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가 겪는 일시적 착각일까?

어제 포항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적잖게 자신감이 붙었다. DSLR에 입문한지 1달하고 1주일 밖에 되지 않은 쌩초짜의 일시적 우쭐함이겠지만, 렌즈가 사진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아주 원초적인 사실에 대해 그 어떤 애호가들의 글이나 말보다도 더 크게 내가 직접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화각이 확보가 되면 조리개 수치(F값)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 동안 체감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 야외 촬영에서 초보스럽게도 장비를 사진의 출발점으로 보며 '내가 너무 밝은 고정 조리개값을 가진 렌즈에 집착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한 출사였다. 표준줌 렌즈로도 한달짜리 경력의 내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수준의 사진을 찍게 되어 무척이나 기뻤고, 무언가 렌즈에 대한 무리한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였다.


어제 사진을 찍고 나서 집에 와서 사진을 확인하면서 내가 조리개값을 심지어 F6.7까지 낮춰서 찍었던 사진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나와서 조리개값에 대한 생각을 조금 다르게 먹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늘 내가 가진 렌즈의 최대 조리개 값인 F1.4와 F2.8의 고정조리개값의 장점을 무조건 사용했다. 즉 거의 대부분의 사진이 단렌즈 F1.4, 표준줌 F2.8로 고정해 놓은 채, 셔터 스피드로만 사진을 조절하려고 했던 것이다. 사실 조리개를 조이면 사진이 좀 더 볼만해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 M모드를 놓고서도 조리개와 셔터스피드 모두를 만져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는 렌즈의 성능에 의존하고 나머지 하나를 바디로 세팅하면서 사진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 형님들과 따라가면서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P모드를 놓고 사진을 미리 한 장 찍어보고 바디가 어느 정도의 설정을 자동으로 세팅하는지를 파악하고 셔터스피드를 한 단계 정도 빠르게 혹은 느리게 하거나, 조리개 값을 한스톱 혹은 반스톱 정도 조여서 사진을 찍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 동안 내가 찍던 사진들이 너무 밝아서 노출이 오버되는 경향이 있었다는 문제점을 인식해서 시도한 것이었는데, 이번에 초짜인 내 기준에서 무척 만족스럽게 그런 현상들을 잡아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진들은 조리개 값 F4.8 혹은 그 이하에서 찍혀진 사진이고 후보정을 거의 하지 않아도 쓸만한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다 보니, 상대적으로 잘 쓰지 않는 망원렌즈 쪽으로는 고비용을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망원 렌즈의 경우 싼 것은 10~20만원대에서도 살 수 있지만, 비싼 것은 말 그대로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가 버리기에, 그 돈으로 옷을 한 벌 사거나 선물을 하는게 더 내게 남는 장사(?)라는 생각을 그 동안 떨쳐낼 수 없었다. 저가의 망원렌즈들도 조리개 값이 F4.8~6.7(내가 그 날 찍은 사진의 조리개값)은 모두 넘기 때문에, 포커스 속도와 쓸만한 선예도만 낼 수 있다면 굳이 비싼 망원렌즈를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린 AF속도와 실내 사진을 많이 찍는 내 주용도에서 낮은 조리개값은 너무 치명적이다. 결론은... 조리개값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 그리고.. 그래도 역시 일단 밝은렌즈를 해야 선택의 폭이 넓구나..하는 점? --;;

에효.. 오늘 이렇게까지 춥지만 않았어도 국채보상공원에 가서 종 때리는거 좀 보고 사진도 좀 찍고 야경도 좀 찍어 볼텐데.. 삼각대와 모노포드가 흙 한 번 안묻히고(모노포드는 어제 흙묻혔다.) 내 방에서 먼지랑 친구하고 있구나. --..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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