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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사와, 두 번째 사죄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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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 대해 '애 낳는 기계' 발언으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일본 후생성 장관 야나기사와가 두 번째 대국민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Photo : AP연합]

일본 후생성 대신(장관) 야나기사와 하쿠오가 쏟아지는 야당과 언론의 십자포화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대국민 사과를 통해서 여성에 대한 '애 낳는 기계' 발언에 대해 사과를 했다. 정치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신민형+시민형 민주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일본 민주주의의 정치문화 탓인지, 아니면 아베 신조 총리의 신임을 등에 업고 있는 탓인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보려는 모양이다.

야나기사와 대신의 무개념 발언은 명백히 지탄받아 마땅하다. 21세기에 세계 2위의 경제 규모와 세계 3대 금융부국인 일본에서 이처럼 여자를 '암컷'으로 취급하던 도쿠가와 막부 시절에서나 나올 법한 망발은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안그래도 각종 스캔들로 지지율이 나날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총리가 나서서 관료들과 당직자들에게 '입조심을 하라'고 당부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러나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고도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일본의 출산률 증가를 위한 히스테릭과 노이로제를 느낀다. 그리고 이 문제는 결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로서 확산되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인구통계를 발표할 수 있는 근대화된 산업국가들 중에서 한국의 출산율이 낮기로 세계에서 1~2위를 다투는 한국도 야나기사와의 회의 중 나온 이런 발언들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조차도 출산에 대해서 큰 부담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남자다.) 이상론자들이 말하는 '아빠되는 법/엄마되는 법' 등의 체계적인 교육에 대한 부재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동안 내 주변인들에게 아기/아이들을 병적으로 좋아하는 내가 출산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 아이가 내 아이라면 그 부담감을 견디지 못할 것 같다'라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라는 인간이 가진 특유의 완곡한 은유였을 뿐이다. 내가 진실로 출산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이에게 모든 것을 내던져야 하는 한국의 현실견딜 수 없는 높은 교육비 때문이다. 즉 경제적인 요인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그나마 아버지의 자그마한 공장이 일이 많아서 소득이 제법 괜찮은 편인 우리 집안에서 아주 돈을 적게 들여서 육성된(시뮬레이션인가? 나는 과외를 한 적이 없고 학원 등도 거의 다닌 적이 없다. 내 동생은 나와 조금 다르다.) 나만 해도 내가 학교 생활과 관련된 돈을 지출하는 것이 솔직히 내가 나중에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 이미 어느 정도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된 나에게 출산과 육아, 교육 문제는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고 '3번째 삶'[각주:1]을 살아가야 하는 나에게 직접적인 당면 과제다.

사실상 가장으로서 가정의 경제적 부담에 중점적으로 책임지며 삶을 살게될 남자인 내가 이런 부담감을 느끼는데, 실제 생활에서도 정서적으로도 훨씬 더 아이에게 얽메여 있어야 할 여자의 입장에서 출산과 육아는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라 본다. 실제 아이들은 보통 아버지보다 어머니에게 더 정서적으로 친화력을 가지기 때문에 어머니로서의 역할은 아버지의 역할 그것 이상을 요구한다. 정말이지 요즘처럼 당장 내일을 장담하기 힘든 시대에는 막연히 미래자산에 기대하여 '가정의 소중함'을 의지하여 부부들에게 강요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세상이다.

야나기사와의 그 실언이 일본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는 비정상적으로 빠른 변화를 겪어왔다. 특히나 인터넷의 보급은 몇 백년간 이루어진 서구 시민사회의 가치를 날림으로 60년도 안되는 나라에 융단폭격을 쏟아내고 있고, 그런 선진문화의 가치에 오염(?)된 상대적 후진국인 한국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기대치는 이미 아직 풋내기에 불과한 한국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 있다. 현실적인 능력의 한계는 명백하지만, 또다른 현실에서 우리가 이 문제를 깊이 있게 토의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 또한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다.


종족번식이 본능인지 아닌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나는 분명히 내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고 싶고 잘 키워보고도 싶다. 그러나 사회적인 요인들이 그런 사람들의 의지를 꺾으려 한다면 분명 이 사회의 어딘가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야나기사와의 실언은 그런 사회가 문제점을 고치려고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것이 그나마 긍정적인 면이라고 우겨볼 수 있을까?(그렇다고 그의 '도쿠가와'틱한 사고 패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도 이미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다.


Hedge™, Against All Odds..
  1. 나 혼자서 그냥 정의내린 개념으로 첫번째 삶-미성년자의 삶-, 두번째 삶-성년 대학생으로서의 삶-, 세번째 삶-'가장'이자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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