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알 자르카위 사망, 3류매체 팝뉴스, 야스쿠니 신사

- 팝뉴스, 맨날 소설 쓰더니 제대로 딱걸렸다.
매번 불법으로 추정되는 해외언론의 기사를 마음대로 번역해와서 기사랍시고 포털 사이트에 납품을 하더니, 이번에 또 소설 쓰다가 제대로 딱걸렸다. 남의 글을 제대로 베껴오지도 못하는 양반이 기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포털뉴스 납품업체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작금의 이런 저질신문사들의 창궐은 파란닷컴이 1년간 실행했었던 스포츠뉴스 3사에 대한 기사 독점권 확보 때문에 촉발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제일 광고전단지 언론인 팝뉴스가 또한 번 구라를 쳤다.

포털 소설가(?) 보기 [클릭]
동영상 보기 [클릭]


- 미군공습으로 알카에다 지도자 알 자르카위 사망

[사진 : 조선일보]

오늘 낮, 전지구적으로 매우 다행스럽고 잠시 테러리즘의 공포 속에서도 즐길만한 사건이 있었다. 알 카에다의 유력 지도자인 알 자르카위가 미군의 공습을 통해서 알 자르카위가 바그다드의 북동부 쪽 50km지점의 바쿠바 은신처에서 사망했다고 이라크 국영 알 이라키야가 전했다.

예전에 테러리즘에 대해서 관심이 증폭되었을 때 글을 몇 개 쓴 적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자살폭탄 테러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졸개근성'에 대해서 언급했던 적이 있다. 그들이 졸개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에게 자살폭탄테러를 사주하는 자들은 절대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의 그 특권적 지위를 내면적으로 정당화해버리고 그들 스스로를 희생하는데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자신을 신격화한다는데 있었다. 결국 그들의 어리석고 순진함을 이용하여 알 자르카위는 자신의 악명을 쌓았고 이라크 민중과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 이라크 파병군의 생명을 위협하였으며 이라크 내의 치안유지활동을 저해하였다.

테러리즘은 절대악에 가깝다. 아니, 절대악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이라크 민중들이 과연 그들의 삶의 질을 저해시키고 생명마저 위협하는 알 자르카위를 지지했을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알 자르카위와 유사 테러리스트들의 자살폭탄테러가 없었다면 오늘날 미군들의 민간인 학살 의혹이나 민간전투원 등이 이라크 내에서 문제를 일으켰을까? 미군이나 민간전투원들도 인간이다. 공포가 있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방어행위를 할 의무가 있다. 알 자르카위의 테러리즘은 이라크의 전쟁 상태를 지속시켰고 이라크 민중들 중 일부를 선동하여 자살테러에 뛰어들게 하였다.

이와 같은 치안부재의 상황은 전쟁터에서 지켜져야 할 교전수칙을 지키기 힘들게 만든다. 이라크인 어린 꼬마가 이유없이 웃으며 미군에게 달려 드는 것조차도 자살폭탄테러를 경험한 생존자들에게는 히스테릭에 가까운 공포를 유발한다. 이라크에서는 제복을 입고 전투에 임하는 군인은 미군과 각국 파병군 밖에 없다. 민간전투원들과 이라크 무장 게릴라들은 총만 버리면 바로 민간인이 된다.

지금 우리가 한국에서 보고 있는 미군의 이라크 민간인 학살의 기사들이 과연 진실인가? 아무도 모른다. 죽은 이라크인과 테러의 공포 속에서 의심나는 사람들을 무차별 도륙한 미군 자신만 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생지옥을 만든 원흉은 오늘 뒈진 알 자르카위와 같은 테러리스트들이다. 통제되지 않는 약자의 테러리즘은 반드시 파멸되어야 한다.


- 야스쿠니 신사의 다국어 번역 팜플렛
야스쿠니 신사가 지속적으로 국내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그들 내면을 들어가 보지 않고서야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야스쿠니 신사가 (속칭 '일빠'놈들이 아닌 정상적인)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배포중이라는 팜플릿. 사진 : 세계일보]


우리의 영웅 김구는 일본을 비롯한 제3국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과 마찬가지다. 도시락 폭탄으로 유명한 윤봉길 의사는 제3국에서는 폭탄테러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일본의 영웅 도조 히데키는 일본 밖에서는 침략의 원흉일 뿐이다. 20C 아시아 평화의 원흉이자 모든 아시아인이 죽이고 싶어 했던, 쪽빠리 섬나라 왜국의 수장이었던 일왕 히로히토는 1989년까지 존경 받으며 살았다.

그럼 김구/윤봉길을 우리가 추앙하는 것처럼 도조와 히로히토를 추앙하는 것을 묵인해야 하는가? 어차피 그들의 역사이고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결코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있다면 왜왕 히로히토와 그의 똘마니 도조 히데키가 없었다면 김구와 윤봉길도 생길 일이 없었다는 것이고, 히로히토와 도조는 능동적 존재로 역사 속에서 행위하였지만, 김구와 윤봉길은 히로히토와 도조가 만든 역사 속에서 수동적으로 행위하였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 사이의 메워질 수 없는 결정적 차이점이며 둘의 존재가 결코 같을 수 없음을 뜻한다.

어떤 면에서 이와 같은 흙탕물 튀기는 역사는 역설적이게도 미국 정보부가 일본의 전투력에 대해 오판을 함으로서 러시아를 끌어들이고자 안간힘을 쓰면서 원자탄이라는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2차례에 걸친 원자탄 폭격으로 수십만명이 사망하여 그로기 상태인 일본의 항복을 이끌어내었으나, 오늘날 우리가 좋아라하는 '국제여론'에 등떠밀려 일본에 결정타를 먹이지 못하고 어중간한 일본의 항복 조건을 수용하면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래서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는 것이다. 그 때 일본을 좀 더 확실하게 몰아붙이고 원자탄이 한 방만 더 떨어졌다면 지금 이와 같은 흙탕물은 안튀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참 재밌으면서도 절대 웃을 수는 없는 곳이다.

Hegde™, Against All Odd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