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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많이 밥맛이네.

[이 사람은 김기덕. 혹시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봐. Photo : 마이데일리]

꼴마초, 떡방앗간(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주위에 물어보기 바람.) 영화나 만들던 감독의 찌질한 울분(?)을 듣자니 참으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영화라는 컨텐츠 자체를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어서 가장 최근에 봤던 '캐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이 몇 달만에 본 영화였지만(나의 영화에 대한 무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통 사람들 영화보고 오면 자기 블로그에 감상문 쓰느라 바쁜데 나는 아예 일언반구 말이 없을 정도다.), 내가 본 김기덕 영화 2개는 '사실상의 강간'과 '매춘', '떡'으로 그냥 그걸로 끝나는 영화 뿐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인간의 로우레벨 본능에 충실한 영상과 그것에 대한 매저키즘/새디즘적인 본능을 묘사하는 듯한 스토리와 영상으로 보는 이를 성적인 상상 이외의 어떤 생각도 들지 않게 하는 '천한 영화'의 극치였다.

그런 인간의 입에서 수준이 어쩌고 나발을 부는 이야기를 들으니 참 적반하장의 기분이 든다. 한 번도 제대로된 영화를 만드는 감독(그저 그의 영화는 본능과 연결될 뿐이었다. 그것이 그의 작품 세계라면 할 말 없다.)이라 느낀 적이 없는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울분과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냉소는 주제파악이 안된 3류 인간(그의 영화 속 세계에 자주 나오는 인간군상이 아니던가.)의 전형처럼 보인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착각하는 것이 있다. 인권이니 권리니 하는 가치들이 부각되면 부각될수록 착각하기 쉬운 것인데, 바로 '세상에서 내가 가지는 존재의 의미' 문제가 그것이다. 특히 김기덕처럼 변태적인 그의 세계가 소위 평론가들(내가 가장 우습게 보는 부류들 중 한 종류다. 음악계에서도 평론가들의 삽질은 말할 필요가 없다.) 사이에서 높이 평가 받는 사람일수록 자기 잘난 맛에 젖어 자기가 없으면 세상이 당장 무너질 듯한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이 문제를 겪는다. 그가 영화를 내지 않던 동안에도 충무로는 여전히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그가 없던 시기에도 영화는 만들어졌다. 그가 있던 시기에 그랬던 것처럼. 김기덕이 있던 없던 한국에서 영화는 만들어질 것이고 계속 개봉될 것이다. 결국 김기덕은 그의 인터뷰 내용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뒤늦게 깨닫게 될 것이다. 김기덕 자신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얼마나 먼지 같은 존재였고, 자신이 없는 한국의 영화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움직이는 것을.

다른 것 말할 필요없이, FTA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총화단결하자는 식으로 하던 영화계에서 힘 좀 쓴다는 양반이 자기 영화가 안뜬다고 동업자들의 영화가 흥행되는 것을 시샘하는 꼴은 정말 같잖지도 않았다. 찌질이의 전형이다. 그의 영화 속 세계처럼. 당신의 성도착증을 과시하는 듯한 그 강간영화를 계속 만들텐가? 자신이 만든 그것이 그렇게 훌륭해 보이나?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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