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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사들

- 노대통령 또 '美실무방문'
알아서 기어버린 꼴인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진타오 주석이 올해 미국을 '국빈방문'하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쳤으나, 결국 국빈방문을 하지 못했다. 예우는 국빈방문에 거의 근접하는 대우를 받았으나 끝까지 미국은 국빈방문(State Visit)이라는 표현을 허락치 않았다.

'국빈방문'이라는 것은 사실 지극히 형식적인 문제다. 그러나 국빈(國賓), 국가적 손님/고객이라는 형식이 가지는 의미와 국가對국가로서 서로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재확인하는 간단명료한 절차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가 70년대 對UN외교에 열을 올리며 UN총회에서 北의 사주를 받은 소비에트 연방/중국 공산당(당시 중공이라고 불렀다.)의 발의가 채택되지 않기 위해서 제3세계에 적극매진할 때 한국은 당시 아프리카 표심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가봉의 봉고 대통령을 엄청난 호들갑을 떨며 국빈 대접한 적이 있다.(나를 지도하시는 교수님께서 봉고 대통령의 환영 가두행진에 '동원'된 적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다소 과장된 비유일 수도 있지만, 국빈이라는 존재는 서로 상대방에게 그만큼 자신의 존재가 중요한 존재라는 인식의 교감이다.

후진타오의 방미는 美中관계가 얼마나 불편한 관계인가를 전 세계가 생중계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중국은 국내정치선전을 위해서 후진타오 주석의 방미를 끝까지 '국빈방문'임을 강조했지만, 미국은 한 번도 후진타오를 국빈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이와는 좋은 대조를 보이는 것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의 방미 과정에서 보이는 미국의 성의(?)일 것이다. 대통령 전용기인 Airforce1까지 내어 주었다고 하니 더 이상 비교할 거리도 못될 것이다.

분명 국빈방문은 형식상의 절차다. 실무방문(Working Visit)을 한다고 정상회담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실무방문을 해도 할 일은 다 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해서 실무자진들이 몇 달에 걸쳐서 조율해 놓은 서류에 그냥 서명만 끄적대고 서로 "날씨가 좋네요"하면서 노닥거리다가 오면 된다. 그게 정상회담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 실무방문의 배경에는 美中관계만큼이나 韓美관계가 심하게 삐그덕거리고 있음을 청화대와 정부 수뇌부 측에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빈방문을 해달라고 미국측에서 요청하지도 않았고, 우리 나라 쪽에서도 아예 요청할 생각도 안했다는 사실은 약소국의 패권국 외교에서 떠안는 일종의 '힘쎈 국가를 내편으로 만들거나 중립적 위치에 두기'라는 기본적인 외교전략조차 완성하지 못한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빌 클린턴/김대중 시절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부시가 김대중/노무현의 입맛에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약자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그 원숭이의 입맛에 맞춰주는 융통성이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노무현과 노무현의 주변 좌파수구꼴통들은 그것을 거부했고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와서는 한때 북괴(당시 '북괴'였다.)/베트남을 상대로 전쟁을 함께한 혈맹이었고 미국이 전세계에서 5개국(NATO는 '집단방위체제'이므로 제외되었다.)도 안되는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나라인 한국과의 관계가 이토록 흔들리게 되었다.

굳이 국가 간의 외교가 아닌 세상 사는 인간사에서도 지금 있는 내 편은 더욱 돈독하게 지켜내고 새로운 내 편을 끌어들이고, 나의 적은 최소한 중립적 입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기본적인 처세술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이 나라는 있는 내 편조차도 지키지 못하고 내 적의 친구에게 꼬리를 살랑거리며 흔들다가 이도저도 아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가는가? 내가 체득한 처세술이 세상의 처세술과 상반되는 잘못된 것인가?


Hedge™, Against All Odds..

오늘의 기사 : 그는 베트남의 金九냐… 테러리스트냐

▲ 美베트남인들 석방 촉구
미국 LA에서 열린 베트남 반체제 인사‘찬 후 누엔’석방 촉구 집회. 누엔씨가 서울에서 체포된 뒤 미국에서는 누엔씨 석방을 요구하는 베트남계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쾅 누엔 씨 제공. 조선일보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한국에게 아주 귀찮은(?) 골칫거리가 있었나 보다. 소위 말하는 '반체제 인사'의 체포와 신변인도 문제가 그것인데, 주로 이런 문제는 익히 알다시피 공산권 국가/독재국가/군사정권/왕정국가들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사건이다.

국제관계는 국가의 정당성이나 권력구조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보다 '그 국가가 자국의 발전에 이익이 될 수 있는가/없는가'라는 실리적인 측면 하나만을 판단한다. '그리스'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인구 30만명의 소국 '마케도니아'라는 국가를 우리가 '우방국인 그리스의 적성국'이라는 핑계로 독립 10년이 넘도록 수교를 체결하지 않는 현실은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그리스가 소국인 마케도니아보다 더 현실적인 이익이 되기 때문에 수교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중국에서 아무리 인권이 문제가 되고 정치권력의 정통성이 없다고 해도 중국이 우리에게 큰 이익이 되는 이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국제관계의 만고불변의 진리다. '孔孟'의 이상적 논리따위는 조금도 논의되지 않는다.


한국은 '약간'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베트남은 한국에 있어 중요한 산업의 전진기지다. 중국 노동력의 고임금화 현상이 지속되면서 많은 중국 기업들이 베트남으로의 '제2의 탈출'을 시도하거나 이미 베트남에서 자리를 잡은지 오래된 상태다. 이 땅의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대거 빼앗아간 베트남은 한국 산업의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이며 베트남과의 우호적 관계의 유지는 국익의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우선순위 중 하나다.

그러나 이와 같은 反베트남 정서의 시위는 한국에게 적잖은 부담이다. 한국이 이 테러리스트에 대한 베트남 송환에서 대해서 공개적으로 한국과 한국정부를 비난할 국가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도 존재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름 모를 테러리스트의 송환 문제를 두고서 베트남과 한국이라는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와 거리가 멀어지길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관계에서 고려해야할 상황은 단지 국가對국가의 관계만이 아니다. 베트남을 탈출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할 수 없는 자유를 갈망하던 보트피플과 그들의 2세들의 반발이 부담이다. 사실 그들에게 지금 '베트남'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여전히 그들에게 '조국'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反베트남 정서가 시각화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과 한국정부에게는 모험을 감행하기 어렵게 만든다.

어떤 식으로 해결이 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베트남에게도 한국은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이기 때문에 심하게 대립각을 세우지 못할 것이기에 아마도 서로 어영부영 시간을 끌다가 제3국 추방쯤으로 해결을 보지 않을까....예상해 본다.(결국 짐을 베트남과 큰 이해관계가 없는 다른 나라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되지 않을까. 그게 베트남으로서도 송환을 위한 좀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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