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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사들

- 한나라·뉴라이트, 대선 한 길로?
사실 한나라당과 뉴라이트는 추구하는 노선이 그다지 겹치지 않는다. 책임져야 할 것이 없는 뉴라이트는 '이론적 문제'에만 집착하지만, 정당은 정권획득과 유지라는 '현실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2번의 대선 석패와 최근 좌파 노선에 대한 국민적 저항감이 어우러지면서 이번을 최적의 재집권의 기회로 여기고 있는 한나라당에게 한국정당 모두가 겪고 있는 이념적 토대 박약을 보완해줄 대안으로서 뉴라이트의 보좌는 썩 괜찮은 선택으로 여겨진 듯 하다. (물론 부정적 측면이 있다면 뉴라이트가 일부 분야에서 보이고 있는 특정종교 편향적 성향과 이 정권의 좌파이론가들이 보이고 있는 문제와 동일한 문제점인 '정치적 현실성'이 결여된 그들의 '시장만능주의'일 것이다.)

親정부매체인 한겨례는 한나라당/뉴라이트의 통합을 메인기사로 뿜어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한/민 공조 무드다. 과거 그들이 수구꼴통으로 매도하며 매몰차게 걷어찼던 민주당이 이제는 이미 두들겨 맞을대로 처맞아 빈사 상태에 빠진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게 결정적인 어퍼컷을 날릴 존재로서 그 역할을 기꺼이 수행하려 한다는데 있을 것이다. 긴장타라. 보수진영의 복수는 내 눈에는 아직 시작도 안한 듯해 보인다.


- 주한미군+전쟁시 증원전력 전략가치 2700억달러

귀얇은 좌파들의 자주논리에 쓰여지지 않아도 될 혈세가 또다시 그들의 자족감을 채우기 위해 쓰여지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에 대한 정치적 논란. 자신들이 자주논리를 내세워 한껏 정치적 이슈화 해놓고서 정치 이슈화해서는 안된다고 씨도 안먹히는 역공을 펼치는 저 가련한 아집 앞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말라버린 눈물이 흐를 뿐이다. 지구 상에서 자주국방을 외치는 단 두 나라. 거기에 한국이 포함되어 시대의 조류를 역행하는 국제미아가 되길 자처하는 이 미치광이 정권이 끝나기 전까지 내 나라 한국이 망하지 않기를 이미 2년 전부터 기도했다.


- 촘스키 "차베스의 분노 이해할 수 있어"
이 제목은 후배의 블로그에 썼던 글과 연계해도 될 것 같다. Noam Chomsky는 과거 내가 Howard Zinn과 함께 가장 존경하던 학자 중 한 명이다. 그들의 '고발'은 매우 정당한 것이고 약자의 편에 있기에 언제나 지지 받는다. 나 또한 그들의 '분노'를 함께 공유하며 사상을 함께 나누던 수학생(受學生)이었다.

하지만 나와 그들의 분노는 단지 '분노를 폭로하는 것' 뿐이었다. 분노를 폭로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들은 언제나 그 다음이 없었다. 그들이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은 언제나 비현실성으로 떡칠이 된 유토피아였다. 나는 그런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다.
Noam Chomsky는 한국언론과의 인터뷰와 해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토로한 어려움(? 그것이 어려움인지 현실에 대한 고백인지는 그 만이 알 것이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현실을 알면 알수록 좌절하게 된다. 우리의 분노에도 현실은 우리의 의도대로 변화하지 않는 것에 좌절하게 될 것이다."는 고백이다.

그의 고백만큼이나 나의 변절(?)도 빨랐다. 나는 현실을 바르게 투영할 수 있는 분석틀을 원한다. 현실의 상황을 분석하고 현실을 예측하지 못한 채 현실을 고발하고 이상세계만을 설법하는 공허한 분석틀은 내게서 점점 더 멀어질 뿐이었다. 현실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현실을 부정하고 꿈에 사로잡히는 것은 소모적이다. 아름답지 못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을 궁리를 하는 것이 더 긍정적인 것이다.

말년의 Chomsky는 외로웠나 보다. 수많은 그의 동조자들 중에서 실제 행동으로서 그의 뜻을 지지해 주는 정치권력자는 없었다. 그래서 정신 나간 우고 차베스라고 하더라도 권력자가 자신의 열성팬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기쁨에 베네주엘라의 암울한 정치현실에 대해서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나 보다. 순간 수십시간짜리 그의 강연회 오디오 파일들을 틀어 놓고 테러리즘에 대한 그의 강연을 해석해 보려고 낑낑거렸던 지금보다 어렸던 날의 내 꼴이 우스워진다.


Hedge™, Against All Odds..

Daily News

- 이란 대통령 친서.."신들은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
위선과 교만으로 점철된 아흐메드네자드의 편지 내용을 보고 있자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양반의 손끝에서 쏟아져 나온 습관화된 거짓 증언과 자신이 저지른 불신과 증오의 범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반성없이 부시가 저지른 분노의 전쟁(이라크전을 방산업체의 로비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정치를 극히 단순화시키는 주장이다. 전쟁은 전쟁수행국의 집권층에 엄청난 리스크를 초래한다.)에 대해서만 하교하고 있다.

어제도 학회에서 토론 주제가 이란 핵에 대한 것이었지만, 이미 작년에 학술세미나로서 모의 6자회담을 한 달 넘게 준비하며 핵 관련 지식을 쌓은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게 수행했었다. 그리고 그 지식과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이란과 북한의 '핵능력(Nuclear Capability) 소유 합리화 논리'가 얼마나 모순적인가에 대해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절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의 문제다. '미국의 핵'을 비난하는 자들의 논리에는 미국이 핵으로 타국을 공격할 것인가에 대한 반문이 필요하다. '이란의 핵'이 과연 제3국을 공격하는데 쓰이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는가? 이란이 직접 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이란이 쓸 것이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순진한 사고다. 아흐메드네자드와 그의 후임자들이 쓰지 않더라도 '대신 그 무기를 미국과 미국의 우방국을 향해 써줄 사람'은 우리가 이미 익숙한 사람 중에서도 여럿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신뢰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인류 공멸의 위험을 노출시킬 순 없다. - 아흐메드네자드 편지의 모순을 차곡차곡 씹어버리고 싶었지만, 애초에 씹을 가치도 없는 자는 씹지 않는 것이 나의 지론이어서 무시했다.


- 볼리비아 국토면적 10% 빈민층에 분배 논란
중남미 지역의 파퓰리즘(Populism)의 역사는 그 뿌리가 깊다. 1차 대전 당시만 해도 괜찮은 경제력을 갖춘 국가군(그래봐야 산업국은 못되었지만..)에 속했던 중남미 지역이 냉전시기 국제정치경제구도가 재편과 자국 내부에 내재되었던 여러 가지 문제들, 反美감정과 反자본주의적 감정에서 출발한 종속이론가들의 여러 이론적 토대와 수입대체산업전략(ISI)과 같은 경제정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 앉으면서 씻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경제적 후진성은 정치적 후진성을 고착화시켰다. 우고 차베스, 룰라, 모랄레스 같은 현실감각이 결여된 '감성정치'를 펼치는 대통령들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후진성의 반증이다. - 중남미의 정치적 낙후에 대해서는 언급할 생각이 없다. 근시일 내에는 개선되지 않을테니까. UNDP통계에서 국민의 45%가 하루 2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브라질이 중남미의 대표적 '강국'이라는 사실이 중남미의 미래를 대변한다. 배고픈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한 가지 정말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중남미에서도 인구도 적고 경제 규모도 큰 편이 아닌 베네주엘라가 마치 중남미의 강국 브라질과 대등한 수준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브라질과 룰라는 왜 그런 베네주엘라의 준동(?)을 묵과하고 있는가?
아무런 근거 없는 나의 망상으로는 브라질은 어차피 자신이 직접 총대를 메지 않아도 중남미의 주도권은 자신에게 회귀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이와 같은 조직적 준동(미국의 Backyard에서 미국에 반기를 드는 행위)이 얼마나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고 역사적으로 먼로 독트린 이후 중남미의 이와 같은 움직임이 미국의 어떤 반응을 초래했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브라질이 '베네주엘라'라는 소국(인구 3천만명이 겨우 넘는 한국보다도 작은 국가다.)을 '바지걸이(조직폭력배들이 두목이 검거위기에 몰렸을 때, 조직의 신뢰할 수 있는 부하가 대신 체포되어 형을 사는 것.)'로 내걸어 '잘되면 어차피 내가 대장질 할 수 밖에 없는 지위'이고 못되면 '베네주엘라의 선동에 휘말렸다'는 식의 변명을 댈 수 있다는 잡생각.

아무런 근거는 없다. 단지 브라질이 왜저리도 베네주엘라의 촐싹거림을 그냥 바라만 보며 띄워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이렇게 소설을 쓰게 했다. 제목은 볼리비아 이야기인데, 볼리비아 모랄레스의 초딩적 발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네.

Hedge™, Against All Odds..

Daily News

- 부패·빈곤 속 좌파 구호만 요란한 베네수엘라
인구 3천만명도 안되는 작은 나라가 석유파동으로 인한 수입폭증만을 믿고 대중선동과 편향된 이데올로기 주입으로 무지몽매한 대중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베네주엘라에 대한 삐딱한 시선들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하나 보다.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말이 많아지는 정치인은 그 만큼 무엇인가라도 어필을 하지 않으면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민 독재자 차베스의 아이콘은 부시 하나 뿐이다. 마치 2004년 美대선에서 캐리 후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오로지 反부시 여론 하나에만 의지하여 인기몰이를 했던 것처럼 차베스는 김정일 왕조와 같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세우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 실패한 사회주의와 차베스식 사회주의의 차이점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굳이 임의로 내가 정의내려 주자면, 베네주엘라의 '모방 사회주의'는 대중선동과 '부시'라는 공적(公敵)설정을 통한 파퓰리즘, 석유파동이 가져다준 일시적 부(富)에 도취되어 남발하는 각종 사회정책에 기인한 야당이 전혀없는 1당 독재의 하루살이 정권에 불과하다. 뒷북치는 종속이론적 국제사회인식은 차베스 개인의 권력욕 속에서 자국의 역사적 후퇴로 귀착될 것이다. 많은 중남미 독재정권들이 그러했듯이.


- 내달 방미 앞두고 후진타오 '미소 작전'
내가 만약 중국 신민(臣民)이라면 저 갑갑한 1당 독재국가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싶다. 법보다 지도자의 의지가 더 앞서는 나라. 지도자가 정하면 국법이 지도자의 의지대로 마구 바뀌는 나라.
나는 중국이 지금 천안문 사태와 같은 민주항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2가지로 꼽는데, 하나는 그들의 민주적 역량 부족 즉, 함량미달이고 또 하나는 천안문 사태의 실패 이후 중국 민주화에 좌절한 지식인층이 대거 서방세계로 떠났다는 추측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날 미국과 서방세계에서 중국 인권을 직접 공격하는 배후 세력으로서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판단한다.
후진타오의 이런 가식적인 행위에 대한 미국쪽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엄연히 사회주의 국가이고 사회주의가 자신들 권력 독점의 원천이니 그렇다지만, 너무 뻔뻔스러운 이런 손짓은 좀 배제할 수 없나? 맨날 大國이 어쩌고 하면서 하는 짓은 왜 이 모양인지.


-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 대구 방문
김대중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를 친위방문한다. 영남대에서 민주화와 남북간 평화적 교류, 화해협력 기반 조성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하는데 어쩌면 상당히 분위기가 험악해질지도 모르겠다. 현정권에 대한 대구/경북의 민심이 얼마나 이반되어 있는지 몸으로 느낄 만한 계기가 될지도. [아니면 학교 쪽에서 알아서 기어서 통제가 이루어지거나..]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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