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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01 민주주의 해석에 대해 고의적으로 외면받는 견해.(3)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사전적 의미는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으로 정의된다. 말 그대로 '民이 주인이 되는 사회'로 쉽게 정의내릴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전적 의미에 집중하는 견해를 가진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를 가진 진영에서는 民의 능력을 천부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국민은 언제나 옳으며 국민의 뜻이 하늘의 뜻'이라는 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기와 탄핵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현정부의 위정자들은 "국민은 언제나 옳다"라는 찬양을 자연스레 했었다. 물론 훗날 그들의 견해는 극적으로 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전은 국민의 지도층에 대한 민주적(혹은 폭력적) 투쟁을 거쳐서 유무형의 희생을 통해서 발전해야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견해를 가진 진영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 중에서 상당한 수준의 민주화 수준을 갖춘 국가들의 역사에서 국민의 위정자들에 대한 국민주권을 수호 혹은 확보하기 위한 투쟁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러한 투쟁을 거쳐서 그들은 느리게 혹은 빠르게 오늘날 그들이 누리고 있는 민주적 사회체제를 쟁취하였다. 나 또한 민주주의의 정착과 성장, 발전을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투쟁이 필요하며 희생없는 민주주의의 자발적 발전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적으로 나는 이 쪽 부류에 가까운 인물일지도 모른다.
이런 견해들은 전반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민주(民主)라는 사전적 의미에 집착한 듯한 인상이 농도가 짙다(고 생각된다). 특히 민주적 사회체제를 '국민의 쟁취'에 중점을 둔 것은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맞다고도 확신하기 어렵다. 그리고 나 또한 지금부터 제시하려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두번째 부류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나 스스로를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해석에 대한 견해에서 많은 이들(정확히 말해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칭하는 이들과 상대적으로 지금부터 제기하려는 견해에 본능적 반감을 가진 이들.)이 놓치고 있는(혹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견해는 무엇인가?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정말 주인인가?
거의 대부분의(빠짐없이) 민주화된 국가의 역사에서 최초의 민주주의는 민의(民意)에 의한 쟁취가 아니라, 소수 사회지도층의 선구자적 노력과 그를 바탕한 사회에 대한 인위적 주입에 의해서 출발한다. 한국만 해도 양천제에서 일제식민지(이 또한 출신성분-출신국적-에 따라 사실상의 신분사회나 마찬가지이다.)를 거쳐 미군정에 의해 한국민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민주주의가 주입된 것이다. 민주주의가 국민의 선택이 아닌 지도자의 선택과 필요에 의해서 선택되어지고 주입되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왜 우리는 인정하길 주저하거나 망각하는 것일까?
주입된 정치체제는 반드시 실패한다. 그 사례는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심지어 국민들의 자발적 투쟁을 통해서 획득한 (상대적으로) 민주적 정치체제조차도 실패하기 일쑤이다. 대표적으로 프랑스혁명 이후의 노선을 두고서 분열하는 혁명세력을 밀어낸 '왕정복고'가 있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이었던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e Allende) 정권이 CIA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서 붕괴될 때도 시민의 힘은 실로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1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투쟁의 출발은 어디서 만들어진 것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소수 엘리트의 역할'을 제기하게 된다. 실제로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엘리트의 역할은 지대하고 학계에서 충분히 인정 받으면서도 민심(民心)에서는 놀랍도록 멸시받고 외면 받는다. 민주주의에서 엘리트의 역할을 이야기하다가는 '수구꼴통' 혹은 '보수꼴통'으로 낙인찍히거나, 'X도 모르는 놈이 깝친다'라는 진짜 X도 모르는 놈들의 비난을 받기 쉽상이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는 민주주의의 초기 정착과 제도권 진입에 대한 노력, 국민의 정치사회화에 기여한 그들의 정치적 행보의 말로가 거의 대부분 부정과 부패, 거대한 권력욕으로 점철되어 사고가 짧고 단순하여 단일화하길 좋아하는 절대다수의 국민대중들2
에게서 '나쁜놈'으로 낙인 찍혀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일제식민지의 황폐한 이 땅에 미군정은 민주주의의 토양을 배양했다. 전제군주였던 조선왕3
과 일제강점기의 총독이 지배하던 이 나라에는 여전히 양반과 상놈의 개념이 잔재했다. 지금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에게 '천방지축마골피/문어고기명태국'이라는 14개의 성씨는 조선시대 천민의 성씨라고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80년대 후반까지도 이런 천민의 성씨라고 전해지는 14개의 성씨에 대한 이야기를 어른들에게서 그리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1945년 8월 15일의 한반도는 아마 민주화와 자본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80년대 후반의 그 상황보다 몇 배는 더 나빴으면 나빴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정치사회화 수준이 황폐하던 이 땅에 민주주의를 이식하려니 지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이식하려는 노력만큼이나 어려움이 뒤따랐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경쟁적 사회체제였던 사회주의의 달콤한 구호들은 핍박과 가난에 찌든 일반인들과 소작농들에게 거대한 유혹이자 메시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실제로도 사회주의가 한국에서도 높은 지지를 받았음을 남로당의 성세와 박헌영/여운형 등의 월북 혹은 암살 과정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여기에서 구미위원회의 '최초의 한국적 엘리트' 이승만이 등장했다.
이승만은 틀림없이 평생을 한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사람이다. 상해임시정부 최초의 대통령이었고 동시에 최초의 탄핵대통령이었다.4
한국인 최초의 미국대학 박사 출신이었으며 당시 정치적 활동을 한 어느 누구보다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엘리트였다. 그는 이 땅에 다소나마 왜곡되었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충격파가 적은 권위적 민주주의(혹은 '가부장적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싶다.)로서 이 땅에 느리고 서서히 민주주의를 이식했다. 민주주의의 태동과 이식/정착 과정에서 이와 같은 정치 엘리트들의 가부장적 집권은 초기 민주주의를 건설한 국가들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이후의 신생독립국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소위 국부(國父)라고 하는 존재들이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초기 민주주의에서 정치 엘리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방향성 제시는 비민주적 국가의 민주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혼란을 최소화 하고 자연스럽게 과도기를 초기 민주주의로 연착륙하기 위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의 역할은 놀랍도록 절대적이며 또 권위적이어야 한다. 초기 비민주적 사회체제 속에서는 사회가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도층 내부의 의사도 민주적이지 않으며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휘계통에 손상이 와서는 민주주의 연착륙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정치 엘리트들은 권력욕에 빠지기 쉽상이다. '國父'로서 존재하는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이러한 권력욕에 빠져서 말년을 다소 고통스럽게 보내거나 비난 속에서 살고 있다. 유명한 사사오입 3선 개헌과 부정선거로 정치적 치명타를 받은 이승만은 말년을 권력욕에 찌든 노망난 영감으로 살아야 했고, 현재도 집권 중인 짐바브웨의 무가베 같은 자는 100세까지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다며 무한한 욕망을 표출한 바 있다. 심지어 선진국이라는 프랑스의 드골조차도 자신의 권력안정을 위해 국민투표를 남발하다가 부결되면서 하야를 선택해야만 했다. 물론 사후에 다시 재평가되어 다시 존경 받는 인물로 되돌아온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김구처럼 죽음의 타이밍(?)을 적절히 잡지 못한 이승만이나 무가베처럼 권력의 치명적 유혹에 빠져 스스로를 망치고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사례가 다반사다. 특히나 정치적 과오에 대해 냉정한 한국 국민들에게는 쉽사리 그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
민주주의의 자생력을 실로 놀랍다. 민주주의라는 고기의 맛을 음미해본 국민이라면 누구도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생존력이며 동시에 저력이다. 하지만 대중은 스스로 민주주의라는 고기가 맛있는지를 판단하지 못한다. 언제나 대중들의 선동적 구심점 역할이 되어주는 것은 소수의 엘리트들이며 엘리트들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이 필요치 않아질 때, 비로소 국민들은 특권적 엘리트들을 향해 저항하고 투쟁한다. 그들이 원하는 엘리트를 찾기 위하여 말이다.
- 후배네 블로그에 트랙백을 걸고자 작성됨.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 한국의 군부쿠데타는 시민이 스스로 민주주의 붕괴를 자초한 측면이 일부 있다. 오늘날의 민주정권 속에서도 장면내각 시절을 '시위만능시대'라고 폄훼할 정도다. [본문으로]
- 이 부분에 대해 반발할 자들도 많겠지만, 국민들 대부분은 지금 이 글을 보는 당신처럼 평균 이상의 학식을 가진 자들이 아니다. 나의 부모님만 해도 초등 중퇴가 최종 학력이다. '배움을 지성의 모든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배움을 무시하는 지성(?)'은 하찮은 궤변일 뿐이다. [본문으로]
- 황제를 칭했지만, 누구에게도 인정 받지 못한 직함은 의미가 없다. 실질적으로 마지막 왕이었던 고종은 너무나도 무능했고 민비와 대원군은 국내정치적 권력다툼을 외세를 등에 업고 해결하려 한 권력의 수전노들일 뿐이다. [본문으로]
- 상해임시정부 재정 마련을 위한 국채 발행을 자의적으로 결정했다가 일종의 탄핵을 당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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