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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했다.


나윤선 - 어린 물고기
[Memory Lane, 2007]


토요일의 늦은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예정된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그와 4년이 넘는 시간만에 다시 재회할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아닌 '남자'를 만남에 있어서 이렇게 긴장되고 흥분되었던 순간은 없었다. 내일 당장 Zbigniew Brezinski나 Henry Kissinger, Samuel Huntington을 만난다고 해도 이처럼 긴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만남에서는 나의 타고난 도도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지극히 '이성(理性)적 만남'이 될테니.

그와의 만남은 나를 감성적으로 만드는 이성(異性)과의 만남과는 다른 의미에서 감성적으로 만든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의 그의 말과 행동, 의식세계는 내게 일종의 동경의 세계였다. 약간은 히피스러운 기질을 가진 듯하면서도 체제에 무리한 저항을 하지 않는다. 망나니인 듯 하면서도 생활에 충실하다. 특별히 대단한 스펙(? 뭐.. 나름.. 한창 잘 나갈 때 여자를 꼬드끼는 재주는 참 좋았었다.)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그가 더욱 나를 Wannabe로 만들었던 것 같다. 평범함 속에서 평범하지 않은 그의 모습이 나 또한 그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었나 보다. 그 때는 이런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었다.

그런 그가 어느덧 35세의 원숙한 청년이 되어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비록 과거와 같은 그런 무형의 카리스마는 많이 꺾이고 내게 '참한 아가씨나 소개시켜 달라'는 다소 초라한(?) 모습이 되었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세상이 꺾지 못하는 그만의 세계와 가치관이 남아 있는 듯 했다.


"현실에 감사하며 너보다 낮은 쪽도 살펴라."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영화 속에서 수도 없이 나올 법한 그런 말들. 하지만 그가 그 날 나에게 해준 말이기에 좀 더 내 안 깊은 곳에 보이지 않게 아로새겼다. 수원으로 거주지를 옮긴 탓에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틈날 때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아직 배워야할 것이 너무나 많다. 그와 헤어진 이후의 시간동안 나의 역할모델을 오랫동안 찾지 못했었다. 아직 내겐 그 만한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P.S. : 더불어 같은 자리에서 1년여의 시간 만에 다시 만난 그 만큼이나 오래된 친구도 반가웠다. 오랫동안 만나며 갖은 情이 참 많이 든 사이였는데, 세상에 뭐가 그리도 바빴는지 모르겠다. 다 먹고 즐기자고 사는 삶인데, 나는 너는 그리고 우리는 무엇에 그리도 쫓기며 살았던 걸까? 나의 성품은 '약간의 히피스러움'을 소유하기에는 지나치게 신중한 것일까.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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