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환원'에 해당되는 글 2건
- 2008/05/22 긍정적인 기업가의 모습.
- 2007/07/23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의무
'시장'의 능력을 신봉하는 자들은 시장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실업의 문제도 시장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 믿으며(산업구조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매우 부족하며, 거시적 안목에만 집착한다.), 인간의 복리후생에 대해서도 시장의 활성화에 따른 고용의 증대가 자연스레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그들에게 애초에 실질적 의미의 복리후생이란 존재하기 힘든 것이며, 그러한 작은 정부의 나약한 경쟁력을 시장의 순기능이 해결해 주리라고 설명한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국가의 역할은 외교, 안보, 환경과 같은 거시적이고 대외적인 것으로 제한된다.(그러나 놀랍게도 이 모든 것들은 기업의 활동과 절대 단절되어 고려될 수 없는 것들이다.) 기업가의 최고 덕목은 '무한한 이윤추구'이며 최고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는 존경 받는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우리가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워렌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 등도 결국은 인격적 측면이나 도덕적 측면이 배제된 경제적 측면에서 성공한 사람일 뿐이며, 우리는 그러한 경제적 성공을 이룬 사람을 위인이라 평가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상실한 행위체(실질적으로는 '객체'에 가까운 집단.)들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 도태되는 것이 마땅하다. 시장의 룰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집단이나 개인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장이 가진 힘의 원천에 저해되는 요소들이며 전체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부정적 존재다. 시장에서는 강한 경쟁력을 가진 존재들이 생존하여 시장이 창출하는 부의 선순환을 통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부가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여긴다. 틀린 말이 결코 아니며, 나 또한 그런 사회를 선호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기업가의 존재를 일종의 '착취적 존재'라는 구조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한다.
기업은 소득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을 노동력을 (정상적인 경우에는)'구매'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착취'는 꼭 빼앗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구매'라는 표현을 쓴 것이 그 까닭이다.) 그렇다면 고도산업사회에서 착취란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산업화가 진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간소외, 노동소외 현상을 속에서 인간의 '기계적 필요성'보다 '이성적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그 과정에서 기업의 재무상황이나, 기업가의 경영관/도덕관에 의해서 적법/부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발생하는 노동자의 해고와 임금 동결/삭금 등이 바로 '착취'다. 산업사회에서의 착취는 온전히 마이너스 개념에서의 착취(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범죄로 분류한다.)가 아니라, 상대적 의미에서의 '착취'를 뜻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가들의 소득은 소폭 감소/현상 보전/순증가의 상대적 긍정의 경향을 띄지만, 노동자들의 경우는 반드시 시장 상황에서 취약한 위치에 놓인 채로 실질 소득의 마이너스를 경험하게 된다. 시장 경기에 따른 소득의 변동이 자본의 유무와 직장의 상황에 따라서 차등적으로 이루어지며 벌어지는 합법적 착취인 것이다.
이러한 시장경제의 자연발생적 순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약자 층에 대해서 나는 기업에 책임을 부여하고자 한다. 사회 전체의 부의 과반수를 착취를 통한 자본으로 확보하고 그 격차를 고착화시켜 나가는 기업이 법이 정한 최소한의 규정(법은 최소한의 사회 도덕이라는 점에서 기인) 이외의 기업이 가지는 도의적 책임에 대해서도 역할해야 하는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들은 사회가 불필요한 존재라 하여 도태한 것이 아니라, 기업이 그들의 필요성에 의해서 불필요한 존재로 낙인 찍었고, 그로 인해서 그들이 필연적 도태 아닌 선택적 도태가 된 것이다.
고도 산업화 사회를 필요로 하고 동시에 그것을 만들고자 노력한 것은 기업이고,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이윤을 축적하는 것도 기업이다. 기업은 국가에 기업의 존속과 번영, 노동자의 생존을 연계시켜 특혜를 부여 받으며, 그들의 특수한 지위를 이용하여 정의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부당하게 혹은 명목상 합법적으로 축적한 이윤을 그들이 선택적으로 도태시킨 자들에게 환원시켜 주어야 함은 법리적으로는 부당할지 모르나, (그들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또다른 이면에 존재하는)보이지 않는 룰로서 그들이 지키고 보전해야 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이다.
물론 그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그들에 의해 규정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합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얻은 이익을 무상으로 환원하는 것에 대해 '노동의 가치를 손상시키고 근로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등의 주장을 통해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 부여하는 이 의무는 그들과 그들에 의해 간택된 노동자들에 의해 산업현장에서 축출되고, 사회로부터 후천적이고 타의적으로 도태된, '최소한의 생존이 위협 받는 자'들을 위한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 그들을 도태시킨 것은 그들 개개인의 노력 부족이 책임져야 하는 부분보다, 그들 스스로가 야기한 사회경제정의의 재정립 과정에서 후천적으로 발생한 강요인 것이다. 그들이 끊임없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로서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자기 계발 의욕을 고취시키는 것도 기업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왜냐 하면 기업은 노동자로부터 그들의 모든 것을 기업에 투신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근로 조건은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근로환경은 노동자로 하여금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노동자들은 제한된 환경에서 제한된 의사결정 권한만을 가지며, 이성적 판단보다 상명하복의 지휘통제체제 속에서 절대적으로 수동적 존재로 전락한다. 이직을 통한 조직체계 이탈이 아닌 이상, 노동자는 기업과 자웅동체의 위치에 놓이게 되며 기업은 그런 노동자를 요구한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노동자가 기업에 의해 선택적/후천적 도태를 당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기업의 책임이며 기업은 그러한 결과와 그에 따른 사회현상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로 근로현장과 비근로현장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로서의 최소한의 행위가 '성실한 조세 의무의 이행'이며 그보다 전진된 행위가 '자발적 사회환원 노력'이다.
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은 그런 면에서 가장 모범적인 기업인의 상징적 재단이라 할 수 있다. 빌 게이츠를 꼽게 보는 사람들은 빌 게이츠가 1년에 버는 돈이 얼만데, 그 정도 기부로 모범적인 기업인이라고 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세계에는 그 만큼도 안하는 기업인들이 절대 다수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기업의 성실한 조세 이행은 '의무'이지만, 기업의 자발적 사회환원 활동은 '선택'이다. 나는 그러한 선택적 행위를 점진적으로 의무에 가까운 수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지만,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가 기업들의 무조건적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유산계급은 법이 정한 의무 이외에도 자발적인 사회 참여가 필요하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명성을 유지/상승시키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건강하게 하고 그들의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구매력을 강건하게 하며 구매력이 약화되거나 상실한 계층에 대해서도 그 능력을 재건케 하는 역할을 하게 한다. 그것을 내가 준 돈을 내가 다시 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것은 원래 그들과 함께 나누어야 했을 재화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더불어 그것은 마치 은행이 기업인 당신에게 돈을 빌려 주고 당신이 은행에 원금과 이자를 갚고도 돈이 남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들은 기업의 근간에 위협이 될 규모의 사회환원 활동을 결코 시도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회환원 활동은 그들이 버려도 될 수준의 재화에 한해서만 이루어진다.
물론 기업의 자발적 사회환원 활동의 수혜를 받을 그들은 당신만큼 주어진 재화를 효과적으로 불리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원금마저 까먹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당신은 당신과 당신의 분신(기업)을 향한 적의(敵意)를 삭일 수 있을 것이고 당신이 만드는 제품에 대한 신뢰성 또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소득'은 그러한 사회환원 활동이 기업을 통해서 자본가들이 축적한 폭발적 가치의 부의 소유를 정당화 시켜줄 것이다. 단지 '가진 자'(부르주아)라는 이유만으로 쏟아지는 그 근본을 가늠할 수 없는 무산계급의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뚫고서 자본가들이 소유한 부의 의미를 정당화시켜주고, 부를 당당히 누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는다는 것에 대한 매리트는 대중민주주의와 함께 움직이는 산업사회의 하부 구조의 특성을 장기적으로('기업인 이상의 지위'를 노리고 있을 때.) 고려할 때 형용할 수 힘든 매리트임에 틀림없다.
결론으로 하고 싶은 아주 단순한 두 가지는 '기업이 허락할 수 있는 수준의 재화를 사회에 환원해도 당신의 재산에는 별로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당신이 지배자로서 남고 싶다면, 지배 당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과 우간다의 대통령이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면 금방 이 단순한 논리를 이해할 수 있을리라 믿는다. 가진 자들을 지배하는 더 많이 가진 자와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을 지배하는 좀 더 가진 자의 의미를 파악하라.
- 삼성과 같은 한국 재벌들이 비난 받는 이유는 법이 정한 최소한의 도덕조차도 지키지 않기 때문이지, 反기업 정서따위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모른 척하며 엄살만 부릴 뿐이다. 反기업 정서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든 것이다. 날 때부터 '적의'를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는 없다. 호의나 적의는 후천적인 것이며, 그 후천적 영향은 독립된 행위자의 자발적 행위 속에서 가치판단되고 축적되어 파생되는 것이다. 고로 反기업적 정서가 진정으로 문제라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정서를 파생시킨 독립된 행위자인 기업과 기업가들이지, 그들의 행위에 의해 파생되는 후천적 영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대적 피결정권자인 우리가 아니다.
p.s. : 본문은 내가 2005년 12월 4일에 작성한 글을 2008년 5월 22일에 수정/보완하여 재작성한 글입니다.
앞으로 가끔씩 이와 같은 과거 글의 현재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을 조금씩 해보려 합니다.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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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우월성은 개인의 이윤추구와 사유재산을 허용한다는 점에 있다. 인간의 소유욕을 촉진시키고 소유를 정당화시키는 이 논리는 자본주의가 그 어떤 논리보다도 가장 인간의 본성에 충실케 하는 동시에 가장 역동적이고 자발적 행위를 위한 동기를 유발하여 그 어떤 논리보다도 빠르고 명확한 근대화의 첨병으로 역할하게 만들었고, 인간의 기본적 욕구인 소유욕을 억압한 사회주의와의 대결에서 자본주의가 최종적 승자로 남게 만든 결정적 요인임을 지적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즉, 사유재산제는 자본주의의 근간이며 힘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에게 자본의 축적을 허용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개인이 축적할 수 있는 자본은 무제한적이며 무차별적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개인이 독립적 행위자로서 활동가능한 모든 범위 내에서 자본의 획득과 축적을 자율에 맡기고 있다. 그리고 국가는 이러한 개인이 축적한 자본(재산)을 공적인 제도와 행위를 통해 보호하고 지속시킴으로서 국가는 개인에게 ‘재산세’라고 하는 조세의 의무를 부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조세의 의무를 충실히 하는 댓가로 국가라는 운명공동체로부터 그들 각자의 재산권 행사의 권한을 보호 받는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러한 이론적인 모습과는 달리,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개인 행위자는 그 개인의 행동반경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국가의 제도적 행위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국가는 때때로 이러한 개인행위자들의 영향력에 따라 공적인 제도를 개정 혹은 발의하여 개인 행위자의 사적 욕구를 제도로서 보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서 미국과 같은 방위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국가의 경우 군산복합체1로서 개인행위자의 이익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확보/보장하기도 하고, 한국의 경우는 과거 곤궁하던 시절 가난을 탈출하기 위한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수출신용장’과 같은 제도적 수단을 적극 활용한 오늘날의 재벌들이 바로 그러한 국가의 제도적 행위력을 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영향력을 미치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기득권을 활용하여 스스로를 최적화시켜 성장한 것이 예로서 활용될 수 있다.
즉 자본은 온전한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 육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혹은 정치/경제/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소수의 특정한 개인의 의지와 경제사회적 기득권에 의해서 육성되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들이 명백히 존재하는 정치/경제/사회적 영향력2을 완전히 배제하고 순수하게 개인의 역량과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경제사회적 기득권만으로 현재 나타나는 굴지의 자본가 계급으로 성장했다고 주장한다고 하여도 그들이 그러한 지위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역량이기 이전에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 선행 조건임에는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상속재산을 통한 사회 기득권 계층 편입의 경우에도 궁극적으로 개인행위자로서의 상속대상자들은 그들의 선친이 ‘국가와 사회의 관리와 통제, 보호 속에서 축적한 경제사회적 부’를 계승하게 되는 것이다. 부에 대한 소유주는 바뀌는 것이지만, 부가 획득되고 축적되는 과정은 동일한 것이다.
이처럼 어떠한 개인행위자라고 하더라도 부가 축적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국가 혹은 공공의 제도가 개입하게 되어 있고 국가는 이러한 행위자들의 재산권(기득권)을 자의든 타의든 제도와 공권력을 통해서 보호하고 유지시킨다. 어떠한 개인이 축적한 부라고 하더라도 그 부에 대한 사회적 역할은 배제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부는 온전히 사유화될 수 없고 어떠한 부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 ‘부의 공공성’에 대한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많은 자본가 계급에 속하는 개인행위자들이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부를 통한 자선활동을 일컬어 ‘사회환원’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그들 스스로도 암묵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들이 획득한 부가 온전히 개인행위자의 행위의 결과로서 획득한 보상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상대로 한 일종의 ‘노획’3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노력으로서 획득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통해서 빼앗은(혹은 강탈한) 것이기에 그들의 부가 공공을 위한 자선활동에 쓰여 지는 것이 ‘베푸는 것’이 아니라 ‘환원하는 것’으로 밖에 표현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몇몇 공대생들이 사회과학계열 학생들에게 빈정거리며 침을 뱉듯이 내뱉는 ‘사회과학계열의 말장난’따위가 아니다.
프로테스탄티즘에서 구체화한 것처럼 자본주의에서 추구하는 '부의 획득을 위한 무한한 노력'은 오늘날도 널리 권장되고 있는 미덕이다. 자본주의 논리에서는 부의 획득과 축적은 아무리 권장해도 부족함이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무소유의 삶은 그러한 부의 축적이 권장되는 사회에서 비롯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도가적 반발이지, 자본주의에서 무소유에 대한 갈망은 분명 이단이다. 하지만 고도의 행정국가가 완성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축적은 과거의 서부개척시대나 남북전쟁시대처럼 자본가 스스로 자신의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도록 국가가 방관자 혹은 무능력자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국가는 자본가들에게 친화적이고 자본가들의 부의 획득과 축적에 친화적인 공적 제도를 자본가들의 요구에 따라서 얼마든지 남발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것도 자본친화적 공공정책의 추구’ 중 하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공정책을 통해서 육성된 자본가가 획득한 부의 자본가와 고용자 사이의 분배 과정’은 분명 자본가 친화적으로 특화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특권을 부여한 국가는 자본가들의 특권 유지(이윤추구에 유리한 특권적 경제사회적 환경조성 노력)를 위해 공공의 이익을 희생하였다. 희생된 공공의 이익+@가 바로 자본가가 사회의 일반대중들을 위해 환원해야만 하는 자본의 권장량4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자본가들은 그들이 획득한 자본이 완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해선 안된다. 이것은 반자본주의적 견해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이자 고도산업사회인 오늘날의 산업 국가들의 자본가 모두에게 해당되는 범용의 가치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자선재단을 운영하는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는 자선재단의 규모만큼이나 거대한 부를 사회로부터 획득한 대표적 자본가이다. 자본가들은 국가와 사회의 연대적 희생5과 제도적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그들이 보답해야 할 사회적 의무’를 행하는 데에도 일반대중들은 그 자본가들에게 존경이라는 유무형의 가치(CEO에 대한 존경은 해당 기업의 추가적 이윤창출로 이어지기에 유형의 가치이기도 하다.)를 제공하고 국가는 그런 자본가들에게 세제 혜택과 제도적 특혜(세무조사와 같은 정부 차원의 공적 규제 완화)를 제공하여 그들이 당연히 치러야 할 사회적 가치환원에 대해 화답한다. 사회환원은 선택이 아닌 자본가들과 기득권 세력의 필수적 의무다.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행해도 계속해서 수혜자로서 존재하는 자본가 계급.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 것인가?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왜 자본가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방기(放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들은 이토록 무관심한가? 아니면 자본가 계급들과 기득권 계급들이 창조한 천민자본주의 논리에 뼛 속까지 심취하여 자신들의 가난을 온전히 자신들의 무능함 때문만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인가? 자본의 의무도 아닌, 헌법이 정한 '국민의 당연한 의무'인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하는 신세계 일가의 납세사건이 어째서 재계에 그토록 강한 충격파를 주었는가? 대통령마저 법을 우습게 알다 보니, 나라 꼴이 법을 지키는 사람이 신기할 지경까지 이른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자본과 자본가들의 노예로서 살아가는 것에 놀랍도록 적응해 버린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낙오자들인가?
Hedge™, Against All Odds..
- 방위산업체, 군부, 정치인들의 커넥션 [본문으로]
- 권력층을 향한 로비 능력 혹은 권력층이 특정 개인을 육성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만드는 동인. [본문으로]
- 착취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했으나, 보수꼴통인 내가 최악 중에서도 최악인 꼴통 Marxist로 오해 받을 것을 우려하여 다른 용어를 선택했다. [본문으로]
- 경제적 의무와 사회적 의무는 완전히 수치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이기에 총량이 아닌 권장량으로서 표기하였다. [본문으로]
- 한국으로 따지자면 국제구제금융 위기 당시에 있었던 금모으기 운동이나 국제구제금융 위기의 1차적 원흉인 제1, 제2금융권들이 밑 빠진 독처럼 빨아들인 공적자금이 있다. 미국의 경우라면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7~80년대 투입되었던 공적 자금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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