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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7/23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의무
자본주의의 우월성은 개인의 이윤추구와 사유재산을 허용한다는 점에 있다. 인간의 소유욕을 촉진시키고 소유를 정당화시키는 이 논리는 자본주의가 그 어떤 논리보다도 가장 인간의 본성에 충실케 하는 동시에 가장 역동적이고 자발적 행위를 위한 동기를 유발하여 그 어떤 논리보다도 빠르고 명확한 근대화의 첨병으로 역할하게 만들었고,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소유욕을 억압한 사회주의와의 대결에서 자본주의가 최종적 승자로 남게 만든 결정적 요인임을 지적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즉, 사유재산제는 자본주의의 근간이며 힘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에게 자본의 축적을 허용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개인이 축적할 수 있는 자본은 무제한적이며 무차별적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개인이 독립적 행위자로서 활동가능한 모든 범위 내에서 자본의 획득과 축적을 자율에 맡기고 있다. 그리고 국가는 이러한 개인이 축적한 자본(재산)을 공적인 제도와 행위를 통해 보호하고 지속시킴으로서 국가는 개인에게 ‘재산세’라고 하는 조세의 의무를 부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조세의 의무를 충실히 하는 댓가로 국가라는 운명공동체로부터 그들 각자의 재산권 행사의 권한을 보호 받는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러한 이론적인 모습과는 달리,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개인 행위자는 그 개인의 행동반경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국가의 제도적 행위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국가는 때때로 이러한 개인행위자들의 영향력에 따라 공적인 제도를 개정 혹은 발의하여 개인 행위자의 사적 욕구를 제도로서 보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서 미국과 같은 방위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국가의 경우 군산복합체1로서 개인행위자의 이익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확보/보장하기도 하고, 한국의 경우는 과거 곤궁하던 시절 가난을 탈출하기 위한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수출신용장’과 같은 제도적 수단을 적극 활용한 오늘날의 재벌들이 바로 그러한 국가의 제도적 행위력을 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영향력을 미치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기득권을 활용하여 스스로를 최적화시켜 성장한 것이 예로서 활용될 수 있다.
즉 자본은 온전한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 육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혹은 정치/경제/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소수의 특정한 개인의 의지와 경제사회적 기득권에 의해서 육성되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들이 명백히 존재하는 정치/경제/사회적 영향력2을 완전히 배제하고 순수하게 개인의 역량과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경제사회적 기득권만으로 현재 나타나는 굴지의 자본가 계급으로 성장했다고 주장한다고 하여도 그들이 그러한 지위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역량이기 이전에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 선행 조건임에는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상속재산을 통한 사회 기득권 계층 편입의 경우에도 궁극적으로 개인행위자로서의 상속대상자들은 그들의 선친이 ‘국가와 사회의 관리와 통제, 보호 속에서 축적한 경제사회적 부’를 계승하게 되는 것이다. 부에 대한 소유주는 바뀌는 것이지만, 부가 획득되고 축적되는 과정은 동일한 것이다.
이처럼 어떠한 개인행위자라고 하더라도 부가 축적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국가 혹은 공공의 제도가 개입하게 되어 있고 국가는 이러한 행위자들의 재산권(기득권)을 자의든 타의든 제도와 공권력을 통해서 보호하고 유지시킨다. 어떠한 개인이 축적한 부라고 하더라도 그 부에 대한 사회적 역할은 배제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부는 온전히 사유화될 수 없고 어떠한 부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 ‘부의 공공성’에 대한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많은 자본가 계급에 속하는 개인행위자들이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부를 통한 자선활동을 일컬어 ‘사회환원’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그들 스스로도 암묵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들이 획득한 부가 온전히 개인행위자의 행위의 결과로서 획득한 보상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상대로 한 일종의 ‘노획’3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노력으로서 획득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통해서 빼앗은(혹은 강탈한) 것이기에 그들의 부가 공공을 위한 자선활동에 쓰여 지는 것이 ‘베푸는 것’이 아니라 ‘환원하는 것’으로 밖에 표현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몇몇 공대생들이 사회과학계열 학생들에게 빈정거리며 침을 뱉듯이 내뱉는 ‘사회과학계열의 말장난’따위가 아니다.
프로테스탄티즘에서 구체화한 것처럼 자본주의에서 추구하는 '부의 획득을 위한 무한한 노력'은 오늘날도 널리 권장되고 있는 미덕이다. 자본주의 논리에서는 부의 획득과 축적은 아무리 권장해도 부족함이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무소유의 삶은 그러한 부의 축적이 권장되는 사회에서 비롯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도가적 반발이지, 자본주의에서 무소유에 대한 갈망은 분명 이단이다. 하지만 고도의 행정국가가 완성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축적은 과거의 서부개척시대나 남북전쟁시대처럼 자본가 스스로 자신의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도록 국가가 방관자 혹은 무능력자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국가는 자본가들에게 친화적이고 자본가들의 부의 획득과 축적에 친화적인 공적 제도를 자본가들의 요구에 따라서 얼마든지 남발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것도 자본친화적 공공정책의 추구’ 중 하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공정책을 통해서 육성된 자본가가 획득한 부의 자본가와 고용자 사이의 분배 과정’은 분명 자본가 친화적으로 특화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특권을 부여한 국가는 자본가들의 특권 유지(이윤추구에 유리한 특권적 경제사회적 환경조성 노력)를 위해 공공의 이익을 희생하였다. 희생된 공공의 이익+@가 바로 자본가가 사회의 일반대중들을 위해 환원해야만 하는 자본의 권장량4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자본가들은 그들이 획득한 자본이 완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해선 안된다. 이것은 반자본주의적 견해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이자 고도산업사회인 오늘날의 산업 국가들의 자본가 모두에게 해당되는 범용의 가치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재단을 운영하는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는 자선재단의 규모만큼이나 거대한 부를 사회로부터 획득한 대표적 자본가이다. 자본가들은 국가와 사회의 연대적 희생5과 제도적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이 보답해야 할 사회적 의무’를 행하는 데에도 일반대중들은 그 자본가들에게 존경이라는 유무형의 가치(CEO에 대한 존경은 해당 기업의 추가적 이윤창출로 이어지기에 유형의 가치이기도 하다.)를 제공하고 국가는 그런 자본가들에게 세제 혜택과 제도적 특혜(세무조사와 같은 정부 차원의 공적 규제 완화)를 제공하여 그들이 당연히 치러야 할 사회적 가치환원에 대해 화답한다. 사회환원은 선택이 아닌 자본가들과 기득권 세력의 필수적 의무다.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행해도 계속해서 수혜자로서 존재하는 자본가 계급.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 것인가?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왜 자본가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방기(放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들은 이토록 무관심한가? 아니면 자본가 계급들과 기득권 계급들이 창조한 천민자본주의 논리에 뼛 속까지 심취하여 자신들의 가난을 온전히 자신들의 무능함 때문만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인가? 자본의 의무도 아닌, 헌법이 정한 '국민의 당연한 의무'인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하는 신세계 일가의 납세사건이 어째서 재계에 그토록 강한 충격파를 주었는가? 대통령마저 법을 우습게 알다 보니, 나라 꼴이 법을 지키는 사람이 신기할 지경까지 이른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자본과 자본가들의 노예로서 살아가는 것에 놀랍도록 적응해 버린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낙오자들인가?
Hedge™, Against All Odds..
- 방위산업체, 군부, 정치인들의 커넥션 [본문으로]
- 권력층을 향한 로비 능력 혹은 권력층이 특정 개인을 육성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만드는 동인. [본문으로]
- 착취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했으나, 보수꼴통인 내가 최악 중에서도 최악인 꼴통 Marxist로 오해 받을 것을 우려하여 다른 용어를 선택했다. [본문으로]
- 경제적 의무와 사회적 의무는 완전히 수치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이기에 총량이 아닌 권장량으로서 표기하였다. [본문으로]
- 한국으로 따지자면 국제구제금융 위기 당시에 있었던 금모으기 운동이나 국제구제금융 위기의 1차적 원흉인 제1, 제2금융권들이 밑 빠진 독처럼 빨아들인 공적자금이 있다. 미국의 경우라면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7~80년대 투입되었던 공적 자금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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