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Syriana(시리아나) : 리얼리스트들의 이야기



사람이 나이가 들게 되면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가 보다. 젊은 시절부터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고 생각이 깊어지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아지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그렇다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더 정확히 세상을 통찰한다는 말은 아니다. 지식없는 통찰이란 애초에 있을 수 없다.

조지 클루니가 1/3쯤 주연을 한 영화 '시리아나'는 그런 면에서 조금씩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은 조지 클루니의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옛날 영화들과 요즘(특히 작년)찍은 영화들의 면면을 보면 약간 변화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번 학기에 특정 과목에서 보고서를 쓰면서 석유메이저와 산유국의 관계에 대해서 글을 썼는데, 아마 재작년에 '신보수주의'에 관해서 썼던 글 이후로 가장 공을 들여 보고서를 작성했던 것 같다. 보고서를 쓰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기 마련인데, 그 글은 참으로 간만에 내가 하고도 만족스러운 글이었다. 그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갑자기 생각나서 보게되었던 영화가 이 '시리아나'였다.

[##_Jukebox|cfile22.uf@23121F465877EE6309847A.mp3|03 Fields Of Oil|autoplay=0 visible=1|_##]
Alexandre Desplat - Fields of Oil
[Syriana, 2005]

사실 '시리아나'는 국제석유자본에 대한 비교적 악의적인 해석이 가미되면서도 제법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였다. 다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5대 수퍼-메이저 국제석유자본의 대외경제활동에 대한 각국 정부들의 '정치적 지원'에 대해서 다소 가볍게 묘사하는 것 같다. 영화 본편에서 맷 데이먼에 의해서 스쳐지나듯이 언급되고 있지만, '모사데그'의 축출은 바로 국제석유자본의 경제활동이 '국제유가안정'과 냉전시절의 '에너지통제권 공고화'라는 측면에서 행해진 英美의 대표적인 내정간섭 사례다.

엄밀하게 따지고 논하자면 ZERO-SUM관계의 사회에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부와 풍요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고통 위에서 생성되는 고혈이다. 좁게는 국내적인 의미에서 볼 수 있겠지만,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쓰는 물품의 절대 다수가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건너오는 것이 당연시 되는 상황에서 범주를 국내로 한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오늘 내가 마신 1잔의 아메리카노 커피와 3잔의 커피믹스는 남미 혹은 아프리카의 UNDP(United Nations Development Plan)가 지정한 절대빈곤의 기준인 1일 소득 2달러 미만의 빈곤층들이 악의적인 노동력 착취에 시달리며 만들어낸 커피 열매의 산물이다. 나와 많은 젊은이들은 MNCs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착취한 그들의 고혈만큼 더 싸고 더 질좋은 커피를 마신다.

석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저 '어리석은(국왕과 이슬람 지도자들이 사실상의 독재를 하는) 산유국'에서 제대로된 이익을 배분하게 된다면 우리는 오늘날 겪고 있는 고유가의 배는 더 높은 원유 가격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도 원유 가격의 상승분을 국제석유자본과 한국의 원유수입업체들은 한푼도 고통분담없이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부담을 분배(?)한다. 국민들은 그것에 끝없는 불만을 쏟아내면서도 꿋꿋이(?) 그것을 사서 쓴다.

안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체 연료의 개발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콩기름으로 만드는 석유? 그 콩기름 석유가 전지구적인 수요와 가용성을 가지려면 얼마나 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석유자본들이 그들의 연구를 방해한다는 식의 근거 없는 음모론이 깊이 있는 고찰을 하지 않는 대중들(개인은 영리하더라도 대중은 어리석을 수 밖에 없다. 영리한 개인은 어리석은 대중과 승산없는 싸움을 하기보다 타협해버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태생적 한계이며 대중의 한계다.) 사이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그것이 진실로 통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생산업체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할 것인가? 그러다가 만약 그 기업이 만약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에너지 공급에 차질을 빚기라도 한다면? 에너지 기업은 명백히 이익단체이지만, 이미 이익단체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지금 당장이라도 60여개 산유국 모두가 석유의 국유화를 선언(국유화를 선언해 봐야 그들 대부분은 석유를 현재 국제유가시장의 가격에 맞춰서 원유를 생산해낼 능력도 없다. 턱없이 오른 유가는 대체연료의 개발을 자극하고 원유소비 감소를 초래할 뿐이다.)하고 그로 인한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미국과 영국/러시아의 공적자금 투입이 의회에서 지연되어 엑슨모빌, BP가 도산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장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가진 우리의 에너지 비축량은 3개월 수준이라고 한다. 세계 2위의 초거대 경제국 일본도 1년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힘을 가진 선진국/강대국일수록 절대적 취약성을 보이고 있는 에너지 분야에서 위기가 온다면 그들 국가들에게 과연 얼마만큼의 이성적 판단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엑슨모빌과 BP같은 존재가 여러가지 감정적 이유로 인해 해체된다면 전 세계의 경제와 안정이 뒤흔들릴 정도다. 이미 그들의 존재는 영화 '레지던트 이블'에 나오는 가상의 기업 엄브렐러社와 다름 없는 존재이며 그들의 존재가 우리의 이익과 풍요를 보장해 주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에너지는 그래서 무섭고 영화 '시리아나'는 그런 면에서 헛되고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을 마음대로 지껄여 대면서도 아주 현실적이다. 현실이 구역질 나는 것 같지만, 우리는 그 현실 덕분에 풍요를 누리고 있다. 진보가 아무리 옳은 이상을 제시하여도 결국 그 실현될 수 없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대중을 지치게 만들고, 그로 인한 롱텀을 놓고 벌이는 승부하서는 필연적으로 보수에게 패하는 것처럼.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붕괴하는 것처럼.

그래서 현실이 무섭다.

Hedge™, Against All Odd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