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 왜인들에게는 '천황',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일왕', 내게는 '왜왕'이라는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히로히토(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의 왜왕)/아키히토(1989년부터) 왜왕들의 야스쿠니 신사와 관련된 사실에서 다소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에서 태평양전쟁과 만주사변 등의 일본의 침략전쟁과 대동아공영권이란 구호 아래 팽창했던 일본 군대에서 희생된 군인들의 영령을 위로한다는 미명 하에 지어진 신사다. 한마디로 말해서 '왜왕의 이름으로 전장에서 산화한 자들'을 위해 지어진 절쯤 된다. 신사의 존재 이유가 오직 한 사람의 존재를 위해서기에 왜왕의 신사참배는 일종의 의무이자 군왕(일본군의 명목상의 총지휘자였으니.)으로서 당연한 도리였다.
그런데 참 웃긴 것이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비밀리에 합사되자, 침략전쟁의 당사자였던 히로히토 왜왕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아키히토 왜왕 또한 마찬가지라고 한다. 물론 왜왕은 야스쿠니 신사의 행사에서 일종의 '제물' 형식으로 참배단을 파견하여 행사의 격식을 갖춘다. '하지만 사람은 오지 않는다.'
왜왕은 왜 야스쿠니 신사에 오지 않는걸까?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처음부터 안오던 것이 아니라, 원래는 꼬박꼬박 잘 나왔었다는 점이다. 원래 나오던 사람이 A급 전범이 합사되자 갑자기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나서 남겨진 사람들의 입에서 히로히토가 A급 전범들이 야스쿠니에 합사되는 것에 반대했다고 하는 말이 흘러 나온다. 일본 측에서 흘러나온 카더라 통신이지만, 히로히토와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군벌 세력들 간에는 적잖은 알력이 있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의 개전 과정에서도 히로히토가 더 이상의 침략을 반대했다고 하나, 군벌들이 밀어붙였다고 하는 말이 있다.
물론 이와 같은 뒷말들은 도조 히데키 등이 왜왕의 인간선언 대신에 일본의 군왕제를 유지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이루어진 뒷거래의 하나로서 이미 총대를 메고 나서서 더럽혀진 사람들이 모든 허물을 뒤집어 쓰고 남은 사람들은 순결해진 후, 떠난 자들에 대한 예의로 보답한다는 군신유의스러운 마초틱한 스토리를 설정할 수도 있다. 실제로 美日간의 미주리호 항복선언은 일종의 '합의된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계약이라는 말이 美日 양쪽에서 많은 서적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증언되기도 했다.
이 이야기대로 하면 도조 히데키 등은 왜왕 히로히토를 지키기 위해 모든 오명(물론 어떤 일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을 뒤집어 쓰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히로히토는 인간선언을 하고 나서 모두의 존경 속에서 엄숙한 분위기에서 1989년 죽음을 맞았다. 인간의 도리대로라면 히로히토와 그의 후손들은 도조 히데키 등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도조 무리가 합사된 이후 히로히토는 야스쿠니를 멀리했다. 왜왕과 군벌 사이에 군국주의 시절에 상당한 악감정이 쌓여서 모두가 죽고 난 후에도 그 갈등이 용서되지 못했음인가?
진실은 죽은 자들의 봉해진 입과 함께 역사의 조류를 타고 흘러가 버렸다. 그냥 어림짐작으로 왜왕과 그 후손들은 진실을 알고 있고, 그 진실은 합사된 영령 모두가 하나의 영혼체로 뭉쳐져 있다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불쾌감에 참배를 거부하는 행동으로 표출한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본심(혼네)을 알 수 없다'는 일본인들의 가식과 위선이 반전반핵을 외치면서도 군비증강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고, 간사한 웃음 뒤에 숨겨진 비수를 보지 못하는 어리버리한 한국인들은 중국에서 본 흑자만큼의 돈을 만년 무역적자국인 일본에게 퍼붓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Hedge™, Against All Odds..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에서 태평양전쟁과 만주사변 등의 일본의 침략전쟁과 대동아공영권이란 구호 아래 팽창했던 일본 군대에서 희생된 군인들의 영령을 위로한다는 미명 하에 지어진 신사다. 한마디로 말해서 '왜왕의 이름으로 전장에서 산화한 자들'을 위해 지어진 절쯤 된다. 신사의 존재 이유가 오직 한 사람의 존재를 위해서기에 왜왕의 신사참배는 일종의 의무이자 군왕(일본군의 명목상의 총지휘자였으니.)으로서 당연한 도리였다.
그런데 참 웃긴 것이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비밀리에 합사되자, 침략전쟁의 당사자였던 히로히토 왜왕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아키히토 왜왕 또한 마찬가지라고 한다. 물론 왜왕은 야스쿠니 신사의 행사에서 일종의 '제물' 형식으로 참배단을 파견하여 행사의 격식을 갖춘다. '하지만 사람은 오지 않는다.'
왜왕은 왜 야스쿠니 신사에 오지 않는걸까?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은 처음부터 안오던 것이 아니라, 원래는 꼬박꼬박 잘 나왔었다는 점이다. 원래 나오던 사람이 A급 전범이 합사되자 갑자기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나서 남겨진 사람들의 입에서 히로히토가 A급 전범들이 야스쿠니에 합사되는 것에 반대했다고 하는 말이 흘러 나온다. 일본 측에서 흘러나온 카더라 통신이지만, 히로히토와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군벌 세력들 간에는 적잖은 알력이 있었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의 개전 과정에서도 히로히토가 더 이상의 침략을 반대했다고 하나, 군벌들이 밀어붙였다고 하는 말이 있다.
물론 이와 같은 뒷말들은 도조 히데키 등이 왜왕의 인간선언 대신에 일본의 군왕제를 유지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이루어진 뒷거래의 하나로서 이미 총대를 메고 나서서 더럽혀진 사람들이 모든 허물을 뒤집어 쓰고 남은 사람들은 순결해진 후, 떠난 자들에 대한 예의로 보답한다는 군신유의스러운 마초틱한 스토리를 설정할 수도 있다. 실제로 美日간의 미주리호 항복선언은 일종의 '합의된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계약이라는 말이 美日 양쪽에서 많은 서적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증언되기도 했다.
이 이야기대로 하면 도조 히데키 등은 왜왕 히로히토를 지키기 위해 모든 오명(물론 어떤 일본인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을 뒤집어 쓰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히로히토는 인간선언을 하고 나서 모두의 존경 속에서 엄숙한 분위기에서 1989년 죽음을 맞았다. 인간의 도리대로라면 히로히토와 그의 후손들은 도조 히데키 등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고, 도조 무리가 합사된 이후 히로히토는 야스쿠니를 멀리했다. 왜왕과 군벌 사이에 군국주의 시절에 상당한 악감정이 쌓여서 모두가 죽고 난 후에도 그 갈등이 용서되지 못했음인가?
진실은 죽은 자들의 봉해진 입과 함께 역사의 조류를 타고 흘러가 버렸다. 그냥 어림짐작으로 왜왕과 그 후손들은 진실을 알고 있고, 그 진실은 합사된 영령 모두가 하나의 영혼체로 뭉쳐져 있다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불쾌감에 참배를 거부하는 행동으로 표출한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본심(혼네)을 알 수 없다'는 일본인들의 가식과 위선이 반전반핵을 외치면서도 군비증강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고, 간사한 웃음 뒤에 숨겨진 비수를 보지 못하는 어리버리한 한국인들은 중국에서 본 흑자만큼의 돈을 만년 무역적자국인 일본에게 퍼붓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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