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정치'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아베 신조 前일본총리가 자신을 보좌하던 아소 다로 간사장을 비난했다고 한다. 아베는 병상에서 마치 말년의 암살 위기에서 벗어난 아돌프 히틀러처럼 자신이 자신의 참모진들에게 속고 있었으며 자신의 과업을 자신의 측근들이 방해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또 실제로 아소 다로의 그간의 행보가 충분히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기에, 이와 같은 아베의 격분은 일견 동의를 얻고 있기도 하다.
실패한 정치인들은 으례히 변명이 많아진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일반인들에게 과오를 인정하는 모습은 그의 깊은 인품과 겸손함을 드러내는 수단의 하나로서 활용될 수 있지만, 정치인에게 있어서 과오의 인정은 자신의 무능을 자인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정치권력을 소유하고 있을 때에만 그 가치를 지닌다. 권력을 상실한 정치인은 산송장과 다름 없으며 정치인의 인맥이란 것은 정치권력을 기반으로 연계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계를 은퇴한 정치인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고독하고 조용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그러한 현실 때문에 정치에 인생을 투신한 정치인들일수록 쉽게 정계를 은퇴하지 못하고 권력을 향한 무리한 집착을 보이기 쉽다.
일본 정치체계에서 오를 수 있을 만큼 오른 아베 신조에게 최선의 길은 고이즈미 준이치로처럼 나름의 진영에서 두드러지는 성적을 거두고 명예롭게 퇴진하여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 상실을 최소화하고 그 명예가 주는 배후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을 최대한으로 재구축하여 자신의 파벌을 설립하거나, 자신이 소속된 파벌의 후계자로 지목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이는 1당 독재공산국가인 중국과 더불어 파벌정치를 하는 가장 선진화된 국가 중 하나인 일본의 정치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때문에 아베의 불명예스러운 정치적 행보와 등떠밀리듯 밀려나는 퇴진은 아베의 향후 영향력이 어떠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아베 前총리는 이러한 자신의 정치적 행보 실패에 대해 분을 참지 못하고 보통의 패배자들이 보이는 가장 전형적인 행동양식인 '책임떠넘기기' 양태를 보이고 있다.
아베의 분노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다. 아소 다로는 자신이 선발한 인재가 아니라, 전임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때부터 중용된 인재이기에 전임 총리의 영향력이 수그러들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통제권한 밖에 위치한 거물급 인사였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뚜렷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한 채, 일종의 '정치적 혈통'에 입각하여 고이즈미의 정치적 노선을 가장 잘 계승할 수 있는 품종 좋은 씨내리용 '종마'로서 간택된 아베 신조는 출범 당시부터 '도련님 정치'라는 빈정거림에 노이로제를 겪었다. 그런 부족함 많은 그를 보좌하라고 붙여 놓은 전임총리의 충복(?) 아소 다로에게 거는 그의 기대는 마치 아들이 아버지에게 의지하는 듯한 그런 관계였을 것이다. 그런 아소 다로가 자신의 기대와 달리, 중요한 순간에 힘이 되기보다는 발을 빼는 듯한 늬앙스를 풍기며 차기 총리로 언급되는 것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꼈을 법 하다.
하지만 아베 신조 총리 내각에서의 최고의사결정권자는 아베 신조 본인이다. 정치파벌의 논공행상 속에서 정책이 결정되고 인재중용이 내정된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임명장에 서명을 하는 것은 아베 신조 본인이다. 그 서명은 아베 자신이 이후의 결과에 대해 모두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고 자신이 서명한 모든 국가적 정책과 행위에 대한 결과는 아베 신조의 몫이며 그 정책의 긍정적 결과/부정적 결과 모두 아베의 행적이다. 아베는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아소 다로를 중용하기로 결정을 했기에, 아소 간사장이 사고를 치든, 공로를 세우든 간에 그 결과는 모두 아베 내각의 수장인 아베의 것이다. 설사, 아소 다로가 진정으로 '배신'을 획책했다면 그 배신을 감지하지 못하고 배신당한 아베 자신의 무능함에 그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가 아니라, 일국의 행정부 내부에서 '행정부의 수장과 행정관료'라는 상하수직적 관계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연산군의 광기가 중종반정으로 이어지며 연산군이 조/종이 아닌 '군'으로 남은 것도 연산군의 과오이고, 당대의 정치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주의적 현실주의를 추구하며 기존 정치세력의 극도의 반발을 사 인조반정으로 무너진 광해군 또한 그 영민함과는 별개로 반란을 감지하지도 막아내지도 못한 무능한 정치인으로서 후대(오늘날의 평가가 아니다.)에 기록되어진 것과 같은 이치다.
아베 내각의 좌초는 아베 본인의 책임이다. 야나기사와 후생성 장관의 '여성은 애낳는 기계 발언'을 둘러싼 치열한 사퇴공방에서 명민하게 반응하지 못한 채, 지나치게 그를 두둔한 것도 그의 과오이고 고이즈미 총리 시절의 공적인 대미외교의 대성공을 자존심을 내세우며 극도로 후퇴시켜 동북아시아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종군위안부 성노예 문제에서 미국의 공식적 외교루트를 통한 항의와 시정권고를 받을 정도로 후퇴시킨 것도 아베의 과오이며 자신이 선임한 장관들의 잇따른 스캔들을 사전에 확인하지 못한 채 채용한 것도 그의 책임이다. (한마디로 모든게 다 아베 총리 때문이다.)
아소 간사장의 모반획책은 뒤늦게나마 복수극을 찍은 아베 前총리의 크로스카운터 펀치로 좌절되었다. 아베 내각은 온갖 정략이 난무하는 한편의 정치스릴러였다. 도련님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해보고 싶다. 조만간.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그의 사고 방식 > 사적 논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다른 건 양보해도 '고교등급제'만은 안된다. (0) | 2007/10/11 |
|---|---|
| 벨기에, 분리 위기 - 어떤게 좋을까. (4) | 2007/10/07 |
| 노무현, 나름대로 선방하긴 했는데.. (0) | 2007/10/04 |
| 노무현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별 수 없군. (5) | 2007/10/02 |
| 미얀마, 또 한 번 힘의 논리를 증명하다. (0) | 2007/09/28 |
| 아베의 실패는 아베의 실패일 뿐. (0) | 2007/09/20 |
| 한 명의 남자로서 가련해진 변양균 (0) | 2007/09/12 |
| 노무현의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대작전'...인가... 그리고.. (2) | 2007/09/08 |
| 정몽구 회장 집행유예 (2) | 2007/09/06 |
| 사르코지는 프랑스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2) | 2007/08/30 |
| 후진타오, 망국적 대만침략 야욕을 언급하다. (0) | 2007/08/28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