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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Setzer - 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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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Setzer의 2006년 솔로 앨범. 경쾌함이 앨범 전체에 물씬 풍기는 로커빌리(Rockabilly)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런 앨범이다. 이런 류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한 번쯤 들어볼 만한 썩 괜찮은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에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흠집을 내어 버리는 곡이 있으니, 바로 일본 시장을 겨냥한 듯한 호테이 토모야스[각주:1]와의 듀엣곡인 Back Street of Tokyo라는 곡이 그 거대한 상처의 주인공인데, 가히 '음악적 쓰레기'라고 단언해버리고 싶다. 도대체 이런 쓰레기 곡을 왜 만드는지 알 길이 없다.



Hedge™, Against All Odds..
  1. Hotei Tomoyasu, 사무라이 픽션에서 '카자마쯔리'역을 소화한 그 기타리스트(배우가 아니다.)다. 사무라이 픽션의 음악을 담당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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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꽤나 호사스런 취미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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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던 내게 유난히 익숙했던 이 카메라용 가방. 이 천으로 만든 녀석들의 가격이 20만원대를 넘나든다는 사실에 살짝 의식이 희미해짐을 느껴야만 했다.]


경통을 따로 분리해서 다니는 카메라가 제법 비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카메라를 담는 가방까지 비싼 줄은 미처 몰랐다. 더불어 배터리도 은근히 비싸다. 경통이 분리되지 않는 후지S6500(경통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께 구입하고 나서 알았다. 전지현 카메라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얼마나 대충 급하게 구입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어차피 사진이라고는 CD를 찍은거 밖에 더 있나?)을 새로 사면서 괜시리 카메라 가방도 하나 가지고 싶어졌다. 카메라를 사면서 숄더백이 하나 따라오기는 했는데, 영 못생겨서 메고 다니기가 싫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연히 알게된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카메라 가방 제품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두리번 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녀석을 발견해서 클릭을 했는데, 최저가가 14만원이라고 떴다. 학교 다닐 때도 6만원이 넘는 가방을 메고 다닌 적이 없던지라(3/ 4학년 때는 워낙 강의 시간표가 한산해서 가방없이 교재를 손에 들고서 한량처럼 다니기도 했다.) 좀 비싸다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녀석들은 확실히 비싸다. 일단 나중에 적당한 시기를 봐서 카메라 가방을 구입하기는 할 것 같지만, 지금 당장은 좀 힘들 것 같다.

일단은 새 카메라가 무척 마음에 든다. 덩치가 삼손만하고 꽤나 무거운데다가 배터리를 AA건전지 4개를 먹는다는 치명적인 단점들이 있지만, 이런 단점들은 비슷하게 생긴 카메라들의 공통된 단점이어서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XD Picture Card를 쓰는 하드웨어 구조는 분명 지금의 나에게는 단점이다. SD메모리 카드를 쓰는 제품과 호환해서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한 번 이번 구매가 얼마나 급조된 것인지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단지 전지현 카메라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대충 기본 설정으로 좀 찍어봤는데도 올림푸스의 전지현(완전 전지현 까돌이 다됐다. 이제.) 따까리들의 똑딱이와는 사진이 확실히 다르다. 침대에 누워서 모니터에 켜놓은 'KBS스페셜 Divx)의 움직이는 영상을 찍었는데도 거의 흠잡을 곳 없이 선명하게 나왔다. 예전의 올림푸스 똑딱이는 못찍던 사진이다.

참 촌스럽게도 꼴랑(꼴랑? = =..) 40여만원짜리 디카를 구입해 놓고서 무척 기분이 설레었다. 그 옛날 70만원 주고 샀던 Mu400(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가격대 성능비다 - -..)에 순응하면서 살았던 지난 날이 원통하기까지 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더 좋은 카메라를 찾아 헤매는 것이었구나. 200만원짜리 디카도 있던데 그건 얼마나 잘나오려나. =_=..


P.S. : 한때는 청년 시절 라이카 카메라를 목에 메고서 나름 사진을 좀 찍으셨던 아버지께서도 덩치 좋은 새 카메라가 거실 바닥에 놓이자 무척 관심을 보이며 만지작거리셨다. 물론 시대를 적어도 3타이밍은 놓치신 아버지께서는 새 디카에게서 알아낸 것은 경통을 돌려서 줌인/줌아웃하는 방법과 찍는 방법 뿐이셨지만. 잠깐이었지만 자취를 하는 여동생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의 가족이 모여서 카메라를 신기하게 만지작거리는 우스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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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순혈주의에 대한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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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하느라 안그래도 책 읽을 시간이 적어서 사놓은 책도 다 못보고 있는데다가 더 부족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새 책이 나오면 관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거의 어지간해서는 (국제)정치학 쪽으로 집중해서 책을 읽는 편이지만, 특별히 그 쪽만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알게된 이 책의 내용을 보며 한때 혼자 꿍하게 생각하던 상념이 생각났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이 정말 '한(韓)민족'이라는 존재인가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우리가 시조라고 여기고 있는 단군신화도 명백히 동이족이라고 보기 힘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단군신화의 환인 자체가 유목민의 성격을 띤 존재(하늘은 북쪽을 의미하며 북방민족이 남하한 것을 의미한다.)이니 몽골이나 만주/연해주 쪽에서 도래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유목민의 특성상 단번에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에 위기가 발생한다.

고조선 건국 이후에도 중국대륙과 꾸준히 교류하면서 한(漢)족과도 혼혈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고(나는 가장 의문시 되는 것이 고조선이 과연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거기에서도 이미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은 우리가 흔히 착각하게 되는 '순혈주의'가 성립될 수 없다. 게다가 고조선이 한나라 무제(武帝)에게 정복되었으니 피정복지의 식민지 백성으로서 또 한 번 순혈주의가 깨어진다.

초기 삼국시대의 성립 이후에도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고구려와 백제는 배다른 형제의 나라라고 치더라도 기존의 삼한(마한/진한/변한)과 신라의 존재는 고구려/백제와 이들 부족국가(혹은 고대국가)들이 동일한 민족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뜻한다. (나는 역시 이들 사이에서도 언어 구사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명백히 고구려/백제는 대륙에서 도래한 문명이고 신라와 삼한은 한반도에서 자생했을 가능성이 높은 출신 성분이 다른 존재다.

신라 내부에서도 또 한 번 문제가 있다. 신라의 내물왕은 부자세습을 성립함으로서 고대왕국의 기틀을 마련한 왕으로 단순히 기억되고 있지만, 과거 한 다큐멘터리에서 신라에 관한 고증을 하던 것에 의하면 내물왕계는 한반도에서 자생한 민족이 아니라, 중앙아시아에서 동진하여 한반도에까지 도래한 황금을 잘 다루는(제련 기술이 탁월한) 유목민족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공식적으로 배우는 교과서적인 내용에서는 나오지는 않지만, 학게에서 이와 같은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번 한민족의 순혈주의는 깨어진다.

이후에도 고구려/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패망하면서 또다시 순혈주의에 위협을 받게 되었고, 고려의 對몽고전 패배로 반식민지 상태에 놓이며 또 한 번 순혈주의는 붕괴되었다.[각주:1] 그 외에도 조선의 왜와의 전쟁(임진왜란)으로 전 국토가 섬나라 왜인들에 의해 유린되며 섬나라 왜국의 혈통[각주:2]이 대거 뒤섞였다. 적어도 최소한 고려의 몽고전쟁과 조선의 일본전쟁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우리 민족 순혈성의 대위기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다만 우리가 분단 이후의 반공교육/통일교육 과정에서 지나치게 한민족을 강조하며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사이에 이런 이견들이 묻혀지냈지 않았나 싶다. '단일민족국가'라는 약간은 헛된 영광이 우리를 약간은 닫힌 존재로 만든 것은 아닐까.


Hedge™, Against All Odds..
  1. 우리는 일반적으로 몽고반점이 이 시기에 생긴 것이라고 전하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는 몽고제국에 정복되기 이전에 이미 몽고반점을 가진 혼혈민족(혹은 유목민족의 후예)이었을지도 모른다. [본문으로]
  2. 우리는 일본인들이 백제인의 후예(?)쯤으로 배우고 있지만, 실제로 '설'일 뿐이지 일본에 자생하던 인종이 없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명백한 증거는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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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ji S6500, 본의 아니게 힘들게 장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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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 s6500, 이 녀석이 내 소유물이 되었다.]

그야말로 '오욕의 3년(4년인가?)'이었다. 아무리 내가 풋내기 껄떡쇠였다고는 하지만, Mu400이라는 이름의 '전지현 카메라'는 허접초짜 물렁쇠인 내가 쓰기에도 정말이지 한계가 명백했다. 도대체 이놈의 카메라는 찍으라고 있는 물건인지, 도 닦아서 신선이 되라고 있는 물건인지 나의 정신세계를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데아의 세계로 보내버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오래 전부터 사야지..사야지..했는데, 이제야 카메라를 바꾸게 되었다. 카메라를 바꿀 수 있는 때는 제법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때마다 무언가가 내 발목을 잡았다. 거의 자잘하게 애들이랑 다니면서 쓰는 돈이 내 소비패턴에서 꽤나 큰 자리를 잡았던 것 같다.(라고는 썼지만, 아마 음반 구매를 하지 않고 클럽이나 공연장에 가서 뻘짓을 하지 않았다면 벌써 사고도 남았을꺼다.)

여튼.. 새 카메라를 샀으니.. 이제 물건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건가. ^^ㅋ
이 카메라가 오면 꼭 내가 찍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인물 사진에 특화된 카메라라고 하니까.. 어떻게 잘 되겠지?

P.S. : 카메라를 힘들게 구입한 이유는.. 공인인증서가 없어서.. 신용카드로도 체크카드로도 긁어대지 못했다. 실시간 계좌이체도 안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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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 - Pocket Symphony [2007] : Once Upon a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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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Air의 신보 Pocket Symphony에 대해서 짧막하게 끄적인 적이 있어서 추가적인 끄적임은 생략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예나 지금이나 Air를 보고 있으면 꽤나 '뽀대나는 스타일'을 가진 양반들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뽀대에 죽고 사는 양반들이 넘쳐나는 요즘이라 그런 족속들을 한심스레 보기는 하지만, 음악에서 뽀대가 난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딨으랴?



내가 인코딩하는게 귀찮아지니까(정확히 말하면 시간이 없는 거겠지. 지금 이 글도 피곤한데 끄적이고 있으니.) 대충 Youtube영상으로 벌충해버리게 되네. Youtube도 저작권이라는 늪에서 헤매이는 모양인데, 무형적 물질가치에 지나치게 얽메이게 되면서 세상이 점점 표리부동함으로 병들어가는 것 같다. 매스컴에서는 수없이 소음공해/시각공해처럼 흘려보내는 음악과 양상들이 웹으로 옮겨지면 모두 범죄행위가 되어버리고, 재화를 벌만큼 벌고 있을 만큼 있을 것 같은 음악인들이 의외로 웹에서의 컨텐츠 공유에 대해서는 훨씬 더 인색하고 강성을 띤다. UCC니 뭐니 하면서 타인의 저작권은 서비스 제공을 명목으로 독식해버리면서 법적 책임은 UCC창조자에게 전가하는 불합리한 기생적 구조(단물은 서비스 제공자가 먹고 쓴맛이 나오면 단물을 준 녀석이 덤탱이를 쓰니.)도 결국은 그 희안하게 합리성을 잃은 채 꽉 막혀버린 저작권이라는 것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합리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세계화의 고도산업사회가 되어가면 갈수록 역설적이게도 사회적 합리성은 더 위축되어만 가는 듯 하다. 적정한 수준의 합리성을 설정하는 것은 그리도 어려운 일이었던가. 그도 아니면 누구를 닮아서 세상을 반토막 내어 놓고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성세력으로 설정해 버리며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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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 / World's End Girlfriend - Palmless Prayer / Mass Murder Ref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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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선호하는 Post Rock 밴드 중 하나인 Mono(동명의 서로 다른 음악을 하는 밴드가 여럿 있는데, 이 앨범의 Mono는 일본의 Post Rock밴드.)와 어제 끄적였던 World's End Girlfriend의 일종의 Split앨범. 명확히 말하면 Split앨범이 아니라 Mono와 World's End Girlfriend(원맨 밴드이기 때문에 밴드명은 큰 의미가 없다.)가 한 밴드처럼 잠시 섞여서 하나의 음반을 함께 발매한 것이다. Mono의 음악적인 스타일은 이 앨범에서도 명확히 드러나는 반면에 World's End Girlfriend의 음악 스타일은 상당 부분 거세되어 Mono의 음악을 더욱 서정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Featuring한 셈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Post Rock/Experimental Rock음악의 '진짜 맛과 멋'은 정적인 면에 있다. 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 특정 인종과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언급하는 것이 매우 우매한 논쟁이 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도 동양(특히 동북아시아)의 정적인 정신적 가치(선비의 정신 혹은 수행하는 사무라이)가 동양인들의 심연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증거로서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 반향을 일으키는 '수구적이고 전통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속의 캐릭터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현대 동양인들의 여린 감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때문에 Post Rock/Experimental Rock은 가장 동양적인 락음악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P.S. : 한 곡만 걸었다. 이거 한 곡만 해도 17분이 넘는다. 12분 이하의 곡이 없이 5곡만으로 앨범을 채웠기에 원없이 정적인 여백을 느낄 수 있다. 일반적인 서양인의 감성으로는 이와 같은 소리의 배열을 짤 수 없다. 그것을 음악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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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함(?)

나보다 8살이나 어린 고딩은 내게 꼬박꼬박 '오빠', '오라버니'라고 부르는데..

내 나이의 2배는 됨직한 어른은 나를 부를 때 종종 '아저씨'라고 부른다.

이런..


- 블로그 상단의 스크롤되던 부분이 갑자기 맛이 가버렸다. 왜이러지..

- 내 능력으로 수정이 불가능한 관계로 스킨을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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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s End Girlfriend - Hurtbreak Wonderland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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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즈히코 마에다의 원맨밴드인 World's End Girlfriend의 2007년작 Hurtbreak Wonderland.

Post Rock 필이 물씬 풍기는 잡탕(다양한 악기를 선택함을 의미.) Rachel's를 연상케 하는 World's End Girlfriend의 음반을 구입하려고 꽤나 발품을 팔았다. 정확히 말해서 인터넷에서 그냥 구매하면 되는데, 굳이 매장에서 사려고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약 3주간에 걸쳐서 발품을 팔아야 했다. (주말에만 여가시간을 가지니까.) Post Rock 필이 물씬 풍긴다고 했지만,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Experimental Music(나는 대충 Avan-Garde,  Ambient, Experimental, Electronica 등에 속하는 음악을 통틀어서 Post Rock이라고 부른다.)에서 느낄 수 있는 음향효과의 부적절한/혹은 적절한 나열은 쉽게 느낄 수 없다. 매우 가다듬어진 멜로디와 매우 정상적인 서정곡을 연주하는 매우 정상적인 음악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World's End Girifriend의 음악에서 무척이나 정돈되지 않은 거친 무언가를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처음에 이 글을 쓰기 전에는 2007년작인 이 앨범을 '미처 손질을 다 마치지 못한 원석'으로 묘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의상 읽어준(?) 부클릿에서 카즈히코 마에다는 자신의 음악을 '깔끔하지 않은 사람냄새 나는 음악'으로 정의내려 버렸다. 때문에 나는 그의 의도된 거친 면을 비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대신에 나도 나의 취향에 잘 부합됨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반에 최상급 추천의 글을 남기지는 않겠다.


P.S. 1 : 기존의 앨범들보다 약간 세련되어진 느낌이다. Mono와의 Split앨범에서의 모습과도 약간 이질감을 느낀다.

P.S. 2 : 곡을 평소와 달리 좀 많이 걸어 놓았으니(곡당 러닝 타임도 제법 깁니다.), 며칠만에 올린 글인데, 오고가시는 분들께서 귀에 좀 감기면 길게 듣다가 가시기 바랍니다. 한 36분쯤 돌아가려나? 전체 앨범의 절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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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 한 달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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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카메라에 담긴 사진. 원본이 유실되어서 흐린 사진 뿐이다. 주희 본인은 없네. 나는 이 중에서 제일 싸가지 없게 생긴 '놈'이다.('뇬?'이 아니다.)]


오늘은 내가 근무를 시작한지 정확히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2007년 3월 3-4일간 재나를 만나러 서울에 가 있었고 3월 5일은 하루 쉬었고 6일부터 출근을 했으니, 오늘이 정확히 한 달째 되는 날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남들보다 1년이 빠른 27년의 삶을 살아오면서 이 날까지 살아온 내 삶의 풍경들과는 전혀 다른 이색적이고도 퇴폐적인(?) 환경에서의 첫 한 달은 무척 나로 하여금 자괴감과 이질적 감성에 젖게 만들었다. 단언컨데 내가 나로서 존재하게 할 수 있는 나의 가치관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그 자괴감은 내가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아 떠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어제 당신과 이야기할 때는 당신에게 미처 얘기하지 못했지만, 나는 지금의 이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쯤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것을 계기로 父子의 관계가 회복될지도 모른다"라고. 시기적으로 24살의 그 때는 내가 아버지를 참지 못하고 어머니께 친자확인소송을 부탁하던 시기였고, 아버지께서 내게 이 길을 권유하신 것은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새로운 환경 속에 놓인 父子관계이지만, 아직은 우리 父子가 함께 걸어가며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길이 더 멀고도 험난할 것으로 능히 예상되고도 남음이 있다.

2년만에 재회했던 날 당신이 처음 내게 했던 말은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졌어."였는데, 아직도 나는 더 많이 부드러워져야 함을 느낀다. (오늘 또 네게 한소리 들었으니.) 그리고 내가 충분히 부드러워지고 났을 때에는 우리 父子의 관계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가고 있거나, 아버지의 그 끝 모를 까칠함에 내가 무덤덤해질 수 있는 시기겠지. 어제도 말했지만, 난 내가 내 아버지를 거의 닮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기적적이라고 생각한다.

P.S. 1 : 최근에 어떤 사람(미성년자)에게서 내가 너무 자상하고 매너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변화는 기적이 아닐까?

P.S. 2 : 오늘 원래 근무 한 달 기념으로 일종의 보고서('계산서'라고 할까?) 형식의 포스트를 쓰려고 미리 글을 작성했었는데, 정작 써놓은 글은 전혀 엉뚱한 내용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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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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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kir Hussain - No Name


나이는 내가 2살 더 많은데, 영혼은 네가 더 성숙하구나.

난 내가 주관이 뚜렷하고 선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넌 나보다 더 주관이 뚜렷하고 선이 굵구나.

그것이 내가 널 더욱 놓치고 싶지 않은 이유다.
네가 때때로 흔들릴 나를 더 건실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런데 네가 흔들릴 때는 내가 어떻게 도와줘야 하지?
내가 더 약하면 버팀목이 되어줄 수 없는 건가?
아니면 그 정도의 약한 지지대로도 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걸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확인해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꼭 필요한 존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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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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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진에서는 꿀벌이 참 크게 잡히고 배경이 블러처리한 것처럼 흐리게 나와서 무척 마음에 든다.]

나는 곤충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흉칙(?)하게 여기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꽃과 함께 찍히는 곤충 사진을 좋아한다. 좀 더 그 범주를 좁히면 왠지 모르게 '근면함'이라는 이미지와 매치가 되는 일벌들의 모습이 담긴 것을 좋아한다. 일전에도 한 번 꿀벌이 꽃봉오리에 앉아서 '작업'(?)을 하는 사진을 담았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 때보다 좀 더 잘찍힌 것 같아서 무척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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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비슷한 의도로 찍은 이름 모를 꽃. 원래 푯말이 있었는데, 망각의 샘물을 원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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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들의 망국적 선민의식과 도발적 매국책동

나는 정치/외교/안보 분야에서 키신저적 성향과 신보수주의적 성향을 공유하고 있지만, 경제적인 분야에서는 전반적으로 보호무역 성향에 가깝다. 세계화(Globalization이던지 김영삼의 Se-Gye-Hwa이던지 간에.) 추세에 따른 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서 수용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지, 시장주의자들처럼 결코 자유무역을 만병통치약따위로 여기지는 않는다. 때문에 FTA와 같은 WTO체제 이상의 또다른 형태의 자유무역 지향의 국제법이나 조약을 거부하는 편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시장주의적 발전론은 정치적/경제적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수치적 성장이 있을 뿐, 그에 따르는 사회적 부의 재분배 과정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부의 재분배를 위한 노력을 성장동력을 갉아 먹는 기생충쯤으로 여기는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삐뚤어진 부르주아지의 사회적 책임회피현상에 대해 일말의 동조도 갖고 있지 않다. 시장주의자들에게는 '도덕'과 '윤리'가 없다. 나는 국제관계에서 키신저의 정치행보에서 볼 수 있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 무도덕/무윤리에 광적으로 열광하지만, 그 무도덕과 무윤리는 자신의 국민국가에게까지 전이되어서는 안된다. 키신저의 머릿 속에 자신의 조국인 미국과 미국의 이익을 계산하는 계산기만이 있는 것처럼 한국의 지도자에게는 한국과 한국민의 이익을 계산하는 계산기가 있어야 한다. 시장주의자들의 허황된 개방에 대한 막연한 장미빛 전망이 보이는 후광에 실명하여 빛과 어둠을 분간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이미 지도자로서 그 존재가치를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화염병을 던지며 수업을 거부하며 쇠파이프와 죽창을 휘두르며 반전반핵반미(反戰反核反美)를 외치던 자들이 어느 순간엔가 갑자기 그들이 그토록 경멸한다던 숭미주의자들이 되어 버렸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던 청기와집의 청개구리 녀석이 언제부턴가 갑자기 그들이 수구냉전세력이라고 매도하던 숭미주의자가 되어 "미국시장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라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열렬히 중국을 짝사랑하던 그가 말이다. (짝사랑이 얼마나 비참하고 소모적인 것인지 깨달은 것인가?)


집권말기의 노무현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광적으로 집착한 이유는 두 가지다. 그 첫번째는 노무현의 집권 기간동안 '노무현을 대표하는 긍정적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을 지닌 성과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집권 초기 노무현이 '직접 챙기겠다'라고 말했던 수십가지 사안들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날짜별로 잘 정리된 목차가 나올 지경이지만, 오늘날 와서 그것들 중에 제대로 지켜진 것은 한 손으로 꼽아도 손이 한산할 지경이다. 그가 집권 중반기 목숨걸고 뛰어들었던 부동산 정책은 결과론적으로 실패했음을 패배를 인정할 줄 모르는 노무현이 자기 입으로 시인한 실패작이다. 김대중에게서 배운 혈세를 퍼주어 국민대중의 여린 감성을 선동하고 자극하는 남북정상회담은 임기 중에 성사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날샜다. 이제 남은 것 중에서 노태우의 아파트 2백만호 건설, 김영삼의 부동산 실명제(+국제구제금융위기), 김대중의 햇볕정책처럼 자신을 대표하는 아이콘을 만들고 싶었던 그에게 '韓美FTA타결'은 아주 매력적인 유혹이었을 것이다.

TPA(무역촉진권한 : Trade Promotion Authority) 시한에 쫓긴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장기플랜이었던 韓美간의 자유무역협정을 1년만에 날림으로 조속추진 논란을 야기하고 언론을 통해서 수없이 지적되고 폭로되었던 한국측 협상단들의 당시의 나조차도 알고 있던 관련지식에 대한 무지몽매한 협상단(그 때 대놓고 씹혔던 그 한국측 대표는 오늘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회담 성과에 대해서 스스로 수우미양가의 '수'점수라고 자평하는 허무개그를 펼쳤다.)이 진행한 협상 내용에 대한 결과물의 자평은 한 손으로 태양을 가리려는 듯한 어리석고도 아둔한 작태였다.

TPA는 의회에서 행정부에 임의로 부여한 권한으로 의회 혹은 행정부가 필요로 한다면 얼마든지 '갱신'(실제로 미의회의 각종 조례들은 수없이 Renew되고 있다.)될 수 있는 것으로 그 기간이라는 것은 이번에 한국민들이 적나라하게 보았다시피 얼마든지 엿장수 마음대로 늘였다가 줄였다가 할 수 있다. 그런 기초적인 상식에서조차 노무현 한 개인의 정치적 야심에 쫓긴 한국정부와 대표단은 말레이시아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협상 실패로 몸이 달아 자유무역 사조의 퇴보를 우려하여 몸이 달아있던 미국의 약점을 제대로 후벼파지 못했다. 한 개인의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국가라는 운명공동체와 4800만 한국민들이 또 한 번 햇볕정책 만큼이나 큰 리스크를 품은 도박판에 내던져진 꼴이 된 것이다.


노무현이 FTA타결에 목을 맨 또 다른 이유는 '노무현의 지독하리만큼 외곬수로 삐뚫어진 선민의식'에 있다. 노무현의 선민의식은 그의 집권 기간 내내 수없이 볼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가장 최근에 있었던 '대통령중임제'와 '韓美FTA타결을 위한 작위적 노력'은 그가 과거 군사정권의 수괴였던 박정희가 김재규의 권총에 맞아 죽는 순간까지 깨닫지 못했을(그리고 그를 다룬 수많은 전기와 자서전들에게서 피력되는 것처럼) '나 아니면 누가 이 나라를 바른 길로 이끌어 갈 것인가?'하는 막연한 선민의식에 기인한다. 실제로 그러한 선민의식에 빠져있던 박정희가 죽고 나서도 그가 남긴 개발독재의 유산 덕분에 두발장애자 대머리 각하 인간쓰레기 전두환이 집권하던 시기에도 한국은 꾸준한 통계수치적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고, 이는 '물태우' 노태우, '갱제'의 김영삼 시기까지 이어졌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자신은 자신이 하지 않으면 누가 정치적 불안을 무릅쓰고 경제 분야의 헤비급 챔피언인 美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무리수를 두겠냐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지만, 현실세계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나 하나가 없어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만 돌아간다. 노무현의 철부지 행동에 국가의 장기플랜이었던 韓美자유무역협정이 1년만에 번갯불에 콩 볶듯이 만들어져 버렸다. 그러고서는 오늘 노무현은 담화문에서 '국가적 발전 아젠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10년 뒤, 20년 뒤를 바라봐야 하는 '국가적 발전 아젠다'라는 것을 어떻게 1년만에 그리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지 참으로 기이하다. 언제 그렇게 한국에 연구인력이 그리도 많이 확보되어 있었던가? 포털들이 음란물을 모니터링으로는 막을 수 없다며 울상이던 포털들이 일이 커지자 모니터링을 해결방안으로 내놓은 꼴처럼 해보지도 않고서 해봤다고 일단 거짓말을 하고 나서 뒷감당이 안되면 '불가항력'을 외칠 태세와도 같다고 할까?


노무현과 그의 친위세력들로 이루어진 위정자들은 스스로를 '조국의 민주화 세력'이라고 참칭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끼리 모여서 쑥덕거리며 조국의 민주화를 맨손으로 이루어 냈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일단 그들이 민주화를 위한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한 것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정작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서 평생을 투쟁한 인물들은 그들이 '수구냉전세력'이라고 비방하는 김영삼과 새천년민주당과 떨어져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보수꼴통세력'이라고 매도하던 김대중 등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들은 韓美자유무역협정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 참칭한 민주화 세력이라는 색채를 스스로 짓밟고 그들이 수구냉전 세력이며 군사독재 정권이라고 여기던 박정희/전두환 같은 군정 시절이나 다름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니, 조국 근대화의 수준이나 이 땅의 민주주의의 성숙의 수준을 감안하면 그보다 더 극단적이고 엄청난 초대형 반동행위를 저질렀다. 反FTA관련 집회를 모두 불법화하고 反FTA성향의 지면/영상홍보 등을 정부차원에서 원천봉쇄한 것이 그것이다.

스스로 민주화 세력이라고 참칭하던 자들이 이와 같은 반동적 책동을 감행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2006~2007년 사이에 대한민국은 잠시동안 'FTA'라고 하는 단일한 주제에 한해서 나처럼 보수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 아닌 극좌적 성향의 아나키즘 신드롬에 찌든 몇몇 극단적 운동가들에게는 최소한 과거 중앙정보부 공안정국에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시대적 사조를 감안할 때 그 때보다 더 큰 좌절감을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2007년의 대한민국에서 언론과 집회, 결사의 자유가 탄압 받았다는 사실은 엄청나고도 명백한 시대적 소명의식을 역행하는 대(大)만행이었고 광범위하고도 무차별적인 대중학살행위다. 2007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그들 스스로가 그토록 울부짖었던 냉전수구세력들이나 하는 중대범죄로서 정권과 정당의 정당성마저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져야 할 것이며 노무현이란 한 개인의 시대착오적 인격/소양마저 심판받아 마땅하다.

더불어 역설적으로 FTA와 관련한 대중운동의 탄압은 그들 스스로 그들의 행위가 정당성이나 국가적 중대사를 처리하는 명예로움이 아닌 특정한 목적이나 이익/한 개인이나 집단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국가 차원의 범죄행위가 자행되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기도 하다. 떳떳하지 못한 자들의 행동이기에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서 떳떳하지 못한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려 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주요 언론사를 통해서 1번에 1억원이 넘는 전면광고로서 韓美FTA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어린 국민대중들은 선전/선동하는 것을 용인하면서도 어찌하여 그와 반대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억압하고 탄압하는가? 그것은 스스로 억압 받고 탄압 받았다던 자들의 자격지심인가. 아니면 '권력은 반드시 보수화 한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자신들이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인가.


또 노무현이 광적으로 추진한 韓美FTA과정에서는 '의회민주주의' 또는 상호견제를 기치로 내건 민주주의의 철칙인 '삼권분립'이 철저히 무시되고 묵살되었다. 행정부가 그들 스스로 말한 '국가적 발전 아젠다'인 韓美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권력의 3대 중요 행위체인 의회의 정보공개 요구를 협상 과정에서의 정보보안을 이유로 거부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3대 정치행위체인 의회가 또 다른 행위체인 행정부의 독단적 판단에 의해서 국가 중대사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중대사건이다. 현 정부는 현행법상의 법조문을 내세워 자신들의 범죄적 일탈행위를 변호하고 있지만, 스스로 민주화 세력이라고 참칭한 자들이라면 그와 같은 현행법 조문의 특권을 얼마든지 융통성 있게 해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자유무역협정 체결과정에서 쏟아지는 국민적 저항을 설득하기 위한 합리적 대안으로서 작용할 수도 있었고, 그들이 참칭하는 역사적 사회발전적 행위의 결과물인 민주사회 건설의 결실을 국민대중들에게 훨씬 극명하게 노출하여 한국정치 관행의 변화하고 발전된 모습을 대내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결론은 2007년의 대한민국에서 민주화 세력을 참칭하는 자들이 모여서 밀실회담을 벌였고 그 결과물이 오늘의 내용들이다.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는 일이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FTA협상 타결과 의회 비준은 다른 문제라고 오랜만에 한 목소리를 냈다. 골프장에서 2라운드만 돌고 나오면 어제의 일은 모두 잊어버리는 일반적 망각의 동물인 국민대중의 인간들과는 다소 다른 지적사고체계를 가진 '국회의원'이라는 원숭이들은 지난날 韓-칠레 FTA국회 비준동의안 통과 과정에서 발생했던 범국가적 저항에 대해서는 이미 잊어버린 모양이다. 열린우리당의 그 여자 대변인(말을 워낙 간사하고 가증스럽게 해서 오늘 오전에 머리에 그녀의 말이 팍팍 박혀 버렸다.).. "타결은 타결이고 이제부터 수백번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라고? 여지껏 뭐하고 있다가 이제부터 계산기를 두드릴 생각인지 참으로 희안한 족속들이 아닐 수 없다. 계산기가 일반 계산기가 아니라 공학용 계산기처럼 사용하기가 복잡할텐데, 일반 계산기도 못두드려서 골프장에서 라운딩할 때 우산 씌워주는 역할로 밖에 쓰지 않는 보좌관들을 시킬 녀석들이 무슨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란 건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국익(National Interest)'이라는 것만큼 까탈스러운 것도 드물다. 마이너스로 계산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국익을 지켰다'라고 보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플러스로 계산이 떨어지는데도 상대적 계산과 논리에 의해서 '국익을 훼손했다'라는 냉소와 비난을 받기도 하는 것이 국익이라는 가치를 다루는 자들의 딜레마다. 노무현은 韓美FTA를 통해서 어떤 면에서 수치적으로 한국과 한국경제의 발전그래프를 청신호로 그려넣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그래프에는 노무현 집권 이후 현저히 심화되었다고 끊임없이 지적 받는 사회양극화가 더욱 더 극명하게 벌어지는 모순된 숫자놀음의 중간값이 그려넣은 낭만적 청사진일 뿐이다. David Eastern이 말하는 정치의 기본적 정의인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국적 특수성과 시장주의자들의 독설 속에서 '자유시장'과 애덤 스미스의 철지난 논리로 한국이라는 운명공동체가 IMF와 IBRD로부터 시장개방만이 살 길이라고 조언 받으며 차관을 들여오다가 무참한 경제실패와 국가부도 사태를 경험한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의 경우들처럼 좌초되지는 않을지 심히 우려스럽다.


P.S. : 현대자동차와 삼성이 잘되면 대한민국이 모두 잘되는 것인가? 내 아버지의 사업장 거래처 중에서 삼성에서 하도급 받고 있는 사업장 대표들이 삼성의 감찰단들에게 받는 부당한 간섭과 횡포가 비단 삼성만의 일인 것일까. 이재용/정의선이 세금을 포탈하여 국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거대기업의 투명한 검증이 없는 제왕적 부자승계에도 묵인하며 위기 상황에서 공적자금이란 이름으로 혈세를 꼴아박아야 하는 한국민들의 아픔은 누가 보듬어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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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개의 침략(Chinese Inva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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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에 찌든 하늘. - 집 앞의 대구수목원에서..]


한국 사람들은 중국인을 비하할 때 주로 '떼놈'이라고 부르고 중국을 칭할 때 '짱개'라는 요상한 표현을 쓴다. '짱개'라는 표현은 때때로 '떼놈'처럼 중국인을 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나 자신은 공식적으로는 이런 류의 표현을 쓰지 않지만, 내 안에 강한 反中정서와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세상의 무분별한 찬사(?)와 장미빛 미래(?)에 대한 깊은 회의와 반론을 품고 있다.

여튼.. 짱개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나이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나 역시도 '짱개놈들'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빌어먹을 짱개놈들의 오염된 땅과 하늘에서 날아온 주황빛 모랫가루로 인해 푸른 하늘이 깊게 병들어 버려 숨조차 가쁠 지경이었다. 오늘 후배들이 내 아파트 앞의 수목원으로 소풍을 온다고 오랜만에 얼굴 좀 비춰 보라고 해서 나갔다가 모랫가루가 목에 한가득 끼인 채, 다소 이른 시간에 철수해야만 했다. 세계최대의 ODA수혜국이면서도 동남아/아프리카의 자원부국들에게 거액의 ODA를 퍼붓는(인도네시아/베트남 등에서는 원조규모 1~2위를 다툰다.) 표리부동한 짱개 녀석들의 '환경침략'에 휴일 하루가 병들고 있다.

아어.. 휴일에 황사 때문에 왜 이 모양인지..

P.S. : 제목은 브리티시 인베이션(British Invasion)의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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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Theater - When Dream and Day Reunite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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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Theater의 데뷔 앨범을 James Labrie가 부른 버전의 Official Bootleg. 한 번쯤 제임스 라브리에가 부른 데뷔앨범을 상상했던 적이 있었지만, 역시나 제임스 라브리에의 극히 제한되는 표현력은 Dream Theater의 곡들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형적인 스타일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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