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독교 연대기(?)
뉴타입님 글을 보니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였다. 2층 양옥집의 1층 한쪽 구석방에 전세인지 사글세인지 모르겠지만, 여튼 아직은 원초적 빈곤(?)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유치딩 때는 단칸방 집에서 살았던게 기억나는데, 초딩 때는 살림이 좀 나아진거였나?)
1층에서 함께 세를 살던 옆집 사람이 초딩 저학년 시절 방학을 맞은 나에게 종이쪼가리를 주며 성경학교에 가자고 그랬다. 난 대학 1학년이 끝날 때까지도 너무나 멍청했었기 때문에, 초딩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성경학교가 뭔지 몰랐고 일단 '학교'라길래, 공짜로 가도 되고 먹을 것도 준다길래 그냥 아무 생각없이 따라갔었다. (당연히 내가 간 곳은 교회였고. 그 때는 교회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초딩 저학년에 골까지 빈 나에겐 성경학교의 요상한 씨부렁거림은 그저 끝없는 졸림의 연속이었다. 점심 시간에 사과 1개(!)와 이상한 과자 2개를 준게 전부인 채로 이슬람교의 라마단도 아닌데, 굶주림에 헤매이다가 저녁 시간이 다되어서 당시 초절정 인기 빙과류였던 '쭈쭈바'를 하나 받아들고 냅따 집으로 튀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는 성경학교는 내겐 감옥 비슷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고딩 시절. 여전히 나의 골은 비어 있었고 아무 생각없이 다니던 학창 시절, 갑자기 무언가 절실한 믿음을 '취미'로 가지고 싶다는 전형적인 꼴통마인드가 발동했다. 나는 하고많은 신앙(?) 중에서 기독교를 택했고 나는 나의 취미(....)를 도와줄 사람을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반에서 늘 성경책을 책상 서랍에 넣고 다니는 녀석을 알게 되었다. 난 그에게 성경에 대해서 물었고, 그는 '전도의 본능'이 깨어났는지 내게 무척 친절하게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자신이 읽던 성경책(그 정도 성경이면 요즘 기독교 서점에 가면 2만원쯤 할꺼다.)을 기꺼이 내게 선물로 주었다.
그 때는 성경책을 꽤 재밌게 봤었다. 난 지금도 성경의 말씀을 읽으라면 기꺼이 읽을 것이다. 그 안의 말씀들은 별로 나쁜(?) 말이 거의 없다. 하지만 고딩 때는 누구나 다 똑같다. 주말에 공부 아니면 놀러 다니기 바쁘다. 더구나 그 때 나는 The King of Fighters라는 오락실 게임의 '달서구 서쪽의 지존'을 노리던 초고수였고 주말이면 달서구 소재 고교 근처 대표적 오락실의 간판을 깨러 다니기 바빴다.(결국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기 전의 예전 경원고등학교의 초얍실 고수에게 2주에 걸쳐 박살이 나고 꼬리를 내렸지만.) 성경에 대한 취미로서의 열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고딩 시절 내게 성경책을 선물해준 친구와 꽤 웃긴 일화가 있다. 그 당시 나는 소위 락키드로서 한창 어설픈 락삘에 꽂혀 세상 모르고 날뛰던 시절이었다. 그 때 아마 Deicide의 97년작 Serpent of the Light라는 앨범(이 CD는 2000년 12월 24일 현재의 주거지로 이사하는 과정에 유실된 음반 중 한 장이다.)을 듣고 있었나 보다. 그 녀석이 내가 듣던 음반을 보더니 깜짝 놀라 악마의 음악을 들으면 안된다며 나의 '정서적 오염'을 염려했다. 그 때 이미 지금의 승질(이 블로그의 컨셉처럼..)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시기여서 그저 어이없는 너털웃음으로 녀석에게 괜찮다고 했던게 생각난다.
시대는 이제 대딩으로 흘러왔다. 내가 대구의 모 일반계 고등학교 교무실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 학교의 한 중년 남자 교사와 대화하던 도중 그가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일전에 성경을 좀 읽었다'라고 하자 그의 대화는 일사천리였다. 나는 몇 주 후, 그와 함께 그가 다니는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가 나를 데리러 가겠다고 우리집 앞 복개도로까지 데리러 왔었다. 참 기독교도들의 전도의지란..) 교회 생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얼마 간 별 사고 없이 잘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사와 '예수의 실존'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나 같은 녀석에겐 그런 것따위는 눈꼽만큼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겐 단지 성경의 말씀에 대한 목자들의 편리한(?) 해설이었지, '예수가 내 가슴 안에 실존해야 한다'는 그의 궤변(?)은 나의 관심거리도 아니었으며, 그런 미신을 믿지도 않는다. 결국 그의 광신적 신앙 강요에 환멸을 느꼈고 그 날 이후 교회에 발을 디디지 않았고 교회인들을 반쯤 중세적 광신도들로 취급하고 있다.
교회인들은 스스로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은지 정말 궁금하다. 그들이야 이미 철저히 그들만의 정치사회화 과정을 거쳐, 이성적/합리적 사고(어떤 면에서 이런 사고도 그들은 자신들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일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의 이성과 합리는 그런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아니다.)가 마비되어 있으니, 그들만의 언어와 그들만의 가치를 위해서 자신을 투신하겠지. 그러다가 정말 죽을 위기가 처하면 만만한 '국가'와 '민족'을 들먹일 것이고. (민족이란 추상적 가치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불합리한 희생이 이 지구상에서 자행되어 왔던가?)
내 어머니께서 얼마 전에 내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여자친구의 조건(?)이란 것을 내걸었다. 단 2가지인데, 하나는 어머니보다 키가 클 것(158cm이상 - -;;)이고 나머지는 성당이나 절 다니는 애는 괜찮아도 교회 다니는 애는 안된다였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교회에 다닐 때에도 맹렬히 반대하셨다.
진짜 교회인들은 가슴에 뭔가 느껴지는게 없나? 그냥 예수천국불신지옥만 외치면 장땡인가? 우리 불신자들은 그럼 '믿음꼴통불신만세'를 읊으련다. 궤변이라구? 너희 말이 궤변인데, 나의 말이 궤변인들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초등학교 때였다. 2층 양옥집의 1층 한쪽 구석방에 전세인지 사글세인지 모르겠지만, 여튼 아직은 원초적 빈곤(?)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유치딩 때는 단칸방 집에서 살았던게 기억나는데, 초딩 때는 살림이 좀 나아진거였나?)
1층에서 함께 세를 살던 옆집 사람이 초딩 저학년 시절 방학을 맞은 나에게 종이쪼가리를 주며 성경학교에 가자고 그랬다. 난 대학 1학년이 끝날 때까지도 너무나 멍청했었기 때문에, 초딩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성경학교가 뭔지 몰랐고 일단 '학교'라길래, 공짜로 가도 되고 먹을 것도 준다길래 그냥 아무 생각없이 따라갔었다. (당연히 내가 간 곳은 교회였고. 그 때는 교회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초딩 저학년에 골까지 빈 나에겐 성경학교의 요상한 씨부렁거림은 그저 끝없는 졸림의 연속이었다. 점심 시간에 사과 1개(!)와 이상한 과자 2개를 준게 전부인 채로 이슬람교의 라마단도 아닌데, 굶주림에 헤매이다가 저녁 시간이 다되어서 당시 초절정 인기 빙과류였던 '쭈쭈바'를 하나 받아들고 냅따 집으로 튀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는 성경학교는 내겐 감옥 비슷한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고딩 시절. 여전히 나의 골은 비어 있었고 아무 생각없이 다니던 학창 시절, 갑자기 무언가 절실한 믿음을 '취미'로 가지고 싶다는 전형적인 꼴통마인드가 발동했다. 나는 하고많은 신앙(?) 중에서 기독교를 택했고 나는 나의 취미(....)를 도와줄 사람을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반에서 늘 성경책을 책상 서랍에 넣고 다니는 녀석을 알게 되었다. 난 그에게 성경에 대해서 물었고, 그는 '전도의 본능'이 깨어났는지 내게 무척 친절하게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자신이 읽던 성경책(그 정도 성경이면 요즘 기독교 서점에 가면 2만원쯤 할꺼다.)을 기꺼이 내게 선물로 주었다.
그 때는 성경책을 꽤 재밌게 봤었다. 난 지금도 성경의 말씀을 읽으라면 기꺼이 읽을 것이다. 그 안의 말씀들은 별로 나쁜(?) 말이 거의 없다. 하지만 고딩 때는 누구나 다 똑같다. 주말에 공부 아니면 놀러 다니기 바쁘다. 더구나 그 때 나는 The King of Fighters라는 오락실 게임의 '달서구 서쪽의 지존'을 노리던 초고수였고 주말이면 달서구 소재 고교 근처 대표적 오락실의 간판을 깨러 다니기 바빴다.(결국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기 전의 예전 경원고등학교의 초얍실 고수에게 2주에 걸쳐 박살이 나고 꼬리를 내렸지만.) 성경에 대한 취미로서의 열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고딩 시절 내게 성경책을 선물해준 친구와 꽤 웃긴 일화가 있다. 그 당시 나는 소위 락키드로서 한창 어설픈 락삘에 꽂혀 세상 모르고 날뛰던 시절이었다. 그 때 아마 Deicide의 97년작 Serpent of the Light라는 앨범(이 CD는 2000년 12월 24일 현재의 주거지로 이사하는 과정에 유실된 음반 중 한 장이다.)을 듣고 있었나 보다. 그 녀석이 내가 듣던 음반을 보더니 깜짝 놀라 악마의 음악을 들으면 안된다며 나의 '정서적 오염'을 염려했다. 그 때 이미 지금의 승질(이 블로그의 컨셉처럼..)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시기여서 그저 어이없는 너털웃음으로 녀석에게 괜찮다고 했던게 생각난다.
시대는 이제 대딩으로 흘러왔다. 내가 대구의 모 일반계 고등학교 교무실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 학교의 한 중년 남자 교사와 대화하던 도중 그가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일전에 성경을 좀 읽었다'라고 하자 그의 대화는 일사천리였다. 나는 몇 주 후, 그와 함께 그가 다니는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가 나를 데리러 가겠다고 우리집 앞 복개도로까지 데리러 왔었다. 참 기독교도들의 전도의지란..) 교회 생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얼마 간 별 사고 없이 잘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사와 '예수의 실존'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나 같은 녀석에겐 그런 것따위는 눈꼽만큼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겐 단지 성경의 말씀에 대한 목자들의 편리한(?) 해설이었지, '예수가 내 가슴 안에 실존해야 한다'는 그의 궤변(?)은 나의 관심거리도 아니었으며, 그런 미신을 믿지도 않는다. 결국 그의 광신적 신앙 강요에 환멸을 느꼈고 그 날 이후 교회에 발을 디디지 않았고 교회인들을 반쯤 중세적 광신도들로 취급하고 있다.
교회인들은 스스로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은지 정말 궁금하다. 그들이야 이미 철저히 그들만의 정치사회화 과정을 거쳐, 이성적/합리적 사고(어떤 면에서 이런 사고도 그들은 자신들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일부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의 이성과 합리는 그런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아니다.)가 마비되어 있으니, 그들만의 언어와 그들만의 가치를 위해서 자신을 투신하겠지. 그러다가 정말 죽을 위기가 처하면 만만한 '국가'와 '민족'을 들먹일 것이고. (민족이란 추상적 가치 때문에 얼마나 많은 불합리한 희생이 이 지구상에서 자행되어 왔던가?)
내 어머니께서 얼마 전에 내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여자친구의 조건(?)이란 것을 내걸었다. 단 2가지인데, 하나는 어머니보다 키가 클 것(158cm이상 - -;;)이고 나머지는 성당이나 절 다니는 애는 괜찮아도 교회 다니는 애는 안된다였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교회에 다닐 때에도 맹렬히 반대하셨다.
진짜 교회인들은 가슴에 뭔가 느껴지는게 없나? 그냥 예수천국불신지옥만 외치면 장땡인가? 우리 불신자들은 그럼 '믿음꼴통불신만세'를 읊으련다. 궤변이라구? 너희 말이 궤변인데, 나의 말이 궤변인들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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