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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Victory Without Suffering.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걸맞는 정부를 가진다. // 사진은 클릭으로 리사이즈. by 얼음구름


21C형 히피.

며칠 전 한 남자와의 재회를 이야기하면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는 그가 가진 약간의 히피스러움을 동경했다. 세상의 틀 안에서 모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신비롭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약간의 경제력이 필요했고 그는 당시 제법 경제적 뒷받침이 되는 집안의 남자였지만, 그의 집안이 부도로 무너진 이후에도 그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그 자유를 양껏 즐기는 듯 했다. 그것이 허세이던지 진심이던지 간에 외면적으로 보이는 그 모습은 분명 기분파이면서도 의외로 상당히 신중한 내가 가지지 못한 그런 것이었으며 도도함이 내가 가진 전부라고 믿는 나는 그 앞에서 한없이 초라한 존재로만 느껴졌다.

그와 나는 똑같이 서로 다른 직장에서 일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의 대화 속에서는 일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내게 '현재에 감사하고 나보다 더 아래쪽도 보라'며 조언했지만, 사람이란 것이 자꾸 위를 향하려고만 하지 아래는 잘 보지 않는다. 올해 대학을 졸업할 때 내게 처음으로 나를 이만큼이나마 키워준 '은사'라 할 만한 학과 교수님을 찾아 뵈었을 때도 들을 이야기다. '너무나 달리려고만 하고 늘 쫓기는 듯하다며 숨을 한 번 고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라'라고. 사실 내가 그렇게 잘 달려온 것도 아니고, 사회적 가치가 소위 평가하는 '능력 혹은 스펙'에서 특출난 것도 아니며 천민자본주의의 시대에서 사회적 계급이 그렇게 높은 계층에 속해 있지도 않다.(굳이 억지로 가져다 붙이면 3선 국회의원의 근친이다는 정도랄까.) 그 이유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내가 나의 '스펙'을 키우려고 특별히 애써 노력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관련된 작은 사례라면 그저께 노동절 휴일을 이용해서 한 달만에 06학번 후배를 만났다. 함께 저녁을 하고 학교 근처 서점에 들러서 내가 본 좋았던 책들(거의 정치학 서적이고 그도 정치학에 관심이 많다.)을 주절주절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서로 책을 하나씩 들고 나왔다. 내가 사려고 들고 나온 책은 합리적 의사결정 모델을 주장한 Graham Allion의 'Essence of Decision-Making(한국명 : 결정의 엣센스)'였고 후배가 들고 나온 책은 두껍한 TOEIC문제집이었다. 그가 말했다.

"형은 사회학문을 다룬 책인데, 저는 영어 문제집이군요."


그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내가 나 나름의 내가 동경하던 히피스러움으로서 내면화된 것이 아닐까 하고.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한가롭게 소설책을 보며 히히덕거리거나 눈물을 뚝뚝 흘리고, 나처럼 자기 전공학문이 좋아서 졸업하고서도 관련서적을 찾아 다니며 자기계발에 소홀히 하는 인간군상들이 어쩌면 우리 시대의 새로운 히피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저 돈 버는 법을 빨리 깨우친 '잭 웰치'나 '워렌 버핏', '이병철/이건희' 같은 '자본노름꾼'들이 위인인 양 자서전에 처체술 서적을 세상의 호평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에서 어쩌면 죽어도 돈 안되는 이런 '낡은 학문'을 좋다고 추종하며 돈안되는 방구석에서 읽어대는 나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 21C의 새로운 히피들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새 내가 바라던 '체제순응적 히피족'이 되어가고 있는 건가? 그러기엔 내가 동경하던 그런 '삶의 멋'이 너무 부족하다. 명품이니 럭셔리니 하는 개나발 소갈딱지 없는 그런 상스런 천민들의 멋이 아닌, 무한 자유 속에서도 이 체제에서 어긋나지 않는, 파괴적이고 무책임했던 60년대 히피들과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히피가 되고 싶다. 물론 인위적으로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겠지.


Bill Evans Trio - Alice in Wonderland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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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 Trackback 0
  1. BlogIcon 백마탄환자™ 2007/05/07 00:17 address edit & delete reply

    음.. 제가 책을 골랐다면
    보지도 않을 음악 이론 서적을 골라서 나왔을 거예요.
    (쓰고 보니 연관성이 없네;; )

    • BlogIcon Hedge™ 2007/05/07 23:19 address edit & delete

      음악이론은 그래도 정치학 책보다는 돈이 될 확률이 높을 것 같아요. ^^..
      정치학은 뭐.. 미국물(유럽물도 잘 안통하죠.) 좀 먹고 와야 힘 좀 쓰기 시작하다 보니..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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