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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News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 혐의자 29명 피소
지구상의 그 어떤 국가도 테러리즘과 타협을 시도하거나 방치 또는 굴복해서는 안된다. 어떠한 테러집단도 테러리즘을 통해서 그들의 정치적/경제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으며 그들의 테러행위가 곧 그들을 향한 가혹한 응징과 종말을 불러올 것임을 각인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한 번 테러리즘과 타협하기 시작하면 그 국가는 제2, 제3의 테러리즘에 필연적으로 노출된다. 테러리즘을 추구하는 집단은 결코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비도덕적/비합리적 만행도 서슴지 않는다.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응징되어져야 하고 어떠한 타협의 대상조차 될 수 없는 것이다.
타협('굴복'이 아니다.)이 불가능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필리핀과 같은 멍청하고 저능한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들은 '테러리즘과의 타협은 없다'라고 공공연히 천명하는 것이다. 타협될 수 없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야기하고 갈등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을 초래할 뿐이다. 강자를 굴복코자하는 약자의 저항인 테러리즘은 결국 강자의 더 큰 폭력과 국제사회로부터의 냉대와 외면을 부를 뿐이다. 어떠한 정치적 목적도 폭력을 수반한 상태에서는 정당성을 가질 수 없으며 어떠한 선의(善意)도 피 흘리는 가운데 그 뜻이 바르게 전달될 수 없고 바르게 전달될 리도 없다.


- 미국가안보국(NSA)의 '도청' 충격
영화 Enemy of The State는 국가가 그들의 특수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의 이익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개인에 대한 무제한적인 정보편취와 감시를 다루고 있다. 이번 美국방부 소속의 국가안보부(NSA)의 도청행위 내부고발자의 증언도 이러한 맥락의 하나로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한가지 의문이 되는 것은 2001년 9.11테러 이후에 부시행정부가 2002년 신설한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와 국가안보부(NSA)라는 것이 어떻게 역할이 다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국토안보부(DHS)는 미국 22개 조직을 통합하여 패트리어트법을 통해 초헌법적인 권한(물론 '사전에 동의를 구하지 않은 도감청'도 가능하다.)을 지닌 조직이기에 NSA와 역할과 주요 업무가 중복되는 것이 상당할텐데 서로 다른 부처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의아하다.
부처 간의 기싸움이 남긴 탄흔인가?

Hedge™, Against All Odds..

약자의 테러리즘

미육군 교본에 명시된 테러리즘의 의미는 '협박과 강압을 통하거나 공포를 조장하여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폭력의 계획적 사용'을 뜻한다. 이는 Noam Chomsky 또한 자신의 저서들에서 그대로 인용함으로서 전세계적으로 별다른 이견 없이 널리 통용되고 있는 테러리즘의 사전적 의미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테러리즘은 이러한 포괄적인 의미보다, 약자가 강자에게 비정상적인/비정규전의 방법으로 물질적, 정신적, 정치적 타격을 입히는 행위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테러리즘에 좀 더 근접한다. 즉,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테러리즘에는 패권국의 테러리즘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은 힘으로 규정된 국가 간의 힘의 분배 상태에 의해, 강자의 테러 행위는 '국제 경찰력' 내지는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며 그것에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 행위를 한 국가가 소위 강대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라면 자국에게 특별한 위해가 가해지지 않는 한,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는다. [일단 터뜨리고 보는 우리 '노짱'조차도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었다. 그 날 테러 발생 이후 약 1시간만에 5500여명이 사망하였고, 전세계는 역사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테러를 경험하였다.
통상 테러 행위가 벌어지면 몇몇 집단에서 자신들이 테러를 저질렀다고 밝히며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피력한다. 하지만 9.11 테러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그 행위를 자백하지 않았고, 미행정부는 그들의 오랜 동료(?)였던 이슬람 원리주의자 알 카에다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응징에 들어갔다. 응징이 길어지자, 알 카에다 스스로도 자신들이 9.11테러를 실행했음을 인정하며 이슬람권에 지하드를 요구하였다.

[그냥 가져다 붙인 것이어서 별로 의미는 없고.. 여러 군데서 동시다발적으로 테러행위가 저질러졌다. 사고가 발생한 지점들로 보아, 제대로 욕먹고 비난 받으며 그들의 목적 달성의 꿈은 요단강을 건널 것으로 보인다.]

2005년 7월 7일,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매우 전통적이고 매뉴얼한 형식(?)의 연쇄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비공식으로 40여명이 사망하고, 1000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알려지고 있다.(어젯밤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300명 정도라고 하더니..) 테러가 일어나고 나서 피해 규모가 별로 부담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알 카에다 영국지부(점 조직/세포 조직)라고 밝힌 테러집단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히며 영국의 이라크 침공과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응징이라고 주장했다.

* * * * * * *

일반적으로 테러리즘의 피해국이 보이는 반응은 미국식 반응과 필리핀식 반응이 대표적이다. 미국처럼 웃통 벗어 던지고 쌍칼들고 복수하러 뛰어드는 국가와 필리핀처럼 테러에 겁먹고 바싹 움츠러 드는 경우다.
실제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외교력을 가진 국가라면 필리핀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토니 블레어와 G8정상들은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테러리즘은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응징을 다짐하고 있다.

관련글 :
비폭력 투쟁

나는 '약자가 행사하는 폭력'의 가치를 매우 낮게 평가한다. 약자가 내세우는 폭력은 그 한계가 명백하며 그 형태 또한 비정상적이고 비정규전적인 성향을 띄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그들의 투쟁은 제3자에게 지극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춰지고, 그러한 제3자들의 부정적인 시각은 자연히 테러 피해국에 대한 애도와 심정적 지지/물질적 지지로 이어진다. 더구나, 요즘처럼 反戰/反테러의 분위기가 국제 여론화되어 가고 있는 시대에서 테러리즘은, 그 무차별성 탓에 1차적 테러리즘의 피해 국가가 제3국들을 反테러리즘 전선에 동참시키기가 쉽고, 그들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던 강대국 내부의 지식인 계층의 목소리를 작게 만든다. 그러한 국제 정세의 흐름은 테러리스트(물론, 그들 약자/소수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은 마치 무장 독립 투쟁가처럼 비춰질 것이다.)들에게 조금도 유리할 것이 없는, 그들이 최초 목적했던 것조차도 얻을 수 없는 절대적 고립 상태로 몰아 간다.

[마드리드 열차 테러 당시 사진]


테러리즘은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급진적이고 과격한 선택 수단'이다. 테러리즘은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약자들의 선택 수단이고, 그러한 이유에서 테러리스트들은 강대국들의 군사력과 충돌할 수 없는 구조적인 취약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1998년 오사마 빈 라덴의 美구축함 테러는 실로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러한 구조적 제약 속에서 테러리즘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상대적으로 유약하고 방어가 취약한 민간 시설을 표적으로 삼을 수 밖에 없으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민간 시설에 대한 타겟팅이 테러리즘이 추구하는 공포에 의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목표를 강제하기에 최적화될 수 표적이라는데 또다시 역설적인 그 문제점이 있다.

테러의 표적으로서 민간 시설을 선택하게 되면 단번에 엄청난 국내적, 국제적 관심을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혼란 속에서 그들은 그들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메시지를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최고로 극대화된 상태에서 전달할 수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테러리즘을 시도하는 조직들은 민간을 목표로 한 '손쉬운 테러'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민간을 향한 테러 행위는 크게 전달되는 그 메시지만큼 더 큰 비난과 보복의 불씨를 낳게 된다. 여기서 또 한 번 힘으로 정의된 국제 사회의 논리가 등장한다. 강자의 테러리즘과 약자의 테러리즘은 제3자의 입장에서 다르게 인식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강자의 폭력은 '일종의 정의를 실현하는 강제력/거스를 수 없는 대세' 등으로 인식하며 주변 국가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국가를 지지하는 반면, 약자의 폭력은 '국제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제거되어야 할 불필요한 폭력'쯤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왜 발생했으며 원초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그러한 요구가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가치 판단은 제3국의 대부분의 일반 대중으로서는 애초에 그리 가치 있는 것도,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다.

단지, 그들이 비정상적이고 비정규전적이며 무차별적인 테러 행위를 자행하는 것 자체에 공포와 분노를 느낄 뿐이다. 즉, 설사 그들의 요구가 옳다고 하여도 그것을 지지할 의사를 그들 스스로 거세시키는 꼴이다. 그들 무장 테러조직들이 국제적으로 극소수인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계층과 자국 내의 선동적인 민중들의 지지를 얻는 것 정도로 만족한다면 그러한 테러 행위가 자신들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과거 우리의 항일독립 운동가들이 그랬듯이 그러한 형태의 독립 운동처럼 우리의 과거 무장독립 운동가들이 많은 피를 흘렸지만 결국 무가치한 죽음, 자기만족적 순교만 남기고서 최종적으로 얻어낸 것은 아무 것도 없이, 또다른 강대국의 힘에 의해서(우리가 의도한 힘도 아닌) 타의적으로 해방이 되는 그런 비참한 상황이 재현될 것이다.

설사 테러행위로 인한 민중들의 공포를 유도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시도했다 하여도, 아둔한 나라 '필리핀'과 같은 모습은 또다시 재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테러리즘에 한 번 굴복하게 되면 2차, 3차의 유사한 형태의 테러리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며 그러한 형태의 손쉬운 정책 변환은 해당 국가와 정부가 자국 내에서는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국제화/세계화 사회에서 제3국의 신뢰를 받기 힘들게 만든다.

[간디의 투쟁법은 그 진척이 더디고 불명확했지만, 결과적으로 국제 정세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가장 평화적이고 온건하며 국제적인 지지를 포용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게 하였다. 그러한 그의 투쟁법은 오늘날도 '비폭력 무저항'이라는 이름으로 존경 받는다. 하지만, 지하드를 외치는 알 카에다를 존경하는 이는 거의 없다.]


약자는 강자와 다르다. 약자가 강자처럼 문제를 해결하고 요구를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약자는 강자의 더욱 거대하고 무자비하며 맹렬한 보복을 초래할 것이다. 그러한 소수의 급진주의자들의 무지와 방종에서 비롯된 폭력은 다수의 그들이 소속된 사회에 강자로 인한 고통만을 선사할 뿐이다. 그것이 세상의 논리이며 유사 이래로 지금까지 그러한 양상은 그 형태만 다르게 나타났을 뿐, 계속 반복되어 왔다.
[2차 대전에서 레지스탕스가 발생한 도시에는 히틀러의 SS친위대가 파견되어 마을을 몰살시켰고, 팔레스타인계 테러가 자행되면 이스라엘군의 보복 공격이 가해졌으며, 알 카에다의 영웅주의에 젖은 무력 도발인 9.11테러의 댓가는 아프가니스탄 민중들과 이라크 민중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막연히 미국과 이스라엘 등만 탓을 할 것이 아니다.]


관련글과 상단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약자가 내세울 수 있는 폭력과 테러리즘이라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들이 물리적으로 나약한 채로 물리적 해결을 시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그렇다면 약자는 어떠한 방법이 동원하여야 하는가?


우리는 이미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60년도 더 전에 명확히 알게 되었다. 약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저항에 대해 가장 모범적인 대안을 제시한 예가 바로 '마하트라 간디'의 경우다. 구미위원회의 이승만 같은 경우는 무력이 아닌 외교적인 해결을 시도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민중의 참여가 배제된 것이 약자의 입장에서 그리 효과적인 선택이라 보여지지 않는다. 반면 간디의 경우는 보다 낮은 레벨의 저항이었지만, 민중의 지지와 동반 행동을 유도하는 아주 효율적이면서도 평화적인, 동시에 심증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려는 경향이 있는 국제 여론(강대국의 여론)으로부터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모범적인 모습이었다.

사빠띠스따 해방군의 마르꼬스의 경우도 매우 긍정적인 사례이다. 체 게바라와 곧잘 비교되기도 하는 마르꼬스는 체 게바라가 결국은 공산주의적 무장 쿠데타 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수 없는 한계를 지닌 반면, 마르꼬스는 무장 게릴라의 한계를 자각하고 스스로 총을 버리고 펜을 든, 약자가 힘으로 무언가를 쟁취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상당히 빨리 깨닫고 10여 년간의 대외 저작 활동과 언론 활동으로 무장 게릴라라는 태생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마르꼬스의 사빠띠스따 해방군은 알 카에다나 많은 이슬람 무장 테러 세력들 중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한 국제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고 있다. [아라파트의 경우도 그와 큰 틀에서 유사한 노선의 변화를 보였다.]


달라이 라마의 투쟁도 매우 효과적이다. 티베트에서 인도로 망명한 이후의 그의 수많은 저작 활동(비록 그 책이 모두 비슷비슷하게 다분히 지루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과 언론을 통한 독립 활동은 지금 이 순간도 그를 세계의 聖人으로서 추앙 받게 하고 있고, 티베트 독립을 위한 무수히 많은 INGO 단체들의 활동은 지금 이 순간도 활발하다.

물론, 달라이 라마의 투쟁은 미국의 對중국 압박 수단의 일환으로서 유효한 탓에 미국의 적극적인 후원(그것이 실질적이든, 중국을 향한 압박 카드이든지 간에..)이 있어서 더욱 탄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오늘날 티베트 문제에 있어서 중국이 결코 과거와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명명백백하며 지금 이 순간도 중국은 티베트에 대한 고도의 자치권 인정 요구 압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이유는 우리의 식민지 시절에는 그런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국제 사회적인 풍조(제국주의)가 다소 차이점을 보인다.]


런던 테러 이후, 다시 한 번 알 카에다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전세계 언론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보이는 관심은 그들의 목소리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그들이 저지른 잔악한 테러 행위와 그 피해에 대한 관심이다. 그러한 그들의 테러 행위는 스스로를 더더욱 벗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음을 그들은 아직까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강자의 테러리즘과 약자의 테러리즘은 명백히 다르게 정의된다. 어떠한 숭고한 정신과 순결한 정의를 지향한다고 하여도 테러리즘이 자행되는 순간, 그들의 이상과 가치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받을 수 없는 추잡하고 더러운 가치로 전락한다.
약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그들이 지닌 불리한 조건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불리한 조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제한된 카드, 불리한 조건이기에 활용될 수 있는 카드가 어떠한 것이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강자의 힘에 맞서는 약자의 힘은 강자의 더욱 큰 분노와 응징만을 초래할 뿐이며 그 고통은 자신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 테러리즘의 순환 속에서 더욱 더 고통 받고 힘들어지는 것은 그들 자신 뿐이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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