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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왜곡과 관련된 신동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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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에 꽤 흥미로운 기사가 떴다. 요즘 TV드라마로 시끄러운 대조영, 연개소문, 주몽 등의 드라마 속의 우리 스스로 자행하는 역사왜곡에 대하여 기술한 것이 그것인데, 발해사 자체가 명백히 밝혀진 것이 없고 이미 중국 당국에 의해 상당 부분 사적/유적이 훼손된 마당이라 말 그대로 큰소리 치면 장땡이 된 상황에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명확한 것은 얼마되지 않는다. (실제로 기사를 쓴 사람도 우리 역사의 한계로 인해 주요 인물들을 생몰년도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조금이라도 우리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속아줘야만 했던 것들을 그가 꽤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씹어주고 있어 매우 유쾌하다.


그러나 그의 기사 중에서도 약간의 오류를 발견했다. 그 중 하나가 '안시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안시성은 굉장히 큰 성이다. 안시성은 2개의 크고 긴 산 사이의 협곡에 만들어진 성으로 3면을 산으로 하고 있고 후면은 깎아지른 높은 산으로 한 채, 정면 낮은 평지 지역에만 일직선의 성을 쌓아 올린 천연의 성이었다. 또 안시성이 확보한 협곡의 넓이는 매우 넓어 10만의 주민이 협곡 안(성 안)에서 경작이 가능할 정도로 자생력이 높았고, 당태종의 안시성 전투에서 당태종의 포위가 힘을 쓰지 못한 것은 그러한 안시성의 높은 자생력과 천연요새로서의 공략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옛날 사서에 집중한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안시성이 작은성이라는 주장'은 틀린 것이다. 실제로 안시성의 현재 모습이 국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다뤄진 바 있다.


'철기군'에 대한 부분도 많이 의심스럽다. 기사를 쓴 이는 철기군이 고구려 고유의 병과이며 당시 중국에는 두루마기나 걸친 농민병(징집병)이 대부분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 위나라 관구검의 침략에 동천왕이 철기병으로 응전했다고 되어 있다. 고구려의 여러 미술작품을 통해서 고구려의 병과와 편제에 대해서 우리는 상당히 구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중장기병-경기병-창병-부월수 등으로 이어지는 편제의 선두인 중장기병이 '말의 눈'까지 가릴 정도로 상당히 높은 수준의 철갑기병이란 것을 알고 있다. (삼국지 연의에도 강하의 유비가 조조에게 쫓길 때, 불과 500기의 철기병이 10만의 민간인과 유비군 잔당을 추격하며 살상하는 장면이 있다. 송나라 역사서에서는 단지 몽골 지역의 흉노족 17기의 경기병이 3천명의 송나라 보병대-노인병도 다수였다고 함.-를 격파했다는 기록도 중국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기사 작성자의 말대로라면 동천왕의 철기병은 농민병이 대다수인 관구검의 공격을 격퇴했어야 한다. 하지만 '동천왕'의 이름이 '쪽으로 도한 왕'이라는 의미에 기원하듯이 동천왕은 관구검의 공격에 철기병으로도 대패하여 서쪽 영토 2천리를 상실한 무능한 군주다. (한편으로 이 역사는 고구려가 서토 2천리를 뺏기고도 국가를 유지했을 정도로 넓고 체계가 잡힌 국가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사소한 오류(물론 나의 글도 정확하지 않다.)가 존재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드라마 작가들의 객기와 인기영합으로 판타지 드라마가 된 고구려 이야기의 왜곡된 망상에 철퇴를 가한 듯 하여 매우 유쾌한 내용이다.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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