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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이라크-미국, 감성과 이성 사이에 놓인 피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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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로이터]


10월 7일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구 지역과 터키 간의 접경 지역에서 쿠르드 족의 과격분자로 분류되는 PKK(구르드 노당자당) 세력이 국경을 넘어 터키 남쪽 지역 시르나크州를 습격하여 터키군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게릴라군과 정규군의 교전이긴 했으나, 비적성 자주국가의 정규군을 향한 데프콘(Defense Readiness Condition)1급 군사행동이 가해졌다는 점과 사상자가 발생한 점에서 터키 정부로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엄청난 도발행위이며 이에 상응하는 높은 단계의 대응행위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미 터키정규군은 10월 10일 시르나크州 PKK은신처로 추정되는 곳에 F-15, F-16 등을 동원한 보복공격을 가해 20여명의 쿠르드족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터키 국내 여론이 쿠르드족에 대한 전방위적 보복공격을 요구하고 있는 시류에 부응하여 터키정부가 의회에 이라크 내 쿠르드족 자치구 보복공격(국경선을 넘어서는 일종의 대외적 군사행위)을 요구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세상의 도리따위는 눈꼽만큼도 신경쓰지 않은 채, 자신들의 대의명분만 신경쓰는 철부지 테러집단의 객기로 벌어진 사건이 국가 간의 교전행위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며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터키의 쿠르드족에 대한 이라크 북부 공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4년 PKK가 조직된 이후 터키군과 PKK사이의 교전으로 3만 7천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빈번한 테러/침략행위가 자행되었고, 이에 대해 터키 정규군이 1997년까지 2차례에 걸쳐 이라크 국경선을 넘어 쿠르드족 자치구를 침범하여 보복공격을 가한 바 있다. 이후 NATO가입국으로서 미국의 안보적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 중동정세의 불안정에 부담을 느낀 미국의 요구에 의해 이라크 국경을 월경하여 쿠르드족을 직접 타격한 적은 없지만, PKK와 터키의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PKK는 쿠르드족의 독립국가 건설을 모토로 내건 국가로서 역사적으로 터키(오스만투르크)와 이라크/이란 지역을 점령했던 영국 혹은 개별 독립국가에 의해서 독립욕구가 군사적으로 억제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최근 몇 백년 동안 자주국가를 가지지 못했던 쿠르드 족에게 영토를 할양하여 그들의 독립열망에 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실정법 상으로 그들의 독립요구는 명백한 개별 주권국가들의 배타적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명백한 불법행위다. (PKK는 터키 국경지역인 보단바니난 지역에서 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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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중인 쿠르드족 무장세력. Photo : 로이터]


그러나 이들 개별 국가들이 자신들의 영토 내에 있는 자국민인 쿠르드족을 이민족으로서 배타적 정책을 취하거나, 배타적 차별행위를 용인/묵인하는 행위는 국제 사회의 도의적 지탄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쿠르드 자치구 지역에 대량살상무기인 생화학무기를 사용하여 대외적으로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대량살상행위를 자행하기도 하였다. 사담 후세인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체포되어서도 그의 이라크 내에서의 부소불위의 폭력적 권력남용과 핍박 때문이 아니라, 쿠르드족에 대한 대량살상행위에 대해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사형이 집행되었다. [관련글1, 관련글2]

하지만 그러한 자민족을 향한 정서적/제도적 핍박을 이유로 무장투쟁과 불특정 다수를 향한 테러행위를 자행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약자의 테러리즘[관련글3]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며 그들이 내세운 대의명분에 대한 정당성 또한 약화시킨다. 설상가상으로 이러한 지속적인 무장투쟁과 테러행위는 그들의 기치가 현실화된 이후에도 그들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기 힘들게 한다. 이성적 조직과 합리적 국가는 불필요한 국내외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세력을 포용하려 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국제사회가 낙인 찍은 테러집단은 신생독립국가에게는 그저 짐짝일 뿐이다.


이런 국내외적 상황에서 터키 정부는 더 이상의 인내력을 가지기 힘들어진 것 같다. 터키는 쿠르드노동자당 무장세력에게 군사적 보복을 천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러한 터키 정부의 결심에 대한 장애물이 현시점에서 한 두 가지가 아닌 듯 하다.

일단은 싫든좋든 쿠르드족의 자치구를 품고 있는 이라크로부터의 직접적 반발이 거세다. 이라크 정부는 터키군의 월경행위를 '주권침해로 간주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물론 그렇다고 현재의 이라크가 중동의 중견군사강국 터키에 대해 직접적 무력행위를 행사할 가능성은 없다. 외교관계와 대외무역에 대한 제재가 고작일 것이며, 그 또한 이라크의 현실적 필요에 의해 지속적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2차 대전 이후부터 발칸의 공산화 저지와 그를 통한 흑해함대의 봉쇄에 총력을 기울이던 미국과 오랜동안 쌓아온 우호관계가 워싱턴으로부터 심각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외교행위가 워싱턴으로부터 터키를 향해 날아들고 있다. 이 중 가장 큰 파열음은 단연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절에 벌어진 아르메니아1 인 학살사건에 대한 미의회의 규탄이다. 기본적으로 오스만투르크와 터키가 본류는 같으되, 정치체계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오스만투르크 시절의 범법 행위를 터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히로히토 시절의 종군위안부 사건을 의원내각제의 일본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쨌거나 이러한 미국으로부터의 터키에 대한 분열조짐에 터키는 대외적으로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나, 세속화되어 있어 이슬람 율법이 정치와 국민생활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중동에서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터키2 가 유럽연합(EU) 가입조차 인권적 측면 때문에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으로부터도 멀어진다면 영향력을 가진 국제조직 중에서는 親美的 성향이 강한 NATO 하나에 간신히 발 하나를 담그고 있는 '고립'이라고 볼 수 있는 처지에 놓일 수 있어 대단히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고 본다.

미국으로서도 터키를 무작정 압박만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미국은 제2의 베트남이 된 이라크에 여전히 10만명 이상의 현역군대와 그에 상응하는 민간전투병, LOGCAP에 의해 미국방성과 계약된 KBR/TITAN/CACI 등의 병참업무를 수행하는 기업들의 병참업무를 터키의 영토사용과 관련된 양해각서에 의해 터키로부터 쿠르드족 지역을 거쳐 넘어오는 것을 감안할 때, 터키와 쿠르드족의 갈등을 방관할 수 없으며, 터키에 대한 외교적 압박을 무작정 강화할 수도 없다. 터키가 갑자기 이라크 군사작전(대외적으로는 '치안유지활동'이다.)에 대해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면 이라크 주둔 미군의 병참선이 심각한 위협(전체 병참물자의 75%가 터키 영토를 경유한다.)을 받게 된다. 반대로 지나치게 터키의 편을 드는 것도 이라크 영내의 쿠르드족을 자극하여 이라크북부 국경지역의 치안을 어렵게 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 속에서 일단 미국은 이라크내 미군사령관의 입을 빌려 터키 달래기에 나섰다. 여기에는 터키로부터 전기와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는 쿠르드족 자치구의 현실적 문제가 양국 간의 갈등으로 격화되어 쿠르드 자치구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없다는 문제도 염두해 두고 있다.(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역할은 실로 어머어마하다. 미국이 아니면 감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광범위하며 기하급수적 예산을 필요로 한다.)


현시점에서 칼자루는 터키가 쥐고 있는 듯 하다. 터키가 쿠르드족 자치구에 대한 저강도 혹은 고강도 군사작전을 수행하더라도 미국이 이라크 미군이라는 거대한 볼모를 두고서 터키에 대한 직접적 제재나 親쿠르드적인 행동을 취하기는 힘들 것이다. 기껏해야 현상황에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것은 의회의 규탄 성명 재확인이나, 이라크 영내의 미군사령관이 유감을 표명하는 수준이 고작일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병참로 확보라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고, 이라크에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는 이상, 터키의 돌발행동에 대한 예전과 같은 영향력 행사는 쉽지 않을 것이다.(터키 정부는 그러한 점에 대해 잘 숙지하고 있는 듯 하며 이미 병참로 지원을 끊을 수도 있음을 경고하였다.) 터키라고 무작정 감성대로 행동할 수는 없다. 시대는 변해서 탈냉전을 넘어 9.11이후의 시대라고는 하나, 주권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무형의 세력에 대한 광범위한 군사행동은 수용국가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반발과 외교적 고립을 피할 수 없다.[각주:1] 쿠르드자치구로서는 별다른 대응방안이 없을 듯 하다. 사건을 저지른 것은 PKK이지만, 그들은 쿠르드족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대표성을 띄고 있고, PKK의 망발에 대한 피드백은 온전히 쿠르드족이 감내해야 할 숙명이다.

모든 사태의 진행은 터키 의회가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에 달렸다. 한 나라는 피의 복수를 원하고 다른 한 나라는 안정된 돈줄(?)을 원하며 또 다른 한 집단은 그저 자신들의 일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한 심판이 내려지기만을 노심초사하고 있다.


얼음구름, Against All Odds..
  1. 이미 EU측에서 군사적 행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EU가입을 염원하는 터키로서는 EU측에 추가적인 미운털이 박히는 걸 원치 않는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해결과정에서 보여준 한국의 독자적 행보에 대한 국제사회의 냉소에서 보듯이 단순히 자국의 사정만 생각하고 자국의 기준으로 섣불리 행동한다면 소탐대실의 결과를 초래하기 쉽상이다. [본문으로]
  1. 親소련/親러시아 국가로서 과거 아제르바이잔과의 영토분쟁에서 극도의 빈곤과 후진적 정치체제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아제르바이잔 영토의 1/4을 획득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로 정전 상태에 놓여 있으며, 아제르바이잔 국경 지역에 수십만의 아제르바이잔 상실한 영토에 대한 실향민들이 난민촌을 형성하고 있다. [본문으로]
  2. 터키의 현지도층은 종교적 측면을 강조한다고 하니, 앞으로 어떤 양상을 띄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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