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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즘[McCarthyism]의 양지와 음지

매카시즘[McCarthyism]은 일종의 강경반공노선이다. '극우'니 '극좌'니 하는 편향적인 황색언론들의 주절거림은 그들이 자신들의 필요와 정권의 요구와 노선에 따라 맞춰가는(또는 알아서 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격적 용어'일 뿐이다. 오늘날 '惡의 대명사'처럼 대중들에게 인지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매카시즘이 나는 지나치게 과대 또는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생각되어 약간의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물론 언제나 사건을 한가지의 평가으로 단순화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오류투성이임을 뼈저리게 체감하는 바, 두 가지 측면을 간략히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美위스콘신州 상원의원 Joseph McCharthy의 1950년 공산당 동조자 폭탄발언은 분명 그의 정치적 적의와 단세포적 무책임함이 발로(發露)한 가련한 광기였다. 그러나 그것을 매카시즘이라고 통칭하며 McCarthy사건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부정적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은 또다른 측면에서 깊은 성찰을 해볼 필요가 있다. - 이미지 : Goodnight & Good Luck의 스틸컷]



매카시즘의 태동과 시대적 배경
나는 매카시즘의 가공할 파괴력의 원천을 악의 제국Evil Empire 소비에트 연방이 획책한 악의적 국제공산주의운동(International Communist Movement)에서 찾는다. 폭군 스탈린이 전횡(專橫)을 휘두르는 사이에 자유진영은 공산주의의 무자비함과 대중선동을 통한 가공할 팽창력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공산주의 팽창에 대한 반발심이 격화된 것이 매카시즘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중국 내전이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의 승리로 끝나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기지가 중국본토에서 일본 열도로 후퇴하고 동유럽 각국이 소비에트의 서진(西進)에 차례로 공산화되어 가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승리 이후 독일을 4등분 하여 미/영/프/소가 분할 통치하다가 독일 과도정부에 귀속하기로 되어 있던 약속을 소비에트 연방이 위반하면서 동독과 서독으로 분할되고 소련이 '베를린 봉쇄'라는 戰後 최악의 긴장 상태를 조장하면서 미국 정부가 소련과의 일전을 각오한 베를린 공수작전을 감행하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였으나, 소비에트 연방의 야욕을 눈으로 확인한 미국과 자유진영 내부에서는 공산주의의 팽창저지라는 지상과제가 떨어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천문학적인 비용(당시 화폐로 120억 달러, 현재 화폐로는 약 1000억 달러)을 들인 마샬플랜(서유럽경제부흥정책 : Marshall Plan 1948-1951년까지 제공)을 실시하여 경제적 부흥을 통한 배고픔에 의한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는데 총력을 다하게 된다. 이 서유럽경제부흥정책은 양차 대전으로 피폐해진 유럽을 부흥시키는데 적잖은 공을 세웠고, 루마니아, 알바니아, 불가리아 등을 차례로 위성국가화(완충지대 : Buffer Zone)하면서 남하를 거듭해온 소련을 저지하기 위해 그리스, 터키에 전폭적인 지원을 쏟아 부으며 자유진영의 맹방으로 끌어들였고 이를 기반으로 소련의 전통적인 남하정책에 기반한 지중해 진출을 통한 영향력 확대라는 야망을 저지시킬 수 있었다. [더불어 미국이 제시한 마샬플랜은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EU의 진정한 출발점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의 정책이 미국의 가장 큰 적 중 하나를 만든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벌어진 한국전쟁과 UN군의 이름으로 한국전쟁에 전격개입한 미군과 소련제 무기를 쓰는 북한군/중공군의 정면 충돌은 더 볼 것도 없이 세계인들에게 공산주의의 폭력적 팽창 과정의 결과를 보여주는 교과서와 같은 현장이었다. [강정구 같은 미친 남파간첩스러운 놈은 죽어도 통일전쟁이라고 강조하겠지만, 한/중/미/러의 공개 문서들이 그것이 침략전쟁임을 명명백백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자유진영 對 공산진영의 팽팽한 대결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폭발한 것이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의 공산당 동조자 발언인 것이다. 어떤 사건이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그 사건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배경을 필요로 한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저지른다고 그 일이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조셉 매카시의 공산단 동조자 폭탄발언은 이와 같은 공산주의와 소비에트 연방의 팽창정책이 가시화되면서 팽배해진 정계와 대중들 속의 反공산주의/反소련 정서가 충만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매카시즘은 1950년대 초반의 美정계의 정치이슈 또는 돌발사태가 아니라, 세계 대전 이후 국제 사회에 새롭게 불어닥치기 시작한 국제정치적 사조의 하나로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매카시즘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매카시즘이 정치권과 대중들에게 통하도록 만든 소련의 팽창정책이 그 원죄를 짊어지게 되는 것이며 그것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정치권이 그 다음 순서를 서야 하는 것이다.


매카시즘의 격화와 그 부작용
'매카시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조셉 매카시는 그 책임질 수 없는 허언(虛言)과 과도한 자신감 때문에 실각하였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나(그 때만 해도 암살이 횡행하던 시절이 아닌가?) 곧 죽었다. 그러나 매카시즘은 그 이후로도 여러가지 형태로 계속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핵군비경쟁이다.

나는 핵군비경쟁의 이념적 토대를 매카시즘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매카시즘의 시작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련에게 그 1차적 책임이 부과된다. 소련은 자신들의 그와 같은 행위를 미국의 절대적 핵우위에 대한 자위(自衛)행위라고 주장하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한 이후 받은 국제적 비난과 그로 인한 핵의 재사용에 대한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 핵은 사용되어져서는 안되는 무기라는 인류적 공감대를 외면한 자기 합리화를 위한 요식행위일 뿐이다.

일의 우선 순위야 어찌되었거나, 이와 같은 소련의 핵군비 증강은 미국과 서방진영의 또다른 입장과 의미에서의 핵군비 증강을 촉발시켰다. 누가 먼저 군비 경쟁의 불씨를 당겼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거리일 테지만 나는 원초적 책임을 소련의 팽창정책에 구도 있는 바, 그 책임소지를 소련에 두고자 하며 또 냉전과 같은 비이성적 군비경쟁은 소련없이는 불가능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맹렬한 대립 구도 속에서 1958년 미국의 숨통과도 같은 쿠바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은 카스트로가 공산혁명에 성공을 한다. 이에 극도의 위기감을 느낀 J.F.K.의 미국은 쿠바망명자들을 모아서 CIA가 조련한 '2506공격여단'을 통해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국가선언을 한 다음날인 1961년 4월 17일 피그만(The Bay of Pigs) 침공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이 또한 철두철미한 반공의식에 입각한 대표적인 매카시즘의 포연(砲煙)인 것이다.

심지어 1962년에는 10월 22일∼11월 2일의 11일간 소련의 핵탄도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고 시도['쿠바(핵)미사일위기']하였고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미국 동부 해안이 대서양 함대를 통해서 봉쇄하여 국제사회가 제3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 내몰리는 대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표면적으로는 소련이 피그만 침공에 이후, 미국의 쿠바 침공을 공산주의의 수호자적 입장에서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여 보호하려 했던 것이었지만, 소련의 선례들을 볼 때 그것을 믿을 1960년대 당시의 세계인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발사 5분 이내에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 D.C.를 포함한 미국 동부 전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쿠바 핵미사일기지에 대한 미 국민들의 공포는 오늘날 탈냉전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공포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임에 틀림없다. 이 또한 철저한 반공주의에 입각한 매카시즘의 포연이었다.

[매카시즘의 물리적 원인은 다름 아닌 핵공격에 대한 공포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세계 최소의 핵공격을 감행하여 단시일에 전쟁을 종료시켰지만, 두 차례 핵공격이 인류에 남긴 후유증은 엄청난 것이었다. 핵에 대한 극한의 공포(Sum of All Fears)는 타협이 없던 냉전과 新냉전 시대에 살아 남기 위해서는 더 강한 전쟁수행능력을 갖추는 법 뿐이라는 암묵적 동의를 얻어냈다. 그 동의 속에서 죽음의 공포는 더욱 짙게 드리워지고 매카시즘의 광풍은 더 거세게 몰아쳤다. 레이건 前대통령의 악의 제국(Evil Empire)선언과 SDI(전략방위구상)은 정치적 의도와 함께 그 두려움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결국 매카시즘의 궁극적인 핵심은 '적(敵)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었다. 자신들의 상대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기에 이러한 불신이 모든 공포의 합(Sum of All Fears)인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결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의 핵패권이 무너지면서 대량보복전략(Massive Retaliation), 단계적 억제전략(Graduated Deterrence), 유연반응전략(Strategy of Flexible Response) 상호확증파괴전략(Mutual Assured Destruction)에 이르는 공포를 또다른 공포로서 제압하려는 몸부림이 양대 강대국 사이에서 광란의 질주를 펼친 것이다. 극한의 공포 속에서 無知한 일반 대중들에게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물며 알면 알수록 더욱 공포와 가까워져 있었을 정책결정자 집단들과 정계 인사들에게는 더욱더 타협의 여지가 좁혀져 있었을 것이다. 이는 미-소 양국의 지도층 모두가 공히 겪고 있었을 딜레마일 것이다.

21C의 미국은 핵태세 보고서(NPR:Nuclear Posture Review)를 통해서 MD를 바탕으로한 '일방적 확증파괴전략'이라는 새로운 핵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또한 결국 제3의 적성세력에 의한 안보 위협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리고 그 적은 과거 냉전기처럼 국가라는 정형화된 적 뿐만 아니라, 테러 조직과 같은 비이성적 집단을 포괄하고 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정확한 소재를 파악할 수 없는 핵탄두 수백여개가 어딘가에 숨겨져 있고 이들 중 단 1발이라도 이와 같은 비이성적 집단에 의해서 악의적으로 사용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피해는 이미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 있는지도 모른다.


매카시즘은 인류사의 해악(害惡)이었는가?

[스탈린과 흐루시초프. 둘은 똑같이 매카시즘의 주요 타겟이었지만, 그 대응책은 판이하게 달렸다. 한 명은 영원토록 히틀러를 능가하는 대학살자이자 전쟁불가피론의 수호자로 남았고, 한 명은 그 자신의 무모함으로 인해 공산권 붕괴의 기수로서 인류 역사에서 스탈린과는 다른 의미에서 큰 획을 그었다.]

쿠바 미사일위기를 통해서 미소라는 절대강자들은 상호 간의 전쟁은 필멸(必滅)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고, 생존을 위해서는 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상과제를 떠안게 된다. 미-소는 당장 급한 핵전쟁을 예방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 하에 1963년 3월 핫라인 개설, 그 해 8월 부분적핵실험금지조약 (Treaty of Banning Nuclear Weapons Tests in the Atmosphere in Outer Space and Under Water, 모스크바 조약으로 최초의 핵실험 제한협정. 1964년 한국도 서명)을 체결하였다. 이것은 이후 진행되는 SOLT I, SOLT II, START I, START II 등의 군비제한/군축 협상으로 이어지는 신호탄으로서 양국이 생존을 위해서 핵이 제한되어져야 하며 생존을 위한 대화의 공식적인 첫 결실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제 더이상 매카시즘적인 사고를 통해서는 좁은 지구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으며 인간이 시도하는 과학의 발전은 이런 공포의 폭발적인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매카시즘의 핵심은 '공포'다. 그리고 그 공포는 상대방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이며 평화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적에 대한 또다른 적의(敵意)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매카시즘이 가져온 국제적 상황이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시발점이 된 것이다. 적에 대한 끝없는 공포와 적의는 피아 모두에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를 부여하였고, 그 감당할 수 없는 공포 속에서 쌍방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가치판단을 내림으로서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첫단추를 꿰기 시작하였다. 대화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21C의 세계 각국은 적어도 '땅따먹기'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에서는 자유로워졌다. 또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서 과거와 달리 많은 국제적 압력과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 하게 되었으며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필요로 하는 1C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평화적인 룰이 적용되는 국제사회를 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특별한 돌발변수(돌발변수의 존재는 이 글을 마치고 나서 다음 글에서 써볼 생각이다. 자료 수집중)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평화공존의 기류는 계속될 것이고 점차 전쟁이 최소화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이미 도래한지도 모른다. 이라크전은 과거와 같은 세계적 규모의 대전이 아닌 제한전이며 국지전일 뿐이다.) 이와 같은 예상이 가능토록한 것은 매카시즘의 포연이 남긴 진한 화약 냄새가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지 탈냉전기를 살고 있는 세계인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테러리즘을 대상으로한 신매카시즘, 인류를 향한 테러리즘의 잔악함에 대한 경고
미국이 느끼는 공포의 원인은 무엇인가? 미국이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인가? 그럼 지금부터라도 미국이 제3세계 빈국(貧國)들에게 무제한적으로 퍼주면 미국을 향한 테러집단들의 적의(敵意)가 사라질 것이라 기대하는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생각의 출발점은 아마도 '인간은 선하다'는 성선설에 대한 막연한 기대이거나 부시 행정부의 악의 축(?) 딕 체니가 TV대담에서 말했던 너무나 순진무구한 발상이 아닐까 싶다.

남의 것이 내 것이 되기 시작하면 남의 것을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양차 대전 이후 미국의 천문학적인 원조를 받았던 서유럽 각국들은 지금 가장 온건하면서도 영향력 있는 反美국가들 중 하나로서 군림하고 있고 우리는 이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다. 서유럽에서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미국의 군사력을 통해서 베를린 봉쇄와 같은 안보적 위기를 극복했던 독일조차도 대표적인 反美국가군에 속해 있다. 미국이 惡하기 때문에 테러의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사건을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미국이 국제사회의 지배국가적 입장, 즉 패권국의 입지를 유지하는 이상 미국에 대한 악의적 집단의 적의(敵意)는 그 정도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미국이 정말 환상적으로 테러집단들을 컨트롤해서 이 땅에서 미국을 적성국으로 상정하는 테러집단이 없어진다면? 그 때는 또 그 때에 존재하는 또다른 형태의 '공포'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공포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칼만 있을 때는 칼이 무서웠지만, 총이 생기자 칼보다 총이 더 무서운 것처럼 말이다.

미소냉전이 격화되는 가운데에도 미소가 직접 총구를 마주하고 다툰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그것은 서로를 극도로 경계하던 매카시즘적 사고 패턴이 상대를 자극하는 것이 어떤 가공할 만한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해 최대치까지 예상하며 그것이 현실화될 수 있음을 상정한 채 외교 정책을 입안했기 때문이다. 즉 다른 관점에서 매카시즘의 격화는 불완전했지만 어느 시대보다도 완전한 형태의 평화를 이룩했던 시기로도 해석될 수 있다.

50년대의 매카시즘은 반공사상의 하나로서 존재했지만, 오늘날의 매카시즘은 다양한 형태로서 우리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다양한 모습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공포'라는 양분에 기생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 공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다양한 형태의 매카시즘도 끝없이 생존해갈 것이며 그 매카시즘적 사고패턴이 반드시 부정적 의미와 결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글의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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