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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6자 회담은 대세 굳히기인가, 사태 해결의 노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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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관 北대표 Photo : 뉴시스]

다자간 회담을 통한 북한 핵문제의 전향적 해결은 앞으로 韓美日 3국이 中, 러시아와 함께 해결해야 할 전 세계적인 핵확산 방지와 비이성적 집단의 무자비하고 비합리적인 핵테러리즘으로부터 전 세계 각국이 직면한 심대한 국가안보와 연관된 중대한 과제다. 다자간 회담의 틀이 지속되어져야 하는 이유는 北美 양자회담(이 자리에서 한국은 북한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당사국 회담에서 배제되었음을 유념하라.)으로서 타결된 제1차 핵위기에서의 북한의 도발적 협정위반행위에 대해서 회담의 당사국인 미국이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中日러시아 등의 동북아 유력 국가이자 세계적 강대국들의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협력과 역할 분담을 이루어내지 못했던 사례에 비추어 한 차원 더 높은 강제력과 협정이행의 의무를 배가시키기 위함이다.

또한 다자간 회담이 고수되어야 하는 까닭은 또다시 한반도의 비도덕적인 핵테러리즘과 군사적 긴장상태 조장, 비이성적 집단인 북한의 불합리한 핵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의 안보를 패권국 혹은 지역적 패권국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여 억지력 있으면서도 효과적인 핵확산 방지라는 궁극적 목표 달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다시 북한의 벼랑끝 외교와 위협전술에 휘말려 北美양자회담을 요구하는 북괴 김정일의 술수에 휘말리게 된다면, 한국은 자국의 안보 공고화와 KEDO(Kore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의 경수로 지원사업에서 있었던 경제적 책임분배에 있어서 수동적이고 피동적 입장에서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지 못한 채, 발표된 결과에 의해서 타의에 의한 역할 수행을 강요받게 되었던 것과 같은 불합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국내적/국제적으로 앞으로 언젠가 발효하게 될 제2차 북핵협정 내용에 대한 북한의 국제사회에 대한 예의 있고 책임 있는 이행과 전 세계적인 핵확산 방지 구상에 대한 조기 복귀, 더불어 한국의 국익 수호와 동북아와 세계적인 핵테러리즘과 핵확산 방지, 궁극적으로 우리 '국민'('민족'이 아니다.)의 미래에 우리가 직접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역할 수행을 위해서라도 다자간 회담의 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北美양자회담은 결단코 불가(不可)하다. 그런 의미에서 6자 회담은 현단계에서 한반도의 안보적 위기에 당사자인 한국과 나머지 북한의 핵보유에 반대하는 주변 4강을 비롯한 전 세계 NPT가입국들의 염원을 가장 실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국제회담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정확한 흉계(?)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요구 사항에 포함되어 있는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BDA)의 금융계좌 동결 문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BDA가 김정일 정권의 중요한 자금줄임에는 명확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싶다. BDA는 금융계좌동결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북한이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던 사안이었으며 미국은 이에 대해 북한의 불법적 달러위조 혐의를 들이대며 돈세탁의 시발점이라고 여긴 BDA 동결로서 자국 화폐의 위조하는 국제범죄조직으로 변질된 북한의 돈줄을 막았다. 이에 대해 북한은 끊임없이 6자 회담의 복귀와 북핵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계좌동결해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그러한 북한의 주장들은 결코 주변국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북한이 협상진전을 위한 성의있는 제안을 하지 않을 경우 BDA는 미국의 중요한 '인질'로서 남을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문제도 여전히 뚜렷한 파악이 힘들다. 북한이 진정으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요구할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요구없이도 6자 회담을 장기간 지속시킴으로서 자연히 '핵보유국의 지위'를 획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제 있었던 北中간의 예비회담에서 중국은 "북한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요구하지 않았다"라고 전언했지만, 북한이 손바닥 뒤집듯 국제협약을 무시하여 1994년 제네바 핵협정을 일방파기했으며 IAEA핵사찰단의 추방과 의혹시설에 대한 접근 제한, 일방전 NPT탈퇴, 위협성 탄도 미사일 발사와 궁극적으로 한반도 내에서의 핵실험이라는 최악의 '파멸적 범죄행위'를 자행해온 '불량국가'임을 감안할 때, 자신들이 상국(上國)으로 모시는 중국에게 표명한 북한의 입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에 대한 증거로서 오늘 새로이 발표된 북한의 무모하기까지 한 '핵군축회담 요구'는 북한이 새로이 개최되는 6자 회담 5차 2단계 회담에 대한 진척 의지를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6자 회담을 통해서 핵문제를 타결할 의지가 있을 수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또다시 자신들의 핵무기 보유선언으로 중단되었던 경수로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북한에 대한 경수로 지원은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 스위스 제네바에서 합의한 제네바 핵협정에서 컨소시엄 형태로 對北핵개발 지원(에너지 자원으로서의 핵)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을 지연시킨 것은 북한의 금창리 핵시설 의혹에서 투명한 시설 접근을 허용하지 않은 채 1년 이상 시간을 끌면서 공사기한을 늦췄고, 2002년 캘리 특사의 파견에서 공식적으로 HEU(High Enriched Uranium)핵무기 보유 사실을 밝힘으로서 북한의 핵개발 중단을 댓가로 제공키로 했던 모든 지원이 무용지물임을 입증시켰다. 결국 KEDO와 제네바핵협정의 궁극적 목표인 '북한의 핵무장 억지'라는 목적 달성에 실패함으로서 미국은 경수로 완공시까지 지원하기로 했던 대체 에너지로서 북한이 요구했던 연간 50만톤의 對北중유공급을 중단하였고 한국과 KEDO에 참가한 美, 日, EU 등의 참가국들은 KEDO를 통한 對北지원을 거부하였다. 북한 스스로의 허물로 인해 파괴된 국제적인 對北지원의 손길을 다시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들을다시 얻어내기 위한 보상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선험적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보상안의 최대치는 당연히 핵개발 포기까지 볼 수도 있다고 확신한다. 북한이 4차 6자회담에서 요구하여 삽입한 '9.19공동성명'의 에너지 관련 조항에도 이것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지 않할지에 대해서 명확히 할 수는 없지만, 북한이 6자 회담을 통한 국제 사회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것은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러한 정황적 사실 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1989년 몰타 선언으로 냉전이 종식되고 1990년 韓러수교, 1992년 韓中수교를 통해 여전히 냉전적 분단 상황 고착화를 통한 대내적 정권 유지에 열을 올리는 북한은 더 이상 정치/군사적 의미의 맹방이 사라졌고, 1990년대 초반 북한의 최악의 식량난으로 200만명 이상이 아사한 것으로 추산되는 국가존망의 위기 속에서도 북한이 인민을 강력히 통제하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공포정치로서 국난을 유야무야 넘겼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과 러시아는 심정적으로/경제적으로 북한을 지원하며 자신들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확보에 매진하고 있는 점, 북한이 오랜 시간동안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으며 어떠한 형태의 내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가장 궁극적으로 북한이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北美양자회담의 협상 당사국인 미국이 이라크 사태로 인한 국내적/국외적 역량이 심각하게 쇠락하고 손상되어 정상적인 외교 역량을 본국에서 최우선시 하고 있는 이라크 사태를 좌시하고서 북핵 해결에 매달릴 수 있겠는가 하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불어 남방삼각동맹의 나머지 당사국인 韓日양국 모두 집권 세력이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여 북핵 문제에 대한 다자간 회담에 임하는 자세가 현상 해결에 집착하기보다 자국의 집권정치세력의 정치적 위기를 타계하기 위한 수단적 도구로 전락해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다자간 회담을 통한 북핵 사태 해결 노력이 재개되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 회담에 임하는 협상 당사국들의 입장이 1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점이 이번 협상의 또다른 최대 걸림돌이 아닐까 싶다. 새로이 재개되는, 아니 사실상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실시라는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새로이 '시작되는' 이번 협상은 이전보다 훨씬 더 단호하고 냉철한 입장을 견지한 채 협상에 임해야 한다. 상대는 초라한 무력으로서 더 강한 무력을 가진 자들의 아량과 양보를 요구하는 '폭압적 정권'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폭압적 정권의 생명연장에 도움을 주는 일체의 무조건적인 원조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적 협상 테이블의 기본원칙인 Give & Take를 철저히 지켜 북한이 미국과 다자간 협상 당사국들을 길들이는 지금까지의 형국이 아닌, 협상 테이블의 다자가 북한이라는 폭군을 다스리고 길들이는 형국으로 대동단결하여 문제를 '가장 평화적이고 완전하며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해결방법'으로 마무리 지어져야 한다. 문제는 다자간 회담에서 그러한 일치단결된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한 점이 군부치하의 파벌적 일인독재세습왕조인 북한이 민주정권인 韓美日의 다수를 상대하면서도 보다 유리한 점이다.


Hedge™, Against All Odds..

오늘의 기사 : 베트남 정치범 석방, 현대차 노조 파업

- 현대차 노조 파업
한국의 노조들(특히 민주노총)은 그 존재가치를 상실했다. 한국의 노조들은 이익집단으로서의 그 천한 속성에 충실하게 정규직 근로자인 자신들의 이익에 대해서만 충실하며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무자비/무차별적 폭력을 대의와 정의구현이라는 미명으로 정당화한다. 한국의 노조는 타협적이기보다 투쟁적이며 평화적이기보다 폭력적이며 합법적이기보다 불법적이다. 이 3가지만 해도 한국의 노조는 그 존재할 가치가 없다. 파업을 연례행사쯤으로 여기는 인간쓰레기 현대차 노조원들의 無사고에서 비롯된 파업에 고통 받는 수십만 울산 시민들과 저 쓰레기들의 쇠파이프질을 TV에서 원치 않게 보아야만 하는 우리 국민들, 그리고 저들의 파업에 어떠한 유무형의 피해를 입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현대차 노조와 민주노총 지도부는 자신들의 인간쓰레기로서의 범죄적 행위들을 인정하고 자폭하는 심정으로 무릎 꿇고 석고대죄해야 할 것이다.


- 베트남 '정치범' 자유를 찾다

[Photo : 조선일보]

우엔 후 창(58)이 한국 법원의 선처로 인해 베트남과의 범죄인 인도조약에도 불구하고 석방되었다. 정치범에 대한 조치에서 사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의견교환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이며 한국 정부는 우엔 후 창을 석방하여도 베트남과의 관계 유지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거나, 우엔 후 창을 석방함으로서 얻는 반사이익이 우엔 후 창을 베트남에 인도함으로서 얻는 이익보다 더 크다고 판단한 것 같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한국과 베트남과의 관계에서 한국은 강대국의 입장이고 한국은 투자국이지 투자수용국의 입장이 아니다. 한국은 선택을 할 수 있지만 베트남은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상대적 강자의 입장에서 한국은 베트남과의 우호돈독보다 국제 사회에서의 위신재고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떠한 정치적 계산을 하였고 어떠한 경제적 계산을 하였던지 간에 한동안 베트남과 한국의 관계는 약간 뻐근해질 것이 분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고 아마도 머지 않은 시간에 한국을 떠나 신변을 보장할 수 있는 제3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그가 어디에 있고 어떤 활동을 하던지 간에 그의 방법이 평화적이고 상대적 약자인 자신의 신분에 걸맞는 합리적 활동이라면 나는 그의 활동을 지지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나는 오사마 빈 라덴/김정일/사담 후세인/헤즈볼라처럼 그를 반대할 것이다. 우선은 '정치범'으로서의 그의 석방을 환영한다.


Hedge™, Against All Odds..

알 자르카위 사망, 3류매체 팝뉴스, 야스쿠니 신사

- 팝뉴스, 맨날 소설 쓰더니 제대로 딱걸렸다.
매번 불법으로 추정되는 해외언론의 기사를 마음대로 번역해와서 기사랍시고 포털 사이트에 납품을 하더니, 이번에 또 소설 쓰다가 제대로 딱걸렸다. 남의 글을 제대로 베껴오지도 못하는 양반이 기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포털뉴스 납품업체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작금의 이런 저질신문사들의 창궐은 파란닷컴이 1년간 실행했었던 스포츠뉴스 3사에 대한 기사 독점권 확보 때문에 촉발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제일 광고전단지 언론인 팝뉴스가 또한 번 구라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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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공습으로 알카에다 지도자 알 자르카위 사망

[사진 : 조선일보]

오늘 낮, 전지구적으로 매우 다행스럽고 잠시 테러리즘의 공포 속에서도 즐길만한 사건이 있었다. 알 카에다의 유력 지도자인 알 자르카위가 미군의 공습을 통해서 알 자르카위가 바그다드의 북동부 쪽 50km지점의 바쿠바 은신처에서 사망했다고 이라크 국영 알 이라키야가 전했다.

예전에 테러리즘에 대해서 관심이 증폭되었을 때 글을 몇 개 쓴 적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자살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졸개근성'에 대해서 언급했던 적이 있다. 그들이 졸개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에게 자살폭탄테러를 사주하는 자들은 절대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그 특권적 지위를 내면적으로 정당화해버리고 그들 스스로를 희생하는데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을 신격화한다는데 있었다. 결국 그들의 어리석고 순진함을 이용하여 알 자르카위는 자신의 악명을 쌓았고 이라크 민중과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 이라크 파병군의 생명을 위협하였으며 이라크 내의 치안유지활동을 저해하였다.

테러리즘은 절대악에 가깝다. 아니, 절대악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이라크 민중들이 과연 그들의 삶의 질을 저해시키고 생명마저 위협하는 알 자르카위를 지지했을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알 자르카위와 유사 테러리스트들의 자살폭탄테러가 없었다면 오늘날 미군들의 민간인 학살 의혹이나 민간전투원 등이 이라크 내에서 문제를 일으켰을까? 미군이나 민간전투원들도 인간이다. 공포가 있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방어행위를 할 의무가 있다. 알 자르카위의 테러리즘은 이라크의 전쟁 상태를 지속시켰고 이라크 민중들 중 일부를 선동하여 자살테러에 뛰어들게 하였다.

이와 같은 치안부재의 상황은 전쟁터에서 지켜져야 할 교전수칙을 지키기 힘들게 만든다. 이라크인 어린 꼬마가 이유없이 웃으며 미군에게 달려 드는 것조차도 자살폭탄테러를 경험한 생존자들에게는 히스테릭에 가까운 공포를 유발한다. 이라크에서는 제복을 입고 전투에 임하는 군인은 미군과 각국 파병군 밖에 없다. 민간전투원들과 이라크 무장 게릴라들은 총만 버리면 바로 민간인이 된다.

지금 우리가 한국에서 보고 있는 미군의 이라크 민간인 학살의 기사들이 과연 진실인가? 아무도 모른다. 죽은 이라크인과 테러의 공포 속에서 의심나는 사람들을 무차별 도륙한 미군 자신만 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지옥을 만든 원흉은 오늘 뒈진 알 자르카위와 같은 테러리스트들이다. 통제되지 않는 약자의 테러리즘은 반드시 파멸되어야 한다.


- 야스쿠니 신사의 다국어 번역 팜플렛
야스쿠니 신사가 지속적으로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그들 내면을 들어가 보지 않고서야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야스쿠니 신사가 (속칭 '일빠'놈들이 아닌 정상적인)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배포중이라는 팜플릿. 사진 : 세계일보]


우리의 영웅 김구는 일본을 비롯한 제3국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과 마찬가지다. 도시락 폭탄으로 유명한 윤봉길 의사는 제3국에서는 폭탄테러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일본의 영웅 도조 히데키는 일본 밖에서는 침략의 원흉일 뿐이다. 20C 아시아 평화의 원흉이자 모든 아시아인이 죽이고 싶어 했던, 쪽빠리 섬나라 왜국의 수장이었던 일왕 히로히토는 1989년까지 존경 받으며 살았다.

그럼 김구/윤봉길을 우리가 추앙하는 것처럼 도조와 히로히토를 추앙하는 것을 묵인해야 하는가? 어차피 그들의 역사이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있다면 왜왕 히로히토와 그의 똘마니 도조 히데키가 없었다면 김구와 윤봉길도 생길 일이 없었다는 것이고, 히로히토와 도조는 능동적 존재로 역사 속에서 행위하였지만, 김구와 윤봉길은 히로히토와 도조가 만든 역사 속에서 수동적으로 행위하였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 사이의 메워질 수 없는 결정적 차이점이며 둘의 존재가 결코 같을 수 없음을 뜻한다.

어떤 면에서 이와 같은 흙탕물 튀기는 역사는 역설적이게도 미국 정보부가 일본의 전투력에 대해 오판을 함으로서 러시아를 끌어들이고자 안간힘을 쓰면서 원자탄이라는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2차례에 걸친 원자탄 폭격으로 수십만명이 사망하여 그로기 상태인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내었으나, 오늘날 우리가 좋아라하는 '국제여론'에 등떠밀려 일본에 결정타를 먹이지 못하고 어중간한 일본의 항복 조건을 수용하면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래서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는 것이다. 그 때 일본을 좀 더 확실하게 몰아붙이고 원자탄이 한 방만 더 떨어졌다면 지금 이와 같은 흙탕물은 안튀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참 재밌으면서도 절대 웃을 수는 없는 곳이다.

Hegde™, Against All Odds..

Daily News

- F-15K, 국내 도입 기종중 최단기간 추락
F-15의 성능은 분명 현존 최강에 가깝고, 실전 전투력은 이미 미국이 여러 전쟁에서 실제 작전을 수행하면서 명명백백하게 검증되었다. 지금와서 F-15의 성능을 의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F-15는 분명 현 시점에서 실전배치되어 있는 전투기들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최강에 가깝다. 따라서 일각에서 제기하는 전투기 성능 문제는 군사적 소양이 부족한 나보다도 더 즉흥적으로 빚어지는 단견에 불과하다. F-15의 성능을 의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에 판매된 F-15K가 제작 과정에서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될 필요가 있다. 1~2년짜리 수명의 고철덩어리가 아닌 1~20년을 두고 주력기종으로 실전배치되는 전투기인 만큼 구조적인 견고함을 갖추어야 함에도 그러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다. 더불어 한국 정비진의 전투기 정비가 미진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전혀 본 적 없는 낯선 기종인 F-15K에 대한 국내 전투기 정비진의 실력이 풋내기일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이런저런 설들을 제쳐두고 우리에게 당면한 가장 큰 현실은 1000억원에 이르는 고급 전투기와 혈세를 들여서 훈련된 고급인력이 비전투 임무 수행 중에 유실되었다는 점이다.


- 노심(盧心)은 유시민? "영남출신…야당 대항마 적격"
盧心은 유시민? 어디 한 번 유시민 밀어봐라. 그 인간이 사분오열에 빠진 열린당을 무료로 공중분해시켜줄꺼다. 도대체가 인물 보는 눈이 그것 밖에 안되는 양반인거냐? 아무리 네 놈이 싫다지만 그래도 이 나라 대통령 선거에서 내가 찍어준 놈인데, 정말 네 놈이란 양서류는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정신을 못차리는구나.


- 미국 ‘자생적 테러’ 공포 확산
미육군 교본에 명시된 테러리즘의 의미는 '협박과 강압을 통하거나 공포를 조장하여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폭력의 계획적 사용'을 뜻한다. 테러리즘은 주로 약자들이 행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제는 테러리즘의 패러다임을 자국(이주)민에게도 적용시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테러리즘의 창궐은 어리석은 몇몇 정부가 테러리즘과 손쉽게 타협을 하고 테러리스트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약자의 광신적 테러리즘에 대해 모든 국가들이 일관된 자세로 '더욱 거대하고 무차별적인 테러리즘'으로 약자들이 저지르는 테러리즘의 결과는 오로지 죽음과 파멸 뿐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약자의 테러리즘은 어떠한 문제의 해결책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강경파들에게 각인시켜줄 필요가 있다. 테러리즘과의 타협은 있을 수 없고, 테러리즘과의 타협은 제2, 제3의 테러리즘을 낳는다. 오늘날 '인류의 짐'이 되어가는 아프리카 몇몇 국가들 혹은 무장 테러리스트들과 빚어지고 있는 충돌에서 한국 정부의 결연한 의지와 강력한 대응을 통한 국가에게 요구된 '적극적' 자국민 보호의 의무가 발동되기를 요구한다. 폭력은 더 큰 폭력으로 응징되어야 한다.

Hedge™, Against All Odds..

Daily News

日 시마네현 ‘독도는 일본땅’ 맞짱토론 제의
일본의 '시골 동네'랑 한국의 국가기관급 레벨의 토론을 요구하는 건가? 한마디로 실소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 행사 때처럼 한국 정부가 어리석은 대응을 할지는 의문이지만, 우리 나라로 따지면 강원도 두메산골쯤 되는 시마네현의 춤사위에 같이 어울려 노는 것만큼 꼴사나운 모습도 없을 것이다. 더불어 영유권을 두고 토론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저 돌섬 2개와 EEZ해역이 분쟁지역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상대할 가치도 없어 보인다.

노대통령의 ''민심의 흐름''에 대한 생각
민심이란 그런 것이다. 대중은 영리하지 않다. 대중은 영악하며 이기적이며 무책임하다. 나는 대표적인 엘리트정치체제를 지지하는 사람이며 대중의 판단에 대해서 대중의 상징적 의미를 인정하지만 대중에 대해 썩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정권은 대중의 힘을 그 힘의 근원으로 여겼고 대중의 힘에 의해서 출범한 정권이다. 정몽준을 이용했고 내 뜻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여 아버지(민주당)를 저버렸고, 탄핵정국에서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기존 정치세력을 매국세력으로 몰아 붙이며 돌이킬 수 없는 반목을 조장하였고, 그들의 지지 기반인 젊은층을 외면하고 학업을 우습게 보고 주체사상에 빠져 있던 지극히 386스러운 소모적 이념논쟁에 매달리며 민생을 저버리면서도 매국세력이라 매도했던 기존 정치세력과의 연정을 통해 권력안정만을 도모했다.
기존 정권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로 쏟아지는 부정부패 사건과 대통령 친족/측근비리 속에서 의문의 자살사건이 연발했고, 보궐선거를 통해서 그들의 힘의 기반인 국민들이 이반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 주장한 메니페스토보다는 그들의 태생적 한계인 감성정치에 매달리며 '싹만은 살려달라'는 식의 눈물정치/호소정치에 집착했다. 지방선거가 총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대야당'을 운운하며 현실을 왜곡하려 했고 선거가 코앞에 닥칠 때까지도 드러나는 현실을 외면하고 적전분열을 일삼는 지극히 386스러운 그들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그들은 포용력이 극히 부족하고 명확한 피아 구분 이외에 어떤 논리도 없어 보인다. 그들의 지지 기반인 대중의 심판이 내려진 시점에서도 여러 잡음이 들리며 언론을 통한 특정 정당의 싹쓸이 국면의 후폭풍을 대중의 탓으로 돌리려 한다.

대중은 그런 것이다. 대중은 군중적 기질을 가지며 공중과는 차별되는 존재다. 중장년층의 나이든 사람들도 이 땅의 주인이며 이 땅의 젊은이들이었으며 이 땅의 주권자들이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자신들을 지지하는 젊은층만이 보였고 진정으로 이 땅을 일구어온 피땀 흘린 그들을 외면하고 소외시켰으며 그들의 피땀으로 일군 이 땅의 결실만을 따먹으며 배부른 논쟁만을 일삼는 우리 젊은층의 지지에만 포만감을 느끼며 그들의 입맛에만 맞추려 했다. 그러나 우리 젊은층들도 당신들처럼 전투적이고 포용력 부족한 오합지졸들일 뿐이다. 젊다는 것은 그만큼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의미이며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기도 쉽다는 것이다. 점점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득권 세력화되어 가는 집권 여당의 모습에 철새 정치인만큼이나 철새 유권자인 젊은층들은 썰물처럼 당신들의 지지 기반에서 이탈한 것이다. (더불어 애초에 투표율 자체도 그리 높지 않은 세력이다.)

이제 당신들이 그토록 떠받들던(동시에 대통령은 21C에 있는데 국민들은 군사독재에 머물러 있다고 무시하던) 대중들은 당신들을 버렸다. 한낱 지방선거를 가지고 거대야당 운운했던 당신들의 넌센스가 이제는 당신들의 무능함과 당신들의 자중지란 속에서 사분오열하여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민주당에서 당신들이 분열되어 나온 것처럼 당신들 안에서도 그와 같은 분열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한 번 배신한 장수는 또다시 배신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벌어질 당신들의 행보는 나의 중요한 관심거리가 되었다. 6~70년대 중남미 국가들처럼 당신들이 감행했던 '파퓰리즘의 대모험'은 당신들의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서 실패한 것 같다.

당내 분열이 일어난 차후에도 당신들이 지금과 같은 도미네이트한 지배계층으로 다시 부각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난날 당신들이 어리석은 대중들을 호도하여 지금의 지위에 올랐던 것보다는 좀 더 고난이도의 세련된 전략을 펼쳐야 할 것이다. 대중들도 빠르지는 않지만 수준이 높아지고 있으니까. 이 땅에 군사정권이 또다시 도래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라. 탄핵정국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추앙 받던 헌법재판소가 관습법 한 방에 나라를 망칠 조직으로 해체론까지 거론하던 것이 대중들이니까.. 애초에 지지 기반을 잘못 택했다.


짐바브웨, 10만달러짜리 화폐 발행
제3세계 가난의 원인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제3세계 자체의 내부적 문제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어리석고 단결력 없는 국민들, 부패한 정치 지도층이 주는 악영향이 식민제국주의의 잔재가 남긴 상처보다 더 크고 심대한 제3세계 저발전의 원인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이 겪고 있는 저발전의 발전(Development of Under-Development)를 언제까지 남탓으로 돌리며 자신들을 순결한 존재로 세뇌할 생각인가? 식민지 해방 40년이 지나도록 식민지 시절보다 더 퇴보하고 있는 그들의 가난과 내전/내란/대량살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남탓을 하는 것이 자신들이 순결해지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지만, 그러한 내부적 갈등을 내부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줄 모르는 자신들의 무모함과 무지함에 대해서는 조금의 반성도 없어 보인다.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걸맞는 정부를 가진다. (People have the kind of government they deserve.)

이란 "핵프로그램 역행시킬 수 없어"
이란이 이라크 문제 해결 이전에는 미국의 새로운 무력도발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1차 북핵위기처럼 떡고물을 바라는 것인지 정확히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너무 막나간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북한만큼 신뢰할 수 없는 행위로 불신감을 한껏 조장시켜온 이란의 핵무장이 국제안보에 미칠 영향력에 대해서 어떠한 대답도 줄 수 없는 상태에서 테러지원국 이란의 핵이 비이성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제3의 조직에 양도되어 이란 이외의 제3국에서 핵테러리즘이 감행될지도 모른다는 단 1%의 불안감이라도 상존해 있는 현실에서 이란 또는 북한의 핵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상황선택이다. 지금에 와서야 드러나는(?) 꼴이지만, 이라크가 아니라 이란이 미국의 '적극적 안보에 의한 국토안보 보장조치' 받았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흐마드네자드는 제2의 김정일이 되길 희망하는가.

Hedge™, Against All Odds..

Daily News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 혐의자 29명 피소
지구상의 그 어떤 국가도 테러리즘과 타협을 시도하거나 방치 또는 굴복해서는 안된다. 어떠한 테러집단도 테러리즘을 통해서 그들의 정치적/경제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으며 그들의 테러행위가 곧 그들을 향한 가혹한 응징과 종말을 불러올 것임을 각인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한 번 테러리즘과 타협하기 시작하면 그 국가는 제2, 제3의 테러리즘에 필연적으로 노출된다. 테러리즘을 추구하는 집단은 결코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비도덕적/비합리적 만행도 서슴지 않는다.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응징되어져야 하고 어떠한 타협의 대상조차 될 수 없는 것이다.
타협('굴복'이 아니다.)이 불가능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필리핀과 같은 멍청하고 저능한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들은 '테러리즘과의 타협은 없다'라고 공공연히 천명하는 것이다. 타협될 수 없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야기하고 갈등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을 초래할 뿐이다. 강자를 굴복코자하는 약자의 저항인 테러리즘은 결국 강자의 더 큰 폭력과 국제사회로부터의 냉대와 외면을 부를 뿐이다. 어떠한 정치적 목적도 폭력을 수반한 상태에서는 정당성을 가질 수 없으며 어떠한 선의(善意)도 피 흘리는 가운데 그 뜻이 바르게 전달될 수 없고 바르게 전달될 리도 없다.


- 미국가안보국(NSA)의 '도청' 충격
영화 Enemy of The State는 국가가 그들의 특수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의 이익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개인에 대한 무제한적인 정보편취와 감시를 다루고 있다. 이번 美국방부 소속의 국가안보부(NSA)의 도청행위 내부고발자의 증언도 이러한 맥락의 하나로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한가지 의문이 되는 것은 2001년 9.11테러 이후에 부시행정부가 2002년 신설한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와 국가안보부(NSA)라는 것이 어떻게 역할이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국토안보부(DHS)는 미국 22개 조직을 통합하여 패트리어트법을 통해 초헌법적인 권한(물론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은 도감청'도 가능하다.)을 지닌 조직이기에 NSA와 역할과 주요 업무가 중복되는 것이 상당할텐데 서로 다른 부처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의아하다.
부처 간의 기싸움이 남긴 탄흔인가?

Hedge™, Against All Odds..

약자의 테러리즘

미육군 교본에 명시된 테러리즘의 의미는 '협박과 강압을 통하거나 공포를 조장하여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폭력의 계획적 사용'을 뜻한다. 이는 Noam Chomsky 또한 자신의 저서들에서 그대로 인용함으로서 전세계적으로 별다른 이견 없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 테러리즘의 사전적 의미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테러리즘은 이러한 포괄적인 의미보다, 약자가 강자에게 비정상적인/비정규전의 방법으로 물질적, 정신적, 정치적 타격을 입히는 행위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테러리즘에 좀 더 근접한다. 즉,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테러리즘에는 패권국의 테러리즘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은 힘으로 규정된 국가 간의 힘의 분배 상태에 의해, 강자의 테러 행위는 '국제 경찰력' 내지는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며 그것에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 행위를 한 국가가 소위 강대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라면 자국에게 특별한 위해가 가해지지 않는 한,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는다. [일단 터뜨리고 보는 우리 '노짱'조차도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었다. 그 날 테러 발생 이후 약 1시간만에 5500여명이 사망하였고, 전세계는 역사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테러를 경험하였다.
통상 테러 행위가 벌어지면 몇몇 집단에서 자신들이 테러를 저질렀다고 밝히며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피력한다. 하지만 9.11 테러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그 행위를 자백하지 않았고, 미행정부는 그들의 오랜 동료(?)였던 이슬람 원리주의자 알 카에다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응징에 들어갔다. 응징이 길어지자, 알 카에다 스스로도 자신들이 9.11테러를 실행했음을 인정하며 이슬람권에 지하드를 요구하였다.

[그냥 가져다 붙인 것이어서 별로 의미는 없고.. 여러 군데서 동시다발적으로 테러행위가 저질러졌다. 사고가 발생한 지점들로 보아, 제대로 욕먹고 비난 받으며 그들의 목적 달성의 꿈은 요단강을 건널 것으로 보인다.]

2005년 7월 7일,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매우 전통적이고 매뉴얼한 형식(?)의 연쇄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비공식으로 40여명이 사망하고, 10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알려지고 있다.(어젯밤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300명 정도라고 하더니..) 테러가 일어나고 나서 피해 규모가 별로 부담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알 카에다 영국지부(점 조직/세포 조직)라고 밝힌 테러집단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히며 영국의 이라크 침공과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응징이라고 주장했다.

* * * * * * *

일반적으로 테러리즘의 피해국이 보이는 반응은 미국식 반응과 필리핀식 반응이 대표적이다. 미국처럼 웃통 벗어 던지고 쌍칼들고 복수하러 뛰어드는 국가와 필리핀처럼 테러에 겁먹고 바싹 움츠러 드는 경우다.
실제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외교력을 가진 국가라면 필리핀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토니 블레어와 G8정상들은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테러리즘은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응징을 다짐하고 있다.

관련글 :
비폭력 투쟁

나는 '약자가 행사하는 폭력'의 가치를 매우 낮게 평가한다. 약자가 내세우는 폭력은 그 한계가 명백하며 그 형태 또한 비정상적이고 비정규전적인 성향을 띄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그들의 투쟁은 제3자에게 지극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춰지고, 그러한 제3자들의 부정적인 시각은 자연히 테러 피해국에 대한 애도와 심정적 지지/물질적 지지로 이어진다. 더구나, 요즘처럼 反戰/反테러의 분위기가 국제 여론화되어 가고 있는 시대에서 테러리즘은, 그 무차별성 탓에 1차적 테러리즘의 피해 국가가 제3국들을 反테러리즘 전선에 동참시키기가 쉽고, 그들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던 강대국 내부의 지식인 계층의 목소리를 작게 만든다. 그러한 국제 정세의 흐름은 테러리스트(물론, 그들 약자/소수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은 마치 무장 독립 투쟁가처럼 비춰질 것이다.)들에게 조금도 유리할 것이 없는, 그들이 최초 목적했던 것조차도 얻을 수 없는 절대적 고립 상태로 몰아 간다.

[마드리드 열차 테러 당시 사진]


테러리즘은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급진적이고 과격한 선택 수단'이다. 테러리즘은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약자들의 선택 수단이고, 그러한 이유에서 테러리스트들은 강대국들의 군사력과 충돌할 수 없는 구조적인 취약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1998년 오사마 빈 라덴의 美구축함 테러는 실로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러한 구조적 제약 속에서 테러리즘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상대적으로 유약하고 방어가 취약한 민간 시설을 표적으로 삼을 수 밖에 없으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민간 시설에 대한 타겟팅이 테러리즘이 추구하는 공포에 의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목표를 강제하기에 최적화될 수 표적이라는데 또다시 역설적인 그 문제점이 있다.

테러의 표적으로서 민간 시설을 선택하게 되면 단번에 엄청난 국내적, 국제적 관심을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혼란 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극대화된 상태에서 전달할 수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테러리즘을 시도하는 조직들은 민간을 목표로 한 '손쉬운 테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민간을 향한 테러 행위는 크게 전달되는 그 메시지만큼 더 큰 비난과 보복의 불씨를 낳게 된다. 여기서 또 한 번 힘으로 정의된 국제 사회의 논리가 등장한다. 강자의 테러리즘과 약자의 테러리즘은 제3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강자의 폭력은 '일종의 정의를 실현하는 강제력/거스를 수 없는 대세' 등으로 인식하며 주변 국가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국가를 지지하는 반면, 약자의 폭력은 '국제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제거되어야 할 불필요한 폭력'쯤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왜 발생했으며 원초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그러한 요구가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가치 판단은 제3국의 대부분의 일반 대중으로서는 애초에 그리 가치 있는 것도,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다.

단지, 그들이 비정상적이고 비정규전적이며 무차별적인 테러 행위를 자행하는 것 자체에 공포와 분노를 느낄 뿐이다. 즉, 설사 그들의 요구가 옳다고 하여도 그것을 지지할 의사를 그들 스스로 거세시키는 꼴이다. 그들 무장 테러조직들이 국제적으로 극소수인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계층과 자국 내의 선동적인 민중들의 지지를 얻는 것 정도로 만족한다면 그러한 테러 행위가 자신들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과거 우리의 항일독립 운동가들이 그랬듯이 그러한 형태의 독립 운동처럼 우리의 과거 무장독립 운동가들이 많은 피를 흘렸지만 결국 무가치한 죽음, 자기만족적 순교만 남기고서 최종적으로 얻어낸 것은 아무 것도 없이, 또다른 강대국의 힘에 의해서(우리가 의도한 힘도 아닌) 타의적으로 해방이 되는 그런 비참한 상황이 재현될 것이다.

설사 테러행위로 인한 민중들의 공포를 유도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시도했다 하여도, 아둔한 나라 '필리핀'과 같은 모습은 또다시 재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테러리즘에 한 번 굴복하게 되면 2차, 3차의 유사한 형태의 테러리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그러한 형태의 손쉬운 정책 변환은 해당 국가와 정부가 자국 내에서는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국제화/세계화 사회에서 제3국의 신뢰를 받기 힘들게 만든다.

[간디의 투쟁법은 그 진척이 더디고 불명확했지만, 결과적으로 국제 정세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가장 평화적이고 온건하며 국제적인 지지를 포용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게 하였다. 그러한 그의 투쟁법은 오늘날도 '비폭력 무저항'이라는 이름으로 존경 받는다. 하지만, 지하드를 외치는 알 카에다를 존경하는 이는 거의 없다.]


약자는 강자와 다르다. 약자가 강자처럼 문제를 해결하고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약자는 강자의 더욱 거대하고 무자비하며 맹렬한 보복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한 소수의 급진주의자들의 무지와 방종에서 비롯된 폭력은 다수의 그들이 소속된 사회에 강자로 인한 고통만을 선사할 뿐이다. 그것이 세상의 논리이며 유사 이래로 지금까지 그러한 양상은 그 형태만 다르게 나타났을 뿐, 계속 반복되어 왔다.
[2차 대전에서 레지스탕스가 발생한 도시에는 히틀러의 SS친위대가 파견되어 마을을 몰살시켰고, 팔레스타인계 테러가 자행되면 이스라엘군의 보복 공격이 가해졌으며, 알 카에다의 영웅주의에 젖은 무력 도발인 9.11테러의 댓가는 아프가니스탄 민중들과 이라크 민중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막연히 미국과 이스라엘 등만 탓을 할 것이 아니다.]


관련글과 상단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약자가 내세울 수 있는 폭력과 테러리즘이라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들이 물리적으로 나약한 채로 물리적 해결을 시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그렇다면 약자는 어떠한 방법이 동원하여야 하는가?


우리는 이미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60년도 더 전에 명확히 알게 되었다. 약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저항에 대해 가장 모범적인 대안을 제시한 예가 바로 '마하트라 간디'의 경우다. 구미위원회의 이승만 같은 경우는 무력이 아닌 외교적인 해결을 시도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민중의 참여가 배제된 것이 약자의 입장에서 그리 효과적인 선택이라 보여지지 않는다. 반면 간디의 경우는 보다 낮은 레벨의 저항이었지만, 민중의 지지와 동반 행동을 유도하는 아주 효율적이면서도 평화적인, 동시에 심증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려는 경향이 있는 국제 여론(강대국의 여론)으로부터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모범적인 모습이었다.

사빠띠스따 해방군의 마르꼬스의 경우도 매우 긍정적인 사례이다. 체 게바라와 곧잘 비교되기도 하는 마르꼬스는 체 게바라가 결국은 공산주의적 무장 쿠데타 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없는 한계를 지닌 반면, 마르꼬스는 무장 게릴라의 한계를 자각하고 스스로 총을 버리고 펜을 든, 약자가 힘으로 무언가를 쟁취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상당히 빨리 깨닫고 10여 년간의 대외 저작 활동과 언론 활동으로 무장 게릴라라는 태생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마르꼬스의 사빠띠스따 해방군은 알 카에다나 많은 이슬람 무장 테러 세력들 중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한 국제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고 있다. [아라파트의 경우도 그와 큰 틀에서 유사한 노선의 변화를 보였다.]


달라이 라마의 투쟁도 매우 효과적이다. 티베트에서 인도로 망명한 이후의 그의 수많은 저작 활동(비록 그 책이 모두 비슷비슷하게 다분히 지루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과 언론을 통한 독립 활동은 지금 이 순간도 그를 세계의 聖人으로서 추앙 받게 하고 있고, 티베트 독립을 위한 무수히 많은 INGO 단체들의 활동은 지금 이 순간도 활발하다.

물론, 달라이 라마의 투쟁은 미국의 對중국 압박 수단의 일환으로서 유효한 탓에 미국의 적극적인 후원(그것이 실질적이든, 중국을 향한 압박 카드이든지 간에..)이 있어서 더욱 탄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오늘날 티베트 문제에 있어서 중국이 결코 과거와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명명백백하며 지금 이 순간도 중국은 티베트에 대한 고도의 자치권 인정 요구 압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우리의 식민지 시절에는 그런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국제 사회적인 풍조(제국주의)가 다소 차이점을 보인다.]


런던 테러 이후, 다시 한 번 알 카에다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전세계 언론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보이는 관심은 그들의 목소리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그들이 저지른 잔악한 테러 행위와 그 피해에 대한 관심이다. 그러한 그들의 테러 행위는 스스로를 더더욱 벗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음을 그들은 아직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강자의 테러리즘과 약자의 테러리즘은 명백히 다르게 정의된다. 어떠한 숭고한 정신과 순결한 정의를 지향한다고 하여도 테러리즘이 자행되는 순간, 그들의 이상과 가치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받을 수 없는 추잡하고 더러운 가치로 전락한다.
약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지닌 불리한 조건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불리한 조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제한된 카드, 불리한 조건이기에 활용될 수 있는 카드가 어떠한 것이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강자의 힘에 맞서는 약자의 힘은 강자의 더욱 큰 분노와 응징만을 초래할 뿐이며 그 고통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 테러리즘의 순환 속에서 더욱 더 고통 받고 힘들어지는 것은 그들 자신 뿐이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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