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기념(?)으로 사놓았던(또는 사놓고 못본 채 방바닥에 수북히 쌓인 불쌍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발간 직후에 샀었는데, 시험치고 공부하고 이러면서 슬슬 미루다가 보니 내용도 헷갈려서 새로 읽는 마음으로 다시 읽는다.
국내 번역 출간이 신기할 정도로 빨리 이루어진 '제국의 선택'을 처음 샀을 때, 학과 교수님 중에 한 분이 이 책의 번역 저자가 아는 사람이라면서 예전에 정치학회 활동을 같이했다면서 학회 활동은 그리 열심이지 않고 '돈되는 일에는 신출귀몰하다'면서 험담을 하던 것이 생각난다. [늘 그렇듯이 진실은 저 먼 곳에..]
폴란드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교육을 받고, 미국 정계에 진출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매우 차갑고 냉혈적인 인간이다. 그는 미국의 전통적 보수주의 진영의 거목이면서도 보수 원류와는 차별성을 지닌, 합리적이면서도 극히 현실적인 정치관을 가진 국제정치전략 전문가로서 그에 버금가는(어쩌면 더 유명한) 현실주의 정치계의 거목 '헨리 키신저'와 함께 활동했던 카터 행정부 시절을 자신의 정치적 활동의 최고조로 한다. [번역자 또한 서문에서 '인권외교'를 내세우며 냉전 시기 박정희와 대립하며 자유 진영의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던 카터의 국제전략보좌관이 그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에 이질적 느낌을 서술해 놓고 있다.]
내가 그를 선호하는 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짚고자 하는 것은 힘으로 규정되는 국가 관계의 설정에 대한 그의 극히 현실적인 안목이다. 그리고 여기에 한가지 더해지는 것은 그는 힘을 중시하면서도 힘을 앞세운 지배보다, 권위에 의한 지배를 선호한다. 그리고 자신의 조국(미국)에 불이익이 오는 관계를 특정한 정치적 이익으로 인해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에 반대한다.
[ex)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서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親이스라엘 정책에 반대한다.]
내가 과거 9.11테러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 Neo-Conservatism 진영의 정책에 호감을 느끼고, 그들을 알고 이해하고자 했을 때의 그들은 정책적으로 '제국의 지도층' 지도층으로서 충분히 선택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지극히 효율적이고 합리 지향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기존의 신보수주의 진영이라 불리던 딕 체니, 폴 울포비츠, 도널드 럼즈펠드, AEI 출신/소속 인사들은 일관성이 흔들리며 점차 히스테릭에 가까운 무리한 정책을 수행하려 시도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과거 신보수주의 진영이라 불리던 자들의 모습은 마치 '파시즘'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점차 광기에 물들어 가는 모습이다. 그러한 모습들은 대단히 실망스럽고 조급증에 걸린 듯한 모습이며 그들 스스로가 표명했던 신보수주의적 입장에 규합하지 않는 추진력은 있지만 합리적이지 못한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신보수주의 진영이라 부르지 않고, '강경파'라 호칭하고자 한다.]
브레진스키는 그러한 그들의 조급증과 불합리한 정책 설정에 대해 비판한다. 그것은 자신이 가진 '제국의 통치철학'에 어긋나는 것이고, 그가 일관되게 '제국(Empire)'이라 호칭해 온 미국이 리더쉽에서 오는 권위가 아닌, 강압적 수단에 의한 통치로 점차 고립되고 자신의 제국이 지지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일 것이다.
물론, 과거 신보수주의 진영에서 새로이 제국이 되고자 경주하는 중국의 등장을 견제하기 위해 레이건 시절부터 계획되었던 굵직한 정책들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오는 일종의 위기 의식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러한 조급증에 대해 브레진스키는 대국적(大國的) 입장에서 좀 더 큰 것을 얻고자 시도할 것을 충고한다. 예를 들면 지나친 親이스라엘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그로 인한 피드백(중동의 反美 분위기)이 훨씬 더 큰 손실이라는 판단을 가진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서 죄악시 된다. 정작 보수를 증오하는 세력들마저도 부분적으로 보수적인 내지는 그들이 가진 정향(政向)에 극도로 치우친 (진정한 의미의) 수구적 성향을 띄고 있으면서도 단지 '보수를 반대한다'라는 상징적인 자아도취에 취해서 '보수=수구'의 공식을 스스로 내면화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식화시키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화 작업은 그들의 정치적 야욕과 목적 달성에 충분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정작 제도권에 진입한 그들은 스스로를 보수화(수구화)한다.
그러한 그들의 경직된 사고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내세운 감언이설들 중에서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체감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가? 단지 (김명섭 교수가 수차례 강조하며 우려한)정서적 반감만을 가지고서 인류가 존재한 이래로 역사의 대부분을 지배해온 보수주의적 논리를 적대시 하고, 그들에 대한 이해를 부정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문명의 이기에 취해서 도둑질을 한 부모가 부끄럽다하여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보수'는 분명 그리 아름다운 논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보수는 진보/좌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본주의적이지도, 인류애를 지향하지도, 분배 지향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보수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보수의 지배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던 진보의 극단으로 치달았던 레닌/모택동/김일성의 자국의 운명을 건 사회주의 대모험은 처참한 굶주림 속에서 보수보다 더욱 수구적인 정치 행태를 보이며 실패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보수는 여전히 지구상에 현존하는 최고의 부와 최고의 민주주의를 대중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그들에 대한 이해와 수용 없이는 어떤 논리도 현실적인 적실성을 지닌 가운데 펼쳐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미 그 자체로 내게는 충분히 검토하고 고려하며 자세히 알아볼 가치가 있다. 촘스키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비판을 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그의 논리는 훌륭한 지적이고 비판이지만, 그것을 통치 이념화하려면 아마도 전세계적인 규모의 혁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브레진스키는 그들의 지도자에 따라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세상을 지배해 왔다. 이상적인 논의가 학문적 가치를 지닐지는 모르지만, 적실성을 띄고 있는 논의만이 현실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다.
P.S. : 오오.. 지금 비가 온다. 이대로 하루만 계속되면 내일 훈련은 비디오 정신교육으로 때울 수 있다. ㅠ_ㅠ.. [내 짧은 인생에 처음으로 비가 너무나 반갑게 느껴진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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