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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똘똘이'는 아직도 '똘똘이'다.

[사진은 본문과 전혀 무관함. Photo : 네이버에서 '강이고저'라는 분이었던 걸로 기억됨. 2년쯤 전에 내가 다운로드 받았던 사진이라서 기억이 흐릿함. 이글루스 블로그 시절에 썼던 사진. 나 어릴 적 동네는 이 사진보다 300% 정도는 더 가난했다. 집 근처 길이 비포장 도로였다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때쯤에 포장도로로 바뀌었으니까..]


Dietrich Buxtehude - Praeludium will ich nicht lassen, BuxWV 220

20년 전 내가다니던 초등학교 근처에는 어느 노부부가 운영하던 '똘똘이문구사'라는 곳이 있었다. 산비탈에 지어진 그 학교로 오르는 길에서 우리집 쪽에서 나오는 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던 문구사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가장 많이 이용하게 되었다. 나중에 초등학교 고학년 쯤이 되어서 내가 학교로 가는 길에 다른 문구사가 새로 생겼지만 그 곳은 가게 주인이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된다.

똘똘이 문구사에는 '장껜뽀'라고 하는 사행성 게임기가 있었다. '짱껜뽀'는 당연히 가위바위보의 일본어다. 비정상적으로 파친코가 유행하는 일본에서 건너온(지금은 우리 나라도 만만찮지만..) 어린이용 사행성 게임이리라. 어린 시절에도 사행성 게임에는 익숙치 않았던 나는 그게임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한 번씩 할 때도 나는 언제나 꽝이었다. 어떤 애들은 36개씩 막 걸리고 그러던데 나는죽어도 안걸렸다. 요즘은 그런거 함부러 하면 교육청이나 시청에서 단속 나와서 괜히 어깨에 힘주며 자기네 조직에 기부금(벌금)내라고 한다. 시건방지고 썩어 문드러진 관료 녀석들이 원래 그렇지. [그래서 관료 출신임을 강조하는 고건을 싫어하는지도?]

그 곳에서는 '소다' 내지는'국자'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는 스테인레스제 국자에 설탕을 부어 연탄불에 녹였다가 소다를 부어서 베이지 색으로 부풀어 오르게해서 먹는 전형적인 불량식품이 있었다. 위생이라고는 조금도 가미되지 않은 그 더럽디 더러운 '음식'은 내가 아주 어린 시절의 어린이들에게는 스트리트파이터2 같은 전자오락만큼이나 재미와 달콤함을 주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동네가 워낙 빈(貧)해서 그추잡스런 가게 주변의 연탄불 옆에 조그만한 물통에 국자를 담궈 놓고 아이들이 하나씩 국자를 뽑아 들면 시골집 개 밥 그릇보다도 지저분할 것만 같은 작은 밥공기 바닥에 눅눅하게 녹아 붙어 있는 소다를 몇 번을 썼는지 가늠할 수도 없는 땅에 떨어지고 설탕 녹은 물에 찌들어 버린 나무 젓가락으로 찍어서 국자에 담고 국자를 연탄불 위에다가 데웠다. 우리 때는 그것을 나름의 '소독'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다 그렇게 해서 먹었으니까.

가격이 얼마였는지 정확히 기억되지 않는데, 처음에는 20~30원쯤 하던 것이었다가 나중에는 지금도 폴리에틸렌 포장지 속에 담겨있는 아이스크림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쮸쮸바'라고 하는 것과 가격이 비슷해졌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어릴 때 쮸쮸바는50원이었다.) 흔하디 흔했던 설탕과 100원짜리 한 봉지면 몇 천번은 찍어 먹었던 소다 하나와 50원도 안하던 연탄 한 장으로 장사했던 그 소다는 완전 한강물을 퍼다가 팔았다는 봉이 김선달과 다름 없었을 것이다. 그래봐야 내가 기억하는 그 '상회'(내가어릴 때는 수퍼가 아니라 상회였다. 수퍼라는 간판을 단 곳은 꽤나 깔끔하고 그럴 듯한 구멍가게들이었다. - 적어도 내가 어릴 적에 살던 동네에서는..)는 아마 절대로 그 사람들이 짊어졌던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다. 가난은 가난을 재생산한다. 가난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것이아니다. 그래서 나는 가난에서 벗어나 2채의 아파트로 부동산 과세를 걱정하고, 4대의 자동차세를 걱정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게만든 내 아버지를 적어도 '성실함' 하나 만큼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렇다고 그를 좋아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주 오래간만에 학교 앞의 그 길을 따라 지나가게 되었다. 운전 중에 스치듯이 지나간 장면들이었지만, 6년간 함께 했던 그 곳의 건물들은 거의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학교 정문 앞에 있던 문구사는 추어탕집으로 변해 있고, '대진 문구사'였던 곳은 무슨 '아트'라는 이름을 걸고서 과거의 구태(?)로 추억될 만한 '문구사'라는 간판을 내렸다. [대진 문구사의 주인 딸이 나와 같은 반이었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나이로 볼 때 대학을 졸업하고도 사회인으로 2~3년차쯤 됐을꺼다.] 똘똘이 문구사 맞은 편에 있던 그 문구점은 지금은 대포집 비슷한 곳으로 변해 버렸고 내가 즐겨가던 학교 앞 오락실도 지금은 전혀 다른 업종으로 변해 있었다. 오직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 오락실 옆에 있던 '똘똘이 문구사'는 지금도 '똘똘이 문구사'였다.

20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은 그 곳에서 나는 유년의 추억을 느낀다. 유년의 추억이라고 해봐야 나의 나쁜 과거 기억력으로 인해서 짙은 안개 속에서 흐린 시계의 환영과 같은 존재들이지만, 필요할 때 필요한 기억만을 떠올리며 과거를 추억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는 오랜동안 잊고 지냈던 그것들을 회상케 했다.


P.S. : 어릴 적에는 몰랐는데, 요즘에는 '똘똘이'를 남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비속어 중 하나로 쓰인다. '똘똘이에 거미줄 친다'라는 비속어로 이루어진 남자들끼리의 속담(?)도 있다.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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