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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자본가들의 논리다. 어떠한 대의명분을 가져다 붙여도 세계화의 함의가 기득권 자본가들이 주도로 주창된 논리나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세계화가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인 '효율성'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집단이 바로 자본가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적게 일하고 많은 댓가를 추구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욕구도 자본가들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효율성'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들의 관점에서 '적은 노동으로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은 매우 효율적인 일'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효율성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의미가 그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세계화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서 인정하는 분위기이며 나 또한 그러하다. 국제사회가 자본주의를 최상의 가치로 추구하며 자본의 이동과 규모의 경제를 통한 부의 축적이 이루어지고 축적된 부가 고도산업국가들을 중심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서 많은 개발도상국들과 미개발 국가들로 하여금 산업발전을 위한 동기 부여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7~80년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불리며 세계인을 놀라게 했던 '신흥산업국가(Newly Industrializing Country)'들이 추구한, 소위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뭉쳤던 '새마을 운동'식 개발논리는 지금도 아프리카와 동남아의 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뿌리치기 힘든 정책 수용의 유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라고 하는 시대적 조류가 그러한 개도국들과 미개발 국가들의 발전의지를 꺾고 있으며 그들이 후발 국가로서의 지위를 고착화시키기 위한 제도적 조치가 선진산업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세계화의 구호 아래 효율성과 함께 추진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의 침투는 자생력 없고 경쟁력 없는 개도국들과 미개발 국가의 유효자원을 편취한다. 표면적으로는 분명 '투자'이고 '개발'이지만, 다국적기업(MNCs : Multi-national Corporation)의 개도국/미개발 국가 시장 진입은 투자수혜국가로 하여금 다국적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도록 요구한다. 국제구제금융 위기(소위 IMF위기) 당시에 김대중 정권이 외자도입과 다국적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다국적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들을 무차별 매각하면서 오늘날까지도 '매국노' 꼬리표를 쉽게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다국적기업과 외국자본에 대한 무분별한 환상이 만들어준 21C한국의 아픔인데,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제3세계 국가들에게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전방위적으로 압박해 오는 다국적기업과 외국자본이 (의식 있고 고등 교육을 받은 제3세계의)일반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1


1세계 서방산업국가들의 경우라고 하여 세계화의 그늘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1세계의 세계화에 대한 고통은 더 구체적이고 더 심각한 모습을 노출한다. 고도산업국가의 세계화는 높은 생활유지비를 요구하는 산업국가의 특수성과 맞물려 무한경쟁에 노출된 보통의 노동자들이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극소수의 노동자 집단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을 1달러 미만의 일당을 받고도 근무하겠다고 줄지어 서 있는 제3세계의 가난하고 못배운 실업자들과 경쟁해야 한다.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벌어지는 이름 모를 경쟁자, 얼굴 없는 암살자들인 제3세계의 가난한 노동자들의 열정에 고등 교육을 정상적으로 수료한 1세계 국가 국민들의 정상적인 사회적 욕구 충족의 기회가 무차별적으로 박탈당하는 것이다.

기사 보기 : 美-서유럽, 세계화 달갑지 않다. [동아일보]

논리는 간단하다. 세계화(Globalization)의 이름처럼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버리는 구상 속에서 경쟁 상대보다 절대적 우위에 있는 극소수 기득권층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나머지 생존자'들이 효율성 재고를 통한 국제경쟁력 확보라는 거시적 목표에 의해 과감히 생존을 위한 수단들과 단절되고 단순한 소비의 대상으로만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단절은 단기적으로 자본가 계급에게 대단히 큰 이익을 제공한다.

하지만 오랜동안 지상과제로 제시되었던 세계화의 문제는 곳곳에서 노출되고 있다. 일일이 손에 꼽자면 한도끝도 없을 테지만, 나는 유난히 '프리미엄 마케팅'의 원인에 대해서 지적하고 싶다. 이 원인에 대한 논리는 매우 간단하다. 과거 대세를 이루었던 박리다매 형식의 경영방식은 오늘날 대부분의 업체에서 주력경영방식이 아니다.(국내 굴지의 대형할인마트들도 할인마트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경영 방식을 공개적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세계화 구호 아래 재편되고 있는 경제구조는 기업경영의 주된 목표를 다수를 향한 대량판매가 아니라, 소수의 고소득층을 향한 고마진의 소량 판매로 이동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명품마케팅이다.

언뜻 보면 이러한 명품 마케팅이 새로운 소비구조로서 매우 적실성을 가지며 시대를 선도하는 유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거의 포드식 경영방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개념의 경영을 도입(어떤 의미에서 과거 봉건제 시대의 마이스터들의 길드제로의 후퇴인지도 모른다.)한 이러한 모습이 멋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경영 방식은 또다른 의미에서 기업의 목줄을 옥죄는 자승자박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업이 타겟으로 하는 소비층은 매우 제한되어 있고 그들이 축적한 자본은 결국 그들이 세계화의 대의명분 아래 기존의 경제체제 속에서 생존했어야 할 피착취된 다수 프롤레타리아 계층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말인 즉슨, 그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소비계층이 구매력을 소진하게 될 때, 그들 부르주아 계층의 소비력도 한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너무나 좁은 시장에 너무나 많은 기업들이 동일한 대상을 상대로 세일즈를 펼침으로서 투자가 불필요하게 중첩되고 세계화의 구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측면으로 너무 많은 재화와 생산기회가 지출이 된다. 세계화를 선도하고 계몽하는 계층들의 자기모순은 세계화를 반대하는 진영의 반박논리에 한없이 취약하기만 하다.


거듭 주장하지만 '세계화'는 온전히 고도산업국가들의 지배 논리다. 서방선진 8개국 G8의 회의가 1999년 시애틀에서 거대한 규모의 반세계화 진영의 무법적이고 폭력적인 저항2에 직면한 이후, 지구촌 모두에게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하는 세계화의 전도사들은 반세계화 진영에게 세계화의 우월함과 당위성을 설명하기보다는 철옹성 속으로 숨어들어 그들만의 이상세계를 그들이 가진 기득권이란 확성기를 통해서 공허하게 외치는 21C의 소피스트들이 되었다. 그리나 그러한 소피스트들의 고독한 외침은 그들이 가진 거대한 자본의 힘을 통해서 전 세계에 반강제적 혹은 반자발적1 으로 주입되고 있다. 그만큼 철옹성 안의 소피스트들이 국제사회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거대하고 거스를 수 없다. 즉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여겨지고 있는 세계화의 실체국제 사회에서 거스를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국가들의 세계화에 대한 지지와 압박인 것이다. 거대한 자유무역시장과 고도의 상호의존 상태는 전지구를 하나의 무정형의 국가처럼 만들어 가고 있으며 그러한 국제사회의 유도현상은 결국 규모의 경제를 창출해 내어 국내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역학관계와 유사한 형식으로 당장은 생산국과 소비국 형식의 종속이론적인 경제구조를 만들 것이고 중장기적으로는 극도로 양분화되고 편협해진 사회구조를 야기할 것이며 불행히도 이러한 현상은 벌써 현재진행형이다.

시장주의자들이 풀어놓는 자유시장경제의 판타지는 허구다. 자유시장경제를 향한 그들의 무비판적 판타지는 거의 정신병적 집착 혹은 성도착증에 가깝다. 우리 인류는 이미 그들이 이야기하는 자유시장경제를 지난 두 세기에 걸쳐서 경험하였다. 그러나 그런 시장경제가 가져다 준 것은 무엇인가. 세계화는 분명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가지만, 세계화의 조류를 수용하는 국가는 개별 국가의 스스로가 가진 자생력(혹은 경제적 자립능력)과 국제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망각해서는 안된다. 세계화의 결과는 비정하고 무책임하다. 국가와 국민이란 운명공동체를 헛된 신념과 교만에 가득찬 광신적 소수가 자의적으로 카지노 속의 쇠구슬 신세로 전락시키는 만행은 저지되어야 한다.

Hedge™, Against All Odds..
  1. 작년에 미국 내 의식 있는 단체들을 중심으로 미디어에서 이슈화 되기도 했던 미국 월마트의 중국공장에 속한 직원들이 하루에 1달러 미만의 일당(세계식량기구WFP에서 세계 공통으로 의식주 해결을 위한 최소 일당을 2달러로 규정하고 있다. 2달러 이하의 일당을 받는 사람은 국제적 극빈층이다.)을 받으며 노동력을 착취한다고 미국 내에서 논란을 야기한 적이 있다. 더구나 극도의 저임금으로 고용된 중국 근로자들의 원래 일자리가 미국 내에서 미국인들을 고용하여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던 일자리였다는 것이 부각되면서 월마트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기도 했다. [본문으로]
  2. 환경영상국제페스티벌(International Festival of Environmental Film)에 출품된 에릭 간디니(Erik Gandini)의 다큐멘터리 과잉시대(Surplus)에서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1999년 시애틀 폭력시위를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인 철학자 John Zerzan은 '자신들의 폭력은 인간이 아닌 물질문명의 대상인 사물에게 행한 폭력이기 때문에 정당하다'라는 궤변을 펼친다. 철학자 특유의 궤변론적 접근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사회적 의사 표현의 과정에서 특정 개인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통해서 주장을 피력할 때, 그 주장은 설득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다. [본문으로]
  1. 자발적으로 세계화의 자유시장경제에 편입된 국가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국가를 약육강식의 야생세계에 내던지는 과정에는 결코 자발적이지 않은 국제경제환경이 결정적 영향을 했다고 봐야 한다. 그 증거로서 ECC(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NAFTA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자유무역협정들이 고도산업국가와 개발도상국 간에 이루어진 불평등한 조건에서 이루어진 협정들이며 EU를 제외한 나머지 자유시장은 일종의 사회안전망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은 채, 무한경쟁으로 강자와 약자를 모두 내던지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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