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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이지 못했던 설 연휴로부터 복귀 + 이런저런..

이미 충분히 예상된 여정(?)이었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썩 유쾌하지만은 못한 고향길이 되었다. 도착해서 점심 밥상을 치우자마자 문중 재산을 빼돌린 친척에 대한 성토와 유사(무슨 제사를 지내는 일인 것 같음) 때 그 집안이랑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한참 시끄러웠다.

어머니들끼리의 이야기 자리에서는 최근 실직을 한 사촌 형님을 큰어머니께서 내 아버지의 공장에 밀어 넣으려고 운을 뗐다가 눈치 빠른 어머니에게 제지 당하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처음 공장 문을 열 때 사촌형님들 중에 직장이 불안정한 형님들에게 일을 같이 하자고 제의했을 때 꽤나 아버지께 상당히 서운하게 했던 적이 있어서 별로 좋은 감정이 없는 터였는데, 이제와서 아버지 일이 잘되고 당시에도 불안정했던 사촌형님 직장이 없어지자 최소 월 250만원 이상을 달라고 구체적인 조건을 들이대며 태워 달라는데 좋아할 리 없다. 귀경길의 차에서 잇었던 간단한 가족 회의에서 절대 받아 들이지 않기로 합의가 되었다. 더구나 그 공장은 곧 내 공장이 될 곳이다. 불필요한 밥그릇 다툼을 일으킬 소지를 만들 필요는 없다.

마무리로는 양주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백부님들과 아버지께서 자정까지 놀다가 과거 아버지 세대들의 가난의 유산으로 빚어진 '못배움에 대한 한'이 술김에 나왔다. 다른 백부님들이 국졸을 마치지 못할 때, 고졸까지 하셨던 첫째 큰아버지께서 자격지심에 언성을 높이시면서 한바탕 시끄러워졌다. 덕분에 4형제의 막내였던 내 아버지랑 셋째 큰아버지께서 언쟁을 말리셔야 했고 둘째 큰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따로 한풀이 하시는 도중에 옛날에 어려웠던 얘기들을 하시면서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물을 쏟으시는 꼴까지 보게 되었다.


1년에 한 번 있는 내 생일이자 민족의 대명절날이면서도 여러 가지 유쾌하지 못한 일들이 연달아 터지는 어수선한 날이었다. 여기에 술이 많이 되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적은 양이었지만 조니워커와 시바스 리갈을 몇 잔 마시고 살짝 취했던 내가 겨우 술을 깨워서 부모님을 아버지 차에 모시고 대구로 귀경하는 무리수를 두어야만 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아들 녀석이 처음으로 부모님 모시고 명절여행을 한 것에 대해서 꽤나 만족해 하시는 눈치다. 시내 돌아다니는 것과는 좀 다르니까..

- 운전경력이 올해로 3년차이고 나름대로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토만 몰았던 내 운전실력은 참으로 허접이다. 아버지 차만 타면 스스로 보기에도 정말 팔푼이가 되어 버린다. 오토가 대세라지만, 아직도 스틱 자동차가 많은데 부담스럽다.


Hedge™, Against All Odds..

긍정적이지 못했던 설 연휴로부터 복귀 + 이런저런..

이미 충분히 예상된 여정(?)이었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썩 유쾌하지만은 못한 고향길이 되었다. 도착해서 점심 밥상을 치우자마자 문중 재산을 빼돌린 친척에 대한 성토와 유사(무슨 제사를 지내는 일인 것 같음) 때 그 집안이랑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한참 시끄러웠다.

어머니들끼리의 이야기 자리에서는 최근 실직을 한 사촌 형님을 큰어머니께서 내 아버지의 공장에 밀어 넣으려고 운을 뗐다가 눈치 빠른 어머니에게 제지 당하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처음 공장 문을 열 때 사촌형님들 중에 직장이 불안정한 형님들에게 일을 같이 하자고 제의했을 때 꽤나 아버지께 상당히 서운하게 했던 적이 있어서 별로 좋은 감정이 없는 터였는데, 이제와서 아버지 일이 잘되고 당시에도 불안정했던 사촌형님 직장이 없어지자 최소 월 250만원 이상을 달라고 구체적인 조건을 들이대며 태워 달라는데 좋아할 리 없다. 귀경길의 차에서 잇었던 간단한 가족 회의에서 절대 받아 들이지 않기로 합의가 되었다. 더구나 그 공장은 곧 내 공장이 될 곳이다. 불필요한 밥그릇 다툼을 일으킬 소지를 만들 필요는 없다.

마무리로는 양주 퍼레이드(?)를 벌이면서 백부님들과 아버지께서 자정까지 놀다가 과거 아버지 세대들의 가난의 유산으로 빚어진 '못배움에 대한 한'이 술김에 나왔다. 다른 백부님들이 국졸을 마치지 못할 때, 고졸까지 하셨던 첫째 큰아버지께서 자격지심에 언성을 높이시면서 한바탕 시끄러워졌다. 덕분에 4형제의 막내였던 내 아버지랑 셋째 큰아버지께서 언쟁을 말리셔야 했고 둘째 큰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따로 한풀이 하시는 도중에 옛날에 어려웠던 얘기들을 하시면서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물을 쏟으시는 꼴까지 보게 되었다.


1년에 한 번 있는 내 생일이자 민족의 대명절날이면서도 여러 가지 유쾌하지 못한 일들이 연달아 터지는 어수선한 날이었다. 여기에 술이 많이 되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적은 양이었지만 조니워커와 시바스 리갈을 몇 잔 마시고 살짝 취했던 내가 겨우 술을 깨워서 부모님을 아버지 차에 모시고 대구로 귀경하는 무리수를 두어야만 했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아들 녀석이 처음으로 부모님 모시고 명절여행을 한 것에 대해서 꽤나 만족해 하시는 눈치다. 시내 돌아다니는 것과는 좀 다르니까..

- 운전경력이 올해로 3년차이고 나름대로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토만 몰았던 내 운전실력은 참으로 허접이다. 아버지 차만 타면 스스로 보기에도 정말 팔푼이가 되어 버린다. 오토가 대세라지만, 아직도 스틱 자동차가 많은데 부담스럽다.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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