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하나다. 필요에 따라서만..
나는 국제정치/국제질서와 세계패권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절대 돈이 되는 학문은 아니지만,(요즘 대학가에서는 돈안되는 건 모두 쓰레기일 뿐이다.) 대학 시절에 내가 가장 중심을 두고 공부했던 부분이었고, 오랜 기간 관련 정보와 논문들을 섭취해 왔다. 요즘 국제정세에서 그 어느 분야보다도 돋보이는 문제는 이라크 사태와 국제유가문제를 제외하면 단연 티베트 시위 문제다. 그 까닭은 현재 가장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들 중에서 근래 조지 W. 부시의 집권 이후 꾸준히 주장해온 '인권'에 대한 논의와 GDPR(Global Defense Posture Review)의 가장 주적인 중국의 취약점이 중첩되어 적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즉, '관심을 끄는 대상의 관심을 끌만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티베트의 독립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다. 엄밀히 말해서 티베트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티베트의 독립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왜냐 하면 나는 20세기말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21C중국대세론에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최근 가장 중국대세불가론의 핵심 무기가 될만한 사건으로서 티베트 사태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즉, 티베트 문제에 관심이 있되, 필요에 따라 관심이 없다는 뜻이 되겠다.
이런 나의 이중적 관심은 19C말, 20C초의 제국주의 열강들과 몇몇 자유국가 정부와 국민들이 가졌던 조선1에 대한 관심의 패턴과 그 맥락을 함께할 것이다. 자신들에게 필요하다면 그 고통은 관심사가 될 것이고, 특별히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 고통은 그저 '타인의 고통'일 뿐이다. 나와 대다수의 인류는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타자(他者)일 뿐이다. 놀랍도록 이기적인 이 행동패턴은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다.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 자신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나는 최소한 4~50가지의 현재진행형 갈등과 분쟁을 나열할 수 있다. 그나마도 내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만 나열했을 때 그러한 것이지, 실제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유무형의 갈등과 분쟁은 그 이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토록 많은 갈등과 분쟁 속에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 왔는가? 많은 사람들이 밀로셰비치의 인종청소를 목적으로 한 대량살상과 강간/방화의 참혹함을 기억할 것이다.2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던 카슈미르 지역의 가혹한 분쟁 상황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중국의 티베트 시위대 무력진압에 대해 보이는 세계 각국의 놀라울 정도의 관심과 의사표현에 대해서 당신은 '세계는 하나'라는 연대의식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몇 년 전 러시아가 체첸에 생화학무기를 사용하여 대량살상을 야기한 더욱 참혹한 사태에 대해 세계 각국이 침묵하며 최소한의 의사 표현을 하다가, 그마저도 러시아의 '내정간섭'이라는 한 마디에 찌그러졌던 것을 상기해 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적들이 출몰하는 지역들 중 한 곳인 소말리아 인근해역에서 한국을 비롯한 몇몇 약소국들의 선박들이 피랍되었을 때 침묵하던 강대국의 정상들은, 프랑스 소유의 고급요트가 피랍되자 프랑스 정부차원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해당 해적세력을 소탕한 후, 해적들을 소탕하기 위해 전 세계가 협력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비슷한 많은 사례들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같은 종류의 사건이라도 내게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은가에 따라서 얼마든지 해석이 달라지고, 그에 따른 행동패턴도 변경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장 멀리 볼 것도 없이 한국은 노무현 정부 때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거부했고, 이명박 정부는 티베트 사태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우리에겐 티베트 사태는 중국과의 관계에 불필요한 걸림돌이며 언급해 봐야 이익이 나지 않는 귀찮은 존재일 뿐인 것이다.
냉혈한 국제질서 속에서 '인류애'라던지, '민족자결' 같은 것은 아주 사치스런 구호다. 탈냉전 이후 특히 부각되고 있는 민족주의의 발호와 소수민족의 독립러시 속에서도 '안되는 곳'은 안된다. 그리고 그 '안되는 곳'은 놀랍게도 가장 선진화되고 산업화된 곳들인 경우가 많다. 그 '안되는 곳'이 안되는 곳이 될 수 있는 까닭은 국제질서 상의 상대적인 우월적 지위 속에서 타국의 문제는 자국의 이해타산에 맞게 재단할 수 있으면서도 자국의 난제에 대해서는 자국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지 않도록 억누르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더욱 더 단순화 하면 국제사회는 '제한된 약육강식의 세계'일 뿐이다. 강자만이 살아남고, 약자는 생존을 위해 강자에게 의지해야 하거나 굴욕 속에서 와신상담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거부한 댓가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댓가(?)를 치른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처럼 감성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물질적 가치를 초월한 이상향을 추구할 수 있다. 이유는 '행위함에 있어서 행동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야 할 개체가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간의 관계는 (정상적인 경우에는)무수히 많은 의사결정권자들의 보편적 합의를 이루어 내야만 하며 그 과정에서 감성과 이상향이 개입될 여지는 철저히 봉쇄되고, 냉철한 손익관계가 분석된다. 거기서 이익을 함께 할 때만 둘 혹은 그 이상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합의가 이루어졌을 때, 개별 국가는 '인권' 혹은 '인류애'의 기치를 내세운다.
내게 그것이 필요하니까.. 오직 그것만이 진실이다. 얼음보다 차가운 국제사회의 진실 말이다.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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