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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과 사회적 계급의 고착화

우리에게 쌀 수입시장 개방으로 유명한 우루과이 라운드가 진행되던 시기부터 농산물 시장의 개방 요구와 함께 부각된 가치가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의 등장이다. 지적재산권은 문자 그대로 지식에 기반한 생산/저작활동을 통해서 창출된 유무형의 가치에 대한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지식기반 산업이 본격적으로 부각되면서 지식도 하나의 생산을 통한 상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상품들이 다른 여타 산업의 생산품들처럼 국제법/국내법 등을 통해서 규제되고 보호될 필요가 있따는 선진국들의 공감대에서 출발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숙지하고 있는 지적재산권의 요체다. 이러한 새로운 재산권 개념의 등장은 제3세계 후발산업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지적 재산을 많이 보유한 선진국들이 취할만한 당연한 행동변화이며 산업화가 극상까지 이르면서 이 사조는 전 세계가 공감하는 정도의 수준에 이른 새롭게 보편화된 경제관이다. 단지 각 국가가 처한 경제적 입장에 따라서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를 부정하는 국가는 없다.

우리 한국은 어떤 면에서 이런 지적재산권 중시라는 국제적 조류에서 상대적으로 수혜자에 가깝다. 아직도 지구상의 과반수가 넘는 국가들이 변변한 산업 기반조차 없는 현실에서 IT, 반도체, 철강, 조선 등의 제한된 영역이기는 하지만 한국과 한국의 기업들은 '세계일류'의 입지를 점하고 있고 적지 않은 특허를 통한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의 공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에서 한국제품이나 유무형의 한국의 지적재산권을 모방, 탈취, 불법사용, 산업스파이 행위 등을 펼치는 기사를 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낯설고 어색한 것이 아니다. 국민소득 80달러에 불과하고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하면서 춘궁기를 걱정하고 콜레라에 허덕이던 한국 반세기 전 모습에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는 동안 보여준 우리 국민들의 노력과 지도자들의 혜안, 국제적 환경 등은 우리가 곧잘 비교하는 '선진국'들 만큼은 안되어도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한 경제 규모와 지적재산권을 가진 국가로 발돋음했다. 그리고 우리가 어렵게 획득한 이러한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와 기업들은 WTO와 각종 국제법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지키고 수익사업을 통한 국부 신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대학의 도서관을 본다. 지식의 성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정도로 많은 정서를 자랑하고 국회도서관 데이터베이스 검색/출력, 합리적인 범위에서 희망도서에 대한 주기적 업데이트 등으로 지식의 전당 대학 도서관을 모두에게 개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은 자유를 누림으로 인해서 그 곳 대학 도서관이 지적재산권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곧잘 망각한다. 도서관에 있는 많은 장서들 모두가 지적재산권이 있으며 그것들이 보호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인식하기 힘들게 하는 공간인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망각하려 애쓰는 곳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3달 반이라는 기간동안 장기대여하여 한 학기동안 자기 책 마냥 필기를 하고 밑줄을 치며 강의가 끝나면 책을 반납한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인쇄소에서 책을 제본한다. 그리고는 제본한 책의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느니, 책이 삐뚤게 제본됐다느니 하면서 불평한다. 등록금보다 갑절은 될 법한 돈을 술값에 쓰면서도 책을 사는 일에는 한없이 가난한 존재가 된다. 이러한 지적재산권의 무덤인 대학도서관에 변화하는 21C의 조류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지적재산권의 칼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 시작은 미미하다. 한면을 복사하는데 4~10원 정도의 다소 느낌이 약한(?) 단위의 경제논리를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잘 줍지도 않는 10원짜리가 이 지적재산권이라는 새로운 경제분야에 투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약한 단위여서 체감이 오지 않을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레포트나 연구논문을 하나 작성하는데 보통 수백 페이지에서 수천 페이지까지 인쇄를 하게 되니 경우에 따라서는 금전적인 문제가 제법 크게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조금씩 인쇄를 하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를 목적으로 금전적인 지출을 독자들에게 강요하여 그것을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서 실행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정책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경제 분야가 새롭게 탄생되었다는 사실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정적으로 한 번 파생되기 시작한 경제논리는 그 속성에 의해서 결코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2천년전 예수 박해 시절에 존재하던 농경과 매춘이 21C의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산업화/상업화되어 창궐(?)하는 것처럼 한 번 창조된 경제 분야는 그 속성에 의해서 끊임없이 자기생존을 하려하고 자기확대를 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는 쌀을 살 때는 돈을 주어야 한다는 것처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조금씩 독자들에게 '책을 복사할 때는 돈을 내야 한다'는 사고로 스며들게 된다. 그것은 원가의 몇 배에서 수십배에 이르는 1회용 비닐봉투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정착(?)단계에 이른 현재처럼 망각의 동물인 인간은 언젠가는 그것에 내가 왜 돈을 지불해야 하는지조차도 망각하게 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증명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그 지불의 이유가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하는 시기부터 이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상금(현재 학교 도서관에서 받고 있는 비용의 명목은 '지적재산권자에 대한 보상'이다.)은 인상에 인상을 거듭한다. 그리고 그 인상하려고 하는 가격은 소비자와의 줄다리기 속에서 무언의 합의를 통해서 조정된다. 오늘날의 한국에 존재하는 불법깡패노조들이 저지르는 임금인상 방식과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나는 점차 '지식의 세습'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무형적 형태로 그려지고 인식되어지던 감정이었지만, 어제 처음으로 유산자 계급에 한해서만 고급 지식이 전달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눈으로 확인했다는 사실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지식의 세습을 통한 사회적 계급의 고착화를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경제적 가치만큼이나 사회적 신분과 계급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인 지식이 고도산업사회/고도자본주의사회가 되어감에 따라 경제적 가치가 세습되는 것처럼 지식 또한 세습될 수 있음을 직접적인 경고를 해야할 때가 왔다고 여겨진다. 지식의 세습은 무산 계급의 신분상승의 욕구를 한차원 더 강하게 압박하고 무산계층의 패배주의적 사고를 확산시켜 중산층 이상의 기득권 계층의 사회적 지배를 공고화하고 신분의 사회적 이동이 막히는 진화/발전하지 않는 폐쇄적 사회의 도래를 경고할만 하다.

어쩌면 이미 이와 같은 지식의 세습은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TOEIC/TOEFL시험비용이 10만원 단위를 넘을 예정이고 각종 전공서적/전문서적들의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인상되기만 하고 있다. 지식의 무한 공유로 일컬어지던 전자도서관도 기득권층이라 할 수 있는 출판 업체과 로비를 받은 정재계 주요 인사들의 반발에 의해 반신불수의 절름발이 도서관으로 전락한데다가 그나마도 찾아보기 어렵다. 인터넷 서점들의 도서에 대한 저가 공세를 막기 위해서 출판사 측과 공조한 도서출판 '두리'의 대표이사 이자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우상호가 발의한 도서정가제(정식명칭은 '출판 및 인쇄진흥법 개정안') 덕분에 인터넷 서점들의 도서 저가 판매를 통한 지식의 원활한 공급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사소한 것들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움직임들이 '시작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발동이 걸리고 하나의 조류를 형성하게 되는 순간 그 조류의 흐름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조류는 결코 무산계급자들에게 유익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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