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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해석에 대해 고의적으로 외면받는 견해.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사전적 의미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으로 정의된다. 말 그대로 '民이 주인이 되는 사회'로 쉽게 정의내릴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전적 의미에 집중하는 견해를 가진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를 가진 진영에서는 民의 능력을 천부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국민은 언제나 옳으며 국민의 뜻이 하늘의 뜻'이라는 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기와 탄핵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현정부의 위정자들은 "국민은 언제나 옳다"라는 찬양을 자연스레 했었다. 물론 훗날 그들의 견해는 극적으로 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전은 국민의 지도층에 대한 민주적(혹은 폭력적) 투쟁을 거쳐서 유무형의 희생을 통해서 발전해야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견해를 가진 진영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 중에서 상당한 수준의 민주화 수준을 갖춘 국가들의 역사에서 국민의 위정자들에 대한 국민주권을 수호 혹은 확보하기 위한 투쟁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러한 투쟁을 거쳐서 그들은 느리게 혹은 빠르게 오늘날 그들이 누리고 있는 민주적 사회체제를 쟁취하였다. 나 또한 민주주의의 정착과 성장, 발전을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투쟁이 필요하며 희생없는 민주주의의 자발적 발전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적으로 나는 이 쪽 부류에 가까운 인물일지도 모른다.

이런 견해들은 전반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민주(民主)라는 사전적 의미에 집착한 듯한 인상이 농도가 짙다(고 생각된다). 특히 민주적 사회체제를 '국민의 쟁취'에 중점을 둔 것은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맞다고도 확신하기 어렵다. 그리고 나 또한 지금부터 제시하려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두번째 부류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나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해석에 대한 견해에서 많은 이들(정확히 말해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칭하는 이들과 상대적으로 지금부터 제기하려는 견해에 본능적 반감을 가진 이들.)이 놓치고 있는(혹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견해는 무엇인가?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정말 주인인가?


거의 대부분의(빠짐없이) 민주화된 국가의 역사에서 최초의 민주주의는 민의(民意)에 의한 쟁취가 아니라, 소수 사회지도층의 선구자적 노력과 그를 바탕한 사회에 대한 인위적 주입에 의해서 출발한다. 한국만 해도 양천제에서 일제식민지(이 또한 출신성분-출신국적-에 따라 사실상의 신분사회나 마찬가지이다.)를 거쳐 미군정에 의해 한국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민주주의가 주입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국민의 선택이 아닌 지도자의 선택과 필요에 의해서 선택되어지고 주입되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왜 우리는 인정하길 주저하거나 망각하는 것일까?

주입된 정치체제는 반드시 실패한다. 그 사례는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심지어 국민들의 자발적 투쟁을 통해서 획득한 (상대적으로) 민주적 정치체제조차도 실패하기 일쑤이다. 대표적으로 프랑스혁명 이후의 노선을 두고서 분열하는 혁명세력을 밀어낸 '왕정복고'가 있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이었던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e Allende) 정권이 CIA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서 붕괴될 때도 시민의 힘은 실로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1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투쟁의 출발은 어디서 만들어진 것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소수 엘리트의 역할'을 제기하게 된다. 실제로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엘리트의 역할은 지대하고 학계에서 충분히 인정 받으면서도 민심(民心)에서는 놀랍도록 멸시받고 외면 받는다. 민주주의에서 엘리트의 역할을 이야기하다가는 '수구꼴통' 혹은 '보수꼴통'으로 낙인찍히거나, 'X도 모르는 놈이 깝친다'라는 진짜 X도 모르는 놈들의 비난을 받기 쉽상이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는 민주주의의 초기 정착과 제도권 진입에 대한 노력, 국민의 정치사회화에 기여한 그들의 정치적 행보의 말로가 거의 대부분 부정과 부패, 거대한 권력욕으로 점철되어 사고가 짧고 단순하여 단일화하길 좋아하는 절대다수의 국민대중들2 에게서 '나쁜놈'으로 낙인 찍혀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일제식민지의 황폐한 이 땅에 미군정은 민주주의의 토양을 배양했다. 전제군주였던 조선왕3 과 일제강점기의 총독이 지배하던 이 나라에는 여전히 양반과 상놈의 개념이 잔재했다. 지금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에게 '천방지축마골피/문어고기명태국'이라는 14개의 성씨는 조선시대 천민의 성씨라고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80년대 후반까지도 이런 천민의 성씨라고 전해지는 14개의 성씨에 대한 이야기를 어른들에게서 그리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1945년 8월 15일의 한반도는 아마 민주화와 자본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80년대 후반의 그 상황보다 몇 배는 더 나빴으면 나빴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정치사회화 수준이 황폐하던 이 땅에 민주주의를 이식하려니 지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이식하려는 노력만큼이나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경쟁적 사회체제였던 사회주의의 달콤한 구호들은 핍박과 가난에 찌든 일반인들과 소작농들에게 거대한 유혹이자 메시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실제로도 사회주의가 한국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았음을 남로당의 성세와 박헌영/여운형 등의 월북 혹은 암살 과정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여기에서 구미위원회의 '최초의 한국적 엘리트' 이승만이 등장했다.

이승만은 틀림없이 평생을 한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사람이다. 상해임시정부 최초의 대통령이었고 동시에 최초의 탄핵대통령이었다.4 한국인 최초의 미국대학 박사 출신이었으며 당시 정치적 활동을 한 어느 누구보다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엘리트였다. 그는 이 땅에 다소나마 왜곡되었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충격파가 적은 권위적 민주주의(혹은 '가부장적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싶다.)로서 이 땅에 느리고 서서히 민주주의를 이식했다. 민주주의의 태동과 이식/정착 과정에서 이와 같은 정치 엘리트들의 가부장적 집권은 초기 민주주의를 건설한 국가들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이후의 신생독립국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소위 국부(國父)라고 하는 존재들이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초기 민주주의에서 정치 엘리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방향성 제시는 비민주적 국가의 민주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혼란을 최소화 하고 자연스럽게 과도기를 초기 민주주의로 연착륙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의 역할은 놀랍도록 절대적이며 또 권위적이어야 한다. 초기 비민주적 사회체제 속에서는 사회가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도층 내부의 의사도 민주적이지 않으며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휘계통에 손상이 와서는 민주주의 연착륙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정치 엘리트들은 권력욕에 빠지기 쉽상이다. '國父'로서 존재하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이러한 권력욕에 빠져서 말년을 다소 고통스럽게 보내거나 비난 속에서 살고 있다. 유명한 사사오입 3선 개헌과 부정선거로 정치적 치명타를 받은 이승만은 말년을 권력욕에 찌든 노망난 영감으로 살아야 했고, 현재도 집권 중인 짐바브웨의 무가베 같은 자는 100세까지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다며 무한한 욕망을 표출한 바 있다. 심지어 선진국이라는 프랑스의 드골조차도 자신의 권력안정을 위해 국민투표를 남발하다가 부결되면서 하야를 선택해야만 했다. 물론 사후에 다시 재평가되어 다시 존경 받는 인물로 되돌아온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김구처럼 죽음의 타이밍(?)을 적절히 잡지 못한 이승만이나 무가베처럼 권력의 치명적 유혹에 빠져 스스로를 망치고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사례가 다반사다. 특히나 정치적 과오에 대해 냉정한 한국 국민들에게는 쉽사리 그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


민주주의의 자생력을 실로 놀랍다. 민주주의라는 고기의 맛을 음미해본 국민이라면 누구도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생존력이며 동시에 저력이다. 하지만 대중은 스스로 민주주의라는 고기가 맛있는지를 판단하지 못한다. 언제나 대중들의 선동적 구심점 역할이 되어주는 것은 소수의 엘리트들이며 엘리트들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이 필요치 않아질 때, 비로소 국민들은 특권적 엘리트들을 향해 저항하고 투쟁한다. 그들이 원하는 엘리트를 찾기 위하여 말이다.

- 후배네 블로그에 트랙백을 걸고자 작성됨.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1. 한국의 군부쿠데타는 시민이 스스로 민주주의 붕괴를 자초한 측면이 일부 있다. 오늘날의 민주정권 속에서도 장면내각 시절을 '시위만능시대'라고 폄훼할 정도다. [본문으로]
  2. 이 부분에 대해 반발할 자들도 많겠지만, 국민들 대부분은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처럼 평균 이상의 학식을 가진 자들이 아니다. 나의 부모님만 해도 초등 중퇴가 최종 학력이다. '배움을 지성의 모든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배움을 무시하는 지성(?)'은 하찮은 궤변일 뿐이다. [본문으로]
  3. 황제를 칭했지만,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한 직함은 의미가 없다. 실질적으로 마지막 왕이었던 고종은 너무나도 무능했고 민비와 대원군은 국내정치적 권력다툼을 외세를 등에 업고 해결하려 한 권력의 수전노들일 뿐이다. [본문으로]
  4. 상해임시정부 재정 마련을 위한 국채 발행을 자의적으로 결정했다가 일종의 탄핵을 당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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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에 대한 바램.

3김 시대의 끝자락으로 구정치의 끝물을 보여준 김대중 시대와 자칭 민주개혁세력이라고 출범했으나, 결국 구정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국민대중을 실망을 넘어 분노케 한 노무현 시대가 조만간 종식됨을 고할 것이다. 그리고 조만간 한나라당 경선 종료 이후 사실상의 예비 대통령 당선자나 마찬가지였던 이명박이 자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고 새로운 5년의 리더로서 국민대중 앞에 최고 지도자이자 제1의 공복(이론상으로는 그러하다.)의 모습으로 등장하였다.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명박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란 양대 反한나라 정권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명박이 이명박의 시대에 갑자기 유죄로 급변할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이회창이 불법정치자금 800억원을 차떼기로 받았을 때, 불법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10이 넘는다면 하야하겠다던 노무현이 128억원을 받았다고 노무현의 시대에 공식 발표가 되었을 때도 어느 누구하나 노무현의 하야를 절규한 적이 없었던 점을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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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이명박'치니까 나왔는데.. 거기에서도 출처불명이었음. =_=..]

이제 새로운 권력자 이명박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개인적 바램을 읊어보고 싶어졌다. 투표권이 없던 시절 심정적으로 지지했던 김대중, 투표권이 있던 시절 직접 표를 주었던 노무현이 각각 지금의 나에겐 매국노로 보이는 상황에서 출근 때문에 투표를 하진 못했지만, 투표를 했다면 내가 표를 주었을 이명박이 나의 관점에서 3번째 매국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가 아래와 같은 면모를 갖추기를 희망한다.


1. 타협의 의미를 깨우쳐 달라.
이명박은 노무현 만큼은 아니지만, 지독하게 타협할 줄 모르는 인물이었다. 다죽은 산송장이 되어버렸으면서도 '세상의 정의는 오직 나 뿐'을 외치며 꼬장꼬장한 아집으로 똘똘 뭉쳤던 노무현은 결국 자신과 자신의 수족과 같은 나와바리(도로열린우리당)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명박은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와 친족에 대한 모욕이 오고가는 상황까지 치닫게 된 것에 앙심을 품었는지, 이회창이란 '대통령병'에 망령이 든 진짜 산송장이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깃발을 들 때까지 자신의 나와바리(한나라당)의 역량을 규합시키지 못했다.

정당정치의 최고지도자는 (대)기업의 경영이 아니라, 지역적 특수성과 파벌의 이익을 중심으로 여론의 수렴을 총괄해야 하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중시하는 자리다. 대통령이 카리스마를 앞세워 국가를 통솔하는 것은 사회적 저력이 미약한 신생독립국이나 개발도상국의 상황에 놓인 연약한 국가에서나 하는 일이다. 그의 별칭이라는 '불도저'식 국가경영은 제2의 노무현 이상의 혹평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가경영은 대화와 타협의 진정성을 찾아가는 머나먼 여정이며 모두를 만족시키기보다 최대다수를 만족시키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야 한다. '나의 신념만이 정의'라고 믿지 말고 '최대다수가 원하는 것이 정의'라는 기준 하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가장 합리적인 정책결정을 유도하는 중재자로서 기능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소속정당의 분열을 봉합하고 국민 앞에 '갈등과 분열'보다 '타협과 화합'의 모습으로 어필하여야 할 것이다. 어리석은 386, 자칭 민주개혁세력들은 스스로가 가진 강한 신념과 그 신념을 지킬 수조차 없는 나약한 속물근성 때문에 구정치세력과의 차별성을 국민들에게 전혀 어필하지 못했기 때문에 참패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한나라당 개걸레들에게 그런 높은 수준의 정치사회관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끝없는 갈등은 대중을 피곤하게 한다. 아니꼬와도 고개를 숙일 수 있는 배포를 가져 달라. 정치는 내가 옳다고 밀어 붙여서 되는게 아니다.


2. 상호주의 원칙을 지켜달라.
지난 10년간의 대북정책은 일방적인 퍼주기의 연속이었다. 국민의 의사보다 지도자의 결단을 더 중시해온 진형적인 군부독재정권스러운 386민주개혁세력이라 참칭하는 자들의 자기모순이었다. 10년의 퍼주기가 가져온 결과물은 1차 북핵위기와 제네바 핵협정 당시의 의혹 수준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핵기술인 고농축우라늄(HEU) 보유와 소규모 핵실험 강행을 통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1994년의 제네바 핵협정의 북한의 자의적 파기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반국가적/(북괴와 지난 10년간의 정권들이 그토록 강조해온 민족의 개념에서)반민족적 행위의 연속이었다. 10년간의 퍼주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평화통일의 당사국인 대한민국을 재쳐두고 미국과의 대화에만 열중하였으며 남북평화를 위한 합의보다 北美수교와 불가침조약에 더욱 열중하는 모순된 현실로 우리의 노력에 화답하였다.

한국은 북한의 호구가 아니다. 한국인은 한민족이기 이전에 한국 국민임을 각성하라. 민족이기 때문에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이상주의적 망상에 젖어들기 전에 내 나라와 내 나라 국민이 처한 현실을 먼저 각성하라. '반작용이 없는 작용'은 무가치한 것이다. 스스로 수 차례 신뢰를 저버린 북한이며 스스로가 서명한 많은 국가 간의 조약과 국제기구의 협약을 자의적으로 파기하고 재해석은 북한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유일하고 가장 크게 안보적 위협을 느끼고 있는 집단이 북한임을 유념하라. 그들은 같은 민족인 동시에 제1적성국이다. '같은 민족이 같은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는 철칙은 없으나, 내 나라의 안전은 자위체제 혹은 집단자위체제 속에서 지켜야 한다'는 철칙은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하라.


3. 국제사회에서는 나만 잘난 것이 아니다. 모두를 존중하라.
노무현 집권 초기에 가장 큰 국가적 손실을 입은 것이 무모한 자주의식이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한다. 중기 이후에는 상당히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초기 노무현의 무모하리만큼 넘치는 자신감(혹은 무지함)에서 비롯된 反美/親中노선은 국제무대(특히 냉전시절의 UN외교에서 미국의 후견인 역할을 결정적이었다. 소비에트가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당연한 조치였다.)에서 오랜 기간 대한민국의 보이지 않는 후견인으로서 쌓아온 일종의 친밀감은 미국의 강경노선 정부의 이분법적 세계관과 결부되면서 상당한 수준의 국가적 에너지 손실을 야기하였다. 미국에 목을 메고 있는 중국을 추종하며 노무현 초기에 주장했던 '동북아균형자론'은 우리 스스로의 역량을 너무도 과대평가한 자아도취 혹은 과대망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국제사회에는 우리만 잘난 것이 아니다. 한국이 세계 경제규모 11위 혹은 13위에 있다고 하여 한국이 세계에서 11번째로 잘난 나라라는 것은 아니다. 실례로 러시아는 경제 규모에서 한국보다 낮은 순위에 있지만, 지난 번 동계올림픽 개최경쟁 당시에 노무현 스스로도 절실히 느꼈겠지만 무참히 짓밟히고 냉대를 당했었던 것을 기억하자. 통계의 맹점에 도취될 이유도 없고, 통계의 결과를 외면할 이유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놓고 누군가를 적성국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對美수출이 한국의 대외수출 1위였던 나라에서 反美를 주창해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고, '할 말은 하고 살자'던 정권에서도 韓美FTA(KORUS) 협상 과정에서 보았듯이 하자는대로 질질 끌려 다니기만 했고 별다른 양보를 얻어내지도 못했다. 빌 클린턴-김대중 시절만 해도 그렇게까지 질질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을까 상상해 보면 한껏 소원해진 韓美관계가 아쉬움만 남는다.

對日/對中/對러시아/對EU 등과 같은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미국에 치중되어서도 안되고, 국민감정 때문에 일본과 계속 칼날만 세워서도 안될 것이며, 무비판적 환상에 젖어 중국만 추종해서도 안될 것이며, 과거 우리에게 빚쟁이 신세였다고 현대사의 초강대국 러시아를 외면할 수도 없고, 현대화 시대에 근대적 관점에 젖어 EU가 멀다고 소홀할 수도 없다. 한국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국가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의 이익을 챙겨내야 한다. 중국이 난징학살 등과 같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후진타오와 후쿠다 야쓰오가 대면하고 왕래하며 서로의 국익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감정적 측면에 치우쳐 현실적 측면을 외면한다면 반드시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낙오할 것이다.


4. 잘못이 있으면 용서를 구하라.
말 그대로다. 잘못이 있으면 용서를 구하라. 국민 대중은 잘못을 구하는 자에게 용서를 베푼다. 당신의 용서구함에 있어 당신의 적성세력들은 당신의 사퇴와 재선거를 요구할 것이지만, 국민 대중은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냉혹하지 않다.(살인자의 인권을 살해당한 자의 인권보다 중시하는 나라가 아닌가?) 대중의 망각에 기대하여 시간을 끌기보다 대중에게 다가서서 진실을 고해성사할 줄 아는 용기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라. 그리하여 당신을 해코지 하는 당신의 반대진영에게 덮어씌여진 허물(온전히 이명박의 대선전략 실패 때문에 파묻혔다.)에 대한 자연스런 부각을 유도하라.

한국의 국민대중은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하는 지도자를 경험한 적이 없다. 당신은 현시점에서 한 가지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의혹일 뿐이지만, 그러한 의혹을 유발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당신의 허물임을 인정하라.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용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대중은 언제나 자애로운 존재다. 그 자비심의 한계를 아집과 오만으로 무고함을 고집하며 시험하려 들지 마라. 당신은 지도자로서 의혹을 받고 있는 것 자체로서 이미 무고하지 않다.



이상이 정치적 / 안보적 / 외교적 관점에서 개인적 바램이다. 경제적 관점은 적어도 우리 나라의 왠만한 사람들보다는 '돈놀음'에 능한 인물이고 주변에 사람도 많을테니 어느 정도 알아서 잘 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그러한 경제적 관점에서도 이명박이 주의해야 할 점은 이명박이 경제적 최전선에서 뛰던 때는 이념에 기초한 냉전적 대립이 경제적 측면에서도 후광으로서 역할하던 7~80년대이며 21C의 경제는 그가 활동하던 시대와는 판이하게 다르며, '그 자신도 경제전선에서 예비역으로 물러난지 20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라는 점이다. 즉 21C의 경제는 이명박이 모르는 세계이며 이명박은 많은 전문행정가들의 조언을 수렴하고 '개인적 신념'이 아닌,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경제발전의 이유식을 완성한 사람은 (인류역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희귀하게도)군인이었지, 전문경영인이 아니었다.

'스스로 많이 안다라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부터 당신을 위한 사람들은 줄어 들어갈 것이다. 당신은 새로운 권력자다. 권력은 반드시 비판 혹은 비난에 직면하게 되어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비판에 전임자처럼 무조건 눈을 감아버리지 말기 바란다. 비판과 비난을 구별해 내는 것은 당신의 능력에 달렸다. 그리고 입조심하라. 이미 전과가 몇 번 있고, 전임자가 '값싸게' 굴다가 박살나는 꼴을 봤으니 무슨 의미인지 잘 알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리더가 품격이 떨어지는 망나니이길 원하지 않는다. 당신과 나는 전혀 다른 존재다. 나의 말은 나 하나에게만 유효하지만, 당신의 말은 한국을 대표한다. 당신은 한국 그 자체이며, 한국은 당신의 소유물이 아닌, 당신이 목숨바쳐 섬겨야 할 영물이다. 국민을 부끄럽게 만들지 마라. 그리고 재산헌납 약속도 지켜라. 집값 정도의 재산만 해도 충분하지 않은가?

이 정도면 즉석으로나마 하고 싶은 말은 어느 정도 한 듯 하다. 1시간 만에 즉석으로 생각해서 쓰려다 보니 평소 생각했던 바램들이 실수로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요청(?)을 받고 쓰다 보니.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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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또 한 번 힘의 논리를 증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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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가 군부에 해산당하며 버려진 시위대의 신발들. Photo : AP연합]

미얀마의 오랜 군부정권과 낮은 교육수준의 국민들, 그리고 국민들 만큼이나 원시적인 미신적 신앙을 가진 세계 10대 독재자 중 한 명인 미얀마의 통치자 탄쉐의 단세포적 무지함 등이 어우러진 미얀마의 에너지정책 반대 시위에서 촉발된 반정부 시위(작금의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를 민주화 요구 시위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경계되어야 한다. 현지 시위대는 단지 탄쉐 군정에 반발하고 있을 뿐이다.)가 날이 갈수록 그 위세를 더해가고 있다. 그리고 불행히도 강해지는 시위대의 위세만큼이나 권좌를 수호하고자 하는 탄쉐의 총구도 그 숫자를 더욱 늘려가고 있다. 때마침 비슷한 시기에 근처 국가 중에 하나인 네팔의 갸넨드라 국왕이 국민적 반발을 등에 업은 의회세력에 의해서 전재산을 몰수당한 채 권력에 축출되어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되는 것[관련글 보기]을 목격하며 국민적 저항을 조기에 진압하지 못한 독재자의 말로를 목격한데다가, 탄쉐의 원시신앙에 의해서 미국의 공습할 것이라는 점괘를 두려워하여 행정부 기능을 밀림지역으로 극비리에 이전할 정도로 단세포인 탄쉐의 무자비함이 더해져 21C의 아시아에서 또다시 전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국가적 재난이 벌어지고 있다.


미얀마 군정에 대한 소요사태는 어떤 면에서 미얀마 국민들과 미얀마라는 국가에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면 특별히 관심을 가질 일이 결코 없는 '미얀마'라는 세계적 빈곤국에 대해, 정치라면 눈부터 질끈 감아버리고,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하던 이들 중의 일부에게 미얀마라는 국가가 처한 현실에 대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한 타자(他者)인 외국인들의 관심이 실제로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그러한 작은 관심들이 서방 선진국들과 민주주의 진영의 보이지 않는 커넥션에 속하는 진영으로 하여금 미얀마라고 하는 국가의 폭압적 정권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압박하게 만드는 도의적 압력으로서 작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오랫동안 미얀마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미온적이나마 관심과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과 부시 행정부 내의 강경 보수파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대로 물만난 고기마냥 미얀마와 탄쉐를 후원하고 있는 '新악의 제국' 중국을 싸잡아 비난하며 공세의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6자 회담에서 중국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부시 외교부에서 공식적으로 중국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6자 회담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며 중국을 냉전시기 러시아에 버금가는 잠재적 적성국가로 내정한 미국 내의 매파 세력들에게는 이라크 사태로 침체된 자신들의 입지를 재구축하며 국민적 관심을 돌리기에 용이하며 중국을 흡집내기에 좋은 꼬투리를 잡은 셈이다. '적극적 의미의 민주주의 확산'을 꾸준히 주장해온 그들에게 도덕적 善의 진영에 서서 惡을 응징하는 구원자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것은 그들로서는 간만에 느껴보는 유쾌한 '총대메기'일 것이다. 더구나 국제사회의 또다른 강력한 축인 유럽연합(EU)도 미력하나마 경제제재를 결의함으로서 실질적으로 미얀마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탄쉐 군정이 국제사회의 공적(公敵)으로 낙인 찍으며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진영에 큰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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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하단에 쓰러진 흰머리의 사진기자가 총격으로 사망한 일본인 기자 나가이 겐지. 2007년의 탄쉐는 군사정권이 붕괴되기 딱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외국인(특히 선진국 국민)에 대한 폭력행위는 외교적 지지기반이 취약한 독재정권들에게 매우 치명적 타격으로 작용한다. 겐지와 겐지에 이어 발생할지도 모르는 또다른 외국인들의 죽음은 '미얀마의 봄'에 일익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Photo : 로이터]


하지만 이번 미얀마 소요사태는 또한 번 국제사회가 신현실주의적 관점의 힘의 논리와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로 지배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 그늘진 양지임을 증명하는 표본이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세습적 파벌들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일당독재공화국' 중국은 자신들의 뒷마당(Backyard, 국제정치적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이나 마찬가지인 미얀마의 현재 정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때문에 전세계적인 자유민주커넥션의 미얀마에 대한 일관된 반대와 증오, 응징의 메시지 속에서도 자신들에게 정치경제적 이윤을 제공하는 미얀마 탄쉐 정권을 옹호하거나 때로는 국제사회의 강압에 못이며 UN총회에서 침묵으로서 미얀마에 대한 '묵시적 지지'를 보내며 미얀마의 현 상황이 변화하는 것에 최대한의 지체 혹은 저지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자신들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천안문의 시위대를 학살했으며 '정치개혁' 혹은 '정치혁명'(미얀마의 시위대가 현정권에 대한 반대 의사만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에 뜻을 가진 자들을 구속하거나 국외로 추방시킨 중국이기에 어쩌면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군정에 대한 반발 시위를 무력진압하는 것은 중국의 관점에서 '매우 당연한 처사'일 수도 있다. 결국 중국과 중국 정치, 중국 국민의 후진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한 단면으로서 이번 사건은 자료로서 또 한 번 제공될 것이다.

미국과 EU등의 서방진영들도 이러한 냉소적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냉소적 시선 자체가 현실주의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이러니인가?) EU발전의 장애물이자 EU의 큰손 중 하나인 영국의 前수상인 마가렛 대처의 아들 마크 대처는 서아프리카의 원유부국이자 30년 가까이 군정으로 권력을 독점한 오비앙 응구에마와 그 일족의 철권통치에 신음하는 적도기니를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앙골라 내전에 활용된 32연대 소속 군인들의 잔여세력으로 이루어진 용병으로 붕괴시켜 친위정권을 세우려 했다. 미국도 2006년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무장관이 적도기니의 응구에마를 '좋은 친구'라고 호칭하며 적도기니의 원유 채굴권에 관심을 보였다. 김정일에게 '폭군(Tyrant)'이라고 호기롭게 비난하며 며칠 전에도 '야만적 정권'이라며 북한/이란 등의 정치와 인권 문제에 관심을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는 냉소를 피할 수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한 무리의 모임에서는 술잔을 부딪칠 때 외치는 말이 있는데, 여느 술자리에서는 자주 보기 힘든 독특한 구호가 있다. 그것은 "나를 위해-!!"라는 구호인데, 모두가 서로 자신을 위해서 건배를 한다.
미얀마와 북한의 차이는 '대량살상무기의 유무'와 '돈이 되는 취약성을 가진 자원'의 유무다. 이러한 차이에 의해서 국제사회의 주요행위자들은 하나의 객체(미얀마/북한/이란 등)를 두고서 서로 다른 사고의 틀을 들이대어 서로 다른 가치판단을 내렸다. 그것은 국제사회의 주요행위자들이 저마다 자국의 관점에서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자국을 위한 국가와 정권'을 정의(正義)로서 판단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감상적 휴머니즘이나 생명존중 같은 가치는 행위자의 단위가 크면 클수록, 행위자의 행위무대가 크면 클수록 그 가치를 상실한다. 2명이 함께할 때보다 3명이 함께할 때 비밀을 지키기가 더 힘든 것처럼 NATO/SCO/EU/ASEAN처럼 소수의 국가까리 뜻을 모으는 것보다 NL/UN/GATT/WTO처럼 광범위한 대단위 행위자가 모여 있을 때 정의는 더더욱 보편성을 지니기 힘들다.(대표적 군사독재국가이자 인권탄압국가인 리비아가 UN인권위원회 의장국을 맡았던 촌극이라던지, 북한의 심각한 정치탄압과 폭압적 대중지배에 대한 UN총회 의결을 북한 스스로가 저지하려 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행히(?) 미얀마 소요사태의 경우는 과거 냉전시기와 달리 국제사회의 주요행위자로서 전면에 등장하여 리더쉽을 가지고 싶어 하는 중국이 서방세계의 압박에 밀리는 듯한 좋지 않은 모양새로 조금씩 미얀마 군정에 대한 지지의사를 철회하기 시작하고 있기에, 이미 내부권력투쟁의 위기에 직면한 탄쉐 정권의 근미래가 그리 밝아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미얀마의 낮은 국민의식과 교육 수준으로는 그러한 변화의 기회를 포착하고 국가 재도약의 기회를 활용할 능력이 부재해 보인다. 탄쉐를 대체할 非군사적 정치세력들은 뚜렷한 지지기반이나 군부의 확고부동한 지지를 확보할 가능성이 없다. 작금의 미얀마 현실에서 탄쉐 정권의 붕괴는 단지 또다른 형태의 군부정권이 출범하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로서의 의미 밖에 지닐 수 없는 원시적 의회민주주의 혹은 대통령제가 잠시 출범하거나, 단명할 것이 확실한 추대 형식의 아웅산 수지 정권이 잠시 출범하는 것(그러나 탁신 정권보다 더 빠르게 군사 쿠데타로 붕괴될 정권) 이상의 의미를 찾기가 힘들 것이다.

국가는 반드시 발전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어떠한 형태로 혁명적 변화(그것이 긍정적 변화이든 부정적 변화이든지 간에)는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성공한다고 하여도 발전의 단계만큼이나 길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김일성의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세력 등을 축출하는 과정이 그러했고,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이 그러했으며 등소평의 천안문 대학살이 그러했으며 스탈린의 피의 숙청이 그러했고 우리의 광주사태가 그러했다. 냉전시기 미소의 군축과정이 그러했고, GATT가 WTO로 발전하는 과정이 그러했고, 도교의정서가 비준되는 과정 또한 많은 시간과 그에 따른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의 성장시간을 필요로 했다. 단위가 크면 클수록 혁명적 변화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미얀마인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민주적 정치체제라면 아직도 훨씬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한다. 국제사회도, UN도 그들의 피흘림엔 관심이 없으며, 혹 관심이 있다 하여도 그것은 매우 피상적이고 방관적이다. 국가의 운명은 국민들 스스로가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그 국가의 수준은 그 국가 국민의 수준이 결정한다.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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