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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들의 망국적 선민의식과 도발적 매국책동

나는 정치/외교/안보 분야에서 키신저적 성향과 신보수주의적 성향을 공유하고 있지만, 경제적인 분야에서는 전반적으로 보호무역 성향에 가깝다. 세계화(Globalization이던지 김영삼의 Se-Gye-Hwa이던지 간에.) 추세에 따른 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서 수용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지, 시장주의자들처럼 결코 자유무역을 만병통치약따위로 여기지는 않는다. 때문에 FTA와 같은 WTO체제 이상의 또다른 형태의 자유무역 지향의 국제법이나 조약을 거부하는 편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시장주의적 발전론은 정치적/경제적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수치적 성장이 있을 뿐, 그에 따르는 사회적 부의 재분배 과정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부의 재분배를 위한 노력을 성장동력을 갉아 먹는 기생충쯤으로 여기는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삐뚤어진 부르주아지의 사회적 책임회피현상에 대해 일말의 동조도 갖고 있지 않다. 시장주의자들에게는 '도덕'과 '윤리'가 없다. 나는 국제관계에서 키신저의 정치행보에서 볼 수 있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 무도덕/무윤리에 광적으로 열광하지만, 그 무도덕과 무윤리는 자신의 국민국가에게까지 전이되어서는 안된다. 키신저의 머릿 속에 자신의 조국인 미국과 미국의 이익을 계산하는 계산기만이 있는 것처럼 한국의 지도자에게는 한국과 한국민의 이익을 계산하는 계산기가 있어야 한다. 시장주의자들의 허황된 개방에 대한 막연한 장미빛 전망이 보이는 후광에 실명하여 빛과 어둠을 분간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이미 지도자로서 그 존재가치를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화염병을 던지며 수업을 거부하며 쇠파이프와 죽창을 휘두르며 반전반핵반미(反戰反核反美)를 외치던 자들이 어느 순간엔가 갑자기 그들이 그토록 경멸한다던 숭미주의자들이 되어 버렸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던 청기와집의 청개구리 녀석이 언제부턴가 갑자기 그들이 수구냉전세력이라고 매도하던 숭미주의자가 되어 "미국시장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라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열렬히 중국을 짝사랑하던 그가 말이다. (짝사랑이 얼마나 비참하고 소모적인 것인지 깨달은 것인가?)


집권말기의 노무현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광적으로 집착한 이유는 두 가지다. 그 첫번째는 노무현의 집권 기간동안 '노무현을 대표하는 긍정적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을 지닌 성과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집권 초기 노무현이 '직접 챙기겠다'라고 말했던 수십가지 사안들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날짜별로 잘 정리된 목차가 나올 지경이지만, 오늘날 와서 그것들 중에 제대로 지켜진 것은 한 손으로 꼽아도 손이 한산할 지경이다. 그가 집권 중반기 목숨걸고 뛰어들었던 부동산 정책은 결과론적으로 실패했음을 패배를 인정할 줄 모르는 노무현이 자기 입으로 시인한 실패작이다. 김대중에게서 배운 혈세를 퍼주어 국민대중의 여린 감성을 선동하고 자극하는 남북정상회담은 임기 중에 성사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날샜다. 이제 남은 것 중에서 노태우의 아파트 2백만호 건설, 김영삼의 부동산 실명제(+국제구제금융위기), 김대중의 햇볕정책처럼 자신을 대표하는 아이콘을 만들고 싶었던 그에게 '韓美FTA타결'은 아주 매력적인 유혹이었을 것이다.

TPA(무역촉진권한 : Trade Promotion Authority) 시한에 쫓긴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장기플랜이었던 韓美간의 자유무역협정을 1년만에 날림으로 조속추진 논란을 야기하고 언론을 통해서 수없이 지적되고 폭로되었던 한국측 협상단들의 당시의 나조차도 알고 있던 관련지식에 대한 무지몽매한 협상단(그 때 대놓고 씹혔던 그 한국측 대표는 오늘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회담 성과에 대해서 스스로 수우미양가의 '수'점수라고 자평하는 허무개그를 펼쳤다.)이 진행한 협상 내용에 대한 결과물의 자평은 한 손으로 태양을 가리려는 듯한 어리석고도 아둔한 작태였다.

TPA는 의회에서 행정부에 임의로 부여한 권한으로 의회 혹은 행정부가 필요로 한다면 얼마든지 '갱신'(실제로 미의회의 각종 조례들은 수없이 Renew되고 있다.)될 수 있는 것으로 그 기간이라는 것은 이번에 한국민들이 적나라하게 보았다시피 얼마든지 엿장수 마음대로 늘였다가 줄였다가 할 수 있다. 그런 기초적인 상식에서조차 노무현 한 개인의 정치적 야심에 쫓긴 한국정부와 대표단은 말레이시아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협상 실패로 몸이 달아 자유무역 사조의 퇴보를 우려하여 몸이 달아있던 미국의 약점을 제대로 후벼파지 못했다. 한 개인의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국가라는 운명공동체와 4800만 한국민들이 또 한 번 햇볕정책 만큼이나 큰 리스크를 품은 도박판에 내던져진 꼴이 된 것이다.


노무현이 FTA타결에 목을 맨 또 다른 이유는 '노무현의 지독하리만큼 외곬수로 삐뚫어진 선민의식'에 있다. 노무현의 선민의식은 그의 집권 기간 내내 수없이 볼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가장 최근에 있었던 '대통령중임제'와 '韓美FTA타결을 위한 작위적 노력'은 그가 과거 군사정권의 수괴였던 박정희가 김재규의 권총에 맞아 죽는 순간까지 깨닫지 못했을(그리고 그를 다룬 수많은 전기와 자서전들에게서 피력되는 것처럼) '나 아니면 누가 이 나라를 바른 길로 이끌어 갈 것인가?'하는 막연한 선민의식에 기인한다. 실제로 그러한 선민의식에 빠져있던 박정희가 죽고 나서도 그가 남긴 개발독재의 유산 덕분에 두발장애자 대머리 각하 인간쓰레기 전두환이 집권하던 시기에도 한국은 꾸준한 통계수치적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고, 이는 '물태우' 노태우, '갱제'의 김영삼 시기까지 이어졌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자신은 자신이 하지 않으면 누가 정치적 불안을 무릅쓰고 경제 분야의 헤비급 챔피언인 美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무리수를 두겠냐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지만, 현실세계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나 하나가 없어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만 돌아간다. 노무현의 철부지 행동에 국가의 장기플랜이었던 韓美자유무역협정이 1년만에 번갯불에 콩 볶듯이 만들어져 버렸다. 그러고서는 오늘 노무현은 담화문에서 '국가적 발전 아젠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10년 뒤, 20년 뒤를 바라봐야 하는 '국가적 발전 아젠다'라는 것을 어떻게 1년만에 그리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지 참으로 기이하다. 언제 그렇게 한국에 연구인력이 그리도 많이 확보되어 있었던가? 포털들이 음란물을 모니터링으로는 막을 수 없다며 울상이던 포털들이 일이 커지자 모니터링을 해결방안으로 내놓은 꼴처럼 해보지도 않고서 해봤다고 일단 거짓말을 하고 나서 뒷감당이 안되면 '불가항력'을 외칠 태세와도 같다고 할까?


노무현과 그의 친위세력들로 이루어진 위정자들은 스스로를 '조국의 민주화 세력'이라고 참칭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끼리 모여서 쑥덕거리며 조국의 민주화를 맨손으로 이루어 냈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일단 그들이 민주화를 위한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한 것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정작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서 평생을 투쟁한 인물들은 그들이 '수구냉전세력'이라고 비방하는 김영삼과 새천년민주당과 떨어져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보수꼴통세력'이라고 매도하던 김대중 등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들은 韓美자유무역협정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 참칭한 민주화 세력이라는 색채를 스스로 짓밟고 그들이 수구냉전 세력이며 군사독재 정권이라고 여기던 박정희/전두환 같은 군정 시절이나 다름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니, 조국 근대화의 수준이나 이 땅의 민주주의의 성숙의 수준을 감안하면 그보다 더 극단적이고 엄청난 초대형 반동행위를 저질렀다. 反FTA관련 집회를 모두 불법화하고 反FTA성향의 지면/영상홍보 등을 정부차원에서 원천봉쇄한 것이 그것이다.

스스로 민주화 세력이라고 참칭하던 자들이 이와 같은 반동적 책동을 감행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2006~2007년 사이에 대한민국은 잠시동안 'FTA'라고 하는 단일한 주제에 한해서 나처럼 보수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 아닌 극좌적 성향의 아나키즘 신드롬에 찌든 몇몇 극단적 운동가들에게는 최소한 과거 중앙정보부 공안정국에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시대적 사조를 감안할 때 그 때보다 더 큰 좌절감을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2007년의 대한민국에서 언론과 집회, 결사의 자유가 탄압 받았다는 사실은 엄청나고도 명백한 시대적 소명의식을 역행하는 대(大)만행이었고 광범위하고도 무차별적인 대중학살행위다. 2007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그들 스스로가 그토록 울부짖었던 냉전수구세력들이나 하는 중대범죄로서 정권과 정당의 정당성마저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져야 할 것이며 노무현이란 한 개인의 시대착오적 인격/소양마저 심판받아 마땅하다.

더불어 역설적으로 FTA와 관련한 대중운동의 탄압은 그들 스스로 그들의 행위가 정당성이나 국가적 중대사를 처리하는 명예로움이 아닌 특정한 목적이나 이익/한 개인이나 집단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국가 차원의 범죄행위가 자행되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기도 하다. 떳떳하지 못한 자들의 행동이기에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서 떳떳하지 못한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려 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주요 언론사를 통해서 1번에 1억원이 넘는 전면광고로서 韓美FTA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어린 국민대중들은 선전/선동하는 것을 용인하면서도 어찌하여 그와 반대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억압하고 탄압하는가? 그것은 스스로 억압 받고 탄압 받았다던 자들의 자격지심인가. 아니면 '권력은 반드시 보수화 한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자신들이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인가.


또 노무현이 광적으로 추진한 韓美FTA과정에서는 '의회민주주의' 또는 상호견제를 기치로 내건 민주주의의 철칙인 '삼권분립'이 철저히 무시되고 묵살되었다. 행정부가 그들 스스로 말한 '국가적 발전 아젠다'인 韓美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권력의 3대 중요 행위체인 의회의 정보공개 요구를 협상 과정에서의 정보보안을 이유로 거부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3대 정치행위체인 의회가 또 다른 행위체인 행정부의 독단적 판단에 의해서 국가 중대사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중대사건이다. 현 정부는 현행법상의 법조문을 내세워 자신들의 범죄적 일탈행위를 변호하고 있지만, 스스로 민주화 세력이라고 참칭한 자들이라면 그와 같은 현행법 조문의 특권을 얼마든지 융통성 있게 해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자유무역협정 체결과정에서 쏟아지는 국민적 저항을 설득하기 위한 합리적 대안으로서 작용할 수도 있었고, 그들이 참칭하는 역사적 사회발전적 행위의 결과물인 민주사회 건설의 결실을 국민대중들에게 훨씬 극명하게 노출하여 한국정치 관행의 변화하고 발전된 모습을 대내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결론은 2007년의 대한민국에서 민주화 세력을 참칭하는 자들이 모여서 밀실회담을 벌였고 그 결과물이 오늘의 내용들이다.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는 일이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FTA협상 타결과 의회 비준은 다른 문제라고 오랜만에 한 목소리를 냈다. 골프장에서 2라운드만 돌고 나오면 어제의 일은 모두 잊어버리는 일반적 망각의 동물인 국민대중의 인간들과는 다소 다른 지적사고체계를 가진 '국회의원'이라는 원숭이들은 지난날 韓-칠레 FTA국회 비준동의안 통과 과정에서 발생했던 범국가적 저항에 대해서는 이미 잊어버린 모양이다. 열린우리당의 그 여자 대변인(말을 워낙 간사하고 가증스럽게 해서 오늘 오전에 머리에 그녀의 말이 팍팍 박혀 버렸다.).. "타결은 타결이고 이제부터 수백번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라고? 여지껏 뭐하고 있다가 이제부터 계산기를 두드릴 생각인지 참으로 희안한 족속들이 아닐 수 없다. 계산기가 일반 계산기가 아니라 공학용 계산기처럼 사용하기가 복잡할텐데, 일반 계산기도 못두드려서 골프장에서 라운딩할 때 우산 씌워주는 역할로 밖에 쓰지 않는 보좌관들을 시킬 녀석들이 무슨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란 건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국익(National Interest)'이라는 것만큼 까탈스러운 것도 드물다. 마이너스로 계산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국익을 지켰다'라고 보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플러스로 계산이 떨어지는데도 상대적 계산과 논리에 의해서 '국익을 훼손했다'라는 냉소와 비난을 받기도 하는 것이 국익이라는 가치를 다루는 자들의 딜레마다. 노무현은 韓美FTA를 통해서 어떤 면에서 수치적으로 한국과 한국경제의 발전그래프를 청신호로 그려넣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그래프에는 노무현 집권 이후 현저히 심화되었다고 끊임없이 지적 받는 사회양극화가 더욱 더 극명하게 벌어지는 모순된 숫자놀음의 중간값이 그려넣은 낭만적 청사진일 뿐이다. David Eastern이 말하는 정치의 기본적 정의인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국적 특수성과 시장주의자들의 독설 속에서 '자유시장'과 애덤 스미스의 철지난 논리로 한국이라는 운명공동체가 IMF와 IBRD로부터 시장개방만이 살 길이라고 조언 받으며 차관을 들여오다가 무참한 경제실패와 국가부도 사태를 경험한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의 경우들처럼 좌초되지는 않을지 심히 우려스럽다.


P.S. : 현대자동차와 삼성이 잘되면 대한민국이 모두 잘되는 것인가? 내 아버지의 사업장 거래처 중에서 삼성에서 하도급 받고 있는 사업장 대표들이 삼성의 감찰단들에게 받는 부당한 간섭과 횡포가 비단 삼성만의 일인 것일까. 이재용/정의선이 세금을 포탈하여 국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거대기업의 투명한 검증이 없는 제왕적 부자승계에도 묵인하며 위기 상황에서 공적자금이란 이름으로 혈세를 꼴아박아야 하는 한국민들의 아픔은 누가 보듬어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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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과 신검, 신검을 위한 변호(?)

요즘 글감이 몇 가지 있는데, 일이 바빠져서 그런지 시간이 없어서 글을 못쓰고 있다. 블로그만 바라보고 사는게 아니다 보니 할 일이 생각보다 많고 보고 싶은 사람도 많은데 무엇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해서 답답하기만 하다. (이러다가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일을 하면서 케이블방송의 수많은 재방송들 가운데 '태조왕건'이라는 것을 즐겨 보게 되었다. 자칭 드라마왕국 MBC의 '주몽'같은 3류 판타지 무협(?)과는 비유되게 예전부터 KBS의 사극은 비교적 실제 역사에 가깝게 묘사되어 제법 쏠쏠한 재미를 선사했었기에 KBS의 사극은 실제 역사에 근거한 약간의 상상의 나래를 제공한다. 그 상상의 나래 중 하나가 최근 CNTV에서 방영된 후백제 견훤의 장남 견훤의 반란 부분에 대한 아래의 끄적임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후백제의 멸망을 견훤의 장남 신검이 권력욕에 눈이 멀어 아버지인 견훤을 유폐시키고 견훤의 애첩의 장남인 금강을 살해(극 중에서는 신라 3최 중 하나인 최승우까지 죽이는 것으로 나오지만, 최승우의 생몰연대는 뚜렷한 기록이 안나와 있다.)하고 왕위를 찬탈하였다가 고려에 귀수한 견훤과 왕건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단순히 이런 짧은 교과서적인 표현만으로는 신검이라는 한 인간의 번뇌에 대해서 전혀 생각할 여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신검이 권력욕으로 천륜을 저버리고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형제를 주살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이승만이 평생에 걸친 항일독립활동보다 제주4.3사태와 사사오입개헌, 3.15부정선거만을 주로 기억한 교과서와 몇몇 좌파미디어들의 선전/선동에 휩쓸려 그의 평생에 걸친 삶을 '전제군주적 권위적 지도자'라는 짧은 단어로 대변해 버리는 것과 다름 없다.[각주:1] 이승만의 사례는 단지 대표적인 사례일 뿐, 이런 예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볼 수 있다.


후백제의 짧은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견훤의 처첩 간의 갈등이다. 호족들을 포섭한 권력 안정이라는 미명 하에 29명의 처첩을 거느린 왕건만큼은 아니었지만, 견훤 또한 많은 처첩을 거느린 채 10여명의 아들을 낳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본처의 소생인 맏아들 신검과 2,3남 양검/용검 3형제와 애첩의 소생 4남 금강의 대립은 후백제 멸망의 결정적 원인이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신검이 후대 사가(史家)들에 의해서 지나치게 악의적으료 묘사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신검의 왕위찬탈 과정이 결코 무차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반적인 고정관념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신검의 쿠데타에 대해서 조망하면서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약간의 변호를 하고 싶어졌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의 고정관념만큼 악당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아래는 내가 제기하는 신검의 쿠데타 행위에 대한 나름의 변호다.


먼저 신검의 쿠데타 시기를 문제로 꼽고 싶다. 신검이 최종적으로 쿠데타를 결정한 시기는 본처의 3형제가 서로 지방으로 임지를 부여 받고 뿔뿔이 흩어지도록 견훤으로부터 명령을 받았고, 금강과 자신의 외삼촌인 親금강 세력인 박영규가 군권을 독식하며 금강의 후계체제가 명백해진 시기다. 지금의 김정일 전제왕조나 공산중국의 권력체제를 보더라도 역대 독재자들이 최후까지 놓치지 않으려 하는 최종적 권력이 바로 군권(軍權)이다. 민주적이지 않은 군왕적 통치체제에서 군권의 상실은 권력의 최종적 상실을 의미하며 군권을 잃은 정치집단이 정계 주류로 진출한다는 것은 비민주적 통치체제 하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더구나 처첩 간의 첨예한 갈등으로 '왕자의 난'[각주:2]이 예고된 후백제의 견훤 사후(死後)의 정국에서 신검 3형제와 금강 세력의 갈등은 필연이며 그 승패에 따라 대규모 피의 폭풍이 벌어질 것은 지극히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 없었다. 당장 내일의 일을 알 수 없는 70세의 견훤(당시 평균연령을 감안하면 견훤과 그의 부친인 아자개는 도인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이 금강에게 대권을 넘겨줄 경우 후궁과 투기를 하는 본처 3형제의 생사는 불을 보듯 뻔한데,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 것은 의로움이 아닌 어리석음일 것이다.


금강의 권력욕에 대해서도 반드시 지적할 필요가 있다. 본처의 3형제는 금강의 손위 이복형님들이다. 위에 형님을 3명이나 두고서 후궁의 장자로서 적통이라할 수도 없는 금강이 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권력층 내부에 뚜렷한 지지기반도 가지지 못한 채, 몇몇의 지지 세력만으로 기꺼이 3명의 형님들을 제치고 대권을 잡으려 했다는 것에서 견훤이 총명하다고 보았다는 금강은 아마도 후대 사가들이 후백제의 역사적 가치를 낮추기 위해서 왜곡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본처의 소생으로 권력 승계의 적통인 신검이 권력층 내부에 두터운 지지 기반을 가지고 있음을 모를 리 없음에도 국왕 견훤의 총애만 믿고 그 많은 권력층을 적성 세력으로 돌린 금강이 정말 사가들의 평가처럼 총명하고 용맹하다고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또한 후궁의 소생이 적통이 될 수 없는 신라 내물왕 이후 계속 이어져온 고대왕국의 가장 기본적인 틀(장자상속제)을 무시하려 한 금강의 무리한 권력욕도 후백제 멸망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신검의 권력욕보다 오히려 금강의 '순리를 벗어난 욕망'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후백제의 근간을 흔들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옳바른 상황판단일 것이다.


신검의 쿠데타 과정과 사후처리에서도 신검의 신중함과 어느 정도의 사리분별이 잘 드러난다. 쿠데타 과정에서 신검이 공식적으로 살해한 주요인사들은 공식적으로는 금강 뿐이다. (TV드라마에서는 '파진찬' 최승우를 자살케 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최승우는 생몰연도가 불명확한 인물이다.) 쿠데타에 성공하고서도 금강의 모친과 금강의 편에 섰던 매부 박영규 등을 죽이지 않고 목숨을 보전케 하는 도량을 보인다. 쿠데타 이후에도 부왕(父王)을 시해하기보다 큰 절에 유폐하는 온건한 방법을 택한다. 유폐된 이후에도 측근을 통해서 끊임없이 부왕을 설득하여 쿠데타의 불가피성을 설득하려 노력한다.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지만.) 신검의 대왕 즉위는 견훤의 고려 귀순 이후 국왕부재의 권력 공백 속에서 이루어지는 점도 신검이 최후까지 최소한의 자식으로서의 도리와 민중에 대한 태자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 했음을 엿볼 수 있다.

삼국유사나 고려사/고려사절요 등에 묘사되어 있을 신검에 대한 묘사는 지극히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서 접근하여 악의적으로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고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에서 공식 유훈으로서 후백제 지역(현재의 전라도 지역)을 '풍수지리적으로 반굴의 상'이라고 하여 인재를 등용하지 말 것을 남기는 엽기를 부리기도 하였다. 자식이 부모를 권좌에서 내쫓았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 신검의 행위는 당대의 사가들에게서 결코 합리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에 와서도 쿠데타라고 하는 정치행위 자체의 불법성으로 인해서 신검의 악마적 이미지는 그대로 굳혀져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한국은 수많은 제3세계 군부 쿠데타 경험 국가들처럼 군부의 힘을 빌린 집단의 쿠데타를 경험한 국가가 아닌가. 그와 유사한 정치행태를 보인 신검에 대한 후대인들의 평가도 우호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무려 넷째 형제이면서도 장자상속이 보편화된 당시에 대권을 이어받으려고 과욕을 부린 금강에 대한 비판이 이토록 부재한가 하는 점이 더 의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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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특히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 근현대사를 장식한 여러 인물들(무장 테러리스트 조직의 대표로서 활동했던 김구, 군부독재와 근대화라는 이중성을 품은 박정희, 남로당 계열의 여운형/박헌영, 권력안정을 위해 전두환을 내친 노태우, 아들을 내친 김영삼, 정계은퇴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김대중 등 수도 없이 많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한 기존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공방이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중적 인기와 영합한 무조건적 찬양과 무조건적 자아비판 강요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본문으로]
  2. 대표적으로 조선조 태종 이방원이 친형인 정종 집권기에 저지른 참살행위가 있다. 왕자의 난에 대해서는 비단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에서 곧잘 볼 수 있는 '일부다처제'와 '장자상속제'가 공존하는 국가에서 아주 흔한 정치행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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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연합전시증원훈련(RS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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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머무르고 있는 美최신예핵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Carrier Viehcile Nuclear -76, 97000톤 Nimitz Class)의 모습. 韓美연합전시증원훈련(RSOI : Reception Staging Onward Movement and Integration)을 위해 입항했다. 우호방문과 유사한 성격을 띄고 있는 이번 미해군의 최신예 핵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의 핵무장 여부는 대외비이지만, 미해군의 최신예 핵항공모함이 韓美연합사령부 지휘 하의 한반도 전쟁 발발시를 상정한 증원훈련을 목적으로 한국 영해에 입항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외적으로 자유대한민국에 안보적 위협을 가하고 있는 적성국들에게 한국의 공고한 韓美연합방위태세를 과시하고 전 세계적 추세인 다자안보가 한반도에서도 공고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재확인하며, 또다시 자의적으로 동북아 각국이 합의한 6자 회담의 합의 결과를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파토낸 북한괴뢰의 연이은 무모한 무력도발 행위들에 대한 대한 적절한 전시효과로 기능할 것이 예상된다. 더불어 노무현/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유난히 심각하게 삐걱거렸던 韓美상호방위조약의 준수 여부에 대한 불확실한 의문 부호들을 상징적으로 종식시킬 수 있는 상징적 이정표로 해석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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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만 되면 준동하는 親北성향의 조직들. 나는 이들의 핵심간부들이 남파간첩들이거나 그에 준하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DJ시절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DJ우상화 작업을 위해서 철저히 짓밟힌 오늘날 북한의 정신세계를 지배한다는 '주체사상의 아버지' 황장엽 귀순열사(너무 오바해서 표현했나?)의 증언을 다시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위협하는 유일한 조직체는 김정일 도당 뿐이다. 김정일 도당에게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불법적인 ICBM개발과 단/중거리 미사일 발사시험, NPT조약 재비준과 IEAE재가입을 통한 엄정하고 투명한 핵사찰을 받도록 요구할 용기와 의도가 없다면 너희들의 무모하고 헛된 평화 구호도 남파간첩/친북조직이라는 꼬리표 뒤에 영원히 파묻힐 것이다. 위원장 동지에게 핵실험의 불법성을 고발하고 성토할 용기와 의지는 있는가? 없다면 그 무모하고도 천한 입을 다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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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와 Who's your daddy?

Who's Your Dad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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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너희 아버지는 누구니?"라는 말이다. 이 말은 내가 한때 재밌게 하던 워크래프트3의 치트키 명령어로서 아군의 캐릭터를 불멸체로 만드는 '무적 치트키'다. 하고 많은 말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하고 많은 말들 중에서 "너희 아버지가 누구니"라는 말이 무적 치트키로 지정되었을까? (다른 예로 '전장의 안개'를 걷게 해주는 맵핵 치트키는 "I see dead people"이라는 영화 대사이다.)

한국에서 고인이 된 이병철의 아들 이건희는 아버지가 죽자 아무런 거리낌없이 삼성그룹의 총수로 자리에 올랐다. 이건희가 60억 지구인들 중에서 유일하게 삼성그룹의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은 그가 이병철을 아버지로 두었기 때문이라는 이유 하나 뿐이다. 삼성그룹의 지주회사인 에버랜드 지분과 관련하여 탈세라는 중대 범죄를 저지른 이건희와 이재용의 관계는 단지 그들이 '父子관계'라는 것 하나만으로 당연히 치뤄야 할 법의 의무를 어기고 범법행위를 저질렀다. 축구광이자 엄청난 히스테리 증세로 현대중공업 안팎에서 소문이 자자한 정몽준은 생전에 소의 북송으로 한바탕 생쇼를 치뤘던 정주영 회장을 아버지로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마에 땀 한방울 안흘리고 거대 기업 현대계열사의 대주주로서 큰 재산을 가질 수 있었다.

이쯤되면 "Who's your daddy"가 어떤 의미인지 알만하다. 더불어 워크래프트3를 만든 북미 지역 사람들에게도 아버지가 누군가 하는 문제는 그 발언의 당사자와 상대자로 하여금 양자가 사회적으로 어떠한 지위에 놓이게 될 여지를 안게 되는가에 대한 매우 핵심적이고 결정적인 단서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더불어 경제의 주체이자 가장의 임무가 서구에서도 아버지라는 남성에게 좀 더 사회보편적인 인식으로 비중이 쏠림현상이 발생함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한때 받아보기도 했던(그러나 몇 부 읽어보지도 않았던)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전 세계 억만장자들의 리스트에서 우리는 아주 낯익은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병철의 아들 이건희,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 정주영의 아들인 정몽구/정몽준, 서성환의 아들 서경배 등 흔히 '부자아빠'의 아이로 태어난 아이들이 장성하여 세계적인 억만장자의 대열에 들어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대한민국을 삼성공화국이라 부르며 삼성이라는 두 글자만 써도 A4지 열댓장은 술술 '궤변'을 쏟아놓을 무지렁이 한심한 치들과 같은 이야기는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생각도 없다. 부자에 대해 비정상적(사실 정상적인 경우도 많다.)으로 적대적인 한국의 사회적 풍토에 대해서나 가난한 자들의 뿌리까지 썽거 문드러진 열등감과 무능력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저들이 왜 '아버지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런 막대한 자산을 가진(정부의 공적자금이 수십조원 이상 투입된.) 거대 기업들의 최고 경영자로서 아무런 검증작업이나 공개된 절차없이 그 부를 독점하는가 하는 것이다. 부모의 재산을 자식이 유산처럼 상속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 부모의 재산이 부모만의 재산이 아닌, 국가와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저급한 좌파/진보인 척하는 녀석들처럼 삼성을 키워준게 우리 국민이라느니, 애국심을 부추겨서 사익을 도모했다느니 하는 말은 그런 얕은 수작에 넘어간 자신들의 무능/무지를 자폭하는 행위일 뿐이다.) 저 막대한 부를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방법(삼성의 예가 대표적)으로 독점/승계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왜 이 사회가 그러한 불법적 행위에 대해서 정당한 법의 심판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거리며 피고용인들의 고용승계를 볼모로 묵인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조만간 전두환 이후 희대의 반역자로 낙인 찍힐 노통 말처럼 그렇게 잘나고 이제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다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왜 그런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방법들에 대해서 묵인하고 좌시하고 있는가. 왜 우리는 미국의 엔론社처럼 탈세하고 불법을 저지른 기업을 과감히 해체시켜 버리지 못하는가. 왜 김대중에게 밉보인 대우그룹은 해체되었는데 아버지를 잘둔 덕에 앉아서 국부(國副)를 집어삼킨 삼성, 현대, 태평양 등의 저 자식들의 비정상적 상속/승계 작업을 저지하지도, 그들을 공중분해시키지도 못하는가?

1조원 낸 정몽구는 감방에 집어 넣어도 8천억원 낸 이건희는 집어넣지 않은 노통은 그 이유를 아주 조금은 알고 있겠지. 노통도 박철언처럼 한 10년쯤 지나서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으로 시리즈물 책을 내어 인세로 부수입을 올리고 싶은건가.


Who's your daddy?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1953년 경북 영천 태생으로 가난으로 초등교육도 정상적으로 수료하지 못한 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16세에 무작정 서울에 가서 허드렛일을 하며 기술을 익혔고, 27세 되던 해에 영천의 어느 다방에서 맞선을 보아 동향의 어머니(역시 가난으로 인한 초등 중퇴)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나서 내가 몇 달만(?)에 쑥-하고 세상에 태어났다.(그렇다. 나는 속도위반 딱지를 달고 나왔다. 그래서 내가 과속 딱지와 주차위반 딱지를 심심찮게 받는가 보다. 딱지는 내 운명.) 중동 건설붐이 일던 시기에 사우디아라비아에 2년동안 건설노동자로 파견되어 가기도 했었고 대우전자에서 10년 근속 이후 정리해고되었다. 그 이후 구미에서 자영업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렇게 쓰니 무슨 네이버 검색에서 나오는 옛날 인물들의 소개글을 보는 것 같다. 나는 나의 2세에게 어떻게 쓰여질까? 불행히도 나의 2세는 내 의지에 의해 이 땅에 존재하지도 못할테니, 나는 이런 식으로 표현되지도 못하겠지. Who's your dad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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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이 빠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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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olution(개혁)
Evolution(진화).

'개혁(Revolution)[각주:1]이라는 말이 가진 그 오묘한 매력을 1년 반전에 썼던 적이 있다. [
관련글 보기] 개혁이라는 단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약과도 같은 환각작용을 유발한다. 개혁이라는 구호가 가져다 주는 변화에 대한 막연하고도 근거없는 기대는 그 구호의 당위성와 진실성, 현실성을 생각하기 이전에 그 구호에 찬동하고 격할 경우 개혁이라는 구호에 반대하는 자들을 반동분자 내지는 구시대적 분자따위로 매도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는 최근 4년동안 그 어느 시기보다도 개혁이라는 구호를 많이 들어왔고, 그 개혁 구호에 반발하는 자들을 보수/수구라고 하며 매도해 왔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하여 개혁 구호에 대한 대중들의 피로현상이 극에 달해 있고, 과거 적절한 이유없이 무참히 매도당했던 여러 보수적 이념들에 대한 재조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 이르러서도 그들에 대한 복권활동은 전개되지 않고 있다. 물론 나 또한 그럴 생각이 없다. 보수는 언제나 단기전에는 패배[각주:2]했지만, 정공법으로 언제나 그 현실적 우월함을 증명해 왔기에 그럴 필요가 없다. (한편으로 그런 낙관론이 오늘날 겪은 한국보수이념의 위기를 초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급진적이고 개혁지향적인 이념은 언제나 많은 청사진을 제시한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는 것이야 어느 진영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개혁 성향의 진영에서는 그 청사진이 훨씬 더 포괄적이면서도 전방위적이며 극적이다. 태생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개혁을 모토로 내건 진영이 특별히 더 한 것은 그들만이 언제나 대중의 변화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데에 사활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그 개혁 성공에 대한 희망을 잃고 현실에 타협하게 되는 순간, 자신들의 존재가치가 증발하고 정치적 입지도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허황된 것이든지 실현가능한 것이든지 간에, 일단은 그들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의 최대치를 설정하여 그것을 대외적 홍보 수단으로 삼고 그를 통해 권력획득을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의 경주를 한다. 그리고 그 실패에 대한 책임공방에서는 언제나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기존의 정치세력들과 사회구성원들의 비협조와 사회적 저항 때문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며 계속해서 개혁추구지향의 세력으로서 각인되도록 총력전을 펼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 스스로의 무능 혹은 변절을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고 그들이 심어준 환상은 역으로 그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독(毒)으로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필연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구호를 실현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실험적/이상적 목표달성을 위한 인위적 변화와 자의적 개혁을 추구하는 이상,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한 민주산업국가 안에서 그들은 그것을 결코 수행할 수 없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 스스로가 정치사회적 약자의 지위에서 정치사회적 강자의 기득권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하려 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말하던 '철인통치'란 지구상에 불완전한 인간이 지배하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권력은 필연적으로 탐욕을 부른다. 권력은 반드시 보수적이며 변화에 더디다. 인류의 '사회주의 대모험'으로 지난 '잃어버린 1세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명백히 경험했다. 개혁 세력이란 자들도 결국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서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개혁세력이 오르려고 하는 자리(기득권층)에 올라있던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과 충돌을 일으킨다. 그 과정에서 대중의 개혁욕구에 부응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신흥개혁세력들은 필연적으로 대중선동(Propaganda)을 통해 구세력을 압박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혁세력 내부의 탈선'이 발생한다. 그들이 재야운동권 시절에 몸에 베인 버릇인 '무모한 투쟁노선'이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제도권 안에서도 주머니 속이 못처럼 튀어나와 개혁세력 내부의 이견을 발생하고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분열하는 것이다.


'갈등지향적 인간'은 분명 존재한다. 갈등지향적 인간 스스로가 갈등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신의 비타협적 마인드는 그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언젠가는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갈등은 어떤 의미에서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때문에 갈등지향적 인간은 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며 그들 갈등지향적 인간들은 궁극적으로 사회의 다양성 확보와 전반적 진일보에 크나 큰 밑거름이 되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갈등이 어떤 갈등인가에 대한 논의가 빠진 상태에서 무작정 갈등을 조장하는 것[각주:3]이 사회 발전에 긍정적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깊은 회의에 빠져들게 한다. 김대중 정권의 괜찮은 사업 중 하나였던 국가인권위원회가 여러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심심찮게 터져 나오는 현실을 외면한 이상주의적 권고안 남발을 통해 대중들의 비난과 외면을 받기 시작한 것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들이 기존의 질서에 지나치게 배타적 성향을 보이며 갈등을 조장하였기 때문일 것이다.(인권이라는 범주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고 인위적이며 당면현실과 충돌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갈등을 조장할 수 밖에 없다.)

'갈등'은 대중을 피곤하게 한다. 갈등은 대중에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역설적으로 권력자 계층에게 권력의 공고화와 세습을 하는데 용이한 정치사회적 환경을 제공한다. 그리고 정치적 무관심은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생명력으로 하는 자칭 진보세력들의 힘을 뺀다. 이 말은 곧 개혁 세력 스스로가 자신들의 힘을 빼는데 무한히 경주해야 함을 의미한다. 개혁 세력이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그 개혁을 통해 자신들을 좀 더 공고한 기득권 계층으로 올려 놓으며 보수화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경주하는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힘을 빼고 있는 것이다. 대중(Mass)은 대중이다. 대중은 군중(Crowd)일 수는 있지만, 공중(Public)일 수는 없다. 대중은 정치적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다. 대중은 언제나 갈대와 같으며 인내심이 부족하다. 때문에 대중들은 빠른 변화를 요구하며 변화를 위한 오랜 갈등에 대해 쉽게 지친다. 하지만 대중은 느리고 완만하지만 천천히 진화(Evolution)하는 존재다.


1950년대 '대한뉴스'에서는 이승만의 행보는 최중요 뉴스 중 하나였다. 50년대 중반의 대한뉴스 한 기사는 이승만이 고아원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에 대해서 '하사품(下賜品)을 전달하시었다'라고 표현했다. 당시에는 매우 당연한 수사적 표현이었다. 국민들 모두 대통령을 과거 임금과 유사한 '나랏님'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초반까지 한국 국민들은 대통령의 권위에 무력으로서 저항하였다. 폭력 시위가 난무했고 그에 상응하는 폭력 진압도 거침이 없었다. 일의 先後관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많지만, 쌍방 모두 폭력을 행사하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표현했음에는 변함이 없다. 21세기의 한국민들은 폭력시위를 증오한다.[각주:4] 이제 우리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보다 펜대가 더 강함을, 선동적 구호보다 無言의 비협조가 더 강함을 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대중의 진화(Evolution)가 자리잡고 있다고 여긴다.

나는 진화한다. 당신도 진화한다. 우리는 모두 진화한다. 우리의 진화의 힘은 교육과 끊임없는 자기계발에 있다. 그리고 그 진화를 뒷받침하는 것은 우리의 경제력이다. 우리의 '경제사회적 부'가 계속 창출되고 있는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진정으로 사회의 개혁을 이루어낸 것은 스스로 개혁세력임을 자처하며 깃발 들고 나서서 대중들을 선동하던 하릴없는 치들이 아니었다. 진정으로 우리 사회의 개혁을 이끌어낸 것은 느리고 더디지만, 조금씩 진화하며 그 내성을 다져온 대중 스스로다. 진정한 개혁은 '내성을 가진 진화'인 것이다. 내성을 가지지 못한 개혁은 언제든지 반작용/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각주:5] 대중을 조급하게 끓이려 하지 마라. 대중은 자칭 진보개혁 세력들의 풋내기 선동이 없어도 끊임없이 진화한다. 그리고 보수이념(이념을 의미하지, 정치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은 바로 그 내성을 가진 대중의 정당한 요구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자신들이 내어줄 수 있는 만큼을 내어주고 기득권을 보장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개혁 세력의 역할은 그 진화의 방향이 어긋나지 않게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데 그쳐야 한다. 개혁 세력의 기득권 세력 진입은 오히려 국가적 차원의 퇴보를 초래할 뿐이다.(베네주엘라가 대표적이다.)

느린 진화도 개혁이다.
국가의 역사는 인간의 생처럼 짧지 않다. 대중의 제한된 능력을 인정하고 그 제한된 능력 안에서 내성 있는 진화를 추구하며 반동없는 안정적 개혁이야말로 진정한 개혁이며 진보다.

P.S. : 그저께 새벽에 윤히메와 이야기하다가, 문득 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이제는 몰라보게 '여전사'의 모습을 갖췄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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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PAN class=text13>정치 ·사회상의 구(<SPAN onmouseover="tooltip_on('','舊 : 옛 구, ㉠옛 ㉡친구 ㉢오래다 ㉣구의 ㉤늙은이')" onmouseout=tooltip_off()>舊</SPAN>)체제를 합법적 ·점진적 절차를 밟아 고쳐 나가는 과정.</SPAN>' [본문으로]
  2.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17대 총선이 적절할 것이다. 보수의 위기는 한국 내의 뒤틀린 보수이념의 자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고, 보수이념 내부의 자정작용과 자기계발 노력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뉴라이트/자유주의연대 등은 아직은 매우 미흡하고 어리숙하지만, 그러한 보수이념의 시대적응을 위한 노력의 하나로서 이해할 수 있다. [본문으로]
  3. 예로서 2004년 신기남의 보수와 관련된 발언이 있다. 당시 열린우리당 당의장이었던 신기남은 "진보는 개방적이고 바꾸자는 것이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나, 보수는 폐쇄적이고 지키자는 것이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그 단편적 사고를 폭로(?)한 바 있다. 오히려 다름을 인정한다던 진보진영의 독불장군식 노선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그리고 보궐선거 참패 이후 야당에 대한 정치공세를 목적으로 시작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도 초기 한나라당 의원들의 조상에 대해서 폭로전을 펼치다가 신기남, 김희선 등 여당 유력인사들의 과거가 드러나자 은연중에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개혁 성향의 진영은 언제나 순결한 도덕성을 요구 받을 수 밖에 없기에 철인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세계에서 약자로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본문으로]
  4. 1987년 6월 항쟁도 결과적으로 주된 시위 내용은 폭력이 상당히 배제된 비교적 평화적인 시위를 통한 국민대중의 '권리장전'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중이 대중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한 역사는 길지만, 실질적으로 되찾게 되었을 때는 폭력이 없는 사회적 성숙을 통한 자연스러운 이양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으로]
  5. 과거 프랑스의 나폴레옹의 등장이나 부르봉 왕정복고 같은 사건이 대표적일 것이다. 반세기 이상 내성을 키웠던 프랑스 혁명조차도 그 내성이 미약하여 혁명정신을 되돌리고 말았다. 한국에서도 전두환의 등장을 허용한 한국사회를 예로 들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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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용헬기 270여대 양산 사업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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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MD Photo : 군사세계]

2006년말 작성된 합동전략기획보고서(JSOP)에 추가된 내용으로 KHP(한국형 다목적 헬기)사업의 일환으로 육군에서 군당국 추산 6~7조, 군사전문가 예상으로는 10조원이 넘는 세금을 쏟아서 공격형 헬기를 자체개발/양산하여 274대를 실전배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발 계획의 배경에는 노후화하여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육군의 헬기 전력의 교체와 전시작전통제권을 이양 받고 나서 역할이 더 막중해진 한국군의 방위의무(유사시 북한군 해상침투저지 등의 기존의 주한미군이 수행하고 있던 군사임무를 이양 받음.)를 수행하기 위해서 기존의 KMH사업(477대 규모. 총 예산 10조원 예상.)에서 도입 예정이던 공격형 헬기 177대에서 60%이상 증강된 전력보강계획이다.

이에 대한 의견이 벌써부터 분분하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할 과제는 군이 여지껏 해왔던 각종 국방계획들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졌었는가에 대한 문제와 이미 북한의 요구에 굴복하여 우리의 국방백서에서 삭제된 한국의 주적(主適)문제(우리는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 주적이 사라진 희안한 국가다. 주적도 없는 나라가 군대는 왜 징병제인지 모르겠군.), 사업의 현실성 문제와 더 나은 대안이 정말 부재한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군의 국방계획에는 군이 도입하는 무기들의 용도가 진정으로 한반도 수호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계산이 깔려 있어야 한다. 살상력과 전쟁억지력을 가지는 무기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총부리를 겨눌 수 있는 적국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국방백서에서 '주적(主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적도 없는데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고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이와 같은 10조원이 넘는 생돈을 퍼붓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군을 전쟁터에 파병하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전쟁무기를 사들이고 그 무기의 국방백서 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용도'를 위해 작전계획을 짠다.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 군은 그것부터 먼저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이런 거액의 예산집행에 대해 국민이 수긍할 것이다.

군은 위의 선결과제를 해결하고 난 이후에 그들의 사업계획이 현실성을 가지는가의 문제와 더 나은 대안이 정말 부재한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비합리적 계산법이 아닌, 전문성을 가진 군사경제집단의 다각적인 자문을 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서도 번번히 돌발변수가 발생하고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것이 국방 분야다. 제대로된 시장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국방 분야에서 사업계획의 현실성을 확신한다는 것은 매우 오만한 행동이다. 당장 같은 사업을 두고서 군 내부의 추산액과 군 외부의 추산액이 2배 가까운 차이를 보이는 것은 군이 자신들의 계산법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사업계획의 현실성을 주도면밀하게 재분석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어설픈 민족주의를 자극하며 파퓰리스트들처럼 국내개발 / 자력생산 같은 선동적 구호로 그들의 예산 집행을 여론몰이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현실과 국가의 현실, 그리고 국제관계에서 한국이 놓여 있는 지위와 현실, 우리의 주적이 어느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적인가에 대한 가능한 한 가장 정확한 예측과 판단, 韓美연합군의 연합작전수행 변수까지 철저히 고려되어야 한다. 안보 문제는 1%의 흐트러짐도 없어야 하고 그들의 오판이 국가안보에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외부 직도입을 무조건 매국인 양 비방하는 얼뜨기들의 자극으로부터도 자신들의 막중한 의무와 현실의 끈을 놓쳐서는 안된다.

군이 추진해온 여러 국방계획들은 언제나 각종 비리와 리베이트에 얽혀 있었다. 국제적으로 용인되는 관례 이상의 금전이 오고가서 청탁의혹으로 조사를 받은 군장성을 우리는 이미 수없이 봐왔다. 방산업체들의 투명하지 못한 기업구조와 업체선정 과정을 낱낱이 공개하고 신뢰성을 가지는 공개입찰을 거쳐야 한다. 군 외부의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받아야 하고 군 문제는 군인이 가장 잘안다는 허황된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군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차세대 전투기 도입 과정에서도 한국군은 국민들에게 속시원하게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물론 현실적으로 F-15K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널리 팽배해져 있는 反美감정과 이를 조장하는 세력들의 음해를 확고부동하게 분쇄할 수 있는 논리와 투명성을 군이 확보하지 못한 채, 여전히 그들만의 논리로 밀어붙이기만 한다. 군은 그 조직의 특수성만큼이나 국민의 대표성(특히 한국은 국민의 절반이 군에 직접 몸담은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을 인식해야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에 대해서 강력히 반대하는 바이다. 때문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이후의 작전상황을 고려하여 기존의 작전계획에서 변경되어 추가예산과 거대한 불확실성이 요구되는 새로운 국방계획에 강력히 반대한다. 인류는 단 한 번도 다자안보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 공고한 다자안보의 선택사항을 스스로 내팽개치고 전근대적인 자주국방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며 얼뜨기 파퓰리스트들의 사리사욕 충족을 위한 선전 / 선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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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의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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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어릴 적에 공산사회주의 루마니아를 지배하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세스쿠'의 처형 장면을 월드뉴스 시간대에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너무 어린 초등학생이어서 자동소총의 난사로 걸레가 된 그의 시체가 메달려 있는 콘크리트 벽을 루마니아군의 탱크가 짓밟고 지나가는 장면과 짓밟히고 난 후의 차우세스쿠 시체의 얼굴 부분이 나온 영상을 본 것이 지금도 상당히 또렷히 남는다. 그 때의 나는 매우 어리고 가치 판단이랄 것도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가 독재자(그 때의 내가 독재자가 무슨 의미인지나 알았을까.)라는 사실과 시민의 손에 죽었다는 것 하나만 알았다. 나쁜 놈이니까 시민들이 죽였겠지..하는 수준의 이해랄까?
 
 
오늘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정부당국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후세인 본인은 군인이기 때문에 총살형을 요구했지만, 살인마 후세인에게는 자신이 죽을 방법을 선택할 최소한의 권리조차 부여되지 않았다. 사형의 조기집행을 예감한 후세인은 죽기 전에 남긴 편지(원래 법정에서 낭독할 예정이었으나, 법정을 통해서 친위조직을 선동하고 자극할 권리를 얻지 못했다.)에서 "증오는 사람들이 공정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지 않고, 공정한 생각과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다."라면서 "우리를 공격하고 이라크 정부와 국민을 분열시킨 외국 사람들도 증오하지 말아 달라."라는 아주 표리부동하고 황당무계한 말로 자신을 마치 부당한 국제정치적 폭압에 의해 불가피하게 죽음을 맞는 순교자인 양 묘사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글의 말미에 자신이 알라 곁에 순교자로서 머물 것이며 지하드, 무자헤딘, 팔레스타인을 찬양했다. 후세인의 편지가 의도한 목적은 명백하며 후세인은 최후까지 그의 잔당들에게 모택동식의 '계속투쟁'을 주문하였다.
 
 
굳이 차우세스쿠와 후세인의 죽음을 연관시키기란 쉬우면서도 쉽지 않다. 철권통치를 펼친 독재자였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집권하는 과정도 달랐고, 통치 과정도 달랐으며 대외관계도 판이했다. 세계를 바라보는 눈도 미국을 적성국으로 둔 것은 동일했지만, 서방 진영에 대한 접근법은 명백히 차이를 보인다. 심지어 둘의 죽음을 둘러싼 주요 국가들과 주변국들의 반응도 판이할 정도로 둘은 쉽게 연관지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연관짓기 힘들다. 단지 둘의 연관 관계를 굳이 만들어 내자면, 둘 다 처형 당시의 상황에서 '죽어 마땅했다'라는 점 하나다.
 
 
니콜라이 차우세스쿠를 무참히 처형한 루마니아의 국민들이 차우세스쿠의 통치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한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아온 그들 혁명 1세대들에게 자본주의 사회 구조는 너무나 냉혹하고 치열하며 미래가 칠흑같은 암흑 속이다. 차우세스쿠의 시절이 진심으로 그리운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현실이 너무나 힘이 들어 차라리 그 때가 낫다는 자괴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루마니아인들만이 알겠지만, 한때는 죽어 마땅했던 자가 17년의 시간이 흘러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들의 손으로 그의 신체를 걸레짝으로 만들고 그의 시체를 탱크로 짓뭉개며 환호하던 그들이 다시 그를 사모하기 시작하는 이 모순된 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단순히 루마니아인들이 어리석어서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체감하지 못할 뿐이라고 치부한다면, 당신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국민은 언제나 옳다'라는 철칙을 부정해야 한다. (실례로 노무현의 참여정부도 이 철칙을 잘 활용하여 득세하였지만, 점차 철칙이 장애물이 되자 때로는 옳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꾸며 자승자박에 빠진 적이 있다.) 나는 뚜렷한 공적이 아무 것도 없는 차우세스쿠를 향한 루마니아의 그리움이 일시적인 것이며 장기적으로 분명 개선될 것이라 확신한다.
 
 
오늘 후세인이 죽었다. 후세인의 친위정당이었던 바트당은 즉각 복수를 다짐했다. 바트당은 이미 무늬만 정당일 뿐, 소규모 테러 점조직이나 다름 없다. 그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이슬람 교리에 찌들대로 찌들어 있는 이라크 민중들이다.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은 이라크 민중들의 후세인 처형에 대한 감회는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라크 자체가 종파/민족적으로 복수의 세력이 모여 있고 이에 따라서 후세인 정권의 수혜를 받기도 핍박을 받기도 하였기 때문에 후세인에 대한 감정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라크 상황을 바라 보는 해외 언론의 시각도 그들의 취재 지역, 취재 의도, 본국의 성향/방침에 따라서 완전히 판이하다. CNN과 알자지라가 같은 소식을 전혀 다르게 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現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단정지을 수 있는 사항이 있다. 그것은 마약처럼 강한 '민주주의의 승리'이다. 나는 자본주의의 우월함과 함께 민주주의의 절대우월성을 믿는다. 민주주의는 마약처럼 한 번 맛을 들이면 절대 헤어날 수 없는 마력을 지녔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게된 민중은 장기적으로 그 민주주의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이 물질을 추구하는 기본 본성에 입각한 자본주의의 근간 만큼이나 민주주의의 뿌리도 깊다. 경제체제에서 최후의 승자가 자본주의가 아닐 수는 있겠지만, 정치체제에서 최후의 승자는 반드시 민주주의임을 확신한다.

단기적 혼란은 불가피하다. 당장은 후세인의 죽음이 이라크 민주정부에게 악재로서 루마니아에서처럼 그를 그리워 하는 집단이나 세력에게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미국의 한국 군정(軍政) 교훈에서 비롯된 이라크에 대한 새로운 정치공학적 접근법으로 이라크 민중들의 뇌리에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민주적 가치가 잠식될 것이고 그러한 가치전이는 먼 훗날 오늘의 이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P.S. : 나 스스로도 연관성이 없다고 밝힌 차우세스쿠와 후세인의 접근은 대실패인 것 같다. 무리수가 너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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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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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만평]

자기가 사인한 총리 인사가 잘못되었다고 자평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무능을 시인하는 꼴이다. 자기가 자기가 임명했거나 DJ, YS등이 임명했던 국방장관들을 수구꼴통으로 매도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출신청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배경이나 마찬가지인 DJ까지 무능한 親美수구꼴통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공개된 자리에서 격분하고 막말을 내뱉는 것은 대통령이 국민을 대하는 수준이 국가의 잠재적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사치의 집에 국민의 호객행위(투표)에 의해서 이끌려온 손님의 호통과 다름없다. 어제까지 친구하자고 매달리던 고건/한화갑이 친구 안해준다고 바로 내치는 것은 세상을 이분법적 흑백논리로서 양분하여 그가 입이 닳도록 주장했던 실용주의 노선을 스스로 거부한 극단적 이상주의에 젖은 아집을 드러낸 것일 뿐이다.

그의 격정과 분노로 몇몇 국민들은 가슴 속의 응어리를 풀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선동과 선전에 몇몇 국민들은 심연의 홀가분한 감동마저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선동적 연설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미국 엉덩이에 숨어서만 살꺼냐고 하던 그가 이라크 파병을 주도했다. 이것 하나만 내밀어도 그의 선동적 연설처럼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논리로 지배되는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은 '실용주의'라는 말에 비정상적인 매력을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조선 말기 실학파들의 근대과학에 대한 접근이 세도가들의 부패와 권력욕에 멍들어 꺾이고 매국노 민비와 무능한 고종황제, 시대를 바로 보긴 했지만 과거에 얽메여 큰 물길을 놓쳐버린 흥선대원군의 갈등 속에서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한민족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실용'을 유난히 강조한다. 그 뿐만 아니라 역대 모든 정권이 실용주의를 어떠한 형태의 변형을 이루어내서라도 강조하고 내세웠다. 진정한 실용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한 실용은 내가 현재 나 자신이 처한 위치와 가진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 내에서 내가 수행할 수 있는 길만을 선택하여 무리하지 않는 것이 실용이다. 실용에는 도박이 없다. 도박적 정책과 무리한 모험수는 실용이 아니라 '만용'이다. 하지만 선동적 파괴력을 지닌 만용이 주는 매력에서 많은 정치인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한나라당의 얼토당토 않은 '반값아파트 주장'도 어쩌면 선전과 선동에 휩쓸려 패배한 참여정부 출범 과정에서 쓰리게 배운 교훈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지 않는다. 빠르게 변화할 수가 없다. 오늘 1인독재세습왕조인 김정일 정권이 내일 갑자기 북미나 유럽 수준의 민주정권이 출범할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의 기득권층은 10년 뒤에도 기득권층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이익에 위해를 가하는 힘에 합리적이고도 합법적으로 가장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때문에 기득권 층인 것이다. 기득권층이 밉다고 극단적으로 그들을 공격하고 붕괴시키려 하면 쓰린 패배감과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국가는 컴퓨터 게임 속의 심시티 국가가 아니다. 세대를 두고서 긴 시간에 걸쳐 교육과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가며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그 변화를 유도해낼 수 있었야 한다. 100년 이 땅의 여성은 남성들의 종속변수일 뿐이었지만, 100년이 지난 오늘날은 서서히 서구 사회처럼 법률적으로 여성상위의 시대가 점차 도래하고 있다. (북미의 경우 남성들이 '위자료 공포'로 인해서 결혼을 꺼리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100년이라는 3세대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시간은 유한하면서도 무한하다. '나'라는 하는 한 개인의 영달에 이끌려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다가 무너진 예시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수도 없이 발견할 수 있다. 역사학이 존재하는 이유도 역사를 통해서 과거를 교훈삼아 미래에 과거의 과오가 반복되지 않기 위함이 아니던가.


나는 기본적으로 노무현의 수 많은 정책들 중에서 이라크 파병, 레바논 파병, 4차 6자 회담 타결 등 몇가지 제한된 사안의 문제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그에게 실망만 얻었다. 특히 '정치꾼'으로서의 그의 막말통치와 정치적 미숙함, 그리고 그것을 결코 인정할 줄 모르는 교만함은 내 분노와 증오심마저 자극시켰으며 나는 그가 지금이라도 당장 박정희처럼 부하에 의해서 암살되길 바랄 정도다.

그러나 정말 앞으로의 시대가 참여정부가 지껄여대던 모습으로 변해가야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옳은 길이라면 참여정부는 그 첫삽을 뜬 시발점이 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대학 시절 주체사상에 젖어 제대로 학문탐구조차 하지 않았던 전문 시위꾼 386출신들에게는 선동과 선전의 능력만 부여되었을 뿐, 그것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시행할 수 있는 행정적 수완과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것에 대한 인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어찌되었거나 그들이 비난하는 보수 세력들은 이 나라를 이 곳까지 이끌어 왔고 그들 보수 세력들이 지은 농사의 콩고물을 받아 먹은 정권 중 하나가 바로 참여 정부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선민의식에 한껏 젖은 386들의 역할은 이제 한국정치사에서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시간이 진실을 말해줄 것이다. 노무현과 그 졸개들이 옳았는지, 아니면 그들이 비난하는 보수꼴통들이 옳았는지는 시간만이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어느 한 쪽에서 완전한 승리를 선언할 수 있는 미래는 결코 펼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철칙'이다. 국민 소득 60달러 미만의 미국의 무상원조 없이는 마이너스 성장만 하던 한국이 PPP 1만 4천 달러 이상의 수출 3000억 달러를 기록하는데 60년의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유럽에서 마그나 카르타로 민주주의 의식이 싹트고 그것이 보편화되는데 6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을 불과 2세대만에 이루어낸 것처럼 발전과 진보에 탄력 받은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격정적인 이 갈등과 대립 속에서 새로운 접점을 발견할 것이라 믿는다.

군왕적 통치를 펼친 이승만부터 무능의 극치였던 장면 정부, 전투화 신은 채로 유신개발독재를 밀어붙였던 박정희, 제 측근 관리하느라 바빴던 전두환과 무능했지만 사람은 잘 썼던 노태우, 기분대로 통치했던 김영삼, 꿈에 젖어 살았던 김대중, 성질살려 정치하는 노무현까지 어느 시대에서도 우리는 평온한 적이 없었고 갈등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만큼 발전했다. 나는 참여정부의 막말과 혼란이 증오스럽고 경멸스럽다. 지금 당장 노무현과 그 졸개들이 몰살되어 이 땅의 갈등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들을 향한 내 적개심을 외부로 표출하는 일이 점점 잦아들고 있다.

왜냐하면 이 혼란마저도 우리가 발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며 발전을 향한 내재적 의지라는 생각이 점점 구체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노무현의 막말이 화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저 새키는 권력 유지에 대한 뇌만 있고 다른 뇌는 없는 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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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6자 회담은 대세 굳히기인가, 사태 해결의 노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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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관 北대표 Photo : 뉴시스]

다자간 회담을 통한 북한 핵문제의 전향적 해결은 앞으로 韓美日 3국이 中, 러시아와 함께 해결해야 할 전 세계적인 핵확산 방지와 비이성적 집단의 무자비하고 비합리적인 핵테러리즘으로부터 전 세계 각국이 직면한 심대한 국가안보와 연관된 중대한 과제다. 다자간 회담의 틀이 지속되어져야 하는 이유는 北美 양자회담(이 자리에서 한국은 북한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당사국 회담에서 배제되었음을 유념하라.)으로서 타결된 제1차 핵위기에서의 북한의 도발적 협정위반행위에 대해서 회담의 당사국인 미국이 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中日러시아 등의 동북아 유력 국가이자 세계적 강대국들의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협력과 역할 분담을 이루어내지 못했던 사례에 비추어 한 차원 더 높은 강제력과 협정이행의 의무를 배가시키기 위함이다.

또한 다자간 회담이 고수되어야 하는 까닭은 또다시 한반도의 비도덕적인 핵테러리즘과 군사적 긴장상태 조장, 비이성적 집단인 북한의 불합리한 핵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의 안보를 패권국 혹은 지역적 패권국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여 억지력 있으면서도 효과적인 핵확산 방지라는 궁극적 목표 달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다시 북한의 벼랑끝 외교와 위협전술에 휘말려 北美양자회담을 요구하는 북괴 김정일의 술수에 휘말리게 된다면, 한국은 자국의 안보 공고화와 KEDO(Kore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의 경수로 지원사업에서 있었던 경제적 책임분배에 있어서 수동적이고 피동적 입장에서 아무런 입장 표명도 하지 못한 채, 발표된 결과에 의해서 타의에 의한 역할 수행을 강요받게 되었던 것과 같은 불합리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국내적/국제적으로 앞으로 언젠가 발효하게 될 제2차 북핵협정 내용에 대한 북한의 국제사회에 대한 예의 있고 책임 있는 이행과 전 세계적인 핵확산 방지 구상에 대한 조기 복귀, 더불어 한국의 국익 수호와 동북아와 세계적인 핵테러리즘과 핵확산 방지, 궁극적으로 우리 '국민'('민족'이 아니다.)의 미래에 우리가 직접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체적인 역할 수행을 위해서라도 다자간 회담의 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北美양자회담은 결단코 불가(不可)하다. 그런 의미에서 6자 회담은 현단계에서 한반도의 안보적 위기에 당사자인 한국과 나머지 북한의 핵보유에 반대하는 주변 4강을 비롯한 전 세계 NPT가입국들의 염원을 가장 실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국제회담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정확한 흉계(?)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요구 사항에 포함되어 있는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BDA)의 금융계좌 동결 문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BDA가 김정일 정권의 중요한 자금줄임에는 명확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싶다. BDA는 금융계좌동결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북한이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던 사안이었으며 미국은 이에 대해 북한의 불법적 달러위조 혐의를 들이대며 돈세탁의 시발점이라고 여긴 BDA 동결로서 자국 화폐의 위조하는 국제범죄조직으로 변질된 북한의 돈줄을 막았다. 이에 대해 북한은 끊임없이 6자 회담의 복귀와 북핵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는 계좌동결해제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그러한 북한의 주장들은 결코 주변국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북한이 협상진전을 위한 성의있는 제안을 하지 않을 경우 BDA는 미국의 중요한 '인질'로서 남을 것이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문제도 여전히 뚜렷한 파악이 힘들다. 북한이 진정으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요구할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요구없이도 6자 회담을 장기간 지속시킴으로서 자연히 '핵보유국의 지위'를 획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제 있었던 北中간의 예비회담에서 중국은 "북한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요구하지 않았다"라고 전언했지만, 북한이 손바닥 뒤집듯 국제협약을 무시하여 1994년 제네바 핵협정을 일방파기했으며 IAEA핵사찰단의 추방과 의혹시설에 대한 접근 제한, 일방전 NPT탈퇴, 위협성 탄도 미사일 발사와 궁극적으로 한반도 내에서의 핵실험이라는 최악의 '파멸적 범죄행위'를 자행해온 '불량국가'임을 감안할 때, 자신들이 상국(上國)으로 모시는 중국에게 표명한 북한의 입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에 대한 증거로서 오늘 새로이 발표된 북한의 무모하기까지 한 '핵군축회담 요구'는 북한이 새로이 개최되는 6자 회담 5차 2단계 회담에 대한 진척 의지를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6자 회담을 통해서 핵문제를 타결할 의지가 있을 수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또다시 자신들의 핵무기 보유선언으로 중단되었던 경수로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북한에 대한 경수로 지원은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 스위스 제네바에서 합의한 제네바 핵협정에서 컨소시엄 형태로 對北핵개발 지원(에너지 자원으로서의 핵)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이것을 지연시킨 것은 북한의 금창리 핵시설 의혹에서 투명한 시설 접근을 허용하지 않은 채 1년 이상 시간을 끌면서 공사기한을 늦췄고, 2002년 캘리 특사의 파견에서 공식적으로 HEU(High Enriched Uranium)핵무기 보유 사실을 밝힘으로서 북한의 핵개발 중단을 댓가로 제공키로 했던 모든 지원이 무용지물임을 입증시켰다. 결국 KEDO와 제네바핵협정의 궁극적 목표인 '북한의 핵무장 억지'라는 목적 달성에 실패함으로서 미국은 경수로 완공시까지 지원하기로 했던 대체 에너지로서 북한이 요구했던 연간 50만톤의 對北중유공급을 중단하였고 한국과 KEDO에 참가한 美, 日, EU 등의 참가국들은 KEDO를 통한 對北지원을 거부하였다. 북한 스스로의 허물로 인해 파괴된 국제적인 對北지원의 손길을 다시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들을다시 얻어내기 위한 보상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선험적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보상안의 최대치는 당연히 핵개발 포기까지 볼 수도 있다고 확신한다. 북한이 4차 6자회담에서 요구하여 삽입한 '9.19공동성명'의 에너지 관련 조항에도 이것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지 않할지에 대해서 명확히 할 수는 없지만, 북한이 6자 회담을 통한 국제 사회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것은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러한 정황적 사실 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1989년 몰타 선언으로 냉전이 종식되고 1990년 韓러수교, 1992년 韓中수교를 통해 여전히 냉전적 분단 상황 고착화를 통한 대내적 정권 유지에 열을 올리는 북한은 더 이상 정치/군사적 의미의 맹방이 사라졌고, 1990년대 초반 북한의 최악의 식량난으로 200만명 이상이 아사한 것으로 추산되는 국가존망의 위기 속에서도 북한이 인민을 강력히 통제하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공포정치로서 국난을 유야무야 넘겼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과 러시아는 심정적으로/경제적으로 북한을 지원하며 자신들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확보에 매진하고 있는 점, 북한이 오랜 시간동안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으며 어떠한 형태의 내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가장 궁극적으로 북한이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北美양자회담의 협상 당사국인 미국이 이라크 사태로 인한 국내적/국외적 역량이 심각하게 쇠락하고 손상되어 정상적인 외교 역량을 본국에서 최우선시 하고 있는 이라크 사태를 좌시하고서 북핵 해결에 매달릴 수 있겠는가 하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불어 남방삼각동맹의 나머지 당사국인 韓日양국 모두 집권 세력이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여 북핵 문제에 대한 다자간 회담에 임하는 자세가 현상 해결에 집착하기보다 자국의 집권정치세력의 정치적 위기를 타계하기 위한 수단적 도구로 전락해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다자간 회담을 통한 북핵 사태 해결 노력이 재개되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 회담에 임하는 협상 당사국들의 입장이 1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점이 이번 협상의 또다른 최대 걸림돌이 아닐까 싶다. 새로이 재개되는, 아니 사실상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실시라는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새로이 '시작되는' 이번 협상은 이전보다 훨씬 더 단호하고 냉철한 입장을 견지한 채 협상에 임해야 한다. 상대는 초라한 무력으로서 더 강한 무력을 가진 자들의 아량과 양보를 요구하는 '폭압적 정권'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폭압적 정권의 생명연장에 도움을 주는 일체의 무조건적인 원조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적 협상 테이블의 기본원칙인 Give & Take를 철저히 지켜 북한이 미국과 다자간 협상 당사국들을 길들이는 지금까지의 형국이 아닌, 협상 테이블의 다자가 북한이라는 폭군을 다스리고 길들이는 형국으로 대동단결하여 문제를 '가장 평화적이고 완전하며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해결방법'으로 마무리 지어져야 한다. 문제는 다자간 회담에서 그러한 일치단결된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한 점이 군부치하의 파벌적 일인독재세습왕조인 북한이 민주정권인 韓美日의 다수를 상대하면서도 보다 유리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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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못이룬 노욕과 구태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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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연합뉴스]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의 정계복귀의 늬앙스를 펼친 한마디에 대해 생각보다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뚜렷한 입장 표명없이 흐리멍텅하지만 뼈가 있는 분위기로 자신이 과거 김대중과 유사한 케이스로 정계 복귀를 노리고 있음을 언론에 흘리자 그의 친정인 한나라당에서 무척 못마땅한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한나라당의 씽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며 연합뉴스/한나라당/국정감사NGO모니터단으로부터 우수국정감사위원으로 선정되며 대외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안고 있는 최구식 의원이 공개적으로 이회창에 정계복귀 움직임에 대한 날카로운 칼날을 세우고서 그의 복귀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회창 측의 뚜렷한 입장 표명은 없었지만, 초선의원의 도발적 발언에 대해 적잖게 불편한 심기를 품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회창의 정계복귀 가능성은 이미 그 발언 자체만으로 강력한 당내/당외 저항을 받을 것이 충분히 예견되어 왔던 사실이다. 이회창은 자신의 정치적 허물에 대해서 뚜렷한 해명없이 권력유지 이외에는 아무 생각없는 단세포 노무현의 가벼운 입이 놀린 '대선자금 1/10발언'이 허구로 증명되면서 암암리에 조용히 묻어가버린 의혹의 진흙탕에 빠진 최악의 패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한나라당에는 이명박/박근혜라는 전체 대선주자 지지율 1,2위를 다투는 강력한 대권도전자들 이외에도 손학규와 원희룡 등 군소후보들까지 말 그대로 후보자 난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미 안정적으로 지지도를 확보한 이명박을 비롯한 여러 후보들에게 '차떼기 부패정당'이라는 불명예의 원흉이 되어버린 이회창의 정계복귀가 달가울 리 없다.

이회창의 이와 같은 정계 복귀 움직임에 이르는 과정은 김대중의 정계복귀와 큰 의미에서 그 궤를 함께 한다. 둘의 다른 점이 있다면 김대중은 자신의 대선 과정과 대선 이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아태재단이라는 사조직을 이끌고서 국외활동을 통해서 전문적이고 조직적으로 국내선전활동을 했었다면 이회창은 대선자금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된 탓에 소극적인 국내활동으로 극히 제한되었고 아태재단에 비해 극히 미비한 조직력을 가진 창사랑 등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활동을 하는데 제한되었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이회창의 정계은퇴 발언은 진실되지 못했던 듯 하다. 그는 김대중을 자신의 역할 모델로서 내정하고 그와 유사한 형태의 정계복귀 시나리오를 꿈꿨던 듯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여러 악재들이 그와 같은 역할 모델을 5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그것을 완료하지 못하게 만든 듯 하다. 그리고 그 증거가 최구식 의원의 날이 바짝 선 반대의사 피력과 동의를 얻지 못하는 국민적 공감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 또한 저 인간이 싫다. 그래서 노무현을 찍었었다.)


이회창의 복귀는 '현상에 대한 오판'이다.
한때는 이회창이 청렴하고 유능한 법관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회창을 청렴 혹은 유능의 아이콘으로 연결시키는 국민은 100에 1명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회창은 이미 그 존재 자체로 2번의 대선 패배의 중심이고 '차떼기 대선자금'(이건 단지 한나라당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이라는 그가 죽을 때까지 결코 씻을 수 없는 오명과 매치된다. 이회창은 이미 정치생명이 끊어진 식물인간과 같은 존재이며 정치적 산송장이다.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박근혜(손학규도 말을 했었지만, 이/박/고 3인 이외의 대선 이후 잊혀질 사람의 말은 무시해도 좋다.)는 '나라의 큰 어른'이라는 내키지 않을 존경을 표시했지만, 이회창의 정계복귀 시도를 반길 가능성은 전혀 없다. 구태를 극복하는데 걸린 4년의 시간을 다시 되돌릴 이유가 전혀 없는 현재의 한나라당이기 때문이다.

이회창의 복귀는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다. 70노인 이회창의 재등장은 마치 늙고 권력욕에 눈먼 비현실적 이상주의자 김대중의 등장에 맞먹는 과거로의 회귀다. 아니 오히려 더 나쁜 현상이 될 것이다. 김대중의 재등장은 한반도 분단과 경제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이 만든 일시적 과오였지만, 이회창의 재등장은 그 자신이 가진 부패와 무능의 재판이다. (이회창의 무능은 한나라당의 우위에서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2번이나 패한 '정치꾼'으로서의 무능이다.) 게다가 김대중, 이회창 모두 자신의 과오 못지 않게 자신의 2세대와 친족들로 인해 자멸했다. 공교롭게도 정치적 은퇴와 재등장 시기에서의 당사자들의 연령도 닮은 꼴이다. 국운을 가지고서 한 번도 모자라 두 번이나 모험을 걸텐가. 국가는 당신 혼자만이 타고 있는 배가 아니다.


지난 번 조순형이 정계 복귀를 했을 때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조순형이 주도한 탄핵이 당시에는 국민들의 단견에 의해 정당성을 얻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그의 명예가 복권되었음을 인정하고 그가 그대로 정치적으로 '아름다운 은퇴'를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내용이었다. 이번 이회창의 복귀 시도에 대해서는 좀 더 다른 내용의 은퇴를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것은 '아름다운 은퇴'가 아닌, '더 큰 비난을 받지 않고 후배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한 은퇴'를 하지 못하는 노욕(老慾)에 대한 비난이 될 것이다. 앉을 곳과 누울 곳을 가릴 수 있는 안목이 아직 부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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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는 진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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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연합뉴스]

이 땅에서 보수세력/수구세력이라고 매도되던 자들이 극단적 反美시위를 펼치는 조직들을 향해 감정적 폭언을 내뱉을 때 남파간첩/공작원, 빨갱이 등의 말을 한다. 물론 시작은 '미제국주의의 앞잡이'라고 비난하는 그들에게 있지만, 공산주의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뒷담화는 엄청나게 까놓고서 상대가 복수의 칼을 뽑아들면 그제서야 '피해자론'을 내세워 오래 전부터 준비된 대응논리를 펼친다. (마샬플랜과 COMECOM의 관계가 그러했고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그러했다. 적반하장과 구밀복검이라는 사자성어는 근현대사에서 바로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어찌되었거나 이미 그와 같은 논쟁은 무의미해졌다. 그들이 진짜 빨갱이, 남파간첩임이 밝혀졌으니까 말이다.

역대 그 어느 정권보다도 가장 親北的이고 反美的인 이 정권에서 본격적으로 궤도정치권에까지 침투한 대규모 간첩집단(끝끝내 '단'은 아니라고, 사전적 의미를 축소하려는 노력이 애처롭기까지 하다.)의 준동이 폭로되었고 증명되었다. 김정일 괴뢰세습왕조의 저열하고 추악한 작태가 국정원의 간첩활동 수사를 남북교류에 장애가 된다고 방해했던 김대중 정권 이후에까지도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음을 적나라하게 만천하에 폭로된 것이다.

누구보다도 '이 민족'이 아닌 '이 나라'를 사랑해온 진영의 참된 승리의 북소리가 이 親北的정권에서마저도 울려 퍼지는 듯 하다. 더구나 다른 곳도 아니고 가장 親北的이고 가장 보수진영을 향해 미제국주의의 앞잡이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추악한 수작을 부려온 민주노동당 무리에서 그 뿌리가 뽑혀져 나옴에 대해서 이 땅의 깊고 어두운 곳에 파묻히며 매몰되어야 했던 이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진실이 뒤늦게 빛을 보는 듯하여 감회가 더욱 남다르다. 화염병과 쇠파이프, 죽창으로 이 땅의 인권과 소수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해온 폭력배들을 지지하는 그들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이력서라 여겨진다.

입만 때면 '민족'을 부르짖으면서도 그들이 노래하는 민족이 함께 거처하는 한반도의 번영과 안보를 논하는 국제회의석상에서는 언제나 그들이 주장하는 '우리민족끼리'인 한국을 배제하고 미제국주의자들하고만 얘기하려고만 하는 김정일 괴뢰세습왕조의 졸렬함으로도 모자라 한국 내부에서는 이와 같은 짓을 6.15남북공동성명(실제 내용은 아무 것도 없는 74남북공동선언처럼 선언적 의미일 뿐이지만.)과 같은 평화공세를 펼치면서도 계속했다는 것이 국제정세가 변해도 북한괴뢰세습왕조는 변하지 않고, 구조적으로 변할 수 없다는 자명한 진리(?)를 재차 깨닫게 하였다. 한국의 국제적 고립이라는 상당히 비싼 댓가를 치뤄야 했지만, 늦게나마 깨닫게 되어 유감스러우면서도 다행스럽다.

어제 있었던 6.15 공동선언실천 청년학생연대, 남북 공동선언실천연대,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숭실대 총학생회가 주최로 열린 '선군정치 토론회'에서 간첩혐의로 구속기소된 최기영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의 처남인 김삼석(93년 간첩혐의로 징역 4년형)이라는 자는 선군정치를 성군정치로 비유하며 북핵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 체제의 우월성이 증명되었다는 식으로 강연을 하다가 세종연구소 장삼석 연구원과 북한군 출신 탈북자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 말도 안되는 억지주장으로 어린 학생들의 눈과 귀를 홀리고 反韓反美의 투사를 양성하기 위한 어두운 흉계가 끊임없이 암약하고 있는 것이다. 前북한최고인민회의 의장이자 김일성 유일체제를 만든 주체사상의 아버지인 귀순한 황장엽이 밝힌 남한 내 5만 간첩활동설과 수많은 탈북자들이 증언하는 북한괴뢰의 실체를 다시 한 번 귀담아 듣고 이 민족은 못지키더라도 '이 나라'는 지킬 수 있는 효과적이고 현명한 작업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내가 존재하고 네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 나라가 있고나서 이 민족이 있는 것이다. 무비판적인 통일열병과 선전/선동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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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지푸라기잡기 실패

[Photo : AFP연합]

존 볼튼이 처음 美UN대사가 되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 때 내가 이 블로그에서 글을 썼었는지 모르겠지만, 주변인들과 존 볼튼의 당시 인사와 관련해서 부시의 대외정책 노선이 본격적으로 변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며 존 볼튼은 美UN대사로 '좌천'된 것임을 강조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순혈 신보수주의(Neo-Consavertism, '순혈'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네오콘'이라 부르는 자들은 사실 이미 네오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네오콘의 핵심 의제들은 美정계 전체에서 보편적인 성향이 되었다.)의 핵심 이론 중 하나가 바로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역할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다. UN은 바로 미국이 그들의 의지에 의해서 만든 국제기구의 총본산인 동시에 시대의 변화에 의해 미국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된 거추장스러운 존재다. 그런 UN에 존 볼튼을 美UN대사로 임명한 것은 당시 볼튼의 언사와 자주 마찰을 일으키던 부시에게 좌천의 의미가 짙게 깔린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존 볼튼은 UN대사로 있으면서도 그 호전적 성향을 버리지 못했지만, 실제로 UN에서 볼튼의 의견이 수용된 사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핵 실험 강행 이전까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결론적으로 北의 멍청함으로 인해, 신보수주의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조차도 궤변론자로 여기던 볼튼의 엉터리 주장들이 옳은 꼴이 되어 버렸다.)


그런 존 볼튼의 UN대사 재임명에 부시 대통령은 의회와의 첨예한 대립마저 불사하는 나름의 강수를 두었다. 사고뭉치라고 폄하하며 미국이 가장 무기력한 존재가 된 UN총회장에 싸움닭을 처박아서 분기(憤氣)를 삭히라고 고행의 길을 보냈던 그가, 도널드 럼즈펠드를 쳐낸 상황에서 구석의 한직에 처박아 두었던 볼튼마저 쳐낼 수는 없다는 일종의 위기의식 혹은 기존의 노선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승부욕이 발동된 것이라 판단된다. 그러한 승부를 시도한 까닭은 '21C의 미국'에게 가장 의미없는 직책 중 하나인 'UN대사'라고 하는 특수성에 기대어 의회에게 일종의 양보 혹은 무관심을 유도하여 볼튼을 재임명함으로서 기존의 대외정책노선 수호의 상징적 이정표를 찍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나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결과론적으로 실패했다. 존 볼튼과 함께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조지 W. 부시는 볼튼이 재임명될 자격을 갖추었음을 재차 강조하면서도 그의 사퇴를 수용하는 패장의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 이라크 문제로 악화될대로 악화되어 버리고 안보적 안건에 대한 공화당의 절대우위마저 민주당과 나눠가져버린 상황에서 일어난 중간선거의 참패는 2년도 넘게 임기가 남은 부시가 허수아비가 되었음을 전 세계에 자폭하게끔 만들었다. '신보수주의의 시대'는 저물지 않았을지 몰라도, 부시의 시대는 명백히 서산에 저물어가는 태양임을 쓰디쓰게 인정하는 인터뷰를 하도록 만든 것이다. 존 볼튼의 '두번째 좌천'은 매파 성향의 네오콘들의 재기가 쉽지 않음을 분명히 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심지어 AEI(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前대표이자 前美국가안보자문위원이기도 했던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강력한 네오콘이었던  Richard Perle(악의 종식, An End to Evil: How to Win the War on Terror의 공동저자)마저 부시 행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며 부시 행정부 내부의 '매파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자들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상황이 이즈음까지 이르면 한 번쯤 생각해 봐야할 문제가 있다. "네오콘과 신보수주의 이론은 실패한 사상과 이념인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가 정답에 가깝다.

美정계와 미국민들의 의식체계는 원래 보수적 성향이 보편적으로 인식되어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의 미국은 과거 그들의 근현대사 어느 시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색되고 격화된 보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그리고 이와 같은 보수적 경향의 보편화는 서방선진국 지역의 보편적 추세로서 확산되고 있다.) 여전히 미국을 요새화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국토안보부는 미국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소모하는 부서이자 상위 랭킹의 부처로서 자리매김하고 있고, 개인의 사생활을 심각한 수준으로까지 침해할 수 있는 애국법(Patriot Act)은 계속 법의 시효가 연장/개정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프라이버시를 중시하고 가장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 중 하나인 미국의 국민들을 옥죄는데 망설임이 없다. 더욱이 여전히 많은 미국민들은 비이성적인 극단 무슬림 조직의 테러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기꺼이 자신들의 권리와 프라이버시를 일부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비치고 있다. 입법부에서도 공화당과 차별화된 노선을 걸어왔던 민주당 의원들의 절반 이상이 '네오뎀(Neo-Dem)'이라는 신조어로 분류되면서 이념적으로 정책적으로 거의 공화당의 신보수주의 노선과 차별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즉, 간판은 바뀌었는데 내용물이 바뀐 것은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때문에 일련의 부시 행정부의 좌초가 전향적인 미국의 대외정책 노선의 변화로 연결될 것이라고 하는 기대는 지극히 단순하고 편향적인 사고에서 바탕된 견해라고 본다. 지금의 미국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미국적 예외주의'라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가지는 특수한 정치사회환경적 요인을 지지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한국의 자칭 진보세력이라는 자들의 표현을 빌리면 온 나라가 보수꼴통(?)이 되어서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러한 상황을 3년쯤 전에 FPIP(Forein Policy in Focus)의 선임연구원 존 페퍼가 한국언론과 했던 인터뷰에서 예견했던 적이 있다. 물리적으로는 네오콘이 사라질지 몰라도, 사상적으로 네오콘의 사상과 이념은 그 파괴적 호소력으로 인해 미국 정계와 사회에 강하게 뿌리 박혔고, 그 촉매 역할을 한 것은 본의 아니게 그들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였던 셈이다.

이미 물리적으로 네오콘은 거세된 것이나 다름없다. 부시 1기 시절 순혈 네오콘에 가까웠던 행정부의 요직에 앉았던 자들은 이미 해임되거나 은퇴, 좌천되었고(대표적으로 북한을 공습하여 김정일을 제거하고 핵시설을 제거해야 한다고 공식기자회견을 하기도 했었고, 이라크를 아랍 최초의 민주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던 순혈 네오콘 폴 울포비츠 前美국방부 부장관은 현재 그의 커리어와 전혀 무관한 세계은행 총재로 취임해 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네오콘의 수장(?)이라 불리는 딕 체니는 원래 신보수주의 사상과 전혀 거리가 먼 기업가(미국의 이라크 전쟁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본 헬리버튼社의 前CEO이며 헬리버튼社의 대주주 중 한 명이다. 동시에 美국방부의 LOGCAP프로젝트의 독점사업자인 KBR-헬리버튼의 자회사-의 계약에도 깊숙이 개입하였다.) 출신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크리스토퍼 힐(前駐韓美대사) 같은 사람은 애초에 네오콘과는 거리가 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은 부시 행정부의 노선이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대체로 예상한다. 그 이유는 위와 같은 까닭이다.


대통령으로서의 부시는 지푸라기를 잡는데 실패했다. 부시의 몰락은 모두의 예상을 넘어 기정사실화되었다. 부시의 레임덕은 노무현의 5.7% 지지율만큼이나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1기 부시행정부가 천명했던 이념과 사상들은 그 강력한 호소력과 파괴적 테러행위를 통해서 그들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되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견해처럼 21C의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신보수주의적 사상이 '정답'이 아닐지는 몰라도(애초에 사회과학에서 정답을 찾는 행위 자체가 넌센스다.) '최선'임을 미국인들은 공감하고 있다. 우리의 대외정책은 이것에 초점을 맞추어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상대는 변화하지 않는데, 우리가 먼저 몸이 달아 올라 판을 벌리는 것은 '약소국 외교'의 기본조차 거스르는 행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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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번히 선전/선동에 휘둘리는 가련한 운명의 중남미 자원부국들

[Photo : 한겨레 신문]

군사 쿠데타 시도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오사마 빈 라덴의 9.11테러와 아들 부시의 이라크 전쟁이 가져다 준 고유가의 돈세례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베네수엘라를 넘어 세계 최고의 '난봉꾼' 우고 차베스가 3선 대통령이 되었다.

서유럽 산업국가들의 파멸적 자폭행위였던 1차 대전이 가져다준 부와 기회를 그들 자신들의 부패와 무능으로 허무하게 허공에 날려버린 중남미 각국들의 기구한 운명을 끝끝내 강대국들과 그들이 만든 세계체제의 구조적 속박 때문이라고 남탓 하기에 바쁜 구조주의자들의 자궁이기에 이런 전근대적 난봉꾼이 국민들의 지지 속에서 당당하게 수많은 국제적 무례와 망발을 쏟아내면서도 14년간 3선씩이나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못배우고 무식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며 고유가가 가져다준 풍만한 국고를 무계획적으로 탕진하고 있는 그의 근시안적 인기영합적 행위를 파악하지 못함일까.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걸맞는 정부를 가질 뿐이다. 현명한 지식인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 지식이 보편성을 가지지 못하는 이상 아무리 혜안을 가진 이들이 많아도 그 혜안을 지지해줄 사람이 없는 국가와 국민이라면 소용없다.


反美의 투사役을 자처하고 있는 우고 차베스에게 지속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국내의 모 언론사도 결국 우고 차베스 인기의 근원을 석유로 보았다. (동시에 석유가 그의 약점임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고 차베스 정권은 또 한 번 수없이 많았던 중남미 자원부국들의 몰락의 길을 되풀이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유가석유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남미 에너지 부국들의 되풀이되는 몰락은 우고 차베스가 집권하고 실시한 정책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고유가에 바탕한 수익률에 대한 자신감으로 서방의 석유 5대 수퍼메이저들과 독립계 석유업체들을 몰아낸다.(역사적으로 중남미 자원부국들은 서방의 MNCs를 매우 적대적인 방법으로 몰아냈었고 차베스 또한 거의 약탈에 가까운 만행을 자행했다.) 그리고 석유수익을 바탕으로 서방의 자본을 끌어와서 세운 국영회사를 통해 석유자원의 수익을 독점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주머니에 챙기면서 동시에 국가 재정 풍족하게 만든다. 풍족한 재정을 바탕으로 사회기반조성사업과 사회복지 지향의 정책들을 남발한다.(문제는 그 복지정책도 제대로 배분되지 않는 문제가 이미 국내공영방송을 통해서 지적된 바 있다.)

이후 고유가 신화가 무너지고 석유가격이 제 자리를 뒤찾게 되면 고유가를 바탕으로 한 모든 재정정책은 그 힘을 잃고 국가 재정악화로 귀결된다. 국민대중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아서 '이미 내 것이 된 정책'들은 쉽사리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 (오늘날의 민노총의 무차별적이고 파괴적인 폭력시위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집권한 정권도 자신들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의 원천인 그러한 정책들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많은 자원부국들은 외채를 늘이는 것으로 응급처치를 했고 이것은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된다. 게다가 이미 베네수엘라는 일반석유(Conventional Oil)가 생산정점을 지났다. 일반석유가 고갈되어가면서 생기는 생산량 공백은 비일반석유(Unconventional Oil)로 채워넣고 있는 것이 베네수엘라 석유자원의 현실이다. 베네수엘라 생존의 근간이었던 석유자원마저도 그 가채굴 기한이 시한부 인생처럼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유가라는 것은 국제정치적인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한 번 안정세에 접어들면 쉽사리 개별국가의 노력만으로 그 현상이 바뀌지 않고 함부로 바꿀 수도 없다. 악화된 재정과 불어나는 외채는 모라토리엄으로 이어지고 反정부세력의 득세(소위 쿠데타 혹은 민선정권이양)로 이어진다. 정부가 바뀌든 바뀌지 않든 국영회사가 빌린 외채의 이자를 충당하는 기반인 고유가가 무너지면 낮은 국가신용도로 인해 추가적인 외자도입도 원활하기 못하고 결국 다시 국제석유자본들에게 손을 벌린다. 하지만 이미 적대적 분위기에서 산유국들로부터 퇴출당한 국제석유자본 카르텔은 결코 산유국에게 우호적인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기존보다 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IMF위기 시절 외자도입을 위한 한국정부의 굴욕적 계약들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 과정에서 또다시 가난과 저발전의 굴레는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되는 역사의 쳇바퀴가 되는 것이며 이것이 한때 세계 경제의 큰손들로 부상했었고 중동위기 등으로 재기의 기회를 가졌었던 중남미 자원부국들이 그들의 무능과 무지, 부패라는 숙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저발전과 가난의 굴레에 얽혀 그 과오를 국제경제체제에게 원죄를 뒤집어 씌움으로서 면죄부를 받고자 하는 중남미 저발전의 '실체 중 하나'다.


'反美와 서방자본의 투사'로서 중남미 사회에서 급부상한 난봉꾼 우고 차베스는 기본적으로 미국과 서방선진국들을 적성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이러한 선전과 선동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 실패와 대북핵억지력 확보 실패, 흔들리는 아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와 함께 결정적으로 '고유가'를 등에 업고 자신감을 회복한 '미국과 서방선진국들 때문에 자신들이 저발전에 빠져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많은 자원부국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3선에 성공하였다. 자신의 공적과 국내적 성공에 근거하지 않은 고유가와 미국의 정책 실패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장기집권하고 있는 정권은 그 불안정성 만큼이나 정권의 지지 기반이 언제든지 뒤흔들릴 수 있다는 리스크를 감내해야 한다. 또 그 리스크를 감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대중친화적인 선심성 공약을 남발해야 하고 그것에 수없이 길들여지고 낮은 교육 수준으로 정치적 이해도가 낮은 국민들에게 고통분담 혹은 정권에 대한 흔들림없는 지지를 약조해 달라고 구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안건이다.

결국 고유가와 함께 그 목소리가 국제적으로 탄력을 받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차베스의 수명은 고유가가 붕괴됨과 함께 그 가련한 불꽃이 사그라들 것이 틀림없다.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가 궁극적으로 철지난 사회주의 혁명을 표방하고 있는 이상, 그의 몰락은 필연이며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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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줄 모르는 몰이해의 불길들

[항구에 쌓인 컨테이너들. Photo : 연합뉴스]

한국의 시위문화는 아주 더럽고 유치하고 후진적이다. 입으로만 선진국이라고 자화자찬하며 스스로를 칭송하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 보면 아주 유치하고 폐쇄적이고 후진적인 부분이 너무 많다. 민노총이 더러운 폭력시위로 자신들을 탄압한다는 언론을 통해서 자신들의 투쟁을 성전(聖戰)으로 사탕발림을 하자, 한노총이 여론의 눈치를 파악하고 재빨리 입장을 바꿔서 3일 뒤에 평화시위를 하면서 "민노총은 수구다"라고 베짱을 부린다. 민노총의 시위가 그런 식으로 여론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치지 않았다면 똑같이 죽창과 쇠파이프를 휘둘렀을 녀석들이 정치꾼들마냥 기민하게 여론의 방향에 맞춰서 딱 한 번 입장을 바꿔놓고서 여론과 시대의 대변자를 자처한다.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의 시위에서 아직도 죽창과 쇠파이프와 화염병이 날아다니니 참으로 웃기는 노릇이다.

추한 꼴은 이것만이 아니다. 한국적(동양적) 가치 탓인지는 몰라도 이놈의 노조(비단 노조 뿐만 아니지만, 여기서는 노조에 국한하고자 한다.)놈들은 저기 청와대의 누구처럼 나만이 옳고 나만이 정의다라는 선민의식에 휩싸여 있는 듯 하다. 그것은 마치 이슬람 테러과격분자들의 무차별적이고 비이성적인 자폭테러범들의 마인드와 유사한 듯하다. 그래서 자신들의 성전에 '참전'하지 않는 다른 선량한 동료(?)들을 '배신자'(왜 그것이 배신인지는 누구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로 규정하고 그 배신행위에 대해 '누구에게도 부여 받지 않은 '오직 자신들 스스로 자신들에게 부여한 권리'에 의해서 응징을 가한다.

단기간에 연쇄적으로 발생한 민노총 산하 화물연대의 파업에 참가를 거부하고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성실히 자신들의 자리에서 생활전선을 지키는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 것이 그것이다. 김정일 괴뢰세습왕조의 대남선전을 읊어대는 민노총 산하 화물연대의 탈, 불법 파업에 참가하지 않고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파괴하려는 초법적 행위들이 자의적 권한에 의해서 무자비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생존권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비타협적이고 악의적이며 폭력적인 자신들의 행태에 대한 반발이 해마다 노조결성율을 떨어뜨리고 있음을 끝끝내 인정하지 못하는 골수꼴통분자들과 그들에게 마지못해 이끌리는 선량한 우리의 아버지들이 우리의 아들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지며 폭언을 내뱉고 목숨을 위협하게 한다. 언론의 탄압을 받고 있다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친위언론을 통해서 자신들의 행동을 미화하고 왜곡하여 포털을 통해 젊은 세대들의 사상과 의식을 세뇌시키는데 누구보다 앞장선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표리부동하고 왜곡과 모순의 사회를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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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사건들

['뉴라이트' 배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사건들이 바로 사회주의 독재정권에서의 자아비판에서나 있을 법한 일종의 사상검증적 접근이다. 나 또한 이것을 즐긴다까지는 아니어도 종종 이용하는 편이며 이러한 행위는 특정 개인과 집단의 성향과 노선을 파악하는데 거시적인 측면에서 꽤나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 사상검증 이후의 개인, 조직에 대한 판단작업에서 그러한 약간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감내하는 노력의 결과물을 어느 정도 제공한다.

이번에 또다시 사상검증의 대상이 된 조직은 뉴라이트다. 합리적 보수이니, 신보수이니 말을 하고 있지만, 나는 '보수적이다'라는 표현에 이념과 논리적 접근을 가하여 이상적, 논리적 신념을 만들어 대중을 선동하고 육성하는데 열중하는 소위 진보좌파라고 불리는 세력에 대한 어설픈 대응으로 낮게 평가하는지라 그들의 활동목표 자체를 별로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자칭 신보수의 '보수에 대한 지침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 중 하나가 자칭 진보좌파들이 저지르는 여러 '사상검증성 갈등'처럼 문제가 커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뉴라이트의 교과서 편찬 관련자들이 하고 싶었던 말은 '성공한 반란은 혁명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라는 인류사 속에서 경험적으로 우러나온 보편적 접근을 21C의 수준급 산업국가인 한국에서 인정받길 바랬나 보다.

적어도 인류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성공한 반란은 모두 하나의 왕조, 정권으로서 인정 받아 왔고 역사책의 한페이지씩을 차지하고 있다. 분명 그들의 시각에서 그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성공한 민중반란이었던 4.19는 4.19 혁명으로서 존재하고 있지만, 실패한 민중반란이었던 5.18은 혁명이 아니라 민주화운동/항쟁 등으로 다소 격이 떨어지는 표현을 쓴다. 여기에 좀 더 역사책에서 나올 법한 사례를 끌어들여 보자면, 천하만민이 평등하니 인간을 억압하는 신분제는 부당하다고 하는 오늘날의 인간평등 혹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주장하고 난을 일으키려 했던 최충헌의 노비 만적의 반란은 실패한 까닭에 지금도 '만적의 난'이라 불리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하다. 대륙수복의 웅대한 꿈(오늘날의 이 정권이 좋아하는 자주적 기치)을 꾸며 서경천도를 위해 반란을 일으켰던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지금도 '묘청의 난'일 뿐이다. 가장 극적인 예로서 구설되고 있는 프랑스혁명 과정에 있었던 베르사유 궁전 왕궁호위대와 루이 16세의 대화에서 '반란인가 혁명인가' 하는 논쟁(?)도 결국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 동안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가치관에 의해서 쓰여졌다. 때문에 프랑스혁명은 '혁명'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고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단순한 반란이 아닌 민족적 정통성을 가지는 (故조선과는 다른)이성계의 조선을 통해 정통성을 얻을 수 있었다. 박정희 군부의 반란행위도 그들의 직계들이 한국을 통치할 때는 군사혁명이 되었지만, 그들의 적성 세력이었던 자들이 집권하자 한순간에 516군사반란 혹은 군사정변(왠지 나는 '정변'이라고 하면 느낌이 좀 이상하다.)으로 격하되었다.

단지 그 뿐이다. 나는 그것을 말하고 싶다. 단지 그들이 승리자이기 때문에 군부가 승리자일 때 자신들의 역할을 자신들이 재단했듯이, 지금은 그들에 맞춰서 재단되었을 뿐임을 이야기하고 싶다. 군부가 승리했을 때는 국민소득 80달러와 실업률 30%이상에 허덕이며 높은 문맹의 무지몽매한 국민들로 넘쳐나는 그런 대한민국에서 경제발전 하나에 모든 것을 쏟아부터 세계에서 유일한 경제발전에 성공한 군사정권이라는 이정표로 자신들의 정치적/사회적 치부를 가리려 했던 것처럼 국민소득 1만 4천 달러에 문자해독률 세계 5위권에 민주주의적 가치가 주입된 대학교육을 수료한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21C의 한국에서 과거의 가치와 평판은 단지 '유행이 지나간 옛노래'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그것을 억지로 다시 유행시키려고 이수만급 매니지먼트社를 고용한다고 해서 다시 유행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노력 자체가 그나마 그 때 그 시절 그들이 쌓아올린 한 분야의 금자탑이 가지는 가치를 퇴색시키고 평가절하하게 만들 뿐이다. 자기 자신을 어릿광대로 만드는 멍청하고 아둔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보수적이다'라는 가치는 결코 좌파적 논리처럼 정형화되기 힘든 특수성이 있다. 왜냐하면 진보적/좌파적/보수적/우파적/무정부적 가치관을 가진 모든 종류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두 개 이상의 가치관이 혼재된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단지 '보수적이다'라고 하는 것이 그들 속에서 군계일학의 우월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가장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고 있고 결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모든 인간들이 마음 한켠에 추종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욕구충족이라는 가치들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유토피아를 꿈꾸는 진보적/좌파적 논리보다 강한 대중적 파괴력을 가질 수 없다. 모두가 그것을 원하면서도 그것을 밝히기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들의 추악함을 스스로 거세하기 위한 몸부림인 (특정한)종교의 가치관을 도입하고 그것을 내재화하려는 '보수적이다'라는 가치관의 일부에 속하는 어느 집단의 시도 자체가 '선망의 대상은 아니지만, 가장 보편적인 자신'을 왜곡시키고 더 우스꽝스럽고 보편적이지 않은 최홍만의 몸에 걸친 이효리의 탱크탑 같은 꼴을 만들어 버린다. 보수적이다 라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일부를 표방하는 한 조직의 과거왜곡 미화작업은 그래서 더 우스꽝스럽다. 그것은 하나의 대상을 두고서 2개 이상의 평가를 용인하지 못하는 옹졸한 사회문화를 가진 한국적 특수성을 경험적으로 깨달았다면 단지 시간의 흐름 속에 다양한 평가가 갈등되고 변화/진화하여 내려질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야 했다.


한국의 '보수적이다'라는 스펙트럼에 속한 사람들은 기회이자 위기를 맞았다. 자신들 이외에는 위력적인 대안이 없던 시대에서 벗어나 심지어 자신들을 꺾기조차 하는 새로운 대안을 만났기 때문이다.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은 자기발전의 동력이고 그러한 동력의 창출은 사회 발전의 동력이라는 순기능으로 작용할 때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이해와 관용이 없거나 부족한 한국적 토양에서 이러한 강력한 두 세력의 빅뱅은 사회의 무한분열과 끝없는 갈등만을 초래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상검증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서 21C초반을 살고 있는 1960년대와는 다른 이 정도 수준의 사고체계를 가진 한국인들의 의식세계를 가볍게 흔들어 댄다. 서로 자신만이 정의라고 주장하며. 한국은 아직도 '이러하다'라고 형용할 수 없는 청소년과 같은 질풍노도의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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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종료 선언 발언

참으로 의외이면서도 놀라운 발언이 공개되었다. 그것은 제목에 있는 것처럼 미국 백악관 토니 스노 대변인의 입에서 나온 북핵 先포기가 전제된 상태에서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료를 선언할 수도 있다는 美의 제의였다. 이미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는 의견이 재야에서 제기된 적은 있었지만, 북한이 유일한 '협상 상대국'이자 유일무이한 '교전당사국'으로 여기고 있는 美의 핵심 당직자의 입에서 공개적으로 흘러나온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교전당사국 문제는 한국전쟁 당시 美中北간의 휴전협상이 제기되어 협상이 진행될 당시 韓이승만 대통령은 종전/휴전협정을 거부하고 북진통일을 美측에 강력히 요구하였다. 2차 대전의 후유증이 완치되지도 않은 美의 상황과 공산당 혁명이 완성된지 1년만에 전쟁에 참전한 중국공산당군에게에서 국지전이자 장기전이 된 한국전쟁은 크나 큰 부담이었으며 모스크바의 위성국이나 다름없던 김일성 치하의 북한은 중소의 휴전의지를 받아들여 협상에 들어간다. 결론적으로 휴전이 확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거제도 인민군 포로소용소의 포로들을 석방하며 대국민포고문으로 포로들을 한국민으로 대우할 것을 요청하는 극단적 선택을 내리고 이후 美의 한국 달래기의 일환으로 韓美상호방위조약과 원조계획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휴전협정에서 이승만은 휴전을 거부하며 협정서에 서명하길 거부하였고 결국 美中北 3국만이 서명한 휴전협정서가 조인되었다. 이를 빌미로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한 번도 한국을 국제적인 공식석상에서 협상 당사국으로 인정한 적이 없으며 최초로 한국과 북한이 국제회의석에서 얼굴을 마주대한 것이 이번 6자 회담이다. 6자 회담 안에서도 북한은 꾸준히 北美양자회담만을 요구하며 韓을 협상대상국에서 배제하고 있다.


휴전상태를 정전협정으로 교체하는 것에 대해서 국내외에서 다양한 견해가 피력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반도에서 전면적인 충돌이 오랫동안 휴지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교체 자체의 의미를 최소화하려는 시각에서부터 정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이나 미국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으며 미국에게 또다른 의미에서 대북압박 카드로서 새로운 칼자루를 쥐어주게 될 것이라는 시각까지 견해 피력의 스펙트럼은 꽤 넓은 편이다.

실제로 미국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꾼다고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북한공산당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습왕조에 걸쳐 요구해온 핵심목표는 결코 완수되지 않을 것이다. 駐韓美軍은 이미 GDPR(Global Defense Posture Review)플랜에 의해서 신속기동군화 작업의 막바지에 접어든 상태이고 더 이상 대북억지력만을 위한 지역주둔군의 역할만을 수행하지 않는다. 이것은 한국이 맺은 다자간 안보협력체의 하나로서 北이 맺고 있는 분쟁 발생시 비분쟁발생국의 자동개입을 명시하고 있는 '朝中수호조약'보다 오히려 그 레벨이 몇 단계 낮은 낮은 레벨의 동맹조약을 수행하기 위한 일종의 주둔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잠재적 적성국은 북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가 駐日美軍의 보조적 역할로 격하된 상황에서 북한의 그와 같은 요구는 손쉽게 묵살 혹은 변호될 것이다.

[APEC회담이 진행중인 하노이에서 만난 노무현과 조지 W.부시. 그들의 의식 공유는 어느 수준까지이며 그들의 정책 공조는 어디까지인가? 노무현과 부시는 서로를 친구로서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동맹국의 탈을 쓴 꼴통쯤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Photo : 연합]


어젯밤에 처음 이 '한국전쟁 종료선언'이라는 파격적인 외교적 카드를 접하고 나서 나는 미국이 現정권의 정치적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유사시 한반도와 동북아 동맹국에 대한 방위조약 준수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극단적인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하룻밤동안 생각하면서 그와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주한미군은 지속적으로 어떠한 형태로든지 간에 한반도에 주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한미군은 상호방위조약의 의무준수가 아닌 한국 내에 투자되어 있는 미국자본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한반도의 유사상황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억지력으로서 존재할 것이다. 결정적으로 김정일 왕조와 북한 군부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한반도에서 적대적 행위 발생이 자신들의 잠재적 적성국(평화협정으로 변환 이후의 미국과 일본 등)으로 존재하는 국가들의 북폭을 야기할 소지가 충분하며 그것이 자신들의 멸망을 결정지을 것임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의 역할을 '지금까지처럼' 완전히 객체로서 돌려 놓고서 시나리오를 구성하더라도 평화협정 이후의 한반도 유사상황 발생은 이와 유사한 패턴의 시나리오로 억지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한국 정부는 미국 측의 이런 전향적인(실질적인 알맹이는 없을지도 모르는?) 입장 변화에 대해서 한국 측의 끈질긴 설득과 외교적 접촉의 산물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한마디로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떠난 자의 실언이며 韓이 전격적인 대북접근법의 변화가 없고 美日과의 외교적 공조 노력없이 親北的인 中과의 외교적 접촉에 열을 올리는 이상 앞으로도 韓/北 관계에서 韓이 北에 주도적인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하여 밑도 끝도 없는 '北核의 中윤허설'이라는 음모론을 쏟아내고 떠난 프랑스의 정치평론가 '기 소르망'의 공상이 현실일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될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 이루어졌던 對北제재조치를 조금씩 조용히 수위를 조절하거나 해제하고 있으며 이는 초기에 대노(大怒)했던 중국의 입장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빠른 조치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외교 정책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서 접근해야 하며 다양한 이념과 의식의 스펙트럼을 가진 국내적/국외적 입장을 초월적으로 수렴한 가운데에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지금의 노정권처럼 특정 스펙트럼을 완전히 배제한 채, 자신의 획일적 코드만으로 정책을 확정, 추진하는 단세포적 접근법은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한 것이 좋다면 단순하게 살아도 좋다. 하지만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은 복잡한 사고와 접근법을 하는 사람들이며 단순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복잡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지배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내 삶의 철학인 동시에 세상의 철학이기도 하다. 이 노정권은 '중국은 우리의 친구이고 미국(부시)은 우리의 잠재적 적성국'이라는 사고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거기에서부터 틀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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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나치강제노동 배상 '마침표'

[사열하는 히틀러. 사진출처 : 불명]

인류의 수많은 전쟁사 중에서도 당시 가장 선진화된 지역에서 발생하여 가장 많은 희생자를 쏟아낸 2차 세대전의 핵심이었던 독일 나치스의 강제징용에 대한 독일 정부의 배상 계획이 사실상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2차 대전의 추축국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사죄의 길을 걸었고 美마샬 플랜의 엄청난 자본의 폭격 아래 빠른 전후 복구를 이루어낸 후,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속적으로 배상금과 사후지원책으로서 부담해온 독일에게 그간 소홀했던 非유대인에 대한 배상이라는 짐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2차 대전 이후 美獨간의 밀월관계와 미국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유대계 집권층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독일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마지 못해하는 사과조차도 하지 않는 우리 이웃의 '섬나라 왜국'의 과거와 오늘을 되돌아 볼 때, 독일의 어두운 과거와 이별하기 위한 노력은 실로 가상하기까지 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중딩이던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 이후 일본의 親일왕계 과격분자에 의해 권총저격을 받은 바 있다.

사실 독일 정부가 외국인 강제징용자에 대한 배상금액이란 것은 정말 푼돈이다. 노예 노동 피해자는 1인당 최대 7669 유로(약 920만원), 공장 강제노동 피해자는 2556 유로(약 310만원), 농장 강제노동 피해자는 1022 유로(약 123만원)의 배상이 이뤄졌다. EU역내 국가들의 높은 물가(내가 가장 친근한 음반의 예를 들면 북미에서는 CD 1장에 $10~12정도에 불과하지만, EU지역에서는 CD한 장에 17~18000원 정도 한다.) 수준을 감안하면 정말 한 두 달 쓰면 끝날 돈이지만, 이와 같은 배상을 국가와 기업이 함께 책임을 지고 기금을 조성했다는 상징성 자체에 큰 의미를 둔다. 또 개인 배상은 소액이지만, 전체 배상액은 '6조원'(한국 국가예산의 2.5% 수준이다.) 규모로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2006년 9월 29일 국제면에서는 작은 의미가 있는 기사가 하나 떴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법원은 인터넷을 통해서 최근 독일NPD당과 같은 사례에서 보듯이 새롭게 준동하는 네오나치즘에 대한 반대의 의미를 가진 철십자 문양의 목걸이를 판매하던 30대 업자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고 벌금형에 처했다. 전쟁물 매니아들 사이에서 비정상적으로 추종되고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2차 대전 독일군의 당대 첨단 무기들과 상식을 초월하는 장비들에 대한 그런 향수를 자극해서 돈벌이로 쓰기 위한 '하켄크로이츠' 판매 행위였겠지만, 어떠한 형식과 절차를 거치던지 간에 親나치이든 反나치이든 하켄크로이츠 자체를 다시는 독일땅에서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독일 당국의 강력한 의지를 재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美올랜도 지역의 反나치즘 시위. 역시 사진출처 불명-오랜 시간동안 내 사이월드 프로필사진]


세계가 나치스의 만행과 오류를 기억하는 이상, 나치스의 재집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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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선거 다음은 무엇이 나올까?

- 제목은 본문과 별 상관이 없다. 글도 3일에 걸쳐서 찔끔찔끔 써서 별로 일관성이 없다. 그냥 쓴게 아까워서 공개하기는 하는데, 역시 이런 정치적인 글은 자리 깔고 앉아서 그 날 다 써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다. 글이 이따위로 되어 버린 것이 너무 아깝다.



[백악관 로맨스(?)의 주인공 빌 클린턴과 차기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의 중간선거 승리 자축. 새로운 명문 정치인 가문의 탄생인가? Photo : 로이터]


2006년 11월 7일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의 결과와 그 후속조치에 대해서 국내에서 말이 많다. 세계인이 주목한 패권국가 미국의 차기대선에서 권력의 향배를 예상할 수 있는 중요한 이벤트(?)이니만큼 세계인이 미국 권력의 손잡이가 어디로 이동하는지에 대해서 발빠르게 그 소식을 타전하였고 새로운 칼을 쥐게될 것으로 예상되는 주인과 쇠약해져 가는 지금의 칼주인과의 관계 재정립 등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갈등과 논쟁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아주 중요한 변화가 세 가지 생겼다. 하나는 '북핵 사태에 대한 접근법'의 변화할 가능성이 '다소' 높아졌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동북아에서 다른 의미의 긴장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주한미군의 재배치(GDPR : Global Defense Posture Review에 의한 해외주둔미군의 신속기동군화 계획으로 닉슨행정부 시절에 구상되어 카터행정부 시절부터 점진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하였으며 부시행정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를 계획하고 있는 미국의 '주한미군의 역할변환과 韓美상호방위조약의 위상 변화에 대한 속도조절'이다.

미국과 같은 강대국, 선진국들의 강점 중 하나가 바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지 간에 기존 정권이 추진하던 국가적 규모의 사업의 진행이 쉽게 바뀌거나 변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좀 더 직설적이고 쉽게 표현하면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보는 눈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단시간에 폭발적 변동을 시도할 수가 없는 공룡과 같은 신세인 것이다. 선진국/강대국일수록 그만큼 더 정책과 노선 결정에 대해서 후진국들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서 훨씬 더 정교하고 진보된 시스템과 의사결정과정으로 신중하게 추진하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거나 의회의 다수당이 바뀐다고 쉽사리 노선이 급변하지는 않는다.(문제는 그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책들은 곧잘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재정 규모가 더 적은 다른 나라들의 사정은 볼 것도 없다.) 일부 초보적 시각을 가진 모리배들(H모 언론사 같은. 언론사 취급도 안하는 O모 사이트보다도 못한 꿈을 꾸는 듯한 소설을 쓰는 기사와 논조를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다.)은 민주당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한 것만으로 미군의 이라크에서의 철군가능성까지 언급하는 것을 보고 '역시'하며 박장대소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시각 또한 일각에서 제기될 수 있을 정도로 부시 행정부의 정책적 실패(특히 이라크에서의 전쟁 조기종결 실패와 엄청난 인명피해)에 대한 미국민의 울분이 증폭되었다는 현실 또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 부시행정부의 승부수였던 이라크 전쟁이 부메랑이 되어 그의 목을 치다.
기본적으로 이라크 전쟁은 명백히 실패한 미국의 또다른 전쟁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기치 아래 9.11테러 지원국에 대한 응징 여론과 WMD(Weapon of Mass Destruction) 제거라는 명분(WMD제거 사유는 사실상 한껏 예민해져 있는 미국과 국제정세를 오판한 후세인의 '모호성 유지 전략'으로 위기상황을 자초했다.)이라는 십자군적 마인드로 포장하여 '중동 지역의 신국제질서'를 노렸지만, 이라크에 대한 접근법이 결론적으로 틀렸음이 현실로서 증명되었고 WMD제거라는 명분에서도 정보조작 가능성 제기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쓴 채 부시행정부의 이라크行이 자멸의 늪으로 제 발로 들어간 꼴이 되고 말았다.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상징적 목표를 달성하는데에는 성공하였지만, 어리석고 무지몽매한 이라크 무슬림들은 민주주의가 주는 가치의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라크 과도정부를 단지 親美정부로서 평가절하하며 정부요인에 대한 암살과 치안유지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순교자적 자살폭탄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미국이 얻은 것은 드러나지 않았던 미국의 또 다른 목적이었던 이라크 석유자원 채굴권의 탈취와 재분배(기존의 이라크 석유채굴권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던 독일/러시아/프랑스/중국 등에게 배분되어 있었으며 이들 국가들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 승리선언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변하며 이라크 내에서 자국의 유전 채굴권 보장을 요구하다가 미국에게 묵살되자 다시 '평화론자'들이 되었다.)를 통해서 딕 체니 부통령이 CEO로 재직하던 중규모의 석유사업체였던 헬리버튼社 등을 최대 수혜자로 만들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갖가지 특혜 의혹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국제석유자본들의 사업 규모와 그들이 이라크 유전에 대해 가질 관심의 정도와 영업망을 감안할 때 충분히 핼리버튼社에 대규모 스톡옵션을 가진 딕 체니 부통령의 특혜의혹이 생길 여기를 가진다.

여기에 이라크 전쟁 수행 과정에서 헬리버튼社의 자회사이자 민간병참기업체인 'KBR'은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새로운 전쟁수행기법인 'LOGCAP 프로그램'(미군은 온전히 전투병력만 파견하여 전투만 수행하고 이와의 베이스캠프 설치, 수송, 식량공급, 군수품 공급 등의 모든 분야를 민영화하는 프로젝트로 170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국방 프로젝트)에 대한 타당성을 조사하였는데, 이후 LOGCAP 프로그램의 배타적이고 독점적 지위를 가진 사업자로서 딕 체니 부통령이 대규모 스톡옵션을 가진 핼리버튼社의 자회사인 KBR이 미국방성의 독점 사업대상자로 선정되어 연평균 17조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 계약으로 이라크 전쟁 이전인 2003년 세계 100대 군사기업들 중 61위였던 KBR은 2004년 재계 서열 16위, 2005년 10위로 방산업계의 신흥강호로 급부상하였고, KBR과 모기업 핼리버튼의 승승장구는 딕 체니 부통령이 2005년 핼리버튼社의 스톡옵션 행사로 882만 달러의 순수익을 올렸다. 미국의 교육 수준이 낮은 하층계급들(미군은 심각한 병력부족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실업률이 높은 빈곤지역의 젊은이들을 영입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 이와 관련된 망언 사건도 있었다.)이 흘린 피로 최고위층 인사들의 지갑이 두꺼워진 것이다.

이러한 사건들이 폭로되면서 이라크戰에 대한 미국민의 반감은 극에 달했다. 여기에 잭 아브라모프 스캔들을 비롯한 굵직굴직한 스캔들까지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이 결과다. 12년전 민주당의 부패를 청산하겠다는 기치로 지지를 얻어 다수당이 되었는데, 지금은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타파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힐러리가 당선된다고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이 쉽게 바뀔까?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미국의 對北접근법이 바뀔 것인가 하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現노무현 정부과 前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의 기치는 '북한의 핵도발 억제'인 동시에 남북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과 북한이 쌍방 간의 대화를 통해서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극복하자는 일종의 '당사자주의'가 목적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그와 같은 당사자 간의 해결을 거부하였고, 오랜 기간동안 대북원조와 북한의 논리를 묵시적/공개적으로 지지해 오던 한국의 요구사항인 북핵 실험 중지를 무시한 채 무자비한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에 더불어 6자회담 이후에도 '우리민족끼리'를 주창하며 한국을 미제국주의의 앞잡이쯤으로 여기는 북한이지만 6자 회담 이전까지(심지어 제1차 북핵 위기를 해결한 제네바 회담에서조차도) 북한은 한국을 한 번도 국제회담의 회담 당사국으로서 인정한 적이 없다. 지금도 북한은 北美양자간 회담을 요구하고 있으며 6자 회담 무용론을 흘리고 있다. 결국 미국하고만 대화하겠다는 북한에게 미국 정부의 색채는 매우 중요한 북핵문제 해결의 열쇠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민주당이 의회의 다수당이 된 지금, 2년 후의 대선에서 힐러리가 대통령이 된다면 정말 미국의 대북접근법이 획기적인 변화를 가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우선 '아니다'라고 단정 짓는다.

우선 민주당과 힐러리가 과연 양자 회담에서 북한을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서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의문을 가진다. 기존의 부시 행정부가 벌여 놓은 장기적 플랜을 승계하지 않을 리도 없겠지만, 그런 상식적인 접근법을 모두 배재하고서라도 이미 빌 클린턴 시절에 제네바 핵협정을 위반하고 클린턴과 민주당이 안겨준 미국발 북한행 선물꾸러미(?)를 내팽개치고 HEU(High Enriched Uranium : 고농축 우라늄은 오로지 군사적 목적으로만 활용된다.)를 개발하여 93년 핵위기 때보다 더 진보한 무기로서의 핵기술을 개발한, 즉 94년 제네바 핵협정 이후에도 전혀 핵기술 개발을 중단한 적이 없다고 자인해버린 북한을 신뢰할 수 있는 정권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은 0%다.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미국은 부시 행정부가 주장했던 CVID(Completely, Verifiable, Irreversable, Dismentlement) 수준의 고강도 검증행위를 요구할 것이다. 그것 자체가 이미 '은둔의 나라' 북한에게는 강한 거부감으로 작용한다. 이는 6자 회담이든(민주당이 들어와도 더 높은 강제력을 가지는 6자 회담을 포기할 리가 없지만) 94년 제네바 회담 때처럼 양자회담이 되든지 IAEA사찰단의 광범위한 검증활동 보장요구는 필연적으로 수반될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북핵 개발에 대한 미국의 기존 입장은 거의 변화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또 한가지, 공화당은 공세적 대북정책을 가졌기 때문에 부시행정부가 물러나고 민주당이 집권해야 한다는 식의 논란도 아주 단세포적인 주장이다. 1993년 동해에 美항공모함을 띄우고 북한의 영변 핵시설과 주요 군사요충지에 대한 광범위한 폭격계획을 세운 것은 다름 아닌 빌 클린턴 前대통령이며 민주당 정권이다. 공화당의 2차례 9.11테러에 대한 응징전쟁과 對테러전쟁으로 공화당은 호전주의자, 민주당은 평화주의자라는 삐뚤어진(?) 이미지가 최근 많이 형성되어 있는데, 미국 뿐만 아니라 어떤 강대국/패권국이더라도 패권의 속성은 변화하지 않는다. 다만 그 패권을 행사하는 기법이 세련되거나 거칠 뿐이다. 민주당은 평화주의자라는 착각은 완전히 떨쳐내야 한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대북정책은 現수준에서 더 포용력을 가지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6자 회담 복귀 조건들 중에서 실행의 先後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 좀 더 유연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소한 점들을 부각시켜 부시와 차별화된 모습을 부각시키면서도 회담결렬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 민주당發 경제전쟁이 발생할 것인가?
미국의 차기 정권이 민주당에서 출범할 것이라는 예상을 증명하는 자료들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9.11 테러 이후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을 보이는 미국의 정당들과 유권자들의 성향은 더욱 보수적 성향을 띄게 되었고, 안보에 대한 위협은 공화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강력히 주장하는 주요 정책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보수정당으로 이름을 알린 공화당이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다. 미국 정계에서 '진보적 성향'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지만, '상대적으로 덜 보수적인' 민주당에서도 오히려 분야에 따라서는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이 공화당보다 더 강한 강경보수노선을 주장하는 사례를 여럿 볼 수 있고, 또 그런 노선들이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對中공세에 대해서는 중국을 세컨더리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잠재적 패권도전국'으로 내정하고 정치군사적 의미에서 對中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을 구사한 것에 비해 민주당의 핵심 인사들은 對中경제압박에 훨씬 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 하원의장이 된 낸시 플로시의 인권문제에서의 對中강경노선이 대표적이다. 군사적인 분야보다 경제적 분야의 갈등이 더 낮은 레벨의 충돌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美中간의 직접 무력충돌이라는 가정 자체가 제3차 세계대전의 확전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는 현실에서 실제로 6자 회담이나 WTO협상 등에서 충분히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을 보여온 양국의 지도부가 직접 무력충돌을 할 가능성은 0%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분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언제든지 양국이 격렬한 무역분쟁으로 국제무역체계를 뒤흔들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전쟁에 대한 위협이 오는 군사적인 문제는 일반 국민들에게 잘 감지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먹고 사는 것에 직결되는 경제적인 문제는 최하층민에게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동북아의 안정에 '反부시'가 최상의 선택인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붙인다.

물론 지금와서 美中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중국도 WTO가입국으로서 예전처럼 美의회의 최혜국대우를 받기 위해서 숨을 죽여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중국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지금처럼 자국에 대한 내정간섭이라고 강짜를 놓으면 미국이 뚜렷하게 대응할 만한 수단이 많은 것도 아니다. 미국으로서도 자국 경제의 12.5%를 떠받치고 있는 중국 경제가 갑자기 타격을 입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위 조절에 있어서 어떻게 될 것인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할 사안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 갈등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느냐에 따라서 한국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간에 불똥이 튈 것이다.


- 한국과의 상호방위조약과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는?
한국의 대북정책과 함께 한국 안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韓美연합사령부 해체 논의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한국과 북한의 대치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이상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논의 자체를 반대하지만, 매년 연 8% 국방비 증액을 통해 추진할 예정인 국방계혁 2030이라는 프로젝트의 목적이 독자적 전시작전권 확보이니 시기가 어느 때이던지 간에 (이 위험천만한)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를 기정사실화해야 할 것 같다.

[사실상의 불신임 선고를 받은 조지 W. 부시의 남은 임기는 노무현의 그것만큼은 아닐지라도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이 명백하다. 부시는 변화한 정국에 비교적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그 대처 속도 또한 빠르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게 하고는 있지만, 노무현처럼 워낙 벌여놓은 일이 많고 그 일이 수습하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권력누수현상을 연착륙시키는데에도 그 정치적 역량을 모두 소진해 버릴 것이다. Photo : ap연합]


먼저 가장 중요하게 초점을 맞추어야 할 사건이 럼즈펠드 美국방장관의 전격적인 경질이다. 이라크 전쟁을 사실상 주도하였고 민주당의 강력한 사퇴 압력과 콘돌리자 라이스 美국무장관의 국방장관직 요청에도 굴하지 않고 자리를 보전했으며 부시 대통령의 강력한 비호를 받았던 럼즈펠드였지만, 급격히 냉각된 民義를 확인하는 순간 부시로서도 더 이상 럼즈펠드와 함께 가는 것에 부담을 느낀 듯 하다. 럼즈펠드에 이어 초강경 노선을 고수하던 존 볼튼 美UN대사 또한 임기연장안이 거부되면서 교체가 확실해지며 신보수주의 노선이 정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급격한 쇠락을 보이고 있다. 럼즈펠드는 바로 한국이 불필요한 갈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조기환수를 주장해온 대표적인 反韓론자였다. 조기환수를 통한 미국의 한국 방위부담을 덜려고 하던 그가 경질됨으로서 한국측의 요구가 수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여권일각에서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신보수주의 성향의 정치인들이 쇠락세를 보인다고 지금까지의 노선까지 급격한 변화를 보일 것이라는 판단은 다소 섣부른 감이 있어 보인다. 우선 기본적으로 신보수주의 성향이 적극 투영되었던 부시 1기 공화당 정부에 비해서 부시 2기 정부는 기존 민주당의 노선을 많이 투영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1기 행정부 때만 해도 적극적이었던 對北무력공세론이라던지 北美양자회담 절대불가, CVID 등이 지금은 아예 목소리 자체가 증발했거나 아주 미약해졌다. 북한 핵실험 이후 다시 CVID가 부활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對北직접무력공세와 같은 극적 수단을 사용하자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부시 2기 행정부는 對北정책에서 미국이 양보할 수 있는 수준만큼을 거의 다 양보한 채 현재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더구나 이번 중간선거에서 美유권자들은 이라크전쟁 실패에 대한 심판을 주로 지적했지 對北정책의 평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可不논의가 되어 있지 않다.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으로 反韓적 성향을 보이던 럼즈펠드와 신보수 노선의 쇠락으로 한국 측의 입장이 많이 반영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현 상황을 부시 행정부가 한반도 문제와 연계시켜서 판단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美 국내적 심판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실패(?)까지도 포함한 의견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전혀 별개의 문제로 수용할지는 차기 회담에서 논의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럼즈펠드가 있을 때보다는 대화가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 사안도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이미 전시작전통제권을 최대한 빠른 시기에 반환하기로 확정지어 놓은 상태이고 이라크 전쟁의 늪에 빠져 한시라도 상호방위조약의 사실상의 자동개입조항이나 다름없는 전시작전통제권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 결국 그 때가 되어봐야 아는 건가?
9.11테러는 정말이지 엄청난 일을 저질러 버렸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진정한 '세계제국' 미국으로 하여금 이성과 광기를 넘나들게 만들었고 그 이성과 광기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폭발한 2차례의 전쟁과 몇 건의 정책들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고, 지금의 국제정치 패러다임, 안보 패러다임, 경제 패러다임을 구축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러한 변화의 한축으로서 한국이 존재하고,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3대 현안 중 하나인 '불법적인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가장 위협을 가하고 있는 국가가 한국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삶을 압박한다.

여기에 한 번 더 한국을 확인사살하자면 이러한 우리의 위기를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과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기회조차 박탈하는 저 김정일 세습왕조의 전횡에 7천만 한민족이 함께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 '의식 있는 바른 한국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넓디 넓은 태평양 너머에 있는 미국의 중간 선거 결과에 우리가 이토록 숨죽여 지켜봐야 하고 그 후폭풍을 염려해야 하는 현실은 비단 우리 만의 딜레마는 아니지만, 이와 같은 딜레마를 더욱 심화시키는데는 북한이라고 하는 '불법적 범죄조직'의 우롱이 한몫 단단히 했다는 것에 더욱 화가 난다.

우리는 앞으로 2년간 미국의 변화를 더욱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북한이 계속 北美양자회담에만 목숨을 걸고 있는 이상, 미국이 전형적인 비둘기파였던 크리스토퍼 힐 동아시아 차관보처럼 6자 회담에 회의를 느끼고 양자 회담 혹은 강경 노선으로 완전 선회한다면 우리의 생존과 번영은 미국의 손에 달린 것이고, 6자 회담의 틀이 지켜진다고 하더라도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의 역할과 중요성을 북한에게 주지시킬 수 있는 국가는 오로지 미국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부시 행정부가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이며 장기적으로 어떤 정권이 등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 나라 자체에 어떤 정권이 들어오는가 하는 문제보다 더욱 더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안정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입만 데면 자주, 反美, 親中, 親北을 외쳐대던 노무현 정권이었는데, 오히려 우리의 입지는 더 객체적 존재가 되어 버렸다. 어리석고 비전 없는 무능한 지도자가 국가와 민족을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지 더없이 좋은 사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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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는 재능 때문에 망한다.

그 옛날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에 보면 '양수'라는 모사꾼이 있다. 조조의 수하에 있었던 그는 영특한 재능으로 인해 조조의 후계자 책봉 과정에서 조식과 조비의 대립 구도에 개입하여 조조에게 미운 감정을 산 터였다. 이후 조조는 한중 공방전에서 힘들고 지쳐 자신을 '계륵'에 비유하였다. 충분히 흘려 들을 수도 있는 그 계륵이라는 말의 깊은 뜻을 헤아린 양수는 상관의 지휘도 없이 후퇴를 준비하다가 조조의 노여움을 사서 처형된다.

재사는 재능을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해서 투신한다. 재능을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해서 일할 때만 재사는 자신의 재능이 쓸모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조조는 재사를 알아보고 발탁할 줄 아는 현명함을 가진 군주였다. 그러나 그와 관련된 여러 일화에서 나오듯이 그리 포용력 있는 군주상은 아니었던 듯 하다. 때문에 재능으로 교만을 부리던 양수를 처형한 것이리라.

고건을 보면 양수가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조조의 그것과 유사한 면이 있다. 물론 국민들이 조조만큼 영리하지는 않지만, 포용력이 없는 것은 일치한다. '관운(官運)'을 타고 났다는 고건은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이자, 제 발로 찾아온 기회를 어리석은 국민들로 인해 놓친 탄핵 정국을 그야말로 복지부동의 공무원스럽게 무난하게 받아넘겼다. 그리고 정국이 회복되고 나서 그는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 시기가 그는 총리직 사퇴의 최적기라고 판단했던 듯하고 결과론적으로 그 판단은 비교적 적중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건을 '물러날 때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라며 칭송한다. 그리고 오늘날 고건의 인기는 바로 그 복지부동에서 비롯된 큰 흠집 없이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안다는 점이 베이스가 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과거의 고건은 자신의 타고난 관운과 그에 따른 재능으로서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았던 듯 하다.


- 고건의 계략?
오늘날 고건의 위기는 어떻게 초래된 것일까? 그 까닭은 바로 고건의 그 타고난 관운과 재능 때문이라 생각한다.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었던 여당, 민주당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까지 고건을 영입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 그 영입 노력에는 고건에 대한 높은 지지도가 바탕이 된 것은 물론이고 고건의 '비교적' 깔끔한 이미지를 자신의 당에 투영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주인이 먹이를 가져다 주면 말(고건)은 가장 맛있는 먹이를 찾아 쫓아가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고건은 관운에서 비롯된 특유의 복지부동 성격으로 인해 분별력 없이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FA를 선언한 스포츠선수들처럼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데 한껏 주력했다. 그리고 그것에도 모자라 정치적 색깔이 완전히 다른 이 당에 한 번 슬쩍 요염한 미소를 지어주고 나서 여론을 살피고, 저 당에 슬쩍 요염한 미소를 지어주고서 또다시 여론의 동정을 살피는 등의 자신의 정치적 노선조차도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서 자신을 흐리멍텅한 존재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고건은 누군가의 수하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고건은 자신의 이름을 직접 내건 신당을 창당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고건 자신의 지지도가 전 같지 않았다는 점이 자신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의 존재마저 희미해질 처지에 놓였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조차 흐리멍텅하게 만들었다가 뒤늦게 자신의 정체성을 선언하고 깃발을 꽂았으나 그것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이제 많이 줄어들었다. 일각에서는 장사치처럼 여기저기 모두 저울질해보다가 모두들 부르는 몸값이 시원찮아서 FA를 선언한 아나운서들처럼 독자노선을 선택하였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며 그를 고깝게 보기 시작했다.

나의 개인적 판단에는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는 열린우리당과 연립하여 최대 규모의 정당 안에서 유일한 대선주자가 되어 다음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다는 것이 고건의 최종적 구상이었던 것 같다. 규모나 지역적 지지기반에서 별로 힘이 못되는 '민주당'과는 별로 이득이 없고, 애초에 '국민중심당'과는 생각도 안해봤을 것이고, '한나라당'과 파트너쉽을 맺기에는 자기 당 안에서도 이명박의 강세 속에서 3강 대결 구도를 펼치는데 쓸데없이 소모전을 펼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믿을 만한 놈이 하나도 없어진 무주공산의 열린우리당은 '고건'이라는 말에게 가장 맛있고 양 많은 먹이였던 것이다.


- DJ/노무현 세력과 고건의 주도권 싸움?
나는 기본적으로 열린우리당과 고건의 연합전선을 기정사실화하고 싶다. 고건과 같은 복지부동 스타일은 결코 한나라당의 이명박과 대선 경쟁을 벌일 위인이 아니다. 그리고 이미 자신이 세운 신당의 기치는 '反한나라당'이다. 노선 자체를 열린우리당 쪽으로 코드를 맞추었다. 고건에게는 규모를 갖춘 배경이 필요할 뿐, 인물론적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캐릭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비록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최악을 치닫고 있지만, 열린우리당의 조직력은 분명 고건에서 매력적인 먹이이며 자신의 가세를 통한 시너지 효과로 열린우리당의 낮아진 지지도를 일정 수준 이상 회복시킬 수 있다고 계산을 놓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과 청와대는 또 한 번 '정치꾼'으로서의 그들의 천부적 기질을 발휘할 요량인가 보다. 민주당을 수구꼴통으로 매도하며 처참하리만큼 민주당을 모독하고 탄핵정국에서 反민주 反개혁 反지역주의타파 세력으로 무참히 짓밟으며 자신들의 몸값을 올려 놓고서는, 지금와서 다시 한 번 김대중의 선동적 호남순례와 다시 한 번 결집하는 호남의 민심에 적잖게 고무되었는지 김대중과 민주당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고 있다.

게다가 김대중의 역할론이 전격 부각되면서 민주당의 '한민공조'도 한물간 분위기다. 김대중을 지렛대로 열린우리당/민주당 합당 혹은 호남지역 기반의 신당창당을 통해 고건영입에서의 주도권을 쉽게 내어주지 않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한다. 고건이 영입되고 나서 독선적 노선을 걷는 것을 견제하거나 고건이 대통령이 된 이후까지도 염두해둔 권력유지를 위한 해바라기식 행보를 펼치기 시작한 것이라 판단한다. 열린우리당 내 세력 간의 의견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청와대와 친노세력들은 권력유지를 위해서는 과거의 행적이나 신념(?) 혹은 자신들이 구축한 정체성까지도 모두 내던져버릴 태세다.

그것도 아니라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들이 고도의 역할분담을 계획하여 청와대/친노세력과 창당 주역들의 패배 시인과 신당창당 움직임이 엮여서 조금은 전략적 무리가 있지만 자연스런 '헤쳐모여'식 창당작업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판단한다. 그 과정에서 고건 세력이 흡수될 여지도 충분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고건이 독자노선으로 자폭을 하지 않는 이상 고건의 종착역은 열린우리당의 후계체제일 것이기에 고건과의 협상력은 분명 지금보다는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신념과 정체성은 고건이라는 새로운 선장 영입을 통해서 일정 부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선장이 새로운 깃발을 꽂고 기존의 기둥서방 역할을 한 선장이 물러나면 자연스레 물갈이가 되면서 '바지걸이 선장'을 만들어 당을 위해 희생하면 기존의 노선을 추구하기가 용이해진다. 바지걸이 선장에 대한 보상은 권력유지 이후에 얼마든지 노무현 정권 특유의 회전문 인사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고건이 여전히 대중들에게 순결하게 보일까?

새롭게 등장하게 될 신당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현상황보다는 개선될 것이 명백하다. 적어도 '김대중 선생님'이라는 3金 중 여전히 호남 지역에서 영향력을 가진 아이콘이 기꺼이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현재의 열린우리당 세력과 민주당 세력의 결집은 민주당이 얼어붙은 마음을 열고 열린우리당 내의 정체성 논란이 해결된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가능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권력 획득이라는 단일한 목적추구 과정에서 모두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오늘 광주를 방문해 또 한 번 反지역주의적 연설을 한 노무현의 연설과 그의 행보는 표리부동함 그 자체이지만, 권력을 향한 투쟁 과정은 권력 획득이라는 결과 앞에 희석되고 순결해질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영입하려고 하는 새로운 선장 고건이 지금에 와서도 과거의 그런 '순결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다소 생각해 봐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이런 반문에 대한 근거는 당장 가장 최근에 조사한 여론 조사에서 고건의 국민적 선호도가 이명박, 박근혜 다음의 3위였으며 박근혜와는 5% 정도의 차이에 불과했지만, 이명박과는 두 자릿수 이상의 선호도 차이가 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것은 단순히 보수세력의 결집으로 단정지어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존의 열린우리당의 지지 기반이었던 2~30대 젊은층이 대거 열린우리당의 지지를 철회한 상황에서 고건이라는 카드를 영입한다고 해서 두 자릿수 이상의 선호도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하다 못해 '유신공주'라고 불리는 군사독재의 세습체제인 박근혜에게조차도 지지도가 밀린다는 것은 현재 고건의 위상이 '작년 이맘때의 고건'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고건의 추락(?)은 자신의 몸값 부풀리기 과정에서 스스로 유발한 반감이 기초되어 있음을 지적하려 한다.

자수성가한 CEO출신의 대선주자성공한 개발독재의 후손 대선주자, 관료형 대선주자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하는 매우 흥미로운 대선 구도에 직면한 한국과 한국 국민들은 다소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나름대로 매력이 있고 흠집이 있다. 그러나 2가지 중요한 문제는 이들 3인 중 2명은 같은 당내 경쟁을 거쳐서 하나의 후보로 단일화될 사람이라는 점과 유일한 저항세력으로서 선택된 고건이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며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점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은 이명박과 박근혜 둘 중 누구든지 후보가 단일화된다면 둘의 지지율이 온전히 하나로 합쳐지지는 않겠지만, 상당 부분 둘의 선호도가 규합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단순 계산으로 고건과 한나라당 단일 후보 사이에 선호도가 '더블 스코어'가 된다는 의미다. 과거 청렴한 이미지에 45%가 넘던 지지도를 가진 고건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고건으로선 상대할 수 있는 적수가 아니다.

여기에 고건의 대선승리 열쇠를 쥐고 있는 김대중의 역할이 역설적으로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들을 결집시키고 있다는 역효과를 우려해야 한다. '정치은퇴'를 선언한 김대중의 지속적인 정치활동과 지역주의적 발언들, 그리고 反지역주의를 외치면서도 지역주의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열린우리당, 김대중의 입김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민주당의 줏대없는 모습에 실망할 일부 민주당 지지세력, 반세기에 걸친 3金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세력, 최종적으로 열린우리당의 조직력에 의지해야 하는 고건까지.

지금의 고건이 넘어야 할 산은 너무나 많다. 1년 전의 고건이었다면 충분히 할만한 승부였겠지만, 재사가 재능을 너무 부리다 보니 대세를 놓쳐 버렸다. 지금의 갈등하고 있을 고건을 보면 마치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다소 안타깝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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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2014년까지 F-35 전투기 실전배치계획 발표

[Image : 중앙일보]

한국이 2014년까지 F-35 전투기를 도입, 실전배치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한다.  F-35 전투기는 현재 미국방성이 3군 통합전투기로서 다목적의 차세대 전투기로서 개발하여 실전배치한 유인전투기로서는 미국 최후의 전투기가 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록히드 마틴社의 F-35와 맥도널 더글러스社를 인수한 보잉社의 X-35가 경합하여 최종 선발된 F-35 전투기는 기본적으로 스텔스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F-16보다 2.5배의 넓은 작전반경과 1.4배의 화력을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F-35 전투기는 영국, 미국(캐나다, 네덜란드, 호주, 터키, 덴마크, 노르웨이 등이 참가.)이 공동으로 투자하여 개발한 전투기로서 앞으로 서방 진영 주요 국가들의 주력 전투기가 F-35기종으로 통일될 가능성이 높기에 韓美연합사의 작전통제 과정에서의 효율성과 韓美연합군의 유사시 작전수행 과정에서의 유기적 연계성이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회적으로 F-35전투기의 도입은 국산전투기 사업계획(KF-X)이 결과론적으로 기술과학자들의 욕망충족용 이외의 의미를 가지기 힘듬을 의미한다. 이미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 사례에서도 보았지만, 미국제 무기들의 절대적으로 우월한 성능과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미 미제 장비, 군수물자들이 세계 각국에게 미제 이외의 무기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엄청한 추가 비용과 포괄적 범위의 체제전환, 군사작전체계의 변경을 요구한다. 때문에 KF-X사업을 통해서 새로운 전투기를 개발한다고 해도, 그 전투기가 이미 냉전 시대의 대치 상황에 적합하게 개발되었다는 이유로 새로운 국제관계에서 적합한 개념의 전투기 개발에 대한 요구로 완성된 F-35가 대체할 F-15K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적인 우려 속에서, 개발비용 회수를 위한 판로 확보는 요원하고 제한된 국방자원과 한국항공기술연구원(KAI)의 독점적 지위 속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획득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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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Su-33 50대 구입

[중국이 50대를 신규도입하기로 확정 지은 함재기 성능을 갖춘 Su-33]

중국이 1988년 구소련이 제조하다가 재정부족으로 방치한 항공모함 바랴그 호(1962년 진수된 바랴그 호는 킨다급 순양함으로 다른 함선으로 1990년 퇴역함.)를 구입하여 개조하고 있는데, 이 항공모함에 탑재하기 위해서 러시아로부터 신예 함재기인 Su-33을 50대 구입하기로 확정지었다. 1대당 500억원으로 F-15K의 절반 가격 정도로 외부에 알려져 있으며 쌍발형 엔진으로 현재 러시아의 주력 함재기이다. 전체적인 성능이나 작전반경 등은 F-15K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함재기라는 특수성으로 인해서 그 정치적/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하겠다.

과거 냉전 시대였다면 중국의 이와 같은 군비증강 움직임이 '우려할 만한 사안'이었겠지만, 탈냉전과 韓美日中간의 상호의존상태가 고도로 심화된 상태에서 이와 같은 군비경쟁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자기과시욕에 그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냉전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도 중국과 대만이 전쟁하지 않고 미국과 소련이 쿠바 미사일위기에서조차도 대화와 타협의 중요성을 자각한 상황에서 경제가 모든 사고의 시작이자 끝이 되는 21C의 산업국가들의 관계에서 군사력은 자족감과 대외과시욕에 대한 충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언뜻 보기에 美中日의 군비경쟁에 韓도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노정권의 자주국방론도 결국 反美분위기 선동과 함께 中日양국의 군비경쟁에 대한 대응책의 맥락(더 멀리 보면 노 정권의 가장 허황된 주장이었고 지금은 주제파악을 하고 완전히 입을 다물어 버린 '동북아균형자론'에서 기인할지도 모른다.)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는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 美中-中日이 실제로 2차 대전처럼 전쟁을 할 가능성은? 아마 지구가 두 쪽 날 확률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가공할 정도의 대량살상무기들은 역설적으로 이 지구의 공포에 의한 평화를 더욱 공고화하고 우리 모두를 공포 속에서도 평화를 영위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충분히 합리적 존재가 되었으며 '잃을 것이 많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패러독스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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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하원의원, 북한 내부로부터 붕괴시킬 때 왔다.

[로이드 의원 Photo : 중앙일보]

美의회의 에드워드 로이드 하원의원이 N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내부붕괴 시나리오를 주장하며 한국 정부의 강한 협력을 촉구했다. 북한의 해외계좌를 동결하고 북한 항구의 출입항하는 선박을 검색하여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어떠한 것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더불어 콘돌리자 라이스의 방한은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국에게 사실상의 대한 최후통첩을 전달하기 위해 떠난 것으로 함께 피흘리며 자유의 땅을 지켜온 미국보다 그들을 침략한 북한에 더 동조하는 정권을 비판하며 한국민들은 이제 좌파정권에 대해 싫증을 느끼고 있다고 한국정부의 대북지원 중단을 촉구했다.


전체적으로 틀린 표현은 별로 없지만, 그의 북한 내부붕괴 시나리오는 내 생각에 매우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우선적으로 그의 내부붕괴 시나리오에서는 김정일이 김일성보다 충성도가 낮기 때문에 외부에서 초고강도 압력을 가하면 군부가 김정일을 제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전적으로 틀린 표현이다.


우선 북한 군부는 김정일을 제거할 기회가 이미 몇 차례 있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직후가 사실상 김정일 제거의 최적기였다. 김일성의 사망은 갑작스런 것이었지만, 80노인의 죽음이 새삼스러울 것이 아닌 상황에서 권력에 대한 도전 세력이 있었다면 당시가 권력 찬탈의 최적기였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동해상에 美핵항공모함이 떠 있었고 미국의 북한 의심지역에 대한 Air Strike가 임박했음을 세계 각국의 언론들이 긴박하게 타전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군부는 김정일을 추대하였고 김정일은 주석직을 김일성만의 직위로 영구 폐기하고 자신은 선군정치를 강화하는 의미에서 국방위원장직에 앉았고 그 직책이 곧 국가최고통수권자의 직책이 되었다. 김정일의 지도력이 절대적 1인통치체제는 아니더라도 김정일을 축으로 군부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기에 단순히 선박검역이나 자금동결 같은 韓中이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100% 확실히 봉쇄된다고 장담할 수 없는 수단으로 김정일 제거론을 논의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둘째로 북한 지도층이 김정일 유일체제인지, 내각제의 일종처럼 군벌들과 김정일의 원탁형 통치체제인지에 대한 정확한 내부분석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데 있다. 표면적으로 북한의 통치체제는 김정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북한의 비정상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난동이 김정일 개인의 광기로 폄하하기에는 그 돌출행동의 수위나 내용이 지나치게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만약에 6자 회담 등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지지하는 세력이 김정일이고 핵실험이나 스탈린식의 전쟁불가피론을 주장하는 세력이 군벌 중 규모가 큰 세력이라면 정말 김정일이 지도층에서 숙청되었을 때 북한의 다음 행동은 지금까지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던 북한의 행동패턴보다 더한 광기를 부리면 부렸지, 합리적 사고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의 제거에 대한 논의는 북한 지도층의 의사결정체제를 완벽히 파악해야 하고 적어도 유력한 군벌세력 하나 이상을 親美 혹은 親韓경향을 띄게 회유한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 주요 군벌들의 성향과 외부 세력에 대한 선호도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턱대고 붕괴론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북한과 김정일 독재세습왕조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잘 조직된 독재체제였다. 김일성 사망 직후,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던 북한에 대한 붕괴 시나리오의 결론은 하나 같이 '북한의 붕괴는 시간문제일 뿐'이며 '김정일은 김일성만큼의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었다. 하지만 김정일은 군벌 세력들과 결집하여 자신의 존재를 유지시켰고 북한 인민을 아사시키고 인육을 뜯어먹게 하고 공개처형시키는 과정 속에서도 어쨌거나 북한이라고 하는 비정상적인 형태의 괴뢰 무리를 오늘날까지 잘 이끌어 왔다.

이제 우리는 북한과 그 내부의 지도층에 대해서 좀 더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들 지도층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여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처럼 (신분제의 조선왕조와 일제식민지를 거쳐 김일성 세습왕조에 거치면서)단 한 번도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경험해 보지 못한 그들이 과연 정상적인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처럼 폭압적 정권에 저항하여 내부적 동조를 해줄지 반신반의해야 하는 처지다. 김정일이 현실을 직시하는 온건파인지, 군부가 현실을 직시하는 온건파인지도 '은둔의 나라'인 북한 내부를 알지 못하는 외부세계에서는 전혀 파악할 길이 없다.

북한에 대한 초고강도 제재조치가 가해야져야 함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 제재조치가 북한 지도층의 내부붕괴를 유도하는 시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고강도 긴장 상태'는 짧고도 명확하게 상대에게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긴장 상태가 길어지면 긴장 상태가 평상적인 의미로 퇴색되거나 상대의 돌출 행동을 야기할 수 있다. 단기간 내에 최후통첩 성격의 군사적 경고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이고 그와 동시에 그들이 중시하는 가치인 '체면'을 살릴 수 있는 北美간의 '동북아평화안정을 위한 공동선언문' 정도의 외교적 전시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수준의 (강제력 없는) '유사 불가침조약'과 기존에 제시된 대북원조 수준을 제시하여, 물리적 수단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김정일 세습왕조가 그 노력이 무가치한 것임을 패배감과 함께 자각케 하고 동북아의 평화공존을 위해 명예롭게 NPT체제에 복귀할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춰주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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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를 밟고 있는 對北압박

[주한미군이 17일 중부전선에서 다연장포(MLRS)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Photo : 중앙일보]

주한미군부대에서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을 이용하여  원격조종을 통한 정밀타격이 가능한 사거리 15~300km의 다연장포(MLRS : Multiple Launch Rocket System) 사격 훈련을 공개했다. MLRS의 발사훈련 장면을 직접 공개한 것은 2000년이 최초이지만, 훈련의 공개 시점을 두고 논란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美2사단은 북한의 장사정포를 목표로한 훈련이라고 작금의 핵위기와 무관함을 강조했지만, 그 해명의 진위여부를 떠나러 시기적으로 어떠한 식으로든지 간에 현 국제정세에 미국의 외교적/군사적 압박이 조금씩 진행되는 과정의 일환으로 해석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본의와는 무관하다.

결국 무력으로 주변국들을 위협하고 자신들의 군사적 지위를 확보하고 국내적 안정을 회복하려 하는 김정일 군부세습왕조와 같은 폭군정권에게는 자신보다 더 크고 거대하며 저항할 수조차 없는 위력적인 군사적 압박이 자신들의 행동 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자신들의 생명줄을 끊어놓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어야 한다. 그로 인해 김의 왕조에 패배인정을 강요함과 동시에 그 패배를 인정할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명분을 제공(北이 요구하는 불가침조약 같은 2차대전틱한 조건을 절대 안된다.)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장할 6자 회담과 같은 다자간 협의체 구성을 통해 이를 증명하고 이를 위한 평화정착조치를 제1차 제네바 핵협정처럼 임의로 파기할 시 다자의 틀 안에서 가혹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응징이 가해질 수 있음을 각인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동북아 각국 특히 한국 정부의 냉철한 현실 인식과 국제정세 판단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마지막 조건이 핵우산마저 삭제하자는 이 붉은 정권 아래에서는 너무나 요원하다.)

김정일 군부세습왕조의 핵은 오로지 남한에 대해서만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남한 이외의 국가에게 핵이 군사적 위협이 되었을 때 북한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김정일이 모를 리 없다고 판단한다. 이와 같은 현실인식은 북한의 핵에 대해 안보적 불안감이 증폭된 한국민들의 정서적 인식과 일치한다. 왜 우리가 북한의 핵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가를 한국 정부가 인식해야 한다. 노 정권 특유의 투쟁적이고 비타협적이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문제인식/해결책으로는 이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을 헤쳐나갈 수 없다. 명백히 말해서 노 정권은 이 난국을 헤쳐나갈 능력이 없는 무능한 정권이다. 단지 사태를 유예시킬 뿐이다. 국가와 국민의 고통을 조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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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안보리 제재안 가결, 다음을 생각한 계산된 영리한 선택이지만 우리에겐 슬프다.

[오시마 겐조 일본 유엔대사와 비탈리 추르킨 러시아 유엔대사. Photo : 연합뉴스]


UN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핵실험을 국제사회의 평화유지 의지에 대한 명백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군사적 제재조치는 배제되었지만, 강력한 수준의 경제적 제재조치가 포함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안보리 결의안에는 북한의 혈맹 혹은 잠재적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기꺼이 서명함으로서 그 영향력이 곧 공식 발효될 것이다.

이번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은 기존의 의장성명과는 다른 UN회원국들에게 일정한 수준으로 결의안 내용을 준수해야 하는 외교적 압박이 가해지게 된다. 따라서 기존에 내려졌던 어떻나 대북 제재조치보다도 더 강력하고 더 실효적 제재조치로서 국제연합 차원에서 더 이상 북한의 불법적이고 비이성적인 핵도발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첫번째 공식적인 의지 천명으로서 그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번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조치 결의안 작성 과정에서 의외로 미국이 비교적 순순히(?) 중국과 러시아의 수정안을 수용하였는데, 이를두고 일각에서는 '후진타오의 약속'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 중국이 미국측 입장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수준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약속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가장 최근의 2차례 있엇던 북한의 결정적 무력도발행위(미사일 발사/핵실험)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그 존재감을 느끼기 힘든 것이었고, 단지 북한이 핵실험 직전에 중국에 보고했었다는 점만이 유일하게 북한이 그래도 중국과는 최후까지 유대관계를 지속하길 희망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예상보다 훨씬 약한(?) UN의 대북제재조치에 대해서 다르게 해석한다. 북한은 이미 UN의 제재조치가 거론되던 초기부터 안보리 제재조치를 '전쟁선포'로 규정할 것이라고 트집을 잡은 바 있다. 상식적으로 핵비확산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국제사회의 대승적 동의를 부정하고 독단적이고 비타협적 자세로 일관하며 아집을 부려온 북한의 그와 같은 생트집에 동조할 국가는 북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러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다. 북한과 수교한 나라 중 가장 비중이 큰 국가군에 속하는 호주가 북한에게 당한 수많은 외교적 무례에 단단히 화가 났는지, UN제재조치와는 별도로 대북제재조치를 취할 것임을 천명한 바 있다. 수교국조차 이 지경이면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들은 볼 것도 없다. 남의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미국하고만 대화하려는 나라에게 국제 사회가 그 뻔할 뻔자 아집에 귀 기울여줄 필요는 눈꼽 만큼도 없다.

이처럼 완전한 고립무원의 상황을 자초한 북한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이미 예고한 '물리적 조치'를 통해서 자신들의 협상력을 높이려고 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협상력 강화조치는 이미 많은 분석에서 쏟아지는 바와 같이 제2의 핵실험이 가장 유력한 가운데, 지난 1994년 강릉 잠수함 사태 때처럼 국지적인 대남무력도발까지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어떤 정치체제보다도 '체면'이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북한이 스스로 떠벌인 얘기를 자발적으로 접어들일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무슨 개망나니짓을 하던지 간에 추가적인 사고를 저지를 것은 명약관화하다. 미국과 자유진영은 바로 그 상황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차 핵실험에서 바로 초고강도 결의안을 채택할 경우 추가적인 도발에 대한 추가조치에서 미국과 자유진영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소지가 있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시설 혹은 군사시설이 완벽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 더불어 북한의 군사시설에 대한 고도의 공습 능력을 확보할 수 없는 지형적 한계까지 더해져 '군사적 징벌'이 현실적으로 불가한 상황을 고려한 것일 수 있다. 2차 도발에서는 이번에 그냥 넘어간 군사적 제재조치의 추가 적용이 불가피하다. 그 때가 되면 중/러도 쉽게 그러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도발을 하면 할수록 미국에게 좀 더 명확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셈인 것이다.


김정일과 인민무력부 군벌들의 무모한 외교적 모험이 지속된다면 진정으로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게 될 경우 한반도 북반구에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까지 초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 진정으로 전시상황까지 고려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본은 당장이라도 팔을 걷어 붙이고 북한을 때릴 기세다. 중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끝까지 감싸려 든다면 북한보다 훨씬 고난이도 핵응용능력을 가진 韓/日/대만의 동북아 핵도미노 시대라는 최악의 시대(즉, 중국의 군사적인 지역적 패권이 무너진 시대)를 상정해야 한다. 중국이 가진 합리성의 정도라면 분명 그와 같은 동북아는 결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 결과는 어떻게 되는 건인가? 이 빨갱이 노 정권이 존재하고 중국이 동북아 핵무장 정국을 용인하지 않는 선에서 마지막까지 북한을 감싸고자 한다면, 결국 '피박'을 쓰게 되는 것은 한국과 중국일 것이다. 이것은 예고된 '새드엔딩'인가? 희대의 인간 쓰레기 투톱이 韓民族의 역사를 최소 20년은 후퇴시키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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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국제연합(UN) 사무총장 당선

[젊은 날의 반기문과 J.F.K. 사진 : 동아닷컴]

2006년 10월 14일 한국 외교사는 새로운 역사적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국제연합(United Nations)은 1950년 6월 27일 북한의 불법적 남침행위를 규탄하며 미국이 주도한 UN군이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파견되기로 결정(사실 그것은 정말 너무나 운명적이었고 극적인 몇 가지 사건이 중첩되면서 발생한 행운이었다.)되었던,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의 한국이 북괴의 남침야욕으로부터 생존하고 존재하여 성장케 한 근원이었던 곳이다. 1차 대전 이후 이상주의자였던 우드로 윌슨의 주창에 의해 설립된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 2차 대전으로 유명무실화되어 새로운 느슨한 결속력의 집단방위체제의 하나로서 설립된 UN은 한국인 모두에게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의미로 다가온다.

하지만 오늘날의 UN은 태초의 모습만큼이나 불안정하고 무기력한 존재로서 우리에게 비춰진다. 국제연합 설립 당시부터 자유민주진영이 압도적이었던 탓에 미국의 對소련 제재를 합리화하고 자연스런 국제여론의 호응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 활용되었던 UN은 식민제국주의에서 막벗어나 강대국에게 무조건반사적으로 우호적이지 않은 신생독립국들이 자유진영 국가를 압도하고 '제2세계 공산 진영'이라는 공공의적이 공멸하자, UN의 존재에 가장 강력한 후견인이 되었던 미국에게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2차 대전 직후 한때 전 세계 부의 70% 이상을 차지하던 미국은 이제 약소국들에 대한 원조에 인색한 구두쇠가 되었고,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대전제 아래 추구하고 있는 '미국적 가치'라는 의미불명의 기치를 내세우는데 있어서 UN의 존재는 이제 발목을 잡는 귀찮은 쥐덫일 뿐이다. 신보수주의 진영을 중심으로 UN탈퇴 혹은 UN해체론이 제기된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현재의 UN은 힘없고 나약한 멸망을 앞둔 공룡과도 같은 존재다. 후견인이 없는 UN은 강대국들에게는 사사건건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귀찮은 존재로, 약소국들에게는 강대국과 선진국들에게 투정이나 해대는 제3자가 보기에는 한없이 시끄럽고 비효율적인 덩치 큰(동시에 무력한) 공룡일 뿐이다. 그러나 UN은 아직 그 역할의 가능성이 충분하고 UN의 변혁의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좀 더 실질적이고 유효한 영향력을 회원국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조금은 존재가치가 있는' 공룡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역대 어떤 사무총장보다도 친일적이며 동시에 UN의 무기력함을 가장 뼈저리게 느꼈을 코피 아난의 시대가 저물고, 60년전 한국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던 국제연합의 수장에 놀랍게도 한국인이 선출되어 세월의 무상함과 동시에 전후 60년간 우리 한국이 얼마나 노력하고 성장해왔는가를 세계가 재확인하게 될 것이다. 단적으로 스리랑카의 사무총장 후보가 퇴진하면서 한국을 간접 거론하며 "부자 나라의 후보와 경합을 벌이기가 너무 버겁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60년전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의 변화한 위상이 이미 증명되고 있음일 것이다. 반기문의 국내정치에서의 어리석고 아둔했던 몇몇 치부를 들춰내기란 제 얼굴에 침뱉기일 것이다. 그는 이제 한국의 정치인이 아니라 세계인의 정치인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수많은 과오를 거울삼아 세계인 앞에 존경받은 새 인물로 거듭나길 고대한다.

P.S. : 최소한 섬나라 왜국의 상임이사국 지위 승격이 5년간은 확실히 막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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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 이후의 동북아를 둘러싼 정세 변화

한국의 추석 연휴가 끝난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자신들의 과실을 끝까지 감싸주던 맹방이었던 러시아와 중국의 만류와 전 세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무차별적 지하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세계평화와 동북아 국제질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됨으로서 한반도의 군사적 안보와 평화정착을 위한 한국과 동북아 각국의 노력에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특히 이번에 실시된 핵실험은 과거 80년대 북한의 100여 차례에 걸쳐 실험했던 고폭실험(Experimental High-Explosive Detonations)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핵무기로서 그 핵무기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증명하기 위한 핵실험이 핵무기가 한 번도 실제로 사용된 적이 없는 공격적으로 실시되었고 이를 북한국영방송이 대내외에 발표함으로서 그 문제의 심각함은 극에 달했다 할 것이다.

'핵시험 성공적 진행'-조선중앙통신(전문 열기)



- 늑대를 살찌운 꼴이 된 '햇볕정책/포용정책'의 실패
아무리 다른 말을 둘러서 표현해도 햇볕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햇볕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북한의 군자금을 대는 꼴'이라는 비난에도 꿋꿋이 그 정책을 차기 정권에까지 연계시킨 김대중 前대통령은 이와 같은 현재 상황에 대한 어느 정도의 역사적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바로 핵실험이 있기 전날, 한국에 있는 누구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인간적으로 잘 안다'고 자부하던 김대중 前대통령은 "북한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北美 간의 대화재개"를 주문했었다.

韓, 美, 日, EU등이 전폭적으로 양보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던 1994년의 제1차 제네바 핵협정을 1998년 금창리 핵시설 의혹사건과 2002년 캘리 美특사의 방북 당시 고농축우라늄 축적과 핵무기 보유를 시인하며 자의적으로 파기했던 그들답게 6자 회담을 통한 北美대화재개에 의욕을 보였던 미국 측의 입장을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한 그들에게 또다시 퍼주기식 외교를 주문한 김대중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매몰차게 무안을 주고 말았다.
북한은 한국의 對北포용정책과 제네바핵협정에 따른 미국의 중유 50만톤 지원, 韓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컨소시엄 형태로 북한에 경수로형 원자로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던 KEDO(Korea Energy Development Organization)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와 8년간의 서방의 북한의 자생력 고양과 인도주의적 지원을 발판으로, 핵의 평화적 이용이 아닌 기존의 플루토늄 추출 방식의 핵무기 개발 시도보다 훨씬 더 고난이도의 기술과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 '고농축 우라늄'(HEU : High Enriched Uranium, 우라늄 235가 90%이상인 물질로 군사용으로만 사용된다.) 추출 기술을 축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한국과 서방의 배신감과 불신으로 인한 각종 對北제재에 대해 북한은 '공화국 압살책동'이라는 억지논리를 펼치며 점점 더 자신들의 핵무기 제조와 핵실험, 미사일 개발 등을 합리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보복전쟁(그전에는 나도 침공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단순히 침공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고 판단되어 '보복전쟁'으로 변경했다.)으로 북한이 21C초반부터 계속 불미스러운 움직임을 노출하여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미국에게 북한이 먼저 핵포기와 北美불가침조약 체결을 맞바꾸자고 제의하기도 했었으나 미국에 대한 국제 사회의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하자 다시 기존의 '벼랑끝외교(Brinkmanship Policy, 순전히 북한의 외교행태에 의해서 새로 만들어진 용어다.)'를 고수함으로서 한반도 평화의 구축과 공고화를 저해하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 거듭되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 선언과 부정 혹은 모호한 입장 표명 등으로 불필요한 동북아 정세의 긴장 상태를 조장하였고 2006년 7월 5일 6발의 미사일을 자의적으로 공해상에 발사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한글날이자 김정일의 권력승계일과 북한노동당 창당기념일 사이의 하루의 공백일에 한반도 역사상 첫 핵실험이라는 희대의 비극을 저질렀다.


- 국제사회의 발빠른 움직임과 대응 그리고 명백한 한계
북한의 도발적 핵실험에 당면한 세계 각국은 비교적 신속한 움직임을 보였다. 북한 핵실험 확인 당시 새벽녁이었던 미국 측은 사태 발생 4시간 여만에 공식 대변인 논평이 나왔고, 中日도 비슷한 시점에서 공식/비공식 논평을 쏟아냈다. 2개의 정권에 걸쳐 '북한을 자극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논리로 북한에 대해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던 한국 정부도 이례적으로 윤태영 대변인을 통해서 북한을 원론적으로 비난하면서 모든 사태의 책임이 북한에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UN차원에서도 즉각적인 비난성명과 함께 경제적/군사적 제재조치를 포함한 '유엔헌장 7장'을 언급하며 북한에 대한 전면적 제재조치가 가동될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타진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그 어느 국가도 북한의 행위를 비호하는 국가나 국제기구는 없다.

현재 북한은 스스로가 자초한 수많은 실책과 기만행위, 무력도발, 국제법 무시 등을 통해서 그 어떤 지지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완전무결한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 지위는 북한 스스로 획득(?)한 것이다. 그 동안 그들이 저지른 많은 행위들은 지금까지 있었고 또 앞으로 있을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대한 명분을 제공하였고 자신들이 제공 받은 국제원조의 명분을 상실케 하였다. 이제 세계는 모두가 하나되어 북한의 이와 같은 무력도발 행위를 분쇄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뜻을 뭉쳤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청와대 대변인 발표 전문 열기]


하지만 정작 북한에 대한 실질적인 제재 조치를 통한 핵포기를 이끌어 내려고 하니, 현실적으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제재의 카드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실험 직후 언급된 수많은 군사/금융/무역제재 조치가 이미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와 북한의 국제정치적 지위를 고려해 볼 때, 특출나게 효과를 발휘할 만한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여러 실증적 사례를 통해서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가 세계화와 상호의존을 통해서 자국의 부를 축적하고 확장하는 21C에서도 '자력갱생, 강성대국'(그러면서도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인도적 차원'이라는 미명 하에 원조는 끝없이 제공 받고 있었다.)을 부르짖는 저 처량한 세계 최빈국의 유일무이한 강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는 가장 강력한 對北제재 조치를 발동할 수 있고 발동해야 하는 동기를 부여 받은 미국 내부에서조차도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국제 사회의 고민거리는 핵실험 3일이 지난 현시점까지도 뚜렷한 북한에 대한 추가적 제재조치가 결정된 것이 없다는데서 증명되고 있다. (1950년 6월 북한이 한국을 남침했을 당시, 국제 사회가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하는데 딱 3일이 걸렸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그 동안 무작정 북한을 비호하던 韓, 中, 러시아가 북한의 후견인 역할을 지속하는데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한 일정 수준이나마 북한에 대한 제재 효과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 적(敵) 앞에서 분열하는 국내정세와 우방국들의 관계
우리가 직면한 더 큰 문제는 북한의 핵실험 실시 초기에 있었던 관련국들의 심리적 연대의식이 점점 희미해져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중/러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핵보유국이자 NPT체제의 주도 국가인 '러시아'는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도 불구하고 10월 11일 북한으로 곡물 12800톤을 실은 수송선을 출항시켰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기존에 있던 'UN의 대북식량지원 프로그램'에 의거한 지원이라고 변명했지만, 결코 시의적절한 행동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감싸안음으로서 탈냉전 이후 상실한 동북아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재고하고 앞으로 재추진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6자 회담 형태의 다자간 회의에서 지난날 중국에게 빼앗겼던 주도권을 재고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근거로 일정 수준 이상 회복하고 싶은 그들의 의지가 담긴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물론 러시아 측은 이러한 해석을 부정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 이후, 유례없이 강한 어조로 북한을 비난한 중국에서도 비난 성명 이후의 입장이 애매모호하다.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對北제재에 대해서도 초기의 과단성을 상실해가는 인상을 주고 있고, 기존의 對北지원의 감축 혹은 중단에 대해서도 선린우호관계와 북한 인민의 생활 개선 측면을 내세워 중단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내세웠다. (최근 있었던 對北송유관 원유공급 중단에 대한 입장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가장 중대한 국가안보적 위협을 당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은 더욱 극적이다. 초기 윤태영 대변인과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책임론'은 온데간데 없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한 핵심인 김대중 前대통령은 "햇볕정책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해괴한 이론"이라며 오히려 역성을 내고 있고 정부와 여당의 중책들은 하나둘씩 미국책임론을 거론하는 적반하장의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의 머릿 속에서는 김영삼 정권 시절 빌 클린턴 행정부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그야말로 북한이 해달라는 것을 다 들어주고 나서 약속 받았던 단 하나의 반대급부인 '핵프로그램의 포기'를 스스로 파기하고 자의적으로 NPT와 IAEA에서 탈퇴하고 KEDO와 주변국의 물질적 후원을 받은 '유예기간'동안 HEU기술을 축적한 그들의 배신과 기만행위를 망각해 버린 듯 하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북한을 비호하려 드는 중/러에 발맞춰서 함께 연대하고 문제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韓美日이 모두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우방국 간의 분열이라는 원초적인 문제도 점점 표면화, 구체화되고 있다. '그래도 군사적 제재는 불가하다'는 상황판단을 하고 있는 미국과 '필요하다면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는 일본, 여기에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평화통일의 환상에 젖어 있는 한국까지 3인 3색의 엇박자 속에서 상호공조의 여지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 현실에 대한 오판
여기에 한국 정부의 현실오판(?)이 한꺼풀 더 겹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후견인인 중국의 반대의견을 묵살하고 무력도발을 강행한 바 있다. 지난 7월의 미사일 발사가 대표적이며 이번 핵실험 강행은 핵실험을 강행하기 불과 1일 전인 10월 8일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공식적인 만류요청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10월 9일 기꺼이 그들의 계획대로 무력도발을 감행했다. 현실적으로 중국이 이제는 더 이상 북한에 대한 정치적/군사적 통제력을 가졌다고 여기며 믿고 따르기에 힘든 국제상황이 표면화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10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중국을 실무방문(Working Visit)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핵실험 직전에도 중국 후주석과 긴급히 전화통화를 했었던 그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마지막 희망(?)이라는 것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과감히 이 길이 아님을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한국 정부는 인정하지 못하는 듯하다.

분명 중국은 아직까지 최소한의 수준이나마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기 불과 20분전이나마 가장 먼저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핵실험을 사전공지한 유일한 국가가 중국이었고, 이 소식을 중국이 韓美日에 통보해야만 했던 점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완전한 고립무원을 자초하고 있는 북한이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중국만은.."이라는 미련을 버리지는 않은 듯해 보인다. 진정 북한이 중국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히던 "모든 국가가 적이다."라는 말처럼 더 이상 자신들의 맹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20분 전이나마 중국에게 알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어느 정도 노무현 대통령과 현 정부의 중국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치명적 위기 상황에까지 치달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의지하던(?) 중국이 우리의 이와 같은 위기상황을 해결하는데 효과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면 이제는 다른 카드를 과감히 뽑아들어야 한다고 본다. 중국은 더 이상 북한체제를 컨트롤하기 위한 효과적인 카드가 되지 못한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통치체제가 김정일의 유일적 정책선택 권한이 보장되어 있는가에 대한 반문을 해봐야 하는 시점에서 몇 번이나 실패한 중국 한 국가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은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카드를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다. (정부여당의 '미국책임론'과 같은 도발 발언과 그에 대한 버시바우 駐韓美대사의 유감표명은 우리가 가진 옵션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살행위의 일종인 것이다.)

협상에는 히든카드가 있어야 하고 대안적인 방법이 존재해야 한다. 상대가 미쳐 알지 못하는 우리의 선택 사항이 필요하고 첫번째 협상에서 실패하더라도 두번째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한다. 역대 어느 정권 시절보다도 뻑뻑해진 韓美관계의 오랜 협력관계를 감안할 때, 미국만큼은 한국이 언제든지 되돌아서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 방법으로 남겨두어야 함에도 이 정권은 현실을 지나치게 낙관하며 오판을 거듭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중국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의 등을 칠 수 있는 국가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노정부와 정부여당의 근시안적이고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 북한 핵실험 사태의 미래
앞으로의 전개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란 사실상 北美中이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정하든 하지 않든 북핵 위기에서 한국은 가장 치명적인 당사자이면서도 가장 무능력한 행위자로서 그 존재감을 거의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대북 지원에서 '돈폭탄'을 기꺼이 떠안아 국민여론의 맹폭 속에서 노정권과 정부여당이 햇볕정책의 고수를 운운하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사태 해결을 위한 최종적인 칼자루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 이외에 방법이 없다. 때문에 북한이 가장 중요한 행위자다. 북한은 이미 2차 핵실험을 예고해 두고 있고 국제연합의 제재조치는 이와 같은 북한의 2차 핵실험을 염두해둔 낮은 수준의 제재조치(PSI와 금융제재조치가 상당부분 초안에 비해 완화되어 있다.)를 결의안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확실해졌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제재 완화는 초안대로 제재를 할 경우, 2차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의 북한에 대한 징벌적 제재조치가 군사적 압박으로 직접 연결될 수 밖에 없는 초고강도 조치이기 때문에 좀 더 국제여론이 받는 충격파를 완화하고 미국의 對北제재가 좀 더 높은 당위성과 국제여론의 후원을 받기 위한 사전 포섭의 하나로서 이해된다. UN의 현재 제재조치를 북한이 '공화국 압살책동'이자 '선전포고'로 받아 들이든지 말든지 이미 북한은 전 세계가 공인한 악의 축(Axis of Evil)이며 '핵비확산'이라는 절대善을 부정하는 존재로 낙인 찍혔다. 그들이 예고한 2차 핵실험은 이러한 국제여론을 더욱 공고화할 것이며 북한을 오늘의 고립보다도 더 심각한 수준의 초고강도 고립 상황을 야기할 것이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제2, 제3의 핵실험을 감행하고 최악의 경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보유국을 인정하기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는 대승적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잠재적 후견인'의 지위를 포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의 핵무장은 북한을 핵심 주적 중 하나(일본 국방백서의 제1주적은 러시아이지만, 현실적인 제1주적은 '북한'이라는 점을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로서 규정한 일본의 핵무장을 초래할 것이 확실하다. 또한 실질적으로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으로 인해 세계에서 징병제를 실시하는 단 3개국만 중 하나인  한국의 핵무장 혹은 1992년 1월 1일 발효된 '한반도비핵화선언' 이후 철수된 미국의 전술급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를 통한 직접적 핵우산 정책이 재개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은 대륙으로부터 지속적이며 공식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독립국으로서의 대만'을 추구하는 대만 첸총통으로 하여금 미국의 핵무장 저지 명분을 약화시키며 이를 통한 미국의 對中협상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이런 '핵도미노 현상' 발생은 중국의 동북아에서의 지역적 패권 확보에 결코 우호적 환경이 아니다. 중국은 '북한이라는 밑 빠진 독'과 '핵무장한 동북아' 사이에서 최종적으로 선택을 요구받을 것이며 중국의 선택은 반드시 후자에 치우치게 될 것이다.


북한 최고 고위층과 최고급 정보에 가장 정통한 인물 중 하나로서 한국에 귀순한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 중 한 명이자 김일성/김정일 父子를 있게한 '주체사상'의 창시자 황장엽은 민주주의 이념정치철학연구회 주최로 열린 강좌에서 북한은 1993년 1차 핵위기 당시 이미 지하핵실험 준비를 완료했었음을 밝힌 바 있다. 동시에 무능무지(無能無知)의 이종석의 통일부 졸개들은 노 정권의 햇볕정책 옹호 분위기에 호응하며 자신들이 무능하여 핵실험 사태를 초래했을 뿐이라며 자신들의 노선을 옹호하고 나섰다.

1994년 제네바핵협정을 맺을 당시 韓美가 선택한 북한 핵위기의 해결방안은 지금 그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北美양자 간의 대화를 통한 회담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한국은 지금처럼 북한으로부터 협상의 당사국으로서 인정받지 못하여 미국하고만 대화하려는 북한의 의지에 따라 미국을 통한 대리협상을 벌여야 하는 수모를 당했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치욕이다. 북한이 요구하는 북핵 해결방안으로서의 요구사항들은 '우리민족끼리'를 주구장창 노래 부르던 그들이 최후의 순간까지도 자신들의 민족이라는 '한국'을 배제하고 오직 미제국주의자들과만 대화하겠다는 의지의 재천명인 것이다. 그것마저도 한국은 감정적 치우침에 젖어 北美양자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감정에 치우친 한국 스스로의 역할 포기는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맺어진 한국전쟁정전협정에서 이승만 前대통령이 감정적으로 협정 조인을 거부한 탓에 지금까지도 북괴로 하여금 한국전쟁 당사자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감성이 아닌 이성에 눈을 뜰 때다. 더 이상은 절대 안된다. 눈 앞의 적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은 같은 민족이기 이전에 우리의 제1 적성국이다.


P.S. : 10월 9일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개인 생활이 있어서 여기저기 좀 쫓기다 보니 글의 정보가 일관성을 약간 잃었다는 느낌이 든다. 어차피 북한 핵실험의 후폭풍 문제는 현재진행형이고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두고두고 질겅질겅 씹을 자일리톨 껌과 같은 존재다. 오늘 이 글에서 미숙하고 불충분한 의견피력은 이후에 조금씩 보완되고 수정될 것이기에 한 번의 퇴고도 거치지 않은 채 그냥 이대로 글을 내 블로그라는 배 위에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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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가 된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북한의 핵실험 강행 당일날 예상되는 대북제재조치 중에 하나가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 Weapons of Mass Destruction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이었다.

사실 PSI는 국제법이나 국제기구 같은 것은 아니고 국제행동 혹은 행동강령 정도되는 일종의 반강제적 조치다. 뚜렷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현재 불과 14개국만이 가입되어 있어 대외적으로 큰 영향력은 행사하고 있는 편은 아니지만, '국제적 테러리즘'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많은 국가들로부터 불량국가(Rugue State : 어감상의 문제는 있지만, 그 정도 문제는 무시하자.)의 지원을 받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도발행위로부터 자국의 국가체계와 자국민안전을 수호하는 목적으로서 잠재적이고 범용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와 같은 국제행동강령에 대해서 반발하는 국가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 같이 민주적이지 못한 정치체제를 가진 권위주의적 정부 형태를 가지고 있거나, 국제적 신임이 낮은 '결코 우러러 볼 수는 없는 수준의 국가들'로서 이와 같은 행동강령이 자국을 겨냥하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북한도 대표적인 사례이며 한국의 PSI서명도 '북한을 자극한다'라는 국내 일각의 목소리와 북한의 공화국 압살책동이라는 대남비방을 우려하여 현재 가입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현재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PSI문제는, 우리가 가입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국제연합(UN)의 결의안에 PSI의 제재조치를 적용시키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가입여부를 떠나서 국제연합 회원국이라면 누구나 UN의 지침을 존중하고 준수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PSI참여는 타율에 의해서 강제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은 이미 당/청/국회가 사분오열하며 그들 특유의 분열적 무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청와대 측에서는 기본적으로 UN의 결의를 준수할 것이라고는 하지만, UN결의를 준수하는 선에서 꽁수를 쓰려고 머리를 둘리는 소리가 여기 우리집까지 들리는 것만 같다.


나는 북한을 북한괴뢰도당이라고 부르며 철저한 반공론자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김정일 세습왕조를 증오한다. 하지만 타율에 의한 PSI를 통해 불필요한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때는 명분을 챙기며 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입장에 서길 희망한다.

그런 점에서 국제연합을 통한 대북제재를 위한 PSI추진은 빈틈이 보인다. 그것은 어차피 현재와 같은 시국에서 한국의 영해는 북한 선박들에게 사실상 봉쇄된 영역이고 공해상의 선박에 대한 감시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PSI는 우리에게 일종의 선택사항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면 일종의 '소극적 직무태만'이다. 한국이 잘하는 전시행정적인 보여주기식 PSI활동을 수행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서해 상의 공해를 통하는 북한 선박에 대한 검열은 중국에게 그 역할을 일임하고 동해로 지나는 선박은 일본에게 일임하면 된다. 어차피 북한 측에서는 한국이 자신들의 선박을 검열하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여길 것이니, 반드시 받아야 하는 조치라면 비교적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중국측의 검열을 선호할 것이다. 동해상의 검열 문제도 일본이 노무현 정권 치하에서의 한국측 검열을 신뢰하지 못할 것이니,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신들 손으로 모두 검열하라고 요청하면 사상 초유의 안보정국인 일본측으로서는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피해갈 길이 있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대신해줄 사람이 있을 때는 그들에게 의지하고 우리는 다른 활동을 하면 되는 것이다. PSI 활동에 대한 윤태영 대변인이 말하는 청와대측 입장이란 것에 사실 거의 기대하지 않지만, 현명하고 효과적인 정책이 선택되어지길 희망한다. 별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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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과 사회적 계급의 고착화

우리에게 쌀 수입시장 개방으로 유명한 우루과이 라운드가 진행되던 시기부터 농산물 시장의 개방 요구와 함께 부각된 가치가 지적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의 등장이다. 지적재산권은 문자 그대로 지식에 기반한 생산/저작활동을 통해서 창출된 유무형의 가치에 대한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지식기반 산업이 본격적으로 부각되면서 지식도 하나의 생산을 통한 상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상품들이 다른 여타 산업의 생산품들처럼 국제법/국내법 등을 통해서 규제되고 보호될 필요가 있따는 선진국들의 공감대에서 출발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숙지하고 있는 지적재산권의 요체다. 이러한 새로운 재산권 개념의 등장은 제3세계 후발산업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지적 재산을 많이 보유한 선진국들이 취할만한 당연한 행동변화이며 산업화가 극상까지 이르면서 이 사조는 전 세계가 공감하는 정도의 수준에 이른 새롭게 보편화된 경제관이다. 단지 각 국가가 처한 경제적 입장에 따라서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를 부정하는 국가는 없다.

우리 한국은 어떤 면에서 이런 지적재산권 중시라는 국제적 조류에서 상대적으로 수혜자에 가깝다. 아직도 지구상의 과반수가 넘는 국가들이 변변한 산업 기반조차 없는 현실에서 IT, 반도체, 철강, 조선 등의 제한된 영역이기는 하지만 한국과 한국의 기업들은 '세계일류'의 입지를 점하고 있고 적지 않은 특허를 통한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의 공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에서 한국제품이나 유무형의 한국의 지적재산권을 모방, 탈취, 불법사용, 산업스파이 행위 등을 펼치는 기사를 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낯설고 어색한 것이 아니다. 국민소득 80달러에 불과하고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하면서 춘궁기를 걱정하고 콜레라에 허덕이던 한국 반세기 전 모습에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는 동안 보여준 우리 국민들의 노력과 지도자들의 혜안, 국제적 환경 등은 우리가 곧잘 비교하는 '선진국'들 만큼은 안되어도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한 경제 규모와 지적재산권을 가진 국가로 발돋음했다. 그리고 우리가 어렵게 획득한 이러한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와 기업들은 WTO와 각종 국제법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지키고 수익사업을 통한 국부 신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대학의 도서관을 본다. 지식의 성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정도로 많은 정서를 자랑하고 국회도서관 데이터베이스 검색/출력, 합리적인 범위에서 희망도서에 대한 주기적 업데이트 등으로 지식의 전당 대학 도서관을 모두에게 개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은 자유를 누림으로 인해서 그 곳 대학 도서관이 지적재산권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곧잘 망각한다. 도서관에 있는 많은 장서들 모두가 지적재산권이 있으며 그것들이 보호 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인식하기 힘들게 하는 공간인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망각하려 애쓰는 곳인지도 모른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3달 반이라는 기간동안 장기대여하여 한 학기동안 자기 책 마냥 필기를 하고 밑줄을 치며 강의가 끝나면 책을 반납한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인쇄소에서 책을 제본한다. 그리고는 제본한 책의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느니, 책이 삐뚤게 제본됐다느니 하면서 불평한다. 등록금보다 갑절은 될 법한 돈을 술값에 쓰면서도 책을 사는 일에는 한없이 가난한 존재가 된다. 이러한 지적재산권의 무덤인 대학도서관에 변화하는 21C의 조류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지적재산권의 칼바람이 불어온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 시작은 미미하다. 한면을 복사하는데 4~10원 정도의 다소 느낌이 약한(?) 단위의 경제논리를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잘 줍지도 않는 10원짜리가 이 지적재산권이라는 새로운 경제분야에 투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약한 단위여서 체감이 오지 않을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레포트나 연구논문을 하나 작성하는데 보통 수백 페이지에서 수천 페이지까지 인쇄를 하게 되니 경우에 따라서는 금전적인 문제가 제법 크게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미 조금씩 인쇄를 하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는 시작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를 목적으로 금전적인 지출을 독자들에게 강요하여 그것을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서 실행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그리고 그 정책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경제 분야가 새롭게 탄생되었다는 사실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정적으로 한 번 파생되기 시작한 경제논리는 그 속성에 의해서 결코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2천년전 예수 박해 시절에 존재하던 농경과 매춘이 21C의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산업화/상업화되어 창궐(?)하는 것처럼 한 번 창조된 경제 분야는 그 속성에 의해서 끊임없이 자기생존을 하려하고 자기확대를 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는 쌀을 살 때는 돈을 주어야 한다는 것처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조금씩 독자들에게 '책을 복사할 때는 돈을 내야 한다'는 사고로 스며들게 된다. 그것은 원가의 몇 배에서 수십배에 이르는 1회용 비닐봉투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정착(?)단계에 이른 현재처럼 망각의 동물인 인간은 언젠가는 그것에 내가 왜 돈을 지불해야 하는지조차도 망각하게 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증명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그 지불의 이유가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하는 시기부터 이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상금(현재 학교 도서관에서 받고 있는 비용의 명목은 '지적재산권자에 대한 보상'이다.)은 인상에 인상을 거듭한다. 그리고 그 인상하려고 하는 가격은 소비자와의 줄다리기 속에서 무언의 합의를 통해서 조정된다. 오늘날의 한국에 존재하는 불법깡패노조들이 저지르는 임금인상 방식과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다.


나는 점차 '지식의 세습'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이미 오래 전부터 무형적 형태로 그려지고 인식되어지던 감정이었지만, 어제 처음으로 유산자 계급에 한해서만 고급 지식이 전달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눈으로 확인했다는 사실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지식의 세습을 통한 사회적 계급의 고착화를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경제적 가치만큼이나 사회적 신분과 계급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인 지식이 고도산업사회/고도자본주의사회가 되어감에 따라 경제적 가치가 세습되는 것처럼 지식 또한 세습될 수 있음을 직접적인 경고를 해야할 때가 왔다고 여겨진다. 지식의 세습은 무산 계급의 신분상승의 욕구를 한차원 더 강하게 압박하고 무산계층의 패배주의적 사고를 확산시켜 중산층 이상의 기득권 계층의 사회적 지배를 공고화하고 신분의 사회적 이동이 막히는 진화/발전하지 않는 폐쇄적 사회의 도래를 경고할만 하다.

어쩌면 이미 이와 같은 지식의 세습은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TOEIC/TOEFL시험비용이 10만원 단위를 넘을 예정이고 각종 전공서적/전문서적들의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인상되기만 하고 있다. 지식의 무한 공유로 일컬어지던 전자도서관도 기득권층이라 할 수 있는 출판 업체과 로비를 받은 정재계 주요 인사들의 반발에 의해 반신불수의 절름발이 도서관으로 전락한데다가 그나마도 찾아보기 어렵다. 인터넷 서점들의 도서에 대한 저가 공세를 막기 위해서 출판사 측과 공조한 도서출판 '두리'의 대표이사 이자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우상호가 발의한 도서정가제(정식명칭은 '출판 및 인쇄진흥법 개정안') 덕분에 인터넷 서점들의 도서 저가 판매를 통한 지식의 원활한 공급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사소한 것들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움직임들이 '시작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 발동이 걸리고 하나의 조류를 형성하게 되는 순간 그 조류의 흐름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조류는 결코 무산계급자들에게 유익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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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류근일.

[Photo : 한겨례]

류근일은 언론인이다. 조선일보의 논설주간이사와 주필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소위 말하는 '좌빨'(기사 덧글에서 배운 멋진 표현이다.)놈들은 수구꼴통이니 친일 매국노이니 하면서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뚜껑을 열 것이다. 그들에게는 좌/우, 진보/수구 만이 존재하며 중간자적 입장은 회색분자가 되어 인터넷 인민재판에 회부시킨다. 그리고 이 땅을 이끌어가는 이들에게는 핏덩이 같을 동정녀처럼 순진한 우리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한 인간의 인생과 평생공적을 잿더미로 만든다. 그들이 추종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자애롭지만, 그들을 배반하는 자에 대해서는 어떠한 예외도 없다.


그러나 언론인 '류근일'은 실제로 '좌빨'들이 소위 말하는 '애국적 민주투사'(좌빨들은 언제나 투쟁적 용어를 많이 쓴다.)이다. 류근일은 5.16과 박정희 군사정권에 저항하며 7년의 징역을 살기도 했다. 1997년 출간된 그의 저서 '권위주의체제하의 민주화운동 연구'는 그의 성향을 일면 노출시키기도 한다. 그는 지금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에 전면에 나서며 '폭군' 김정일 정권 규탄 대오의 최전선에 있다.

그들이 말하는 소위 민주투사는 어째서 그들이 말하는 수구꼴통언론의 주필이사직까지 수락하였는가. 어째서 그는 보수적 성향임을 자처하는 나조차도 보기가 거북할 정도인 '김사모(김정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등의 표현을 써가며 이 땅의 좌익용공세력들의 준동을 규탄하는가? 물론 내가 그들 좌익용공세력들의 준동을 좌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류근일의 이번 글은 다소 감정적인 면이 컸다. 그런 그의 글에 역시나 X도 모르는 좌빨 녀석들은 수구꼴통의 허울을 뒤집어 씌워 놓고 있지만, 나는 그의 이런 글에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그는 왜 이토록 분노하고 증오심에 몸서리치고 있는가. 왜 이런 찌질이들의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것이 뻔한 글을 썼는가.

이러한 나의 의문에 대한 한 논객의 말이 인상에 남았다. 스스로가 옳다고 선택한 길을 가기 위해 변절과 오욕의 굴레를 거부하지 않는 '양심적 지성'의 모습이라는 것. 잘못되어 가는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보수 특유의 아름다울 수 없는 청사진 때문'에 대안을 제시하길 거부하고 찌질이들의 비난과 모욕이 두려워 침묵하는 많은 보수 지식인들의 자각을 촉구하는 거대한 분노.

비난 받는 것이 두렵기에 은둔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지식인과 지성인이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니다. 새삼 그의 '오만한 용기'가 부럽다.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말라던 선조들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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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집에서 편안히 노후를 보내며 쉬면 안되겠니?

[Photo : 조선일보]

2년전 상해임시정부 시절의 이승만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조순형 씨(적어도 '쓰레기' 노통보다는 존중하고 싶은 의미에서 '씨'를 붙였다.). 당시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을 찍었음에도(오후 2시쯤에 나한테 투표하라고 문자 메시지가 오더라. 과연 누가 보냈을지 누구라고 콕 찍어 지목하면 노빠들이 날뛰려나?) 불과 1년도 안되는 그 임기 동안의 온갖 왜곡과 망발에 질릴데로 질려버린 나는 조순형의 탄핵을 지지하는 34%의 대중들의 한 명에 소속되었다.

하지만 군사정권을 떠올리게 했던 이 정권의 언론과 인터넷 포털/친위매체를 끼고서 행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탄핵의 정당성은 난파되었고 탄핵 정국은 17대 총선으로 이어지며 속칭 '탄핵 정국' 속에서 나라를 구했다는 '헌법재판소'(정확히 1년 뒤, 헌법재판소는 나라를 망칠 존재로 전락했다. 정부의 공작과 대중들에 의해서. 누가 옳은거지?)와  17대 초선 의원들은 탄핵이라는 상황을 통해 여린 국민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그 결과는 민주당과 하늘을 함께 할 수 없다며 격렬히 다투고 갈라져 나온 미니정당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확보다. 그리고 그 선거 결과는 '칠십 노인' 조순형의 몰락이었다.


지난 2년여의 시간동안 정부와 여당은 정책 노선의 일관성도 경제지표의 긍정적 측면도 이루지 못한 채, 21C에는 더이상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 이데올로기 투쟁에 올인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소위 주사파 출신의 386세대이다 보니 군사정권의 탄압에 '한이 맺힌 자들'인 탓에 그들의 손에 쥐어진 권력은 과거에 대한 보복과 응징 그리고 그들의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물질적 보상의 수단으로서만 활용되었다. 정국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격렬하게 전근대적인 이념의 투쟁으로 빠져 들었고, 추락하는 경제지표 속에서 자본가 계급에 대한 적대 세력화 작업이 끊임없이 전개되며 자신들의 실정과 나쁜 성적표에 대한 국민들의 눈을 가리려 했다. 신문 지상에는 하루에소 수십 건씩 강남과 강북의 경제적 측면을 비교하는 통계와 연구논문 혹은 근거도 없는 궤변으로 중무장한 기사들이 쏟아졌다. 이제 더 이상 수도 서울은 하나의 도시가 아닌 소위 강남과 다른 지역구의 이중 구조를 가진 도시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펼쳐진 모든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정부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유례를 볼 수 없는 대참패를 연속했다. 지방 선거에서는 그나마 몇 석 건지기라도 했으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여지껏 단 1석도 따내지 못했다. 그 때마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했다. 진보좌파 정권이 되겠다던 정부는 선거 때마다 말하는 국민들의 뜻이라던 그 신호들을 어떻게 이해한 것인지 전형적인 자본주의 논리인 자유무역협정을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고 TPA 만료가 되기 전인 8월 중에 체결하려 한다. 그들이 '자본가 정당'이라고 지목한 한나라당조차도 현재 추진되고 있는 FTA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진보는 좋은 것이고 보수는 나쁜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던 열린우리당 신기남 같은 사람들이 자칭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이 보수우파정당이라고 규정한 열린우리당을 지금도 '진보'이고 '옳은 정당'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제는 궤도를 수정할 때가 된 것 같다. (정작 웃긴 것은 그 자신도 출신이 보수정당이며 하늘을 함꼐 할 수 없다며 갈라선 민주당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참으로 웃기는 사실이다. 잠시 진보세력들이 잘하는 과거 검증을 살짝 해봤을 뿐, 별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 사람의 이념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이제 2년 후의 오늘이 되었다. 역적이자 매국노로 매도당하던 조순형이 돌아왔다. 그것도 국민의 손에 의해서 '나라를 구할 사람들'이라던 열린우리당 후보를 짓밟고 당당히 당선되었다. 제발 재기할 수 있게 싹만이라도 살려달라던 정동영 前당의장의 '패배 시인'(사실 이것도 웃긴 것이 불과 지방 선거일 뿐이었다. 총선이 아닌 것이다. 그들 특유의 '오버'와 '감정에 대한 호소'였을 뿐이다.)과 눈물의 퇴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계속 헛소리를 했고 이제는 정부여당마저 대통령에게 질려 버렸는지 당의장까지 지낸 문희상 의원이 공개적으로 동요하는 의원들을 다독거려야 할만큼 당청 갈등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으며 해결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은 더이상 '진보'도 '나라를 구할 사람들'도 '옳은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단지 인터넷 속의 세상 모르고 풋내기 냄새가 가득한 젊은이들 사이에서만 그들의 힘을 근근히 유지하고 있을 뿐, 실제로 세상을 움직이고 또는 움직여 왔고, 앞으로도 움직일 사람들에게서는 완전히 그 싹이 잘려져 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그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의 명백한 증명이 '탄핵의 주역' 칠십노인인 조순형의 컴백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당시 정당하고도 영광스런 탄핵의 주역이었으나 공작과 선동에 의해 좌절한 조순형에 대한 '국민들의 용기 있는 사면과 용서구함'을 환영한다. 홀로 총대를 메고 달려든 그의 용기와 결단은 근래 보기 드문 너무나 감동적인 한 정치인의 '조국을 위한 자폭행위(?)'였다. (설사 탄핵소추가 확정되었라도 조순형이 과연 무사할 수 있었을까? 나는 새삼 반문해 본다. 그렇기에 그것은 자폭행위였다.) 그는 그것으로 끝냈어야 했다. 그의 아름다운 용기는 과거로서 '추억'되어졌어야만 했다.

하지만 '늙은늑대' 조순형은 그러지 못했다. 그의 정계 복귀는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상징적 조치다. 시대는 더 이상 74세 노인의 보수가 아닌 3~40대 젊은 기수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보수를 원한다. 시대는 더이상 전쟁 경험자들의 시대가 아니다.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후 세대들이고 평화지향적이며 탈이념적이며 실용주의적이다. 고집인지 아집인지, 보수인지 수구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지금의 조순형과 한나라당/민주당의 행보를 보고 있으면 저 병신머저리 인간개쓰레기 같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대칭점에 있는 그 무엇을 보는 것만 같다. 대안 없는 정치의 대안 없는 국민들의 현실이 비참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런 대안 없는 현실조차도 바로 우리 국민들의 수준이 그것 밖에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걸맞는 정부를 가진다. 단지 그 뿐이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국민중심당이나 무소속 대통령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까지 하다.)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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