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About The Search in Posts

미얀마, 또 한 번 힘의 논리를 증명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위대가 군부에 해산당하며 버려진 시위대의 신발들. Photo : AP연합]

미얀마의 오랜 군부정권과 낮은 교육수준의 국민들, 그리고 국민들 만큼이나 원시적인 미신적 신앙을 가진 세계 10대 독재자 중 한 명인 미얀마의 통치자 탄쉐의 단세포적 무지함 등이 어우러진 미얀마의 에너지정책 반대 시위에서 촉발된 반정부 시위(작금의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를 민주화 요구 시위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경계되어야 한다. 현지 시위대는 단지 탄쉐 군정에 반발하고 있을 뿐이다.)가 날이 갈수록 그 위세를 더해가고 있다. 그리고 불행히도 강해지는 시위대의 위세만큼이나 권좌를 수호하고자 하는 탄쉐의 총구도 그 숫자를 더욱 늘려가고 있다. 때마침 비슷한 시기에 근처 국가 중에 하나인 네팔의 갸넨드라 국왕이 국민적 반발을 등에 업은 의회세력에 의해서 전재산을 몰수당한 채 권력에 축출되어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되는 것[관련글 보기]을 목격하며 국민적 저항을 조기에 진압하지 못한 독재자의 말로를 목격한데다가, 탄쉐의 원시신앙에 의해서 미국의 공습할 것이라는 점괘를 두려워하여 행정부 기능을 밀림지역으로 극비리에 이전할 정도로 단세포인 탄쉐의 무자비함이 더해져 21C의 아시아에서 또다시 전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국가적 재난이 벌어지고 있다.


미얀마 군정에 대한 소요사태는 어떤 면에서 미얀마 국민들과 미얀마라는 국가에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면 특별히 관심을 가질 일이 결코 없는 '미얀마'라는 세계적 빈곤국에 대해, 정치라면 눈부터 질끈 감아버리고,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하던 이들 중의 일부에게 미얀마라는 국가가 처한 현실에 대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한 타자(他者)인 외국인들의 관심이 실제로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그러한 작은 관심들이 서방 선진국들과 민주주의 진영의 보이지 않는 커넥션에 속하는 진영으로 하여금 미얀마라고 하는 국가의 폭압적 정권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압박하게 만드는 도의적 압력으로서 작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오랫동안 미얀마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미온적이나마 관심과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과 부시 행정부 내의 강경 보수파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대로 물만난 고기마냥 미얀마와 탄쉐를 후원하고 있는 '新악의 제국' 중국을 싸잡아 비난하며 공세의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6자 회담에서 중국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부시 외교부에서 공식적으로 중국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6자 회담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며 중국을 냉전시기 러시아에 버금가는 잠재적 적성국가로 내정한 미국 내의 매파 세력들에게는 이라크 사태로 침체된 자신들의 입지를 재구축하며 국민적 관심을 돌리기에 용이하며 중국을 흡집내기에 좋은 꼬투리를 잡은 셈이다. '적극적 의미의 민주주의 확산'을 꾸준히 주장해온 그들에게 도덕적 善의 진영에 서서 惡을 응징하는 구원자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것은 그들로서는 간만에 느껴보는 유쾌한 '총대메기'일 것이다. 더구나 국제사회의 또다른 강력한 축인 유럽연합(EU)도 미력하나마 경제제재를 결의함으로서 실질적으로 미얀마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탄쉐 군정이 국제사회의 공적(公敵)으로 낙인 찍으며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진영에 큰 힘을 보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측 하단에 쓰러진 흰머리의 사진기자가 총격으로 사망한 일본인 기자 나가이 겐지. 2007년의 탄쉐는 군사정권이 붕괴되기 딱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외국인(특히 선진국 국민)에 대한 폭력행위는 외교적 지지기반이 취약한 독재정권들에게 매우 치명적 타격으로 작용한다. 겐지와 겐지에 이어 발생할지도 모르는 또다른 외국인들의 죽음은 '미얀마의 봄'에 일익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Photo : 로이터]


하지만 이번 미얀마 소요사태는 또한 번 국제사회가 신현실주의적 관점의 힘의 논리와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로 지배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 그늘진 양지임을 증명하는 표본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세습적 파벌들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일당독재공화국' 중국은 자신들의 뒷마당(Backyard, 국제정치적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이나 마찬가지인 미얀마의 현재 정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때문에 전세계적인 자유민주커넥션의 미얀마에 대한 일관된 반대와 증오, 응징의 메시지 속에서도 자신들에게 정치경제적 이윤을 제공하는 미얀마 탄쉐 정권을 옹호하거나 때로는 국제사회의 강압에 못이며 UN총회에서 침묵으로서 미얀마에 대한 '묵시적 지지'를 보내며 미얀마의 현 상황이 변화하는 것에 최대한의 지체 혹은 저지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자신들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천안문의 시위대를 학살했으며 '정치개혁' 혹은 '정치혁명'(미얀마의 시위대가 현정권에 대한 반대 의사만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에 뜻을 가진 자들을 구속하거나 국외로 추방시킨 중국이기에 어쩌면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군정에 대한 반발 시위를 무력진압하는 것은 중국의 관점에서 '매우 당연한 처사'일 수도 있다. 결국 중국과 중국 정치, 중국 국민의 후진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한 단면으로서 이번 사건은 자료로서 또 한 번 제공될 것이다.

미국과 EU등의 서방진영들도 이러한 냉소적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냉소적 시선 자체가 현실주의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이러니인가?) EU발전의 장애물이자 EU의 큰손 중 하나인 영국의 前수상인 마가렛 대처의 아들 마크 대처는 서아프리카의 원유부국이자 30년 가까이 군정으로 권력을 독점한 오비앙 응구에마와 그 일족의 철권통치에 신음하는 적도기니를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앙골라 내전에 활용된 32연대 소속 군인들의 잔여세력으로 이루어진 용병으로 붕괴시켜 친위정권을 세우려 했다. 미국도 2006년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무장관이 적도기니의 응구에마를 '좋은 친구'라고 호칭하며 적도기니의 원유 채굴권에 관심을 보였다. 김정일에게 '폭군(Tyrant)'이라고 호기롭게 비난하며 며칠 전에도 '야만적 정권'이라며 북한/이란 등의 정치와 인권 문제에 관심을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는 냉소를 피할 수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한 무리의 모임에서는 술잔을 부딪칠 때 외치는 말이 있는데, 여느 술자리에서는 자주 보기 힘든 독특한 구호가 있다. 그것은 "나를 위해-!!"라는 구호인데, 모두가 서로 자신을 위해서 건배를 한다.
미얀마와 북한의 차이는 '대량살상무기의 유무'와 '돈이 되는 취약성을 가진 자원'의 유무다. 이러한 차이에 의해서 국제사회의 주요행위자들은 하나의 객체(미얀마/북한/이란 등)를 두고서 서로 다른 사고의 틀을 들이대어 서로 다른 가치판단을 내렸다. 그것은 국제사회의 주요행위자들이 저마다 자국의 관점에서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자국을 위한 국가와 정권'을 정의(正義)로서 판단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감상적 휴머니즘이나 생명존중 같은 가치는 행위자의 단위가 크면 클수록, 행위자의 행위무대가 크면 클수록 그 가치를 상실한다. 2명이 함께할 때보다 3명이 함께할 때 비밀을 지키기가 더 힘든 것처럼 NATO/SCO/EU/ASEAN처럼 소수의 국가까리 뜻을 모으는 것보다 NL/UN/GATT/WTO처럼 광범위한 대단위 행위자가 모여 있을 때 정의는 더더욱 보편성을 지니기 힘들다.(대표적 군사독재국가이자 인권탄압국가인 리비아가 UN인권위원회 의장국을 맡았던 촌극이라던지, 북한의 심각한 정치탄압과 폭압적 대중지배에 대한 UN총회 의결을 북한 스스로가 저지하려 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행히(?) 미얀마 소요사태의 경우는 과거 냉전시기와 달리 국제사회의 주요행위자로서 전면에 등장하여 리더쉽을 가지고 싶어 하는 중국이 서방세계의 압박에 밀리는 듯한 좋지 않은 모양새로 조금씩 미얀마 군정에 대한 지지의사를 철회하기 시작하고 있기에, 이미 내부권력투쟁의 위기에 직면한 탄쉐 정권의 근미래가 그리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미얀마의 낮은 국민의식과 교육 수준으로는 그러한 변화의 기회를 포착하고 국가 재도약의 기회를 활용할 능력이 부재해 보인다. 탄쉐를 대체할 非군사적 정치세력들은 뚜렷한 지지기반이나 군부의 확고부동한 지지를 확보할 가능성이 없다. 작금의 미얀마 현실에서 탄쉐 정권의 붕괴는 단지 또다른 형태의 군부정권이 출범하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로서의 의미 밖에 지닐 수 없는 원시적 의회민주주의 혹은 대통령제가 잠시 출범하거나, 단명할 것이 확실한 추대 형식의 아웅산 수지 정권이 잠시 출범하는 것(그러나 탁신 정권보다 더 빠르게 군사 쿠데타로 붕괴될 정권) 이상의 의미를 찾기가 힘들 것이다.

국가는 반드시 발전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어떠한 형태로 혁명적 변화(그것이 긍정적 변화이든 부정적 변화이든지 간에)는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성공한다고 하여도 발전의 단계만큼이나 길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김일성의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세력 등을 축출하는 과정이 그러했고,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이 그러했으며 등소평의 천안문 대학살이 그러했으며 스탈린의 피의 숙청이 그러했고 우리의 광주사태가 그러했다. 냉전시기 미소의 군축과정이 그러했고, GATT가 WTO로 발전하는 과정이 그러했고, 도교의정서가 비준되는 과정 또한 많은 시간과 그에 따른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의 성장시간을 필요로 했다. 단위가 크면 클수록 혁명적 변화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미얀마인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민주적 정치체제라면 아직도 훨씬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한다. 국제사회도, UN도 그들의 피흘림엔 관심이 없으며, 혹 관심이 있다 하여도 그것은 매우 피상적이고 방관적이다. 국가의 운명은 국민들 스스로가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그 국가의 수준은 그 국가 국민의 수준이 결정한다.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About this entry





Tag Cloud

Authors

Categories

분류 전체보기 (3769)
DSLR놀이 (170)
그가 사는 방식 (1032)
그의 사고 방식 (659)
그의 취미 생활 (1752)
그가 보낸 시간 (143)
Temp (0)

Menu

Counts

  • Total : 1,621,313
    Today : 247
    Yesterday : 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