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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의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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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어릴 적에 공산사회주의 루마니아를 지배하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의 처형 장면을 월드뉴스 시간대에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너무 어린 초등학생이어서 자동소총의 난사로 걸레가 된 그의 시체가 메달려 있는 콘크리트 벽을 루마니아군의 탱크가 짓밟고 지나가는 장면과 짓밟히고 난 후의 차우세스쿠 시체의 얼굴 부분이 나온 영상을 본 것이 지금도 상당히 또렷히 남는다. 그 때의 나는 매우 어리고 가치 판단이랄 것도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가 독재자(그 때의 내가 독재자가 무슨 의미인지나 알았을까.)라는 사실과 시민의 손에 죽었다는 것 하나만 알았다. 나쁜 놈이니까 시민들이 죽였겠지..하는 수준의 이해랄까?
 
 
오늘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정부당국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후세인 본인은 군인이기 때문에 총살형을 요구했지만, 살인마 후세인에게는 자신이 죽을 방법을 선택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부여되지 않았다. 사형의 조기집행을 예감한 후세인은 죽기 전에 남긴 편지(원래 법정에서 낭독할 예정이었으나, 법정을 통해서 친위조직을 선동하고 자극할 권리를 얻지 못했다.)에서 "증오는 사람들이 공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지 않고, 공정한 생각과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다."라면서 "우리를 공격하고 이라크 정부와 국민을 분열시킨 외국 사람들도 증오하지 말아 달라."라는 아주 표리부동하고 황당무계한 말로 자신을 마치 부당한 국제정치적 폭압에 의해 불가피하게 죽음을 맞는 순교자인 양 묘사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글의 말미에 자신이 알라 곁에 순교자로서 머물 것이며 지하드, 무자헤딘, 팔레스타인을 찬양했다. 후세인의 편지가 의도한 목적은 명백하며 후세인은 최후까지 그의 잔당들에게 모택동식의 '계속투쟁'을 주문하였다.
 
 
굳이 차우세스쿠와 후세인의 죽음을 연관시키기란 쉬우면서도 쉽지 않다. 철권통치를 펼친 독재자였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집권하는 과정도 달랐고, 통치 과정도 달랐으며 대외관계도 판이했다. 세계를 바라보는 눈도 미국을 적성국으로 둔 것은 동일했지만, 서방 진영에 대한 접근법은 명백히 차이를 보인다. 심지어 둘의 죽음을 둘러싼 주요 국가들과 주변국들의 반응도 판이할 정도로 둘은 쉽게 연관지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연관짓기 힘들다. 단지 둘의 연관 관계를 굳이 만들어 내자면, 둘 다 처형 당시의 상황에서 '죽어 마땅했다'라는 점 하나다.
 
 
니콜라이 차우세스쿠를 무참히 처형한 루마니아의 국민들이 차우세스쿠의 통치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아온 그들 혁명 1세대들에게 자본주의 사회 구조는 너무나 냉혹하고 치열하며 미래가 칠흑같은 암흑 속이다. 차우세스쿠의 시절이 진심으로 그리운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현실이 너무나 힘이 들어 차라리 그 때가 낫다는 자괴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루마니아인들만이 알겠지만, 한때는 죽어 마땅했던 자가 17년의 시간이 흘러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들의 손으로 그의 신체를 걸레짝으로 만들고 그의 시체를 탱크로 짓뭉개며 환호하던 그들이 다시 그를 사모하기 시작하는 이 모순된 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단순히 루마니아인들이 어리석어서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체감하지 못할 뿐이라고 치부한다면, 당신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국민은 언제나 옳다'라는 철칙을 부정해야 한다. (실례로 노무현의 참여정부도 이 철칙을 잘 활용하여 득세하였지만, 점차 철칙이 장애물이 되자 때로는 옳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꾸며 자승자박에 빠진 적이 있다.) 나는 뚜렷한 공적이 아무 것도 없는 차우세스쿠를 향한 루마니아의 그리움이 일시적인 것이며 장기적으로 분명 개선될 것이라 확신한다.
 
 
오늘 후세인이 죽었다. 후세인의 친위정당이었던 바트당은 즉각 복수를 다짐했다. 바트당은 이미 무늬만 정당일 뿐, 소규모 테러 점조직이나 다름 없다. 그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슬람 교리에 찌들대로 찌들어 있는 이라크 민중들이다.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은 이라크 민중들의 후세인 처형에 대한 감회는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라크 자체가 종파/민족적으로 복수의 세력이 모여 있고 이에 따라서 후세인 정권의 수혜를 받기도 핍박을 받기도 하였기 때문에 후세인에 대한 감정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라크 상황을 바라 보는 해외 언론의 시각도 그들의 취재 지역, 취재 의도, 본국의 성향/방침에 따라서 완전히 판이하다. CNN과 알자지라가 같은 소식을 전혀 다르게 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現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단정지을 수 있는 사항이 있다. 그것은 마약처럼 강한 '민주주의의 승리'이다. 나는 자본주의의 우월함과 함께 민주주의의 절대우월성을 믿는다. 민주주의는 마약처럼 한 번 맛을 들이면 절대 헤어날 수 없는 마력을 지녔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게된 민중은 장기적으로 그 민주주의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이 물질을 추구하는 기본 본성에 입각한 자본주의의 근간 만큼이나 민주주의의 뿌리도 깊다. 경제체제에서 최후의 승자가 자본주의가 아닐 수는 있겠지만, 정치체제에서 최후의 승자는 반드시 민주주의임을 확신한다.

단기적 혼란은 불가피하다. 당장은 후세인의 죽음이 이라크 민주정부에게 악재로서 루마니아에서처럼 그를 그리워 하는 집단이나 세력에게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미국의 한국 군정(軍政) 교훈에서 비롯된 이라크에 대한 새로운 정치공학적 접근법으로 이라크 민중들의 뇌리에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민주적 가치가 잠식될 것이고 그러한 가치전이는 먼 훗날 오늘의 이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P.S. : 나 스스로도 연관성이 없다고 밝힌 차우세스쿠와 후세인의 접근은 대실패인 것 같다. 무리수가 너무 많은 것 같다.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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