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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들의 망국적 선민의식과 도발적 매국책동

나는 정치/외교/안보 분야에서 키신저적 성향과 신보수주의적 성향을 공유하고 있지만, 경제적인 분야에서는 전반적으로 보호무역 성향에 가깝다. 세계화(Globalization이던지 김영삼의 Se-Gye-Hwa이던지 간에.) 추세에 따른 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서 수용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지, 시장주의자들처럼 결코 자유무역을 만병통치약따위로 여기지는 않는다. 때문에 FTA와 같은 WTO체제 이상의 또다른 형태의 자유무역 지향의 국제법이나 조약을 거부하는 편이다.

이유는 명백하다. 시장주의적 발전론은 정치적/경제적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수치적 성장이 있을 뿐, 그에 따르는 사회적 부의 재분배 과정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부의 재분배를 위한 노력을 성장동력을 갉아 먹는 기생충쯤으로 여기는 시장만능주의자들의 삐뚤어진 부르주아지의 사회적 책임회피현상에 대해 일말의 동조도 갖고 있지 않다. 시장주의자들에게는 '도덕'과 '윤리'가 없다. 나는 국제관계에서 키신저의 정치행보에서 볼 수 있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 무도덕/무윤리에 광적으로 열광하지만, 그 무도덕과 무윤리는 자신의 국민국가에게까지 전이되어서는 안된다. 키신저의 머릿 속에 자신의 조국인 미국과 미국의 이익을 계산하는 계산기만이 있는 것처럼 한국의 지도자에게는 한국과 한국민의 이익을 계산하는 계산기가 있어야 한다. 시장주의자들의 허황된 개방에 대한 막연한 장미빛 전망이 보이는 후광에 실명하여 빛과 어둠을 분간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이미 지도자로서 그 존재가치를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 화염병을 던지며 수업을 거부하며 쇠파이프와 죽창을 휘두르며 반전반핵반미(反戰反核反美)를 외치던 자들이 어느 순간엔가 갑자기 그들이 그토록 경멸한다던 숭미주의자들이 되어 버렸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던 청기와집의 청개구리 녀석이 언제부턴가 갑자기 그들이 수구냉전세력이라고 매도하던 숭미주의자가 되어 "미국시장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라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열렬히 중국을 짝사랑하던 그가 말이다. (짝사랑이 얼마나 비참하고 소모적인 것인지 깨달은 것인가?)


집권말기의 노무현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광적으로 집착한 이유는 두 가지다. 그 첫번째는 노무현의 집권 기간동안 '노무현을 대표하는 긍정적 결과를 도출할 가능성을 지닌 성과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집권 초기 노무현이 '직접 챙기겠다'라고 말했던 수십가지 사안들은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날짜별로 잘 정리된 목차가 나올 지경이지만, 오늘날 와서 그것들 중에 제대로 지켜진 것은 한 손으로 꼽아도 손이 한산할 지경이다. 그가 집권 중반기 목숨걸고 뛰어들었던 부동산 정책은 결과론적으로 실패했음을 패배를 인정할 줄 모르는 노무현이 자기 입으로 시인한 실패작이다. 김대중에게서 배운 혈세를 퍼주어 국민대중의 여린 감성을 선동하고 자극하는 남북정상회담은 임기 중에 성사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날샜다. 이제 남은 것 중에서 노태우의 아파트 2백만호 건설, 김영삼의 부동산 실명제(+국제구제금융위기), 김대중의 햇볕정책처럼 자신을 대표하는 아이콘을 만들고 싶었던 그에게 '韓美FTA타결'은 아주 매력적인 유혹이었을 것이다.

TPA(무역촉진권한 : Trade Promotion Authority) 시한에 쫓긴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장기플랜이었던 韓美간의 자유무역협정을 1년만에 날림으로 조속추진 논란을 야기하고 언론을 통해서 수없이 지적되고 폭로되었던 한국측 협상단들의 당시의 나조차도 알고 있던 관련지식에 대한 무지몽매한 협상단(그 때 대놓고 씹혔던 그 한국측 대표는 오늘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회담 성과에 대해서 스스로 수우미양가의 '수'점수라고 자평하는 허무개그를 펼쳤다.)이 진행한 협상 내용에 대한 결과물의 자평은 한 손으로 태양을 가리려는 듯한 어리석고도 아둔한 작태였다.

TPA는 의회에서 행정부에 임의로 부여한 권한으로 의회 혹은 행정부가 필요로 한다면 얼마든지 '갱신'(실제로 미의회의 각종 조례들은 수없이 Renew되고 있다.)될 수 있는 것으로 그 기간이라는 것은 이번에 한국민들이 적나라하게 보았다시피 얼마든지 엿장수 마음대로 늘였다가 줄였다가 할 수 있다. 그런 기초적인 상식에서조차 노무현 한 개인의 정치적 야심에 쫓긴 한국정부와 대표단은 말레이시아와의 자유무역협정을 위한 협상 실패로 몸이 달아 자유무역 사조의 퇴보를 우려하여 몸이 달아있던 미국의 약점을 제대로 후벼파지 못했다. 한 개인의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 국가라는 운명공동체와 4800만 한국민들이 또 한 번 햇볕정책 만큼이나 큰 리스크를 품은 도박판에 내던져진 꼴이 된 것이다.


노무현이 FTA타결에 목을 맨 또 다른 이유는 '노무현의 지독하리만큼 외곬수로 삐뚫어진 선민의식'에 있다. 노무현의 선민의식은 그의 집권 기간 내내 수없이 볼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가장 최근에 있었던 '대통령중임제'와 '韓美FTA타결을 위한 작위적 노력'은 그가 과거 군사정권의 수괴였던 박정희가 김재규의 권총에 맞아 죽는 순간까지 깨닫지 못했을(그리고 그를 다룬 수많은 전기와 자서전들에게서 피력되는 것처럼) '나 아니면 누가 이 나라를 바른 길로 이끌어 갈 것인가?'하는 막연한 선민의식에 기인한다. 실제로 그러한 선민의식에 빠져있던 박정희가 죽고 나서도 그가 남긴 개발독재의 유산 덕분에 두발장애자 대머리 각하 인간쓰레기 전두환이 집권하던 시기에도 한국은 꾸준한 통계수치적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고, 이는 '물태우' 노태우, '갱제'의 김영삼 시기까지 이어졌다.

노무현도 마찬가지다. 노무현 자신은 자신이 하지 않으면 누가 정치적 불안을 무릅쓰고 경제 분야의 헤비급 챔피언인 美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무리수를 두겠냐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지만, 현실세계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나 하나가 없어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만 돌아간다. 노무현의 철부지 행동에 국가의 장기플랜이었던 韓美자유무역협정이 1년만에 번갯불에 콩 볶듯이 만들어져 버렸다. 그러고서는 오늘 노무현은 담화문에서 '국가적 발전 아젠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10년 뒤, 20년 뒤를 바라봐야 하는 '국가적 발전 아젠다'라는 것을 어떻게 1년만에 그리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지 참으로 기이하다. 언제 그렇게 한국에 연구인력이 그리도 많이 확보되어 있었던가? 포털들이 음란물을 모니터링으로는 막을 수 없다며 울상이던 포털들이 일이 커지자 모니터링을 해결방안으로 내놓은 꼴처럼 해보지도 않고서 해봤다고 일단 거짓말을 하고 나서 뒷감당이 안되면 '불가항력'을 외칠 태세와도 같다고 할까?


노무현과 그의 친위세력들로 이루어진 위정자들은 스스로를 '조국의 민주화 세력'이라고 참칭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끼리 모여서 쑥덕거리며 조국의 민주화를 맨손으로 이루어 냈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일단 그들이 민주화를 위한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한 것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정작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서 평생을 투쟁한 인물들은 그들이 '수구냉전세력'이라고 비방하는 김영삼과 새천년민주당과 떨어져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보수꼴통세력'이라고 매도하던 김대중 등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들은 韓美자유무역협정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 참칭한 민주화 세력이라는 색채를 스스로 짓밟고 그들이 수구냉전 세력이며 군사독재 정권이라고 여기던 박정희/전두환 같은 군정 시절이나 다름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니, 조국 근대화의 수준이나 이 땅의 민주주의의 성숙의 수준을 감안하면 그보다 더 극단적이고 엄청난 초대형 반동행위를 저질렀다. 反FTA관련 집회를 모두 불법화하고 反FTA성향의 지면/영상홍보 등을 정부차원에서 원천봉쇄한 것이 그것이다.

스스로 민주화 세력이라고 참칭하던 자들이 이와 같은 반동적 책동을 감행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기까지 하다. 2006~2007년 사이에 대한민국은 잠시동안 'FTA'라고 하는 단일한 주제에 한해서 나처럼 보수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 아닌 극좌적 성향의 아나키즘 신드롬에 찌든 몇몇 극단적 운동가들에게는 최소한 과거 중앙정보부 공안정국에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시대적 사조를 감안할 때 그 때보다 더 큰 좌절감을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2007년의 대한민국에서 언론과 집회, 결사의 자유가 탄압 받았다는 사실은 엄청나고도 명백한 시대적 소명의식을 역행하는 대(大)만행이었고 광범위하고도 무차별적인 대중학살행위다. 2007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그들 스스로가 그토록 울부짖었던 냉전수구세력들이나 하는 중대범죄로서 정권과 정당의 정당성마저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져야 할 것이며 노무현이란 한 개인의 시대착오적 인격/소양마저 심판받아 마땅하다.

더불어 역설적으로 FTA와 관련한 대중운동의 탄압은 그들 스스로 그들의 행위가 정당성이나 국가적 중대사를 처리하는 명예로움이 아닌 특정한 목적이나 이익/한 개인이나 집단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국가 차원의 범죄행위가 자행되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기도 하다. 떳떳하지 못한 자들의 행동이기에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서 떳떳하지 못한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려 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주요 언론사를 통해서 1번에 1억원이 넘는 전면광고로서 韓美FTA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어린 국민대중들은 선전/선동하는 것을 용인하면서도 어찌하여 그와 반대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억압하고 탄압하는가? 그것은 스스로 억압 받고 탄압 받았다던 자들의 자격지심인가. 아니면 '권력은 반드시 보수화 한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자신들이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던 것인가.


또 노무현이 광적으로 추진한 韓美FTA과정에서는 '의회민주주의' 또는 상호견제를 기치로 내건 민주주의의 철칙인 '삼권분립'이 철저히 무시되고 묵살되었다. 행정부가 그들 스스로 말한 '국가적 발전 아젠다'인 韓美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권력의 3대 중요 행위체인 의회의 정보공개 요구를 협상 과정에서의 정보보안을 이유로 거부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3대 정치행위체인 의회가 또 다른 행위체인 행정부의 독단적 판단에 의해서 국가 중대사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중대사건이다. 현 정부는 현행법상의 법조문을 내세워 자신들의 범죄적 일탈행위를 변호하고 있지만, 스스로 민주화 세력이라고 참칭한 자들이라면 그와 같은 현행법 조문의 특권을 얼마든지 융통성 있게 해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자유무역협정 체결과정에서 쏟아지는 국민적 저항을 설득하기 위한 합리적 대안으로서 작용할 수도 있었고, 그들이 참칭하는 역사적 사회발전적 행위의 결과물인 민주사회 건설의 결실을 국민대중들에게 훨씬 극명하게 노출하여 한국정치 관행의 변화하고 발전된 모습을 대내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결론은 2007년의 대한민국에서 민주화 세력을 참칭하는 자들이 모여서 밀실회담을 벌였고 그 결과물이 오늘의 내용들이다.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는 일이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FTA협상 타결과 의회 비준은 다른 문제라고 오랜만에 한 목소리를 냈다. 골프장에서 2라운드만 돌고 나오면 어제의 일은 모두 잊어버리는 일반적 망각의 동물인 국민대중의 인간들과는 다소 다른 지적사고체계를 가진 '국회의원'이라는 원숭이들은 지난날 韓-칠레 FTA국회 비준동의안 통과 과정에서 발생했던 범국가적 저항에 대해서는 이미 잊어버린 모양이다. 열린우리당의 그 여자 대변인(말을 워낙 간사하고 가증스럽게 해서 오늘 오전에 머리에 그녀의 말이 팍팍 박혀 버렸다.).. "타결은 타결이고 이제부터 수백번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라고? 여지껏 뭐하고 있다가 이제부터 계산기를 두드릴 생각인지 참으로 희안한 족속들이 아닐 수 없다. 계산기가 일반 계산기가 아니라 공학용 계산기처럼 사용하기가 복잡할텐데, 일반 계산기도 못두드려서 골프장에서 라운딩할 때 우산 씌워주는 역할로 밖에 쓰지 않는 보좌관들을 시킬 녀석들이 무슨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란 건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국익(National Interest)'이라는 것만큼 까탈스러운 것도 드물다. 마이너스로 계산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국익을 지켰다'라고 보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플러스로 계산이 떨어지는데도 상대적 계산과 논리에 의해서 '국익을 훼손했다'라는 냉소와 비난을 받기도 하는 것이 국익이라는 가치를 다루는 자들의 딜레마다. 노무현은 韓美FTA를 통해서 어떤 면에서 수치적으로 한국과 한국경제의 발전그래프를 청신호로 그려넣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그래프에는 노무현 집권 이후 현저히 심화되었다고 끊임없이 지적 받는 사회양극화가 더욱 더 극명하게 벌어지는 모순된 숫자놀음의 중간값이 그려넣은 낭만적 청사진일 뿐이다. David Eastern이 말하는 정치의 기본적 정의인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국적 특수성과 시장주의자들의 독설 속에서 '자유시장'과 애덤 스미스의 철지난 논리로 한국이라는 운명공동체가 IMF와 IBRD로부터 시장개방만이 살 길이라고 조언 받으며 차관을 들여오다가 무참한 경제실패와 국가부도 사태를 경험한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의 경우들처럼 좌초되지는 않을지 심히 우려스럽다.


P.S. : 현대자동차와 삼성이 잘되면 대한민국이 모두 잘되는 것인가? 내 아버지의 사업장 거래처 중에서 삼성에서 하도급 받고 있는 사업장 대표들이 삼성의 감찰단들에게 받는 부당한 간섭과 횡포가 비단 삼성만의 일인 것일까. 이재용/정의선이 세금을 포탈하여 국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거대기업의 투명한 검증이 없는 제왕적 부자승계에도 묵인하며 위기 상황에서 공적자금이란 이름으로 혈세를 꼴아박아야 하는 한국민들의 아픔은 누가 보듬어 주나.


Hedge™, Against All O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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