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12일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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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책을 여러 권 구입하면서 마르꼬스와 관련된 책을 한 권 샀다.
하지만, 여지껏 읽지 못하고 있다. Model United Nations 때문에 너무 바빴고, 책을 한꺼번에 여러 권을 동시에 사는 나쁜 버릇(?) 때문에 다른 책을 먼저 읽게 되면 필연적으로 나중에 읽혀지는 책은 순번에서 밀리게 되고, 나의 도서 충동 구매에 의해서 새롭게 한 무리의 도서가 내 방에 진입하게 되면 그 전에 있던 책은 또 순번이 밀리게 된다. [실제로 사놓고 몇 페이지 못읽은 책도 몇 권 있다.]
하지만, 그와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전체적 조류로 등장하고 있는 좌익적/온건적 사회주의 성향의 정권의 출범 러시는 나의 관심을 유난히 끌고 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한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며 국민의 지지를 받은 사회주의 성향의 정권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가 미국 CIA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박정희를 가장 존경하는 정치가라고 공공연히 말하며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가 죽은 날, 칠레 전역에 조기를 게양할 정도로 깊은 애도(?)를 표하기도 한 독재자이다.]의 군사 쿠데타를 통해서 극렬히 사회주의의 팽창을 진압했던 냉전 시기의 미국이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 정권 등에 대해서 잠자코 있는 모습이 약간은 나를 의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좌파적 성향이 미국이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국제 정세가 변화한 탓일까? [비단 칠레 뿐만 아니라,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군부 쿠데타 또는 독재 정권 지원, 미해군을 직접 작전에 투입시켜서 미국에 비협조적인 민주 정부조차도 전복시키는 등의 내정 간섭도 불사할 만큼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통제권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가장 최근에 아이티공화국이 미해병대의 침공(?)으로 정부가 전복되었고 대통령은 망명 상태다.]
단순히 공산/사회주의[두 정치 체제는 동일한 정치 체제가 아니지만, 편의상 함께 표기]는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통해서 대결 구도는 종식되었다고 판단한다면 쿠바는 왜 아직도 봉쇄 정책을 풀지 않는 것일까? 플로리다 반도와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아직은 자세히 모르겠다. 한국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국제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와 지식을 담은 도서를 확보한다는 것은 은근히 어렵다.
나는 그러한 '국가VS국가 차원'의 문제보다, 소수자의 투쟁의 방식에 새로운 '혁명적 비전'을 제시한 마르꼬스의 투쟁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 [말을 너무 많이 돌아서 와버렸다.] 사실 마르꼬스의 투쟁 방식은 이미 60여년 전에 마하트라 간디의 비폭력/비협조 투쟁과 그 큰 흐름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마르꼬스의 투쟁 방법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간디 이후, 뚜렷하게 그러한 평화적 투쟁 노선을 추구한 소수 투쟁 집단이 없었고, 체 게바라/카스트로 등의 폭력적 투쟁이 영웅적인 행동으로 미화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과정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폭력적 투쟁과 극명하게 비유가 되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마르꼬스는 '무장 게릴라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선언하며, '무장 투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일전에 밝혔듯이 약자가 강자에게 행하는 폭력은 강자의 더 큰 폭력을 부를 뿐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깊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논리다. 유약한 민중들을 향할 수 밖에 없는 무장 게릴라의 테러 행위는 '테러의 공포로 인한 정책의 포기'를 의도하여 행해지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러한 국가는 존재치 않으며, 존재한다면 그 국가는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그러한 테러 행위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것이고, 유사한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테러 집단의 테러 위협에 시달릴 것이다. [스페인, 필리핀을 지칭/국가의 정책은 국외적 요인에 의해 쉽게 흔들려서는 아니되고, 국제 사회에서 개별 국가의 존엄성과 정책의 일관성을 과시하며 국가 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 구축을 위해 그러한 국외적 위협에 대해 철저한 응징과 단호한 자세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장 게릴라들은 (그들의 입장에서)핍박 받는 소수자들의 저항이고, 그러한 소수 세력의 지지자인 평화/반전 여론은 그러한 무장 게릴라의 폭력 행위에 대해서 반대한다. 소수자들의 저항은 언뜻 보기에 매우 정당성을 지닌 저항으로 보여질 수도 있으나, 그 저항의 화살이 누구를 향하는가, 어떠한 형식으로 향하는가에 따라 국제 여론과 정부 차원의 지지를 받을 수도, 그들의 지지자를 몰아낼 수도 있다. 국제 사회에서 강자가 아닌 자의 폭력은 폭력의 행위 주체보다 더 강한 폭력에 의해서 응징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여 왔고, 반복되는 폭력 속에서 소수자 정치 집단은 점점 고립되고, 소외되어 가는 것을 지켜봐 왔다.
[이-팔레스타인의 분쟁에서 과연 누가 정당한 폭력을 행사하는가? 정당한 폭력이란 존재하는가? 에 대한 물음에 '감정적인 적대감'을 배재하고 나면 가치 판단이 매우 모호해짐을 느낄 수 있다. 어떠한 가치관을 대비시키더라도, 결국 그러한 폭력으로 인해서 더 큰 고통을 받는 쪽은 상대적 약자인 팔레스타인 진영이다.]
그런 점에서 마르꼬스의 비폭력 투쟁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르꼬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매체는 멕시코 밖에서는 그다지 찾아 보기 힘들다. [정부는 멕시코와 수교국인 경우, 외교적 문제로 인해 공식적인 지지 표명은 할 수가 없는 입장이고, 회의식 외교를 하는 U.N.내에서 상호 협력을 희망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공식적으로 정부가 수교국 정부의 적대 세력에게 지지를 표명하는 일은 없다.] 만약 마르꼬스가 처음처럼 계속적으로 무장투쟁 노선을 고수해 왔다면, 오늘날 이처럼 호의적인 국제 여론을 접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전쟁'은 가장 확실한 자국(또는 정치 집단)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정치 행위의 하나였고, 실제로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그러한 형태로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킨 경우는 많이 있어 왔다. 그러나, '국제 사회'가 등장하고, 국제 기구, 국제 여론이 등장하게 되면서 더 이상 폭력은 문제 해결의 수단이 되어 주지 못했고, 국제 사회는 폭력에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을 보인다. 폭력은 문제 해결의 수단이 될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무장 게릴라들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투쟁의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폭탄 테러, 요인 암살, 민간인 납치 등은 아무런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되어 주지 못한다. 매우 불행하게도(?) 그들(무장 게릴라)의 생각과 달리, 국가는 민간인 몇 명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고 해서 당장 국가의 정책을 변경하거나, 철회하지 않는다.
[필리핀, 스페인 같은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다. 그러한 파퓰리즘적인 정치 행위로서 국내적 지지는 획득했을지 모르나, 국제적 위신은 크게 실추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을 통해서도 한국이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약자의 폭력은 문제 해결의 선택 수단이 될 수 없다. 약자의 폭력은 강자의 더 거대하고 잔인하며 흉포한 폭력에 의해서 응징당하게 되어 있고, 인류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약자가 폭력적 방법을 통해서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폭력은 강자의 전유물이며 약자의 입장에 위치한 정치 세력은 그들의 위치에 상응하는 평화적이고도 대중들의 지지를 획득해낼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해야만 할 것이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Melancholic Genesis™,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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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책을 여러 권 구입하면서 마르꼬스와 관련된 책을 한 권 샀다.
하지만, 여지껏 읽지 못하고 있다. Model United Nations 때문에 너무 바빴고, 책을 한꺼번에 여러 권을 동시에 사는 나쁜 버릇(?) 때문에 다른 책을 먼저 읽게 되면 필연적으로 나중에 읽혀지는 책은 순번에서 밀리게 되고, 나의 도서 충동 구매에 의해서 새롭게 한 무리의 도서가 내 방에 진입하게 되면 그 전에 있던 책은 또 순번이 밀리게 된다. [실제로 사놓고 몇 페이지 못읽은 책도 몇 권 있다.]
하지만, 그와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전체적 조류로 등장하고 있는 좌익적/온건적 사회주의 성향의 정권의 출범 러시는 나의 관심을 유난히 끌고 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등장한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며 국민의 지지를 받은 사회주의 성향의 정권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가 미국 CIA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박정희를 가장 존경하는 정치가라고 공공연히 말하며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가 죽은 날, 칠레 전역에 조기를 게양할 정도로 깊은 애도(?)를 표하기도 한 독재자이다.]의 군사 쿠데타를 통해서 극렬히 사회주의의 팽창을 진압했던 냉전 시기의 미국이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 정권 등에 대해서 잠자코 있는 모습이 약간은 나를 의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좌파적 성향이 미국이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국제 정세가 변화한 탓일까? [비단 칠레 뿐만 아니라,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군부 쿠데타 또는 독재 정권 지원, 미해군을 직접 작전에 투입시켜서 미국에 비협조적인 민주 정부조차도 전복시키는 등의 내정 간섭도 불사할 만큼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통제권을 강하게 주장해 왔다.(가장 최근에 아이티공화국이 미해병대의 침공(?)으로 정부가 전복되었고 대통령은 망명 상태다.]
단순히 공산/사회주의[두 정치 체제는 동일한 정치 체제가 아니지만, 편의상 함께 표기]는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통해서 대결 구도는 종식되었다고 판단한다면 쿠바는 왜 아직도 봉쇄 정책을 풀지 않는 것일까? 플로리다 반도와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아직은 자세히 모르겠다. 한국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국제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와 지식을 담은 도서를 확보한다는 것은 은근히 어렵다.
나는 그러한 '국가VS국가 차원'의 문제보다, 소수자의 투쟁의 방식에 새로운 '혁명적 비전'을 제시한 마르꼬스의 투쟁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 [말을 너무 많이 돌아서 와버렸다.] 사실 마르꼬스의 투쟁 방식은 이미 60여년 전에 마하트라 간디의 비폭력/비협조 투쟁과 그 큰 흐름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마르꼬스의 투쟁 방법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간디 이후, 뚜렷하게 그러한 평화적 투쟁 노선을 추구한 소수 투쟁 집단이 없었고, 체 게바라/카스트로 등의 폭력적 투쟁이 영웅적인 행동으로 미화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과정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폭력적 투쟁과 극명하게 비유가 되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마르꼬스는 '무장 게릴라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선언하며, '무장 투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일전에 밝혔듯이 약자가 강자에게 행하는 폭력은 강자의 더 큰 폭력을 부를 뿐이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깊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논리다. 유약한 민중들을 향할 수 밖에 없는 무장 게릴라의 테러 행위는 '테러의 공포로 인한 정책의 포기'를 의도하여 행해지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러한 국가는 존재치 않으며, 존재한다면 그 국가는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그러한 테러 행위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것이고, 유사한 상황에서 계속적으로 테러 집단의 테러 위협에 시달릴 것이다. [스페인, 필리핀을 지칭/국가의 정책은 국외적 요인에 의해 쉽게 흔들려서는 아니되고, 국제 사회에서 개별 국가의 존엄성과 정책의 일관성을 과시하며 국가 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 구축을 위해 그러한 국외적 위협에 대해 철저한 응징과 단호한 자세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무장 게릴라들은 (그들의 입장에서)핍박 받는 소수자들의 저항이고, 그러한 소수 세력의 지지자인 평화/반전 여론은 그러한 무장 게릴라의 폭력 행위에 대해서 반대한다. 소수자들의 저항은 언뜻 보기에 매우 정당성을 지닌 저항으로 보여질 수도 있으나, 그 저항의 화살이 누구를 향하는가, 어떠한 형식으로 향하는가에 따라 국제 여론과 정부 차원의 지지를 받을 수도, 그들의 지지자를 몰아낼 수도 있다. 국제 사회에서 강자가 아닌 자의 폭력은 폭력의 행위 주체보다 더 강한 폭력에 의해서 응징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여 왔고, 반복되는 폭력 속에서 소수자 정치 집단은 점점 고립되고, 소외되어 가는 것을 지켜봐 왔다.
[이-팔레스타인의 분쟁에서 과연 누가 정당한 폭력을 행사하는가? 정당한 폭력이란 존재하는가? 에 대한 물음에 '감정적인 적대감'을 배재하고 나면 가치 판단이 매우 모호해짐을 느낄 수 있다. 어떠한 가치관을 대비시키더라도, 결국 그러한 폭력으로 인해서 더 큰 고통을 받는 쪽은 상대적 약자인 팔레스타인 진영이다.]
그런 점에서 마르꼬스의 비폭력 투쟁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르꼬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매체는 멕시코 밖에서는 그다지 찾아 보기 힘들다. [정부는 멕시코와 수교국인 경우, 외교적 문제로 인해 공식적인 지지 표명은 할 수가 없는 입장이고, 회의식 외교를 하는 U.N.내에서 상호 협력을 희망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공식적으로 정부가 수교국 정부의 적대 세력에게 지지를 표명하는 일은 없다.] 만약 마르꼬스가 처음처럼 계속적으로 무장투쟁 노선을 고수해 왔다면, 오늘날 이처럼 호의적인 국제 여론을 접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전쟁'은 가장 확실한 자국(또는 정치 집단)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정치 행위의 하나였고, 실제로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그러한 형태로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킨 경우는 많이 있어 왔다. 그러나, '국제 사회'가 등장하고, 국제 기구, 국제 여론이 등장하게 되면서 더 이상 폭력은 문제 해결의 수단이 되어 주지 못했고, 국제 사회는 폭력에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을 보인다. 폭력은 문제 해결의 수단이 될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무장 게릴라들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투쟁의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폭탄 테러, 요인 암살, 민간인 납치 등은 아무런 문제 해결의 방법이 되어 주지 못한다. 매우 불행하게도(?) 그들(무장 게릴라)의 생각과 달리, 국가는 민간인 몇 명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고 해서 당장 국가의 정책을 변경하거나, 철회하지 않는다.
[필리핀, 스페인 같은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다. 그러한 파퓰리즘적인 정치 행위로서 국내적 지지는 획득했을지 모르나, 국제적 위신은 크게 실추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을 통해서도 한국이 뼈저리게 느낀 바 있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약자의 폭력은 문제 해결의 선택 수단이 될 수 없다. 약자의 폭력은 강자의 더 거대하고 잔인하며 흉포한 폭력에 의해서 응징당하게 되어 있고, 인류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약자가 폭력적 방법을 통해서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폭력은 강자의 전유물이며 약자의 입장에 위치한 정치 세력은 그들의 위치에 상응하는 평화적이고도 대중들의 지지를 획득해낼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해야만 할 것이다.
이성은 비관하되, 의지는 낙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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