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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 Photo : 출처불명]

미국의 대표적인 네오-리얼리즘(Neo-Realism) 성향의 고전적 보수주의자 '헨리 키신저'가 그의 평생에 57번째 참석한 미국과 러시아의 국교 수립 기념행사에서 모스크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러 양국에 강한 어조로 대외정책을 비판했다. 70년대부터 미국의 대외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여러 행정부가 지나감에도 불구하고 가장 최근까지 미국과 미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원로 정치인으로 남아 있는 그의 말이어서 꽤 주목을 받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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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이지만 고도로 조직적이고 反베트남전쟁 시위 운동에서부터 조직화되어 오랜 잠행기간만큼이나 정형화되지 않은 정치적 노선임에도 놀랄만큼 선명한 임팩트를 가졌던 네오콘(Neo-Conservatism)과 AEI출신들의 시대에서, 그로서는 비교적 오랜 기간동안 잠행 아닌 잠행을 한 셈이니 미국외교가의 거물로서 본의 아니게 자존심을 구긴 터라 슬슬 입이 근질근질할 만도 하다. 물론 그 동안 정치적 행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1 , 그가 살아온 삶의 발자취에 비하면 정말 놀랄만큼 조용한 기간이었다.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 교수 출신인 '헨리 키신저'는 소위 말하는 존경 받는 정치인/행정관료 혹은 '모사꾼'은 아니다. 소위 극좌파 성향의 親제3세계 성향의 일부 지식인들이 출판한 서적들 중에서 헨리 키신저의 이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7~80년대에 정치적 전성기를 누린 그의 이름은 그 시대를 이야기하는 모든 국제정치 관련 연구자들과 지식인들의 글에 오르내릴 수 밖에 없다. 그가 없이는 냉전과 탈냉전을 이야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국제정치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모사꾼'이다.

내가 그를 '모사꾼'이라는 다소 낮춰 부르는 듯한 표현을 쓰는 것은 그의 행적 때문이다. 한때 내가 역할모델(?)처럼 생각하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현실감각을 상실해버린 몽상가쯤으로 치부하는 노엄 촘스키(Noam Chomsky)는 헨리 키신저를 비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들 중 한 명이다. 촘스키는 헨리 키신저를 중남미 지역의 여러 反美성향의 정부를 출범시킨 국가를 전복시키고1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전방위적 베트남 지원을 통한 북진통일을 이루어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봉쇄정책 : Containment Policy)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부동항 확보를 저지할 것을 주장하였고, 베트공의 '호치민 루트' 차단을 위해 캄보디아를 공습하여 베트남전에 끌어들이기도 했다고 주장하며 또 이는 대부분 사실이다. 2

그러나 놀랍게도 베트남 전쟁이 미국이 베트남 방어의무를 포기하고 철군함으로서 베트공에 인도차이나 반도가 잠식되어 전쟁에 의한 평화를 이루자3, 베트남전 종식의 공로로 헨리 키신저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냉전의 시기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사실상 전쟁을 미국 내부에서 정치적으로 지휘한 것이나 다름없는 그에게 '가능한한 최선의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공로'를 인정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것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평화라는 단어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평화의 가치는 상대적일 수 밖에 없으며 인간의 한계로 인해 '완전한 평화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2


그를 둘러싼 각종 악명과 폭넓은 스펙트럼에 걸친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명의 학자이자 정치인/행정관료로서 놀랄만큼 커다란 족적을 남겼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세인들의 기억에 남을 만하다. 그리고 그가 그의 평생을 통해서 보여준 고도의 냉철함(냉혈함.)과 모든 대외적 사고에 있어서 자신의 조국인 '미국'과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는 면모는 전 세계 모든 정치인과 행정관료들이 필히 본받아야 할 점이다. (나는 그런 그의 성품을 대단히 존경한다. 나는 그는 미국에게 있어서 '그림자 속의 애국자'라 부른다.) 어설픈 감상적 사고와 무책임한 온정주의는 국가와 국민을 한 개인 혹은 한 집단의 정책적 실수로 인해 도탄에 빠뜨릴 수도 있다. 실제로 키신저도 베트남 전쟁에서 '현지의 전황을 무시한 채, 자신이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국제정치적 측면을 고려한 대외정책을 우선시함'으로서 미국과 미국의 젊은이들을 고통 속에 빠뜨린 적이 있다.(그리고 그러한 그의 과오는 훗날 네오콘의 등장으로 이어져 그를 잠시동안이나마 정계일선에서 도외시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전반적 측면에서 그의 행보는 대체로 성공적이었고 미국이 원하는 미국의 이익을 얻는데 대체로 일조하였다.

나는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고 최선이 안될 경우 차선을 택할 줄 아는 그의 냉철함을 존경한다. 물론 '그의 선택에 도덕이 결여되어 있다'라는 원초적 반론에서 그는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와 같은 반문을 하는 진영에서는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내 나라에서 하루 2끼를 먹으며 1끼의 식사를 거르는 국민과 아프리카에서 반군과 난폭한 정부군에 의해 무차별 학살을 당하는 무고한 아프리칸들 중에서 양자택일이 강요될 때 누가 더 나에게 우선시되어져야 하는가' 하는 물음 말이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인간들은 국제 간의 관계에 있어서 고도로 이기적이다. '아프리칸의 생존에 대한 위협'은 '내 친구의 1끼 굶주림보다 더 먼 가치'다. 어떤 측면에서 헨리 키신저는 단지 '그것'에 충실한 자일 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리들 대부분의 모습이다.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1. 대표적으로 美CIA가 피노체트를 후원하여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쿠데타로 붕괴시켰으며,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콜럼비아 내전,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등에서 親美성향의 군사정권을 미국이 정책적으로 후원 혹은 방임하도록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실질적으로 그가 정계에 등장한 이후에 발생한 중남미 좌익 성향의 정부 전복이나 좌익 성향의 야당에 대한 여러 탄압 행위들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음이 사실상 기정사실화되어가고 있다. 그 외에도 냉전기에 中美관계 개선으로 죽의 장막을 걷어내며 전세계에 데탕트를 전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공산중국(중공)에 방문한 최초의 미국 최고위급 관료다. [본문으로]
  2. 베트남 공산화와 궤를 함께하여 미국이 인도차이나 반도의 민주주의를 수호하지 못하면서 인도차이나 반도의 공산화 도미노 현상을 막아내지 못한다. 이는 드러나지 않은 미-소 대리전에서 소련이 승리했음을 뜻한다. [본문으로]
  3. 실질적으로 베트남은 전쟁 시기 축적된 군사력의 우위는 주변국들에게 적잖은 위협이 되며, 이후 中등소평의 국내정치적 목적과 공산 베트남의 군사적 충돌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본문으로]
  1. 신임UN사무총장이 된 반기문 사무총장이 취임 전에 가장 먼저 만난 거물급 인사 중의 한 명이 '헨리 키신저'이기도 하다.(국제무대에서는 신출내기인 반기문 사무총장이 거물 중의 거물인 헨리 키신저의 접견요청을 거절했을 리는 없을 터.) 헨리 키신저가 반기문을 만나러 가는 장면이 한국의 KBS스페셜 촬영팀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었다. 물론 인터뷰는 거절되었다. [본문으로]
  2. '완전한'이란 표현 자체도 상대적이다. '평화'란 반드시 '反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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