들어진 용어다.)'를 고수함으로서 한반도 평화의 구축과 공고화를 저해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 거듭되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과 부정 혹은 모호한 입장 표명 등으로 불필요한 동북아 정세의 긴장 상태를 조장하였고 2006년 7월 5일 6발의 미사일을 자의적으로 공해상에 발사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한글날이자 김정일의 권력승계일과 북한노동당 창당기념일 사이의 하루의 공백일에 한반도 역사상 첫 핵실험이라는 희대의 비극을 저질렀다.


- 국제사회의 발빠른 움직임과 대응 그리고 명백한 한계
북한의 도발적 핵실험에 당면한 세계 각국은 비교적 신속한 움직임을 보였다. 북한 핵실험 확인 당시 새벽녁이었던 미국 측은 사태 발생 4시간 여만에 공식 대변인 논평이 나왔고, 中日도 비슷한 시점에서 공식/비공식 논평을 쏟아냈다. 2개의 정권에 걸쳐 '북한을 자극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로 북한에 대해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한국 정부도 이례적으로 윤태영 대변인을 통해서 북한을 원론적으로 비난하면서 모든 사태의 책임이 북한에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UN차원에서도 즉각적인 비난성명과 함께 경제적/군사적 제재조치를 포함한 '유엔헌장 7장'을 언급하며 북한에 대한 전면적 제재조치가 가동될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타진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그 어느 국가도 북한의 행위를 비호하는 국가나 국제기구는 없다.

현재 북한은 스스로가 자초한 수많은 실책과 기만행위, 무력도발, 국제법 무시 등을 통해서 그 어떤 지지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완전무결한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 지위는 북한 스스로 획득(?)한 것이다. 그 동안 그들이 저지른 많은 행위들은 지금까지 있었고 또 앞으로 있을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대한 명분을 제공하였고 자신들이 제공 받은 국제원조의 명분을 상실케 하였다. 이제 세계는 모두가 하나되어 북한의 이와 같은 무력도발 행위를 분쇄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뜻을 뭉쳤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청와대 대변인 발표 전문 열기]


하지만 정작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 조치를 통한 핵포기를 이끌어 내려고 하니, 현실적으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제재의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 언급된 수많은 군사/금융/무역제재 조치가 이미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와 북한의 국제정치적 지위를 고려해 볼 때, 특출나게 효과를 발휘할 만한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여러 실증적 사례를 통해서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가 세계화와 상호의존을 통해서 자국의 부를 축적하고 확장하는 21C에서도 '자력갱생, 강성대국'(그러면서도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인도적 차원'이라는 미명 하에 원조는 끝없이 제공 받고 있었다.)을 부르짖는 저 처량한 세계 최빈국의 유일무이한 강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는 가장 강력한 對北제재 조치를 발동할 수 있고 발동해야 하는 동기를 부여 받은 미국 내부에서조차도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국제 사회의 고민거리는 핵실험 3일이 지난 현시점까지도 뚜렷한 북한에 대한 추가적 제재조치가 결정된 것이 없다는데서 증명되고 있다. (1950년 6월 북한이 한국을 남침했을 당시, 국제 사회가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하는데 딱 3일이 걸렸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그 동안 무작정 북한을 비호하던 韓, 中, 러시아가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지속하는데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한 일정 수준이나마 북한에 대한 제재 효과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 적(敵) 앞에서 분열하는 국내정세와 우방국들의 관계
우리가 직면한 더 큰 문제는 북한의 핵실험 실시 초기에 있었던 관련국들의 심리적 연대의식이 점점 희미해져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중/러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핵보유국이자 NPT체제의 주도 국가인 '러시아'는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도 불구하고 10월 11일 북한으로 곡물 12800톤을 실은 수송선을 출항시켰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기존에 있던 'UN의 대북식량지원 프로그램'에 의거한 지원이라고 변명했지만, 결코 시의적절한 행동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감싸안음으로서 탈냉전 이후 상실한 동북아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재고하고 앞으로 재추진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6자 회담 형태의 다자간 회의에서 지난날 중국에게 빼앗겼던 주도권을 재고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근거로 일정 수준 이상 회복하고 싶은 그들의 의지가 담긴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물론 러시아 측은 이러한 해석을 부정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 이후, 유례없이 강한 어조로 북한을 비난한 중국에서도 비난 성명 이후의 입장이 애매모호하다.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對北제재에 대해서도 초기의 과단성을 상실해가는 인상을 주고 있고, 기존의 對北지원의 감축 혹은 중단에 대해서도 선린우호관계와 북한 인민의 생활 개선 측면을 내세워 중단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내세웠다. (최근 있었던 對北송유관 원유공급 중단에 대한 입장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가장 중대한 국가안보적 위협을 당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은 더욱 극적이다. 초기 윤태영 대변인과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책임론'은 온데간데 없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한 핵심인 김대중 前대통령은 "햇볕정책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해괴한 이론"이라며 오히려 역성을 내고 있고 정부와 여당의 중책들은 하나둘씩 미국책임론을 거론하는 적반하장의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의 머릿 속에서는 김영삼 정권 시절 빌 클린턴 행정부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그야말로 북한이 해달라는 것을 다 들어주고 나서 약속 받았던 단 하나의 반대급부인 '핵프로그램의 포기'를 스스로 파기하고 자의적으로 NPT와 IAEA에서 탈퇴하고 KEDO와 주변국의 물질적 후원을 받은 '유예기간'동안 HEU기술을 축적한 그들의 배신과 기만행위를 망각해 버린 듯 하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북한을 비호하려 드는 중/러에 발맞춰서 함께 연대하고 문제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韓美日이 모두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우방국 간의 분열이라는 원초적인 문제도 점점 표면화, 구체화되고 있다. '그래도 군사적 제재는 불가하다'는 상황판단을 하고 있는 미국과 '필요하다면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는 일본, 여기에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평화통일의 환상에 젖어 있는 한국까지 3인 3색의 엇박자 속에서 상호공조의 여지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 현실에 대한 오판
여기에 한국 정부의 현실오판(?)이 한꺼풀 더 겹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후견인인 중국의 반대의견을 묵살하고 무력도발을 강행한 바 있다. 지난 7월의 미사일 발사가 대표적이며 이번 핵실험 강행은 핵실험을 강행하기 불과 1일 전인 10월 8일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공식적인 만류요청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10월 9일 기꺼이 그들의 계획대로 무력도발을 감행했다. 현실적으로 중국이 이제는 더 이상 북한에 대한 정치적/군사적 통제력을 가졌다고 여기며 믿고 따르기에 힘든 국제상황이 표면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10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중국을 실무방문(Working Visit)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핵실험 직전에도 중국 후주석과 긴급히 전화통화를 했었던 그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과감히 이 길이 아님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한국 정부는 인정하지 못하는 듯하다.

분명 중국은 아직까지 최소한의 수준이나마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기 불과 20분전이나마 가장 먼저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핵실험을 사전공지한 유일한 국가가 중국이었고, 이 소식을 중국이 韓美日에 통보해야만 했던 점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완전한 고립무원을 자초하고 있는 북한이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중국만은.."이라는 미련을 버리지는 않은 듯해 보인다. 진정 북한이 중국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히던 "모든 국가가 적이다."라는 말처럼 더 이상 자신들의 맹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20분 전이나마 중국에게 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어느 정도 노무현 대통령과 현 정부의 중국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치명적 위기 상황에까지 치달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의지하던(?) 중국이 우리의 이와 같은 위기상황을 해결하는데 효과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면 이제는 다른 카드를 과감히 뽑아들어야 한다고 본다. 중국은 더 이상 북한체제를 컨트롤하기 위한 효과적인 카드가 되지 못한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통치체제가 김정일의 유일적 정책선택 권한이 보장되어 있는가에 대한 반문을 해봐야 하는 시점에서 몇 번이나 실패한 중국 한 국가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은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카드를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다. (정부여당의 '미국책임론'과 같은 도발 발언과 그에 대한 버시바우 駐韓美대사의 유감표명은 우리가 가진 옵션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살행위의 일종인 것이다.)

협상에는 히든카드가 있어야 하고 대안적인 방법이 존재해야 한다. 상대가 미쳐 알지 못하는 우리의 선택 사항이 필요하고 첫번째 협상에서 실패하더라도 두번째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역대 어느 정권 시절보다도 뻑뻑해진 韓美관계의 오랜 협력관계를 감안할 때, 미국만큼은 한국이 언제든지 되돌아서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 방법으로 남겨두어야 함에도 이 정권은 현실을 지나치게 낙관하며 오판을 거듭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중국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의 등을 칠 수 있는 국가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노정부와 정부여당의 근시안적이고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 북한 핵실험 사태의 미래
앞으로의 전개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란 사실상 北美中이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정하든 하지 않든 북핵 위기에서 한국은 가장 치명적인 당사자이면서도 가장 무능력한 행위자로서 그 존재감을 거의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대북 지원에서 '돈폭탄'을 기꺼이 떠안아 국민여론의 맹폭 속에서 노정권과 정부여당이 햇볕정책의 고수를 운운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사태 해결을 위한 최종적인 칼자루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때문에 북한이 가장 중요한 행위자다. 북한은 이미 2차 핵실험을 예고해 두고 있고 국제연합의 제재조치는 이와 같은 북한의 2차 핵실험을 염두해둔 낮은 수준의 제재조치(PSI와 금융제재조치가 상당부분 초안에 비해 완화되어 있다.)를 결의안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확실해졌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는 초안대로 제재를 할 경우, 2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의 북한에 대한 징벌적 제재조치가 군사적 압박으로 직접 연결될 수 밖에 없는 초고강도 조치이기 때문에 좀 더 국제여론이 받는 충격파를 완화하고 미국의 對北제재가 좀 더 높은 당위성과 국제여론의 후원을 받기 위한 사전 포섭의 하나로서 이해된다. UN의 현재 제재조치를 북한이 '공화국 압살책동'이자 '선전포고'로 받아 들이든지 말든지 이미 북한은 전 세계가 공인한 악의 축(Axis of Evil)이며 '핵비확산'이라는 절대善을 부정하는 존재로 낙인 찍혔다. 그들이 예고한 2차 핵실험은 이러한 국제여론을 더욱 공고화할 것이며 북한을 오늘의 고립보다도 더 심각한 수준의 초고강도 고립 상황을 야기할 것이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제2, 제3의 핵실험을 감행하고 최악의 경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보유국을 인정하기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는 대승적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잠재적 후견인'의 지위를 포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의 핵무장은 북한을 핵심 주적 중 하나(일본 국방백서의 제1주적은 러시아이지만, 현실적인 제1주적은 '북한'이라는 점을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로서 규정한 일본의 핵무장을 초래할 것이 확실하다. 또한 실질적으로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으로 인해 세계에서 징병제를 실시하는 단 3개국만 중 하나인  한국의 핵무장 혹은 1992년 1월 1일 발효된 '한반도비핵화선언' 이후 철수된 미국의 전술급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를 통한 직접적 핵우산 정책이 재개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은 대륙으로부터 지속적이며 공식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독립국으로서의 대만'을 추구하는 대만 첸총통으로 하여금 미국의 핵무장 저지 명분을 약화시키며 이를 통한 미국의 對中협상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이런 '핵도미노 현상' 발생은 중국의 동북아에서의 지역적 패권 확보에 결코 우호적 환경이 아니다. 중국은 '북한이라는 밑 빠진 독'과 '핵무장한 동북아' 사이에서 최종적으로 선택을 요구받을 것이며 중국의 선택은 반드시 후자에 치우치게 될 것이다.


북한 최고 고위층과 최고급 정보에 가장 정통한 인물 중 하나로서 한국에 귀순한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 중 한 명이자 김일성/김정일 父子를 있게한 '주체사상'의 창시자 황장엽은 민주주의 이념정치철학연구회 주최로 열린 강좌에서 북한은 1993년 1차 핵위기 당시 이미 지하핵실험 준비를 완료했었음을 밝힌 바 있다. 동시에 무능무지(無能無知)의 이종석의 통일부 졸개들은 노 정권의 햇볕정책 옹호 분위기에 호응하며 자신들이 무능하여 핵실험 사태를 초래했을 뿐이라며 자신들의 노선을 옹호하고 나섰다.

1994년 제네바핵협정을 맺을 당시 韓美가 선택한 북한 핵위기의 해결방안은 지금 그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北美양자 간의 대화를 통한 회담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한국은 지금처럼 북한으로부터 협상의 당사국으로서 인정받지 못하여 미국하고만 대화하려는 북한의 의지에 따라 미국을 통한 대리협상을 벌여야 하는 수모를 당했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치욕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북핵 해결방안으로서의 요구사항들은 '우리민족끼리'를 주구장창 노래 부르던 그들이 최후의 순간까지도 자신들의 민족이라는 '한국'을 배제하고 오직 미제국주의자들과만 대화하겠다는 의지의 재천명인 것이다. 그것마저도 한국은 감정적 치우침에 젖어 北美양자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감정에 치우친 한국 스스로의 역할 포기는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맺어진 한국전쟁정전협정에서 이승만 前대통령이 감정적으로 협정 조인을 거부한 탓에 지금까지도 북괴로 하여금 한국전쟁 당사자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감성이 아닌 이성에 눈을 뜰 때다. 더 이상은 절대 안된다. 눈 앞의 적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은 같은 민족이기 이전에 우리의 제1 적성국이다.


P.S. : 10월 9일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개인 생활이 있어서 여기저기 좀 쫓기다 보니 글의 정보가 일관성을 약간 잃었다는 느낌이 든다. 어차피 북한 핵실험의 후폭풍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고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두고두고 질겅질겅 씹을 자일리톨 껌과 같은 존재다. 오늘 이 글에서 미숙하고 불충분한 의견피력은 이후에 조금씩 보완되고 수정될 것이기에 한 번의 퇴고도 거치지 않은 채 그냥 이대로 글을 내 블로그라는 배 위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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