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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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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kir Hussain - No Name


나이는 내가 2살 더 많은데, 영혼은 네가 더 성숙하구나.

난 내가 주관이 뚜렷하고 선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넌 나보다 더 주관이 뚜렷하고 선이 굵구나.

그것이 내가 널 더욱 놓치고 싶지 않은 이유다.
네가 때때로 흔들릴 나를 더 건실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런데 네가 흔들릴 때는 내가 어떻게 도와줘야 하지?
내가 더 약하면 버팀목이 되어줄 수 없는 건가?
아니면 그 정도의 약한 지지대로도 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걸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확인해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꼭 필요한 존재이고 싶다.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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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경험들.

낯선 경험 1.
운동화를 사려고 한다. 내가 길에서 보면서 마음에 들었던 스타일이 캔버스화라고 하는 녀석인가 보다. 내가 아는 신발 브랜드는 나이키, 아디다스, 아식스, 스프리스, 케이스위스 수준이다. 옥션에 가서 뚝딱뚝딱 클릭질.
케이스위스 신발 딱 1개 떴다. 나이키 신발은 가격도 가격이거니와(20~30만원은 너무~) 육중한 디자인이 부담만땅이다. 아디다스는 안예쁘다. 스프리스는 그냥 중간쯤. (스프리스/에버레스트 브랜드를 최홍만 때문에 좀 선호한다.) 결국 미정인 채로 일단 패스.


낯선 경험2.
며칠 전에 서울에 갔을 때 재나와 이야기를 하다가 '엔지니어진'이야기를 했다. 난 사실 '엔지니어진'이 뭔지도 모르지만, '예쁘다'는 말에 하나 사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오늘 청바지를 사려고 클릭질을 했다. 일단 '다 똑같아 보이는 청바지들' 사이에서 착시 현상마저 느끼는 가운데 뭘 사야할지 모르겠다. 일단 의상은 온라인 구매가 부담스러워서 매장에 가서 입어보고 사기로 결심했다.


낯선 경험3.
난 27 평생(?)을 펜돌이로서만 살아왔다. 펜돌이는 그야말로 펜대 밖에 굴려본 적이 없는 '백면서생'의 하나다. 공대 근처에는 27 평생(?)동안 딱 3번(여행갔다가 인하대의 공대건물에 가본 것까지 포함해서.) 가봤다. 공대 친구? 당연히 없다. (컴공이 하나 있지만, 자주 못보는 사이이고 컴공을 공대라고 부르면 진짜 공돌이들이 화낸다.) 그런 내가 아버지 따까리 짓을 하기 시작하면서 공돌이 짓을 하기 시작했다. 거의 2년 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며 후회하지 않고자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질감을 많이 느끼고 내가 가는 길에 살짝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내 손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면 마음이 달라지려나? ^^.. 아버지께서 내게 권하신 길이니, 나 잘못되는 길을 권하시지는 않으셨으리라 굳게 믿는다.

그리고 새삼스레 오늘도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가다듬으며 초심을 지킬 것을 다짐한다. 그렇게 내 '세번째 삶'은 '네번째 삶'의 초석을 닦기 위해서 어설픈 달리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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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 Godspeed you Black Emperor's Official Website]

Nujabes - Leeter From Yokosuka


다음에 서울에 가면 무슨 공연을 보러 가지? ^^..
요즘의 나는 마음이 너무나 홀가분하고 늘 한켠에 약간의 행복감을 지닌 채 생활한다. 웃음을 지을 때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 또한 최근 1년 사이의 내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놀라울 정도의 낯선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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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탄 택시

새벽에 탄 택시.

보수석에 앉자마자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나 보다.
기사분이 이 새벽녁에 왠 한숨을 길게 쉬냐고 그러는 걸 보니.
"그냥 오늘 한숨 쉴 일이 좀 많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맥주 한 병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그나마 마지막에 약간 남겼다.
한참 길을 걸었더니 좀 깨는가 싶더니, 집에 와서 앉아 있으니 또 머리가 아프다.


올해 1월은 시기가 시기여서 그런지, 너무 많은 일들이 내게 펼쳐진다.



[##_Jukebox|cfile2.uf@224F5C3A5877F0FA2BD7C5.mp3|11-January.mp3|autoplay=0 visible=1|_##]
Hope of the State - January
[Left,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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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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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atos - Hypnotique
[Timeless, 2002]


오늘 하루는 너무나도 해피였다.

동시에 너무나도 우울했다.


둘 중 어느 것이 진실이지?

내 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항상 불완전한 채로 존재한다.

난 아직 잘 모르겠는걸?
 
 
한편으로는 내 안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나의 다른 모습이 다시 조금씩 깨어남을 느낀다.

지금의 나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조금 의외성을 느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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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기억과의 조우..






이 두려운 설레임을 품고서 내가 오늘 잠을 잘 수 있을까.




Air - Lost Message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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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다시 생각나는 그 날..

오래간만에 외박을 하고 돌아와서 그런지 몸이 내 몸 같지 않고 허리도 뻐근해서 거실의 발코니쪽 칸막이 창(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을 열고 전기렌지에 은박지를 깔아서 양념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며 TV를 봤다. TV라는 매체와 그다지 친근하지 않은 탓에 내가 보는 TV프로그램은 개그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그리고 '게임방송' 뿐이다. 이번에 스타리그 결승전이 11월의 어느 날에 펼쳐지는데 그 날짜가 참 아무 의미 없으면서도 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날로서 내게 다가왔다.

* * * * * * * *

그 날은 내가 대학입학을 위한 시험을 쳤던 날이다. 그 해 수능시험을 앞두고 2차례나 병원에 장기입원을 하며 수술을 하여 성적이 왕창 떨어져서 재수를 한다고 책에서 손을 놓고 몇 달을 방황을 하다가, 무슨 아쉬움 탓인지 마지막 한 달도 안남은 시간동안 간신히 책을 보는 둥 마는 둥 몇 글자 보고서 시험을 쳐서 그냥 그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진학했다. 원래 하고 싶었던 것과는 전혀 무관한 대학과 학과에.

지금와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그 때 정말 재수를 했거나, 아프지 않아서 수능을 잘 치뤘다면 아마 지금쯤 나도 최근 농성을 벌이고 있는 교대생 파업전선에 뛰어들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짓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왜냐하면 21살까지의 나는 지금 돌이켜 보건데 어떠한 문제의식도 탐구의식도 없이 정해진 루트를 아주 잘 따라가는 모범생 타입이거나 순종형의 그런 타입이었고 지금의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의 인간형 중 하나였다.

* * * * * * * *

맘에 들지 않았던 대학이었지만, 난생 처음 경험해 보는 이성관계라는 것은 학교가 너무 가고 싶어지는 곳으로 만들었다. 고교생 때만 해도 기껏 즐기는 유희라고 해봐야 오락실에서 King of Fighters라는 게임을 하는 것 뿐이었는데도 그것에 너무나 만족해 하던 단세포적인 나는, 나와는 다른 性을 가진 사람과의 관계가 이토록 흥분되고 즐거운 것이었는지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그런 존재였다. 고2때 이웃의 여고와 5:5 미팅을 하는데 나가자고 애들이 제의했을 때도 단호히 거부하면서 내가 왜 그 애들을 만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그런 순진무구한 애였으니까.

* * * * * * * *

한 여자를 만났다. 소위 말하는 요조숙녀 타입이랄까. 내면은 좀 복잡다양한 그런 사람이었지만, 겉으로 풍기는 이미지와 언행은 요조숙녀의 전형이라고 해도 될 법한 그런 여자였다. 자기 관리를 참 잘하는 애였으니.
어느 날 그녀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녀는 내가 너무 답답했던지 '순진빵'이라고 구박을 했다. 아마도 윗단락에 있는 저런 무지한 모습들에게서 오는 답답함이었으리라 여겨진다. 그 애 앞에서는 항상 버벅거리고 어리벙한 모습의 풋내기였던지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버벅거리다가 순간 머릿 속에 번뜩였던 당시 TV에서 광고를 하던 '국찌니빵'이 생각나서 "얼른 커서 국찌니빵이 될께."라고 대답해서 그녀의 어이없는 웃음을 유도하여 제법 위기를 잘 모면(?)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 발랑까진 녀석 중 한 명이 된 나에게 다소 어울리지 않았던 소시적 모습이다.

* * * * * * * *

하필 그 해 내가 친 수능과 그녀가 함께 오버랩이 된 까닭은 그 게임방송의 스타리그 결승이 하던 날이 3가지가 모두 같은 날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수능을 친 날은 그녀가 태어난 날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그 때의 나는 앞으로 내가 다시 할 수 없을 수준의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그녀에게 품고 있었다고 되새겨 본다. 때문에 가장 오랫동안 목을 매고 있었지 않았을까 하고 되새김질해 본다. 지금은 다른 여인에게 호감을 품고 있지만, 얼굴을 못본지도 몇 년된 그녀가 이즈음만 되면 떠오르는 까닭은 지금의 내가 그 때만큼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없는 더럽고 때묻고 오염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그녀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나는 아마 지금도 앞으로도 다시는 그녀에게 했던 것만큼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다시 다른 여인에게 쏟아낼 자신이 없다. 속물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여인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나의 머리는 그것을 끊임없이 부인할 것이다. 나 스스로 나의 치부를 감추고 나를 합리화하려는 작업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나를 정화하고 필터링하는 것에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슴'은 안다.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다시는 그런 날들이 올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 슬프다.

Vince Guaraldi Trio - Never, Neverland
[Vince Guaraldi Trio,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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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배를 타기에 부끄러워지는 그들


같은 학교의 학생들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수능시험이라고 하는 비능률적인 인격평가 행위(한국에서는 수능을 잘치는 사람은 평생 그 사람의 인격이 그 수능 점수에 위계적으로 매겨진다.)에 의해서 유사한 지적 수준과 인격 수준을 가진 사람들끼리 헤쳐 모인다. 때문에 적어도 같은 학교에 있는 사람들의 지적 수준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레벨이라고 외부인들에 의해서 평가되어진다.


글쎄.. 난 그 말에 동의하려니 너무나 불만스럽다. 어디 하루이틀 있는 일은 아지만,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면서도 너무나 멍청하고 아무 생각없는 듯 행동하는 강의실의 후배들 혹은 동기들을 볼 때마다 정말이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1주에 20시간 정도 밖에 안들으면서 십몇 만원씩 하는 최고 해외유수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온 사람들의 대학강의가 한 달에 수십에서 수백만원씩 주는 대학생 과외에 비해서 값싸고 하찮게 느껴지는건지, 아니면 고교 시절에 학원과 과외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잠이나 자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는 그들의 불량하고 불손한 강의 태도와 가련하고 애처로운 지적 수준을 보고 있자면 저런 머저리들과 내가 도매급으로 취급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청난 짜증이 난다. 도대체 그 천한 대가리에는 술처마시는 것과 소개팅과 빠구리만 들어 있는 건가?


그래 차라리 몰라서 입 다물고 있는 애들은 어쩌면 정말 양반일런지도 모른다. 그 무식함을 타인에게 전파하지는 않을테니. 그런데 진실로 짜증나는 것은 X도 모르는 놈이 존나게 나댈 때다. X도 모르는 놈이 아집에 빠져서 사건의 진실 관계조차도 모르는 주제에 자신과 그들 세계의 궤변을 마구 토해내는 비극에 직면할 때, 사실 관계과 이론에 근거하여 그들을 설득하려 하는 나와 내 친지들의 노력이 너무나 소모적이고 비능률적으로 느껴진다. 무식한 놈이 아집으로 똘똘 뭉쳐서 그 무지몽매함을 찬란하게 발현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녀석의 궤변을 이성과 합리로서 짓밟아 버리고 싶은 의지조차 꺾여버린다.

점점 이 무지의 소굴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내 가슴 한켠에서 자라고 있다. 내 삶의 가장 소중했던 한 부분인 이 곳에 대한 애정이 점점 시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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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

< 전  략 >

사진 촬영 다음 날인 1968년 크리스마스.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이렇게 썼다. "지구의 참모습. 영원한 정적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그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 인류가 다 함께 그 위에 타고 있음을 떠올리게 된다. 영원한 찬 공간 속에서 홀로 밝고 사랑스럽게 빛나는 그 곳을 공유하는 형제들. 이제야말로 서로 진정한 동지임을 깨달은 형제들임을 떠올리게 된다."

- Al Gore, "An Inconvenient Truth" (2006) 中에서..

세상에서 가장 영예로운 문명화의 길을 걸었던 인류 역사상 '마지막 제국'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고대 국가들처럼 엄청난 정복전쟁을 펼친 것도 아니고, 중세 영주들처럼 어리석은 신앙으로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리지도 않은 채,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작품인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가장 잘 완성해낸 그 국가.

하지만 핍박을 피해 신대륙으로 도망쳐온 그들조차도 강자가 되자 약자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들의 헌법이 만들어질 때의 기본적 접근법인 '인간은 惡하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무섭도록 맹렬한 기세로 자신들의 선조들이 겪었던 그 핍박의 굴레를 다른 대륙으로 전파한다. 그 핍박에는 과거의 정복자로서의 위압감도 종교적 믿음에 기초한 절대자에 대한 맹종도 없다. 오로지 '재화'를 기반으로 창조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자발적 순응의 형태로 역대 어떤 제국들보다 가장 세련되고 가장 온화하지만, 가장 치욕적으로 다가온다.

그것에 저항하려는 사람들, 그것을 비난하려는 사람들. 그러나 그런 그들도 그와 같은 힘을 가졌을 때, 우리가 그보다 더한 가혹한 핍박의 가해자가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들의 입은 아니라 말하지만, 그들의 가슴은 알고 있다. 우리가 우리보다 더 약한 국가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안다. 그렇기에 우리보다 더 강한 자에게 투정을 부리면서도 그 투정이 언제든지 비난받을 수 있음을 안다. 그 듣기 싫은 비난에 대한 그들의 결론은 눈과 귀를 틀어막고 자신들의 아집을 쏟아내는 것 뿐이지만 말이다.

60억명도 넘는 인류가 살아하는 땅덩어리.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을 이 우주의 먼지만한 별 지구 위에서 선택된 10억도 안되는 인구가 살아가기 위해서 50억도 넘는 나머지 인류가 고난의 행군(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표현이군.)을 한다. 우리 스스로는 부정하겠지만, 우리들 중 적지 않은 수도 그 선택된 10억에 포함된다. 우리가 누리는 호사스러움 속에 숨어 있는 나머지 인류의 땀과 굶주림을 생각하면 옷 한 벌도 쉽게 입고 쓰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惡한 존재'다. 아무리 인류애를 논하고 세계평화를 사랑한다는 작자들도 털어내면 제대로된 녀석이 하나도 없다.(한때는 세계평화에 이바지했다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김대중이 오늘날 북핵사태의 시발점으로 지목 받고 또 그것이 사실임을 주지하라.) 오늘도 나와 우리는 우리 삶의 호사를 누리기 위해서 나머지 50억 이상의 땀과 굶주림을 짓밟을 것이다. 내가 입는 중국제 의류에 1시간에 85센트를 받고 일하는 중국 방직공장 노동자의 고통이 서려 있다는 것을 나와 우리는 의식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만든 물건이 시원찮다고 냉소하기 바쁜 우리들이다. 내 나라의 지하철역 노숙자들의 굶주림에는 무관심하면서 제1적성국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에는 '동포/민족'이라는 거창한 수사를 붙이며 도와야 한다며 외치며 매스컴에서 얼굴 한 번 알리고 나면 다음 선거시즌에 그것을 이력서 삼아 공천 받을 정당을 기웃거린다.

이것이 '현실'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 우리 모두가 동지이고 형제자매 임에 틀림없다손 치더라도, 혹자가 말하는 '소량생산 소량소비'의 사회 속에서 누리는 안빈낙도의 삶이 옳은 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인간은 그런 것을 누리기엔 너무나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 불완전한 공간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창조주로부터 고차원적 가치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능력은 부여 받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능력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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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여서 그런가..

환절기여서 그런가. 이상하게 체력이 부쩍 떨어지는 느낌이다. 일교차가 큰 것이 체력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요즘 들어 나도 그렇고 같이 다니는 애들도 그렇고 부쩍 기운이 없고 몸이 무겁다.

아니면 '4학년'이라는 짬밥이 주는 초조함 때문인가? 장래가 보장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4학년이라는, 학창 시절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하루하루가 너무 아깝고 소중하게 느껴져서 헛되이 보내고 싶지가 않다. 물론 현실은 언제나 우리의 의지와는 반대로 흐르기에 하루하루가 너무 헛되게 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요즘은 괜히 청강을 하러 다니는 것이 많아졌다. 원래는 한 과목만 청강하려고 했는데, 한과목 만으로는 내가 정상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하루짜리 강의(2학점) 이외에 넘쳐나는 나의 여가 시간을 완전히 소진하기가 쉽지 않다. 이게 또 웃긴 것이 청강을 하기 시작하니 교수들이 가끔씩 내가 하루 빠지고 나면 '나일론 학생'이라면서 한량이라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 싫으면 안오고~ 네가 제일 세상 편하다면서 핀잔을 준다. 그것마저도 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리라.


대학 생활이 4년째에 접어 들고 내가 참관하는 거의 모든 강의에서 적극적인 어프로치(?)로서 대학 생활을 한 탓에 여러 학과에서 나를 알아보는 교수님들이 많다. 몇몇 타 학과 교수님들은 나와 함께 다니던 애들에게 "왜 Hedge™는 안오고 너만 있냐?"라고 물어보는 일도 있다고 하니, 내가 나의 일행(?)들과 패키지 취급 받는 것과 동시에 나에 대해 교수님들이 관심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 싫지만은 않은 기분이다. 덕택에 괜시리 하나씩 청강을 늘리다 보니 학교 생활이 제법 타이트해지기 시작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몸이 무겁다. 같이 있던 녀석은 빈강의실에 가서 엎어져 자려고 했는데 빈강의실이 없어서 도서관 열람실에서 엎어져 자고 있다. 나는 도서관 PC실에서 학회 토론내용을 준비하다가 대충 정리를 마치고 이제 끄적끄적 블로그질을 하고 있고..


가을인데.. 도로에 내 몸을 싣고 둘이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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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진리를 말하는 자들이 만든 불신의 사회

오늘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내가 잠에서 깨어난데다가 자정이 지났으니 어제가 되겠다.

more..


학교에서 모종의 학회 모임을 마치고 간단한 뒷풀이 이후 해산했는데,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괜히 하루에도 열두번씩 변하는 열대우림 같은 심리 상태를 가진 나는 꿉꿉한 기분을 달래고자 혼자 오락실에 있는 노래방 기기에서 특유의 폭발적 가창력(;;)으로 노래를 부르려고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왠 여자애가 내가 있는 방의 문을 빼꼼 열더니 말을 걸어 왔다. 그리고는 잠깐 들어가도 되겠냐고 말하면서 자기 토드백을 앞장세워(?) 들어오려고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내가 있는 공간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말했다.

"종교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녀의 약간 경기도 지역 어투와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소위 '증산도'라고 불리는 사이비(그들이 스스로를 민족종교니 뭐니 아무리 주장해도 사람 불러다 놓고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며 헌금을 요구하는 놈들이 내 눈에는 사이비 종교로 밖에 안보인다. Fuck you very much.)와 '개독교'라고까지 맹비난을 받는 열성적 기독교 광신자들[지금도 달서구 도원동에서 앞산순환도로로 진입하는 도로변에서는 매일 십자가 모양의 팻말에 예수천국불신지옥을 크게 적어 놓고 확성기로 데스메틀 보컬틱한 보이스로 선교(?)활동을 펼치는 광신도를 볼 수 있다.]을 떠올리게 했다. 단지 성경의 말씀이 좋아서 내 발로 교회를 찾았다가, 하나님의 실존을 비판없이 맹목적으로 믿어야 하며 믿지 않는다면 교회를 다닐 수 없다는 그들의 광적 신앙에 질려서 뛰쳐나온 나에게 더 이상 종교는 쓰레기더미일 뿐이다.

그녀는 약간 기분이 상한 듯 표정이 일그러지며 내가 왜 종교 얘기를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듯 했다. (아마 지금쯤은 내가 왜 그랬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성서고등학교 졸업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순간적으로 혼자 조용히 있고자 했던 당시의 내 욕구와 나의 과잉경계가 그녀의 순수한 의도를 오해하였고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물론 피곤과 꿉꿉함에 절어 있던 나는 당시 상황을 수습하지 못했으며 수습하려 시도도 하지 않다.


나는 집으로 오기 위해 내 차가 주차된 멀리 떨어진 장소까지 걸어가면서 내내 그녀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낯선 여자(여성에게는 낯선 남자)가 접근하면 1차적으로 경계하고 사이비 종교단체의 선교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든 증산도/기독교(개독교)놈들에 대한 증오가 폭발했다. 세상의 진리와 믿음을 이야기하는 그 무리들이 이 사회에 퍼뜨린 불신과 혐오의 감정을 생각한다. 그들의 삐뚤어진 선민의식이 가져온 이 분노를 생각한다. 믿음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가져온 불신과 진리를 궤변하는 자들이 만든 혐오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자신의 순수한 의도를 오해하게 하였고 편안하지 못한 밤을 만들었다. 때문에 놈들이 더욱 증오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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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사소함 속의 행복과 꼴불견(?)

내 안에 오랫동안 침전되어 있던 소박함이 조금씩 재발견되고 있는 요즘이 상당히 즐겁다. 작고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과 행복함 때로는 희열을 느끼는 나를 보며 다시 과거의 열정적인 나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다소 오버스러운 이야기일까?

2년만에 전화기를 붙들고서 배터리가 떨어져 강제로 꺼질 때까지 깊은 밤의 통화를 하며 내내 웃었다. 피곤하고 졸리던 목소리와 나의 의식세계도 점점 또렷해지고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통화를 할 때마다 조금씩 예전의 그 기묘함을 되찾아 가는 '사이'가 커다란 활력이다. 시간의 간극 만큼이나 우려했던 어색함은 어느새 느껴지지 않는다.


배터리가 떨어져서 전화기가 꺼지고 나서(사실 전화기가 너무 뜨거워졌기도 하고.) 뭔가 아쉬움이 남아서 컴퓨터를 켰다. 요즘 블로그가 좀 팽개쳐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글의 갯수는 예전과 큰 차이가 없지만, 내가 포스트에 쏟는 공은 천지차이다. 당장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정치관련글 중 제대로된 글이 최근 한 달간 하나도 없다.) 해서 블로그에 로그인을 한다. 글을 쓸까 싶어서..

글을 쓰다가 갑자기 뭔가에 홀렸는지 마우스를 잡고 이것저것 클릭을 하다가 거의 가지 않던 어느 메타 블로그 링크를 건드렸고 그 곳의 페이지가 떴다. 늘 진실을 인정하길 거부하고 불평과 불만으로 이상세계만을 추구하는 그 곳에서 '음악'과 관련된 글이 하나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딱보기에도 남잘되는 꼴은 죽어도 못보는 찌질이스러운 녀석이 육두문자로 도배되어 어느 아마추어와 음악 애호가들을 가열차게 비난하고 있었다. 음악 애호가들의 계급의식을 비난하면서도 그 스스로가 자신을 한단계 더 높은 음악세계에 접근한 '제3의 계급'으로 직간접적으로 묘사하는 꼬락서니가 딱 그와 그 메타 사이트의 수준을 웅변하는 듯 했다.


덕분에 20분쯤 전까지 내 안에 충만했던 행복감이 상당 부분 감소되었다.
뭔가.. 이건 아니야. 그 곳의 존재를 잊고 싶다. 그래서 그 곳의 흔적을 없앤다. 원래 거의 가지 않던 곳이었기에 내 안의 변경사항은 없다. 나는 나의 이 감정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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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펴보지 않은 일기장

내게 그 사람이라는 존재는 마치 2년간 펴보지 않은 채 마음으로만 암독한 일기장과 같은 존재다. 2년 동안 한 번도 펴보지 않았지만, 너무 많이 암독해서 이미 그 내용을 외워버릴 지경에 이른 일기장과 같은 존재라고 할까.

이제 그 2년간 펴보지 않은 일기장을 다시 펴보려고 책을 꺼내려 한다. 하지만 오래된 마음의 책장 속에서 꺼낸 그 일기장은 너무 많은 먼지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일기장에 소복히 쌓인 먼지를 털어 내어야 한다. 그 일기장이 내가 다시 펴보기를 2년간 기다렸던 것만큼 나 또한 그 일기장을 펴보기 위해서는 2년만큼의 먼지를 털어내어야 할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단다. 갑자기 수술을 하셔서 곁에 자신이 곁에 있어야 한다고 하는 걸 보니 꽤나 큰 수술을 하신 모양이다. 내 부모님보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많으시니 조금씩 몸이 편찮아질 연배가 되시기도 하셨을 법하다. 세상은 너무나 공평해서 인간이 나이가 들기 시작하면 유산자든지 무산자든지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다 같이 안아프면 좋으련만 다 같이 아픈 것으로 공평하다. 마치 정일이 나라의 모두가 가난한 평등을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한 입맛을 감출 수 없다.


너무나 다시 읽고 싶던 일기장이었지만 읽을 수 없었기에 2년이라는 시간을 마음으로만 암독해 왔다. 그리고 그 일기장을 다시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지만, 그 일기장에 쌓인 먼지로 인해서 조금 더 기다림이 연장되었다. 단지 그 뿐이다. 2년의 시간에 며칠이 더해진 것뿐이다. 지금 당장은 속쓰림에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지만, 곧 나는 그것을 언젠가는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기꺼이 약간의 시일을 더 기다릴 것이다.

나는 당신이 너무 보고 싶다. 그것은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그것이 아니리라. 묻은 일기장 안의 내용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어도 다시 펴보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인간의 호기심만큼이나 재회의 순간을 고대한다. 그 순간이 단지 며칠 길어진 것 뿐이다. 단지 그 뿐이다. 더불어 그 기다림의 시간이 당신 부모님의 건강이 회복되는 시간으로 알차게 쓰여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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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듣기

반 년쯤 전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음반을 구매할 때 약간의 행복감을 느낀다. 지금은 360장짜리 CD장과 라면상자 2개에 음반들이 가득들어 있지만, 내년에 내가 자취를 시작하면 1500장짜리 2M높이의 슬라이드CD장을 구입해서 예쁘게 정렬해 놓을 계획이다. 음반 구입은 어떤 면에서 취미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온라인구매를 제외한 핫트랙스 한 매장에서만 내가 3년간 구매한 음반이 400만원을 찍었으니 굉장히 호사스런 취미가 되었지만, 변변한 취미 하나없이 독서가 취미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좀 더 낫다.

'음악이 취미'라고 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다가도 음반보유량을 이야기하면 흠칫 놀라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씩 재밌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음반을 사는 사람들을 반쯤 미친 사람이나 돈이 썩어나는 사람쯤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음반 구매가 사치로운 취미로 취급 받는 것에 대해서 KGB한 병 이상의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내가 그런 대우를 받으면 다소 그 사람이 껄끄럽게 여겨진다. 나는 장래 나의 아내가 될 여자에게 요구하는 하나의 조건이 '음악을 듣고 그것을 즐길 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즐기지 않고 사랑할 줄 모른다면 나라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거의 절반을 잘려나간 채 친교를 맺을 수 밖에 없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음반에 대한 구매 행위가 '미친놈'으로 취급 받는 한국의 풍토 속에서는 일종의 '소수자'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소수자의 권리와 지위를 요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소수자는 스스로 소수자를 선택한 것이지, 그것을 보호해 달라고 사회에 요구할 자격은 없다. 한국에서는 음반 구매가 소수자의 행위이지만, 일본이나 미국으로 넘어가면 소수자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잡소리가 많았지만, 마지막에 하려는 말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너무나 힘들더라는 이야기다. '음악을 듣고 그것을 즐길 줄 알 것'이라는 이 내재적 조건 하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의문이 든다. 적어도 내가 오늘까지 만나온 이성들 중에서는 정말 한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아직은 한국에서 음악을 즐긴다는 것은 부르주아들의 미친 짓인 듯 하다. 룸에서 양주 1병 과일안주에 봉사아가씨 불러서 놀고 나서 아가씨 데리고 2차 긴밤을 뛰는 걸 즐기던 형님조차도 음악은 CD-R에 구워서 들으니 말이다. 나는 이제 뭐가 미친 짓인지 조금씩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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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람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대부분 목표치를 설정하고 움직인다. 계획없이 움직이는 바보는 실패한다. 따라서 정도와 깊이의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들은 목표치를 설정하고서 목표를 향해서 움직인다.인간의 삶에서 어쩌면 목표 없는 행동이란 애초에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로댕의 작품처럼 되어도 그것에는 무언가 의미와 목적이 있기 때문에 행하는 행동인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목표치가 너무 높아서 혹은 너무 낮아서 사람의 의욕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자산이1억인 사람이 1년에 100억을 버는 것을 목표로 하면 100이면 99.9는 실패한다. 하지만 100억인 사람이 1억을 버는것을 목표로 하면 왠만큼 삽질을 하지 않는 이상 성공할 수 있다. 목표가 너무 높아서/목표가 너무 낮아서 사람을 좌절 혹은실망케 하는 그다지 적절치 않은 비유였지만 개략적 의미는 통하였을 것이다.


나는 오늘 너무나 형편없는소재(?)들을 가지고서 너무나 높은 목표치를 설정한 탓에 큰 실망감을 경험했다. 3류의 소재에 걸맞는 3류의 목표 혹은 조금높이기 위한 2류의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가장 최고의 이상향까지 목표를 설정하고서 그 곳을 향해 달리려 했었나보다. 내 마음 속에는 이미 벌써 편리한 대안들이 여럿 떠올랐고 이미 나와 함께 그 목표를 향해 달리던 동료에게 그 대안을제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의 포기가 너무 빠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고 했다. 이 나무는뿌리부터 너무 약하다. 약한 나무에 거름을 주고 열심히 관리하기에는 나 자신의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부족하다. 있으나 마나한뿌리는 일찌감치 잘라내는 것이 나의 스타일이지만, 함께해온 동료에게까지 그것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남은 기간은 일단 내가 좀 더 지켜보는 쪽으로 했다. 나의 성격으로는 이와 같은 상황을 좌시할 수 없지만, 때로는 내가 너무강경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두 번 세 번하며 나를 다스리려 노력한다. 20C의 문화를 기억하는 내가 21C의 사람들에게 20C의문화가 부활되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틀린 일인지도 모르겠다. 시대는 21C이니 21C의 문화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내게 21C의 문화가 그릇되어 보인다면 내가 20C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지 스스로 고립되어야 하겠지.

정말 이런게 21C의 문화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나는 단언한다. 미래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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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트여 있던 길을 막은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고 했던가. 김영삼 前대통령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었다. 말 그대로 큰 길에는 문이 없다는 말이다. 큰 길이기 때문에 문을 낼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내 가슴에 아주 큰 길을 열었었다. 그리고 그 길에 몇 명의 사람들을 받아 들이고자 노력했다. 보는 이에 따라서 충분히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나의 노력은 내가 보기에도 나답지 않을 정도로  매우 헌신적이었고 열정적이었다. 나 자신의 자존심조차도 때때로 꺾었다.


하지만 큰 길을 닫고자 할 때는 문을 세울 수 없다. 큰 길을 냈기 때문에 문을 달 수가 없기 때문이다. 큰 길을 닫고자 할 때는 문이 아닌 담을 쌓는다. 길 자체를 두터운 벽으로 막아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큰 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없애 버린다. 다시는 사용될 수 없도록.


나는 그렇게 내 가슴에 내어 놓았던 큰 길을 닫았다. 하지만 그 큰 길을 다니던 사람들은 그 길이 사라진 것에 대해 한동안 쉽게 적응하기가 힘들다. 거리낌 없이 다니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다닐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던 길이기에 그 길이 사라진 후에도 심심찮게 그 길로 진입했다가 물러나고는 한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 것 같다. 내 안에 쌓여진 그들이 이용하던 큰 길을 막은 벽(Pink Floyd의 'The Wall'앨범이 생각나네.)을 그들은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이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길을 막은 사람은 그 길을 쉽게 허용하려 들지 않는다. 막힌 길이기 때문이다. 막아놓은 길이다.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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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리(Oakley)

[한때(지금도?) 내가 무척 갖고 싶어했던 오클리 X-Metal 모델. 스포츠 스타들의 애장품이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주전 외야수 스즈키 이치로가 쓰고 다니던 Oakley X-Metal 선글래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내가 선글래스를 새로 살 때 이 녀석이 상당히 끌렸었다. 하지만 당시 가격이 꽤 비싸서(당시 테만 52만원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냥 헛물만 켰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시력이 안좋기 때문에 이걸 샀다고 쳐도 렌즈를 따로 맞춰야 해서 6~8커브 먹이고 고굴절렌즈에 미러코팅 하면 렌즈값이 10만원 정도 나온다. 당시 아무리 선글래스에 집착했었지만 당시에도 맨정신으로는 60만원 이상을 바른 안경을 쓴다는건 상당한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구입했던 것이 페라가모의 그 해 모델이었으니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고 생각되지도 않지만, 그 때는 잠시 선글래스에 미쳐 있었나 보다. 그 녀석은 내가 가지고 있는 30만원을 넘긴 선글래스 2개 중 하나다. 지금 다시 이것들을 구입하라고 하면 솔직히 돈이 너무 아까워서 못살것 같다. (프로필 사진에 쓰고 있는 선글래스는 이것들과는 다른거다.)


무언가에 집착한다는 것은 때때로 경제관념을 희박하게 만들기도 한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소비패턴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매니아' 혹은 '애호가'라는 수식으로 자신을 계급화함으로서 자신의 만용을 합리화시킨다. 이것은 굳이 10대 빠순이들의 전유물이아니다. 오히려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나서의 사람들도 얼마든지 이와 같은 패턴을 보이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것은 때때로 시간이지나고 나서 자기 자신조차도 추태였다고 인식되기도 한다. - 그러나 언제든지 다시 '그 길'로 복귀할 가능성은 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선글래스도 한 번 쓰기 시작하면 벗기가 힘들다. 옛날에는 선글래스 별로 안좋아했었다.

그냥 선글래스가 갑자기 땡겨서(?) 매장을 둘러 보다가 Oakley X-Metal이 40만원대 초반까지 내려왔길래 그 때 생각이 나서 끄적여 봤다. 사실 지금도 X-Metal이 무척 땡기는게 사실이다. 우리 나라의 수입품들은 종종 어처구니 없이 비정상적인 가격대를 형성한다.

[넌 원래 이렇게 비싼게 아니었잖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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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추억 : '마'씨 집안 사람들을 다시 보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인간이 아닌 형이상학적인 존재로까지 느껴졌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그레이스(39)라고 하는 자신의 아이들을 맡아 길러온 유모와 결혼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처와 양육권을 가지고 다투고 있는 마이클 잭슨에게 일종의 정치적 돌파구로서 그레이스를 통한 이미지 쇄신과 유럽에서 발매될 새 앨범에 대한 홍보를 노린다는 복안이 깔려 있다고 해석되고 있다.

내가 중학생 때, 결코 넉넉치 않았던 당시 우리 집안의 재정에 음반 구매는 꽤나 사치스러운 취미였던 것 같다. 내 용돈도 한 달에 5천원 남짓했을까? 지금 한 달에 쓰는 돈을 생각해 보면 도저히 상상이 안되던 시절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만해도 "엄마 50원만"이라는 말이 입에 달려 있었는데,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하루에 1천원 이하는 안받으려 한다고 하니, 나와 그들 사이의 15년의 갭을 내 잣대로 들이대려 함은 무리이리라. 그런 용돈을 가지고 음반을 산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우리 시절에는 으례히 하기 마련이었던 우유값 착복(?), 문제집 비용 창조(애초에 문제지가 없었으니까 '창조'다.) 등으로 음반 구입비를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건데 그 때 내가 우유만 제대로 다 먹었어도 지금 내 키가 176cm인데 5cm는 더 컸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키 180cm가 정말 되고 싶다.]

[중고로 다 팔아 버리고 지금 남아 있는 당시의 작은 흔적들. 물론 모두 CD로 교체되었지만, 당시 저 앨범들을 테이프로 사고 또 사고 했었다. 다 팔아 버리려다가 그나마 저것들은 남겨 두었다. 왼쪽 아래는 You Are Not Alone의 싱글CD로 당시 중/고딩 주제에 노래방에 가면 꼭 불렀던 노래 중 하나였다.]

그런 식으로 돈을 모아서 샀던 음반(당시는 테이프였다.) 중 하나가 마이클 잭슨의 앨범이었고 그 중에서도 History(베스트 앨범)이었다. 당시 1만원 정도 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난 그걸 3번이나 구입했다. 한 번은 테이프가 씹혔고, 하나는 듣는거 또 하나는 요즘 빠순이들이 자주 하는 짓인 속칭 '소장용'으로 구입했었다.
상상할 수 있는가? 한달 용돈 5천원 수준이던 녀석이 1만원짜리 테이프를 3개나 똑같은 걸로 샀으면 자금조달을 위해서 얼마나 총력전을 펼쳤을지. 천삽 뜨고 한 번 허리펴기 운동을 한다는 북한 노동자들의 수준에 비하면 오버가 심했겠지만, 거의 그 정도에 맞먹는 노력(?)이었을 것이라 능히 짐작된다. 그 정도로 그를 찬양했었다. 당시 지금도 그 때의 충격으로 개돼지처럼 인간취급도 하지 않는 '서태지'를 최고의 가수라고 떠받들다가 그의 표절과 '창작이 힘들다'는 눈물에 격분해서 그의 (당시 나의 재정으로서는)비싼 음반들을 쓰레기통에 처넣고 떠돌던 중딩의 눈에 그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Michael Jackson - You Are Not Alone (R.Kelly Main Remix)
[You Are Not Alone, 1995]


지금의 나는 나 스스로 변화를 추구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와의 관계를 계기로 그녀의 허무주의와 냉소적 성향을 물려 받은 탓인지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되었고, 어느 누구도 그런 무형의 존재로 떠받들지도 숭상하길 거부하고(그래서 수령 동지, 위원장 동지를 혐오하는지도?) 음악적인 성향도 이 블로그에 걸려 있는 500곡 정도의 음악 관련 포스트처럼 변해 버렸지만 그에 대한 옛날 생각을 돌이켜 보는 마음의 여유 정도는 남아 있다.


그를 생각하면서 요즘 Jim Brickman의 Hear Me라는 곡 때문에 다시 부각되고 있는 Michael Bolton도 떠올리게 됐다. 어제 다음카페 내 휴대폰 동호회에서 Hear Me를 내 컬러링으로 입력하면서 그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Said I Loved You, But I Lied 같은 곡으로 어린 시절의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마까진 장발 아저씨였다. 요즘은 꽤나 댄디 스타일로 변했지만, 그 때는 지금 말하는 스키니진 비슷한 타이트한 청바지를 입고서 셔츠 반쯤 풀어 해치고 바람에 머릿결을 흩날리며 서부 콜로라도 필하는 산악지대에서 바위에 한 발 걸치고 "널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야~"라고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로 개폼을 잡는 그가 참 멋있었다. 그도 '마'씨였다.

Michael Bolton - Said I Loved You, But I Lied


[이것들도 팔다가 남겨 놓은 그 때의 흔적들. 사실 왼쪽 상단의 Butterfly앨범은 팔려고 했는데 너무 '똥반'이어서 팔리질 않았다! ㅠ_ㅠ.. 상단 우측은 Fantasy 싱글, 하단은 George Michael의 Spinning The Wheel 싱글. 그 때는 빠돌이틱해서 싱글도 좀 샀었다.]

지금은 런던의 공중 화장실에서 DDR치다가 경찰에 딱걸려서 졸지에 개쪽은 있는대로 다팔고 완전 변태-게이틱한 아저씨로 전락해 버렸지만,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도 그 '마'씨 패밀리 중에서 군계일학의 팬터스틱 보이스로 나의 어린 시절의 귀를 자극하던 아저씨였다. 다른 어느 앨범보다도 Older앨범의 환상적인 무드가 기억에 남는다. 최근에 은퇴한 것으로 알고 있다.

George Michael - Spinning The Wheel
[Older, 1996]


머라이어 캐리도 사실 마씨다. 그녀의 이름을 영어로 쓰면 '마'리아 캐리(Mariah Carey)이기 때문이다.(어릴 적부터 이렇게 우겼다.) 내가 어릴 때 머라이어 캐리는 그야말로 디바 중의 디바였다. Celine Dion이 Upclosed&Personal의 주제곡인 Because You Loved Me로 대히트를 하면서 디바계를 평정하기 전만 해도 휘트니 휴스튼의 뒤를 이을 가장 강력한 디바였다. 23살 차이 나는 남편의 배경이 필요했던지 콜럼비아 레코드 사장과 결혼해서 4번째 앨범 Daydream까지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질주하다가 3년만에 이혼하고 나서 계속 꼴아 박았다. 최근에 Mimi앨범으로 부활했다는데 지금은 내가 팝음악을 잘 안들어서 모르겠다. 요즘은 다른 음악에 집중한다고 그렇게 좋아하던 아트락/메틀도 잘 안듣는 판에.. = _ = ; ;

어쨌거나 당시에는 그녀의 4번째 앨범의 첫번째 타이틀곡 Fantasy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정말 팬터지로 흘러 들어갈 것만 같았다. 뽀삽질 만발의 그녀가 부연 얼굴로 I'm in Heaven. With my Boyfriend, My Laughing Boyfriends 할 때는 당시로서는 참 팬터스틱했다. 이 글 쓰면서 다시 한 번 들어 봤는데 12년의 시간차는 극복이 안되는지 곡이 좀 촌스럽네. 댄스필 나는 곡은 유행을 너무 심하게 탄다.

Mariah Carey - Fantasy
[Daydream, 1995]

1995~1996년 중반까지 팝음악을 많이 들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해 말부터 락음악을 들었고 지금 이 지경(?)에 이르렀다. 나 어릴 적에는 '마'씨 집안 사람들 다 은퇴하면 팝음악은 끝장나는 줄 알았다.(과장 천만 배해서..) 그 때 그 마씨 집안 사람들 중에서 지금은 쪽박찬 사람도 있고, 그 때부터 비리비리하다가 최근에 노땅되어서 부활한 아지메(이 아지메는 아주 욕먹을 짓은 다하고 다닌다고 들었다.)도 있고, 그냥 고만고만하게 계속 음반 내면서 용돈벌이 하는 사람도 있고 한 것 같다. 다들 잘 먹고 잘 사소. 배 안곯고 사는게 최고의 삶임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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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종소리.



European Jazz Trio - And I Love Her
[Memories of Liverpool, 2005]


때로는 청승을 떠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최근 몇 년간 너무 강하게, 날카롭게만 살아왔던 것 같다.
약하고 무지했던 내가 싫어서 달려왔건만
얻은 것보다 잃은게 더욱 많은 것 같구나.

강인함이 남긴 것은 그 강인함을 시험하기 위한 망치질의 상처와
그 상처만큼 강해지고 동시에 연약해지고 지친 나의 존재 뿐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현실을 중시하면서도
어느 누구보다도 '희망'이라는 이름에 기대를 걸었나 보다.
그래서 늘 말하는 것처럼 '희망'은 心身을 피폐하게 하는 '마약'이다.


이젠 정말 너무 많이 지쳤다.
결국 다 부질없는 사람과 사람들이었다.
나의 열의와 사랑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나의 열의와 사랑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이 나를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변명이다.
그게 내가 가진 전부다.

너와 너희는 이미 내 손을 떠났고,
나 또한 더 이상 붙잡을 의지도 이유도 없다.
모두 상실해 버렸다.




열기..



오늘 도착한 헨델의 오페라 컬렉션 DVD에 있던 곡을 불렀던 영화 '파리넬리'.
예전에 처음봤을 때는 정말 감동적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감정이 많이 메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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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데 필요한 것.

내 삶에서 아마 요즘만큼 사랑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가슴 속으로, 머릿 속으로 생각한 것이야 요즘보다 훨씬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직접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낸 것은 요즘이 가장 많은 것 같다. 나 자신과 관련된 사랑도 있고,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였고 또 계속되고 있다.

사실 나는 사랑과는 그다지 거리가 가깝지 않은 인간일 가능성이 높다. 나에게 사랑이라는 것의 대상은 매우 한정적인 존재에 한하는 경우가 많다. 그 한정된 존재 이외의 영역으로 벗어나면 나는 매우 사무적이고 냉혈한적인 모습을 보인다. 즉, 내가 情을 준 제한된 사람들에 한해서만 그 愛을 표현한다. 적어도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지극히 내 안의 원칙에 충실하여 내가 실망하거나 상대에게서 나에 대한 관심(관계를 지속하고 하는 의지)을 느낄 수 없다면 지극히 사무적이고 냉혈한적인 모습으로 일관한다. 나는 그런 녀석이며 그러한 내 모습에 매우 만족도가 높다.

나의 사랑의 범위에 대한 좁은 해석은 넓은 의미의 사랑을 가졌던 시절에 그 넓은 사랑으로 인해 실망하고 좌절함이 반복되면서, 사랑의 범위를 조금씩 좁혀가며 스스로를 보호하는 과정이 진전되고 심화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고 해석한다. 내가 분명 과거에는 현재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으며 학교 생활에 높은 만족도를 가지며 가급적 많은 이들과 관계를 맺길 희망하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틀림없어진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불필요한 관계는 더이상 맺고 싶지 않다.

나는 온라인 속에서 알게되어 오프라인으로 만난 사람들과도 아주 깊은 情을 여럿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지금도 온/오프라인 동호회 활동이 아주 활발한 곳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활동할 의향이 있으며 그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지속시킬 의향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동호회라는 존재는 단지 정보획득의 편의를 위한 공간,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손쉽게 얻는 공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현재도 별다른 온라인 동호회 활동에 매력을 못느낀다. 요즘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아주 인스턴트처럼 여긴다. - 사실 현재 활동적인 온라인 동호회들 거의 대부분은 청춘남녀들의 하룻밤을 뜨겁게 불사르기 위한 미팅의 공간일 뿐이다. 그렇지 않은 동호회를 찾기가 너무 힘들다.


최근 나는 일련의 극적인 상황을 여럿 경험했고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상황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나 또한 계속해서 그에 맞는 반응을 요구 받고 있다. 그리고 이 극적인 상황들이 거의 대부분 내 안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사랑'에 기인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 26살이 되어서 새삼 이팔청춘의 사춘기 소녀처럼 다시 사랑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의 이팔청춘의 청소년들은 사랑을 깨닫기 위해서 다양한 성경험을 하고 있으려나?]

사랑하는데 필요한 것을 무엇일까? 수없이 많은 노래에서 사랑이 나오지만 정작 사랑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단일한 공식과 같은 답은 나오지 않는다. 사랑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가장 먼저 '관심'을 고르고 싶다. 사랑은 '관심'이다. 관심이 없는데 그것/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리 없다. 둘째로 나는 '표현'을 고르고 싶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쓰레기이며 쓸모 없는 에너지의 낭비다. 혼자 끙끙 앓는 사랑은 문자 그대로 쓰레기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을 타인이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일부러 알아줄 리 없다. 마지막으로 '배려'를 꼽고 싶다. 사랑은 야생초가 아니다. 들판에 던져 놓아도 나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화분에 물을 주듯이 관심과 표현을 관리해 주고 그에 보답해 주며 사랑을 주어야 내게 오는 사랑이 지켜지고 증감(헤어지는 사랑도 많다.)할 것이다.

이것이 현재의 내가 정의하는 사랑의 3원칙(?)이다. 나는 나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도 이 3가지 원칙을 가지고 살고 싶어하고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 왔다...라고 자신있게는 말하지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이렇게 살아왔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이성에 대한 애정표현은 나로서는 노력한다고 해도 언제나 만족스럽지 못했다. 다른 관계에서의 표현은 대체적으로 만족하는 편이다. 나와 이성적인 사랑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의 사랑에 관한 관계는 나의 목표치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 기대치만 높기 때문일까? 어떻게 말하던지 간에 여전히 나에게 사랑이라는 주제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이 글은 내가 쓰고도 나에게 매우 어울리지 않는 글이며 주제다. 사랑이 내게서 앗아간 것은 무엇이고, 선물한 것은 무엇일까? 사랑에 대해서 손익계산서를 뽑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을 것이다. 단, 사랑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사랑이 떠나버린 상태라면 그 손익계산서는 무조건 마이너스로 나오겠지. 요즘 나를 복잡하고 지치게 하는 이유들이 모두 다양한 종류의 사랑에 기인한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싫다. 그들 대부분이 그리 긍정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겠지. [우선 '그 답답한 인간'부터 능지처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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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도 되는 사람(?)


누군가가 나에게 한 말이다.
'나 정도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조만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말이 참 묘하다. '나 정도 되는 사람'이라니..
그가 보기에 나는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인 걸까.
그는 분명 '좋은 의미' 또는 '조건이 괜찮다'는 식의 의미로 썼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그런 말에도 당당할 수 있는가?

또 다른 누군가는 나를 평할 때, 언제나 자신만만하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분야에 따라 자신감이 극히 떨어지는 부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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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적인 스트레스 해소법


[카시니 우주선이 촬영한 토성의 위성 엔셀라두스. Photo : AP연합]

인간은 가끔씩 실패를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도 하지만, 나의 경험적 지식에 의하면 한 번 실패한 사람은 다시 실패할 확률도 높다. 실패는 실패를 낳고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자신감은 더욱 떨어지며 낮은 자신감 속에서 다시 실패를 반복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실패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이번에 상당히 높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일에 대해 오판을 했고, 그로 인해서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실패를 극복하기에는 더 이상 많은 시간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실패가 상당히 뼈아프게 다가온다.

나는 술을 혐오하는 편이다. 술과 담배는 분위기와 멋만 제공할 뿐, 신체와 인간 삶에 그다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와인이 몸에 좋다는 소리는 극히 제한된 연구환경(우리네 쓰레기 같은 술자리 문화를 보라.)에서나 가능한 소리다. 와인만 몸에 좋다면 다른 술도 몸에 좋아야 상식적으로 정상이다.

그러나 때로는 술이 땡기는 날이 있다. 마약이 나쁜지 알면서 계속하는 것처럼 가끔씩 술이 땡기는 날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지만, 역시 술에 대한 혐오감이 술에 대한 욕구를 압도했다. 술에 대한 욕구를 이성으로 억누르고 나면 욕구불만은 다른 방법으로 표출된다. 나는 그나마 아주 온건한 방법의 욕구표출법을 가진 편인데 그것은 바로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다. 사실 PC방의 '꼴'초들의 무배려무신경의 정신까지 썩어 들어가는 담배연기에 쩔어버린 공기에 이제 정말 질려 버려서 새 학기에는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애들이 모이고 분위기가 조성되면 가지 않을래야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는 과정에서 내 안의 다른 욕구로 인해 오히려 내가 주도적으로 그 곳으로 가자고 선동하거나 독단적으로 조용히 다녀오기도 한다.


하지만 PC게임은 아주 고도의 멘틀게임이다. 심리적 불안정함은 결코 즐거운 게임으로 유도되지 않는다. 나는 오늘 역대 최악의 성적을 연속으로 기록했고, 내가 가진 특유의 비정상적인 전투적 승부욕은 내 몸상태/심리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저돌적인 행동을 반복케 했다.

오늘의 일을 계기로 다시 나를 추스려야 함을 간접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젠 내가 이렇게 감정이 흐르는대로 행동하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을 소유하지 못했고, 내가 가진 시간을 최대한 집약적으로 소비하여 승부를 걸어야 하는 나만의 적색경보가 울릴 만한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의 이 좌절감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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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 나보다 나이 많은 연예인들

오늘 TV에서 WBC축하 공연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거리 응원할 때 '바다'가 나왔다. 얘가 처음 데뷔할 때 온통 10대 가수니 아이돌이니 어쩌니 하면서 한참 시끌시끌했었다. '나는 네 여자야'라는 너무너무 유치한(?) 제목의 노래를 불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항상 그렇게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모습만 기억된다. 그녀는 1980년생. 나와 학번은 같지만 나이는 더 많다.

안칠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강타'라는 녀석은 나올 때부터 지금까지 끝끝내 눈을 부라리고 있다. 노려 보지 않으면 앞을 볼 수 없는마냥, 사진마다 영상에 나올 때마다 눈을 부릅뜨고 부라린다. 그렇게 부라려 보면 여자들이 좋아하나 보다. 무슨 대학원에 적(籍)을 두고 있는가 본데 내가 알기로는 그냥 소속만 학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5월에 군대에서 오라고 영장이 날아왔다고 하는데 내 어릴 적 기억으로는 무슨 자폐증(?) 어쩌고 하면서 HOT맴버 전원이 각종 사유로 병역을 면탈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1979년생으로 나보다 서류상으로 2살이 더 많다.

내가 21살 때, 이성친구(?)의 대학 선배들과 매우 친근하게 지냈었다. 내가 21살 때 벌써 20대의 끝물을 달리던 형님들이었으니 지금쯤 결혼을 했거나 저마다의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그 때 형님들이 하던 말이 "TV의 연예인들이 하나둘씩 나보다 어려지기 시작할 때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라고 했던 적이 있다. 솔직히 바다나 안칠현이나 모두 요즘 정상급 아이돌이라기보다는 2진급, 3진급으로 분류할 만한 한물간(?) 아이돌들이니 썩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나도 이제 조만간 TV연예인들보다 전반적으로 많은 나이를 가진 세대로 진입할 듯 하다. 이미 요즘 새로 나오는 애들은 나와 '10년지기', '띠동갑', '이승환/채림 사이'의 나이 차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나 자신의 마음가짐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나를 둘러싸고 바라보는 시선은 쉴새없이 뛰고 또 뛰어 저만치 멀리서 나를 늙은이 취급하려 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늙은 것인지 그들이 어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아는 척하는 노땅 쯤으로 보일 것이고, 내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풋내기쯤으로 보이겠지. 너희들이 10년쯤 지나서 나 정도가 되면 나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저들을 봐서는 그럴 것 같지는 않구나. 너희들의 그 소모적인 세계를 더욱 탐닉하거나, 아니면 삶에 찌들어 취업 문을 두드리고 있거나..
사고패턴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극복할 수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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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 삭이기

분노를 삭이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
최근 시작한 명상조차도 별다른 지지대가 되지 못했다. 나의 미숙함 탓인지도 모른다.

폭발하는 감정 앞에 끓어 오르는 충동을 억누르는 초인적 이성의 힘은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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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하는 감정 앞에 끓어 오르는 충동을 억누르는 초인적 이성의 힘은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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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 : 어색한 관계, 비극적 결말

오늘 아침 아버지 공장.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는 그 곳에서 유일하게 하릴없이 고리타분한 국제정치학 관련서적을 펴놓고서 목차를 짜고 있는 이상한 녀석이 있다. 물론 그 재수없는 녀석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이다. 요즘 시간이 좀 남아서 새로 글을 하나 쓸까 싶어서 목차를 짜고 있다. 나중에 글쓸 때 좀 더 편하게 쓰기 위해서..

그 곳에서 한 사람의 전화 통화를 듣다가 유난히 익숙한 이름을 듣게 되었다.

"문XX이 아나? 문XX가 어제 죽었다고 하더라. XX병원에 있는데, 자네 가봐야 되지 않겠나? 어, 그래. 그래....(생략)"

'문XX'라는 이름이 유난히 낯이 익다. 그는 내 둘째 이모부'였던' 분이다. 우리 집안에서 친가/외가 포함에서 '4촌 이내'에서는 가장 먼저/가장 크게 성공하셨던 분이셨고 사업을 꽤나 크게 벌이던 분이었다. 그러다가 한 차례 부도를 맞고 야반도주(?)해서 또 다른 사업으로 다시 재기에 성공했으나, IMF때 또다시 부도를 맞고서 신용불량자가 되어 재기불능 상태로 떨어져 이모와 자식들과 별거 생활을 하다가 이혼하고 혼자 지내던 분이다. 이모는 몇 달 전에 재혼하였고 자제인 이종사촌 형님과 누나는 아직 결혼은 안했지만 형님은 동거녀가 있고, 간호사인 누나는 조만간 결혼할 예정이니 대충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전화를 걸고 있던 그 분은 이모부'였던' 분과 그저께 함께 술을 좀 과하게 마시고 헤어졌던 분이었고, 아마도 그 분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본 마지막 지인이었던 듯 했다. 아버지께서도 둘째 이모부였던 분의 동생의 공장을 거래처로 두고 있어서 비교적 껄끄러워진 우리 집안 식구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그 분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 덕택에(?) 지금 우리 집안에서는 몇 안되는 장례식 참가자 중 한 명이 되셨다.


'가장(家長)'이라는 존재는 'GR맞은 꼴통 犬페미니스트들'은 죽어도 인정하지 않지만, 매우 불합리하면서도 비극적인 생득적(生得的) 의무를 진다. 그리고 그 생득적 의무를 자의든 타의든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언제든지 버림 받을 각오를 해야 하며 또 그 버림 받음을 당연시 하는 사회 풍조(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여성계의 경향)에 패배자의 지위에서 말없이 받아 들여야 한다.
사업이 잘될 때는 오만가지 사치와 교만을 떨며 흥청망청한 탓에 10년이나 다른 남매들과 교류를 거부당했던 둘째 이모는 사업이 부도나자 스리슬쩍 이혼을 해버렸고, 괜찮은 벌이를 가진 다른 남자와 재혼해 버렸고, 자식이었던 사촌형님과 누나는 의붓아버지에 너무나 빠르게 적응해 버렸다. 그들에겐 이미 이전 아버지인 문XX의 존재는 완전히 지워져 버린 듯하다. '돈버는 기계'로서 존재의 이유를 사회적으로 부여받음 당한 숫사자는 이빨이 썩고 성기를 거세당하자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뒹굴다가 평소보다 좀 더 많이 마셨던 술과 함께 망각의 그늘 속으로 혼자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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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 : 어색한 관계, 비극적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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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서 한 사람의 전화 통화를 듣다가 유난히 익숙한 이름을 듣게 되었다.

"문XX이 아나? 문XX가 어제 죽었다고 하더라. XX병원에 있는데, 자네 가봐야 되지 않겠나? 어, 그래. 그래....(생략)"

'문XX'라는 이름이 유난히 낯이 익다. 그는 내 둘째 이모부'였던' 분이다. 우리 집안에서 친가/외가 포함에서 '4촌 이내'에서는 가장 먼저/가장 크게 성공하셨던 분이셨고 사업을 꽤나 크게 벌이던 분이었다. 그러다가 한 차례 부도를 맞고 야반도주(?)해서 또 다른 사업으로 다시 재기에 성공했으나, IMF때 또다시 부도를 맞고서 신용불량자가 되어 재기불능 상태로 떨어져 이모와 자식들과 별거 생활을 하다가 이혼하고 혼자 지내던 분이다. 이모는 몇 달 전에 재혼하였고 자제인 이종사촌 형님과 누나는 아직 결혼은 안했지만 형님은 동거녀가 있고, 간호사인 누나는 조만간 결혼할 예정이니 대충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전화를 걸고 있던 그 분은 이모부'였던' 분과 그저께 함께 술을 좀 과하게 마시고 헤어졌던 분이었고, 아마도 그 분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본 마지막 지인이었던 듯 했다. 아버지께서도 둘째 이모부였던 분의 동생의 공장을 거래처로 두고 있어서 비교적 껄끄러워진 우리 집안 식구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그 분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 덕택에(?) 지금 우리 집안에서는 몇 안되는 장례식 참가자 중 한 명이 되셨다.


'가장(家長)'이라는 존재는 'GR맞은 꼴통 犬페미니스트들'은 죽어도 인정하지 않지만, 매우 불합리하면서도 비극적인 생득적(生得的) 의무를 진다. 그리고 그 생득적 의무를 자의든 타의든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언제든지 버림 받을 각오를 해야 하며 또 그 버림 받음을 당연시 하는 사회 풍조(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여성계의 경향)에 패배자의 지위에서 말없이 받아 들여야 한다.
사업이 잘될 때는 오만가지 사치와 교만을 떨며 흥청망청한 탓에 10년이나 다른 남매들과 교류를 거부당했던 둘째 이모는 사업이 부도나자 스리슬쩍 이혼을 해버렸고, 괜찮은 벌이를 가진 다른 남자와 재혼해 버렸고, 자식이었던 사촌형님과 누나는 의붓아버지에 너무나 빠르게 적응해 버렸다. 그들에겐 이미 이전 아버지인 문XX의 존재는 완전히 지워져 버린 듯하다. '돈버는 기계'로서 존재의 이유를 사회적으로 부여받음 당한 숫사자는 이빨이 썩고 성기를 거세당하자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처럼 뒹굴다가 평소보다 좀 더 많이 마셨던 술과 함께 망각의 그늘 속으로 혼자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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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개 근성

세상에는 200여 개국이 존재하고 있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한/미/일/중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가끔씩 러/EU 정도가 보이겠지. 나머지 170여 개국(그나마도 EU 가입국 모두를 빼준 거지만, EU에서도 영/독/프 정도만 본다.) 이상은 어떻게 되었는지도 조금도 관심이 없다. 눈에 크게 보이는 놈들만 크게 보일 뿐이고,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이들 나라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 하나 같이 우리 나라보다 강하고 더 잘살며 더 선진 문화를 이룩하며 더 민주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우리처럼 60년만에 헐레벌떡 뛰어온 것이 아니라, 짧게는 150년, '마그나카르타'부터 길게는 8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선진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차곡차곡 밟아온 나라들이다. 우리 나라처럼 100년 전까지 양반/상놈 가리며 면세 혜택 받고, 신분을 사고 팔고 하던 그런 나라들이 아니다. 100년전의 열강은 볼 것도 없이 중/일마저 뒤늦게나마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열심히 그들을 뒤쫓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우리의 과거는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그 때의 문화가 지금 이 땅에서 존중 받고 있는가? 구습이니, 전근대적이니 하며 다 때려 깨부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고, 꼴페미들의 짓이 아닌가. 아무런 죄의식없이 돈만 된다고 하면 자기 민족의 정기까지도 팔아먹고자 발굴된 문화재까지도 훔치고 석상의 목을 자르는 것이 우리가 아닌가. 솔직해지자. 그 시절의 문화들 중에서 우리가 오늘날 가치롭게 생각하는 것은 정말 극소수의 몇 개 밖에 없다. [그나마 유지되는 충효 같은 것마저 오늘날 얼마나 그 존재감이 느껴지는가? 틈만 나면 이민가고 군면제 받으려 노력하는 것이 우리 아닌가.]

졸개는 괜히 졸개가 아니다. 졸개는 쉽게 선동되고 쉽게 동화된다. 그러면서도 졸개는 스스로가 그것을 선택한 것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위해 죽는다고 맹세하고서도 위기가 닥치면 얼마든지 그 이상을 버릴 수 있다. 스스로는 아니라고 강하게 맹세하고 따르면 따를수록 그 자신은 더욱 더 졸개가 된다. 자살 테러리스트 대부분은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서 죽는다. 하지만 그를 자살하도록 지시한 지휘관은 절대 자살테러에 동참하지 않는다. 그는 졸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살할 이유가 없다. 그를 대신할 이념과 사상으로 무장한 졸개들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주관없이 휘둘리는 졸개들, 그리고 자신이 주관이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모르며 허와 실을 분별할 능력도 지니지 못한채 무조건 듣기 좋은 말이 진실인 것처럼 현혹되어 그것이 자신의 사상이라고 착각하는 졸개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투사가 되는 것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착각하는 졸개들. 평소에는 의식조차 못하고 있다가 자극을 받으면 마치 평생을 그것을 위해 몸바쳐온 전사마냥 벌떼처럼 달려드는 가식으로 가득찬 무지몽매한 무리들. 달리 무엇이 졸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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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개 근성

세상에는 200여 개국이 존재하고 있지만, 많은 한국인들은 한/미/일/중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가끔씩 러/EU 정도가 보이겠지. 나머지 170여 개국(그나마도 EU 가입국 모두를 빼준 거지만, EU에서도 영/독/프 정도만 본다.) 이상은 어떻게 되었는지도 조금도 관심이 없다. 눈에 크게 보이는 놈들만 크게 보일 뿐이고,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이들 나라의 공통점이 뭔지 아나? 하나 같이 우리 나라보다 강하고 더 잘살며 더 선진 문화를 이룩하며 더 민주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우리처럼 60년만에 헐레벌떡 뛰어온 것이 아니라, 짧게는 150년, '마그나카르타'부터 길게는 8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선진화와 민주화의 역사를 차곡차곡 밟아온 나라들이다. 우리 나라처럼 100년 전까지 양반/상놈 가리며 면세 혜택 받고, 신분을 사고 팔고 하던 그런 나라들이 아니다. 100년전의 열강은 볼 것도 없이 중/일마저 뒤늦게나마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열심히 그들을 뒤쫓고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우리의 과거는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그 때의 문화가 지금 이 땅에서 존중 받고 있는가? 구습이니, 전근대적이니 하며 다 때려 깨부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고, 꼴페미들의 짓이 아닌가. 아무런 죄의식없이 돈만 된다고 하면 자기 민족의 정기까지도 팔아먹고자 발굴된 문화재까지도 훔치고 석상의 목을 자르는 것이 우리가 아닌가. 솔직해지자. 그 시절의 문화들 중에서 우리가 오늘날 가치롭게 생각하는 것은 정말 극소수의 몇 개 밖에 없다. [그나마 유지되는 충효 같은 것마저 오늘날 얼마나 그 존재감이 느껴지는가? 틈만 나면 이민가고 군면제 받으려 노력하는 것이 우리 아닌가.]

졸개는 괜히 졸개가 아니다. 졸개는 쉽게 선동되고 쉽게 동화된다. 그러면서도 졸개는 스스로가 그것을 선택한 것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위해 죽는다고 맹세하고서도 위기가 닥치면 얼마든지 그 이상을 버릴 수 있다. 스스로는 아니라고 강하게 맹세하고 따르면 따를수록 그 자신은 더욱 더 졸개가 된다. 자살 테러리스트 대부분은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서 죽는다. 하지만 그를 자살하도록 지시한 지휘관은 절대 자살테러에 동참하지 않는다. 그는 졸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살할 이유가 없다. 그를 대신할 이념과 사상으로 무장한 졸개들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주관없이 휘둘리는 졸개들, 그리고 자신이 주관이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모르며 허와 실을 분별할 능력도 지니지 못한채 무조건 듣기 좋은 말이 진실인 것처럼 현혹되어 그것이 자신의 사상이라고 착각하는 졸개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투사가 되는 것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착각하는 졸개들. 평소에는 의식조차 못하고 있다가 자극을 받으면 마치 평생을 그것을 위해 몸바쳐온 전사마냥 벌떼처럼 달려드는 가식으로 가득찬 무지몽매한 무리들. 달리 무엇이 졸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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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개 근성  (1) 200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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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에피소드  (1) 200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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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만에 찾은 자연(?)  (2) 200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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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에피소드


['15 VS 1'이라는 설정이 매우 마음에 든다. 결국 세상은 혼자서 싸운다.]

친구집에 있던 컴퓨터 덕분에 XT컴퓨터부터 컴퓨터를 접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내게 컴퓨터가 생긴 것은 1998년 12월 27일에 내 삶의 첫 컴퓨터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당시 인기 그래픽 카드였던 부두(Voodoo)2 애드온 카드를 구입하면 함께 주던 3D번들 게임으로 PC용 게임을 시작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해본 것은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이다.


스타크래프트와 관련해서 나름의 에피소드가 2가지 있다.

Episode 1. : 1998년 12월 31일, 수능도 마치고 대학도 특차로 합격해서 IMF시국에서 오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군대나 빨리 가자는 심산으로(다녀 오면 모든 것이 끝나 있다는 식의 심리였던 듯..) 한가하기 짝이 없던 나는 울산 사촌형님 집으로 놀러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저녁을 먹자마자 형님은 내게 "PC방에 놀러 가자"라고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PC방이 직장인들이나 이런저런 사람들이 일을 하는 곳인 줄 알았다. 당시 PC방의 외벽에는 대부분 '워드/출력/그래픽 작업' 등의 사무업무와 관련된 글귀가 꼭 새겨져 있었고, 한 번도 PC방에 가본 적이 없는 나는 PC방에 가면 와이셔츠 입은 안경 낀 남자들이 주욱- 앉아서 열심히 업무를 보는 곳인 줄 알고 있었다. [이 얼마나 순진하던 시절인가.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이렇게 순수했었다.]
게다가 아직 고딩이었던 탓에 지금과는 달리, 또래보다 현저히 적은 용돈(고2때 월 15000원, 고3때 월3만원을 받았다.)을 받았던 탓에 당시 1시간에 1500원씩 하던 PC방 비용도 부담스러웠다. 여튼.. 여차저차- PC방에 갔다.

그 곳은 정말 놀라운(!) 곳이었다. 그 때 갔던 PC방은 30대의 PC가 있는 작은 곳이었는데, 30대 중에서 27대는 '스타크래프트'라고 하는 난생 처음 보는 게임을 하고 있었고, 2대는 '삼국지'를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석탱이에 처박혀서 '프린세스 메이커'를 하고 있었다. [프린세스 메이커를 하던 사람은 남자였다.] 한마디로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꼬마가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랄까.
[난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까지 산타를 믿었다. -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성탄절 이브에 봤던 뉴스를 통해서였다. ㅠ_ㅠ 뉴스가 내 동심을 무너뜨렸어-!!]

그 때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했을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처음에 프로토스(이름이 멋있잖아. 질럿이 My Life For Aiur!! For Adun!!하면서 손가락으로 그냥 존나게 찔러대는 갑빠도 멋있고..)로 게임을 했는데, 처음에 나오는 프로브 4개랑 시작할 때 주는 50미네랄로 프로브 1개를 더 뽑고 5개의 프로브로 가스도 짓고 게이트웨이 짓고 드라군 꼬물꼬물 뽑고 있는데, 갑자기 형님의 프로토스 드라군 유닛이 개떼처럼 몰려왔다. 너무나 어이가 없었던 나는 형에게 내가 쉴새없이 자원을 모으고 유닛을 뽑았는데 형은 왜이리 유닛이 많냐고 물었더니, 형이 내 게임화면[프로브가 5개 밖에 없는 화면]을 보고 어이없어 했다.
전략 시뮬레이션 쪽으로 꽤 감각이 있었던 나(스스로 이렇게 말하지 부끄럽군.)는 형에게 10분쯤 새로 '교육'을 받았고, 이후 형과 함께 하는 팀플레이에서 초보치고는 꽤나 팀 전력에 도움이 되는 게임으로 어떻게 쥐어박지도 못할 초보 사촌동생(나) 데리고 하루 고생할 것을 우려했던 형님을 흐뭇(?)하게 했다.

그렇게 난생 처음 갔던 PC방은 다음날 아침해가 뜰 때가 되어서야 큰아버지 집으로 돌아왔고, 그 이후에 스타크래프트를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Episode 2. : 남자의 적은 여자다. 다소 어이가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남녀 관계란 그런 것 같다. 잘될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동반자이자 조력자이며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만, 곁을 떠나면 삶에 있어 가장 큰 짐이자 적이 된다.
1999년의 봄은 그랬다. 너무 순진빵[2000년에 만난 여자애가 나를 이렇게 불렀다. 그래서 나는 얼른 커서 '국찌니빵'(당시 김국진이 광고하던 빵 이름.)이 되겠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이었던 나는 미숙함으로 인해서 대학와서 만난 나보다 2살 많은 동기생인 내 삶의 첫 여인에게 뻥-하고 차였다.

너무나 슬펐던 나는 학교도 안가고[어쩌다 보니, 그 애랑 21학점짜리 시간표가 완전히 똑같았다.], 교문 밖을 멍하게 싸돌아 다니며 방황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어갔던 PC방에서 다시 스타크래프트를 만났다. 친구들 불러서 같이 1:1연습을 하다가 배틀넷에서 밤을 지새기 시작하였고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1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꽤나 고수 소리를 듣는 게이머가 되어 있었다. 당시엔 개폐인질을 하면 누구나 고수가 될 수 있는 시절이었다. 심할 때는 4박 5일이나 학교를 빠지면서 PC방을 전전하던 시기였으니까.. 그 때는 어딜가도 고수 소리를 들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 부질 없는 치기(稚氣)에 불과하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그 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너무 순진빵이었던 나는 난생 처음 겪어 보는 이성관계와 거기에서 비롯된 실연이라는 것에 어찌할 줄을 몰랐던 것 같다. 요즘의 나를 생각하면 정말 웃긴 일이다. 어쩌면 그 때 심하게 방황했던 탓(?)에 서둘러 내 안에서 순진함을 지워 버리고 '세상의 찌든 때'를 열심히 받아 들였나 보다.

지금의 나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는 속물이다. 그리고 그 속물됨을 자랑스럽고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눈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고 난 후, 삶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되었다. 아름답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법을 잊어 버렸다.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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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에피소드


['15 VS 1'이라는 설정이 매우 마음에 든다. 결국 세상은 혼자서 싸운다.]

친구집에 있던 컴퓨터 덕분에 XT컴퓨터부터 컴퓨터를 접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내게 컴퓨터가 생긴 것은 1998년 12월 27일에 내 삶의 첫 컴퓨터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당시 인기 그래픽 카드였던 부두(Voodoo)2 애드온 카드를 구입하면 함께 주던 3D번들 게임으로 PC용 게임을 시작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해본 것은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이다.


스타크래프트와 관련해서 나름의 에피소드가 2가지 있다.

Episode 1. : 1998년 12월 31일, 수능도 마치고 대학도 특차로 합격해서 IMF시국에서 오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군대나 빨리 가자는 심산으로(다녀 오면 모든 것이 끝나 있다는 식의 심리였던 듯..) 한가하기 짝이 없던 나는 울산 사촌형님 집으로 놀러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저녁을 먹자마자 형님은 내게 "PC방에 놀러 가자"라고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PC방이 직장인들이나 이런저런 사람들이 일을 하는 곳인 줄 알았다. 당시 PC방의 외벽에는 대부분 '워드/출력/그래픽 작업' 등의 사무업무와 관련된 글귀가 꼭 새겨져 있었고, 한 번도 PC방에 가본 적이 없는 나는 PC방에 가면 와이셔츠 입은 안경 낀 남자들이 주욱- 앉아서 열심히 업무를 보는 곳인 줄 알고 있었다. [이 얼마나 순진하던 시절인가.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이렇게 순수했었다.]
게다가 아직 고딩이었던 탓에 지금과는 달리, 또래보다 현저히 적은 용돈(고2때 월 15000원, 고3때 월3만원을 받았다.)을 받았던 탓에 당시 1시간에 1500원씩 하던 PC방 비용도 부담스러웠다. 여튼.. 여차저차- PC방에 갔다.

그 곳은 정말 놀라운(!) 곳이었다. 그 때 갔던 PC방은 30대의 PC가 있는 작은 곳이었는데, 30대 중에서 27대는 '스타크래프트'라고 하는 난생 처음 보는 게임을 하고 있었고, 2대는 '삼국지'를 하고 있었고, 1명은 구석탱이에 처박혀서 '프린세스 메이커'를 하고 있었다. [프린세스 메이커를 하던 사람은 남자였다.] 한마디로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꼬마가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랄까.
[난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까지 산타를 믿었다. -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성탄절 이브에 봤던 뉴스를 통해서였다. ㅠ_ㅠ 뉴스가 내 동심을 무너뜨렸어-!!]

그 때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했을 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처음에 프로토스(이름이 멋있잖아. 질럿이 My Life For Aiur!! For Adun!!하면서 손가락으로 그냥 존나게 찔러대는 갑빠도 멋있고..)로 게임을 했는데, 처음에 나오는 프로브 4개랑 시작할 때 주는 50미네랄로 프로브 1개를 더 뽑고 5개의 프로브로 가스도 짓고 게이트웨이 짓고 드라군 꼬물꼬물 뽑고 있는데, 갑자기 형님의 프로토스 드라군 유닛이 개떼처럼 몰려왔다. 너무나 어이가 없었던 나는 형에게 내가 쉴새없이 자원을 모으고 유닛을 뽑았는데 형은 왜이리 유닛이 많냐고 물었더니, 형이 내 게임화면[프로브가 5개 밖에 없는 화면]을 보고 어이없어 했다.
전략 시뮬레이션 쪽으로 꽤 감각이 있었던 나(스스로 이렇게 말하지 부끄럽군.)는 형에게 10분쯤 새로 '교육'을 받았고, 이후 형과 함께 하는 팀플레이에서 초보치고는 꽤나 팀 전력에 도움이 되는 게임으로 어떻게 쥐어박지도 못할 초보 사촌동생(나) 데리고 하루 고생할 것을 우려했던 형님을 흐뭇(?)하게 했다.

그렇게 난생 처음 갔던 PC방은 다음날 아침해가 뜰 때가 되어서야 큰아버지 집으로 돌아왔고, 그 이후에 스타크래프트를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Episode 2. : 남자의 적은 여자다. 다소 어이가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남녀 관계란 그런 것 같다. 잘될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동반자이자 조력자이며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만, 곁을 떠나면 삶에 있어 가장 큰 짐이자 적이 된다.
1999년의 봄은 그랬다. 너무 순진빵[2000년에 만난 여자애가 나를 이렇게 불렀다. 그래서 나는 얼른 커서 '국찌니빵'(당시 김국진이 광고하던 빵 이름.)이 되겠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이었던 나는 미숙함으로 인해서 대학와서 만난 나보다 2살 많은 동기생인 내 삶의 첫 여인에게 뻥-하고 차였다.

너무나 슬펐던 나는 학교도 안가고[어쩌다 보니, 그 애랑 21학점짜리 시간표가 완전히 똑같았다.], 교문 밖을 멍하게 싸돌아 다니며 방황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어갔던 PC방에서 다시 스타크래프트를 만났다. 친구들 불러서 같이 1:1연습을 하다가 배틀넷에서 밤을 지새기 시작하였고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1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꽤나 고수 소리를 듣는 게이머가 되어 있었다. 당시엔 개폐인질을 하면 누구나 고수가 될 수 있는 시절이었다. 심할 때는 4박 5일이나 학교를 빠지면서 PC방을 전전하던 시기였으니까.. 그 때는 어딜가도 고수 소리를 들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 부질 없는 치기(稚氣)에 불과하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그 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너무 순진빵이었던 나는 난생 처음 겪어 보는 이성관계와 거기에서 비롯된 실연이라는 것에 어찌할 줄을 몰랐던 것 같다. 요즘의 나를 생각하면 정말 웃긴 일이다. 어쩌면 그 때 심하게 방황했던 탓(?)에 서둘러 내 안에서 순진함을 지워 버리고 '세상의 찌든 때'를 열심히 받아 들였나 보다.

지금의 나는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뒤지지 않는 속물이다. 그리고 그 속물됨을 자랑스럽고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눈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고 난 후, 삶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되었다. 아름답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법을 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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