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이 녀석을 만지작거리느라 넋이 나가 있었다. F5를 구매하려고 기다렸지만 마땅한 매물이 나오지 않던 차에 비교적 쿨한 가격에 나온 물건이라 황급히 구매한 것이지만, 그 기다림에 대한 만족감은 너무도 컸다.
사실 단점도 꽤 많은 바디이지만, 내 마음 속의 필름 플래그쉽에 대한 요구(?)와 녀석이 주는 뷰파인더의 광활한 100% 시야각, MF필름카메라에 가까운 AF필름카메라라는 독특함이 필름 카메라의 느낌을 일정 부분 지키면서도 AF카메라의 장점을 수용한 듯하여 묘한 매력을 준다.
월요일 밤에 가져왔으니 실제로 3일 밖에 쓰지 않았고 아직 첫롤도 다 못찍었지만, 사진을 촬영하면서 느낀 기계적 만족감과 불만을 나열해 보고자 한다.
◆ 만족
- 필름 플래그쉽 바디를 원했던 나 스스로의 자족감. 기함급 바디만의 묵직함과 충분한 그립감.
- 묵직함에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이 시선을 좀 더 오래 두게 한다. (조급함을 자제하는데 도움이 된다. 묵직함이 경솔함을 억누르는 느낌이다.)
- 터미네이터를 떠오르게 하는 칼 같은 셔터와 와인딩 소리. (F80D에 업글하게 된 실질적 원인이다. F80D의 성능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측거점 조작 등에서 더 우월했으나, 셔터음이 너무 좌절이었다.)
- 넓은 뷰파인더와 100% 시야각에서 오는 정확한 앵글 구성 가능 (보급기는 시야율이 낮기 때문에 뷰파인더에 보이지 않는 주변부 일부가 필름에 노광이 되는 문제점이 있어 완벽히 의도한 앵글 구성이 힘들다.)
- 강력한 바디 모터로 인한 빠른 AF 포착 속도. (초음파 모터가 없는 렌즈도 체감하기에 D80보다는 빠르다. 니콘의 DSLR플래그쉽과는 직접 비교해 보지 못했다. Nikon D3 + AF 50mm도 이와 비슷한 속도였다.)
- 뽀대 증진?
◆ 불만
- 측거점의 부재. (F80D도 5측거점인데, F4는 88올림픽을 겨냥한 기함급 바디이다 보니 중앙 측거점 밖에 없다. 때문에 주변주에 초점을 맞추려 하면 MF로 전환해서 직접 맞춰야 한다.)
- 지나치게 기계적인 셔터음. (필름 카메라임에도 셔터음이 거의 로봇이나 공장의 머신들에 가깝다. '셔터가 젖혀지고 필름을 노광한다'는 느낌보다 기계가 필름에 피사체를 인쇄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소리가 차갑다.)
- 스스로 연약하다(?)라고 생각하는 여자는 절대 못쓸 카메라. (평소 출사에서 카메라를 3개씩 메고 다니는 나이기에 특별히 더 무겁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분명 이 녀석은 무거운 카메라다.)
- 커맨드 버튼 부재.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데, DSLR에서 많이 쓰던 커멘드 버튼이 존재하기 전 시절의 모델이어서 그런지 조리개값과 셔터속도를 렌즈와 바디 상측에서 직접 조작해야 한다. 때문에 니콘의 G타입 렌즈와 서드파티 렌즈들의 조리개링이 없는 렌즈는 사실상 사용이 불가능하다. - 항상 최대개방으로 인식한다.)
- 평소 출사시 얼음구름이 메고 다니는 사진 관련 짐짝(?)의 양. DSLR 1대, SLR 1대, 토이카메라 1대, 렌즈/필름 등이 들어간 베낭형 카메라 가방을 소지한 채로 7월의 더위 속을 뛰어 다녔다. 본인은 지구의 중력을 거부(!)하기 때문에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건 아무리 무거워도 들고 다녀야 한다. 이 고생 속에서 내공이 증진되리라 믿으며.. -_-;;..
◆ 총평(?)
만족에 적혀진 것들은 감성적 측면의 요인들이고, 불만에 적혀진 것들은 실증적 요인들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고 할까? 20년 전에 나온 카메라에게서 21세기의 카메라와 비교를 하는데 기계적으로 만족스러울 리가 있을까? 기계적인 만족감까지 고려하려면 니콘의 필카 최종병기인 F6까지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F6도 요즘 DSLR에 비하면 단점이 널렸다.)
F4를 선택하기 이전에 필름 카메라를 선택한다는 것은 기계적 만족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계적 만족감을 원한다면 왠만한 중급 렌즈 가격 하나에 해당하는 돈을 들여가며 필름바디를 살 바에 DSLR상급 기종으로 올라가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그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은가? 실제로 내가 한때 몸담던 모 동호회에서는 플래그쉽 바디 구매 붐이 불어서 갑자기 D3와 그와 비슷한 급의 바디를 연달아 몇 명이 구매하며 그들끼리 몰려 다니는 형국도 있었다. DSLR플래그쉽은 분명 기계적으로 SLR에 비해 더할 나위없이 완벽하다.
하지만 필름 카메라는 DSLR과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디지털의 메모리카드가 아닌 아날로그의 필름매거진을 써서 그런가? 필름카메라를 불과 2달 밖에 쓰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예 평일에는 DSLR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을 정도로 필름 카메라에 젖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DSLR로 사진을 촬영할 때는 '사진을 만든다'라는 느낌이 좀 있었는데,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할 떄는 '사진을 찍는다'라는 느낌이 있다. 그것 참 희안하지. 똑같이 셔터 스피드와 조리개를 맞추고 ISO를 조절하여 셔터를 누를 뿐인데..
물론 그렇다고 DSLR을 포기하는 시대착오적 존재가 될 생각은 없다. 단지 요즘은 필름카메라가 더 재밌을 뿐이다.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그의 취미 생활 > 취미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탐론 70-200mm 도착 (4) | 2008/09/17 |
|---|---|
| 남들이 보기에 유난스러워진 나 (6) | 2008/09/15 |
| 망원렌즈를 구입했다. (4) | 2008/09/13 |
| 필름 (4) | 2008/09/09 |
| 내가 선정한 네거티브 4형제 (2) | 2008/09/05 |
| 묵직함이 주는 진지함. (2) | 2008/08/22 |
| 다찌마와 리, 간만에 다시 극장에 놀러 가자. (3) | 2008/08/16 |
| 가격이 오르락내리락 하는구나. (4) | 2008/08/13 |
| 장롱카메라 : 야시카(Yashika) FX-7 (4) | 2008/07/19 |
| 로우프로 미니트레커 수납량. (4) | 2008/07/19 |
| 새로 산 필름. (8) | 2008/06/27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