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초반 아돌프 히틀러의 야망이 전유럽을 불길 속으로 내던지고 있던 시기, 오늘날 많은 이들이 '사막의 여우'로 기억하고 있는 에르빈 롬멜은 북아프리카 재패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불과 100km 앞까지 진격했던 그는 수에즈 운하가 연합군에게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수에즈 운하는 중동의 석유자원이 유럽으로 진입하는 통로였으며 해군력이 빈약한 추축국들은 연합군의 원유수송로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수에즈 운하 점령 뿐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야망만큼이나 거대한 질투와 경계심을 가진 소인배였던 히틀러는 롬멜의 병력추가지원요청에 '병력 없는 원수직 수여'라는 굴레를 뒤집어 씌우며 롬멜의 북아프리카 패퇴를 방기(放棄)했다.
국가의 군사력과 외교력에 기반한 힘의 외교가 펼쳐지던 냉전시기에도 에너지자원을 둘러싼 외교전과 대리전은 이념을 둘러싼 외교전과 대리전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70년대 후반까지 팔레비 왕조의 이란을 전폭지원하던 미국은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등장하며 이란 정부가 전복되며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강력한 反세속/反제국주의 노선을 표방하자, 동시대에 함께 등장한 폭압적 군사정권이었던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에 폭발적 규모의 군사적 지원을 감행한다. 이에 고무된 후세인 정권은 이라크 국력의 3배에 육박하던 이란을 향해 과감히 전쟁을 개시하며 8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양국은 물론 중동 전체를 전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이 기간동안 이라크의 석유자원은 미국의 통제권에 편입되며 훗날 탈냉전 이후 미국이 이라크에게서 등을 돌리며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전까지 사담 후세인은 미국의 통제를 수용하는 親美정권으로서 기능하였다.1
실제로 에너지통제권은 제국이 제국으로써 널리 인정 받기 위한 중요한 3요소(기축통화 - 거대시장제공/에너지통제권/추격 받지 않는 군사력) 중 하나다. 세계 각국의 고도산업화와 양차 대전 후의 미국의 마샬플랜 등을 통한 광범위한 대외원조를 통한 민주주의 수호와 공산주의 확산저지(트루먼 독트린 : 봉쇄정책 : Containment Policy) 노력과 그로 인한 미국 경제력의 쇠퇴와 신자유주의 무역 사조는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결정권을 약화시켰고,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서 미국으로 하여금 사실상 기축통화 결정권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의 국제사회 구조에서 미국이 아닌 전혀 다른 새로운 제국이 부상하게 되더라도 결코 기축통화 결정권을 다시 그 시절의 미국처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만큼 세계경제는 다양화/다변화의 길을 걷고 있으며 또다시 양차대전 직후의 미국처럼 전지구 경제력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절대적 경제부국은 지구상에 등장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단일한 국가로서 최대 규모의 시장을 보유한 매력적인 판매처를 전 세계에 제공함으로서 미국의 경제가 세계경제가 중추로서 역할하고 있다. 미국의 자본시장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자본 시장으로서 역할하고 있다. 미국은 제국의 요건으로서의 매력적인 시장을 변함없이 갖추고서 전 세계 각국을 유혹하고 있다. 고도산업사회와 정보화 사회는 미국의 제국으로서의 역량을 지속가능하고 창조적으로 하는데 끊임없이 일조하고 있다.
영화배우 출신으로 비교적 최근에 사망한 레이건 집권기의 미국은 악의 제국2
과의 전면전을 선언하며 폭발적으로 군비를 늘렸다. 레이건 집권기 8년 동안의 국가부채가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 출범 이후 지미 카터 행정부까지의 총 국가부채보다도 더 많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재정을 투입한 국방비 지출은 차기 정권이었던 조지H. 부시 집권기 내내 '쌍둥이적자(Twin Deficit : 재정적자/무역적자가 동시발생.)'에 허덕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나 출범한 조지 W.부시 행정부는 또 한 번 국방비 지출을 폭발적으로 늘리며 전세계 국방비 총액의 51%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며 다시 한 번 '추격 받고 경쟁하지 않는 군사력'을 갖추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노력에 반발하여 러시아는 재래무기와 토폴M(다탄두독립목표재돌입탄도탄 : Multiple Independently Targeted Re-entry Vehicle) 등을 지속적으로 개량하며 미국의 TMD/NMD에 대응하고 있으며, 신흥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인도 등도 지역적 군사협력체(상하이협력기구 : SCO)와 항공모함 도입/개발, 등거리외교로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국가들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미국은 여전히 추격받지 않는 군사력을 가진 강대국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에너지통제권'은 현재 미국이 가장 크게 위협 받고 있는 제국의 역량 중 하나다. 언뜻 보면 미국의 에너지통제권은 매우 공고해 보인다. 특히 이라크 침공과 사담 후세인 응징을 통해서 확보한 유럽과 러시아 소유의 이라크 유전에 대한 지배권을 자국 기업3
에게 인위적 분배를 강행하며 미국의 에너지통제력을 상징적으로 과시하며 석유자원에 대한 통제권이 어느 때보다도 공고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은 쉽게 눈에 띄는 피상적인 사례로서 실제로 전세계의 신규개발되고 있는 유전지대는 국제시장의 시세를 무시한 파격적인 금액으로 싹쓸이를 시도하는 중인 중국의 국영회사 SINOPEC(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과 CNOOC(중국해양석유총공사)의 자금공세를 통한 유전지역 싹쓸이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게다가 대표적인 에너지 부국이자 미국의 영원한 잠재적 적성국 러시아의 '에너지를 통한 유럽 흔들기'는 이미 가즈프롬의 LNG파동으로 그 파괴력이 증명된 상태다.
이러한 중국/러시아의 에너지통제권 도발 과정에서 미국은 실제적으로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휩쓸리면서 제국으로서의 상징적 지위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오늘날 어느 누구도 미국이 전세계 에너지통제권을 가진 제국이라고 단정짓지 못하며 폭발적인 고유가와 서브프라임 위기로 파생된 고강도 신용위기로 인해 미국 경기침체위기에 접어들고 있음에도 무기력하게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경제의 위기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는 것에서 미국이 여전히 세계의 중심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미국이 가지는 에너지통제권의 영향력이 예전의 모습과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냉소적이고 현실적인 몇몇 학자들은 중국과 인도의 부흥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들의 경제성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1차 원인으로서 중국과 인도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확보해내진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국은 중앙아시아/아프리카 순방외교를 통해서 에너지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에너지에 굶주려 있다. 지구상에 미개발된 석유에너지는 분명 많이 남아 있지만, 그것은 현시점에서의 이야기일 뿐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그들 국가들의 석유자원 수요를 얼마나 지구지하자원이 감당해낼 수 있을지 가늠하기 힘들다. 게다가 에너지자원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원료자원의 측면에서도 그 동안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대두되어 왔다. 최근 원자재 가격의 급상승은 기존 산업국가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지속적으로 사회기반산업에서까지 투자를 감행해야 하는 신흥강국들에게는 훨씬 더 뼈아픈 문제다. 그들에게 에너지통제의 주도권이 부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직까지는 주요 에너지 자원의 통제권이 대부분의 서구자본주의 MNCs(5대 석유메이저)에게 몰려 있다. 1차 자원의 경우는 다소 얘기가 다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전반적으로 미국이 협력과 양해를 구할 수 있는 범위 안의 국가들에게 선점된 채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야기가 다르게 전개될 듯 하다. 자원민족주의의 물결이 더이상 제3세계 자원부국들에게만 집중되지 않고,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국가들 모두에게 경쟁적으로 야기되고 있으며, 자원외교의 경쟁 앞에서 과거의 군사적/정치적 동맹이나 우방의 개념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자원의 필요성 앞에 일본은 더 이상 미국의 정책에 동조하며 이란을 적대시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국가이익을 찾아 이란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으며, 미국의 큰형님으로서 역할한 영국조차도 이라크에서의 영국의 이익이 쇠하자, 이라크에서 철군을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경향을 야기하는 과정에서 패권국으로서의 미국의 과오도 크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경쟁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국가들과 과거 미국의 경쟁국들의 서로 다른 방향에서의 국제사회에서 '에너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서 기존의 미국 중심의 에너지통제권의 헤게모니를 궤도이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즉, 최소한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는 누구도 미국의 통제력을 따르기보다 자신들의 국익을 찾아 행동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적어도 에너지의 측면에서 미국은 더 이상 '패권국'이 아니라 일종의 '빅마켓'일 뿐이며 세계 각지의 동시다발적인 에너지에 대한 자원민족주의적 움직임을 과거처럼 억누르고 통제하려 들기보다는 21C의 현실에 맞게 협상하고 회유하려 들기 시작했다는 점4
에서 미국의 제국으로서의 중대 역량인 에너지통제권은 이미 미국의 손을 떠났다고 봐야할 것 같다. 더불어 새로운 세기와 변화하는 세계에 걸맞는 새로운 '현대적 제국'에 대한 재정의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지금도 세계인들은 미국이 과거의 패권국의 기준에 미달하면서도 여전히 '패권국'이며 '제국'이라는데 큰 이견이 없으니 말이다.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 제2차 이라크 침공의 주모자인 도널드 럼즈펠드 前美국방장관은 13대 미국방장관이자 대통령 특사로서 이라크를 방문하여 사담 후세인과 악수하며 '동지애'를 과시한 바 있다. 럼즈펠드는 사담 후세인 사형의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본문으로]
- 소련 : USSR : Evil Empire로 명명하며 SDI-전략방위구상 : Strategic Defense Initiative-등을 발표하며 전면전을 선포함. [본문으로]
- 특히 딕 체니가 CEO로 있던 헬리버튼社가 특혜를 입어 2003년 재계서열 60위권 밖에서 2006년 10위권 이내로 진입하는 급성장을 이뤄냈다. 헬리버튼의 계열사 GBR을 우산계약을 통해서 이라크 병참사업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 받았다. [본문으로]
- 미국의 에너지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 미국은 에너지통제권을 보유한 국가로서의 기본역량인 에너지 자원의 가격급변을 통제해내지 못했고, 심지어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에너지통제 실패는 자국의 경기침체로 전이되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통제권은 현실적으로 더 이상 '미국의 것'이라기보다는 '시장'의 것이 되었다. [본문으로]
'그의 사고 방식 > 사적 논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명박과 노무현이 죽는 수 밖에 없다. (0) | 2008/06/03 |
|---|---|
| 긍정적인 기업가의 모습. (0) | 2008/05/22 |
| 세계는 하나다. 필요에 따라서만.. (0) | 2008/04/19 |
| 한국형 MD : 자주국방 증후군과 약소국의 비애. (3) | 2008/01/25 |
| 변화하는 제국과 세계 : 에너지통제권의 위기. (2) | 2008/01/17 |
| 한국이 다르푸르에 과연 PKO를 파견할까. (0) | 2008/01/11 |
| 민주주의 해석에 대해 고의적으로 외면받는 견해. (3) | 2008/01/01 |
| 답이 없는 사람들. (2) | 2007/12/25 |
| 이명박에 대한 바램. (2) | 2007/12/20 |
| '제노포비아'에 대한 일부 존중 (0) | 2007/12/11 |
|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 (0) | 2007/11/14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향후 국제관계는 정말이지 에너지 안보란 개념에 내맡겨지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대한 각국가의 노력들로 대안에너지를 향해 세계로 눈을 돌리는 국가들이 많습니다. 석유가 아닌 석유를 대체할수 있는 환경회의 에서 약속을 이행하려는 척이라도 하기위해
새로운 에너지를 위해 세계는 지금 뛰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그앞에 크게 앞장서고 있지요.
참 재미있어요. 에너지 외교로 인해 동맹이 적이 되기도 하고 적이 동맹이 되기도 하고.^^
안보는 단 한순간도 국제관계의 일선에서 퇴보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안보의 개념이 과거 인류의 역사 전체와 냉전시기까지에 이르면서 지속된 1차원적 안보개념에서 경제안보/환경안보/문화안보/인간안보 등의 포괄적 안보의 개념으로 안보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한 번도 국가안보가 국가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물러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국처럼 아직도 1차원적인 안보적 위기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 국가도 무수히 많이 존재하죠. 안보는 국가의 존재이유이자 모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